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7] 2024년 3월 17일 주일말씀 구역(가정)예배 교안
2024년 3월 17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바리새인이 책망 받은 이유” (마 23장 25~28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98장, 30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마 23장 25~28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3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혹시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바리새인 같다” 혹은 “당신이 바리새인이야” 라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신양성경에만 총 93회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어서,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신구약 중간시대에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리새인의 기원은 유대인들의 마카비 반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나라사랑의 정신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정결의 법칙, 안식일 준수, 십일조의 법칙을 매우 엄격하고 세심하게 지켰습니다. 이렇듯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유대교의 전통과 정신을 강조한 바리새인들은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인정받았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가르침과 율법 해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표현은 외식함입니다. 외식이라는 표현은 “가면을 쓰다”라는 뜻이 있으며, 한 마디로 연극배우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고, 애국적이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의 내면이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목적인 정의는 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정의가 없고, 긍휼함이 없고, 진정한 믿음이 없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곧 한 명의 영혼이라도 살리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용서가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바리새인들, 즉 경건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경건을 자신의 가치로 치장하고 정의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희생되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요?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죄악들을 바라보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원칙을 굳게 지키는 것과 융통성을 두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 들어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늘 하나님을 바르게 따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욕망과 탐욕,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들먹이고, 신앙을 들먹이는 우리가 바로 주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신 바리새인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매어 달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면, 돌아서게 하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