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디르하가인가 하나님인가

열왕기하 19:14~19

김경진 목사

2026.08.23

<남쪽의 구스 왕 디르하가는 유다에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우리의 손과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위기 앞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존재일까요?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9장은 인간의 본성과 믿음의 본질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때는 주전 701년경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수도 예루살렘은 국가 멸망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절대적 제국을 이끌고 있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명에 달하는 정예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유다의 수십 개의 성읍이 함락당해 불에 탔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예루살렘성 하나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성 안의 백성들은 공포와 절망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전쟁의 판도를 일거에 뒤흔들 만한 엄청난 소식이 그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저 멀리 남쪽 이집트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거대한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왕하 19:9a)

대군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는 구스 왕의 이름은 ‘디르하가’였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 사람들의 눈에는 남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북상하는 디르하가야말로 현실적으로 자신들을 앗수르의 칼날에서 건져 줄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남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와 남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때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올라오고 있는 디르하가와 연합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남유다는 앗수르의 수중에 대부분 넘어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북에서부터 내려온 앗수르는 이미 예루살렘만을 남겨 둔 채 남진을 계속해 라기스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측면에서 본다면 구스의 디르하가의 군대와 연합 작전을 펴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전을 예상한 사람은 놀랍게도 앗수르의 산헤립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자명해 보이는 작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9절을 보면 흥미롭고 긴박한 군사 지리적 이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왕하 19:8)

먼저 앗수르의 산헤립왕은 유다 남부 쉐펠라(Shephelah, 평원 지대)의 핵심 요새인 ‘라기스(Lachish)’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라이스는 고고학 발굴로도 확인되듯이 난공불락의 거대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산헤립은 라이스를 발판 삼아 유다 남부를 완전히 장악한 뒤에 북동쪽에 남겨 둔 예루살렘을 완벽하게 질식시켜 항복시킬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랍사게로 하여금 포위하여 압박을 계속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헤립은 라이스에서 ‘립나(Libnah)’로 병력을 이동합니다. 립나는 라이스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한 장소입니다. 불패를 자랑하던 앗수르 대군이 남부 최전방인 라이스에 머물지 않고, 왜 북쪽으로 병력을 후퇴시켰을까요? 그 이유는 9절에 기록된 대로 ‘구스 왕 디르하가가 출격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남쪽 이집트 국경을 넘어 대군이 북진해 온다는 첩보를 들은 산헤립은 자칫 구스 대군과 예루살렘 군대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할 수 있는 위기를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남부 전선에서 북쪽으로 후퇴하여 유리한 방어 진형을 구축하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감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르하가와 연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유다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을 긴장시키고 후퇴하게 만들었던 ‘디르하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에 등장하는 디르하가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세계 역사와 고고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실존 인물입니다. 세계사에서는 그를 ‘타하르카(Taharqa)’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제25 왕조를 통치했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검은 파라오(Black Pharaoh)’였습니다.
그의 출신지인 ‘구스(Cush)’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수단과 에티오피아 일대를 아우르는 고대 누비아 왕국이었습니다. 누비아는 풍부한 금과 막강한 궁수 부대를 바탕으로 북쪽 이집트 본토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이집트의 제25 왕조를 세웠습니다. 디르하가는 그 제국에서 거대한 카르낙 신전의 대형 기둥을 비롯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는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군사 강국을 이끌었던 영웅이었습니다.
주전 701년 당시 디르하가는 약 20세 전후의 젊은 왕자이자 이집트-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화려한 전차 부대와 건장한 아프리카 정예병들을 이끌고 북상하는 디르하가의 위용은 멸망 직전의 유다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수호천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세에 앗수르의 산헤립왕도 잠시 당황한 듯 보입니다.
산헤립은 우선 전선을 살짝 물려서 립나에 진을 치고 혹시나 있을 예루살렘의 공격을 사전에 막기 위해 강력한 심리전을 구사합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사람을 보내 이전보다 훨씬 더 거칠고 불경한 협박 편지를 보냅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왕하 19:9~11)

실상 산헤립은 남쪽의 디르하가가 두려워 당장은 예루살렘으로 군사를 진격시키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편지로 협박한 것입니다. 다분히 심리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심리전을 히스기야는 몰랐을까요? 남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군사적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을까요? 산헤립이 디르하가를 의식하여 라기스에서 립나로 병력을 물리고, 앗수르의 군대가 양면 전쟁의 부담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던 순간입니다. 정치와 군사 전략에 능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때야말로 군사적 ‘골든타임’이라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남쪽의 디르하가에게 특사를 보냅시다!” “구스의 파라오와 속히 군사동맹을 맺고 앗수르의 뒤통수를 함께 칩시다!”
남유다의 신하들과 친애굽파 관료들은 틀림없이 히스기야왕에게 이렇게 조언했을 것입니다. “왕이여,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막강한 구스의 군대가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저 손을 잡아야만 유다가 살 수 있습니다. 그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아마 이런 조언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보다 더 명쾌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남쪽의 디르하가에게 사절단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매력적인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았을까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개인적으로 외교 협상을 하였다가 실패했던 뼈아픈 과거 사례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1차 침공 때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나아가 의논하지 않고 산헤립과 직접 외교적인 협상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그는 앗수르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왕하 18:14)

외교적으로 접근하며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의 은을 다 내주게 되었고, 심지어는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칼로 다 벗겨 내어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성전을 훼손하면서까지 세상과 타협하며 평화를 구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산헤립은 금과 은을 챙기자마자 안면을 몰수하고 곧바로 대군을 보내어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때 세상과의 비겁했던 타협, 물질을 통한 외교적 줄타기는 위기를 해결해 준 것이 아니라, 원수의 조롱과 더 큰 파멸을 불러올 뿐이라는 사실을 히스기야는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방법은 늘 이렇습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세상의 권력자인 디르하가에게 손을 내밀 것인지,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이유였습니다. 이미 선지자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끊임없이 강력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사 31:1)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 31:3)

히스기야는 눈앞에 보이는 강력한 군사적 대안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 앞에 자신의 외교적인 본능과 정치적 계산을 철저하게 굴복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위대한 장점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단지 국가의 구원만을 염두에 두기보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산헤립에 맞서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만약 유다가 디르하가와 손을 잡고 앗수르를 물리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승리의 영광은 고스란히 ‘구스의 막강한 디르하가’가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의 전차 부대에게 모든 공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여전히 구스의 종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단순히 ‘유다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산헤립의 협박 편지를 받아 든 히스기야는 사람을 찾아 뛰어다니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그 편지에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왕하 19:14~15a)

히스기야는 그 두렵고 치욕스러운 협박 편지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왕하 19:19)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 제가 무서우니 살려 주십시오”라는 수준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저 교만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천하만국에 홀로 한 분이신 주권자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자신의 승전을 넘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최우선으로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우선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약속에 희망을 걸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시고 전능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희망을 걸기로 작정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결단을 내린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1521년,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황제와 교황청의 소환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보름스로 향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독일의 강력한 기사단장 프란츠 폰 지킹겐이 루터에게 밀사를 보내 이렇게 제안하였습니다. “루터여, 보름스로 가지 마시오! 우리가 막강한 군대와 무력을 동원해 당신을 호위하고 지켜 줄 터이니 우리의 칼을 믿으시오!”
루터의 눈앞에 완벽한 군사적 구원 투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또 다른 디르하가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의 무력과 보호의 손을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선언했다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칼과 폭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름스에 가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루터는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기사단의 칼과 정치, 권력의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칼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루터는 세상의 칼을 거절하고 혈혈단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법정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역사를 바꿔 내셨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위대한 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히스기야와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히스기야가 세상의 구원 투수 디르하가의 손을 놓고, 성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편지를 펴놓았을 때,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왕하 19:2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위대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왕하 19:32~33)

그리고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 19:35)

성도 여러분, 이 위대한 구원의 밤을 주목해 봅시다. 유다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 위에서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활 한 발도 쏘지 않았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디르하가의 지원군은 아직 도착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칼과 창이 닿지 않은 그 밤,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사를 보내셔서 18만 5천 명에 달하는 앗수르의 교만한 군대를 단숨에 무력화시키십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단지 신화적인 소설 같은 이야기일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사의 자료는 이 사건의 실체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es) 제2권 141장에서 이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밤사이에 엄청난 수의 들쥐 떼가 앗수르 진영을 덮쳐 군사들의 활시위와 방패 손잡이, 화살통을 모조리 갉아먹었다. 다음날 무기를 잃은 군사들은 도망쳤고 수많은 자들이 쓰러져 죽었다.”

고대 세계에서 ‘들쥐’는 치명적인 급성 전염병, 페스트나 발진티푸스 등을 옮기는 상징적인 매개체였습니다. 아마도 앗수르의 군사들은 전염병의 전파를 두려워하며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산헤립의 육각 원통형 비문(Taylor Prism)’을 보면, 산헤립은 유다의 46개 성읍을 정복했고 히스기야를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라고 요란하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승전 비문에는 ‘가장 중요한 최종 목표였던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라거나 ‘히스기야를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은 한 줄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니느웨로 돌아갔다고 비문을 끝맺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갑작스러운 들쥐의 습격’이라고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치셨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분명 그 밤은 히스기야의 눈물 어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사자가 친히 개입하신 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조롱하던 산헤립은 군사를 다 잃고 도망치듯 니느웨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신뢰하던 우상 ‘니스록’의 신전에 엎드려 경배할 때, 자신의 친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의 칼에 맞아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왕하 19:37).

<하나님만이 모든 나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와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 고대 근동 사료와 앗수르 왕실 비문(Taylor Prism)에 따르면, 디르하가가 이끄는 이집트-구스 연합군은 유다 평원 인근 ‘엘테케(Eltekeh) 전투’에서 산헤립의 군대와 맞붙었으나 큰 타격을 입고 패퇴하였다고 합니다. 디르하가는 앗수르를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역사의 기록된 그의 훗날입니다. 파라오로 즉위한 후에도 디르하가는 앗수르 제국과 패권 경쟁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산헤립의 아들 엘살핫돈과 손자 아슈르바니팔의 잇따른 침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앗수르 군대는 이집트로 들어가 수도 멤피스를 함락시켰고, 디르하가의 왕비와 아들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에살핫돈의 승전비(Victory Stele of Esarhaddon) 또는 발견 장소의 지명을 딴 진지를리 승전비(Zincirli Stele/Sam’al Stele)에는 디르하가가 무릎을 꿇고 앗수르 왕 앞에 목줄이 채워진 채 굴욕을 당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역사 속 디르하가의 실체였습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검은 파라오 디르하가’의 손을 끝까지 붙잡고 그에게 운명을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다는 구스의 디르하가와 함께 잿더미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디르하가와 함께 목줄이 채워진 채 무릎을 꿇고 굴욕을 당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권력, 세상의 영웅, 세상의 해결책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우리를 영원한 위기에서 건져 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경고한 대로 기댈수록 부러져 우리의 손을 찔러 피를 흘리게 하는 ‘상한 갈대 지팡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진짜 주관자는 앗수르의 산헤립도 아니었고, 구스의 디르하가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이 역사의 주인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디르하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뿌리 깊은 유혹이 있습니다. 나의 병을 고쳐 줄 위대한 명의일 수도 있고, 사업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줄 큰 손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나를 모함과 위기에서 건질 유능한 변호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합시다. 당대 온 천하를 호령했던 위대한 디르하가조차 결국은 앗수르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고 쫓겨난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산헤립의 협박 편지에는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빚과 재정의 압박입니까? 앞이 캄캄해지는 질병 진단서입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자녀의 진로와 가정의 깨어진 관계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입니까? 그 편지를 손에 쥐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구걸하지 마십시오. 은밀히 세상의 디르하가들에게 타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오늘 히스기야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펼쳐 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눈물과 상한 마음, 두려움을 주님 앞에 다 쏟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히스기야처럼 이렇게 부르짖으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왕하 19:19)

내가 쥐고 있던 헛된 세상에 손을 놓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을 꿇을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열심으로 친히 일어나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결국 썩고 무너질 세상의 디르하가를 단호히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영원한 피난처요, 요새요, 유일한 구원자로 삼읍시다. 그리하여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소망의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irhakah or God?

2 Kings 19:14-19

Dear friends, how do we act and what do our hearts depend on when we are on a cliff’s edge? In an overwhelming crisis in life, who will you call first on your phone? After spending a sleepless night upon hearing despairing news, we instinctively seek a mighty power that will instantaneously pull us out from the mire.

Our passage today, taken from 2 Kings 19, depicts a dramatic scene in history where this human instinct and the essence of faith collide head-on.

It was around 701 BC. The Southern Kingdom of Judah and its capital Jerusalem were on the brink of national demise. Sennacherib king of Assyria, a formidable empire at the time, invaded Judah with 185,000 elite forces. Dozens of Judah’s cities had already been attacked and burned down, and now all that remained was Jerusalem. Terror and despair gripped the people in the city.

At that very moment, a truly groundbreaking piece of news, one that would immediately turn the tide of war, is heard. A great army from the African continent in the south was coming to them:

“Now Sennacherib received a report that Tirhakah, the king of Cush, was marching out to fight against him.” (2 Kings 19:9a NIV)

The name of the Cushite king leading the army was Tirhakah.

In the eyes of the people of Jerusalem facing a crisis of life and death, Tirhakah, marching north toward them, would have seemed their only hope who would realistically save them from the Assyrian sword.

From the perspective of Hezekiah, king of Judah, and from the viewpoint of Judah’s political leaders at the time, the way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would likely have been to conduct a joint operation with the advancing army of Tirhakah.

Most of Judah had already fallen under Assyrian control. The Assyrian forces, advancing from the north, had continued their southward push, leaving only Jerusalem, and had reached Lachish. From Judah’s point of view, coordinating operations with Tirhakah’s army would have seemed natural.

Surprisingly, it was the Assyrian king Sennacherib who anticipated such a move. The plan was so obvious that he expected it. Thus, in verses 8 and 9 we find a very interesting and urgent military-geographic movement recorded:

“When the field commander heard that the king of Assyria had left Lachish, he withdrew and found the king fighting against Libnah.” (2 Kings 19:8 NIV)

First, the Assyrian king Sennacherib was stationed at Lachish, the key fortress of the Shephelah (the lowlands) in southwestern Judah. As archaeological excavations confirm, Lachish was a massive, seemingly impregnable military stronghold. Sennacherib planned to use Lachish as a springboard to secure complete control over southern Judah, and then to choke off Jerusalem in the northeast into submission. He also left Jerusalem under pressure by Rabshakeh’s siege and intimidation.

But suddenly Sennacherib moved his forces from Lachish to Libnah. Libnah is located roughly 15–20 km north of Lachish, toward Jerusalem. Why did the invincible Assyrian army withdraw from the southern forward position at Lachish and retreat to the north? The reason is given in verse 9: news had come that Tirhakah, king of Cush, had advanced with his army.

Upon receiving intelligence that a large army was advancing north beyond the southern Egyptian border, Sennacherib perceived the danger of being caught between the Cushite army and the forces of Jerusalem and suffering a pincer attack. Accordingly he executed an operational withdrawal from the southern front to the north, in order to form a more favorable defensive position and reorganize his lines.

Who, then, was Tirhakah who so alarmed King Sennacherib of Assyria and forced him to withdraw? The Tirhakah mentioned in the Bible is not a fictional character but a historical figure attested in both world history and archaeology. In secular history he is known as Taharqa. He was the ruler of Egypt’s Twenty-fifth Dynasty and one of the most famous and powerful “Black Pharaohs” in ancient history.

His homeland, Cush, corresponds to the ancient Nubian kingdom that encompassed much of what is today Sudan and parts of Ethiopia. Nubia, rich in gold and renowned for its formidable archers, conquered northern Egypt by force and established the Twenty-fifth Dynasty.

Tirhakah (Taharqa) presided over a flourishing culture — leaving monumental works such as the grand columns at Karnak — and led one of the era’s greatest military powers spanning the Mediterranean and Africa.

In 701 BC, Tirhakah was a young king in his late teens or early twenties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Egyptian–Cushite coalition. His splendid chariot forces and robust African elite troops advancing north would have looked to the embattled people of Judah like a savior sent by God.

Sennacherib appears to have been taken aback by this show of force. He pulled his lines back to Libnah and then employed powerful psychological warfare to deter a possible attack from Jerusalem.

Hezekiah received an even harsher and more blasphemous letter from the king of Assyria, sent via Rabshakeh:

“Now Sennacherib received a report that Tirhakah, the king of Cush, was marching out to fight against him. So he again sent messengers to Hezekiah with this word: ‘Say to Hezekiah king of Judah: Do not let the god you depend on deceive you when he says, Jerusalem will not be given into the hands of the king of Assyria. Surely you have heard what the kings of Assyria have done to all the countries, destroying them completely. And will you be delivered?’” (2 Kings 19:9-11 NIV)

In reality, Sennacherib was reluctant to advance directly on Jerusalem because he feared Tirhakah’s threat from the south. Nevertheless, he engaged in a campaign of intimidation by letter — a deliberate psychological operation.

So, did Hezekiah not perceive this psychological warfare? Were Judah’s political leaders blind to the changing military situation?

When Sennacherib, mindful of Tirhakah, withdrew his forces from Lachish to Libnah, the Assyrian army found itself caught in the dilemma of a two-front situation. At that very moment, Judah’s leaders skilled in politics and military strategy would surely have realized that this was a military “golden hour.”

“Send an envoy to that Tirhakah in the south right now!” “Make a military alliance quickly with the Pharaoh of Cush and strike Assyria in the rear together!” Hezekiah’s attendants and pro-Egypt officials in Judah would almost certainly have urged Hezekiah with words like these.“My king, what are you hesitating about? The mighty army of Cush is coming. You must join hands with them for Judah’s survival!”

By man’s common sense and reason, there could be no clearer or more reasonable solution. Yet King Hezekiah did not send a delegation to Tirhakah.

Why did Hezekiah refuse that attractive offer from Tirhakah? There were three reasons.

First, Hezekiah carried the painful memory of a past failure when he had turned to diplomacy instead of seeking God.

At the time of Assyria’s first invasion, Hezekiah, gripped by fear, attempted human diplomacy with Sennacherib. “I have done wrong. Withdraw from me, and I will pay whatever you demand of me.” (2 Kings 18:14 NIV) He had tried a diplomatic approach.

As a result, Hezekiah handed over the temple treasuries and the silver of the royal house; he even stripped the temple doors and pillars of their gold and gave it all to Sennacherib as tribute. He begged for peace by compromising with the world and desecrating the temple.

What was the outcome? The moment Sennacherib received the gold and silver, he changed his attitude and immediately sent his army to besiege Jerusalem.

Hezekiah learned with his whole being that cowardly compromise with the world and diplomatic bargains made with material wealth do not solve a crisis; they invite the enemy’s scorn and greater destruction. Having learned that lesson, he resolved not to repeat the same mistake by reaching out to another worldly power like Tirhakah.

The second reason Hezekiah did not grasp Tirhakah’s hand was spiritual. The prophet Isaiah had already proclaimed God’s word to the people of Judah with persistent force:

“Woe to those who go down to Egypt for help, who rely on horses, who trust in the multitude of their chariots and in the great strength of their horsemen, but do not look to the Holy One of Israel, or seek help from the Lord.” (Isaiah 31:1 NIV)

“But the Egyptians are mere mortals and not God; their horses are flesh and not spirit. When the Lord stretches out his hand, those who help will stumble, those who are helped will fall; all will perish together.” (Isaiah 31:3 NIV)

Hezekiah subordinated his diplomatic instincts and political calculations to the word God had given through Isaiah, rather than to an appealing military alternative before him. This was Hezekiah’s greatness.

But there was an even more important reason. The third and most crucial reason Hezekiah did not ask Tirhakah for help had to do with the glory of God.

What would have happened if Judah had joined hands with Tirhakah and defeated Assyria? The glory of victory would have gone entirely to “Tirhakah the mighty Pharaoh of Cush” and his chariot forces. Judah would still have become a vassal of Cush.

Hezekiah’s heart, however, was not satisfied with merely “keeping Judah alive.” When he received Sennacherib’s threatening letter, he did not run about seeking men; he went up to the house of the Lord:

“Hezekiah received the letter from the messengers and read it. Then he went up to the temple of the Lord and spread it out before the Lord. And Hezekiah prayed to the Lord:” (2 Kings 19:14–15a NIV)

Hezekiah laid that fearful and humiliating letter out before God. And he prayed. His prayer reaches its climax at this point:

“Now, Lord our God, deliver us from his hand, so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Lord, are God.” (2 Kings 19:19 NIV)

Hezekiah’s prayer was not merely, “God, I’m afraid—please save me.” It was:

“Lord, that proud Sennacherib is insulting the living God. Deliver us, that the whole world may know that the LORD alone is the sovereign God of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His petition put God’s name and glory above his own survival.

No doubt Hezekiah felt the temptation to reach out to Tirhakah. Yet he chose to obey God’s word first and to prioritize God’s glory above all. He refused to place his hope in unreliable human promises and instead cast all his hope upon the living, mighty God.

There have been many people in history who made similarly great decisions. One of them was Martin Luther. In 1521, the Reformer Martin Luther was summoned by the Emperor and the papal curia and was heading to the Diet of Worms under threat to his life. At this moment, the powerful German knight Franz von Sickingen sent a secret messenger to Luther with this proposal: “Luther, do not go to Worms! We will mobilize our mighty army and use force to escort and protect you—trust our sword!”

Before Luther stood the perfect military rescuer, another “Tirhakah.” But Luther firmly refused that hand of force and protection and declared, “The gospel is not defended by human sword and violence. Only the Word of God will work.”

Luther would not take the knight’s sword or the hand of political power that offered to save him. When he turned away from the world’s sword and stood before God’s Word alone, God did something amazing. Luther walked into the court relying solely on God’s Word, without the world’s sword, and God used that faith to change history. This was one great scene in the history of the Reformation.

So what became of Hezekiah and Judah after he did not grasp Tirhakah’s hand?

When Hezekiah let go of the world’s rescuer Tirhakah, knelt on the temple floor, and laid out the letter, the LORD God, who rules over all, immediately answered:

“Then Isaiah son of Amoz sent a message to Hezekiah: ‘This is what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I have heard your prayer concerning Sennacherib king of Assyria.’ (2 Kings 19:20 NIV)

And through Isaiah, God promised a great victory.

“Therefore this is what the Lord says concerning the king of Assyria: ‘He will not enter this city or shoot an arrow here. He will not come before it with shield or build a siege ramp against it. By the way that he came he will return; he will not enter this city, declares the Lord.’” (2 Kings 19:32–33 NIV)

So what happened next? The Bible testifies.

“That night the angel of the Lord went out and put to death a hundred and eighty-five thousand in the Assyrian camp. When the people got up the next morning—there were all the dead bodies!” (2 Kings 19:35 NIV)

Beloved, take notice of this great night of salvation.

The men of Judah did not swing a sword from the walls of Jerusalem. They did not shoot a single arrow. Tirhakah’s reinforcements advancing from the south had not even arrived.

On that very night—when human swords and spears were not used—God Himself sent an angel who instantly incapacitated Assyria’s proud army of 185,000 men. A wondrous thing happened.

Is this story merely myth or made-up? How could such a thing occur? Do you doubt it? Despite our doubts, historical sources testify clearly to the reality of this event.

The famous ancient Greek historian Herodotus recorded the incident in Book 2, section 141 of his Histories:

“Then after they came, there swarmed by night upon their enemies mice of the fields, and ate up their quivers and their bows, and moreover the handles of their shields, so that on the next day they fled, and being without defence of arms great numbers fell.”

In the ancient world, mice (field rats) were a symbolic carrier of deadly acute epidemic disease (plague or typhus). It is possible that the Assyrian troops, fearing the spread of disease, fled.

Even more decisive is the record of the Assyrian king Sennacherib himself. On the Taylor Prism housed in the British Museum, Sennacherib boasts that he captured forty-six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shut up Hezekiah like a bird in a cage” in Jerusalem. Yet absent from this victory inscription is any claim that he captured the vital prize—Jerusalem—or that he took Hezekiah captive. Instead, the prism abruptly ends with his hurried return to Nineveh.

That conspicuous silence is an ironic confirmation that he failed to conquer and was forced to withdraw by a force majeure.

Secular history may call it a sudden attack of mice. But the Bible plainly declares that “the angel of the Lord went out and put to death.” It was the night when the angel of God intervened in answer to Hezekiah’s tearful prayer.

In the end, Sennacherib—who had mocked God—lost his whole army and fled back to Nineveh. While worshiping in the temple of his trusted god Nisrok, he met a miserable and humiliating end at the hands of his own sons Adrammelek and Sharezer, who killed him with the sword. (2 Kings 19:37)

So then—what would have happened if Hezekiah had joined hands with Tirhakah?

According to actual ancient Near Eastern sources and the Assyrian royal inscription (the Taylor Prism), the Egypt–Cush coalition led by Tirhakah engaged Sennacherib’s army near the Judean plain at the Battle of Eltekeh, but suffered a heavy defeat and withdrew. Tirhakah did not decisively defeat Assyria.

Even more striking is his later history. After becoming Pharaoh, Tirhakah continued the struggle for hegemony with Assyria, but he could not withstand the successive invasions of Sennacherib’s son Esarhaddon and grandson Ashurbanipal. As a result, the Assyrian forces captured the Egyptian capital Memphis and took Tirhakah’s queens and sons captive. The Victory Stele of Esarhaddon—sometimes referred to as the Zincirli (Sam’al) Stele based on the location of its discovery—which is housed in the Pergamon Museum in Berlin depicts Tirhakah kneeling before the Assyrian king with a rope around his neck, humiliated.

Beloved, this was the historical reality of Tirhakah. If Hezekiah had held fast to the “Black Pharaoh Tirhakah” instead of God, what would have happened? Judah would have been consumed along with Tirhakah of Cush.

The powers of this world, its heroes, and its solutions may glitter, but they can never deliver us from eternal crisis. As the Bible warns, the more you lean on them the more they will break and pierce your hand, causing you to bleed—they are but a “splintered reed of a staff.”

Therefore, the true Author of history was neither Sennacherib of Assyria nor Tirhakah the Pharaoh of Cush. Only the LORD God Almighty is the Lord of history.

Beloved, within us today there is a deep-rooted temptation to call upon the visible, powerful “Tirhakahs” of this world rather than the unseen God.

But remember: even the great Tirhakah, who once ruled much of the known world, finally bent his knee before Assyria’s sword and was driven out—he was only a frail human. The moment we grasp the world’s Tirhakah, it may appear as a lifeline that will save us, but in the end it becomes merely a “splintered reed of a staff” that pierces our hand and makes us bleed.

Beloved, what is the “letter from Sennacherib” in your hand today? Is it the burden of debt and financial pressure that robs you of sleep? Is it a bleak medical diagnosis from the hospital? Is it the thorny problem of a child’s future or a broken relationship at home that nothing you do seems to mend? Is it the overwhelming fear of a future you cannot face by your own strength?

Do not clutch that letter and run from person to person begging. Do not secretly call the Tirhakahs of this world to negotiate and compromise.

Today, like Hezekiah, come into the house of the LORD. Lay that fearful, trembling letter before God as it is. Pour out your tears, your broken heart, your fears before the Lord.

And cry out as Hezekiah did: “Now, Lord our God, deliver us from his hand, so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Lord, are God.” (2 Kings 19:19 NIV)

When you let go of the vain hand of the world and kneel fully before God, the LORD Almighty—the sovereign Author of history—will rise in holy zeal and begin to fight for you.

Not by human sword or worldly wisdom or knowledge, but by the arm of the LORD’s power, He will drive away the 185,000 darknesses that weigh upon our lives.

So boldly lay down the corruptible, collapsing Tirhakah of this world, and make the unfailing LORD God Almighty your eternal refuge, fortress, and only Savior. May you, beloved saints, become blessed people who daily triumph in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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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9:14~19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남쪽의 구스 왕 디르하가는 유다에게 구원투수처럼 등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우리의 손과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위기 앞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존재일까요?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9장은 인간의 본성과 믿음의 본질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때는 주전 701년경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수도 예루살렘은 국가 멸망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절대적 제국을 이끌고 있었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명에 달하는 정예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유다의 수십 개의 성읍이 함락당해 불에 탔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예루살렘성 하나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성 안의 백성들은 공포와 절망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전쟁의 판도를 일거에 뒤흔들 만한 엄청난 소식이 그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저 멀리 남쪽 이집트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거대한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왕하 19:9a)

대군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는 구스 왕의 이름은 ‘디르하가’였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던 예루살렘 사람들의 눈에는 남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북상하는 디르하가야말로 현실적으로 자신들을 앗수르의 칼날에서 건져 줄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남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와 남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때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올라오고 있는 디르하가와 연합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남유다는 앗수르의 수중에 대부분 넘어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북에서부터 내려온 앗수르는 이미 예루살렘만을 남겨 둔 채 남진을 계속해 라기스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측면에서 본다면 구스의 디르하가의 군대와 연합 작전을 펴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전을 예상한 사람은 놀랍게도 앗수르의 산헤립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자명해 보이는 작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9절을 보면 흥미롭고 긴박한 군사 지리적 이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왕하 19:8)

먼저 앗수르의 산헤립왕은 유다 남부 쉐펠라(Shephelah, 평원 지대)의 핵심 요새인 ‘라기스(Lachish)’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라이스는 고고학 발굴로도 확인되듯이 난공불락의 거대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산헤립은 라이스를 발판 삼아 유다 남부를 완전히 장악한 뒤에 북동쪽에 남겨 둔 예루살렘을 완벽하게 질식시켜 항복시킬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랍사게로 하여금 포위하여 압박을 계속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헤립은 라이스에서 ‘립나(Libnah)’로 병력을 이동합니다. 립나는 라이스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한 장소입니다. 불패를 자랑하던 앗수르 대군이 남부 최전방인 라이스에 머물지 않고, 왜 북쪽으로 병력을 후퇴시켰을까요? 그 이유는 9절에 기록된 대로 ‘구스 왕 디르하가가 출격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남쪽 이집트 국경을 넘어 대군이 북진해 온다는 첩보를 들은 산헤립은 자칫 구스 대군과 예루살렘 군대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할 수 있는 위기를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남부 전선에서 북쪽으로 후퇴하여 유리한 방어 진형을 구축하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감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르하가와 연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유다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을 긴장시키고 후퇴하게 만들었던 ‘디르하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에 등장하는 디르하가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세계 역사와 고고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실존 인물입니다. 세계사에서는 그를 ‘타하르카(Taharqa)’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제25 왕조를 통치했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검은 파라오(Black Pharaoh)’였습니다.
그의 출신지인 ‘구스(Cush)’는 오늘날 아프리카의 수단과 에티오피아 일대를 아우르는 고대 누비아 왕국이었습니다. 누비아는 풍부한 금과 막강한 궁수 부대를 바탕으로 북쪽 이집트 본토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이집트의 제25 왕조를 세웠습니다. 디르하가는 그 제국에서 거대한 카르낙 신전의 대형 기둥을 비롯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는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군사 강국을 이끌었던 영웅이었습니다.
주전 701년 당시 디르하가는 약 20세 전후의 젊은 왕자이자 이집트-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화려한 전차 부대와 건장한 아프리카 정예병들을 이끌고 북상하는 디르하가의 위용은 멸망 직전의 유다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수호천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세에 앗수르의 산헤립왕도 잠시 당황한 듯 보입니다.
산헤립은 우선 전선을 살짝 물려서 립나에 진을 치고 혹시나 있을 예루살렘의 공격을 사전에 막기 위해 강력한 심리전을 구사합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사람을 보내 이전보다 훨씬 더 거칠고 불경한 협박 편지를 보냅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왕하 19:9~11)

실상 산헤립은 남쪽의 디르하가가 두려워 당장은 예루살렘으로 군사를 진격시키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편지로 협박한 것입니다. 다분히 심리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심리전을 히스기야는 몰랐을까요? 남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군사적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을까요? 산헤립이 디르하가를 의식하여 라기스에서 립나로 병력을 물리고, 앗수르의 군대가 양면 전쟁의 부담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던 순간입니다. 정치와 군사 전략에 능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때야말로 군사적 ‘골든타임’이라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남쪽의 디르하가에게 특사를 보냅시다!” “구스의 파라오와 속히 군사동맹을 맺고 앗수르의 뒤통수를 함께 칩시다!”
남유다의 신하들과 친애굽파 관료들은 틀림없이 히스기야왕에게 이렇게 조언했을 것입니다. “왕이여,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막강한 구스의 군대가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저 손을 잡아야만 유다가 살 수 있습니다. 그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아마 이런 조언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보다 더 명쾌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남쪽의 디르하가에게 사절단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매력적인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았을까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히스기야에게는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개인적으로 외교 협상을 하였다가 실패했던 뼈아픈 과거 사례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1차 침공 때 히스기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나아가 의논하지 않고 산헤립과 직접 외교적인 협상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그는 앗수르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왕하 18:14)

외교적으로 접근하며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의 은을 다 내주게 되었고, 심지어는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칼로 다 벗겨 내어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성전을 훼손하면서까지 세상과 타협하며 평화를 구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산헤립은 금과 은을 챙기자마자 안면을 몰수하고 곧바로 대군을 보내어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때 세상과의 비겁했던 타협, 물질을 통한 외교적 줄타기는 위기를 해결해 준 것이 아니라, 원수의 조롱과 더 큰 파멸을 불러올 뿐이라는 사실을 히스기야는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방법은 늘 이렇습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세상의 권력자인 디르하가에게 손을 내밀 것인지,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단합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이유였습니다. 이미 선지자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끊임없이 강력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사 31:1)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 31:3)

히스기야는 눈앞에 보이는 강력한 군사적 대안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 앞에 자신의 외교적인 본능과 정치적 계산을 철저하게 굴복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위대한 장점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단지 국가의 구원만을 염두에 두기보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산헤립에 맞서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만약 유다가 디르하가와 손을 잡고 앗수르를 물리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승리의 영광은 고스란히 ‘구스의 막강한 디르하가’가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의 전차 부대에게 모든 공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여전히 구스의 종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단순히 ‘유다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산헤립의 협박 편지를 받아 든 히스기야는 사람을 찾아 뛰어다니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그 편지에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왕하 19:14~15a)

히스기야는 그 두렵고 치욕스러운 협박 편지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왕하 19:19)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 제가 무서우니 살려 주십시오”라는 수준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저 교만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천하만국에 홀로 한 분이신 주권자이심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자신의 승전을 넘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최우선으로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순종하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우선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약속에 희망을 걸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시고 전능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희망을 걸기로 작정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결단을 내린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1521년,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황제와 교황청의 소환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보름스로 향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독일의 강력한 기사단장 프란츠 폰 지킹겐이 루터에게 밀사를 보내 이렇게 제안하였습니다. “루터여, 보름스로 가지 마시오! 우리가 막강한 군대와 무력을 동원해 당신을 호위하고 지켜 줄 터이니 우리의 칼을 믿으시오!”
루터의 눈앞에 완벽한 군사적 구원 투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또 다른 디르하가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의 무력과 보호의 손을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선언했다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칼과 폭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름스에 가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루터는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기사단의 칼과 정치, 권력의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칼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루터는 세상의 칼을 거절하고 혈혈단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법정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역사를 바꿔 내셨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위대한 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은 히스기야와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히스기야가 세상의 구원 투수 디르하가의 손을 놓고, 성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편지를 펴놓았을 때,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왕하 19:2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위대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왕하 19:32~33)

그리고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 19:35)

성도 여러분, 이 위대한 구원의 밤을 주목해 봅시다. 유다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 위에서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활 한 발도 쏘지 않았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디르하가의 지원군은 아직 도착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칼과 창이 닿지 않은 그 밤,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사를 보내셔서 18만 5천 명에 달하는 앗수르의 교만한 군대를 단숨에 무력화시키십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단지 신화적인 소설 같은 이야기일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사의 자료는 이 사건의 실체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es) 제2권 141장에서 이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밤사이에 엄청난 수의 들쥐 떼가 앗수르 진영을 덮쳐 군사들의 활시위와 방패 손잡이, 화살통을 모조리 갉아먹었다. 다음날 무기를 잃은 군사들은 도망쳤고 수많은 자들이 쓰러져 죽었다.”

고대 세계에서 ‘들쥐’는 치명적인 급성 전염병, 페스트나 발진티푸스 등을 옮기는 상징적인 매개체였습니다. 아마도 앗수르의 군사들은 전염병의 전파를 두려워하며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산헤립의 육각 원통형 비문(Taylor Prism)’을 보면, 산헤립은 유다의 46개 성읍을 정복했고 히스기야를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라고 요란하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승전 비문에는 ‘가장 중요한 최종 목표였던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라거나 ‘히스기야를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은 한 줄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니느웨로 돌아갔다고 비문을 끝맺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갑작스러운 들쥐의 습격’이라고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치셨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분명 그 밤은 히스기야의 눈물 어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사자가 친히 개입하신 밤’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조롱하던 산헤립은 군사를 다 잃고 도망치듯 니느웨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신뢰하던 우상 ‘니스록’의 신전에 엎드려 경배할 때, 자신의 친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의 칼에 맞아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왕하 19:37).

<하나님만이 모든 나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디르하가와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 고대 근동 사료와 앗수르 왕실 비문(Taylor Prism)에 따르면, 디르하가가 이끄는 이집트-구스 연합군은 유다 평원 인근 ‘엘테케(Eltekeh) 전투’에서 산헤립의 군대와 맞붙었으나 큰 타격을 입고 패퇴하였다고 합니다. 디르하가는 앗수르를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역사의 기록된 그의 훗날입니다. 파라오로 즉위한 후에도 디르하가는 앗수르 제국과 패권 경쟁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산헤립의 아들 엘살핫돈과 손자 아슈르바니팔의 잇따른 침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앗수르 군대는 이집트로 들어가 수도 멤피스를 함락시켰고, 디르하가의 왕비와 아들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에살핫돈의 승전비(Victory Stele of Esarhaddon) 또는 발견 장소의 지명을 딴 진지를리 승전비(Zincirli Stele/Sam’al Stele)에는 디르하가가 무릎을 꿇고 앗수르 왕 앞에 목줄이 채워진 채 굴욕을 당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역사 속 디르하가의 실체였습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검은 파라오 디르하가’의 손을 끝까지 붙잡고 그에게 운명을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다는 구스의 디르하가와 함께 잿더미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디르하가와 함께 목줄이 채워진 채 무릎을 꿇고 굴욕을 당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권력, 세상의 영웅, 세상의 해결책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우리를 영원한 위기에서 건져 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경고한 대로 기댈수록 부러져 우리의 손을 찔러 피를 흘리게 하는 ‘상한 갈대 지팡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진짜 주관자는 앗수르의 산헤립도 아니었고, 구스의 디르하가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이 역사의 주인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디르하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뿌리 깊은 유혹이 있습니다. 나의 병을 고쳐 줄 위대한 명의일 수도 있고, 사업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줄 큰 손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나를 모함과 위기에서 건질 유능한 변호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합시다. 당대 온 천하를 호령했던 위대한 디르하가조차 결국은 앗수르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고 쫓겨난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산헤립의 협박 편지에는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빚과 재정의 압박입니까? 앞이 캄캄해지는 질병 진단서입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자녀의 진로와 가정의 깨어진 관계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입니까? 그 편지를 손에 쥐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구걸하지 마십시오. 은밀히 세상의 디르하가들에게 타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오늘 히스기야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펼쳐 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눈물과 상한 마음, 두려움을 주님 앞에 다 쏟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히스기야처럼 이렇게 부르짖으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왕하 19:19)

내가 쥐고 있던 헛된 세상에 손을 놓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무릎을 꿇을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열심으로 친히 일어나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결국 썩고 무너질 세상의 디르하가를 단호히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영원한 피난처요, 요새요, 유일한 구원자로 삼읍시다. 그리하여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소망의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디르하가인가 하나님인가” (왕하 19:14-19)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65, 38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인생의 위기 앞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편입니까? 나의 ‘디르하가’는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설교의 요약>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대군을 이끌고 남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만 남기고 모든 성읍을 함락시켰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남쪽 구스(누비아)의 왕 디르하가가 대군을 이끌고 북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실제 그는 이집트 제25왕조의 강력한 ‘검은 파라오’로, 앗수르 산헤립조차 그의 협공을 두려워해 라기스에서 립나로 병력을 후퇴시킬 정도였습니다. 인간적 계산으로는 디르하가와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이 유다를 살릴 유일한 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디르하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앞서 세상과 외교적으로 타협하며 성전의 금은을 다 내주고도 결국 배신당했던 뼈아픈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이사야를 통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로, 만약 디르하가와 손잡아 승리한다면 그 영광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 권력자에게 돌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협박 편지를 성전에 가져가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밤, 인간의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을 쳐서 18만 5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록과 산헤립 자신의 비문조차 이 굴욕적 패퇴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훗날 디르하가는 앗수르에게 완전히 패퇴하여 왕비와 아들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그 손을 붙잡았다면 유다는 함께 잿더미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해결책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 손을 찔러 피 흘리게 하는 ‘상한 갈대 지팡이’일 뿐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빚과 질병, 자녀 문제, 막막한 미래라는 ‘협박 편지’를 손에 쥐고 세상의 디르하가를 찾아다니지 말고,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놓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역사의 진짜 주관자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나누기>

1. 히스기야는 협박 편지를 사람들에게 보이며 구걸하지 않고 성전에 가져가 하나님 앞에 펼쳐놓았습니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편지'(고민, 두려움, 문제)는 무엇이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있습니까?

2. 화려하고 강력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찌르는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 이번 주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결단은 무엇일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위기 앞에서 세상의 헛된 구원투수를 바라보았던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회개합니다.
디르하가의 손을 잡지 않고 성전에 올라가 엎드렸던 히스기야의 신앙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시고, 우리 삶을 짓누르는 모든 어둠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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