[20220522] 2021년 5월 22일 주일말씀 구역(가정)예배 교안
2022년 5월 2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요 9:39-41)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20장, 383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요 9:39-4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2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보면서 제자들, 말씀을 대하는 우리 또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에게 불행이 오는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라는 전제의 질문입니다. 과거의 나의 죄, 부모의 죄가 영향을 줘서 불행을 만들어 내었다는 운명론적 사고이기도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하실까요? 예수님은 날 때부터 눈 먼 사람 안에서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설교의 요약
우리는 종종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불행을 경험할 때면,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가?” 묻고 있던 제자들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향한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불행의 기원을 사람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찾으셨습니다.(요 9:3)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시려고 이런 일이 허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지향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희망적 미래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진흙을 이겨 눈 먼 자의 눈에 이것을 바르고 나서 실로암에 가서 씻게 하셨습니다. 그 말대로 했을 때 이 사람은 눈을 뜨는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된 그를 바라본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가 눈을 뜨게 된 것에 축하하며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준 것이 예수님이라 말했지만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 안에서 죄를 찾는 데에만 혈연이 되어 있습니다. 눈을 뜬 이 사람이 정말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인가도 믿지 못하여 그 부모를 대동하여 확인하기도 합니다. 왜 이토록 믿지 않느냐고, 자신을 낫게 해준 예수님을 변호하는 이 사람을 결국은 바깥으로 내 쫓아버립니다. 바리새인들은 죽이는 율법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이 사람이 눈을 뜬 것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던 전통, 지식, 선입관 때문에 놀라운 일을 목도하고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눈으로 남의 허점과 죄만 보고 있었습니다. 율법에서 죄를 찾고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그토록 말하지만 결국 남의 죄만 보고, 전통에 사로 잡혀 진정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못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눈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일하심을 보고, 깨달으며, 인간의 나약한 현실을 보게 하셔서 주님께로 나아가도록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것은 전통에 선입관에 묶인 과거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이룰 미래입니다. 누구의 허물과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멋진 역사하심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보게 하시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나누기
1. 과거 지향적 사고나 운명주의에 붙들려서 내게 보고 행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나는 본다고 말하면서 진정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보길 원하실까요?
마무리기도
주님, 비뚤어진 눈, 정죄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진정 눈을 들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보게 하옵소서. 주신 말씀 안에서 주님을 온전히 알고 믿음으로 나가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