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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세상에서 끝까지 정의를 구하다
<하나님 나라의 다양한 말씀을 통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바르게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는 기도에 힘쓰기로 마음을 합하여 ‘네 겹의 기도’라는 주제를 들고 함께 기도하기에 애쓰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자 특별한 권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직접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 모범의 첫 부분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여러 본문 중 한 곳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에서 18장 30절까지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려 줍니다. 이 본문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며 큰 흐름 안에서 오늘의 본문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부터 18장 30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경책을 보면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18장으로 넘어가면 과부와 재판장의 이야기,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어린아이를 금하지 말라는 말씀, 그리고 부자 관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묻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언뜻 보면 하나하나 다른 주제들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그냥 나열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 계속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또 이어서 말씀하시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 18:17)
부자 관리 이야기에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관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간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눅 18:24~25)
이렇듯 누가복음 17장 20절부터 18장 30절까지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와 연결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지보다 ‘누구’에게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눅 17:20a)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때’와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나라, 정의로운 나라, 완전한 나라, 온전한 나라, 질병도 없고 어떤 고통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언제 이 땅에 임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b~2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사이에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규정할 수 없고, 볼 수 있게 임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죠.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있게 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성장해 가겠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종말적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
종말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번개가 번쩍이듯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만큼 공개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5)
이 말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이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이고, 예상하지 않던 때에 갑자기 그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아 시대에 홍수가 일어났던 일과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했던 순간을 연상시키시면서 공개적으로, 그러나 갑자기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졌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를 안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의 나라가 왔을 때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은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비교하며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하죠.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 18:11~12)
이렇게 멋진 기도를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b)
이 둘을 비교하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눅 18:14)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죄인인 세리라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라는 의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신앙생활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신뢰하며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죠. 또 이어지는 내용은 한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나와 영생에 관하여 묻는 질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그는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질문의 의도를 알고 율법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두 다 지켰다는 젊은이의 대답을 들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노력이나 힘, 선행이나 어떤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젊은이가 근심하며 돌아가자, 주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2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신뢰하고 순전하며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노력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누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인가”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이 이야기들 사이에 오늘 본문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죠.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눅 18:1)
본문은 기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며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내용이 단순한 기도와 관련된 내용 같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이 본문은 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서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주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 과부는 자주 그 재판장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송사했습니다. 여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정의를 경험했습니다. 일어나지 않아서는 안 될 일,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 일로 그에게 원한이 생겼고,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에게 간청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정의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찾아간 재판장은 정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재판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도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그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끊임없이 요청하자, 그 재판장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그 원한을 풀어 주어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시죠.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눅 18:6~8)
“정의에 대한 끈질긴 요청을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겠느냐? 불의한 재판장이 귀찮아서라도 정의를 이루어 주었다면, 정의를 기뻐하시는 주님께서는 그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 본문을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두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라는 바리새인들이 물었던 질문을 잠깐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죠. “너희 중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부정의를 경험합니다. 여전히 이 땅에는 불의와 억울한 일, 악의 번성함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애쓰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너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써 이 땅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마음,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정의를 구하며 끝까지 버텨 내라는 말씀입니다.
<불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때, 한 걸음 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기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b)
이 땅의 온전한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때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정의를 경험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탄원하며 애통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기도할 수 있는 힘’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완전한 정의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끝까지 끊임없이 악과 대면하며 끈질기게 정의를 이룬 과부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 애쓰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마침내 완성될 정의를 꿈꾸며 이 땅의 어려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비록 부정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애쓸 때, 재판장에게 탄원하여 정의를 조금 맛보았던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정의를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더라도 이 땅에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또다시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고, 기도해야 할 것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들여놓으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올바름이 지금도 이 땅에서 성장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성장하고 있는 정의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정의는 단지 정치적인 의미의 정의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도 하나님 나라의 정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임하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원하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여전히 아직 불의한 세상, 질병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주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불의한 세상, 질병으로 가득한 세계, 편견이 있는 세상,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간구하며,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작은 하나님의 정의와 치유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며 땅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비록 또다시 우리에게 불의와 질병, 어려움들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다시 기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갈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삶에, 이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드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Seeking Grace to the End in an Unjust World
Luke 18:1-8
The model prayer that our Lord taught us starts like this: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Matthew 6:9-10)
In this exemplary prayer, our Lord taught us to pray that the name of God would be exalted, His Kingdom come, and His will be done.
The Kingdom of Heaven is the most important theme that Christians must understand. The Kingdom of Heaven is a kingdom ruled by God. Accordingly, it is a kingdom where God’s name is exalted and His will is done.
Today’s passage is one of the Bible’s many passages that deal with the Kingdom of God. Luke writes about this theme from 17:20 to 18:30, describing the diverse aspects of the Kingdom of Heaven.
I want to first take a macro view of this theme by looking at the whole section of Luke 17:20-18:30, and then take a more detailed look at today’s passage, Luke 18:1-8.
At first sight, Luke 17:20-18:30, the section dedicated to the Kingdom of God, appears to be dealing with disparate topics. If you have your Bibles with you, please have a look at the entire flow of the story as I explain it to you.
First, from Luke 17:20 and onwards, the story begins with the Pharisees asking Jesus when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Then in chapter 18 we see the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the Parable of the Pharisee and the Tax Collector, Jesus’ teaching on not hindering little children, and the story of a ruler who asks Jesus about eternal life.
But in the story about little children, Jesus says,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Luke 18:16) Then He says, “Truly I tell you,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Luke 18:17) Here we see the expression “the Kingdom of God.”
Furthermore, in the ensuing story about the wealthy ruler, this is what Jesus says when he goes away with a crestfallen face upon hearing Jesus’ teaching: “How hard it is for the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Indeed,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someone who is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Luke 18:24-25)
As such, we can see that the stories in 17:20-18:30 unfold in connection to the theme of the Kingdom of God.
Now let’s delve deeper.
Luke 17:20 starts like this:
“Once, on being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 (Luke 17:20a)
The Pharisees asked Jesu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When will it come on earth? They were interested in the time.
This is Jesus’ reply to them concerning the Kingdom of God: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is not something that can be observed,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 (Luke 17:20b-21)
First, Jesus says that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in your midst.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 In other words,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or between you.
Yet Jesus says that the Kingdom of God cannot be defined yet and has not come in a visible form. These words of Jesus imply that the Kingdom of God has already begun with His coming to earth. That Kingdom of God will now expand on earth.
However, with regard to the eschatological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that the Pharisees were awaiting, Jesus goes on to say the following:
“For the Son of Man in his day will be like the lightning, which flashes and lights up the sky from one end to the other.” (Luke 17:24)
Our Lord is saying that the eschatological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will be like the lightning that lights up the sky, which means that it will come publicly in a way that everyone can see.
Yet Jesus says that certain things must come first:
“But firs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is generation.” (Luke 17:25)
Considering all this, this may be our understanding. To the Pharisees’ question, “When will the Kingdom of God come?,” Jesus replies, “The Kingdom of God has already started on earth. This Kingdom of God will become clear through the sacrifice,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of Jesus Christ. After all these are done, Jesus will come again. When He does, the Kingdom of God will finally be complete. At that time, the Kingdom of God will show itself publicly for all to see, and it will come on earth suddenly at an unexpected time.”
Reminding the people of the Great Flood in Noah’s time and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Jesus preached that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suddenly for all to see.
Then Jesus leads the discussion on the Kingdom of God to another direction.
The Pharisees asks when, at which time,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But Jesus instead talks about who is able to enter it.
What is more important than when the Kingdom comes is who can enter it. Even if we knew when it would come, neither waiting nor knowing about the time would be of any use if we were not qualified to enter it.
This is why God talks about who is able to enter the Kingdom of God. First, Jesus approaches this subject by taking as an example the prayers of the Pharisee and the tax collector.
The ways they pray in the Temple are contrasted. The Pharisee prays as such: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Luke 18:11-12)
On the contrary, this is the tax collector’s prayer: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Luke 18:13b)
Comparing the two, our Lord says,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For all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Luke 18:14)
The one justified before God is the one qualified to enter the Kingdom of God. The one qualified to enter the Kingdom is not the one who prays in a grandiose manner, but the one who humbles himself and is accepted by God.
Then our Lord tells the disciples to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Him and to not hinder them. He says,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Luke 18:16)
This means that those who are pure, trusting, and humble like little children are worthy to enter the Kingdom of God.
Then a certain young official comes to Jesus and asks about eternal life:
“Good teacher,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Luke 18:18)
To inherit eternal life is, in other words, to enter the Kingdom of God.
But this official asked the wrong question. The Kingdom of God is not a place we enter by doing something. That is why our Lord talks about how hard it is to enter it after the ruler goes away, saying that it is extremely difficult to enter it through human efforts or wealth.
Then He says, “What is impossible with man is possible with God.” (Luke 18:27)
The contents so far reveal who can become the people of the Kingdom of God and who is qualified to enter it.
So, as I said, the Pharisees asked Jesu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and Jesus, speaking about the Kingdom of God that has already come, explained the qualifications of Kingdom citizens, such as what kind of person one must become to enter it.
Now, a story sits in between such discussions. That story is none other than our Scripture for today. The text starts like this:
“Then Jesus told his disciples a parable to show them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ot give up.” (Luke 18:1)
Now why do such themes as prayer and not giving up appear in this passage which is located in between the discussion on the Kingdom of Heaven? Although this passage appears to be talking simply about prayer, it actually holds a deeper meaning.
The overall context of the passage is the Kingdom of God. Then what is today’s passage trying to say in the context of this overall theme?
Now, let look at the flow again. The Pharisees asked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Our Lord replied that it was already in your midst, among you. Yet the Kingdom of God is not yet complete.
If we look at this from the perspective of time, Jesus’ suffering,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have yet to come, as well as His second coming and the judgment. After the second coming and the judgement, the true Kingdom of God will be complete.
Then, what does this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signify? This is how Jesus tells the parable.
In a certain town there was a judge who neither feared God nor cared what people thought. And there was a widow in that town who kept coming to him with a plea: “Grant me justice against my adversary.”
The widow had experienced injustice. Something that ought not to have happened, something unjust, had happened. So she asks that this injustice be addressed. In short, she is seeking justice.
But the judge is not so interested in justice. He is even capable of distorting it through unfair decisions. But because the widow persistently asked for justice, he addressed the injustice—even if it was just to get her to stop bothering him.
Then Jesus says:
“And the Lord said, ‘Listen to what the unjust judge says.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who cry out to him day and night? Will he keep putting the off?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Luke 18:6-8)
Jesus is asking whether God would make us wait a long time if we asked Him persistently to grant us justice. He is saying that God will give us justice.
Why does Jesus say this to the disciples? The Pharisees’ question was this. When will the Kingdom of God come? When will true justice be done on earth?
Our Lord replied that the Kingdom of God was already in their midst. The Kingdom of justice has already begun on earth. God’s will is already being done on earth.
But it is not complete yet. Accordingly, unjust things happen, as we see in the case of the persistent widow. Injustice and wrongs persist and the wicked continue to prosper on earth.
However, this is what our Lord is saying to us through the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Nevertheless, if you strive and pray for the Kingdom of God to come on earth, it will come quickly.”
The Kingdom of God has not been fulfilled yet. The full Kingdom of God will be complete when Jesus Christ comes again. Until then, we must struggle and strive and pray for justice on earth. Therefore, our Lord says:
“But when the Son of Man returns, how many will he find on the earth who have faith?” (Luke 18:8b)
Until our Lord comes again, perfect justice cannot exist in this world. We will continue to face evil. But we must strive and pray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on earth—just like the widow who persistently asked the judge to grant her justice.
Until the Lord comes, we will never see perfect justice. That is why we need faith. With that faith, we will finally see justice which will be complete at last. Until then, we wait expectantly. And we pray persistently for justice.
Dear saints, some of you may have sensed the heaviness in the title of my sermon today.
I have been praying with a burning heart for our nation, as I see divisions plague Korean society. You would have been praying too. Those divisions are starker than ever now, as our country is set to hold the presidential elections in a few days. Lies, propaganda, and incitement are so rampant now that it is hard to discern what justice is.
Dear saints, many Koreans may be expecting that the outcome of this election will give us justice. However, injustice will continue to persist in our world.
A certain president will not make justice prevail or give us complete justice. We men, who have always been and will continue be incomplete, will continue to live in a world full of injustice—regardless of who becomes the president.
When the election results come out, some will cheer while others will be dismayed. Nevertheless, until Jesus comes again, judges everything, and makes everything right, we will have to continue seeking justice, as we live in an unjust world.
That is why faith is required.
But there is hope. Because the justice that Jesus has already granted on earth, God’s righteousness, continues to grow and expand on earth. We Christinas are the very people who love, and rejoice in, that justice. We are those who earnestly pray for that justice of God to expand more and more on earth.
Therefore, our prayer for justice will not be fulfilled by a single election or by the election of a certain president. The Kingdom of God within us will become manifest and clearer when we pray in our respective places, seeking God’s justice on earth, and when we struggle and strive to achieve that justice.
Dear saints, let us seek God’s justice to the end in this unjust world. This journey of faith will not end today or tomorrow, but must continue until Jesus comes again, until the perfect justice of God is fulfilled on earth.
Therefore, our prayers for Korea must continue even after the elections, regardless of their results. They must continue until our Lord comes again. This justice is not just a political justice, but is connected to all the evils that exist on earth.
Freedom from disease also signifies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showing an aspect of God’s justice. This is why our Lord healed the sick while He was on earth.
This applies to freedom from prejudice too. The Kingdom of God is open to all, including tax collectors, prostitutes, men, women, and even little children. That is why Jesus became a friend to sinners and preached about the Kingdom of God to them.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need not despair, even when it seems that justice is not being properly sought. Although evil continues to be strong, it will finally be destroyed. When our Lord comes again, everything will be set right and made complete. May we live with this faith without becoming disappointed, no matter the circumstances. May we all ask God for justice and strive for it in this unjust world.
Let us pray, make petitions, and not despair, as we dream of the Kingdom of God which our Lord will finally fulfill. Let us not despair until the end of the world. Let us continue to pray until the end.
누가복음 18: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의 다양한 말씀을 통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바르게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는 기도에 힘쓰기로 마음을 합하여 ‘네 겹의 기도’라는 주제를 들고 함께 기도하기에 애쓰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자 특별한 권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직접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 모범의 첫 부분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여러 본문 중 한 곳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에서 18장 30절까지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려 줍니다. 이 본문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며 큰 흐름 안에서 오늘의 본문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부터 18장 30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경책을 보면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18장으로 넘어가면 과부와 재판장의 이야기,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어린아이를 금하지 말라는 말씀, 그리고 부자 관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묻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언뜻 보면 하나하나 다른 주제들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그냥 나열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 계속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또 이어서 말씀하시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 18:17)
부자 관리 이야기에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관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간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눅 18:24~25)
이렇듯 누가복음 17장 20절부터 18장 30절까지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와 연결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지보다 ‘누구’에게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눅 17:20a)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때’와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나라, 정의로운 나라, 완전한 나라, 온전한 나라, 질병도 없고 어떤 고통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언제 이 땅에 임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b~2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 사이에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규정할 수 없고, 볼 수 있게 임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죠.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있게 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성장해 가겠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종말적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
종말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번개가 번쩍이듯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만큼 공개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5)
이 말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이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이고, 예상하지 않던 때에 갑자기 그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아 시대에 홍수가 일어났던 일과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했던 순간을 연상시키시면서 공개적으로, 그러나 갑자기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졌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를 안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의 나라가 왔을 때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은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비교하며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하죠.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 18:11~12)
이렇게 멋진 기도를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b)
이 둘을 비교하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눅 18:14)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죄인인 세리라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라는 의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신앙생활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신뢰하며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죠. 또 이어지는 내용은 한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나와 영생에 관하여 묻는 질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그는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질문의 의도를 알고 율법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모두 다 지켰다는 젊은이의 대답을 들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노력이나 힘, 선행이나 어떤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젊은이가 근심하며 돌아가자, 주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2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신뢰하고 순전하며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노력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누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인가”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이 이야기들 사이에 오늘 본문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죠.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눅 18:1)
본문은 기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며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내용이 단순한 기도와 관련된 내용 같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이 본문은 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서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주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 과부는 자주 그 재판장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송사했습니다. 여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정의를 경험했습니다. 일어나지 않아서는 안 될 일,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 일로 그에게 원한이 생겼고,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재판장에게 간청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정의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찾아간 재판장은 정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재판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도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그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끈질기게 끊임없이 요청하자, 그 재판장이 귀찮고 번거로워서 그 원한을 풀어 주어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시죠.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눅 18:6~8)
“정의에 대한 끈질긴 요청을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겠느냐? 불의한 재판장이 귀찮아서라도 정의를 이루어 주었다면, 정의를 기뻐하시는 주님께서는 그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 본문을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두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라는 바리새인들이 물었던 질문을 잠깐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죠. “너희 중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부정의를 경험합니다. 여전히 이 땅에는 불의와 억울한 일, 악의 번성함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애쓰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너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써 이 땅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마음,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정의를 구하며 끝까지 버텨 내라는 말씀입니다.
<불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때, 한 걸음 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기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b)
이 땅의 온전한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때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정의를 경험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탄원하며 애통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기도할 수 있는 힘’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완전한 정의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끝까지 끊임없이 악과 대면하며 끈질기게 정의를 이룬 과부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 애쓰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마침내 완성될 정의를 꿈꾸며 이 땅의 어려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비록 부정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애쓸 때, 재판장에게 탄원하여 정의를 조금 맛보았던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정의를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더라도 이 땅에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또다시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고, 기도해야 할 것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들여놓으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올바름이 지금도 이 땅에서 성장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성장하고 있는 정의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정의는 단지 정치적인 의미의 정의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도 하나님 나라의 정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임하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원하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 여전히 아직 불의한 세상, 질병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주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불의한 세상, 질병으로 가득한 세계, 편견이 있는 세상,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간구하며,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작은 하나님의 정의와 치유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며 땅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비록 또다시 우리에게 불의와 질병, 어려움들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다시 기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갈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삶에, 이 나라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드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소망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끝까지 정의를 구하다” (눅18:1~8)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95, 36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 끈질기게 무언가를 구하였던 경험이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는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앞, 뒤의 내용을 하나님의 나라 시각으로 살펴봅니다. 앞에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이미 시작되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해질 것이고, 승천 후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뒤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달리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했던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영생에 대해 물었던 부자 관리를 보내시며 인간의 노력이나 재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의가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송사를 합니다. 정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요청하였습니다. 정의에 대한 끈질긴 요청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애쓰며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 오실 때까지 완전한 정의를 끈질기게 구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침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고 세상 끝 날까지 기도합시다.
<나누기>
-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마음을 모아 우리나라와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끈질기게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선가 자라나고 있음을 믿으며 지극한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의하며, 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신 이 땅의 정의를 기대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로 하여금 지치지 않게 하시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날마다 주님의 정의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며, 기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마침내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가져다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