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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이 책망받은 이유

마태복음 23:25~28

김경진 목사

2024.03.17

<바리새인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바리새인 같습니다.” 또는 “당신은 바리새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잘 알고 있거나 기독교인이라면 좋지 않은 말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바리새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3장에는 1절부터 39절까지 모든 말씀이 바리새인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어떤 한 부류의 사람들을 질타하고 책망하신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되, 그들의 행함은 본받지 말라”며 바리새인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13절에서 “화있을 진저”라고 말씀하시며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로 본격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15절과 16, 23, 25, 27, 29절에서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씀을 이어 가면서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바리새인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모습은 부정적인 종교인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피상적으로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바리새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는 못하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명칭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없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나타난 특정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사복음서에 많이 나오는데요, 93회 중 대부분은 복음서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6번, 빌립보서에 1번을 제외하고 모두 사복음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한 유대인들의 마카비 반란(기원전 167~160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종교적·정치적인 독립과 회복을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사실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카비 반란 이후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중 한 집단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특별히 나라 사랑에 대한 정신이 가득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골몰했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군사적인 방법 같은 힘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지킴으로써 이 나라의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결의 법칙을 다시 굳건하게 세우기 시작했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십일조의 법칙을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토라에 대한 연구와 강조가 이어졌고, 여러 전통들을 준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데 열정적으로 헌신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적용되었던 정결 규정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서도 준수하게 하여 정결하고 순수한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여명을 기다리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바리새인’입니다. 히브리어로 ‘페루심(פְּרוּשִׁים)’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 말은 ‘구별되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 역시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원칙주의자’, ‘구별된 자들’, ‘특별한 사람들’과 같은 말은 어찌 보면 바리새인을 가리키는 자부심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은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 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듯이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1~12)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리켜 자신은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고, 또 ‘불의를 행하지 않고’, ‘간음을 행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도 행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란 듯이 그것을 내어놓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낸 것을 좋게 본다면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과 정결한 삶을 유지하며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정체성을 알고 나면,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책망을 하였던 이유들이 이해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여러 번 예수님과 대면하죠. 그리고 그때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을 비난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격돌하는 내용들이 몇 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왜 율법과 정결한 예법을 따라서 식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율법 준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시다가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 12:2)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제자들이 하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도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여러 번 이렇게 부딪힘이 일어난 후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결별하죠.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마 12:14)

 

율법의 해석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마찰이 이어지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계속 책망하다가 그들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며 악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예수와 제자들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는 헛된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할 만한 이유는 분명히 찾을 수 있는데,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싫어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토록 강하게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실 율법을 폐하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말자.’라는 운동을 벌이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율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려고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율법을 없애 버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도리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하신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준 것을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을 어긴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에서는 안식일을 범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죠. 그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께서 되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셨죠. 그리고 ‘너희가 쉼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생명에 활력을 가질 수 있다.’라는 의미에서 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에는 내가 쉬면서 짐승들과 모든 것들이 함께 쉬며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그 정신을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정신을 생각해 본다면 ‘병 들어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을 고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아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주된 이유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15,16,23,25,27,29)

 

이 말씀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절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외식하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외식하다’라는 말씀은 ‘가면을 쓰다’라는 속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연극배우처럼 산다.’라는 뜻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 부분을 강하게 질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고 애국적이며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썩어있다고 지적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주님께서 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5)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바리새인들의 속 모습입니다. 탐욕이 가득하고, 방탕하고, 외식하고, 불법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고 있지만 실은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미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파악했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7~9)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좋게 보면 자부심이고 정체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도리어 그것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우월의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리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선택 받은 사람이다’, ‘우리만이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고, 우리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우월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 앞에서 기도하는 내용들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1)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렇듯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하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보이는 외양, 외적인 경건의 모습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삶의 열매와 신앙의 열매, 세례요한이 말한 회개의 열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보았던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바리새인들의 도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너희에게 없는 것이 있다. 너희에게 재산과 제사, 율법을 지키는 모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너희에게는 긍휼이 없다. 내가 긍휼을 원한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킬 때 완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없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 23:23)

 

“너희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며 멋진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너희 안에는 정의가 소실되었고 믿음이 사라졌고 긍휼이 없다.” 이것이 주님의 판단입니다. 명목적인 정의는 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정의와 긍휼함이 없고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 사건이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 세워 두고는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것은 적의였습니다. 이미 율법을 통해서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달려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용서도 없고 그저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공격성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진실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경건한 척, 신앙이 두터운 척하였지만 그들의 내면은 썩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라는 미명을 들고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자신의 변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질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를 꾀어 차고 서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되어 율법을 들고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죄인을 만드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경건한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살의가 가득하고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 절정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들의 헛된 경건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도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고 죄 없는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헛된 종교적 열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죽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헛됨의 절정에 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악한 이방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는 어떤 나라의 강한 군사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이방의 재판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경건을 자신의 가치로 치장하고 정의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났습니다. 가장 경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비극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고 긍휼함과 용서가 없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희생되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그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로 맞아 죽고 있는 스데반을 보면서 마땅히 여기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갈 때에도 그는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 동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것이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핍박하고 잘못된 길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변화되기 전까지 그는 진정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정과 경건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참으로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변화시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보스턴 지역에 4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일럼’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보스턴 대학의 신학생 기숙사가 있어서 종종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세일럼 마녀 재판(Salem witch trials) 사건입니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보스턴 근교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사건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1692년 1월 20일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 새뮤얼 패리스(Samuel Parris)의 딸과 그의 조카가 발작과 이상 행동을 보인 것으로 시작합니다. 두 소녀를 치료하던 의사 윌리엄 그릭스는 아이들의 증상이 잘 낫지 않자 2월 중순 쯤에 “이들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문제는 이후 두 소녀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녀들이 여러 사람을 마녀를 지목하면서 몇 개월 동안 마녀재판이 이루진 것입니다. 훗날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의 증상은 곰팡이균 집단 감염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기 어린 재판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재판을 명분으로 삼아 민중의 신앙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무리수를 두고 만 것입니다. 마녀재판을 세일럼의 유력한 가문들의 정적을 해치우는 데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급기야 개인적인 앙심과 금전적인 갈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였고, 한 마을에 186명이 마녀로 지목되고, 140명이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교수형을 19명이 받게 되었고, 고문 중에 사망한 사람이 1명, 그리고 옥중에서 사망한 사람이 1명으로 마친 사건이 되었습니다.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비극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경건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거나 비난하고, 책망하거나 죽이려 달려드는 헛된 종교적인 열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채로 다른 이의 티눈을 지적하며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긍휼함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오직 명목의 정의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예수를 죽입니다. 지금 사순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용서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없는 우리는 바리새인일 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Why The Pharisees Were Rebuked

 

Matthew 23:25-28

 

If someone said to us, “You’re like a Pharisee!” or “You are a Pharisee!,”none of uswould like it. Although I have not conducted a survey on this, no one wouldever define himself as a Pharisee, claiming, “I am a Pharisee.”

 

The reason we resent Pharisees is because Jesus rebuked them on numerous accounts. The whole chapter of Matthew 23,from which today’s Scripture is taken, isparticularly packed withour Lord’s reproach against them. Our Lord has never criticizedor rebuked a certain group of people in such a harsh manner.

 

In Matthew 23 Jesus says that the Pharisees have taken the place of Moses and starts rebuking them by teaching the people to do and to observe what the Pharisees say, but not to follow their actions.

 

In verse 13 Jesus says,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and starts His vigorous reproach against them. His rebuke continues, marked by His repetition of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in verses 15, 23, 25, 27, and 29.

 

Therefore, who, reading the Bible, would be fond of the Pharisees? The Pharisees in the Bible are merely a group of religious people, and all we have is a negative image of them.

 

But who exactly were these people and when did they emerge? The term “Pharisee”is not mentioned once in the Old Testament. However it appears many times in the New Testament: 86 times in the four Gospels, 6 times in Acts, and once in the epistles (Philippians). It is mentioned no less than 93 times in the New Testament.(And 29 of those occurrences are found in Matthew, from which today’s Scripture is taken.)

 

From that it is not mentioned in the Old Testament, we may surmise that the term emerged sometime in the period between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In fact it did.

 

According to scholars today, the Pharisees’ origin can be traced to the Maccabean Revolt (167-160 BC), a Jewish uprising against the Seleucid Empire. Following the Revolt, the Pharisees emerged as a prominent group that succeeded the spirit of the Revolt, that is, to recover the religious and political independence of the Jewish people. Therefore, the Pharisees were, first and foremost, a group of Jews who dreamed of nationalindependence with a fierce love for their country.

 

How can Israel overcome its statelessness? The Pharisees believed the solution was to return to the Law. Accordingly, they strictly and meticulously observed the laws and regulations regarding purification, the Sabbath, and tithes. Furthermore, the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observing prayers, studying the Torah, as well as oral traditions.

 

The Pharisees, who stressed independence from external powers and upheld thetradition and spirit of Judaism, were widely influential among Jews, and many followed their teachings and interpretations of the Law.

 

Waiting for the promised Messiah, the Pharisees dedicated themselves to observing the Law. They even encouragedordinary Jews to observe thepurification laws applied only to priests serving at the Temple in Jerusalem. The Pharisees believed that Israel, as a whole, ought to become a pure and holy people in waiting for the Messiah and God’s rule.

 

Hence, they were named“Pharisee.”The Hebrew word“Perushim (פְּרוּשִׁים),” from which“Pharisee” comes from,means“to be separated.” So “Pharisee” may be translated “the separated ones,”“separatists,” or “people of principle.”

 

The Pharisees were patriots who awaited the grace of God by strictly observing the Law. How commendable! How faithful! In fact, they were unmatched in terms of patriotism and religiousness.

 

Pharisees are mentioned in various places of the Bible. In Luke we read a boastful prayer of a Pharisee:

 

“The Pharisee stood up and prayed about himself: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men–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Luke 18:11-12)

 

The above tells us that the Pharisees were ethically strict too. They describe themselves as people who do not rob others, do not do evil, and do not commit adultery. They also boast of fastingtwice a week. They give a tenth of all they have.

 

How hard it would be to observe the Law to this degree.Yet the Pharisees did it, boasting to all about their strict observance. From a positive view, we may say their strict observance was to set an example. At any rate, the Pharisees were Jews who strictly observedthe Law, maintained a pure life, and gave themselves to the restoration of the Jewish nation.

 

If we understand the Pharisees and their identity, we may know why they came to Jesus and challenged Him. The Pharisees confronted Jesus several times. Whenever they challenged Him, they criticizedHim and His disciples for not observing the Law properly.

 

Following the flow of Matthew, we will see how the Pharisees come into conflict with Jesus.

 

First in Matthew 9, Jesus calls Matthew the tax collector and eats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and when the Pharisees see this, they say to Jesu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Matthew 9:11)

 

In Matthew 12, when Jesus was going through a field on a Sabbath, the disciples got hungry and picked heads of grain and ate them. Seeing this, the Pharisees say to Jesus:

 

“Look! Your disciples are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Matthew 12:2b)

 

Then when Jesus heals a man with a shriveled hand on the Sabbath, they rebuke Him for violating the Sabbath. After this incident, the Pharisees and Jesus part. The Bible states that after going away, the Pharisees plotted to kill Jesus:

 

“But the Pharisees went out and plotted how they might kill Jesus.”(Matthew 12:14)

 

The Pharisees accused Jesus for not observing the purity laws on eating and criticized the disciples for not keeping the Sabbath properly. When Jesus “violated” the Sabbath by healing a man with a shriveled hand, they decide to kill Jesus.

 

Something had to be done about Jesus, the Phariseesthought, because, in their eyes, Jesus had abandoned the holy duty of observing the Law and was influencing the people in an evil way. This was the very reason that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plotted to kill Him.

 

Then why did Jesus despise them so? Why did He rebuke them so harshly?

 

Jesus did not come to abolish the Law. In other words, He did not teach people to not keep the Law. Of course, in the eyes of the Pharisees, He broke one of the Ten Commandments,“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 In terms of observance to the Law, Jesus did not meet the standards of the Jews of the time. However our Lord’s intent was never to violate the Law. It was to perfect it: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Matthew 5:17)

 

Jesus rebuked the Pharisees in order to fulfill the Law. Jesus appears to violate the Sabbath. From the Pharisees’perspective, He has violated Sabbath laws by healing a sick man on it. But Jesus teaches to first consider the heart of God.

 

This is what Jesus says after healing the man with a shriveled hand:

 

“Which is lawful on the Sabbath: to do good or to do evil, to save life or to kill?” (Mark 3:4)

 

So why does Jesus rebuke the Pharisees?

 

First, Jesus calls them hypocrites. In various places He says,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Matthew 23:13, 15, 23, 25, 27, 29) His rebukeagainst them is accompanied by“hypocrites.”

 

To be “hypocritical” means to “put on a mask.” In short, it is to live like an actor. It means that one’s inner thoughts and heart are different from one’s actions and appearance. Jesus harshly rebukes the Pharisees for this hypocrisy.

 

In short, Jesus is saying that even thoughthe Pharisees seem extremely religious, patriotic, and faithful to the Law on the outside, on the inside they are rotten.

 

Our Lord says: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which look beautiful on the outside but on the inside are full of dead men’s bones and everything unclean.In the same way, on the outside you appear to people as righteous but on the inside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wickedness.”(Matthew 23:27-28)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greed and self-indulgence.”(Matthew 23:25)

 

Jesus is saying that the Pharisees are actually full of greed, debauchery, hypocrisy, and unlawfulness. On the outside they pretend to be clean, but on the inside, they are full of all kinds of impurities. Jesus saw through them.

 

While the Pharisees had the above in their hearts, Jesus points out that they lacked one thing. This one thing had already been observed and pointed out by John the Baptist:

 

“But when he saw many of the Pharisees and Sadducees coming to where he was baptizing, he said to them: ‘You brood of vipers! Who warned you to flee from the coming wrath?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And do not think you can say to yourselves, 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I tell you that out of these stones God can raise up children for Abraham.’”(Matthew 3:7-9)

 

John saw what the Pharisees had and did not have. They were proud to be Abraham’s descendants. In a positive light, this was their identity, but John harshly rebukes it. In short, what the Pharisees had was a sense of superiority.

 

Wasn’t the following their prayer in front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The Pharisee stood up and prayed about himself: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men–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Luke 18:11)

 

As such, the Pharisees felt superior to others. But the truth wasthey had no fruit. They had a façade, an appearance of holiness, but their lives did not bear any fruit. Nor did they bear any fruit of faith. John the Baptist saw this in them.

 

When the Pharisees accuse Jesus with these word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Matthew 9:11), Jesus says: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Matthew 9:12-13)

 

Jesus is saying that the Pharisees do not have mercy in their hearts. He is saying, ‘You disguise yourself to look as if you are observing the Law, but inside you do not have God’s true heart.’ The Law is fulfilled when it is observed with the heart of God. But the Pharisees did not have this heart of God, a compassionate heart.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give a tenth of your spices–mint, dill and cummin. But you have neglected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Matthew 23:23)

 

Jesus is saying about them, ‘You appear to have a nominal justice, but you do not have an inner justice, a true faith.’

 

There is an incident in the Bible that unmasks the real face of the Pharisees—the story about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in John 8.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Pharisees bring in a woman caught in adultery and say to Jesus, “Teacher, this woman was caught in the act of adultery. In the Law Moses commanded us to stone such women. Now what do you say?”

 

Jesus says to them, “Let any one of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Then He stoops down and writes on the ground. At this, they have aheavyconscience; one by one, the older ones first, they left until only Jesus and the woman were standing there. Jesus said to the woman, “Woman, I do not condemn you either.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Why were the Pharisees rebuked?

 

They were wearing masks. On the outside they pretended to be clean, upright, patriotic, and faithful, but on the inside they were utterly filthy.

 

Yet they continued to find wrong in others, shaming them and seeking to kill people in the name of justice.

 

The Pharisees were,in effect, sinners killing sinners in the name of justice. With no interest in their own change, they were busy judging others. As a result, unjust people kill in the name of justice.

 

Most of all, the Pharisees did not possess the heart of God. They did not have God’s mercy. They did not have God’s heart that desires to save one soul. In short, they knew no forgiveness. They had no mercy.

 

This was why Jesus rebuked them so harshly.

 

The Pharisees, who knew no forgiveness, were standing in the judgement seat of God. In the name of the Law and justice, they murdered people. Sinners ended up killing sinners in the name of justice.

 

The climax of all this was Jesus. The Pharisees used their worthless “holiness” to even kill the Son of God, Jesus. Jesus became the sacrificial lamb of their vain holiness and worthless passion. Many prophets had already been sacrificed and many innocent men and women executed in this fashion. Jesus became one of them too, and His Cross was at this very scene.

 

It was not the Gentiles who sacrificed Jesus on the Cross. His sacrifice on theCross was caused by those who boasted of their holiness, adorned themselves with holiness, and emphasized justice. Jesus’ crucifixion was a tragedy created by “religious” people,ignorant of God’s heart and truly lacking. They did not have the heart of God, mercy, or forgiveness. Our Lord was sacrificed and killed by such people.

 

By us.

 

Salem, a small town north of Boston, is where the infamous Salem witch trials took place centuries ago. The Salem witch trials refer to a series of witch hunts and religious trials that occurred in Salem, a small town near Boston, when the United States was still a colony of England.

 

The initial events started onJanuary 20, 1692, when two girls—Betty Parris, the daughter of Samuel Parris, a Puritan minister in Massachusetts, and Abigail Williams, his niece—had seizures and strange fits. When they did not get better, the doctor who treated them diagnosed in mid-February, “They have fallen into the hands of the devil.

 

The problem was that when more girls showed similar symptoms, some girls, including Abigail Williams, accused several people of being witches, which led to the witch trials that lasted for several months.

 

(Later studies suggest that the symptoms shown by the girls may have been caused by rye ergot, a fungal infection caused by moldy rye bread which was the staple of the time.)

 

The man who led and wielded a strong influence in this hysteria of Salem was none other than Reverend Cotton Mather. Seeing the trials as a golden opportunity to restore the faith of the people, he used the trials, making unreasonable claims and doing irrational things. Moreover, when the trials started, powerful families of Salem used them to eliminate their enemies.

 

Finally people even accused each other for petty reasons such as personal grudges and financial disputes, which led to the bizarre witch trials. In just one town, 186 people were accused of witchcraft, among which 140 were arrested, 19 executed by hanging,one died under torture, and another in prison.

 

But the fact is, such things are taking place eventoday. Blind to the plank in their own eyes, people accuse others of the specks in their eyes in order to put them down and destroy them in the name of justice and faith. Such people do not have the heart of God. They have no mercy, no forgiveness. All they have is nominal justice.

 

All they have in their hearts is jealousy, greed, and all kinds of impurities.

 

Dear Church, last weekI spoke about why we failed to become the light and the salt of the world. We repentedthat we failed to show the uprightness that we ought to show. Yet, we must reflect on one more thing—our inner, hidden sins lurking in our hearts and our unforgiving hearts. Our Lord who sees all these in us says, “You brood of vipers!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During this time of Lent, I pray that we will be able to see the “Pharisee” in us, who nailed Jesus to the Cross. Let us go to God in mourning. We, who have no forgiveness and no mercy in our hearts, are the “Pharis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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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25~28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바리새인 같습니다.” 또는 “당신은 바리새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잘 알고 있거나 기독교인이라면 좋지 않은 말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바리새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3장에는 1절부터 39절까지 모든 말씀이 바리새인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어떤 한 부류의 사람들을 질타하고 책망하신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되, 그들의 행함은 본받지 말라”며 바리새인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13절에서 “화있을 진저”라고 말씀하시며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로 본격적으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15절과 16, 23, 25, 27, 29절에서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씀을 이어 가면서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바리새인을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모습은 부정적인 종교인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피상적으로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바리새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는 못하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명칭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없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나타난 특정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사복음서에 많이 나오는데요, 93회 중 대부분은 복음서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6번, 빌립보서에 1번을 제외하고 모두 사복음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한 유대인들의 마카비 반란(기원전 167~160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종교적·정치적인 독립과 회복을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사실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카비 반란 이후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중 한 집단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특별히 나라 사랑에 대한 정신이 가득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골몰했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군사적인 방법 같은 힘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바르게 지킴으로써 이 나라의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결의 법칙을 다시 굳건하게 세우기 시작했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십일조의 법칙을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토라에 대한 연구와 강조가 이어졌고, 여러 전통들을 준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데 열정적으로 헌신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적용되었던 정결 규정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서도 준수하게 하여 정결하고 순수한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여명을 기다리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바리새인’입니다. 히브리어로 ‘페루심(פְּרוּשִׁים)’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 말은 ‘구별되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 역시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원칙주의자’, ‘구별된 자들’, ‘특별한 사람들’과 같은 말은 어찌 보면 바리새인을 가리키는 자부심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은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 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듯이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1~12)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리켜 자신은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고, 또 ‘불의를 행하지 않고’, ‘간음을 행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도 행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란 듯이 그것을 내어놓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낸 것을 좋게 본다면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과 정결한 삶을 유지하며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정체성을 알고 나면,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책망을 하였던 이유들이 이해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여러 번 예수님과 대면하죠. 그리고 그때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을 비난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격돌하는 내용들이 몇 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왜 율법과 정결한 예법을 따라서 식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율법 준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시다가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 12:2)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제자들이 하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도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여러 번 이렇게 부딪힘이 일어난 후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결별하죠.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마 12:14)

 

율법의 해석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마찰이 이어지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계속 책망하다가 그들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며 악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예수와 제자들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는 헛된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할 만한 이유는 분명히 찾을 수 있는데,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싫어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토록 강하게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실 율법을 폐하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말자.’라는 운동을 벌이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율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려고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율법을 없애 버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도리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하신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준 것을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을 어긴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에서는 안식일을 범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죠. 그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예수님께서 되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셨죠. 그리고 ‘너희가 쉼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생명에 활력을 가질 수 있다.’라는 의미에서 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에는 내가 쉬면서 짐승들과 모든 것들이 함께 쉬며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그 정신을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정신을 생각해 본다면 ‘병 들어서 아파하고 있는 사람을 고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아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주된 이유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15,16,23,25,27,29)

 

이 말씀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절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외식하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외식하다’라는 말씀은 ‘가면을 쓰다’라는 속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연극배우처럼 산다.’라는 뜻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 부분을 강하게 질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고 애국적이며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썩어있다고 지적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주님께서 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5)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바리새인들의 속 모습입니다. 탐욕이 가득하고, 방탕하고, 외식하고, 불법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고 있지만 실은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미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파악했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7~9)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좋게 보면 자부심이고 정체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도리어 그것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우월의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리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선택 받은 사람이다’, ‘우리만이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고, 우리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우월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 앞에서 기도하는 내용들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1)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렇듯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하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보이는 외양, 외적인 경건의 모습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삶의 열매와 신앙의 열매, 세례요한이 말한 회개의 열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보았던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1)

 

바리새인들의 도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너희에게 없는 것이 있다. 너희에게 재산과 제사, 율법을 지키는 모습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너희에게는 긍휼이 없다. 내가 긍휼을 원한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킬 때 완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없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 23:23)

 

“너희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며 멋진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너희 안에는 정의가 소실되었고 믿음이 사라졌고 긍휼이 없다.” 이것이 주님의 판단입니다. 명목적인 정의는 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정의와 긍휼함이 없고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 사건이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 세워 두고는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것은 적의였습니다. 이미 율법을 통해서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달려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용서도 없고 그저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공격성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진실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경건한 척, 신앙이 두터운 척하였지만 그들의 내면은 썩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라는 미명을 들고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자신의 변화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질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를 꾀어 차고 서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되어 율법을 들고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죄인을 만드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경건한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살의가 가득하고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 절정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들의 헛된 경건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까지도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고 죄 없는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헛된 종교적 열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죽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헛됨의 절정에 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악한 이방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는 어떤 나라의 강한 군사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이방의 재판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경건을 자신의 가치로 치장하고 정의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났습니다. 가장 경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비극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고 긍휼함과 용서가 없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희생되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그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로 맞아 죽고 있는 스데반을 보면서 마땅히 여기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갈 때에도 그는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메섹 동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것이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핍박하고 잘못된 길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변화되기 전까지 그는 진정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정과 경건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참으로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변화시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보스턴 지역에 4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세일럼’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보스턴 대학의 신학생 기숙사가 있어서 종종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세일럼 마녀 재판(Salem witch trials) 사건입니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보스턴 근교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사건이 있었습니다. 발단은 1692년 1월 20일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 새뮤얼 패리스(Samuel Parris)의 딸과 그의 조카가 발작과 이상 행동을 보인 것으로 시작합니다. 두 소녀를 치료하던 의사 윌리엄 그릭스는 아이들의 증상이 잘 낫지 않자 2월 중순 쯤에 “이들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문제는 이후 두 소녀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녀들이 여러 사람을 마녀를 지목하면서 몇 개월 동안 마녀재판이 이루진 것입니다. 훗날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의 증상은 곰팡이균 집단 감염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기 어린 재판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재판을 명분으로 삼아 민중의 신앙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무리수를 두고 만 것입니다. 마녀재판을 세일럼의 유력한 가문들의 정적을 해치우는 데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급기야 개인적인 앙심과 금전적인 갈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였고, 한 마을에 186명이 마녀로 지목되고, 140명이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교수형을 19명이 받게 되었고, 고문 중에 사망한 사람이 1명, 그리고 옥중에서 사망한 사람이 1명으로 마친 사건이 되었습니다.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비극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경건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거나 비난하고, 책망하거나 죽이려 달려드는 헛된 종교적인 열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채로 다른 이의 티눈을 지적하며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긍휼함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오직 명목의 정의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예수를 죽입니다. 지금 사순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용서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없는 우리는 바리새인일 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3월 17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바리새인이 책망 받은 이유” (마 23장 25~28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98장, 30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마 23장 25~28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3월 17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혹시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바리새인 같다” 혹은 “당신이 바리새인이야” 라고 말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신양성경에만 총 93회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어서,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신구약 중간시대에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리새인의 기원은 유대인들의 마카비 반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나라사랑의 정신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율법을 강조했습니다. 정결의 법칙, 안식일 준수, 십일조의 법칙을 매우 엄격하고 세심하게 지켰습니다. 이렇듯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유대교의 전통과 정신을 강조한 바리새인들은 당시 일반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인정받았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가르침과 율법 해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표현은 외식함입니다. 외식이라는 표현은 “가면을 쓰다”라는 뜻이 있으며, 한 마디로 연극배우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고, 애국적이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의 내면이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목적인 정의는 있어 보이지만, 내면의 정의가 없고, 긍휼함이 없고, 진정한 믿음이 없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곧 한 명의 영혼이라도 살리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용서가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바리새인들, 즉 경건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경건을 자신의 가치로 치장하고 정의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희생되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요?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죄악들을 바라보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원칙을 굳게 지키는 것과 융통성을 두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 들어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늘 하나님을 바르게 따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욕망과 탐욕,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들먹이고, 신앙을 들먹이는 우리가 바로 주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신 바리새인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매어 달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면, 돌아서게 하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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