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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르리이까
<백성들이 점차 하나님을 잊어 가던 시대에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 있는 사사기는 흥미로운 시작과 마지막을 보여 줍니다. 사사기 1장 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이렇게 하나님께 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 25)
하나님께 묻던 백성이 이제는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이야기가 사사기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어지는 사사들의 등장 이야기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사기에는 총 12명의 사사의 이름이 나오며, 사사기의 앞부분에는 사사의 등장과 관련해서 하나의 패턴이 드러납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로 죄를 짓는 이야기가 먼저 등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대부분 이방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도록 하는 형벌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서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셔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다시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다시 범죄의 길을 갑니다.
이것이 사사기가 알려 주는 하나의 패턴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초반에는 그들이 고통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첫 사사인 옷니엘의 등장 장면이 그러한 패턴을 전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7~9)
이와 같은 패턴이 사사기의 큰 흐름입니다. 이후 에훗의 등장에서도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 드보라와 기드온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어지는 패턴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 점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내용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짧게 활동했던 사사들 경우 생략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돌라, 야일, 입산, 압돈 등의 이야기에서 계속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삼손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사사기 13장입니다.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삿 13:1)
보통 이렇게 시작하면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이 “주께 부르짖으매”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곧바로 ‘마노아’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삼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등장 배경에는 흥미롭게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거나 부르짖는 장면이 없습니다.
생략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상 맞습니다. 첫 절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부르지도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불신앙의 시대 속에서도 마노아는 하나님께 자녀 양육의 길을 물었습니다.>
먼저 한 경건한 가정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노아라는 단 지파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불신앙의 세대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여인에게 나타나 임신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어떻게 기를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남편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남편 마노아는 즉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이 가정이 여전히 교제를 나누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마노아에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그때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삿 13:12)
우선 마노아는 아기 탄생의 소식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어떻게 행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신앙인의 가정이라면 당연히 물어야 하는 평범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고 놀라운 질문이었다는 것을 사사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의 40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불신앙의 시대, 무신론의 시대, 하나님을 잊은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마노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기도할 줄 알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줄도 알았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실 때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을 수 있던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마노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그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하나님께 묻고 부르짖는 이가 희귀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뜻을 물으며 따라가려는 경건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 어떻게 아이들을 기르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 진정한 신앙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모든 관심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현대인들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정보들도 미디어와 강좌, 서적, 육아 전문 커뮤니티, 학원 상담과 교육 전문가를 통해 얻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사실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서 대부분 그 길을 하나님께 묻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부모의 생각대로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속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상의 흐름을 따라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이렇듯 모두가 잠든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유독 한 사람만이 깨어서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마노아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이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마노아는 자녀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자녀 양육을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노아는 아이 탄생의 소식을 듣고 여호와께 이런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마노아는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자신이 받을 아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이며, 자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시는 사명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가 한 질문은 유모가 아기의 부모에게 질문한 것과 같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을까요? 어떤 음식을 먹이고, 언제쯤 잠자리에 들도록 하면 좋을까요?” 아마도 유모라면 아이의 부모에게 이런 것들을 물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의이자 상식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노아는 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실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기를 원하시는지 물어야 한다.” 이것이 마노아의 생각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부모님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맡겨 주신 이 아이는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노아가 묻는 질문에는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임신하지 못하던 태를 열면서까지 아이를 맡기시는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 위대한 일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아이가 그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내가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참으로 놀라운 생각이며 큰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막연하게 아이가 좋은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 편하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고 피폐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때로는 부모의 열망이 아이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부모의 열심이 도리어 아이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묻는 마노아의 질문은 “아이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위대한 일에 사용하실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부모로서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먼저 삶의 모범을 보이며 거룩하게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이제 장차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고 하셨습니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삿 13:7)
하나님께서는 우선 이 아이를 ‘나실인’으로 키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실인(Nazirite)’은 히브리어 ‘나지르(נָזִיר[Nazir])’에서 유래한 말로, ‘구별된 자’, ‘봉헌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구별되어 일정 기간 혹은 평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을 말합니다. 민수기 6장에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선 포도주를 멀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나실인으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하여 부모가 먼저 그의 삶 속에서 모범을 보일 것을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일러주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일러준 모든 것을 그 아이가 지켜야 하고, 마노아의 아내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삿 13:13~14, 새번역)
아이가 독주를 마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이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육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어머니가 먼저 독주를 마시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먼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의 삶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부모 자신도 아이가 가야 하는 길을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주셨던 책무였습니다.
‘신교승어언교(身敎勝於言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소 행하는 가르침이 말로 하는 가르침보다 낫다”라는 뜻입니다. 솔선수범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병사들과의 대결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위대한 사사를 이제 길러 내려고 하십니다. 그 사사가 바로 삼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묻는 마노아의 질문에 “무기를 다루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구별된 사람으로 키워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의 자녀를 구별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너도 구별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삼손의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마노아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장차 백성을 이끄는 사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 구별된 사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도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따라오시면서 아마도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를 주님의 말씀대로 구별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라는 다짐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마주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린다면 부모님들은 큰 부담을 가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묻고 아이를 키워야 할 텐데,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런데 조금 더 보아야 합니다. 반전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 교육은 자녀에게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거룩한 근원을 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당하게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물었던 마노아와 아내는 정말 삼손을 그렇게 키웠을까요? 아마도 부모님은 그렇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렇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제대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사기 14장에 삼손은 부모가 지키려 애썼던 규례들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합니다. 삼손이 딤나에서 결혼할 때 ‘잔치’를 배설하는데, 히브리어로 이 잔치는 ‘미슈테 (מִשְׁתֶּה[Mishteh])’라고 합니다. 이는 ‘마시다’라는 어원에서 왔습니다. 술이 빠지지 않는 잔치입니다. 이미 독주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실인은 사체를 가까이하면 안 되지만, 삼손은 자신이 죽인 사자의 몸에서 나온 꿀을 떠먹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삼손이 그 부정한 꿀을 부모에게도 가져다주어 먹게 했다는 점입니다. 부모는 그것이 사자의 사체에서 나온 것인 줄도 모르고 먹습니다. 아들의 타락과 부정이 부모의 타락과 부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포도주를 멀리하며 거룩하게 삼손을 키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어떻게 자랐습니까? 그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자의 사체에서 꿀을 찍어 먹고 이방인 여인과 술잔치를 하며 살았습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기까지 표면적으로는 나실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독주를 마시고 사체를 만짐으로 부정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그렇게 기도하며 잘 키웠는데, 왜 삼손은 저 모양일까? 결과가 그렇다면 실패한 교육이거나 부모의 신앙 교육이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로이기도 합니다. 교육은 통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 인생을 완벽하게 세팅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도가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교육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나면 어떻습니까? 스스로 교회를 떠나려고도 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신앙 교육은 필요합니다. 돌아올 수 있는 거룩한 근원을 심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삼손은 나실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뽑힌 삼손이 마지막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외쳤던 부모의 기도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자녀 교육으로 인해서 좌절하거나 자녀의 일탈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이 있으십니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유아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받는 아이의 부모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의 머리에 물을 적시며 세례를 베푸는 것은 아이가 아무 굴곡 없이 평생 꽃길만 걷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삼손처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자의 사체에서 꿀을 찾는 일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 아이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르겠다고 서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이들의 인생이 부모의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노아가 하나님께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리 삼손의 미래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다, 할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도리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삼손이 눈이 뽑히는 실패의 자리까지 추락하게 될지라도, 부모가 심어 놓은 나실인의 정체성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신뢰함으로 고백합시다. 하나님,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끝까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 고백과 믿음이 모든 신앙의 부모님들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How Shall We Raise Him?
Judges 13:8–12
The Book of Judges, from which today’s passage is taken, has an interesting beginning and ending. Judges 1:1 opens with the people of Israel asking God a question:
“After the death of Joshua, the Israelites asked the Lord, ‘Who of us is to go up first to fight against the Canaanites?’” (Judges 1:1 NIV)
But Judges closes like this:
“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they saw fit.” (Judges 21:25 NIV)
The narrative of Judges moves from a people who consulted God to a people living according to their own judgment. This shift is evident in the accounts of the successive judges.
A total of twelve judges appear in Judges. But there is a recurring pattern in the introductory part of each judge’s story.
First, it is mentioned that Israel has forgotten God and worshiped idols, after which God gives them hardship. In most cases, this takes the form of oppression by foreign nations. Then the people of Israel cry out to the Lord. Hearing this, God raises up a judge to deliver them from their enemies and grants them peace. After that peace, however, the people turn away from God again and fall back into sin.
Following this cycle, the early chapters of Judges repeatedly state that the people “cried out to the Lord” whenever they suffered.
The introduction of the first judge, Othniel, exemplifies this pattern:
“The Israelites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they forgot the Lord their God and served the Baals and the Asherahs.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Israel so that he sold them into the hands of Cushan-Rishathaim king of Aram Naharaim, to whom the Israelites were subject for eight years. But w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he raised up for them a deliverer, Othniel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who saved them.” (Judges 3:7–9 NIV)
The same cry is found in the rise of the next judge, Ehud.
“Again the Israelites cried out to the Lord, and he gave them a deliverer—Ehud, a left-handed man, the son of Gera the Benjamite.” (Judges 3:15 NIV)
This pattern is repeated in the stories of Deborah and Gideon. Gradually, however, the pattern changes: the mention of the people crying out to the Lord slowly disappears. Of course, this may be because stories of certain judges are brief and short. But the omission continues through the accounts of Tola, Jair, Ibzan, and Abdon.
Then the story of Samson begins. It starts in chapter 13 from which today’s passage is taken. Judges 13 opens like this:
“Again the Israelites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so the Lord delivered them into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for forty years.” (Judges 13:1 NIV)
Given that opening, one would expect the usual line, “they cried to the Lord,” but Samson’s story does not have that pattern. The narrative moves immediately to a man named Manoah and to the account of how Samson would be born.
Interestingly, therefore, there is no account in Samson’s story of the people repenting or crying out. It could be seen as an omission, but considering the flow, it would be more accurate to say that the people did not cry out to the Lord.
What does the first verse say? It says Israel had already been under Philistine oppression for forty years. Yet they did not seek the Lord or cry out to Him. This shows just how thoroughly they had forgotten God. They were not even capable of crying out to Him.
The people were spiritually numb, a state in which they couldn’t even perceive their suffering. Yet God prepared a deliverer for Israel even before they asked for one. This was purely God’s prevenient grace.
The story of this prevenient grace is none other than the birth of Samson. It starts with a godly household—the family of Manoah from the tribe of Dan. Even in the midst of an unbelieving generation, this family knew God and was worthy of receiving God’s grace.
The family’s story begins like this. The wife was barren, but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her and prophesied that she would conceive. He also gave her detailed instructions about how the child is to be raised.
The woman told her husband, Manoah, about this amazing incident. Manoah immediately prayed to the Lord. This shows that Manoah’s family was a praying household that continued to have fellowship with the Lord.
“Then Manoah prayed to the Lord: ‘Pardon your servant, Lord. I beg you to let the man of God you sent to us come again to teach us how to bring up the boy who is to be born.’” (Judges 13:8 NIV)
God heard his prayer and sent the angel again to meet Manoah. Then Manoah said to the angel:
“So Manoah asked him, ‘When your words are fulfilled, what is to be the rule that governs the boy’s life and work?’” (Judges 13:12 NIV)
First, Manoah received by faith the news from the angel of the Lord that a child would be conceived. Then he asked: How shall we raise this child, and what shall we do for him?
At first glance this seems like an ordinary question, one any faithful family would ask. But if you read it in the broader flow of Judges, you will find that it is a striking and remarkable question.
The people of Israel had already forgotten the Lord. Even after forty years of suffering, they did not cry out to God; they did not even know how to seek the Lord. It was an age of atheism, a time that had forgotten God.
But Manoah was different. He knew how to pray, lived in fellowship with God, and was the sort of believer who could ask God how to raise a child when God granted him one.
Reading Manoah’s story, I wonder if we are like the generation of Manoah’s time. In a world that does not know God, that has in fact forgotten Him, where those who seek and cry out to the Lord are rare, how many godly people are there who pray and seek to live by God’s will?
In some sense, Christians today walk a lonely path. Modern people focus wholly on the voices of this world. All information comes from the world. People get their information from YouTube videos, various lectures, and books. They even get parenting advice on the Internet, from childcare online communities, through consultations with cram class teachers, and from education experts.
Even grandparents’ counsel is often set aside in favor of “expert” sources such as childcare communities. In such a world where parents don’t even ask their own parents about parenting, asking the unseen God, “How shall we raise this child?” is not easy.
Though we are Christians, many of us do not ask God about child-rearing. Deep down we may intend to raise children according to our own ways and thoughts.
Yet in that spiritually numb age, one man was awake and asked God, “How shall we raise this child, and what shall we do for him?” This question shows that Manoah yearned for God’s standard rather than his own opinion or the trends around him.
Why did Manoah ask this when he heard the prophecy of the child’s conception? There are important reasons why he asked it.
First, when he received the annunciation he recognized that the child to be born was not a gift given to him or his to do as he wished; the child was God’s, a mission given to him by God.
Because God was the owner of the child, it was important to know the owner’s will. So he asked, “How shall we raise him?” He received the child as a servant receives a master’s charge. Since the child was God’s and was entrusted to him by God, it was critical that the child be raised according to the master’s instructions.
This question is like a hired nanny asking the child’s mother for instructions: How shall I raise this child? What should I feed him, and when? What kinds of foods should I feed him? When should I wake him and put him to bed? Should I read fairytales to him before bed or Bible stories? A babysitter asks the mother for instructions and guidelines. This was exactly what Manoah was doing when he asked the angel questions. It was important for him to know the thoughts of the true owner of the child.
Today is Children’s Sunday. May our Scripture today become the confession and conviction of all parents. Let us ask, “Lord, the child you have given me is a mission entrusted to me. How shall I raise him/her?” Let us not consider our children ours, but ask God how to raise them, confessing they belong to God.
Furthermore, Manoah’s question carried an expectation that the child would be extraordinary. If God allowed a barren woman to conceive in such a barren time and entrusted that child to them, there must be a great purpose. That is why Manoah asked how he might help so that the child may fulfill his God-given mission.
Manoah was about to rear a child chosen for great work, and he feared his own inadequacy or bad habits might thwart that calling. That humble recognition—“I might ruin this child”—drove him to cling to God.
This perspective is remarkable and wise. Do we truly believe that our children will become great? Do we believe that each child has a God-given mission that will amount to something amazing?
Often parents focus on getting their children into good schools, good jobs, higher status, and comfort—with the mistaken belief that these will bring them happiness. But, in that process, the hearts of children become ill and barren. Parental ambition ruins the child. Parental zeal only makes children unhappy.
Manoah’s question, “How shall we raise him?” was not asking, “How can I make this child great?” He already believed God would use the child for great things. So he was asking, “How can I, as a parent, participate in God’s work?”
The child belonged to God. His life would be led by the Lord. God would use him for the work He desired. Therefore, to raise the child appropriately so that he would be fitting for God’s work, what should I do as a parent? That was the question Manoah was asking.
God answered Manoah through the angel:
“The angel of the Lord answered, ‘Your wife must do all that I have told her. […] She must do everything I have commanded her.’” (Judges 13:13–14 NIV)
Manoah earnestly asked, “How shall we raise him?” But, interestingly, God answered that He had already told Manoah’s wife everything and entrusted to the mother a crucial role.
The meaning is twofold. First, the role and importance of the mother in a child’s upbringing in the home. The person who most directly and primarily influences a child’s upbringing is the mother. This tradition is taught in the Bible and has long been a wisdom passed down among the Jews.
For a long time, Jews have observed matrilineal descent: if the mother is Jewish, the child is Jewish regardless of the father; if the mother is not Jewish, the child is not recognized as Jewish even if the father is. From the second century AD, the principle of maternal descent appeared in the Mishnah and Talmud. Modern Israeli citizenship rules may differ, but this is the long-standing Jewish tradition.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e mother’s faith critically influences the child’s faith. Therefore, the mother’s faith is crucial.
But at the same time, God’s instruction to Manoah can be understood to mean that the father should not act unilaterally in raising the child; rather he should consult and cooperate with his wife. This is not a discrimination between man and woman, but about distinguishing the mother’s role and the father’s role.
So what did God tell Manoah and his wife about how to raise the child who would be born?
“You will become pregnant and have a son whose head is never to be touched by a razor because the boy is to be a Nazirite, dedicated to God from the womb.” (Judges 13:5 NIV)
“But he said to me, ‘You will become pregnant and have a son. Now then, drink no wine or other fermented drink and do not eat anything unclean, because the boy will be a Nazirite of God from the womb until the day of his death.’” (Judges 13:7 NIV)
First, God commands that the child be raised as a Nazirite. What is a Nazirite? “Nazirite” comes from the Hebrew “nazir (נָזִיר NIV),” meaning “set apart” or “dedicated.” It refers to someone set apart who has vowed to devote himself wholly to God for a time or for life. Numbers 6 details the qualifications and rules. The main features are: avoid wine and grape products, do not cut the hair, and do not become defiled by contact with the dead.
How, then, should parents raise such a Nazirite? God, through the angel, commands the parents to be examples in their own lives.
“The angel of the Lord replied, ‘Be sure your wife follows the instructions I gave her. She must not eat grapes or raisins, drink wine or any other alcoholic drink, or eat any forbidden food.’” (Judges 13:13–14 NIV)
To keep the child from drinking alcoholic drink, the mother herself is commanded not to drink it. In other words, parents must model the life the child is to live. Parents themselves must live the life and go the path that they expect their child to live and follow.
There is a saying: “Teaching by example is better than teaching by words” (身敎勝於言敎). Also, “Children grow up watching their parents’ back.” The Lord’s command is to lead by example.
God did not tell Manoah to teach Samson how to use a sword, how to handle weapons, or to increase his physical strength as a method of raising a great judge who would win wars, face many warriors, and deliver his people. He did not command Manoah to train Samson in skills or techniques.
Raise him as a person set apart. And to raise him as such, you yourself must be set apart. That was God’s instruction to Samson’s parents. This was God’s answer to Manoah’s question, “How shall we raise him?”
Hearing this sermon up to now, parents may be resolving, “I will raise my child as the Lord commands. I too will live a life set apart as a parent.”
But as you make that resolution, you may simultaneously feel a lack of confidence. If I wrap up my sermon here, parents may feel overwhelmed. But we need to look further—because there is a twist coming in the story.
Dear brothers and sisters, did Manoah and his wife, who so boldly asked God how they should raise their child, actually raise Samson as they were told? The parents may have set a godly example. But Samson did not grow up as such.
All the rest of the story shows that Samson did not live properly as a Nazirite set apart.
From Judges 14, Samson begins to break the rules his parents strove to keep. When he married a Phillistine woman in Timnah he held a “feast,” and the Hebrew for this word is “mishteh (מִשְׁתֶּה)” which derives from “to drink.” It was, therefore, a feast with drinking. Samson had already begun drinking strong drink.
This was not all. Nazirites were not allowed to touch a corpse, yet Samson ate honey from the carcass of a lion he had killed. Even more shocking, he brought that unclean honey to his parents and they ate it, not knowing where it came from. The son’s sins spread to the parents’ defilement.
Manoah and his wife tried to keep away from wine and raise Samson in a holy way as God commanded them. But how did he grow up? He disappointed his parents, ate honey from a carcass, and held a drinking party with a Philistine woman.
Though on the outside Samson maintained the appearance of a Nazirite until his hair was cut off, inside he had already collapsed. He drank intoxicating drinks and defiled himself by touching a corpse.
We then ask: “If Samson’s parents did their best to raise him well in prayer, why then did he turn out that way?” If this is the outcome, was the upbringing a failure? If this is the outcome, is the parents’ spiritual education useless?
This is the comfort and warning the Bible offers. Education is not control. Parents’ task is not to perfectly set every course of a child’s life, but to plant a holy root that allows the child to return when he fails.
Although he forgot his Nazirite vow and sinned before God and failed in his mission, in the end Samson cried out to God—blind and humbled. Was that not because his parents’ prayer that he was a man of God, spoken even before his birth, had sunk deep into his soul?
Are there believing parents out there frustrated and troubled by their children’s education issues or misconduct? Do not give up. Never give up. Regardless of what you see in terms of outcome, trust in God’s great providence that transcends it. And do your utmost as parents to the end.
Today, we will perform infant baptism. To the parents and all who are here:
When we sprinkle water on this child and give baptism, it does not guarantee that the child will walk a smooth, untroubled path all his life. Like Samson, this child too may be shaken by the temptations of the world as he grows. He may betray parental expectations and deviate from his path, seeking sweet honey from a carcass.
Why, then, do we vow today, “We will raise this child in God’s way”?
Because we believe the child’s life does not depend on the parents’ competence but on the faithfulness of God who seals him/her by this baptism today. When Manoah asked, “How shall we raise him?,” God, knowing Samson’s future failures, still willingly gave Manoah the instructions for Samson’s upbringing. God knew that even if Samson fell so low that his eyes were gouged out, he would ultimately stand again, clinging to the Nazirite identity his parents had planted in him.
Therefore, let us lay down our fear about outcomes and confess in trust: “Lord, we are weak, but You are faithful. We entrust this child to You, so teach us what to do until the end. We will live that way.” May this confession and this faith be with all parents.
사사기 13:8~12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백성들이 점차 하나님을 잊어 가던 시대에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 있는 사사기는 흥미로운 시작과 마지막을 보여 줍니다. 사사기 1장 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이렇게 하나님께 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 25)
하나님께 묻던 백성이 이제는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이야기가 사사기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어지는 사사들의 등장 이야기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사기에는 총 12명의 사사의 이름이 나오며, 사사기의 앞부분에는 사사의 등장과 관련해서 하나의 패턴이 드러납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로 죄를 짓는 이야기가 먼저 등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대부분 이방 민족에게 압제를 당하도록 하는 형벌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서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셔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다시 평안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다시 범죄의 길을 갑니다.
이것이 사사기가 알려 주는 하나의 패턴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초반에는 그들이 고통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첫 사사인 옷니엘의 등장 장면이 그러한 패턴을 전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7~9)
이와 같은 패턴이 사사기의 큰 흐름입니다. 이후 에훗의 등장에서도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 드보라와 기드온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어지는 패턴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 점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내용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짧게 활동했던 사사들 경우 생략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돌라, 야일, 입산, 압돈 등의 이야기에서 계속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삼손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사사기 13장입니다.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삿 13:1)
보통 이렇게 시작하면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이 “주께 부르짖으매”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곧바로 ‘마노아’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삼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등장 배경에는 흥미롭게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거나 부르짖는 장면이 없습니다.
생략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상 맞습니다. 첫 절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부르지도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불신앙의 시대 속에서도 마노아는 하나님께 자녀 양육의 길을 물었습니다.>
먼저 한 경건한 가정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노아라는 단 지파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불신앙의 세대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여인에게 나타나 임신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어떻게 기를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남편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남편 마노아는 즉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이 가정이 여전히 교제를 나누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마노아에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그때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삿 13:12)
우선 마노아는 아기 탄생의 소식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어떻게 행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신앙인의 가정이라면 당연히 물어야 하는 평범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고 놀라운 질문이었다는 것을 사사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의 40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불신앙의 시대, 무신론의 시대, 하나님을 잊은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마노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기도할 줄 알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줄도 알았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실 때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을 수 있던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마노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그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하나님께 묻고 부르짖는 이가 희귀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뜻을 물으며 따라가려는 경건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 어떻게 아이들을 기르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 진정한 신앙인이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모든 관심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현대인들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정보들도 미디어와 강좌, 서적, 육아 전문 커뮤니티, 학원 상담과 교육 전문가를 통해 얻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사실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서 대부분 그 길을 하나님께 묻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부모의 생각대로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속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상의 흐름을 따라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이렇듯 모두가 잠든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유독 한 사람만이 깨어서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마노아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이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마노아는 자녀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자녀 양육을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노아는 아이 탄생의 소식을 듣고 여호와께 이런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마노아는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자신이 받을 아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이며, 자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시는 사명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가 한 질문은 유모가 아기의 부모에게 질문한 것과 같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을까요? 어떤 음식을 먹이고, 언제쯤 잠자리에 들도록 하면 좋을까요?” 아마도 유모라면 아이의 부모에게 이런 것들을 물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의이자 상식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노아는 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실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기를 원하시는지 물어야 한다.” 이것이 마노아의 생각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부모님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맡겨 주신 이 아이는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노아가 묻는 질문에는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임신하지 못하던 태를 열면서까지 아이를 맡기시는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 위대한 일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아이가 그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내가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참으로 놀라운 생각이며 큰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막연하게 아이가 좋은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 편하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고 피폐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때로는 부모의 열망이 아이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부모의 열심이 도리어 아이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묻는 마노아의 질문은 “아이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위대한 일에 사용하실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부모로서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먼저 삶의 모범을 보이며 거룩하게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이제 장차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고 하셨습니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삿 13:7)
하나님께서는 우선 이 아이를 ‘나실인’으로 키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실인(Nazirite)’은 히브리어 ‘나지르(נָזִיר[Nazir])’에서 유래한 말로, ‘구별된 자’, ‘봉헌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구별되어 일정 기간 혹은 평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을 말합니다. 민수기 6장에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선 포도주를 멀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나실인으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하여 부모가 먼저 그의 삶 속에서 모범을 보일 것을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일러주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일러준 모든 것을 그 아이가 지켜야 하고, 마노아의 아내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삿 13:13~14, 새번역)
아이가 독주를 마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이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육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어머니가 먼저 독주를 마시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먼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의 삶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부모 자신도 아이가 가야 하는 길을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주셨던 책무였습니다.
‘신교승어언교(身敎勝於言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소 행하는 가르침이 말로 하는 가르침보다 낫다”라는 뜻입니다. 솔선수범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병사들과의 대결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위대한 사사를 이제 길러 내려고 하십니다. 그 사사가 바로 삼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묻는 마노아의 질문에 “무기를 다루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구별된 사람으로 키워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의 자녀를 구별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너도 구별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삼손의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마노아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장차 백성을 이끄는 사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 구별된 사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도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따라오시면서 아마도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를 주님의 말씀대로 구별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라는 다짐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마주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린다면 부모님들은 큰 부담을 가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묻고 아이를 키워야 할 텐데,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런데 조금 더 보아야 합니다. 반전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 교육은 자녀에게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거룩한 근원을 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당하게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물었던 마노아와 아내는 정말 삼손을 그렇게 키웠을까요? 아마도 부모님은 그렇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렇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제대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사기 14장에 삼손은 부모가 지키려 애썼던 규례들을 하나씩 깨뜨리기 시작합니다. 삼손이 딤나에서 결혼할 때 ‘잔치’를 배설하는데, 히브리어로 이 잔치는 ‘미슈테 (מִשְׁתֶּה[Mishteh])’라고 합니다. 이는 ‘마시다’라는 어원에서 왔습니다. 술이 빠지지 않는 잔치입니다. 이미 독주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실인은 사체를 가까이하면 안 되지만, 삼손은 자신이 죽인 사자의 몸에서 나온 꿀을 떠먹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삼손이 그 부정한 꿀을 부모에게도 가져다주어 먹게 했다는 점입니다. 부모는 그것이 사자의 사체에서 나온 것인 줄도 모르고 먹습니다. 아들의 타락과 부정이 부모의 타락과 부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노아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포도주를 멀리하며 거룩하게 삼손을 키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어떻게 자랐습니까? 그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자의 사체에서 꿀을 찍어 먹고 이방인 여인과 술잔치를 하며 살았습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기까지 표면적으로는 나실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독주를 마시고 사체를 만짐으로 부정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그렇게 기도하며 잘 키웠는데, 왜 삼손은 저 모양일까? 결과가 그렇다면 실패한 교육이거나 부모의 신앙 교육이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로이기도 합니다. 교육은 통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 인생을 완벽하게 세팅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도가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교육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나면 어떻습니까? 스스로 교회를 떠나려고도 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신앙 교육은 필요합니다. 돌아올 수 있는 거룩한 근원을 심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삼손은 나실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뽑힌 삼손이 마지막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외쳤던 부모의 기도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자녀 교육으로 인해서 좌절하거나 자녀의 일탈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이 있으십니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유아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받는 아이의 부모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의 머리에 물을 적시며 세례를 베푸는 것은 아이가 아무 굴곡 없이 평생 꽃길만 걷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삼손처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자의 사체에서 꿀을 찾는 일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 아이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르겠다고 서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이들의 인생이 부모의 실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노아가 하나님께 “어떻게 기르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리 삼손의 미래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다, 할 필요 없다”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도리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삼손이 눈이 뽑히는 실패의 자리까지 추락하게 될지라도, 부모가 심어 놓은 나실인의 정체성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신뢰함으로 고백합시다. 하나님,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끝까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이 고백과 믿음이 모든 신앙의 부모님들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어떻게 기르리이까” (삿13:8~12)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63, 56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께 기도로 여쭈어 본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묻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께 묻던 백성이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사사기의 큰 흐름입니다.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13장에는 흥미롭게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장면이 없습니다. 40년이나 블레셋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을 만큼 영적으로 마비된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구원자를 준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제적 은혜였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마노아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기 잉태의 소식을 들은 마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묻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하나님을 잊은 시대에 유독 한 사람이 깨어서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은 마노아가 아기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으로 깨달았음을 보여줍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그 뜻을 먼저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칼 쓰는 법도, 체력을 늘리는 방법도 아니었습니다. “구별된 사람으로 키워라. 그렇게 키우기 위해 너도 구별된 사람이 되어라.” 부모가 삶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신교승어언교(身教勝於言教), “몸소 행하는 가르침이 말로 하는 가르침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노아 부부가 그렇게 애썼음에도 삼손은 나실인의 규례를 하나씩 깨뜨렸습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신앙교육은 실패한 것일까요? 교육은 ‘통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의 인생을 완벽하게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돌아올 수 있는 거룩한 근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삼손이 눈이 뽑힌 채 하나님을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외쳤던 부모의 기도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이나 자녀의 일탈로 고통받는 분이 있으십니까? 아직 포기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신뢰함으로 고백합시다.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오니, 우리가 어떻게 행할지를 끝까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이 고백이 우리 모든 부모님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자녀 양육에서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의 방법을 먼저 따랐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내가 먼저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마노아처럼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리이까”를 주님께 묻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기업임을 고백합니다. 부모가 먼저 거룩한 본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질서를 가르치는 청지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가 삼손처럼 흔들리고 방황할 때에도 오늘 드린 이 기도가 그를 건져 올리는 마지막 생명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