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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1~6

김경진 목사

2026.04.26

<전도자의 지혜의 말씀 속에 넓고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1~2)

알 듯 모를 듯 전해지는 이 지혜의 말씀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선사해 왔습니다. 자손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부터 투자를 생각하는 사람,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지혜와 혜안을 얻어 왔습니다. 이 말씀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는 뜻밖에도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모호함에 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씀이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떡이 수면에 닿는 순간, 떡은 바로 물을 흡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떡을 뭉치게 했던 결합력이 약해지면서 겉면부터 서서히 풀려나갈 것입니다. 단단한 떡은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떡도 사라져 갈 것입니다. 물속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의 형태로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뒤에 따라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말씀에서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씀에 방점을 둡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듯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모험이 인생에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막연한 용기를 주는 인생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투자와 관련한 지혜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이 본문의 새번역은 강한 확신을 심어 줄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1~2, 새번역)

공동번역도 비슷하게 번역하였습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불운이 닥쳐올는지 모르니, 투자하더라도 대여섯 몫으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1~2, 공동번역개정판)

여러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본문의 뜻을 잘 살려 내지 못한 해석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이 말하는 내용은 훨씬 더 깊고 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이것을 무역에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내용을 좁히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본문이 투자와 관련된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놀라운 지혜를 몇 가지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절의 말씀은 장기 투자에 관한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 관점을 잘 드러냅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전 11:1, 공동번역개정판)

이런 관점에서 보면 2절 말씀은 분산 투자와 관련된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불운이 닥쳐올는지 모르니, 투자하더라도 대여섯 몫으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2, 공동번역개정판)

한 걸음 더 나아가 4절 말씀은 과감한 투자를 이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전 11:4)

혹시나 오늘 이 말씀을 계시적 말씀으로 알고 집에 돌아가 무조건 과감한 투자를 하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여러 해석의 틀 중 한 가지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본문은 일반적인 투자가 아닌 자선과 선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 말씀이 정말 투자와 관련된 말씀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말씀은 투자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역이나 주식과 같은 투자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뜻에 가깝게 해석하기 위해 한 가지 다른 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대 근동 이집트의 지혜 문학에 비슷한 문장이 있습니다.

“선행을 하라 그것을 물에 던져라 물이 말랐을 때 그것을 찾으리라”(『온크셰쇼키의 교훈』(The Instruction of Ankhsheshonq) 19:10)

고대 근동 이집트의 지혜 문학 속에 나타나는 이 문장은 성경의 교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이집트의 지혜는 ‘선행’을 물에 던지라고 하는데, 성경은 ‘떡’을 물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떡’이라는 보다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우리가 던져야 할 범위를 확장합니다. 그 안에는 이집트의 지혜가 말하는 ‘선행’과 ‘자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본문을 ‘선행과 자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뜻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투자는 무엇일까요? 또 그것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에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전 11:1)

‘네 떡’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나의 떡, 나의 소유입니다. 내가 먹으면 그것은 나에게 양식과 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떡은 ‘내 떡이자, 네 떡’입니다. 그런데 ‘네가 먹을 그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물 위에 던지면 떡이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 떡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떡을 그렇게 낭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떡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무모한 사용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은 일반적인 투자와 다른 개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낭비이자 사라지는 행위입니다. 돌려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떡을 물에 던졌는데,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찾는다면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투자와 같이 이런저런 때를 따지기보다 지금 떡을 먹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혜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는 이 떡을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실제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에 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떡을 먹음으로써 떡의 효용 가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2)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고, 후에 그들이 갚을 때 다시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 땅에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여러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에게 떡을 나누라는 말씀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읽든지 지혜자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요청합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떡을 나누어 주어라. 그 떡으로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어 선행을 베풀라. 마치 떡을 물에 던지는 듯한 마음과 태도로 그렇게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앞에 나오는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은 실제로 떡을 물에 던지라는 말이라기보다, 뒤에 나오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라는 말씀을 행하는 마음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에 떡을 던지는 마음으로 일곱이나 여덟 사람에게 떡을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 땅에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불행과 재난을 언제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3절이 이어집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 11:3)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재앙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 쌓이면 결국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나 재난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무가 잘 버티고 있다가 갑자기 번개가 치거나 강풍이 불면 쓰러지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지 말라고 해서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자 자연의 현상 속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재난과 사고와 불행이 다가오곤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전 11:4)

성경은 이것저것 다 따지고 생각하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도 떡을 던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떡을 여럿이 나눌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언제 떡을 던질까, 언제 씨를 뿌릴까, 바람이 너무 부는 것 같으니 내일로 미루자, 큰비가 내릴 것 같으니 다음으로 미루자’ 하다 보면 결국 떡을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있든지, 풍세가 어떠하든지, 오늘 떡을 먹을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떡을 물에 던지듯이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떡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영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 말씀이 투자와 구별됨을 볼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는 좋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투자에서 잘못된 순간의 선택은 도리어 몰락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자선과 선행은 전혀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전 11:5)

이 일에는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베푸는 선행과 자선의 일에는 하나님의 경영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과감히 떡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손으로 쥐고 계시며, 경영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지혜자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극적으로 경험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 고백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감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떡을 물에 던지는 것은 낭비입니다. 물에 던져진 떡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럼에도 지혜자가 떡을 물에 던지라는 것은 ‘되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투자라기보다 낭비이자, 무모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았던 사람,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물속에 던져 놓은 떡을 재료로 삼아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한 사람은 이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앙의 차원입니다.
몇 주 전에 ‘죽으면 살리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자 우리 인생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던진 자,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려놓음으로써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 살아 있는 숨을 쉬며, 복된 인생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과 누리는 것들을 내려놓으면 삶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를 당연한 삶의 원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은 물 위에 떡을 던지듯이 대가 없는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기부와 긍휼, 그리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넉넉한 마음이 그들의 삶을 채워 갑니다. 그 통치의 원리가 작동할 때,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너무나도 공허하고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많은 것을 다 나누고 어떻게 살려는 것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권면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6)

이제 ‘떡’이 ‘씨’의 이미지로 변환됩니다. ‘떡’은 그냥 ‘떡’입니다. 그런데 그 ‘떡’이 ‘씨’라고 지혜자는 고쳐 말하고 있습니다. ‘씨’는 어떤 것입니까? ‘씨’에는 생명과 놀라운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면 큰 나무가 되어 다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선행의 미래가 그러합니다. 작은 씨앗 안에 엄청난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하는 작은 사랑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행한 작은 섬김이 그냥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겨 있기에 훗날 엄청난 결과를 나타낼 것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고 말한 지혜자가 이후에 떡을 씨로 변환하여 말한 과정에는 고대 이집트의 농사법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매년 나일강이 범람하는 것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물이 범람할 때 물 위에 씨앗을 그냥 뿌렸습니다. 그러면 얼마 후에 물이 다 빠지고 던져 놓은 씨앗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땅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비옥한 토양 속에 발아한 씨앗들은 잘 자라 곡식과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트인들에게는 씨를 물에 던지는 것이 결코 허망한 일이 아니라, 곡식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농사 기법이었습니다.
지혜자는 그들처럼 떡을 물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지혜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당장 돌려받을 것이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물에 던질 때 모두 사라질 것 같더라도 지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를 경영하고 계시는 하나님,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의 떡, 내가 먹을 떡을 물에 던져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우리의 삶이 쏘아 올리는 모든 것이 되돌아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행과 자선의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보다 더 훨씬 크고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선행과 자선이며, 우리가 투자하는 것들이지만, 이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비밀은 이보다 더 크고 놀랍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의 삶이 던지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던진 것이 물 위에 던져진 떡과 같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엄연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을 던지면 물론 좋은 것을 얻겠지요. 그러나 ‘악’을 뿌리면 결국 나쁜 것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7~8)

성도 여러분, 롱펠로의 “화살의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주는 시입니다. 이 시를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화살의 노래>

나는 화살 하나를 공중에 쏘았네/ 화살은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네./
얼마나 빨리 날아갔는지/ 간 곳을 눈으로도 뒤따르지 못했다네.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 한 곡을 불렀네/ 노래는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네/
노래가 날아간 곳을 뒤따를 만큼/ 밝고 날쌘 눈을 누가 가졌으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 화살을 찾았네. /
한 참나무 아래서,/ 고스란히 그대로./
그리고 그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다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제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 시를 잘 해석하고 시상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화살 하나를 쏘아 올렸습니다. 그것이 어딘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화살이 얼마나 빨리 날아갔는지, 그 화살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화살을 찾고자 했지만 어디에 떨어졌는지 몰라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어딘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여긴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노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 사람은 산을 거닐다가 자신이 오래전에 쏘아 올렸던 그 화살을 찾습니다. 고스란히 그대로 발견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언젠가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른 그 사람도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그의 노래를 아무도 듣지 않은 줄 알았는데, 먼 훗날 누군가의 가슴 속에 그 노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가 전하는 내용입니다. 따뜻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멋진 시입니다. 저는 이 시를 오늘의 말씀과 잇대어 봅니다. 우리가 쏘아 올린 화살들은 어디에 떨어졌을까요? 우리가 부른 노래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담겼을까요? 먼 훗날 그 화살도, 그 노래도 우리는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저 나름의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쏘아 올린 많은 화살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속도를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가 상처를 내었을 그 화살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 꽂혔을까?’ 이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과 돌아보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시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화살은 살아가면서 쏘아 올린 상처를 내는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 반면에 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쏟아 내는 것들 중에는 이 두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부분은 상처를 만들어 내는 화살과 같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노래와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떡처럼 물에 던지는 것들이며, 우리가 쏘아 올리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던진 떡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뿌리는 씨앗들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뿌릴 씨앗은 무엇일까요? 물에 던질 나의 떡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선과 선행을 하기에는 제가 가진 떡이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랑의 말, 격려의 말, 작은 돌봄도 있습니다. 반드시 재물이 있어야만 떡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던질 수 있는 것들이 이미 내 손과 몸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선함의 번짐’을 이루어 가는 방식입니다. 떡을 던지듯이, 씨를 뿌리듯이, 그리고 노래를 부르듯이 하나씩 던져 봅시다. 멋진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

Ecclesiastes 11:1-6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For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 Give a serving to seven, and also to eight, For you do not know what evil will be on the earth.” (Ecclesiastes 11:1-2 NKJV)

This enigmatic wisdom has inspired countless readers. Many kinds of people have found insight and understanding in this saying—from those who give charity, to those who consider investments, entrepreneurs planning businesses, and people pondering how to live their lives.

Paradoxically, part of the reason this saying has affected such a wide range of people is its ambiguity. The directive to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for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 is difficult to understand in reality.

What would happen if you threw bread into water? At the moment the bread touches the surface, a light, air-filled loaf may float briefly, but it will soon begin to absorb water and capillary action will take place. The bonds that held the loaf together will gradually weaken and the surface will slowly disintegrate. Eventually the mass will disappear and be transformed into small particles floating in the water. How, then, can one “find it after many days”?

Because of this, some, emphasizing the instruction to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interpret it as a call to throw something away in life and take seemingly reckless, even absurd, adventures in life. They interpret it as a somewhat vague, but encouraging, adage telling us that risky ventures may yield returns.

Many, on the other hand, understand this saying as financial wisdom about investment. For such readers, the New International Reader’s Version gives a strong sense of certainty:

“Put your money into trade across the ocean. After a while you will earn something from it. Give shares of what you earn to a lot of people. After all, you don’t know what great trouble might come on the land.” (Ecclesiastes 11:1-2 NIRV)

The Good News Translation gives a similar rendering:

“Invest your money in foreign trade, and one of these days you will make a profit. Put your investments in several places – many places even – because you never know what kind of bad luck you are going to have in this world.” (Ecclesiastes 11:1-2 GNT)

These words may catch the attention of those following the stock market today. Many biblical scholars criticize this investment-centered reading as failing to capture the original meaning of the text—I tend to agree to some extent—but in any case the passage does allow for such an interpretation.

Seen from this perspective, the passage offers two remarkable pieces of investment wisdom. First, verse 1 can be read as counsel for long-term investment. The GNT expresses this aspect particularly clearly.

“Invest your money in foreign trade, and one of these days you will make a profit.” (Ecclesiastes 11:1 GNT)

Viewed that way, verse 2 can be read as advice on diversification.

“Put your investments in several places – many places even – because you never know what kind of bad luck you are going to have in this world.” (Ecclesiastes 11:2 GNT)

From this standpoint, verse 4 can be further interpreted as an advice to invest boldly.

“He who observes the wind will not sow, And he who regards the clouds will not reap.” (Ecclesiastes 11:4 NKJV)

But I hope no one goes home today thinking they’ve received a revelation and makes bold, reckless investments.

So far we’ve looked at several perspectives of reading today’s passage. But is this passage really about investment? As I said earlier, while such interpretations are not wholly unrelated to the text, the passage requires a broader and deeper reading.

First, we should examine the passage in relation to the proverbs and sayings that circulated throughout the surrounding Near Eastern region.

In an ancient Egyptian wisdom literature known as “The Instruction of Ankhsheshonq” there is a line like this:

“Do a good deed and throw it in the water; when it dries you will find it.” (The Instruction of Ankhsheshonq, 19:10)

This line from ancient Near Eastern, especially Egyptian, wisdom literature helps us infer what the biblical saying might mean.

Ancient Egyptian wisdom tells us to cast good deeds upon the waters; the Bible says to cast bread upon the waters. By using the image of bread—a more abstract expression—the Bible broadens the range of what we are to cast. Still, we can infer that “bread” clearly includes the good deeds and charity mentioned in the Egyptian proverb.

With all this in mind, let us capture the message of today’s passage in a question.

What is the wisest investment in life and how should we make it? And what should our heart’s attitude be when we make it?

The Bible’s image of bread invites many associations, yet it clearly carries the message that investing in good deeds is the most valuable investment.

So, first, we will read today’s passage from the perspective of charity and good deeds. Then we will consider the spiritual meaning contained in it.

The Bible states: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Note the phrase “your bread.” This bread that the Bible refers to is yours. It is what I have, what I own. It is bread that I am to eat. If I eat it, it becomes my food and my nourishment. That is why the Bible calls it “your bread.”

Yet the Bible tells us to cast that very bread—the very bread you are to eat—upon the waters. What happens when you throw bread into water? As I mentioned earlier, it will disperse and disappear. It will just vanish into the water. It would be just like being scattered into the air. If someone truly valued the bread, they would not waste it that way.

Therefore, from the command to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we understand that this is different from an ordinary investment.

At first glance, it looks like waste—it disappears. So how can one possibly recover bread that has been thrown into the water and has vanished?

How could such bread be retrieved later if it has been thrown in a way that cannot be recovered? And if it is recovered, in what form or shape will it return?

Yet the Preacher’s wisdom continues. Not only must you cast the bread upon the waters, but you must also divide it among seven or eight places.

This will be a practical help. If you give bread to people, they will eat it, and it will have utility. Then the Bible adds, “For you do not know what evil will be on the earth.”

Primarily this can be read as: because you do not know what will befall you later, if you distribute bread among many people, someone will repay you later; so you will be able to find it again.

But viewed another way, it can mean: since there are many people in this world who experience all sorts of calamities that you cannot fully know, share your bread with them.

Either way, the Preacher clearly instructs one thing: Share your bread. Use what you have to do good.

Why should we do this? It is because there are far too many who suffer misfortune and calamity on this earth. And because we ourselves do not know if and when we might face such misfortune and disaster.

In this context verse 3 goes on to say:

“If the clouds are full of rain, They empty themselves upon the earth; And if a tree falls to the south or the north, In the place where the tree falls, there it shall lie.” (Ecclesiastes 11:3 NKJV)

These words seem to show how disasters occur. When clouds become heavy, rain falls upon the earth. This leads to floods and disasters. A tree standing firm may be felled suddenly by lightning or a storm. Accidents and calamities happen in this way.

These are beyond our control. We cannot prevent them from happening just because we wish them away. As such, hardship, disaster, accidents, and misfortune come upon us.

So what should we do? How can we carry out good deeds?

“He who observes the wind will not sow, And he who regards the clouds will not reap.” (Ecclesiastes 11:4 NKJV)

If you keep weighing this and that, you will never cast your bread. You will never be able to divide and share it among many.

When shall I cast my bread? When shall I sow? Let’s put it off to tomorrow since the wind seems too strong. When should I sow? It looks like rain; I’ll postpone sowing until tomorrow…

The Bible says that if you act this way, you will never be able to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Whatever the clouds look like or however the wind blows, you must cast and share your bread today, here, to those who can receive it now.

With what faith can you do this? We know how vital timing is in investment. A financial investment made at the wrong time can lead to ruin. But charity and good deeds are not so.

The Preacher says:

“As you do not know what is the way of the wind, Or how the bones grow in the womb of her who is with child, So you do not know the works of God who makes everything.” (Ecclesiastes 11:5 NKJV)

This means God is involved in this matter. The reason you can boldly cast your bread is because you have faith that God knows and governs all things.

The Preacher who imparts this wisdom must have had a dramatic experience of the living God. Some can make this confession, while others cannot grasp it at all.

Think about it. Casting your bread upon the waters is a waste. Bread thrown into water disappears. Yet the Preacher tells us to cast our bread on the waters, to attempt what seems irretrievable. In a sense, this is not investment. It is an adventure, a reckless act.

Yet those who have experienced God’s work can understand what this means. We do not know what God will do. How can we? We cannot predict how God will use the bread we cast into the water. But God will make us retrieve it after many days. This is faith. This is why we can cast our bread upon the waters.

A few weeks ago, I preached a sermon titled “He Who Dies Will Live.” God’s law, and the law of life, follow a similar principle.

Those who seek to obtain may lose; those who cast away, who are willing to lose, may gain—this is life. Letting go of what you have and enjoy may seem to threaten your life, yet through that letting go you encounter a truly blessed, living life. The world treats give-and-take as the rule and hesitates to invest in an unseen future.

But those who walk with God do not spare unreciprocated sacrifices—just as one casts bread upon the waters. Their lives are filled with unconditional giving, compassion, and a regret for not giving more. They know God’s governing principle is to “give continually.”

Living by God’s principle can sometimes seem empty. Yet the living God never forgets our devotion and will surely return it at the best time. Those who have experienced this can cast their bread upon the waters.

Therefore the Preacher exhorts:

“In the morning sow your seed, And in the evening do not withhold your hand; For you do not know which will prosper, Either this or that, Or whether both alike will be good.” (Ecclesiastes 11:6 NKJV)

Now the image of the bread shifts to that of a seed.

Bread is simply bread. But the Preacher recasts that bread as seed.

What is a seed? A seed contains life. It holds a remarkable future. If it germinates, puts down roots, and grows, it will become a mighty tree and yield abundant fruit.

So it is with the future of good deeds. Tremendous vitality is contained in a small seed. The small love I give is by no means small. Neither does it disappear. The little service I perform does not vanish. Because life is contained in it, it will bring astounding results one day.

If we look at how the Preacher transforms the image of bread into that of a seed, we see a connection to the common agricultural practices of ancient Egypt.

The ancient Egyptians farmed using the annual flooding of the Nile. They would cast seed upon the water when the river overflowed. After the water receded and the riverbed dried, those seeds scattered and took root in the fertile soil, germinating and growing into abundant crops and fruit. Thus, casting seed upon the waters was not a vain act. It was a crucial farming method for producing grain.

Just like that Egyptian method, if you cast the bread upon the waters, you will find it again after many days. That is the message the Lord gives us today through the Preacher.

Even if there seems to be no immediate return, even if it feels like you will not get it back immediately, even if it appears to disappear altogether in the water—we must cast our bread upon the waters, remembering that God is at work now, that God is acting, and that God knows all things. When we do so, the Lord promises,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 This is His promise that He will surely return it to you.

So far, we have read today’s passage from the perspective of good deeds and charity. But, as I said earlier, the meaning is much broader and greater. Primarily, it concerns our good deeds and gifts, the things we invest, but the secret this passage reveals is larger and more wondrous.

Today’s passage tells us that whatever we cast out in our lives will eventually return to us. Of course, if you sow goodness, you will reap good things. But if you sow evil, you will receive evil in return.

God tells us through the Apostle Paul:

“Do not be deceived, God is not mocked; for whatever a man sows, that he will also reap. For he who sows to his flesh will of the flesh reap corruption, but he who sows to the Spirit will of the Spirit reap everlasting life.” (Galatians 6:7–8 NKJV)

There is a poem by Longfellow called “The Arrow and the Song,” which has inspired many. Shall we read it together?

“The Arrow and the Song”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That it can follow the flight of song?

Long, long afterward, in an oak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I 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Henry Wadsworth Longfellow)

One person shot an arrow into the sky. It must have fallen somewhere, but it flew so fast that he could not track it. Another person sang a song into the air where no one seemed to be listening. A long time passed. An old man who returned to his homeland found the very arrow he had shot—intact—under an oak. Another man, the singer who once sang into the air, discovered that his song had remained, whole, in the heart of a friend.

What a warm and thought-provoking poem.

I link this poem to today’s passage. The arrows we shot must have fallen somewhere. The songs we sang must have lodged in someone’s heart. Long afterward, we will find both the arrow and the song again.

What did we shoot up? What song did we sing?

What was the bread we cast? What was the seed we sowed?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

The Preacher says: If you wait for the wind to cease in order to sow, you will do nothing. If you wait for clear weather to reap, you will gather nothing.

Dear friends, what seed will we sow? What is the bread we will cast upon the waters? What arrow will we shoot up, what song will we sing?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life does not go as we intend. Precisely because of this, we must sow with greater faith. We must cast our bread upon the waters. This is entrusting ourselves to God. From the moment our bread leaves our hands, God’s work begins. Our dedication is not lost. Though it may seem wasteful, costly, or in vain, God’s work will come upon it.

With this confession and faith, may the beautiful spiritual investment and spiritual sowing of casting our bread upon the waters continue endlessly among us. May the spread of goodness appear here and there, as bread is cast and seed is s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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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1:1~6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자의 지혜의 말씀 속에 넓고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1~2)

알 듯 모를 듯 전해지는 이 지혜의 말씀은 수많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선사해 왔습니다. 자손을 생각하는 사람에서부터 투자를 생각하는 사람,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지혜와 혜안을 얻어 왔습니다. 이 말씀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는 뜻밖에도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모호함에 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씀이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떡이 수면에 닿는 순간, 떡은 바로 물을 흡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떡을 뭉치게 했던 결합력이 약해지면서 겉면부터 서서히 풀려나갈 것입니다. 단단한 떡은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떡도 사라져 갈 것입니다. 물속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의 형태로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뒤에 따라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말씀에서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씀에 방점을 둡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듯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모험이 인생에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막연한 용기를 주는 인생의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투자와 관련한 지혜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이 본문의 새번역은 강한 확신을 심어 줄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1~2, 새번역)

공동번역도 비슷하게 번역하였습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불운이 닥쳐올는지 모르니, 투자하더라도 대여섯 몫으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1~2, 공동번역개정판)

여러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본문의 뜻을 잘 살려 내지 못한 해석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이 말하는 내용은 훨씬 더 깊고 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이것을 무역에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내용을 좁히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본문이 투자와 관련된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놀라운 지혜를 몇 가지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절의 말씀은 장기 투자에 관한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 관점을 잘 드러냅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전 11:1, 공동번역개정판)

이런 관점에서 보면 2절 말씀은 분산 투자와 관련된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불운이 닥쳐올는지 모르니, 투자하더라도 대여섯 몫으로 나누어 하여라. (전 11:2, 공동번역개정판)

한 걸음 더 나아가 4절 말씀은 과감한 투자를 이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전 11:4)

혹시나 오늘 이 말씀을 계시적 말씀으로 알고 집에 돌아가 무조건 과감한 투자를 하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여러 해석의 틀 중 한 가지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본문은 일반적인 투자가 아닌 자선과 선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 말씀이 정말 투자와 관련된 말씀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말씀은 투자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역이나 주식과 같은 투자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뜻에 가깝게 해석하기 위해 한 가지 다른 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대 근동 이집트의 지혜 문학에 비슷한 문장이 있습니다.

“선행을 하라 그것을 물에 던져라 물이 말랐을 때 그것을 찾으리라”(『온크셰쇼키의 교훈』(The Instruction of Ankhsheshonq) 19:10)

고대 근동 이집트의 지혜 문학 속에 나타나는 이 문장은 성경의 교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이집트의 지혜는 ‘선행’을 물에 던지라고 하는데, 성경은 ‘떡’을 물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떡’이라는 보다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우리가 던져야 할 범위를 확장합니다. 그 안에는 이집트의 지혜가 말하는 ‘선행’과 ‘자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본문을 ‘선행과 자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뜻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투자는 무엇일까요? 또 그것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에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전 11:1)

‘네 떡’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나의 떡, 나의 소유입니다. 내가 먹으면 그것은 나에게 양식과 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떡은 ‘내 떡이자, 네 떡’입니다. 그런데 ‘네가 먹을 그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물 위에 던지면 떡이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 떡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떡을 그렇게 낭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떡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무모한 사용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은 일반적인 투자와 다른 개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낭비이자 사라지는 행위입니다. 돌려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떡을 물에 던졌는데,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찾는다면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투자와 같이 이런저런 때를 따지기보다 지금 떡을 먹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혜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는 이 떡을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실제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에 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떡을 먹음으로써 떡의 효용 가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2)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고, 후에 그들이 갚을 때 다시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 땅에는 내가 다 알 수 없는 여러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에게 떡을 나누라는 말씀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읽든지 지혜자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요청합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떡을 나누어 주어라. 그 떡으로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어 선행을 베풀라. 마치 떡을 물에 던지는 듯한 마음과 태도로 그렇게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앞에 나오는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은 실제로 떡을 물에 던지라는 말이라기보다, 뒤에 나오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라는 말씀을 행하는 마음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에 떡을 던지는 마음으로 일곱이나 여덟 사람에게 떡을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 땅에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불행과 재난을 언제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3절이 이어집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 11:3)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재앙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 쌓이면 결국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나 재난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무가 잘 버티고 있다가 갑자기 번개가 치거나 강풍이 불면 쓰러지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지 말라고 해서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자 자연의 현상 속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재난과 사고와 불행이 다가오곤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전 11:4)

성경은 이것저것 다 따지고 생각하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도 떡을 던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떡을 여럿이 나눌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언제 떡을 던질까, 언제 씨를 뿌릴까, 바람이 너무 부는 것 같으니 내일로 미루자, 큰비가 내릴 것 같으니 다음으로 미루자’ 하다 보면 결국 떡을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있든지, 풍세가 어떠하든지, 오늘 떡을 먹을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떡을 물에 던지듯이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떡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영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 말씀이 투자와 구별됨을 볼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는 좋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투자에서 잘못된 순간의 선택은 도리어 몰락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자선과 선행은 전혀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전 11:5)

이 일에는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베푸는 선행과 자선의 일에는 하나님의 경영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과감히 떡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손으로 쥐고 계시며, 경영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지혜자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극적으로 경험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 고백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감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떡을 물에 던지는 것은 낭비입니다. 물에 던져진 떡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럼에도 지혜자가 떡을 물에 던지라는 것은 ‘되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투자라기보다 낭비이자, 무모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았던 사람,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물속에 던져 놓은 떡을 재료로 삼아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한 사람은 이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앙의 차원입니다.
몇 주 전에 ‘죽으면 살리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자 우리 인생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던진 자,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려놓음으로써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 살아 있는 숨을 쉬며, 복된 인생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과 누리는 것들을 내려놓으면 삶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를 당연한 삶의 원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은 물 위에 떡을 던지듯이 대가 없는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기부와 긍휼, 그리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넉넉한 마음이 그들의 삶을 채워 갑니다. 그 통치의 원리가 작동할 때,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너무나도 공허하고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많은 것을 다 나누고 어떻게 살려는 것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권면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 11:6)

이제 ‘떡’이 ‘씨’의 이미지로 변환됩니다. ‘떡’은 그냥 ‘떡’입니다. 그런데 그 ‘떡’이 ‘씨’라고 지혜자는 고쳐 말하고 있습니다. ‘씨’는 어떤 것입니까? ‘씨’에는 생명과 놀라운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면 큰 나무가 되어 다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선행의 미래가 그러합니다. 작은 씨앗 안에 엄청난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하는 작은 사랑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행한 작은 섬김이 그냥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겨 있기에 훗날 엄청난 결과를 나타낼 것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고 말한 지혜자가 이후에 떡을 씨로 변환하여 말한 과정에는 고대 이집트의 농사법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매년 나일강이 범람하는 것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물이 범람할 때 물 위에 씨앗을 그냥 뿌렸습니다. 그러면 얼마 후에 물이 다 빠지고 던져 놓은 씨앗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땅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비옥한 토양 속에 발아한 씨앗들은 잘 자라 곡식과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트인들에게는 씨를 물에 던지는 것이 결코 허망한 일이 아니라, 곡식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농사 기법이었습니다.
지혜자는 그들처럼 떡을 물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지혜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당장 돌려받을 것이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물에 던질 때 모두 사라질 것 같더라도 지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를 경영하고 계시는 하나님,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의 떡, 내가 먹을 떡을 물에 던져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우리의 삶이 쏘아 올리는 모든 것이 되돌아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행과 자선의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보다 더 훨씬 크고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선행과 자선이며, 우리가 투자하는 것들이지만, 이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비밀은 이보다 더 크고 놀랍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의 삶이 던지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던진 것이 물 위에 던져진 떡과 같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엄연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을 던지면 물론 좋은 것을 얻겠지요. 그러나 ‘악’을 뿌리면 결국 나쁜 것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7~8)

성도 여러분, 롱펠로의 “화살의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주는 시입니다. 이 시를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화살의 노래>

나는 화살 하나를 공중에 쏘았네/ 화살은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네./
얼마나 빨리 날아갔는지/ 간 곳을 눈으로도 뒤따르지 못했다네.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 한 곡을 불렀네/ 노래는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네/
노래가 날아간 곳을 뒤따를 만큼/ 밝고 날쌘 눈을 누가 가졌으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 화살을 찾았네. /
한 참나무 아래서,/ 고스란히 그대로./
그리고 그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다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제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 시를 잘 해석하고 시상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화살 하나를 쏘아 올렸습니다. 그것이 어딘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화살이 얼마나 빨리 날아갔는지, 그 화살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화살을 찾고자 했지만 어디에 떨어졌는지 몰라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어딘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여긴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노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 사람은 산을 거닐다가 자신이 오래전에 쏘아 올렸던 그 화살을 찾습니다. 고스란히 그대로 발견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언젠가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른 그 사람도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그의 노래를 아무도 듣지 않은 줄 알았는데, 먼 훗날 누군가의 가슴 속에 그 노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가 전하는 내용입니다. 따뜻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멋진 시입니다. 저는 이 시를 오늘의 말씀과 잇대어 봅니다. 우리가 쏘아 올린 화살들은 어디에 떨어졌을까요? 우리가 부른 노래들은 누군가의 가슴에 담겼을까요? 먼 훗날 그 화살도, 그 노래도 우리는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저 나름의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쏘아 올린 많은 화살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속도를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가 상처를 내었을 그 화살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 꽂혔을까?’ 이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과 돌아보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시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화살은 살아가면서 쏘아 올린 상처를 내는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 반면에 노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쏟아 내는 것들 중에는 이 두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부분은 상처를 만들어 내는 화살과 같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노래와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떡처럼 물에 던지는 것들이며, 우리가 쏘아 올리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던진 떡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뿌리는 씨앗들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뿌릴 씨앗은 무엇일까요? 물에 던질 나의 떡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선과 선행을 하기에는 제가 가진 떡이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랑의 말, 격려의 말, 작은 돌봄도 있습니다. 반드시 재물이 있어야만 떡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던질 수 있는 것들이 이미 내 손과 몸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선함의 번짐’을 이루어 가는 방식입니다. 떡을 던지듯이, 씨를 뿌리듯이, 그리고 노래를 부르듯이 하나씩 던져 봅시다. 멋진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11:1~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71, 496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었는데, 뜻밖에 좋은 결과로 돌아왔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알 듯 모를 듯 전해지는 이 지혜의 말씀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왔습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면 물을 흡수하며 흩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 날 후에 찾을 수 있다는 말일까요?

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고대 이집트의 지혜문학에 있습니다. “선행을 하라. 그것을 물에 던져라. 물이 말랐을 때 그것을 찾으리라.” 성경은 ‘떡’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던져야 할 것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킵니다. 그 안에는 분명 선행과 자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자는 이어서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는 재앙을 당한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 언제 그런 불행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진 것으로 선행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던져야 할까요?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할 것이니라”(전 11:4). 이것저것 따지고 조건을 살피면 결코 떡을 던질 수 없습니다. 구름이 어떤 모양이든, 풍세가 어떠하든,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던지고 나누는 것입니다.

무슨 믿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지혜자는 만물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전 11:5). 이 일에는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물에 던져 놓은 그 떡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 물 위에 씨앗을 던졌습니다. 물이 빠진 후 그 씨앗들이 비옥한 토양에서 발아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씨를 물에 던지는 것은 결코 허망한 일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농사법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던진 떡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담겨 있기에, 훗날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당장 보답이 없더라도, 낭비 같고 손해 같고 헛수고 같더라도,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의 떡을 물에 던지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선한 일, 선한 말, 선한 생각을 쏘아 올리고, 물에 던지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선함의 번짐입니다.

 

<나누기>

1. 조건을 따지느라 선행이나 섬김을 미루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지금 내가 물 위에 던져야 할 나의 떡은 무엇인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물 위에 떡을 던지는 믿음의 모험으로 초대를 받습니다. 던지는 것이 낭비처럼 보이고 무모한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역사를 기대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던지는 작은 떡 조각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입혀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손에 ‘심을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마침내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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