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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린도후서 12:7~10

김경진 목사

2026.06.14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에게도 그를 옥죄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집에서 건강을 유지하며 잘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지옥과 같은 사람도 있고, 자녀 문제로 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또 나이 드신 부모님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도 있고, 육체가 온전하지 못해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살다가 사고로 심각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회하면서 점차 알아 가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깊은 절망과 고통, 자신을 찌르는 가시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망교회에 부임하시는 목사님들이 점차 교회에 적응하면서 하시는 한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유명하고 부유한 분들이 많아 부럽기도 하고, ‘저런 분들은 걱정이 하나도 없겠구나’ 생각한다곤 합니다. 하지만 점차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심방을 하면서, 이분들에게도 말 못 할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통을 안고 고해와 같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자랑할 만한 것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빌 3:4~6, 새번역)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은 종교 지도자로서 어떠한 결격 사유도 없는 정통 가문에서 훈련받은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올려져서 놀라운 비밀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고후 12:2, 4~5a, 새번역)

 

한마디로 그는 종교 지도자가 되기에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심지어 신비한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고후 12:7a, 새번역)

 

<바울의 가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먼저 바울이 말하는 ‘가시’라는 단어를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말하는 가시를 그저 나를 찌르며 이따금 아프게 하는 귀찮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시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가시’라는 말의 원어는 이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뚝’, ‘창끝’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주변에 아주 날카롭게 다듬어 놓은 나무창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람을 꿰뚫어 죽이는 처형용 말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죽창이라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주 날카로운 창입니다. 바울은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가시는 따끔한 수준의 고통이 아니라, 온몸을 관통하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수준의 고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다른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12:7b, 새번역)

 

새번역의 ‘사탄의 하수인’은 개역개정에서 ‘사탄의 사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바울을 칠 수 있도록 권한을 양도해 버리셨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하기 위해 잠깐 주신 고난이 아닙니다. 마치 욥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모든 권한을 내어 주셨던 것처럼, 바울에게도 그런 고난이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몸이 조금 아픈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아주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탄의 사자’가 자신을 쳐서 괴롭게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치다(colaphizo)’라는 말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다’, ‘싸구려 취급을 하며 모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능멸한다’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이는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상대방의 자존감을 모두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졌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학자들은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많은 설교를 통해 이 내용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갈 4:14)

 

“혹시 너희가 나를 업신여길 수도 있던 것이 나에게 있었다”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설교하던 중에 종종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제가 만약에 설교하다가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 과연 제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탄의 하수인의 공격은 설교나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려고 할 때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겠습니까?

바울은 그러한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병은 고치면서 정작 자기의 병은 못 고치고 발작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사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울을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곤 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에 하나님은 그가 받은 은혜가 이미 족하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러한 큰 창과 같은 가시는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8)

 

여기서 ‘세 번’이라는 말의 의미는 횟수로 ‘세 번’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 문제를 놓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다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9a)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사실 거절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응답 말씀에 사용된 시제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8절의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는 ‘과거’시제입니다. 그런데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는 ‘현재완료’시제입니다. 또 이어지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현재’시제입니다.

바울은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세 번 하고 끝마쳤습니다. ‘과거’입니다. 왜 멈추었습니까?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제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응답’은 ‘현재완료’형입니다. 과거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지금까지 유효하고 그 효력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에 ‘족하다’는 ‘현재’형입니다. 가시의 고통이 현재형이라면, 그 고통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도 현재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응답에서 흥미로운 것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절한다’라거나 ‘그냥 견뎌라’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용은 거절이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픈 가시가 힘들겠지만, 그 가시를 보지 말고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서 자신을 찌르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보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매도 맞고 죽을 위기와 비난, 육신의 질병을 짊어지고 있다만,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태어나면서 말씀을 배웠고, 내가 특별히 삼 층 하늘에 올려서 하늘의 비밀을 열어 보여 주지 않았느냐? 너의 삶과 마지막, 그리고 내가 누릴 영광도 이미 보지 않았느냐?”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은혜가 족하다.”

찬송가 429장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새찬송가 429장, 1절)

 

가시가 나를 누를 때, 창끝이 나를 찌르고 있을 때, 사탄의 하수인이 나를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존재로 내동댕이치는 것을 느낄 때, 고통 속에서 기도해도 가시가 사라지지 않을 때, 네가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에서 더 큰 빛을 보게 하십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셨는지 이어서 말합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b)

 

나의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나의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길 힘과 능력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족히 내려주신다는 것이 이 말씀의 첫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난과 고난을 허락하시고, 세차게 내던져지는 듯한 시련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견뎌 낼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법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의 작시자인 호레이시오 스패포드(Horatio Spafford, 1828~1888)라는 분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자주 부르는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의 작시자입니다. 그의 삶은 사도 바울이 말한 ‘가시의 위력’을 고스란히, 그보다 이상으로 겪었던 고행의 현장이었습니다.

스패포드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성공한 법률가이자 대학 교수였습니다. 무디(D.L. Moody) 전도자를 도운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나름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그는 시카고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1871년 역사적인 ‘시카고 대화재’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의 재산은 한순간에 모두 잿더미로 바뀌었고, 결국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재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와 네 딸이 타고 있던 프랑스행 여객선(Ville du Havre)이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 선박과 충돌하여 단 12분 만에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 중 226명이 사망했습니다. 스패포드의 네 딸(애니[Annie], 매기[Maggie], 베시[Bessie], 타네타[Tanetta])은 모두 물에 빠졌고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의 아내 안나(Anna)만이 물 위로 떠올라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아내가 영국 웨일스에 도착해 남편에게 보낸 전보는 단 두 단어였습니다. “Saved alone(혼자만 살아남았음).”

이 전보를 받은 스패포드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이 과연 귀에 들어왔을까요? 재산도 잃고, 아들과 네 딸을 잇달아 잃고 이제 아내만 남아 있습니다. 모두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지옥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후 스패포드는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곧장 영국행 배에 올라탔습니다. 여객선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던 어느 날 밤, 선장이 조용히 스패포드를 불렀습니다. “스패포드 씨, 계산해 보니 지금 우리 배가 당신의 네 딸이 수장된 그 유역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칠흑 같은 밤, 자식들의 무덤이 되어 버린 거친 바다를 바라보면서 스패포드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절망의 밑바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때, 신비롭게도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족한 은혜’가 그의 영혼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종이 위에 글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입니다.

 

평화 같은 강이 내 길을 인도할 때나,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나,

내 운명이 무엇이든 주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치셨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새찬송가 413장 1~2절)

 

저는 목회자로서 이러한 평안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소망의 성도들에게 꼭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평화는 결코 어떤 명상이나 묵상, 정신 치료나 호흡법 같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자,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 같은 경험입니다. 빛과 같이 오는 신앙의 기쁨과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분들이 꼭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b)

 

이 말씀의 두 번째 의미는 이 일을 행하신 분이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바울의 연약함은 자신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면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복음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연약함을 자랑할 뿐입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시를 주셨고 그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7)

 

바울은 이 말씀에서 ‘자만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앞과 뒤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시를 거두어 가지 않으시는 이유를 그가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힘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절망적인 가시이자 사탄의 하수인 같았던 고통스러운 인생의 짐은, 도리어 바울을 바울 되게 만든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바울의 가시는 그가 너무 높아져서 교만이라는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낮은 자리에 묶어 두는 안전한 말뚝이었습니다.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타락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쯤,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 마음의 짐이 무거워 보이던 한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뇌성마비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부모의 인도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절망 가운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제대로 말하기도 어려운 그의 입술을 통하여, 누구도 감히 고백하지 못했던 엄청난 신앙의 고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바로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간증하는 동안에 그의 어머니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하염없이 닦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가시와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정된 놀라운 섭리이자 축복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만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가시를 지고 살아가면서도 결국 교만해진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가시는 가시대로 짊어지면서 하나님과 멀어져서 힘겹게 살아간다면, 그처럼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가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그 마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고난의 가시를 잘 감당하며 주님을 경험하는 복된 주님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2 Corinthians 12:7–10

 

Everyone has a thorn that pierces them. No matter how handsome someone may be, no matter how high their position, no one is without a thorn. A person may live in a fine house and appear healthy and prosperous, yet suffer a marriage that feels like hell, weep over problems concerning their children, or be burdened by the care of aging parents.

 

Some have sound bodies but are mentally fragile; others live with physical disabilities. Some are blind from birth, while others acquire severe impairments through accidents later in life, such as car accidents or falling from a bed.

 

What I have come to learn in ministry is this: everyone carries deep despair and pain; everyone has thorns that wound them. I experienced this myself, and I have heard it increasingly from pastors who come to serve at Somang Church as they settle in.

 

At first glance, many in our church are famous or wealthy and we may think with envy, “They must have no worries.” But as you converse with them and visit their homes, you discover their hurts and their sufferings. In the end, every person walks a path of suffering, a journey of tribulation.

 

Paul was no exception. He had much to boast in. Paul says:

 

“though I myself have reasons for such confidence. If someone else thinks they have reasons to put confidence in the flesh, I have more: circumcised on the eighth day, of the people of Israel, of the tribe of Benjamin, a Hebrew of Hebrews; in regard to the law, a Pharisee; as for zeal, persecuting the church; as for righteousness based on the law, faultless.” (Philippians 3:4–6 NIV)

 

He even boasts in 2 Corinthians 12, our passage for today, that he was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He boasts that he entered paradise and had an experience beyond words.

 

“I know a man in Christ who fourteen years ago was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Whether it was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I do not know—God knows. […] was caught up to paradise and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no one is permitted to tell. I will boast about a man like that, […].” (2 Corinthians 12:2, 4–5a NIV)

 

In short, Paul was impeccable as a religious leader. He had received proper religious training and had experienced the mystical. But even a man like Paul, who had much to boast in on human terms, had a thorn.

 

Paul says:

 

“or because of these surpassingly great revelations. Therefore, in order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I was given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2 Corinthians 12:7 NIV)

 

What was this thorn Paul confesses? We first need to look again at the word he uses for “thorn.”

 

We commonly think of this thorn as something that merely pricks or makes us uncomfortable, because that is the sense the word often carries for us.

 

But the original word in the text conveys a far stronger meaning. It denotes a stake or the point of a spear. In ancient Greek it referred to sharp stakes or spear points driven into the ground around a fortress to keep out enemies, or to execution stakes used to impale and kill a person.

 

Therefore the thorn Paul speaks of was not a pain that merely pricked him occasionally. It was a fateful pain that pierced his whole body and immobilized him, a great spear-point that constantly stabbed at his daily life. It was an overwhelmingly agonizing, punitive kind of suffering.

 

Paul describes this thorn again:

 

“Therefore, in order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I was given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2 Corinthians 12:7b NIV)

 

He calls it “a messenger of Satan.”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renders it “one of Satan’s angels.” This phrase is terrifying. It means that God gave authority to Satan.

 

This is not merely a temporary trial or discipline that God gives to train us; it suggests a suffering like Job’s, where God gave Satan authority to afflict him. It implies a pain beyond ordinary illness, a suffering that exceeds normal bounds.

 

The text says the messenger of Satan was sent to “torment” him. The original Greek verb “colaphizo” means “to strike with the fist without mercy, to treat with contempt and insult.” It is to reduce a person to a ridiculous, worthless state.

 

What was Paul’s thorn? Scholars often conjecture it was epilepsy. In Galatians Paul says:

 

“and even though my illness was a trial to you, you did not treat me with contempt or scorn. Instead, you welcomed me as if I were an angel of God, as if I were Christ Jesus himself.” (Galatians 4:14 NIV)

 

Imagine Paul often collapsing and foaming at the mouth while preaching. How would that appear? If I were to collapse while preaching, how would you feel? If this was the work of a messenger of Satan, Paul would likely have been struck down at decisive moments.

 

He may have been fine at usual times, yet at the point of proclaiming the Word or where God’s authority needed to be manifested, Satan would have powerfully attacked his weakness.

 

If Paul healed others yet could not heal his own affliction and suffered convulsions, what would people think of him? Satan would seize every opportunity to make him seem ridiculous and worthless.

 

This great spear-like thorn Paul endured was not a trivial problem that existed because he didn’t pray. Paul prayed about it desperately. He says he pleaded with the Lord three times:

 

“Three times I pleaded with the Lord to take it away from me.” (2 Corinthians 12:8 NIV)

 

The phrase “three times” here means more than a literal count; it conveys that he prayed persistently until he got an answer.

 

So what was God’s response, His word, to Paul?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2 Corinthians 12:9a)

 

What does this answer mean? It is a refusal. God disregarded Paul’s earnest plea. The verb tenses connected with this reply are interesting: Verse 8, “I pleaded with the Lord three times,” is past tense. Verse 9, “He said to me,” is the present perfect tense. And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is present tense.

 

Paul had cried out in urgent prayer “three times” (past) and then stopped. Why did he stop? Because he received God’s firm answer.

 

But God’s word is in the present perfect tense. That means He spoke in the past, yet the effect of that word continues unchanged even now.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is in the present tense. If the thorn’s pain is ongoing in the present, then the grace that overwhelms that pain is also ongoing each day in the present. It means that grace is being supplied even now.

 

There is another very interesting feature in the response Paul received from God.

 

God did not tell Paul “no.” He did not say “I refuse.” Neither did He say “just endure it.”

 

Although the substance is a refusal, God did not respond in that way. He answers,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you are struggling now as you see your painful thorn, but do not look at the thorn — consider instead the grace you have received.

 

How much grace have you received? I know you have been beaten by people, faced death threats, been scorned by others, and borne bodily afflictions; yet consider how great the grace you have received is.

 

You were taught the Word from birth, and I lifted you to the third heaven and revealed heavenly secrets to you, did I not? Have you not already seen your life’s end and the glory you will enjoy? That grace is sufficient.

 

The first verse of the hymn “Where upon life’s billows” goes like this:

 

“When upon life’s billows you are tempest tossed,
When you are discouraged, thinking all is lost,
Count your many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And it will surprise you what the Lor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And it will surprise you what the Lord hath done.”

 

When the thorn presses you, when the spear-point pierces you, when a messenger of Satan hurls you into ridicule and makes you seem worthless, and when prayer in the midst of suffering does not remove that trial and the thorn does not go away, count the grace you have received. Count the blessings you have received.

 

This is precisely the meaning of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Now Paul goes on to explain why God says that His grace is sufficient for him:

 

“‘[…]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2 Corinthians 12:9b NIV)

 

It means that my weakness becomes the instrument through which God’s power is revealed. It means that God works through my weakness. It means that when I am weak, the Lord becomes my strength.

 

The first meaning of this word is that the Lord gives us the strength and power to overcome the painful realities we experience, those thorns.

 

God gives thorns and suffering and trials that seem to cast us aside, but even in the midst of them, He gives us also the strength and power to endure.

 

There was a man who found it truly difficult to accept the word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one who faced with his whole being a spear-like pain in life’s fierce storm—as Paul did. He was Horatio Spafford (1828–1888), the author of the hymn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The life of Spafford, who wrote the lyrics to this famous hymn that we often sing in times of affliction, was marked by a truly heartbreaking calamity that showed the very power of “the thorn” Paul described, if not more.

 

Spafford was a successful lawyer and university lecturer in Chicago and a faithful Christian leader who assisted the evangelist D. L. Moody. Yet overwhelming misfortunes came upon his life in succession. Though he owned considerable wealth and had invested in Chicago real estate, the historic Chicago Fire of 1871 reduced his wealth to ashes and left him bankrupt.

 

Later his wife and four daughters boarded the passenger ship Ville du Havre bound for France, but the ship collided with an English vessel in the middle of the Atlantic and sank in just twelve minutes. Two hundred and twenty-six passengers aboard the ship died. Spafford’s four daughters—Annie, Maggie, Bessie, and Tanetta—went down into the cold depths of the Atlantic. Only his wife Anna surfaced and was dramatically rescued. The telegram Anna sent to her husband upon arriving in Wales contained only two words: “Saved alone.”

 

How must Spafford have felt upon receiving that telegram? Did the words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even reach his ears? Having lost his fortune, and after losing his only son earlier, to lose his beloved four daughters at once would have made him feel as though he had literally descended into hell.

 

Spafford immediately boarded a ship for England to bring his wife home. One night while the liner was crossing the Atlantic, the captain quietly summoned Spafford. “Mr. Spafford, according to our calculations, our ship is now passing the very spot where your four daughters went down.”

 

On that pitch-black night, looking out at the deep, violent sea that had become his children’s grave, Spafford returned to his cabin and spent the night crying out as if spitting blood. But at the bottom of that despair, miraculously, God’s “sufficient grace,” beyond human reason, began to cover his soul. By dawn he wiped his tears and set down words on paper. Those words became the hymn we sing: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Spafford,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Verse 1)

 

“Though Satan should buffet, though trials should come, let this blest assurance control: that Christ has regarded my helpless estate, and has shed his own blood for my soul.” (Spafford,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Verse 2)

 

As a pastor I want to affirm to you that such peace exists. And I pray that all of our congregants may enjoy this very grace of God, this peace, in any circumstance.

 

“‘[…]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 (2 Corinthians 12:9b NIV)

 

The second meaning of this word is that it reveals God, not Paul, is the One who accomplishes this work.

 

Paul’s weakness prevents him from boasting about himself. God is saying that despite his weakness—collapsing and foaming while preaching—it is God who ensures that the gospel is proclaimed, that more people hear, repent, and are transformed.

 

Therefore there is nothing for him to boast about. Therefore Paul boasts only in his weaknesses. It is because the One who works is Christ and God.

 

So Paul is keenly aware that he must not become proud. And he confesses that God does not remove the thorn from him so that he will not become proud.

 

“And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by the abundance of the revelations, a thorn in the flesh was given to me, a messenger of Satan to buffet me, lest I be exalted above measure.” (2 Corinthians 12:7 NKJV)

 

Paul repeats the phrase “lest I (should) be exalted” twice, in the first and last parts of this verse.

 

The reason God does not take the thorn away from Paul is that God wants Paul to carry out his task without pride, not to claim he did it by his own strength, but to rely on God’s power.

 

Thus that thorn of despair for Paul, that painful life’s burden you might call a messenger of Satan, became the instrument that kept Paul truly Paul. Paul’s thorn was a stake that safely bound him to a low place so he would not be lifted up and fall off the cliff of pride.

 

Being held so you do not fall is also grace.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About forty years ago, a very insignificant and truly miserable-looking woman in a wheelchair came into the church where I was serving. She could hardly speak properly and had to be aided by her parents. With cerebral palsy she was not able to study properly and was waiting to die in despair—when the power of God came upon her. Through lips that could barely form words, an astonishing confession of faith flowed out that no one else would have dared to speak. This is the story of poet Song Myung-hee.

 

While she testified, her mother had to endlessly wipe away the drool from her mouth. But God’s power came upon that seemingly insignificant person.

 

“Though I have no riches that others have; Though I have no knowledge that others possess; Though I have no health that others enjoy; I have something I that others do not: I have seen what others have not seen, I have heard a voice others have not heard, I have received a love others have not received, and I have realized things others do not know. God is just; Though I do not have what others do, He has given me what others do not have.” (Song Myung-hee, “Though I have no riches,” translated)

 

God’s power begins in weakness. Remember that the thorns and sufferings we bear are a remarkable providence and blessing assigned to us by God.

 

And remember one more thing.

 

God gave us thorns and heavy tasks so that we will not become proud or conceited, but if we become proud or conceited even with those thorns, nothing could be more tragic.

 

If we carry the thorn yet drift away from God, fail to know God, never experience or recognize God’s power, and live a weary life, who could be more miserable than that?

 

We must go to the Lord with that thorn. We must pray earnestly. And we must understand the heart of God who gave us that thorn. May you enjoy the peace the Lord gives you and witness how the Lord uses us to accomplish astonishing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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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에게도 그를 옥죄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집에서 건강을 유지하며 잘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지옥과 같은 사람도 있고, 자녀 문제로 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또 나이 드신 부모님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도 있고, 육체가 온전하지 못해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살다가 사고로 심각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회하면서 점차 알아 가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깊은 절망과 고통, 자신을 찌르는 가시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망교회에 부임하시는 목사님들이 점차 교회에 적응하면서 하시는 한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유명하고 부유한 분들이 많아 부럽기도 하고, ‘저런 분들은 걱정이 하나도 없겠구나’ 생각한다곤 합니다. 하지만 점차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심방을 하면서, 이분들에게도 말 못 할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통을 안고 고해와 같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자랑할 만한 것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빌 3:4~6, 새번역)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은 종교 지도자로서 어떠한 결격 사유도 없는 정통 가문에서 훈련받은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올려져서 놀라운 비밀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고후 12:2, 4~5a, 새번역)

 

한마디로 그는 종교 지도자가 되기에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심지어 신비한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고후 12:7a, 새번역)

 

<바울의 가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먼저 바울이 말하는 ‘가시’라는 단어를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말하는 가시를 그저 나를 찌르며 이따금 아프게 하는 귀찮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시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가시’라는 말의 원어는 이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뚝’, ‘창끝’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주변에 아주 날카롭게 다듬어 놓은 나무창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람을 꿰뚫어 죽이는 처형용 말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죽창이라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주 날카로운 창입니다. 바울은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가시는 따끔한 수준의 고통이 아니라, 온몸을 관통하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수준의 고통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다른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12:7b, 새번역)

 

새번역의 ‘사탄의 하수인’은 개역개정에서 ‘사탄의 사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바울을 칠 수 있도록 권한을 양도해 버리셨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하기 위해 잠깐 주신 고난이 아닙니다. 마치 욥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모든 권한을 내어 주셨던 것처럼, 바울에게도 그런 고난이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몸이 조금 아픈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아주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탄의 사자’가 자신을 쳐서 괴롭게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치다(colaphizo)’라는 말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다’, ‘싸구려 취급을 하며 모욕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능멸한다’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이는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상대방의 자존감을 모두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졌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학자들은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많은 설교를 통해 이 내용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갈 4:14)

 

“혹시 너희가 나를 업신여길 수도 있던 것이 나에게 있었다”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설교하던 중에 종종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제가 만약에 설교하다가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 과연 제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탄의 하수인의 공격은 설교나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려고 할 때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겠습니까?

바울은 그러한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병은 고치면서 정작 자기의 병은 못 고치고 발작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사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울을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곤 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에 하나님은 그가 받은 은혜가 이미 족하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러한 큰 창과 같은 가시는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8)

 

여기서 ‘세 번’이라는 말의 의미는 횟수로 ‘세 번’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 문제를 놓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다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9a)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사실 거절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응답 말씀에 사용된 시제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8절의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는 ‘과거’시제입니다. 그런데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는 ‘현재완료’시제입니다. 또 이어지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현재’시제입니다.

바울은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세 번 하고 끝마쳤습니다. ‘과거’입니다. 왜 멈추었습니까?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제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응답’은 ‘현재완료’형입니다. 과거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지금까지 유효하고 그 효력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에 ‘족하다’는 ‘현재’형입니다. 가시의 고통이 현재형이라면, 그 고통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도 현재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응답에서 흥미로운 것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절한다’라거나 ‘그냥 견뎌라’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용은 거절이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픈 가시가 힘들겠지만, 그 가시를 보지 말고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서 자신을 찌르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보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매도 맞고 죽을 위기와 비난, 육신의 질병을 짊어지고 있다만,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태어나면서 말씀을 배웠고, 내가 특별히 삼 층 하늘에 올려서 하늘의 비밀을 열어 보여 주지 않았느냐? 너의 삶과 마지막, 그리고 내가 누릴 영광도 이미 보지 않았느냐?”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은혜가 족하다.”

찬송가 429장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새찬송가 429장, 1절)

 

가시가 나를 누를 때, 창끝이 나를 찌르고 있을 때, 사탄의 하수인이 나를 우스운 사람, 보잘것없는 존재로 내동댕이치는 것을 느낄 때, 고통 속에서 기도해도 가시가 사라지지 않을 때, 네가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에서 더 큰 빛을 보게 하십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셨는지 이어서 말합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b)

 

나의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나의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길 힘과 능력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족히 내려주신다는 것이 이 말씀의 첫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난과 고난을 허락하시고, 세차게 내던져지는 듯한 시련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견뎌 낼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법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의 작시자인 호레이시오 스패포드(Horatio Spafford, 1828~1888)라는 분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자주 부르는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의 작시자입니다. 그의 삶은 사도 바울이 말한 ‘가시의 위력’을 고스란히, 그보다 이상으로 겪었던 고행의 현장이었습니다.

스패포드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성공한 법률가이자 대학 교수였습니다. 무디(D.L. Moody) 전도자를 도운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나름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그는 시카고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1871년 역사적인 ‘시카고 대화재’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의 재산은 한순간에 모두 잿더미로 바뀌었고, 결국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재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와 네 딸이 타고 있던 프랑스행 여객선(Ville du Havre)이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 선박과 충돌하여 단 12분 만에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 중 226명이 사망했습니다. 스패포드의 네 딸(애니[Annie], 매기[Maggie], 베시[Bessie], 타네타[Tanetta])은 모두 물에 빠졌고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의 아내 안나(Anna)만이 물 위로 떠올라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아내가 영국 웨일스에 도착해 남편에게 보낸 전보는 단 두 단어였습니다. “Saved alone(혼자만 살아남았음).”

이 전보를 받은 스패포드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이 과연 귀에 들어왔을까요? 재산도 잃고, 아들과 네 딸을 잇달아 잃고 이제 아내만 남아 있습니다. 모두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지옥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후 스패포드는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곧장 영국행 배에 올라탔습니다. 여객선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던 어느 날 밤, 선장이 조용히 스패포드를 불렀습니다. “스패포드 씨, 계산해 보니 지금 우리 배가 당신의 네 딸이 수장된 그 유역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칠흑 같은 밤, 자식들의 무덤이 되어 버린 거친 바다를 바라보면서 스패포드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절망의 밑바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때, 신비롭게도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족한 은혜’가 그의 영혼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종이 위에 글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입니다.

 

평화 같은 강이 내 길을 인도할 때나,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나,

내 운명이 무엇이든 주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치셨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새찬송가 413장 1~2절)

 

저는 목회자로서 이러한 평안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소망의 성도들에게 꼭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평화는 결코 어떤 명상이나 묵상, 정신 치료나 호흡법 같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자,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 같은 경험입니다. 빛과 같이 오는 신앙의 기쁨과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분들이 꼭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b)

 

이 말씀의 두 번째 의미는 이 일을 행하신 분이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바울의 연약함은 자신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면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복음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연약함을 자랑할 뿐입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시를 주셨고 그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7)

 

바울은 이 말씀에서 ‘자만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앞과 뒤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시를 거두어 가지 않으시는 이유를 그가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힘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절망적인 가시이자 사탄의 하수인 같았던 고통스러운 인생의 짐은, 도리어 바울을 바울 되게 만든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바울의 가시는 그가 너무 높아져서 교만이라는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낮은 자리에 묶어 두는 안전한 말뚝이었습니다.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타락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쯤,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 마음의 짐이 무거워 보이던 한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뇌성마비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부모의 인도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절망 가운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제대로 말하기도 어려운 그의 입술을 통하여, 누구도 감히 고백하지 못했던 엄청난 신앙의 고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바로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간증하는 동안에 그의 어머니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하염없이 닦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가시와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정된 놀라운 섭리이자 축복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만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가시를 지고 살아가면서도 결국 교만해진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가시는 가시대로 짊어지면서 하나님과 멀어져서 힘겹게 살아간다면, 그처럼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가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그 마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고난의 가시를 잘 감당하며 주님을 경험하는 복된 주님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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