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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품으로

디모데후서 1:3

김경진 목사

2026.05.31

<디모데의 진가는 거짓 없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디모데후서는 노년의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자기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바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간절한 편지를 남깁니다. 바울 사도에게 디모데는 너무나 특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위대한 사도 바울이 평생 복음을 전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영적 아들이자 최고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로 디모데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유대인들의 극심한 폭동으로 인해 바울은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위험한 데살로니가로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파송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파벌 싸움과 타락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 철학을 대변할 대리인으로 디모데를 파견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어 도저히 방문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또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가장 중요한 지역에 있던 에베소 교회에 디모데를 담임목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뢰하고 에베소 교회의 담임 목사로 그를 추천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신실한 수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거나 강력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본래 성품이 매우 여리고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몸도 약해서 늘 위장병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젊은 나이로 교인들에게 종종 무시를 당하며 마음고생도 했던 청년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린 청년이 어떻게 험한 초대교회와 그 시대를 이끄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바울은 우선 디모데의 마음속에 있는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헬라어는 한국어 번역 그대로 ‘거짓이 없는’, ‘위선이 없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꾸며 내지 않는 한결같은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귀하게 여긴 한 가지 이유는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용기나 용맹함이 조금 모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고 지혜와 지식도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영적 무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신앙을 물려받았던 가정의 상황은 사실 가치관이 부딪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이 귀한 믿음을 디모데는 어떻게 가졌을까요? 바울은 디모데의 진실하고 순전한 믿음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분명한 출처가 있음을 밝힙니다. 디모데의 아름다운 믿음의 뿌리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정의 신앙 교육을 통해 디모데가 신실하고 위선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가 받은 신앙 교육은 어땠을까요? 철저하고 온전한 신앙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까요? 여기서 디모데가 자라난 가정환경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절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사람 유대 여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바른 온전한 신앙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헬라인인 아버지가 과연 자기 아들 디모데를 유대 신앙으로 키우는 것을 허용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6장 3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행 16:3)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가고자 할 때, 그는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마땅히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구별된 신앙의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헬라인인 아버지가 허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유대인이라는 소수 민족의 독단적인 종교에 빠지지 않고, 당시 세상의 주류를 이루던 합리적이고 수준 높은 헬라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디모데의 가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온전하고 이상적인 믿음의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집중적으로 디모데가 부모로부터 신앙의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삶의 자리에는 매일 세상의 헬라적인 성공 방식과 유대 여호와 신앙이라는 두 거대한 세계관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경계선에서 자기만의 신앙 정체성을 세워 가는 것은 어린 디모데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디모데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매우 닮았습니다. 부모 중에 한 사람이 불신앙인인 것만이 영적 다문화 가정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시대 자체가 거대한 세속적 가치관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유튜브로 대변되는 끝없는 미디어의 홍수,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기술 문명과 문화가 우리 아이들의 삶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화려한 문화 가운데서 우리는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즉각적인 재미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공만이 최고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신앙과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많은 분이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교육은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구시대적이고 초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종종 무력감을 느끼며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매력적인 세속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자녀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을까?’

 

<디모데의 굳건한 신앙은 어린 시절부터 에서 으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위기와 혼란 앞에 섰던 또 다른 소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 이 청년들의 이름 끝에는 모두 ‘엘’ 또는 ‘야’가 들어갑니다. 이는 ‘엘로힘’과 ‘야훼’를 뜻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름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유대 땅에서 이 아이들이 장차 어떤 세상에서 살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제국의 학문을 배워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에게 바벨론 우상의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시켜 그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마음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이 소년들이 거대한 제국의 압도적인 문화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보여 준 굳건한 신앙의 결기는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 고향 땅 부모의 따뜻한 품 안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하나님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디모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할례조차 허락하지 않는 엄혹하고 통제된 상황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린 디모데가 세속에 동화되지 않고 맑고 순수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던 것은 부모의 신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뛰어난 신학 교육 프로그램도, 잘 갖춰진 교회의 멋진 시설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은 결코 머리로만 주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은 교과서의 텍스트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위대한 연설이나 가르침으로 설득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삶과 삶이 만나고 체온과 체온이 느껴지는 자리, 곧 ‘품’에서 ‘품’으로 전달됩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열심히 홀로 읽고 있던 성경책의 모습, 무릎 꿇은 기도의 자리를 보며 자녀가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린 디모데가 세상의 화려한 철학 속에서 흔들릴 때, 아버지가 강요하는 헬라 문화 속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그를 꽉 잡아 준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무릎 위에 놓고 도닥여 주시면서 하셨던 할머니 로이스의 기도의 숨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머리맡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셨던 어머니의 성경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넓고 포근했던 품이 디모데를 붙들어 준 힘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신앙 교육에서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품으로 자녀들을 안고 주님께 기도할 때, 아이들에게 그 품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한 품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영적 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약간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왜 바울은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만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물론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으로 신앙인이 아니었으니 제외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디모데의 할아버지는 안 나올까요? 물론 유대의 전통에서는 신앙의 전수가 우선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문이 이런 이야기를 전하려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신앙을 제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 남성들에게 조금은 실망스럽게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 사실 또 다른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품만이 아닌 또 다른 품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기도로 신앙의 싹을 틔웠지만, 그를 한 시대를 이끄는 위대한 목회자로 완성한 것은 감옥에 갇힌 영적 아버지 사도 바울의 품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친아버지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고전 4:17)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 2:22)

 

디모데에게 바울은 자신에게 헬라인 친아버지가 채워 주지 못한 영적 공백을 채워 준 ‘아버지’였고, 바울에게 디모데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차가운 로마 지하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영적 아버지로서 영적 아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딤후 1:3)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절절한 사랑과 관심이 잘 드러납니다. 성경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신앙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에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채우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음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신앙의 결여가 있을 때, 교회는 또 다른 영적 아버지 혹은 영적 어머니를 통해 그 신앙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이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방식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내 자녀, 내 손주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아이들, 이름 모를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향해 “내가 너를 주 안에서 낳은 내 아들, 내 딸로 여기며 밤낮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아버지, 영적인 어머니가 교회에 필요합니다. 바울은 또한 4절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딤후 1:4)

 

디모데가 언제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이런 영적인 어른들이 참 많이 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신앙생활 하시면서 그런 영적인 어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그런지 점점 더 그런 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어른으로서 자녀들 또는 젊은 세대들을 가르치고 품어 주시는 분들이 예전만큼은 없어 보입니다. 내 눈물을 알아주는 어른, 내 아픔에 공감해 주는 진짜 어른이 필요합니다.

우리 곁에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눈물 흘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무한 경쟁 속에 기가 죽어 눈물 흘리고 있는 또 다른 외로운 디모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처럼 “내가 너의 눈물을 안다”, “네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아 줄 수 있는 영적인 부모, 영적인 가족이 우리 소망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집에 로이스나 유니게 같은 믿음의 부모가 없는 아이들, 또 부모의 따뜻한 영적 품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녀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 부모만 신앙적 영향을 주는 영적 다문화 가정도 있지만, 아예 신앙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영적 고아 같은 자녀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다녀도 가정에서 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아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품’이 교회라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소망교회 안에는 교회 학교가 있고, 교회 학교 안에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천여 명의 선생님들이 어린아이들을 지금도 열심히 품고 있습니다. 바로 이 ‘품’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영적인 가족의 품입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품을 모두 감싸 주시는 크신 하나님의 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품’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그 품은 그 이상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남모르게 가슴을 치며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성도님들이 꽤 계실 것입니다. “내 자녀는 이미 장성했는데, 교회를 떠났습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내 자식을 실패작으로 키웠습니다”라며 자책하는 부모님들도 있으실 줄 압니다. 함께 오늘 본문의 디모데 가정을 다시 한번 주목해 봅시다.

성경은 디모데의 아버지를 언급할 때 그의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헬라인이라고만 합니다. 디모데의 신앙 형성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아버지의 이름을 침묵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로이스와 유니게라는 이름을 빛내셨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이름까지 빛내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채워 주지 못한 영적 공백과 깨어진 틈새를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바울이라는 ‘교회의 영적 아버지’를 통해 채우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디모데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의 환경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내가 부족한 부모였다고 자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책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의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합시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책이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손을 이미 떠난 자녀일지라도, 또한 교회에서 누군가 맡아 줄 품이 없다 할지라도, 또 다른 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크신 하나님의 품입니다.

자책을 멈추고 이제 기도로 내 품에서 실패한 자녀를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이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품에 그를 안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외조모의 품, 어머니의 품, 영적 아버지 바울의 품, 그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겹겹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차원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자녀들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품을 통해 자란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눈물 어린 품에서 자란 디모데가 매우 성공적인 목회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을 당시 젊은 목회자 디모데의 실제 형편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디모데는 본래 성품이 아주 여리고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몸도 약해서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담임하고 있던 에베소 교회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계속해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과 텃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목회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나이는 젊다고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목회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스승인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현실 앞에서 목회하던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착하고 여린 디모데는 극심한 영적인 침체 가운데 있었습니다.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고 있던 것입니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짓눌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눈물을 안다고 말해 줍니다.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바울은 아들 디모데의 쉼 없는 눈물과 흔들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낙심한 아들을 다시 살려 내기 위해 펜을 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깊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신앙의 초심(First Love)’을 흔들어 깨우고자 합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성도 여러분, 바울이 디모데의 과거와 어머니의 신앙을 소환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영적 유산이 지금 겪고 있는 사명의 번아웃을 넉넉히 이기게 할 만큼 놀랍고도 큰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디모데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과 영적인 번아웃 앞에 지쳐 주저앉아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바울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신앙은 결코 헛되고 연약한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도가 온통 너에게 담겨 있다. 너를 위한 교회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아느냐? 실망하지 마라. 낙망하지 마라. 너는 이 어려움을 반드시 이길 것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디모데와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우리 영혼 속에는 세상 속의 거센 바람과 인생의 고난을 기어코 이겨 내게 하시는 ‘거짓 없는 믿음의 뿌리’가 박혀 있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자녀와 손주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내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잘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겹겹이 쌓여 있으니 너는 용기를 내어라. 힘차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 이 한마디가 언젠가 번아웃된 아이의 영혼을 평생 살려 내는 영적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릴 때 교회가 받아 내고, 또 교회가 부족할 때 가정이 버텨 주는 거룩한 연대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우리 소망교회와 가정이 하나 되어 서로의 지친 영혼을 품어 주는 따뜻한 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더욱 크신 하나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친 세상 속에서도 디모데와 같이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의 세대들을 끊임없이 길러 내고 회복시키는 우리 소망교회,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소망의 가정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From Embrace to Embrace

 

2 Timothy 1:3-5

 

Second Timothy, which contains today’s passage, was written by the Apostle Paul at an old age from a cold, dark Roman prison. Sensing his death was near, Paul wrote a heartfelt, almost final testament to Timothy, his beloved spiritual son and the young pastor of the church in Ephesus.

 

To Paul, Timothy was extremely special. Among the many people Paul met in a lifetime of proclaiming the gospel, Timothy was his most trusted and cherished spiritual son and closest partner. Whenever a problem arose in a newly planted church, Paul sent Timothy as his troubleshooter.

 

When Paul had to flee abruptly from a newly planted church in Thessalonica because of violent riots from some Jews, he sent Timothy to that dangerous city on his behalf. When the Corinthian church was on the verge of collapse from factionalism and moral failure, Paul sent Timothy as his sole representative who could fully embody his pastoral convictions. When Paul was imprisoned and could not visit, he again sent Timothy to the church in Philippi. Finally, Paul appointed Timothy as the senior minister of the Ephesian church, one of the fiercest spiritual battlegrounds of the time. Timothy was truly Paul’s irreplaceable, faithful, and best disciple.

 

Yet Timothy’s actual character was not what one might imagine as extraordinary. His innate character was gentle and tender. He was often physically weak and suffered from stomach ailments; as a young minister, he often suffered when older, seasoned members looked down on him in harsh ministry contexts.

 

So how did this weak and tender young man become a leading spiritual figure in the rough early church?

 

Paul gives the reason:

 

“I am reminded of your sincere faith, which first lived in your grandmother Lois and in your mother Eunice and, I am persuaded, now lives in you also.” (2 Timothy 1:5 NIV)

 

First of all, Paul saw in Timothy a sincere, pure faith.

 

The Greek word used here for “sincere,” “anupokritos (ἀνυπόκριτος),” literally means “without hypocrisy or deceit,” in other words, “the same inwardly and outwardly, without pretense, consistently sincere.”

 

One reason Paul treasured Timothy was this sincere faith. Timothy may have lacked boldness or courage. He may have lacked health. He may have had limited knowledge or wisdom. But the most important spiritual asset he had as a minister was this sincere faith. In short, he was a man of faith.

 

How then did Timothy come to possess this precious, sincere faith that others might not have? Paul notes that Timothy’s sincere, pure faith did not arise by chance but had a clear source. The root of Timothy’s beautiful faith was his grandmother Lois and his mother Eunice. In short, Timothy acquired his faithful, sincere faith through his spiritual upbringing at home.

 

So, what was the nature of the spiritual upbringing Timothy received at home?

 

We need to look more closely and three-dimensionally at the family environment in which Timothy was raised. Acts 16:1 tells us Timothy’s mother was a Jewish believer and his father was a Greek. In short, he was the child of a typical multicultural household.

 

How, then, could proper spiritual education take place in such a home? The name of Timothy’s Greek father is not given, but would that father have allowed his son to be raised in the Jewish faith? Clearly not. Acts 16:3 records this:

 

“Paul wanted to take him along on the journey, so he circumcised him because of the Jews who lived in that area,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Acts 16:3 NIV)

 

When Paul wanted to take Timothy with him, Timothy had not yet been circumcised. Normally a Jewish boy would receive circumcision on the eighth day after birth. This was a crucial sign of faith for Jews, a people set apart. Why, then, did Timothy not receive circumcision until he was grown up? In the patriarchal Roman world, his Greek father who had absolute authority likely disallowed circumcision.

 

Timothy’s Greek father probably wanted his son to avoid what he saw as a dogmatic religion of a minority people and to live within the cultured, rational Hellenistic world that represented mainstream society. That is likely why Timothy was not circumcised as a child.

 

Thus Timothy’s home was not the peaceful, complete, ideal Christian family we might imagine. In the daily life of that household, two powerful worldviews collided: the success-driven values of the surrounding culture and the faithful worship of Jehovah. That household was a frontline where spiritual tension was always high. For young Timothy to stand on that border and form his own faith identity would not have been easy.

 

As we read the passage, we might assume Timothy received a comfortable spiritual education from his grandmother and mother. But the reality was far from it. In a context where unbelief and secularism clashed with faith, Timothy developed his own faith.

 

Timothy’s situation is surprisingly similar to the world our children live in today. A multicultural home does not require that one parent be foreign. The era and country that our children are living in now are in themselves a great melting pot of secular values. From birth they swim in a flood of media represented by smartphones and YouTube, and now a new technological civilization and culture called AI sit at the center of their lives.

 

We must pass faith to them amidst this glamorous culture. In a world that praises instant dopamine-driven amusement and visible, flashy success as the highest values, we are called to teach faith at home and in Sunday school. This task is far from easy. Our spiritual education can look outdated and weak against the powerful currents of the world.

 

To be honest, we often feel helpless against this reality. We ask, “In such a rough world, in this complex, attractive, and secular environment, can my beloved child keep that sincere, pure faith in Jesus Christ to the end?”

 

The Bible gives us other examples of young people who faced similar crises and confusion. Think of Daniel and his three friends—Hananiah, Mishael, and Azariah. Each of their names contains “El” or “Yah.” They refer to “Elohim” and “Yahweh” respectively and show that God was engraved in the very names of the boys. Their parents who had lived in Judah would have called their names daily, praying earnestly that they would grow up to be strong in the Lord no matter where they lived.

 

Taken to Babylon at a young age, these boys had to learn the knowledge of the empire. King Nebuchadnezzar tried to erase their spiritual identity by giving them Babylonian names tied to idols. But Daniel and his three friends resolved not to defile themselves with the king’s food.

 

Where did this steadfast spiritual resolve of these young men—who would not yield before the overwhelming culture of a great empire—come from? It likely came from the faith toward God they saw, heard, and learned in their childhood, held in the warm embrace of their parents in their homeland.

 

The same was true for Timothy. In that harsh, controlling environment where his father would not even permit circumcision, what was the decisive secret that enabled young Timothy to resist assimilation into the secular world and preserve such a clear and pure spiritual identity?

 

It was not an excellent theological program or well-equipped church facilities. It was the embrace of his grandmother Lois and the embrace of his mother Eunice.

 

We know this: faith is never injected into the mind. Faith is not transmitted through textbook texts. It is not instilled by great speeches or impressive teachings. Faith is passed “from embrace to embrace,” when life touches life and when warmth meets warmth.

 

When young Timothy was confused by the Hellenistic culture his father pressed on him, when he was shaken by the world’s glamorous philosophies, what held him fast was likely the whispered prayers of his grandmother Lois who would lay him on her lap and pat him. And each night, his mother Eunice would have told him bedtime stories of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in a gentle voice. In the fierce storms of the world and in the spiritual conflicts at home, the warm, wide bosom of his mother who would pray for him in tears—that “embrace”—became the strength that held Timothy.

 

Here today there are grandmothers and grandfathers, fathers and mothers. Beloved, you cannot know how crucial you are to y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When you lay your hand on your grandchild’s head to bless and pray, when you hold your children and pray to the Lord, that embrace becomes the warm embrace of our Heavenly Father for those children.

 

Even if you see your children being swept away by the culture of this world and drifting from the church, do not be shaken and remember Lois, Timothy’s grandmother in our text today. May you believe this biblical testimony that the firm, sincere faith in Lois flowed, across years, fully into her grandson Timothy and may you—grandparents and parents—embrace your children in your prayers every day.

 

Now, one somewhat uncomfortable fact arises as we read this passage: why did Paul speak only of the faith of Timothy’s grandmother and mother? His father would have been excluded, of course, because he was Greek and a nonbeliever. But why is Timothy’s maternal grandfather not mentioned?

 

Might it be a sort of discrimination between men and women? Jewish tradition does emphasize that faith is primarily transmitted through the mother. A child born of a Jewish mother and a gentile father is recognized as Jewish; the reverse is not.

 

Is this the sort of thing Paul is trying to tell us by leaving out Timothy’s father and grandfather? While this narrative may leave some men feeling a bit disappointed, there is in fact another spiritual meaning contained here.

 

It points not to the mother’s embrace alone, nor to the parents’ embrace, but to another embrace.

 

Timothy’s faith grew from the prayers of his mother and grandmother, but what completed him into a great minister of his generation was the embrace of his imprisoned spiritual father, the Apostle Paul. Paul was not Timothy’s biological father. They were not related by blood.

 

Yet in his letters Paul did not hesitate to call Timothy “my son whom I love, who is faithful in the Lord” (1 Corinthians 4:17 NIV) and “my true son in the faith” (1 Timothy 1:2 NIV).

 

Timothy reciprocated. Paul testifies to their relationship in Philippians 2:22: “But you know that Timothy has proved himself, because as a son with his father he has served with me in the work of the gospel.” (Philippians 2:22 NIV)

 

To Timothy, Paul was the real father who filled the spiritual void that Timothy’s Greek biological father—who would not even allow circumcision—could not fill; and to Paul, Timothy was a beloved son worth giving his life for.

 

Paul is now facing death in a cold Roman underground prison. Yet this spiritual father confesses to his spiritual son in today’s passage: “[…] as night and day I constantly remember you in my prayers.” (2 Timothy 1:3 NIV) Paul’s deep love and concern for Timothy are evident.

 

The Bible is not saying that men cannot pass on faith or that the faith of fathers and grandfathers is useless.

 

Rather, it shows how to make up for what is lacking. When paternal faith is absent, the church can build that faith through other spiritual fathers or spiritual mothers.

 

This is how the church embraces the next generation. Beyond a selfish faith that cares only for my children and my grandchildren, the church needs spiritual fathers and mothers who can tell the teenagers and young adults in our church whose names we may not know, “I am praying for you night and day as my son and daughter in the Lord.”

 

Paul also says in verse 4, “Recalling your tears, I long to see you […]” (2 Timothy 1:4 NIV)

 

The Bible does not tell us when or why Timothy wept, but Paul knew and held those tears in his heart as he prayed for Timothy.

 

Today, our children do not leave the church because of a lack of programs. They leave because there is no adult who knows their tears, no real adult who empathizes with their pain. For children who cry because they can’t communicate with their parents at home, for our lonely Timothys who are discouraged by the world’s relentless competition, Somang Church must become their spiritual parents and family who can embrace them and say, like Paul, “I know your tears; I love you as you are.”

 

If we understand this, we can go one step further. There is hope even for children who have no faithful parents like Lois or Eunice at home—children who have never experienced a warm, spiritual embrace from their parents. Today some children live in spiritually mixed households influenced by only one parent’s faith; others are spiritual orphans who receive no religious influence at all. Many children have parents who do not attend church, or whose families never talk about spiritual matters even though they attend church, leaving those children spiritually malnourished. The other embrace God has prepared for such children is the spiritual family called the church.

 

But an embrace is more than that.

 

In May, the month of family, I know some of you quietly beat your chests in guilt and shed tears during sermons. Some parents may be blaming themselves, “My child has already grown up and left the church,” “I failed as a parent because I was immature and my faith was weak.”

 

But look again at Timothy’s home in our passage today. The Bible does not even record the name of Timothy’s father. He is only called “a Greek.” He was the spiritual barrier who prevented circumcision—the inheritance of faith—from being given to his son; he was a father who failed to lead his household in faith. But while Scripture is silent about the father’s name, God made the names of Lois and Eunice shine. And God ultimately filled the deep spiritual void and the broken gap that the father could not fill by providing Paul—the church’s spiritual father—so that Timothy would be built up as a great minister.

 

Do not beat yourself up because your home was not perfect or because you were an imperfect parent. Consider God’s great providence. What we can do is pray. The tearful prayers you have shed and are still shedding for your children will never fall to the ground. Even if your child has left your hands, even if there seems to be no one in the church to embrace them, think of the greater embrace of God. Stop blaming yourself and now transfer the child you have failed to hold into God’s embrace. God will embrace and guide them.

 

May you entrust your children to the Lord in faith as you look at the layered dimensions of God’s grace—grandmother’s embrace, mother’s embrace, spiritual father Paul’s embrace, and finally God’s embrace.

 

Beloved congregants, one last truth to engrave on your hearts.

 

Hearing today’s sermon, you may imagine Timothy, raised in the tearful arms of his grandmother Lois and his mother Eunice, growing up as an imposing, perfect spiritual giant who always succeeded. But at the time he received this letter, the young pastor Timothy’s real situation was far from that.

 

Timothy was by nature very gentle and meek. He was also physically weak and suffered from stomach ailments, and the Ephesian church he shepherded faced constant attacks from false teachers and local power struggles. Ministry did not go as he wished, and because he was young he was often dismissed. To make matters worse, his towering spiritual mentor who supported him, Paul, was imprisoned in Rome and awaiting execution.

 

Surrounded by blocked roads on every side and facing a harsh reality, gentle Timothy was now suffering severe spiritual depression and burnout. Crushed by fear and helplessness, he soaked his bed with tears each night and had spiritually collapsed.

 

From his cold underground cell, the elderly Paul—awaiting execution—knew from afar of his son Timothy’s unceasing tears and wavering faith, of the spiritual flame in him being extinguished. So Paul took up his pen to revive this discouraged son. He began to forcibly rouse the sleeping “first love” of Timothy’s faith.

 

That is the word of verse 5 in today’s passage:

 

“I am reminded of your sincere faith, which first lived in your grandmother Lois and in your mother Eunice and, I am persuaded, now lives in you also.” (2 Timothy 1:5 NIV)

 

“Timothy, your situation is trapped on every side and your body is sick, yet within you is a faith passed down through tears and prayer across generations—a sincere faith that no storm can break! So wipe away your tears of discouragement and rise up again like a flame!”

 

Brothers and sisters, Paul’s reason for calling Timothy’s past and his mother’s faith to mind was not mere nostalgia. He was declaring: “The spiritual inheritance you received is your present power that will carry you through the burnout of your calling.”

 

Is there anyone here today who, like Timothy, is worn down and sitting under the heavy burden of life and spiritual burnout? Today, through Paul’s voice, God shakes and awakens your heart and speaks:

 

“The faith you have is not worthless or weak. The prayers of your mother, father, and grandparents who wept for you are woven into you. There is also the church’s prayer for you. Do you know how many prayers stand behind you? Do not be disappointed, do not despair. You will surely overcome this hardship.”

 

Dear friends, are you going through a hard time? Deep in our souls is planted the root of a sincere faith that will enable us to overcome the fierce winds of the world and life’s trials. Hold on to that faith.

 

After today’s service, go home and take the hands of your beloved children and grandchildren and say, “I am praying for you. You are God’s child.” “God will guide you well.” Those words will one day become the spiritual identity that restores the burned-out soul of a child for life.

 

When families falter, let the church receive them; when the church lacks, let families hold fast. Through this holy unity, may Somang Church and our homes become one warm embrace that holds each other’s weary souls. If that is still not enough, let us entrust these weary souls to the greater embrace of God and pray earnestly to the Lord. By doing so, may Somang Church be full of miracles, continually raising up and restoring generations like Timothy who possess a sincere and pure faith in this harsh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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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3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디모데의 진가는 거짓 없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디모데후서는 노년의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자기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바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간절한 편지를 남깁니다. 바울 사도에게 디모데는 너무나 특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위대한 사도 바울이 평생 복음을 전하며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영적 아들이자 최고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로 디모데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유대인들의 극심한 폭동으로 인해 바울은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위험한 데살로니가로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파송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파벌 싸움과 타락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 철학을 대변할 대리인으로 디모데를 파견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어 도저히 방문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바울은 자신을 대신해서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또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가장 중요한 지역에 있던 에베소 교회에 디모데를 담임목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뢰하고 에베소 교회의 담임 목사로 그를 추천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신실한 수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거나 강력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본래 성품이 매우 여리고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몸도 약해서 늘 위장병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젊은 나이로 교인들에게 종종 무시를 당하며 마음고생도 했던 청년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린 청년이 어떻게 험한 초대교회와 그 시대를 이끄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바울은 우선 디모데의 마음속에 있는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헬라어는 한국어 번역 그대로 ‘거짓이 없는’, ‘위선이 없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꾸며 내지 않는 한결같은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귀하게 여긴 한 가지 이유는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용기나 용맹함이 조금 모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고 지혜와 지식도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영적 무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신앙을 물려받았던 가정의 상황은 사실 가치관이 부딪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이 귀한 믿음을 디모데는 어떻게 가졌을까요? 바울은 디모데의 진실하고 순전한 믿음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분명한 출처가 있음을 밝힙니다. 디모데의 아름다운 믿음의 뿌리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정의 신앙 교육을 통해 디모데가 신실하고 위선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가 받은 신앙 교육은 어땠을까요? 철저하고 온전한 신앙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까요? 여기서 디모데가 자라난 가정환경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절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사람 유대 여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바른 온전한 신앙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헬라인인 아버지가 과연 자기 아들 디모데를 유대 신앙으로 키우는 것을 허용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6장 3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행 16:3)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가고자 할 때, 그는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마땅히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구별된 신앙의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헬라인인 아버지가 허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유대인이라는 소수 민족의 독단적인 종교에 빠지지 않고, 당시 세상의 주류를 이루던 합리적이고 수준 높은 헬라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디모데의 가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온전하고 이상적인 믿음의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집중적으로 디모데가 부모로부터 신앙의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삶의 자리에는 매일 세상의 헬라적인 성공 방식과 유대 여호와 신앙이라는 두 거대한 세계관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경계선에서 자기만의 신앙 정체성을 세워 가는 것은 어린 디모데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디모데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매우 닮았습니다. 부모 중에 한 사람이 불신앙인인 것만이 영적 다문화 가정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시대 자체가 거대한 세속적 가치관의 용광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유튜브로 대변되는 끝없는 미디어의 홍수,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기술 문명과 문화가 우리 아이들의 삶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화려한 문화 가운데서 우리는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즉각적인 재미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공만이 최고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신앙과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많은 분이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교육은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구시대적이고 초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종종 무력감을 느끼며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매력적인 세속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자녀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을까?’

 

<디모데의 굳건한 신앙은 어린 시절부터 에서 으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위기와 혼란 앞에 섰던 또 다른 소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 이 청년들의 이름 끝에는 모두 ‘엘’ 또는 ‘야’가 들어갑니다. 이는 ‘엘로힘’과 ‘야훼’를 뜻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름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유대 땅에서 이 아이들이 장차 어떤 세상에서 살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제국의 학문을 배워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들에게 바벨론 우상의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시켜 그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마음을 정하여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이 소년들이 거대한 제국의 압도적인 문화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보여 준 굳건한 신앙의 결기는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 고향 땅 부모의 따뜻한 품 안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하나님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디모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할례조차 허락하지 않는 엄혹하고 통제된 상황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린 디모데가 세속에 동화되지 않고 맑고 순수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던 것은 부모의 신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뛰어난 신학 교육 프로그램도, 잘 갖춰진 교회의 멋진 시설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은 결코 머리로만 주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은 교과서의 텍스트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위대한 연설이나 가르침으로 설득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삶과 삶이 만나고 체온과 체온이 느껴지는 자리, 곧 ‘품’에서 ‘품’으로 전달됩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열심히 홀로 읽고 있던 성경책의 모습, 무릎 꿇은 기도의 자리를 보며 자녀가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린 디모데가 세상의 화려한 철학 속에서 흔들릴 때, 아버지가 강요하는 헬라 문화 속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그를 꽉 잡아 준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무릎 위에 놓고 도닥여 주시면서 하셨던 할머니 로이스의 기도의 숨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머리맡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셨던 어머니의 성경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넓고 포근했던 품이 디모데를 붙들어 준 힘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신앙 교육에서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품으로 자녀들을 안고 주님께 기도할 때, 아이들에게 그 품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한 품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영적 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약간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왜 바울은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만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물론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으로 신앙인이 아니었으니 제외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디모데의 할아버지는 안 나올까요? 물론 유대의 전통에서는 신앙의 전수가 우선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문이 이런 이야기를 전하려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신앙을 제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 남성들에게 조금은 실망스럽게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 사실 또 다른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품만이 아닌 또 다른 품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기도로 신앙의 싹을 틔웠지만, 그를 한 시대를 이끄는 위대한 목회자로 완성한 것은 감옥에 갇힌 영적 아버지 사도 바울의 품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친아버지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고전 4:17)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빌 2:22)

 

디모데에게 바울은 자신에게 헬라인 친아버지가 채워 주지 못한 영적 공백을 채워 준 ‘아버지’였고, 바울에게 디모데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차가운 로마 지하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영적 아버지로서 영적 아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딤후 1:3)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절절한 사랑과 관심이 잘 드러납니다. 성경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신앙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에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채우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음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신앙의 결여가 있을 때, 교회는 또 다른 영적 아버지 혹은 영적 어머니를 통해 그 신앙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이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방식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내 자녀, 내 손주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아이들, 이름 모를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향해 “내가 너를 주 안에서 낳은 내 아들, 내 딸로 여기며 밤낮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아버지, 영적인 어머니가 교회에 필요합니다. 바울은 또한 4절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딤후 1:4)

 

디모데가 언제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 성경이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이런 영적인 어른들이 참 많이 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신앙생활 하시면서 그런 영적인 어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그런지 점점 더 그런 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어른으로서 자녀들 또는 젊은 세대들을 가르치고 품어 주시는 분들이 예전만큼은 없어 보입니다. 내 눈물을 알아주는 어른, 내 아픔에 공감해 주는 진짜 어른이 필요합니다.

우리 곁에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눈물 흘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무한 경쟁 속에 기가 죽어 눈물 흘리고 있는 또 다른 외로운 디모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처럼 “내가 너의 눈물을 안다”, “네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아 줄 수 있는 영적인 부모, 영적인 가족이 우리 소망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집에 로이스나 유니게 같은 믿음의 부모가 없는 아이들, 또 부모의 따뜻한 영적 품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녀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 부모만 신앙적 영향을 주는 영적 다문화 가정도 있지만, 아예 신앙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영적 고아 같은 자녀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다녀도 가정에서 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아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품’이 교회라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소망교회 안에는 교회 학교가 있고, 교회 학교 안에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천여 명의 선생님들이 어린아이들을 지금도 열심히 품고 있습니다. 바로 이 ‘품’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영적인 가족의 품입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품을 모두 감싸 주시는 크신 하나님의 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품’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그 품은 그 이상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남모르게 가슴을 치며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성도님들이 꽤 계실 것입니다. “내 자녀는 이미 장성했는데, 교회를 떠났습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내 자식을 실패작으로 키웠습니다”라며 자책하는 부모님들도 있으실 줄 압니다. 함께 오늘 본문의 디모데 가정을 다시 한번 주목해 봅시다.

성경은 디모데의 아버지를 언급할 때 그의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헬라인이라고만 합니다. 디모데의 신앙 형성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아버지의 이름을 침묵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로이스와 유니게라는 이름을 빛내셨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이름까지 빛내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채워 주지 못한 영적 공백과 깨어진 틈새를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바울이라는 ‘교회의 영적 아버지’를 통해 채우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디모데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의 환경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내가 부족한 부모였다고 자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책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의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합시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책이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손을 이미 떠난 자녀일지라도, 또한 교회에서 누군가 맡아 줄 품이 없다 할지라도, 또 다른 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크신 하나님의 품입니다.

자책을 멈추고 이제 기도로 내 품에서 실패한 자녀를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이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품에 그를 안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외조모의 품, 어머니의 품, 영적 아버지 바울의 품, 그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겹겹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차원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자녀들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품을 통해 자란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은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눈물 어린 품에서 자란 디모데가 매우 성공적인 목회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을 당시 젊은 목회자 디모데의 실제 형편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디모데는 본래 성품이 아주 여리고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몸도 약해서 늘 위장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담임하고 있던 에베소 교회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계속해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과 텃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목회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나이는 젊다고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목회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스승인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현실 앞에서 목회하던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착하고 여린 디모데는 극심한 영적인 침체 가운데 있었습니다.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고 있던 것입니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짓눌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눈물을 안다고 말해 줍니다.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바울은 아들 디모데의 쉼 없는 눈물과 흔들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낙심한 아들을 다시 살려 내기 위해 펜을 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깊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신앙의 초심(First Love)’을 흔들어 깨우고자 합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성도 여러분, 바울이 디모데의 과거와 어머니의 신앙을 소환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영적 유산이 지금 겪고 있는 사명의 번아웃을 넉넉히 이기게 할 만큼 놀랍고도 큰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디모데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과 영적인 번아웃 앞에 지쳐 주저앉아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바울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신앙은 결코 헛되고 연약한 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도가 온통 너에게 담겨 있다. 너를 위한 교회의 기도가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아느냐? 실망하지 마라. 낙망하지 마라. 너는 이 어려움을 반드시 이길 것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디모데와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우리 영혼 속에는 세상 속의 거센 바람과 인생의 고난을 기어코 이겨 내게 하시는 ‘거짓 없는 믿음의 뿌리’가 박혀 있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자녀와 손주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너를 위해 기도한다. 내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잘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겹겹이 쌓여 있으니 너는 용기를 내어라. 힘차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 이 한마디가 언젠가 번아웃된 아이의 영혼을 평생 살려 내는 영적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릴 때 교회가 받아 내고, 또 교회가 부족할 때 가정이 버텨 주는 거룩한 연대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우리 소망교회와 가정이 하나 되어 서로의 지친 영혼을 품어 주는 따뜻한 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더욱 크신 하나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친 세상 속에서도 디모데와 같이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의 세대들을 끊임없이 길러 내고 회복시키는 우리 소망교회,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소망의 가정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품에서 품으로” (딤후1:3~5)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17, 55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나의 신앙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노년의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쓴 마지막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바울이 디모데에게서 본 가장 중요한 영적 무기는 ‘거짓이 없는 순수한 믿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한결같은 진실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가정은 이상적인 믿음의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아들에게 할례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성공 방정식과 유대 신앙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어린 디모데는 자신만의 신앙을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스마트폰과 AI로 대변되는 세속의 거센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이 험한 환경에서 디모데가 순수한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신학 교육이나 교회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외조모 로이스의 품이었고, 어머니 유니게의 품이었습니다. 신앙은 삶과 삶이 맞닿는 자리에서, 체온과 체온이 느껴지는 자리에서, 곧 ‘품에서 품으로’ 전수됩니다. 혼란스러워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릎에 누이고 토닥여 주셨던 외할머니의 기도 숨결, 잠자리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성경 이야기, 그 품이 디모데를 붙들어 준 힘이었습니다.

디모데를 위대한 목회자로 완성한 것은 영적 아버지 사도 바울의 품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주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불렀고, 친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한 영적 공백을 채워주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방식입니다. 내 자녀만 바라보는 울타리를 넘어, 교회 안의 외로운 디모데들을 영적 가슴으로 품는 바울과 같은 아비와 어미가 우리 가운데 필요합니다.

가정의 환경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디모데의 영적 공백을 바울을 통해 기어코 채우셨습니다. 내 품에서 실패한 것 같은 자녀를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이양하십시오. 외조모의 품, 어머니의 품, 영적 아비 바울의 품, 그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이어지는 겹겹이 쌓인 은혜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자녀들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나의 신앙 전수를 위해 내가 먼저 보여주어야 할 ‘품’은 어떤 모습인지 나누어 봅시다.

2. 자녀나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정의 달 마지막 날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거센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디모데를 붙잡아 주었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따뜻한 기도의 품이 오늘 우리의 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 교육의 실패와 아픔으로 자책하는 부모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실패 뒤에서도 기어코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게 하시고, 내 품에서 떠난 자녀를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이양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가정이 흔들릴 때 교회가 받아내고, 교회가 부족할 때 가정이 버텨주는 거룩한 연대 속에서,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의 세대를 끊임없이 길러내는 기적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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