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모세는 가나안을 앞둔 광야 끝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위대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이름 중에서 모세를 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였고, 홍해를 가른 기적의 지도자였으며,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낸 그는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이끈 민족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인 신명기 34장은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너무나도 고요하고 가슴 시리도록 쓸쓸하게 묘사합니다. 느보산 비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세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40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동역자 아론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계자 여호수아도, 피를 나눈 가족들도 모두 산 아래에 있습니다. 정상에 선 모세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이 멀찌감치 펼쳐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신 34:1~3, 새번역)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가 들어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저 땅이군요. 저곳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40여 년간 고생했군요. 하나님, 이제 우리가 들어갈 땅을 보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마도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을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의 기력은 정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 34:7)
그런데 그렇게 한참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모세에게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신 34:4, 새번역)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저 땅을 밟기 위해 40여 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딱 한 걸음만이라도, 저 강만이라도 건너가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신명기 34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 3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크심과 권능을 주님의 종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신이 주님께서 권능으로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신 3:24~25, 새번역)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도리어 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신 3:26b, 새번역)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명령이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도착한 목적지 앞에서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가 느꼈을 영적, 인간적인 탈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모세가 위대한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떼를 쓰거나 억울하다고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절을 ‘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을 돌려서 산 아래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봅니다. 그 자리에서 모세의 위대한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끊임없이 백성들에게 보이는 것을 믿는 우상을 경고했습니다.>
더 이상 직접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한 모세는, 이제 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에게 돌아서서 눈물의 유언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그 말씀의 전체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서는 모세의 설교 말씀 각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신 1:1)
설교를 시작할 때, 모세의 등 뒤에는 가나안 땅이 있었고, 그의 눈앞에는 자신이 가 보지 못하는 땅에 들어갈 다음 세대들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그가 한 설교의 내용은 신명기 1장부터 31장까지 거의 전체에 해당합니다. 오늘 그 내용을 다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특별히 오늘 한 주제를 생각하며 그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명기는 크게 세 편의 설교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출애굽 이후에 40여 년의 시간을 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첫 번째 설교는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설교는 4~26장으로 꽤 긴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설교는 27~31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자신의 지도력을 여호수아에게 이양합니다. 그 후 자신은 무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 이야기가 32~34장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의 전체적인 구조입니다.
신명기의 설교만 본다면, 모세의 관점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이해하도록 풀어 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설교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요? 그가 세 편의 긴 설교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했던 하나의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모세는 먼저 호렙산의 사건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호렙 산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시던 날, 당신들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십시오.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당신들 스스로가 어떤 형상이라도 본떠서, 새긴 우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신 4:15~16, 새번역)
“여호와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말씀하시던 그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절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감히 만들 수 없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형체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또다시 주의합니다.
주님께서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셨으므로, 당신들은 말씀하시는 소리만 들었을 뿐,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들은 오직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신 4:12, 새번역)
그리고 이어지는 5장에서 십계명을 다시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강조합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신 5:7~9a, 새번역)
그리고 모세는 형상과 관련한 가장 뼈아픈 사건 하나를 회상하며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만들었던 금송아지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보이지 않았을 때, 백성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해서 그들은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금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 형상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 32:3~4)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의지하려는 인간의 종교적인 본성이 얼마나 끈질기고 타락하기 쉬운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9장에서 이 실패의 역사를 다시 꺼내 들어 강력히 경고합니다.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신 9:16~17)
결국 모세는 그 금송아지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분쇄합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신 9:21)
모든 형상을 갈아서 없애 버렸다고 말하며 사건을 다시 한번 회상합니다. 이후에도 모세는 우상에 대한 우려를 계속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모세는 다시 최종적으로 우상과 관련하여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신 7:25~26a)
<그러나 백성에게 가장 우상시될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모세 자신이었습니다.>
신명기를 읽어 가다 보면 모세는 지겨우리만큼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의 경고를 전하면서 모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섬기려는 백성들의 지독한 본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한 가지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앞으로 가장 위험한 눈에 보이는 우상은 다름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나온 40여 년의 광야 세월을 돌아보면 그 우려는 더욱더 강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중보자이자 절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세를 찾아가 때로는 원망하고 때로는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올라가면 홍해가 갈라졌고, 모세가 손을 들면 아말렉을 이겼으며, 모세가 기도하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습니다. 백성들 뇌리에 모세는 이미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최고의 형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가나안의 견고한 성읍들을 정복할 때마다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연호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 한복판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고 도리어 모세의 왕국이 세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은 또다시 금송아지를 만들듯 모세라는 거대한 인간 우상을 숭배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씀의 뜻임을 모세는 설교를 진행하면서 점차 확연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 내가 저 강을 건너지 않고 백성들의 눈앞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하는구나. 그것이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이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모세는 결단합니다.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빛을 발합니다. 그는 단순히 가나안 입성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우상이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소멸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가 무대 뒤로 완전히 사라져야만 비로소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설교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실패를 드러냅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드러냅니다. 특별히 그중에서 므리바 사건이 주목할 만합니다. 성경을 읽어 가다 보면 참으로 귀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신명기 전체를 통틀어서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인 므리바의 사건을 백성들에게 세 번 이상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신 1: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신 3:26)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신 4:21)
“나도 인간이다. 나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데, 허락받지 못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자신의 실패와 평생의 꿈을 박탈당한 뼈아픈 과거를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수만 명을 이끌고 있는 백성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철저히 숨기거나 변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에 걸쳐서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백성들 앞에 고백합니다.
지금 모세는 백성들에게 시각적인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좀 보아라.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해서 너희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똑같이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영웅으로도 우상으로도 삼지 말아라.” 모세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쏠려 있는 백성들의 종교적인 시선과 영웅 숭배의 거품을 스스로 부끄러운 고백을 통해 걷어 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모세가 이토록 처절하게 자신을 지우려고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쓰신 도구’를 ‘하나님 자신’과 끊임없이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광야 시절 그들이 겪었던 ‘놋뱀 사건’이었습니다. 백성들이 광야 길로 인해 낙심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할 때, 불뱀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치료 방법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 21:8~9)
성도 여러분, 백성들을 살린 것이 장대 위에 달린 ‘놋 조각’이었습니까? 아니면 “바라보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놋뱀은 그저 하나님의 구원을 담아낸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던 인간의 지독한 죄성은 은혜의 도구마저도 오염시키고 맙니다. 모세가 우려했던 영적인 비극이 그가 죽고 수백 년이 지난 열왕기 시대에 결국 현실로 드러났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선한 왕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을 단행할 때 기록인 열왕기하의 내용입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4)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모세가 남긴 놋뱀을 버리지 않고 가업처럼 물려받았습니다. 무려 7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것을 신처럼 받들며 분향했습니다. 참다못한 히스기야왕이 그것을 산산조각 내며 외친 말이 바로 ‘느후스단’입니다. “이것은 그저 놋 조각일 뿐이다”라는 일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거룩한 도구라도 그것이 ‘형상’으로 남는 순간, 인간은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상으로 숭배합니다.
하물며 놋뱀 하나도 수백 년 동안 우상이 되었다면, 홍해를 가르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했던 위대한 영웅, 모세의 무덤이 가나안 땅 한복판에 남겨졌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렇기에 모세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놋뱀도 우상으로 만드는 백성들이다. 나마저 우상이 되게 둘 수는 없다. 내가 살아서 요단을 건너는 것은 저 백성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나는 철저히 감추어지고 사라져야만 한다.’
모세에게 있어서 ‘사라질 수 있는 용기’는 단순히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아쉬운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겨질 백성들이 오직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지워 버리는 가장 치열하고 위대한 신앙적 결단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마디로 ‘인정 욕구의 시대’입니다. 어떻게든 나를 세상에 알리고 내 이름 석 자를 남겨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려놓고 타인들이 누르는 ‘좋아요’와 인정에 목을 맵니다.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거룩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은연중에 내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 땀 흘려 봉사하고 헌신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내 이름이 주보에 빠지거나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면 서운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직분을 얻고 주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증명하는 명예가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열심히 사역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마지막 순간 영광의 보좌에서 내려오지 못해서 추락하는 교회의 리더들을 우리는 종종 보곤 합니다.
모세는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고요히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은 위대한 지도자의 마지막 퇴장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신 34:6)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을 감추셨고, 모세 역시 그 뜻에 기쁘게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장사 지냈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덤마저 남기지 않고 이 땅에서 완벽하게 소멸하는 것이 모세가 보여 준 마지막 순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라질 수 있는 용기’는 위대한 용기입니다. 우리가 만약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용기를 갖게 된다면 우리 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어떤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모세가 약속의 땅을 내려놓은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당당할 것입니다. 그 지혜로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Courage to Disappear
Deuteronomy 34:5-6
The figure who lived the greatest and most dramatic life in the Bible would probably be Moses.
He was a prince of Egypt, Israel’s leader who parted the Red Sea miraculously, and one who saw the glory of God face to face. He delivered the Israelites from Egypt. He led the Israelites for forty years. But how did his life end?
Today’s Scripture from Deuteronomy 34 describes the last moments of his life in a extremely calm and a rather lonely way.
Moses climbed to the top of Pisgah of Mount Nebo. No one accompanied him. Aaron, his trusted partner who had laughed and cried with him for forty years, had already passed away; his successor Joshua and all his family were at the base of the mountain.
At the mountain top, Moses could see Canaan, the land of his dreams, in the distance:
“Then Moses climbed Mount Nebo from the plains of Moab to the top of Pisgah, across from Jericho. There the Lord showed him the whole land—from Gilead to Dan, all of Naphtali, the territory of Ephraim and Manasseh, all the land of Judah as far as the Mediterranean Sea, the Negev and the whole region from the Valley of Jericho, the City of Palms, as far as Zoar.” (Deuteronomy 34:1-3 NIV)
What would Moses have thought as he gazed at the Promised Land that seemed within a stone’s throw?
“O, Lord! That is the land! That is the very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hat my people will enter. It was for this land that we wandered in the wilderness for 40 years. Lord, thank you for letting me see this.”
Moses’ heart would have raced as he imagined his people entering that land soon.
This would have been all the more so since his mind was extremely alert and his body still strong until that time. His eyes still sparkled and he had strength. The Bible states:
“Moses was a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when he died, yet his eyes were not weak nor his strength gone.” (Deuteronomy 34:7 NIV)
But then, just when Moses would have been full of expectation, he heard the Lord’s voice like a bolt from heaven:
“This is the land I promised on oath to Abraham, Isaac and Jacob when I said, ‘I will give it to your descendants.’ I have let you see it with your eyes, but you will not cross over into it.” (Deuteronomy 34:4 NIV)
How must Moses have felt when he heard that? Would he not have wanted to say, “O God, I have waited forty years to set foot in that land. Could You at least let me take one step, or let me cross that river?”
Although it is not recorded in chapter 34, he surely would have pleaded. In Deuteronomy 3 he begged,
“Sovereign Lord, you have begun to show to your servant your greatness and your strong hand. For what god is there in heaven or on earth who can do the deeds and mighty works you do? Let me go over and see the good land beyond the Jordan—that fine hill country and Lebanon.” (Deuteronomy 3:24–25 NIV)
But the Lord was angry with Moses and said to him:
“‘That is enough,’ the Lord said. ‘Do not speak to me anymore about this matter.’” (Deuteronomy 3:26b NIV)
God’s answer was decisive. To Moses it must have felt like a death sentence.
When Moses was just one step away from the goal for which he had given his life, God said to him, “Your role ends here.” The spiritual and human exhaustion Moses must have felt at hearing these words would be indescribable.
But, brothers and sisters, at that very moment we see the true reason Moses was great.
Moses did not throw himself down before God in a tantrum or sit sulking in bitter complaint. He accepted God’s refusal in obedience. He turned his gaze from the land of Canaan and looked instead at the people of Israel left at the bottom of the mountain. There, Moses displayed a great “courage to disappear.”
Now, having painfully realized he would not cross the Jordan, Moses turned to the people below and poured out his tearful final charge—this is Deuteronomy.
Thus Deuteronomy 1:1 begins:
“These are the words Moses spoke to all Israel in the wilderness east of the Jordan—that is, in the Arabah—opposite Suph, between Paran and Tophel, Laban, Hazeroth and Dizahab.” (Deuteronomy 1:1 NIV)
When Moses began this sermon, Canaan lay behind him and before his eyes stood the next generation who would enter the land he himself would not see. What, then, did Moses say to them?
His sermons make up almost the entirety of Deuteronomy, chapters 1 through 33, so we cannot cover everything today; but we will consider together what the central message is.
Deuteronomy is largely structured as three sermons of Moses. The first sermon, which includes a retrospective of the forty years since the Exodus, runs from chapters 1–4; the second sermon spans chapters 4–26; the third covers chapters 27–31; and finally, chapters 32–34 record Moses transferring leadership to Joshua and disappearing without a trace or a grave.
If we look at just the sermons, they are aimed at explaining God’s law clearly, from Moses’ perspective, to next generation who are about to enter Canaan.
So what did Moses want to say to that next generation through his sermons?
There is one central theme he repeats relentlessly through the three long addresses. He warns them sternly, “If you forget the Lord’s commands and worship idols after entering Canaan, you will perish.”
“You saw no form of any kind the day the Lord spoke to you at Horeb out of the fire. Therefore watch yourselves very carefully, so that you do not become corrupt and make for yourselves an idol, an image of any shape, whether formed like a man or a woman,” (Deuteronomy 4:15–16 NIV)
The Israelites must remember well that on the day the Lord spoke to them out of the fire on Mount Horeb they saw no form. Therefore, they must never create an image to represent God.
Moses stresses again that God cannot be represented in any shape:
“Then the Lord spoke to you out of the fire. You heard the sound of words but saw no form; there was only a voice.” (Deuteronomy 4:12)
Then, as he explains the Ten Commandments in Deuteronomy 5, Moses solemnly reiterates the prohibition against making idols: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mage in the form of anything in heaven above or on the earth beneath or in the waters below.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for I, the Lord your God, am a jealous God, punishing the children for the sin of the parent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 of those who hate me,” (Deuteronomy 5:7–9 NIV)
Then Moses recalls in his sermon the most painful incident related to images—the golden calf that his ancestors made beneath Mount Sinai.
When Moses went up Mount Sinai to receive the tablets of God and disappeared from the people’s sight, the people began to grow anxious. Unable to bear their anxiety, what did they do? They made a golden calf.
While Moses was on the mountain receiving God’s law, they melted gold and fashioned a golden calf. Upon seeing it they cried out, “This is the god who brought us out of Egypt!”
“So all the people took off their earrings and brought them to Aaron. He took what they handed him and made it into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fashioning it with a tool. Then they said, ‘These are your gods, Israel,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Exodus 32:3–4 NIV)
This was the starkest revelation of how tenacious and corruptible man’s religious instinct is to cling to a visible object. Moses takes up this dreadful history again in Deuteronomy 9 and issues a stern warning:
“When I looked, I saw that you had sinned against the Lord your God; you had made for yourselves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You had turned aside quickly from the way that the Lord had commanded you. So I took the two tablets and threw them out of my hands, breaking them to pieces before your eyes.” (Deuteronomy 9:16–17 NIV)
In the end Moses utterly destroyed and pulverized that golden calf. He recalls:
“Also I took that sinful thing of yours, the calf you had made, and burned it in the fire. Then I crushed it and ground it to powder as fine as dust and threw the dust into a stream that flowed down the mountain.” (Deuteronomy 9:21 NIV)
Moses’ concern about idolatry continued. Before entering the land of Canaan he again issued a final warning concerning idols.
“The images of their gods you are to burn in the fire. Do not covet the silver and gold on them, and do not take it for yourselves, or you will be ensnared by it, for it is detestable to the Lord your God. Do not bring a detestable thing into your house or you, like it, will be set apart for destruction. Regard it as vile and utterly detest it, for it is set apart for destruction.” (Deuteronomy 7:25–26)
Truly, Moses warned the people about the danger of idolatry so persistently it becomes tiresome to hear.
As he warned them, he must have realized one thing. Observing the people’s fierce propensity to shape the unseen God into an image, he could instinctively understand: the most dangerous visible idol for the generation entering Canaan might be none other than himself, Moses.
Looking back on the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his worry only deepens. What was Moses to the people of Israel? He was their sole mediator with God and an unrivaled hero. Whenever trouble came, the people did not run to the unseen God so much as they ran to the visible Moses, complaining and clinging to him. When Moses lifted his staff the sea divided; when Moses raised his hand Amalek was defeated; when Moses prayed manna fell from heaven. In the people’s minds Moses had already become a “God-like” figure, the ultimate image standing in the place of God.
If such a living, vibrant Moses crossed the Jordan with them into Canaan, what would happen? As Jericho fell and the fortified cities of Canaan were conquered, the people would likely have shouted the name of the great leader Moses more than they praised the unseen name of God. So upon entering Canaan, it is possible that God’s kingdom might have been displaced by “the kingdom of Moses.” Just as the people made the golden calf, they might have worshiped the colossal human idol called Moses.
As he preached, Moses would have come to understand more clearly that this danger of him becoming an idol was the meaning of God’s firm word—“You shall not enter it.”
He would have thought, “Oh, my not crossing that river and vanishing from these people’s eyes… This is God perfect love for us, protecting the people from falling into idolatry.”
At that point, Moses made a decision. He showed the “courage to disappear.”
He did not merely give up entering Canaan. He willingly chose a life of self-extinction so that he would not become an idol in the hearts of Israel. Only when Moses fully withdrew from the stage would the people begin to see the invisible true God.
So in his Deuteronomy sermons he does not hide his shame. He even reveals his own failure. He brings up the incident at Meribah.
As we read the Bible carefully, we find a striking feature. Throughout the Book of Deuteronomy, Moses repeats the reason he was barred from Canaan, that is, the incident at Meribah (Numbers 20), three to four times before the people.
“Because of you the Lord became angry with me also and said, ‘You shall not enter it, either.’” (Deuteronomy 1:37 NIV)
“But because of you the Lord was angry with me and would not listen to me. ‘That is enough,’ the Lord said. ‘Do not speak to me anymore about this matter.’” (Deuteronomy 3:26 NIV)
“The Lord was angry with me because of you, and he solemnly swore that I would not cross the Jordan and enter the good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as your inheritance.” (Deuteronomy 4:21 NIV)
Ordinarily, people do not repeatedly bring up their own failures or the painful past that cost them their lifelong dream. A leader of hundreds of thousands would normally hide or excuse such things to protect his authority and dignity.
But Moses, instead, repeatedly calls attention to his fault before the people. Why? Was it to blame them? No.
Moses was making a visual declaration to the people:
“Look at me. I am not the perfect deity you imagine. I too have been disciplined by God for I was not able to fully reveal God’s holiness. I am a human being too, just as weak and sinful as you are. So don’t view me as a hero. Do not make an idol of me.”
By confessing his shame, he stripped away the religious gaze and hero-worship focused on him. He gave his last strength to his sermon, which was like a death wish, so that he himself would be completely erased and only the name of the Lord would remain.
The reason Moses strove so desperately to erase himself was because he knew too well the spiritual weakness of the Israelites: they would confuse a tool used by God with God Himself. A prime example of this was the bronze serpent incident in the wilderness.
When the people became discouraged in the wilderness and complained against God and Moses, venomous serpents appeared and began to bite the people. When the people repented, God gave Moses a remedy:
“The Lord said to Moses, ‘Make a snake and put it up on a pole; anyone who is bitten can look at it and live.’ So Moses made a bronze snake and put it up on a pole. Then when anyone was bitten by a snake and looked at the bronze snake, they lived.” (Numbers 21:8–9 NIV)
Brothers and sisters, was it the piece of brass on the pole that saved the people, or was it the word of God—“look at it and live”? Of course it was God’s word and God’s grace. The bronze serpent was only an instrument that conveyed God’s salvation.
Yet man’s stubborn propensity to cling to visible images eventually corrupted even this instrument of grace. The spiritual tragedy Moses feared finally manifested itself in the era of the kings centuries after his death.
We find a shocking record in 2 Kings 18:4, which writes about King Hezekiah’s religious reforms:
“He removed the high places, smashed the sacred stones and cut down the Asherah poles. He broke into pieces the bronze snake Moses had made, for up to that time the Israelites had been burning incense to it. (It was called Nehushtan.)” (2 Kings 18:4 NIV)
Even after entering Canaan, the people had preserved Moses’ bronze serpent as a hereditary relic and worshiped it as an idol for more than seven hundred years. At last Hezekiah, who could stand it no longer, smashed it to pieces and declared, “Nehushtan”, which means “this is only a piece of bronze!”
Even a holy instrument used by God, the moment it becomes an image, man will exalt it to the place of God and worship it as an idol. If even a bronze serpent became an idol over centuries, what would happen if the tomb of Moses—the hero who parted the sea and stood before God at Sinai—remained in the heart of Canaan?
This is why Moses had to decide.
“These people turn even a bronze serpent into an idol. I cannot allow myself to become an idol too. If I cross the Jordan alive, I will ruin them. I must be completely hidden and vanish.”
For Moses, the courage to disappear was not merely a sorrowful surrender of his dream. It was the most intense, greatest act of love: erasing his entire presence so that the people left behind would look only to the invisible God.
So what about us today?
The age we live in is, in a word, an age that craves recognition. We are urged to make ourselves known to the world, to stand out, to leave our name behind as the mark of a successful life. People thirst for “likes” and approval even when they post a single photo on social media. It is a world that demands constant proof and display of how successful and valuable one is.
What is truly lamentable is that this desire for recognition of the world has deeply infiltrated the lives of the church and the saints, who ought to be holy.
We may say we are doing God’s work, but we subconsciously want “myself” to be seen. When no one notices our sweat and service at church, we feel hurt. If my name is left out of the church bulletin or if I am not thanked for my service, we feel bitter and disappointed. How often does service and office become not a tool to glorify God but a badge to honor ourselves?
We often see church leaders who, after passionate ministry and great achievements in reviving churches, cannot step down from the throne of glory and fall. Even Moses, who led the people in the wilderness with miracles for forty years, did not covet the final place of glory, the land of Canaan, and disappeared from the stage. Today, aren’t we clinging to our small shares, our small merits, and our small rights?
Moses, having finished his sermon, quietly breathed his last on Mount Nebo as God commanded. Verse 6 of today’s Scripture describes the final exit of this great leader:
“He buried him in Moab, in the valley opposite Beth Peor, but to this day no one knows where his grave is.” (Deuteronomy 34:6 NIV)
God hid Moses’ grave, and Moses gladly consented to that will. To leave no tomb and to be wholly erased from the earth was Moses’ final act of obedience. Though he vanished without a trace, in the place where he disappeared stood only God’s Word and the next generation marching into Canaan.
Beloved saints, do we today have this courage to disappear?
Do you desire that your name be erased from every place where you have labored and served, rejoicing that only Christ’s name remains? Like John the Baptist’s confession,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may you become truly great and mature heroes of faith who glorify only God in your lives by thoroughly denying and erasing yourselves.
신명기 34:5~6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는 가나안을 앞둔 광야 끝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위대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이름 중에서 모세를 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였고, 홍해를 가른 기적의 지도자였으며,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낸 그는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이끈 민족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인 신명기 34장은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너무나도 고요하고 가슴 시리도록 쓸쓸하게 묘사합니다. 느보산 비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세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40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동역자 아론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계자 여호수아도, 피를 나눈 가족들도 모두 산 아래에 있습니다. 정상에 선 모세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이 멀찌감치 펼쳐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신 34:1~3, 새번역)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가 들어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저 땅이군요. 저곳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40여 년간 고생했군요. 하나님, 이제 우리가 들어갈 땅을 보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마도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을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의 기력은 정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 34:7)
그런데 그렇게 한참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모세에게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신 34:4, 새번역)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저 땅을 밟기 위해 40여 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딱 한 걸음만이라도, 저 강만이라도 건너가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 신명기 34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 3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크심과 권능을 주님의 종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신이 주님께서 권능으로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신 3:24~25, 새번역)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도리어 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신 3:26b, 새번역)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명령이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도착한 목적지 앞에서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가 느꼈을 영적, 인간적인 탈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모세가 위대한 진짜 이유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떼를 쓰거나 억울하다고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절을 ‘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을 돌려서 산 아래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봅니다. 그 자리에서 모세의 위대한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드러납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끊임없이 백성들에게 보이는 것을 믿는 우상을 경고했습니다.>
더 이상 직접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한 모세는, 이제 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에게 돌아서서 눈물의 유언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그 말씀의 전체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서는 모세의 설교 말씀 각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신 1:1)
설교를 시작할 때, 모세의 등 뒤에는 가나안 땅이 있었고, 그의 눈앞에는 자신이 가 보지 못하는 땅에 들어갈 다음 세대들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그가 한 설교의 내용은 신명기 1장부터 31장까지 거의 전체에 해당합니다. 오늘 그 내용을 다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특별히 오늘 한 주제를 생각하며 그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명기는 크게 세 편의 설교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출애굽 이후에 40여 년의 시간을 회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첫 번째 설교는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설교는 4~26장으로 꽤 긴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설교는 27~31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자신의 지도력을 여호수아에게 이양합니다. 그 후 자신은 무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 이야기가 32~34장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의 전체적인 구조입니다.
신명기의 설교만 본다면, 모세의 관점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이해하도록 풀어 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설교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요? 그가 세 편의 긴 설교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했던 하나의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모세는 먼저 호렙산의 사건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호렙 산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시던 날, 당신들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십시오.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당신들 스스로가 어떤 형상이라도 본떠서, 새긴 우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입니다.” (신 4:15~16, 새번역)
“여호와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말씀하시던 그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절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감히 만들 수 없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형체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또다시 주의합니다.
주님께서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셨으므로, 당신들은 말씀하시는 소리만 들었을 뿐,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들은 오직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신 4:12, 새번역)
그리고 이어지는 5장에서 십계명을 다시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강조합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신 5:7~9a, 새번역)
그리고 모세는 형상과 관련한 가장 뼈아픈 사건 하나를 회상하며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만들었던 금송아지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보이지 않았을 때, 백성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해서 그들은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금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 형상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 32:3~4)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의지하려는 인간의 종교적인 본성이 얼마나 끈질기고 타락하기 쉬운지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9장에서 이 실패의 역사를 다시 꺼내 들어 강력히 경고합니다.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신 9:16~17)
결국 모세는 그 금송아지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분쇄합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신 9:21)
모든 형상을 갈아서 없애 버렸다고 말하며 사건을 다시 한번 회상합니다. 이후에도 모세는 우상에 대한 우려를 계속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모세는 다시 최종적으로 우상과 관련하여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신 7:25~26a)
<그러나 백성에게 가장 우상시될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모세 자신이었습니다.>
신명기를 읽어 가다 보면 모세는 지겨우리만큼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의 경고를 전하면서 모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섬기려는 백성들의 지독한 본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한 가지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앞으로 가장 위험한 눈에 보이는 우상은 다름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나온 40여 년의 광야 세월을 돌아보면 그 우려는 더욱더 강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중보자이자 절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세를 찾아가 때로는 원망하고 때로는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올라가면 홍해가 갈라졌고, 모세가 손을 들면 아말렉을 이겼으며, 모세가 기도하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습니다. 백성들 뇌리에 모세는 이미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는 최고의 형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가나안의 견고한 성읍들을 정복할 때마다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연호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 한복판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고 도리어 모세의 왕국이 세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은 또다시 금송아지를 만들듯 모세라는 거대한 인간 우상을 숭배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말씀의 뜻임을 모세는 설교를 진행하면서 점차 확연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 내가 저 강을 건너지 않고 백성들의 눈앞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하는구나. 그것이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이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모세는 결단합니다.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빛을 발합니다. 그는 단순히 가나안 입성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우상이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소멸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가 무대 뒤로 완전히 사라져야만 비로소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설교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실패를 드러냅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드러냅니다. 특별히 그중에서 므리바 사건이 주목할 만합니다. 성경을 읽어 가다 보면 참으로 귀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신명기 전체를 통틀어서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인 므리바의 사건을 백성들에게 세 번 이상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신 1: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신 3:26)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신 4:21)
“나도 인간이다. 나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데, 허락받지 못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자신의 실패와 평생의 꿈을 박탈당한 뼈아픈 과거를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수만 명을 이끌고 있는 백성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철저히 숨기거나 변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에 걸쳐서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백성들 앞에 고백합니다.
지금 모세는 백성들에게 시각적인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좀 보아라.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해서 너희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똑같이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영웅으로도 우상으로도 삼지 말아라.” 모세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쏠려 있는 백성들의 종교적인 시선과 영웅 숭배의 거품을 스스로 부끄러운 고백을 통해 걷어 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모세가 이토록 처절하게 자신을 지우려고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쓰신 도구’를 ‘하나님 자신’과 끊임없이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광야 시절 그들이 겪었던 ‘놋뱀 사건’이었습니다. 백성들이 광야 길로 인해 낙심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할 때, 불뱀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치료 방법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 21:8~9)
성도 여러분, 백성들을 살린 것이 장대 위에 달린 ‘놋 조각’이었습니까? 아니면 “바라보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놋뱀은 그저 하나님의 구원을 담아낸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던 인간의 지독한 죄성은 은혜의 도구마저도 오염시키고 맙니다. 모세가 우려했던 영적인 비극이 그가 죽고 수백 년이 지난 열왕기 시대에 결국 현실로 드러났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선한 왕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을 단행할 때 기록인 열왕기하의 내용입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4)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모세가 남긴 놋뱀을 버리지 않고 가업처럼 물려받았습니다. 무려 7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것을 신처럼 받들며 분향했습니다. 참다못한 히스기야왕이 그것을 산산조각 내며 외친 말이 바로 ‘느후스단’입니다. “이것은 그저 놋 조각일 뿐이다”라는 일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거룩한 도구라도 그것이 ‘형상’으로 남는 순간, 인간은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상으로 숭배합니다.
하물며 놋뱀 하나도 수백 년 동안 우상이 되었다면, 홍해를 가르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했던 위대한 영웅, 모세의 무덤이 가나안 땅 한복판에 남겨졌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렇기에 모세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놋뱀도 우상으로 만드는 백성들이다. 나마저 우상이 되게 둘 수는 없다. 내가 살아서 요단을 건너는 것은 저 백성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나는 철저히 감추어지고 사라져야만 한다.’
모세에게 있어서 ‘사라질 수 있는 용기’는 단순히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아쉬운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겨질 백성들이 오직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지워 버리는 가장 치열하고 위대한 신앙적 결단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마디로 ‘인정 욕구의 시대’입니다. 어떻게든 나를 세상에 알리고 내 이름 석 자를 남겨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려놓고 타인들이 누르는 ‘좋아요’와 인정에 목을 맵니다.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거룩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은연중에 내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 땀 흘려 봉사하고 헌신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내 이름이 주보에 빠지거나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면 서운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직분을 얻고 주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증명하는 명예가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열심히 사역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마지막 순간 영광의 보좌에서 내려오지 못해서 추락하는 교회의 리더들을 우리는 종종 보곤 합니다.
모세는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고요히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은 위대한 지도자의 마지막 퇴장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신 34:6)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을 감추셨고, 모세 역시 그 뜻에 기쁘게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장사 지냈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덤마저 남기지 않고 이 땅에서 완벽하게 소멸하는 것이 모세가 보여 준 마지막 순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라질 수 있는 용기’는 위대한 용기입니다. 우리가 만약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용기를 갖게 된다면 우리 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어떤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모세가 약속의 땅을 내려놓은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당당할 것입니다. 그 지혜로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라질 수 있는 용기 (신 34:5~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94, 438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내가 수고하고 헌신한 자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서운함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 경험이 있다면, 그때 내 마음을 솔직히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마지막은 뜻밖에도 쓸쓸합니다. 아직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은 그에게, 하나님은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면서도 정작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딱 한 걸음만 건너게 해달라는 간구에도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거절이 돌아왔습니다. 평생을 바쳐 온 목적지 앞에서의 이 거절은 사형 선고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고, 그 거절을 순종으로 받아들이며 산 아래 백성들을 향해 돌아섭니다. 그렇게 남긴 눈물의 유언이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를 관통하는 모세의 핵심 메시지는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이어가던 모세는 한 가지를 직감합니다. 백성들에게 가장 위험한 우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년간 기적을 일으켰던 그가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간다면,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눈앞의 영웅 모세를 숭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므리바 사건 같은 자신의 실패를 반복해서 드러내며 “나를 우상으로 삼지 말라”고 선언합니다. 훗날 그가 만든 놋뱀조차 수백 년간 우상이 되어 결국 부서졌던 역사(왕하 18:4)처럼, 모세는 자신마저 우상이 될 것을 알기에 무덤조차 남기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이는 백성들이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려는 가장 위대한 사랑의 결단이었습니다.
‘인정 욕구의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은연중에 내가 드러나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던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도 내 이름을 지우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는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누기>
1. 모세는 자신의 실패와 허물을 백성들 앞에 감추지 않고 오히려 반복해서 드러냈습니다. 나는 내 약함이나 실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숨기거나 포장하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2.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내 삶의 어떤 자리에서 ‘나’를 내려놓고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지금 필요한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목적지 앞에서도 순종했던 모세처럼, 우리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마다 원망이 아닌 순종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은연중에 나를 드러내기 원했던 교만을 회개하며, 모세처럼 내 이름과 공로를 내려놓는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