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민수기 시작에서 백성들은 만반의 준비를 거쳐 설레는 마음으로 광야를 출발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민수기입니다. 민수기(民數記)라는 책의 제목은 ‘백성의 수를 세다’라는 뜻입니다. 이 제목은 라틴어 성경(Vulgate)의 ‘Numeri’(숫자를 세는 책)라는 단어로 책 제목을 붙인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Numbers’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책의 제목이 민수기로 정해진 데에는 이 책 속에 인구 조사가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민수기의 시작과 함께 백성들의 숫자를 세게 하시고, 행진 대형을 구체적으로 정하셔서 하나님의 군대로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게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기’라는 책의 제목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히브리어의 성경 제목은 ‘베미드바르(בְּמִדְבַּר)’, 즉 ‘광야에서’라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 중에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지 만 1년 1개월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1:1)
그렇다면 그들은 1년 1개월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요? 우선 출애굽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죽어 나가는 순간, 그들은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그러고는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그들은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들이 애굽을 출발해서 시내산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잠시 정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막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완성하던 날, 그날은 그들이 출애굽한 지 꼭 1년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출 40:17)
그달 14일에 두 번째 유월절을 지냅니다. 그리고 그다음 달 첫째 날, 즉 제2년 2월 1일에 전쟁에 나갈 남자의 수를 계수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그 내용이 민수기의 시작인 1장 1~2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20일이 지난 후인 2월 20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시내산을 떠납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대장정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됩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민 10:1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새로운 출발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약 10달 넘도록 시내산 아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움 속에서 경험하였습니다. 십계명과 율법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받으며 그 설계도대로 성막도 만들었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어떻게 행진할지도 계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머물지도 하나님께서 모두 알려 주셨습니다. 마침내 나팔 소리가 광야에 울려 퍼졌고 구름 기둥이 떠올랐습니다.
준비는 완벽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드디어 가는구나!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는구나!” 아마도 그들의 마음은 설레는 마음과 감격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민 10:33a)
<그러나 광야에 들어서자 원망의 말을 일삼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불의 심판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출발한 지 3일째 되던 날,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민 11:1a)
겨우 3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세밀한 인도를 받으며 출발한 지 단 3일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찬양이 아닌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무엇을 원망했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이는 특별한 문제보다는 광야라는 환경 자체가 주는 불편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내산 아래에 있을 때만 해도 살만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광야로 들어서자 뜨거운 뙤약볕과 이동의 불편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환경이 조금 거칠어지자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한 해 동안의 은혜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 보입니다.
성경은 이들의 원망을 그냥 원망이라고 하지 않고 ‘악한 말’이라고 따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모든 불평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악한 원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민 11:1b, 새번역)
성경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이름을 ‘다베라’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불사름’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필이면 ‘진영의 끝’이었을까요? 성막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던 대형에서 진영 끝에 처져 있던 사람들은 누구였겠습니까? 믿음의 대열에서 낙오되어 투덜거리며 억지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 구경꾼처럼 행진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불평은 언제나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진 진영 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불평은 불길처럼 번져 갑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6)
불평은 혀를 타고 불처럼 번져 갑니다. 진영 끝에서부터 대부분 시작됩니다. 불평은 공동체의 가장 약한 것부터 태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진영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이 번져 가는 모습 그대로 여호와의 불을 진영 끝에 붙이셨습니다. 그 불길은 혀의 불길과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하나씩 앗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을 태웠다고 말씀하지만, 정작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여호와의 불보다는 그들의 말, 곧 불평의 불길이자 혀의 불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죽음의 불길을 따라 여호와의 불을 놓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닥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니 불이 꺼졌다. (민 11:2, 새번역)
위기의 순간 백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무력과 잘못을 깨닫고 모세에게 부르짖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불을 꺼 주셨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하게 1절로부터 3절까지 이어지고 마무리됩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불평하다가 죽임을 당했으니, 결코 작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큰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싱겁게 끝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눈앞에 두고도 결핍을 바라보는 원망의 체질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앞서 민수기의 이름이 라틴어로는 ‘수를 센다’(Numeri)라는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Numbers)를 세시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군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인 ‘베미드바르(בְּמִדְבַּר)’, 즉 ‘광야에서’라는 제목처럼,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숫자를 세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핍의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군사로 세고 계시는데, 정작 우리는 광야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불편함과 결핍의 숫자를 세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당차게 시작된 행진이 고작 3일 만에 불평과 원망으로 엉망이 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뜨거운 은혜를 경험하고 성령 충만하여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유효 기간이 고작 3일을 넘기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에 눈물로 예배드리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결단하며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고 3일째가 되는 수요일쯤 되면, 우리의 입술은 어느새 이스라엘 백성들과 닮아 있습니다.
삶의 현실에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직장,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 자녀와의 관계를 마주합니다. 이러한 삐걱거리는 인간관계와 척박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감사와 은혜의 숫자를 지워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불편함과 결핍의 숫자만을 셉니다. 진영 끝에서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은밀하게 불평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은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이 우리의 믿음과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원망의 체질’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감사가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그곳에서조차 우리는 원망의 조건을 찾아내고 말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이라는 완벽한 동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불평할 조건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가 겉보기에는 단순한 해프닝처럼 끝납니다.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지며 이야기가 싱겁게 끝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조금도 쉽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 장소를 굳이 ‘다베라’, 곧 ‘불사름’이라고 명명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는 내내 너희들은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경고의 마음을 이 단어에 담아 두신 것 같습니다.
“원망의 말이 너희의 삶을 불사르는 지옥 불이 될 수 있다. 너희의 입술을 지켜야 한다. 환경의 숫자를 세지 말고 은혜의 숫자를 세어라. ‘다베라’라는 이름을 꼭 기억하여라.”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광야 길을 출발한 지 고작 3일 만에 실패한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엄중한 사랑의 경고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고 불평하게 된 3일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 10:33)
백성들은 고작 3일 만에 원망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똑같은 3일 동안 백성보다 앞서가시며 그들이 편히 쉴 곳을 찾고 계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백성들이 불평의 숫자를 세고 있을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곳에 쉴 곳들을 예비하기 위해 앞서 달려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작 3일 만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 낸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방관자의 자세는 은혜와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진영의 끝’이 주는 의미입니다. 앞서 우리는 불평이 진영 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진영 끝에 처지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종종 신앙의 진영의 끝에 머무르게 될까요?
시내산에서 출발할 때 이스라엘은 완벽한 행진 대형을 갖추었습니다. 언약궤가 앞서고 지파들이 동서남북으로 정렬하여 일정하게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흘을 걷는 동안 대열의 중심에서 멀어져 슬금슬금 뒤로 처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힘들어서였을 수도 있겠고, 먼지 날리는 광야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영적인 중심을 잃어버리고 대열의 가장자리, 즉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났다는 사실입니다.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서 진영 끝에 처하게 되자, 그들의 눈에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친 모래바람과 옆 사람의 지친 얼굴만이 보였을 것입니다. 시선이 흐려지니 가장 먼저 그들의 입술이 삐죽거리기 시작합니다. 원망의 불길이 공동체 전체를 태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위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진에서 앞서 나가면 지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뒤로 물러서면 지치게 됩니다. 혹시 은혜의 중심에서 슬그머니 물러나서 교회의 진영 끝, 예배의 방관자 혹은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똑같은 행진 길인데 조금 뒤떨어져서 가는 일은 매우 불리해집니다. 신앙은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순종하고 헌신할 때는 원망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멀찍이 서서 하나님의 사역을 구경하기 시작할 때, 은혜의 대열 가장자리에서 판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심령은 영락없이 다베라의 진영 끝이 되고 맙니다. 불평이 잦아지고 원망의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엔가 뒤처져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영의 끝을 불사르셨습니다. 가장 약한 곳,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을 치심으로 공동체 전체가 다시 영적인 중심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베라의 불이 가시기도 전에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극적인 세상의 기억을 잊지 못하며 원망에 빠졌습니다.>
아직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4절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2절과 3절을 보면서 그래도 모세가 기도해서 불이 꺼졌고 다베라라는 이름의 경고를 받았으니, 백성들이 정신을 차렸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불길을 눈앞에서 보았고, 동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인 4절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절망감을 선사해 줍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4)
‘다시 울며 이르되’라고 성경은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금 전에 다베라의 불길이 꺼졌습니다. 불길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원망의 강도가 더 거세졌습니다. 아예 대놓고 통곡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애굽을 그리워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 냅니다.
저는 이 어처구니없는 반전의 역사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평으로 시작된 혀의 불은 마치 산불과도 같구나’라는 생각입니다. 1~3절에 나온 것과 같은 작고 사소한 원망의 불씨를 말씀과 회개로 완전히 끄지 않고 방치한다면, 결국 온 심령과 삶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탐욕의 불길로 진화할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불 심판을 눈앞에서 경험하고서도 돌아서자마자 다시 원망에 빠졌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그리워했던 ‘애굽의 맛’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백성들은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민 11:5~6)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아주 고약한 영적인 향수병과 ‘기억의 왜곡’을 보게 됩니다. 벌써 백성들은 애굽에서 채찍질당하며 벽돌을 구웠던 과거, 갓 태어난 자식을 나일강에 던지며 피눈물 흘렸던 종살이의 고통을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그곳에서 먹었던 자극적인 음식 맛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향해서는 “지루하다.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기력이 쇠약해진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기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폄하하고 조롱합니다. 매일 아침 신선하고 담백하게 내려 주시는 영의 양식보다, 애굽의 맵고 짜고 자극적인 부추의 맛, 파의 맛, 마늘의 맛을 달라고 어린아이 때처럼 떼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거친 광야 길이라고 할지라도 날마다 주시는 만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 역시 뜨겁게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광야 같은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면, 예수 믿기 전에 세상에서 즐겼던 자극적인 것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애굽의 부추와 마늘’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화려한 성공, 짜릿한 육신의 쾌락,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어떤 것들, 나의 욕망을 채워 주는 세상의 수단과 방법들일 것입니다.
반면 ‘광야의 만나’는 무엇입니까? 매주 똑같이 드리는 지루해 보이는 예배, 매일의 묵상과 기도들, 소박하고 담백한 기도 생활들, 그리고 성도로서 살아가는 거룩하고 단순한 삶의 여정들일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영적 권태기를 겪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와도 재미가 없다. 예배가 지루하다. 말씀만으로는 나의 타는 목마름과 현실의 문제가 채워지지 않는다.”
여러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영적 입맛이 세상의 자극적인 부추와 마늘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자극에 영혼의 입맛이 오염되니, 날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기적적인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 은혜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지루하다고 쳐 버린 탐욕의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주저앉아 고기를 달라고 통곡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마침내 메추라기를 바람에 몰아 진영 사방의 지면에 가득 쌓아 주십니다. 그들이 구한 대로 고기를 넘치도록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3)
결국 고기를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넘어졌고, 성경은 그 자리의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이 광야의 여정 속에서 우리를 두 가지 지명 앞에 세워 두고 있습니다.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이름입니다. 두 곳 모두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며 불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겪었던 장소들입니다. 성경은 그 장소를 잊지 않도록 이름을 분명히 적어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평하다가 영혼이 메말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거친 광야 길이라고 할지라도, 날마다 내려 주시는 신선한 만나의 은혜에 감격하며 당당하게 걸어가는 거룩한 군대,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은 마치 하늘의 만나처럼 주어집니다. 그러나 비록 자극적인 말씀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의 말씀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서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선택받은 주님의 군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소망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그런 군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Fire of Taberah
Numbers 11:1-3
Today’s text is from Numbers. The book name Numbers means “to count the people.” This title comes from the Latin Vulgate, which named it “Numeri” (the book that numbers). That is why the English Bible is also called Numbers. The book received this title because it contains two censuses.
At the start of Numbers, God has the people counted and assigns their marching formation in detail so they can move forward as God’s army toward the Promised Land. In that sense, the title Numbers is meaningful.
Interestingly, the Hebrew title of the book is “Bemidbar (בְּמִדְבַּר),” which means “in the wilderness.” It refers to the story of God’s people in the wilderness. Let us look together at a very interesting episode that takes place there.
Numbers begins a year and one month after the Israelites left Egypt.
“The Lord spoke to Moses in the tent of meeting in the Desert of Sinai on the first day of the second month of the second year after the Israelites came out of Egypt. He said:” (Numbers 1:1 NIV)
Then what happened during that year and one month?
On the day of the Exodus the Israelites observed the first Passover. They left Egypt after the Ten Plagues. Soon after, they experienced the miracle of the parting of the Red Sea. When they arrived at Mount Sinai, it was three months after leaving Egypt.
There they received God’s word and began to build the tabernacle according to His instructions. The day the tabernacle was completed was exactly one year after the Exodus:
“So the tabernacle was set up on the first day of the first month in the second year.” (Exodus 40:17 NIV)
And on the fourteenth of that month they observed the second Passover.
God then commanded a census to organize the army for the march into Canaan on the first day of the second month of the second year. Numbers 1:1, which we read just now, begins precisely from this point.
Then on the twentieth day of the second month of the second year, the Israelites, led by a pillar of cloud, finally departed from Sinai and began their journey toward Canaan:
“On the twentieth day of the second month of the second year, the cloud lifted from above the tabernacle of the covenant law. Then the Israelites set out from the Desert of Sinai […].” (Numbers 10:11–12 NIV)
The Israelites were likely full of hope at this new beginning. They had stayed at the base of Mount Sinai for over a year. There they heard God’s voice and experienced His presence with awe. They received the Ten Commandments and even completed the tabernacle, the place of God’s dwelling. God had instructed them how to march and how to camp around the tabernacle. Finally, the trumpet sounded through the wilderness, and the pillar of cloud rose.
All preparations were perfect. Finally they took strong steps toward the Promised Land, Canaan. “We’re finally moving out! At last we’re advancing toward the Promised Land!” Their hearts were probably full of excitement and overwhelmed with emotion.
They traveled three day:
“So they set out from the mountain of the Lord and traveled for three days.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went before them during those three days to find them a place to rest.” (Numbers 10:33 NIV)
The story that follows is today’s text. What happened to them three days after that fine departure?
“And the people were as murmurers, speaking evil in the ears of Jehovah:” (Numbers 11:1a ASV)
Only three days had passed. After seeing God’s presence with their own eyes and starting their grand journey under His careful guidance, within just three days the Israelites started complaining and grumbling instead of giving praise.
The Bible does not record a specific reason for their complaint. Probably, it wasn’t because of a particular problem but due to the discomforts of the wilderness itself. Life at the base of Mount Sinai had been tolerable. But once they were back in the wilderness they felt the hot sun and the hardship of travel. Complaints naturally poured out.
When things didn’t go their way and the environment grew rough, the year of grace built up at Sinai vanished like a fog in just three days.
The Bible does not simply say the Israelites were “murmurers”; it says they spoke “evil.” Any murmuring that showed distrust of God and doubt about His goodness was, in God’s sight, evil speech. This evil grumbling provoked God’s anger.
“and when Jehovah heard it, his anger was kindled; and the fire of Jehovah burnt among them, and devoured in the uttermost part of the camp. (Numbers 11:1b ASV)
The place where this happened is called Taberah, which means “the place of burning.”
Dear friends, why did the fire devour in “the uttermost part” of the camp?
Who were lagging behind on the edges of the camp when the Israelites were marching in an orderly formation arranged around the tabernacle? They were those who had fallen out of the ranks of faith, trudging along with complaints, those who had drifted away from the center of grace and marched like spectators.
Complaints always begin at the fringes, away from the center of grace. And those complaints spread like fire.
James says:
“The tongue also is a fire, a world of evil among the parts of the body. It corrupts the whole body, sets the whole course of one’s life on fire, and is itself set on fire by hell.” (James 3:6 NIV)
Grumbling spreads like fire through our tongues. It starts at the outskirts of the camp. It starts to burn the weakest places in our community. Then it gradually burns into the center.
Seeing their grumbling start and spread in this way, God kindled His fire at the uttermost part of the camp. That blaze resembled the fire of the tongue. It began to take their lives.
I meditated on this scene. The Bible says the Lord’s fire devoured them, but wasn’t it really the blaze of their complaints—the tongue’s fire—that drove them to death?
When this crisis came, the people began to cry out. The Bible says they cried out to Moses:
“When the people cried out to Moses, he prayed to the Lord and the fire died down.” (Numbers 11:2 NIV)
In the moment of crisis, the people finally recognized their helplessness and cried out to Moses. When Moses interceded and prayed to God, that fearful flame was at last extinguished.
The story ends rather anticlimactically. Of course, some people who had complained were consumed by the Lord’s fire, so it was not a trivial incident. Yet the matter concludes with a rather flat ending.
So what does this story teach us? What should we learn from it?
Earlier, we noted that the name Numbers comes from the Latin “Numeri,” which means to count the people. God numbered the people of Israel and called them His army. But like the Hebrew title “Bemidbar” (in the wilderness), haven’t the Israelites, in the rough wilderness of life, forgotten the number of God’s mercies and instead only counted the visible lacks before them, and so complained?
God has numbered us as His army, yet aren’t we only looking at the wilderness, counting our discomforts and shortages there, complaining and grumbling? Isn’t today’s text asking us that very question?
Consider also the period of three days. The Israelites’ bold march fell into complaint and grumbling in only three days — which makes us examine our own lives. How are we?
How often do we go out boldly into the world touched with a deep grace and filled with the Spirit, only to have that grace’s effective life last only three days?
We worship in tears on Sunday, decide “I will live according to the Lord’s will,” and step into the world’s wilderness. By Wednesday, the third day of the week after Monday and Tuesday, our lips begin to resemble those of the Israelites.
At work when things don’t go our way, when we see our children not behaving as we hope, amid strained relationships and harsh realities, we so easily erase the number of thanksgivings and graces. Instead we count only the shortages and inconveniences of our lives, and secretly kindle the spark of complaint from the outskirts of the camp.
Brothers and sisters, it is not the harsh wilderness that destroys us. It is the “complaining disposition” still lurking within us that brings us down.
You may think a change of circumstances will release thanksgiving, but if your inner disposition does not change, you will find reasons to complain even in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hough this story seems to end mildly with Moses’ prayer putting out the fire, God intentionally named the place Taberah—“Place of Burning.” He wants us to remember that name as we walk the path of wilderness.
“Your words of complaint can become a hellish fire that burns your life. Guard your lips. Don’t count the numbers regarding your circumstances; count the numbers of God’s grace.”
This was God’s stern, loving warning to a people who failed only three days after leaving the wilderness road.
Beloved, our march cannot stop at Taberah.
Even if the road we walk is dusty and the sun blazes like the wilderness, didn’t the chapter right before today’s text show us a great promise of hope?
“So they set out from the mountain of the Lord and traveled for three days.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went before them during those three days to find them a place to rest.” (Numbers 10:33 NIV)
The people grumbled after only three days, but God was going before them during those same three days, finding them a place to rest. While the people were counting their complaints, the faithful God was running ahead to prepare their resting place.
Third, we should consider the meaning of being at the edge of the camp.
Earlier we noted that the complaints began at the uttermost part of the camp. So why did some people end up there?
When Israel set out from Sinai, their marching formation was perfect: the ark led the way and the tribes were arranged to the east, west, south, and north. But during those three days, some people began to fall back, edging away from the center. Maybe the hot sun wore them down, or the dusty wilderness road displeased them.
What is clear, though, is that they lost their spiritual center and fell back to the edge of the formation, to the “spectator’s place.” Being pushed to the outskirts, away from the center of grace, they could no longer see the ark of the covenant that was going before them. Instead they only saw the blowing sand and the weary faces beside them. As their vision blurred, their lips spoke first, and a blaze of complaint began to consume the whole community.
Beloved, where is your spiritual position today? Have you quietly slipped away from the center of grace to the camp’s edge—remaining a bystander or spectator in church and worship?
When we are willingly obedient and devoted, there is no room to complain. But when we stand off and watch God’s work from a distance—placed at the edge of the line, judging and evaluating—our hearts inevitably become like those of the Israelites who were at Taberah’s outskirts. If complaints grow frequent and words of grumbling spill from your mouth, this is not due to your environment but the most dangerous sign that your soul has drifted from the center of grace to the camp’s edge.
God burned that very edge. By striking the weakest, first-fallen place, He intended the whole community to recover its spiritual center.
Brothers and sisters, our life’s march must not end tragically in Taberah’s grumbling and burning. This morning, if there is an evil spark of complaint or grumbling burning on the tips of our tongue, extinguish it by repenting thoroughly before the Word and through intercessory prayer before it is too late. Move away from the place of the spectator and bystander and return to the center of grace and worship.
This week, instead of focusing on the shortages in the wilderness of your life and stoking the fire of complaint, count the faithful mercies of God who goes before you, naming you and making you His soldier. Remember the God who, even as the people counted complaints, ran ahead to prepare their resting place.
Before I close this sermon, there is more to consider. Let’s look at what follows after verse 4.
Looking at verses 2–3 we expect, “Moses prayed, the fire died out, the warning of Taberah was given, the people learned their lesson.” Since they saw God’s fearful judgment and the deaths of their fellows, they should have changed.
But verse 4 gives us a great shock and despair:
“The rabble with them began to crave other food, and again the Israelites started wailing and said, ‘If only we had meat to eat!’” (Numbers 11:4 NIV)
“and again the Israelites started wailing”
Brothers and sisters, the fire at Taberah had just been extinguished. The smoke had barely cleared. Yet they began to wail again—this time with greater intensity. Now they openly wailed and longed for Egypt.
While meditating on this absurd reversal, I discovered a spiritual principle: it is what I call the “law of spiritual wildfire.” If the small, trivial spark of complaint mentioned in verses 1–3 is not completely extinguished by the Word and repentance but is left as it is, it will eventually become a huge blaze of greed that engulfs our whole hearts and lives.
Why, after witnessing the fearful fire of God’s judgment, did the Israelites fall again so quickly into complaint? There is only one reason: the “taste of Egypt” they longed for still ruled their spiritual palate. In verses 5–6 they cry out:
“We remember the fish we ate in Egypt at no cost—also the cucumbers, melons, leeks, onions and garlic. But now we have lost our appetite; we never see anything but this manna!” (Numbers 11:5–6 NIV)
Here we see man’s depraved spiritual homesickness and a distortion of memory. The Israelites had completely forgotten about the brutal slave labor, the lashes, their children thrown into the Nile, and the tearful suffering of bondage in Egypt. All they remembered was the spicy delicacies they had eaten there.
They belittled the manna, a miraculous heavenly bread that came down on them each day, calling it boring and complaining, “There is nothing else to eat, so we have no energy.” Like spoiled children, they begged for the spicy, salty, stimulating flavors of Egypt—onions, leeks, and garlic—instead of the simple provision God gave each morning.
Beloved, is this not our picture today? We begin our faith lives with passion and grace, but after a while, as the drudgery of life in the wilderness goes on, we secretly long for the stimulating pleasures we enjoyed before coming to Christ.
What do Egypt’s onions and garlic represent? Worldly, flashy success, thrilling sensual pleasures, nightlife, the dopamine hits of social media, and all the world’s ways and tools used to satisfy our desires.
Then what is the manna of the wilderness? The seemingly boring weekly worship, daily Scripture meditation, plain and simple prayer life, and the holy, simple life we as believers must live.
Many Christians in spiritual fatigue say, “Church is boring,” “Worship is dull,” “The Word won’t fill my burning thirst or fix my real problems.”
Do you know why? It is not because our circumstances are bad. It is because our spiritual palate has become addicted to the world’s stimulants, “the onions and garlic” of this world. When our soul’s taste is corrupted by worldly stimulation, we end up complaining and forgetting the value of grace, even when we are eating the supernatural manna God gives us daily.
Then what was the result of this greed that scorned God’s manna? God finally drove quail into the camp so that meat covered the ground all around them. He gave them what they demanded, in abundance.
But Scripture reveals the horrific tragedy behind that apparent success:
“But while the meat was still between their teeth and before it could be consumed,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the people, and he struck them with a severe plague.” (Numbers 11:33 NIV)
Many fell dead before they could even chew the meat, and the place was named Kibroth Hattaavah—“Graves of Lust.”
Here we learn a fearful spiritual lesson. Sometimes God permits our cravings in silence. If we persist in pursuing worldly stimulation and success apart from God, He may hand them to us. But remember: the meat obtained by my own greed—outside God’s will—will only eat away at my soul and kill my faith, becoming a spiritual grave, Kibroth Hattaavah.
Beloved, today’s Scripture sets before us two place-names in the journey through the wilderness.
Will we live the life of Taberah, where leaving a small complaint unchecked burns the whole soul? Or will we end up at Kibroth Hattaavah (Graves of Lust), chasing worldly, stimulating meat until our soul becomes a corpse? There are only these two paths before us.
What must we decide today to avoid these two graves and advance confidently to the Promised Land?
First, we must change our spiritual palate. Break free from the palate addicted to the world’s spicy, salty stimulants—the world’s “onions and garlic.” True holiness begins with a changed spiritual palate. May the pleasures of this world taste bitter, and God’s plain Word taste sweeter than honey to us again.
Second, be moved by your daily manna. The new day given each morning, the loved ones beside you, the life-giving Word you hear each Sunday, the ordinary daily routines—none of these should be taken for granted. These are supernatural daily provisions from heaven, our “manna,” given to us so we can live in this barren world of the wilderness. Nothing in our lives should be taken for granted. Confess that everything has been provided to us by God’s loving grace.
Brothers and sisters, do not become a person who longs for the meat of the world until your soul dies and you dig your own grave. Even if you walk through a barren wilderness, may you be a holy soldier and blessed believer who walks confidently in the true satisfaction God provides, moved by the grace of God who rains fresh manna from heaven each day.
민수기 11:1~3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민수기 시작에서 백성들은 만반의 준비를 거쳐 설레는 마음으로 광야를 출발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민수기입니다. 민수기(民數記)라는 책의 제목은 ‘백성의 수를 세다’라는 뜻입니다. 이 제목은 라틴어 성경(Vulgate)의 ‘Numeri’(숫자를 세는 책)라는 단어로 책 제목을 붙인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Numbers’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책의 제목이 민수기로 정해진 데에는 이 책 속에 인구 조사가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민수기의 시작과 함께 백성들의 숫자를 세게 하시고, 행진 대형을 구체적으로 정하셔서 하나님의 군대로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게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기’라는 책의 제목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히브리어의 성경 제목은 ‘베미드바르(בְּמִדְבַּר)’, 즉 ‘광야에서’라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 중에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지 만 1년 1개월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1:1)
그렇다면 그들은 1년 1개월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요? 우선 출애굽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죽어 나가는 순간, 그들은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그러고는 애굽을 탈출하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그들은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들이 애굽을 출발해서 시내산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잠시 정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막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완성하던 날, 그날은 그들이 출애굽한 지 꼭 1년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출 40:17)
그달 14일에 두 번째 유월절을 지냅니다. 그리고 그다음 달 첫째 날, 즉 제2년 2월 1일에 전쟁에 나갈 남자의 수를 계수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그 내용이 민수기의 시작인 1장 1~2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20일이 지난 후인 2월 20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시내산을 떠납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대장정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됩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민 10:1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새로운 출발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약 10달 넘도록 시내산 아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움 속에서 경험하였습니다. 십계명과 율법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에 대한 설계도를 받으며 그 설계도대로 성막도 만들었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어떻게 행진할지도 계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머물지도 하나님께서 모두 알려 주셨습니다. 마침내 나팔 소리가 광야에 울려 퍼졌고 구름 기둥이 떠올랐습니다.
준비는 완벽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드디어 가는구나!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는구나!” 아마도 그들의 마음은 설레는 마음과 감격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민 10:33a)
<그러나 광야에 들어서자 원망의 말을 일삼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불의 심판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멋지게 출발한 지 3일째 되던 날,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민 11:1a)
겨우 3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세밀한 인도를 받으며 출발한 지 단 3일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찬양이 아닌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무엇을 원망했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이는 특별한 문제보다는 광야라는 환경 자체가 주는 불편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내산 아래에 있을 때만 해도 살만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광야로 들어서자 뜨거운 뙤약볕과 이동의 불편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환경이 조금 거칠어지자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한 해 동안의 은혜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 보입니다.
성경은 이들의 원망을 그냥 원망이라고 하지 않고 ‘악한 말’이라고 따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모든 불평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악한 원망은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민 11:1b, 새번역)
성경은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의 이름을 ‘다베라’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불사름’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필이면 ‘진영의 끝’이었을까요? 성막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던 대형에서 진영 끝에 처져 있던 사람들은 누구였겠습니까? 믿음의 대열에서 낙오되어 투덜거리며 억지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 구경꾼처럼 행진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불평은 언제나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진 진영 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불평은 불길처럼 번져 갑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6)
불평은 혀를 타고 불처럼 번져 갑니다. 진영 끝에서부터 대부분 시작됩니다. 불평은 공동체의 가장 약한 것부터 태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진영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이 번져 가는 모습 그대로 여호와의 불을 진영 끝에 붙이셨습니다. 그 불길은 혀의 불길과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하나씩 앗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을 태웠다고 말씀하지만, 정작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여호와의 불보다는 그들의 말, 곧 불평의 불길이자 혀의 불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죽음의 불길을 따라 여호와의 불을 놓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닥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니 불이 꺼졌다. (민 11:2, 새번역)
위기의 순간 백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무력과 잘못을 깨닫고 모세에게 부르짖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불을 꺼 주셨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하게 1절로부터 3절까지 이어지고 마무리됩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불평하다가 죽임을 당했으니, 결코 작은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큰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싱겁게 끝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눈앞에 두고도 결핍을 바라보는 원망의 체질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앞서 민수기의 이름이 라틴어로는 ‘수를 센다’(Numeri)라는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Numbers)를 세시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군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인 ‘베미드바르(בְּמִדְבַּר)’, 즉 ‘광야에서’라는 제목처럼,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숫자를 세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핍의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군사로 세고 계시는데, 정작 우리는 광야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불편함과 결핍의 숫자를 세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당차게 시작된 행진이 고작 3일 만에 불평과 원망으로 엉망이 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뜨거운 은혜를 경험하고 성령 충만하여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유효 기간이 고작 3일을 넘기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에 눈물로 예배드리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결단하며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고 3일째가 되는 수요일쯤 되면, 우리의 입술은 어느새 이스라엘 백성들과 닮아 있습니다.
삶의 현실에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직장,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 자녀와의 관계를 마주합니다. 이러한 삐걱거리는 인간관계와 척박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감사와 은혜의 숫자를 지워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불편함과 결핍의 숫자만을 셉니다. 진영 끝에서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은밀하게 불평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실은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이 우리의 믿음과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원망의 체질’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감사가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그곳에서조차 우리는 원망의 조건을 찾아내고 말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이라는 완벽한 동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불평할 조건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가 겉보기에는 단순한 해프닝처럼 끝납니다.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지며 이야기가 싱겁게 끝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조금도 쉽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 장소를 굳이 ‘다베라’, 곧 ‘불사름’이라고 명명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는 내내 너희들은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경고의 마음을 이 단어에 담아 두신 것 같습니다.
“원망의 말이 너희의 삶을 불사르는 지옥 불이 될 수 있다. 너희의 입술을 지켜야 한다. 환경의 숫자를 세지 말고 은혜의 숫자를 세어라. ‘다베라’라는 이름을 꼭 기억하여라.”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광야 길을 출발한 지 고작 3일 만에 실패한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엄중한 사랑의 경고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고 불평하게 된 3일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 10:33)
백성들은 고작 3일 만에 원망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똑같은 3일 동안 백성보다 앞서가시며 그들이 편히 쉴 곳을 찾고 계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백성들이 불평의 숫자를 세고 있을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곳에 쉴 곳들을 예비하기 위해 앞서 달려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작 3일 만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 낸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방관자의 자세는 은혜와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진영의 끝’이 주는 의미입니다. 앞서 우리는 불평이 진영 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진영 끝에 처지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종종 신앙의 진영의 끝에 머무르게 될까요?
시내산에서 출발할 때 이스라엘은 완벽한 행진 대형을 갖추었습니다. 언약궤가 앞서고 지파들이 동서남북으로 정렬하여 일정하게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흘을 걷는 동안 대열의 중심에서 멀어져 슬금슬금 뒤로 처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힘들어서였을 수도 있겠고, 먼지 날리는 광야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영적인 중심을 잃어버리고 대열의 가장자리, 즉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났다는 사실입니다.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서 진영 끝에 처하게 되자, 그들의 눈에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친 모래바람과 옆 사람의 지친 얼굴만이 보였을 것입니다. 시선이 흐려지니 가장 먼저 그들의 입술이 삐죽거리기 시작합니다. 원망의 불길이 공동체 전체를 태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위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진에서 앞서 나가면 지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뒤로 물러서면 지치게 됩니다. 혹시 은혜의 중심에서 슬그머니 물러나서 교회의 진영 끝, 예배의 방관자 혹은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똑같은 행진 길인데 조금 뒤떨어져서 가는 일은 매우 불리해집니다. 신앙은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순종하고 헌신할 때는 원망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멀찍이 서서 하나님의 사역을 구경하기 시작할 때, 은혜의 대열 가장자리에서 판단하고 평가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심령은 영락없이 다베라의 진영 끝이 되고 맙니다. 불평이 잦아지고 원망의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엔가 뒤처져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영의 끝을 불사르셨습니다. 가장 약한 곳,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을 치심으로 공동체 전체가 다시 영적인 중심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베라의 불이 가시기도 전에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극적인 세상의 기억을 잊지 못하며 원망에 빠졌습니다.>
아직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4절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2절과 3절을 보면서 그래도 모세가 기도해서 불이 꺼졌고 다베라라는 이름의 경고를 받았으니, 백성들이 정신을 차렸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의 불길을 눈앞에서 보았고, 동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인 4절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절망감을 선사해 줍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4)
‘다시 울며 이르되’라고 성경은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금 전에 다베라의 불길이 꺼졌습니다. 불길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원망의 강도가 더 거세졌습니다. 아예 대놓고 통곡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애굽을 그리워하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 냅니다.
저는 이 어처구니없는 반전의 역사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평으로 시작된 혀의 불은 마치 산불과도 같구나’라는 생각입니다. 1~3절에 나온 것과 같은 작고 사소한 원망의 불씨를 말씀과 회개로 완전히 끄지 않고 방치한다면, 결국 온 심령과 삶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탐욕의 불길로 진화할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불 심판을 눈앞에서 경험하고서도 돌아서자마자 다시 원망에 빠졌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그리워했던 ‘애굽의 맛’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백성들은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민 11:5~6)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아주 고약한 영적인 향수병과 ‘기억의 왜곡’을 보게 됩니다. 벌써 백성들은 애굽에서 채찍질당하며 벽돌을 구웠던 과거, 갓 태어난 자식을 나일강에 던지며 피눈물 흘렸던 종살이의 고통을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그곳에서 먹었던 자극적인 음식 맛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향해서는 “지루하다.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기력이 쇠약해진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기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폄하하고 조롱합니다. 매일 아침 신선하고 담백하게 내려 주시는 영의 양식보다, 애굽의 맵고 짜고 자극적인 부추의 맛, 파의 맛, 마늘의 맛을 달라고 어린아이 때처럼 떼를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거친 광야 길이라고 할지라도 날마다 주시는 만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 역시 뜨겁게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광야 같은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면, 예수 믿기 전에 세상에서 즐겼던 자극적인 것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애굽의 부추와 마늘’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화려한 성공, 짜릿한 육신의 쾌락,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어떤 것들, 나의 욕망을 채워 주는 세상의 수단과 방법들일 것입니다.
반면 ‘광야의 만나’는 무엇입니까? 매주 똑같이 드리는 지루해 보이는 예배, 매일의 묵상과 기도들, 소박하고 담백한 기도 생활들, 그리고 성도로서 살아가는 거룩하고 단순한 삶의 여정들일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영적 권태기를 겪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와도 재미가 없다. 예배가 지루하다. 말씀만으로는 나의 타는 목마름과 현실의 문제가 채워지지 않는다.”
여러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영적 입맛이 세상의 자극적인 부추와 마늘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자극에 영혼의 입맛이 오염되니, 날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기적적인 만나를 먹으면서도, 그 은혜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지루하다고 쳐 버린 탐욕의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주저앉아 고기를 달라고 통곡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마침내 메추라기를 바람에 몰아 진영 사방의 지면에 가득 쌓아 주십니다. 그들이 구한 대로 고기를 넘치도록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3)
결국 고기를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넘어졌고, 성경은 그 자리의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이 광야의 여정 속에서 우리를 두 가지 지명 앞에 세워 두고 있습니다.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이름입니다. 두 곳 모두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며 불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겪었던 장소들입니다. 성경은 그 장소를 잊지 않도록 이름을 분명히 적어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평하다가 영혼이 메말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거친 광야 길이라고 할지라도, 날마다 내려 주시는 신선한 만나의 은혜에 감격하며 당당하게 걸어가는 거룩한 군대,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은 마치 하늘의 만나처럼 주어집니다. 그러나 비록 자극적인 말씀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의 말씀임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서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선택받은 주님의 군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소망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그런 군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다베라의 불 (민 11: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91, 543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크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도, 현실의 작은 불편함이나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때문에 금세 불평과 원망을 터뜨렸던 경험이 있다면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어 주세요.
<설교의 요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막을 완성한 뒤 큰 기대감을 안고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단 3일 만에 그들의 입에서는 찬양 대신 악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척박한 광야라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 내면에 도사린 ‘원망의 체질’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불평은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 구경꾼으로 전락한 ‘진영 끝’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은 그곳에 진노의 불(다베라)을 내리셨습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헌신할 때는 원망할 틈이 없지만, 은혜의 중심에서 멀어져 구경꾼과 방관자의 자리(진영 끝)로 물러날 때,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궤는 보이지 않고 거친 현실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결국 내 삶에 원망의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은 환경의 탓이 아니라, 내 영혼이 은혜의 대열 가장자리로 처지고 있다는 가장 위험한 영적 신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소한 원망의 불씨를 회개로 끄지 않고 방치할 때,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의 산불로 번진다는 ‘영적 산불의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겪은 피눈물 나는 종살이는 잊은 채 그곳의 자극적인 음식 맛만 그리워하며,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를 지루하다며 조롱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자극적인 쾌락과 성공에 길들여져 담백하고 거룩한 일상의 은혜를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탐욕대로 고기를 넘치도록 주셨으나, 그 찬란해 보이는 결말은 결국 영혼을 갉아먹는 무덤인 ‘기브롯 핫다아와’였습니다.
우리는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의 비극을 피하려면 우리의 영적 입맛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의 맵고 짠 자극을 과감히 끊어내고, 매일 주어지는 생명의 말씀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하나님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내라고 부어주시는 기적인 ‘만나’임을 깨달아 감격함으로 전진하는 거룩한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나누기>
1. 이스라엘의 원망은 은혜의 대열에서 멀어진 ‘진영 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방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기쁨과 자발적인 마음으로 예배와 은혜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번 주에 새롭게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매일 신선한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최근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공급해주셨던 ‘일상의 은혜(만나)’는 무엇이었는지 찾아보고, 서로 감사의 제목을 풍성하게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베푸신 은혜를 잊고 결핍만 바라보며 원망하던 우리의 입술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방관자의 자리인 진영 끝에서 일어나, 예배와 순종의 중심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변화시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평범한 일상의 만나에 감격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는 복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