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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통해 시작된 축복

룻기 1:15~18

김경진 목사

2024.05.12

<부모 공경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난 4월 7일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의 내용이 실렸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마구잡이로 폭행해서 어머니를 숨지게 한 50대 한 사람이 징역 22년 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지난해 9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어머니를 밀어 넘어뜨리고는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서 어머니는 사망 당시에 갈비뼈가 21개가 부러졌다고 하는 내용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었을 텐데요. 얼마나 사랑스럽게 키운 아들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면서 죽어 간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종종 이런 일들이 일어나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기억하곤 합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율법 말씀 중에 부모에게 폭행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5)

 

또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7)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죽음에 해당된다는 아주 강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약 성경에만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말씀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이 말씀을 늘 함께 되뇌고 다시 상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공경에 대한 마음을 다시 갖곤 합니다. 조금 이상한 질문 같지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자녀를 사랑하라’라는 명령은 하지 않으셨을까요? 부모 공경이 자녀 사랑보다 더 큰 덕목이기 때문에 그러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십계명에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부모 공경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죠. “나는 이미 잘 부모님을 공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한 일 아닙니까?”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물론 소수의 분들 중에는 정말 효도를 잘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이 말씀의 본뜻을 우리가 잘 이해한다면 선뜻 내가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엔 시대의 편견을 거스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의 본뜻이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성사학자인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Hans Joachim Kraus)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십계명 중 5계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실제로 다섯째 계명의 청중은 연로한 부모의 생존권을 보장할 책임이 부과된 성장한 자녀들이다. 오늘날 이 계명은 주목할 만한 현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로한 부모들이 차가운 다락방과 지하실 또는 불쾌한 양로원에 처박혀 있는 상황, 즉 젊은 세대들이 그들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하는 권리주장들이 노인들의 생존권을 엄격하고 냉정하게 제약하거나 무시하는 상황에서 이 계명이 주어진다.”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1918-2000) 『조직신학-하나님의 나라, 자유의 나라』 414쪽.

 

다시 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이 말씀은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성인이 되어 경제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힘과 능력이 있는 자녀들이 말씀의 일차적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나오는 ‘네 부모’는 고령층에 접어들고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상실했으며 사회적인 약자가 되어 있는 부모들을 말합니다. 즉,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가 된 연로한 부모님들을 공경하고 봉양하라는 말씀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주된 내용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뜻을 담아서 제5계명을 번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너희의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

어린 자녀들이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날 때,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힘도 없는 자녀들이 부모를 버리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부모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요. 또 부모님이 경제적인 능력과 힘이 있고 정신적으로 또렷하고 건강도 좋다면 나이가 어떠하든지 자녀들이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님이 힘이 있고 정신도 온전한데, 부모님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돈도 없고 힘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아 병원도 자주 가며 설상가상으로 치매까지 걸려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자녀가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무시하는 말을 하고 짜증도 잘 부리게 되죠. 또 상대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부모를 너희는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께서 저에게 좋은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모리가 화요일에 다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모리 교수의 미발표 유작들을 모아서 발간한 책입니다. 어떻게 노인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지 저자의 고민과 해결 방안이 들어 있습니다. 그 책에는 ‘노인 차별’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인 낙인’이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사회 속에 노인 차별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히 많음을 저자는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노인으로 낙인찍는 것,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개인주의의 만연을 꼽았습니다. 개인주의는 개인이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유로 돈을 중시하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꼽았습니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은퇴 후 수입이 없으면 사회는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연금수급자, 저소득층, 노숙자 같은 범주에 두고 생산성 없는 존재로 차별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요소로는 젊음을 숭배하는 현대적인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꼽았습니다. 모든 매체와 문화가 인격보다는 외모와 젊음을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소해지고 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매력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요소 하나는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현대의 욕구를 꼽고 있습니다. 현대의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감에 노인들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노인층을 무시하고 낡은 기계처럼 여긴다는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그 책에는 노인들이 낙인찍히고 차별받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노인들이 냉대받을 수 있는 이유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은 노인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노인의 길을 가야만 할 텐데 말입니다. 가수이며 작곡가인 ‘서유석’님이 발표한 노래가 있습니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어쩌면 나이 드신 어른들은 이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 그런데 이 말을 젊은이들은 듣지 않지요.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아마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우리 노인들은 아마 이 노래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노인, 나오미의 곁을 지켜 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룻기입니다. 룻기는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 사이에 일어난 아름다운 사랑, 우정, 그리고 효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불행했던 나오미, 그런데 그 옆에 참으로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웠던 며느리 룻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오미와 룻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로부터 시작되지요. 때는 사사 시대였습니다. 유다 앞 베들레헴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 엘리멜렉은 그곳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더 좋은 땅을 찾아 모압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갔고, 그 땅에서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집안에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되었고, 또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깜짝할 사이에 세 여인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자기 자신은 나이가 많아 더 이상 희망이 없지만, 두 며느리는 젊은 여인이니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며느리를 돌려보내려는 마음속에는 어쩌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며느리들을 살펴 주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경제적인 능력이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룻 1:20~21)

 

그가 나갈 때에는 큰 꿈을 꾸고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었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성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 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자신에게 기업을 무를 한 분이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 준다면 다시 생명의 길이 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나오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어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룻 1:12)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서 생계를 책임져 줄 남자가 더 이상 없다고 말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가 건강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룻과 함께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가지 못하죠. 룻만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가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갈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귀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여의치 않습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노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자 사회적인 약자이죠.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나오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을 때, 룻은 도리어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결정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내가 죽으면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어머니를 떠난다면 내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단언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자기의 땅도 아닙니다. 그는 모압 여인입니다. 베들레헴 땅에서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결단입니다.

 

<룻은 나오미를 지켜 주고 함께할 뿐만 아니라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룻의 모습 속에서 나오미를 향한 아주 멋진 섬김과 효도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한 나오미의 곁을 끝까지 지켜 줍니다. 룻은 자신을 떠나라는 나오미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룻 1:16)

 

룻이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내가 함께하겠습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이것이 룻이 보여준 첫 번째 효도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로 룻의 효도는 연로한 시어머니의 생존권을 보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나갈 수도 없을 정도의 형편입니다. 룻은 그를 대신해서 이삭 줍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부모, 스스로 생존이 어려운 부모를 안전하고 평안하게 모시는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고 필요를 채워 주는 효성이 룻의 모습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룻이 보여 주는 효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오미의 말년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나눈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아주 긴밀한 소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룻은 일어났던 일들을 그날그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이야기합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조언을 해 줍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조언을 존중하며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행동합니다. 룻기 2장과 3장을 보면, 룻과 나오미 사이에 긴밀한 소통과 아주 사랑스러운 대화의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한 곳을 한번 보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 3:1~5)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대화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대화입니까? 자기 아들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룻과 나오미 사이에 얼마나 친밀한 관계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서로 소통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한 것뿐만 아니라 깊은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어머니를 격려하고, 희망을 주고, 또 살 만한 행복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효도의 열매는 씨를 맺어 대대로 놀라운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인용한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연로한 나이 든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하였지요. 그는 그 책에서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그들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뿐 아니라 행복한 노년기가 되도록 배려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제는 물질적인 보살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고난, 쇠잔과 쇠약에 대한 존경, 전통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이고 우호적인 태도, 크고 작은 일에서의 협력과 친절한 도움이 곁들여져야 한다.”

 

이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의 진정한 속뜻이라는 말씀입니다. 효는 그저 부모님에게 돈만 갖다 주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성스럽게 번 돈을 드리는 것 그 자체가 물론 어느 정도의 효도는 되겠지만, 그것만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크고 작은 일에서 부모님을 친절하게 도와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부모님께 존경을 표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부모님께서 걸어 왔던 역사를 존중해 주고 그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격려해 드리며, 또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을 지혜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효도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글쎄요, 룻이 처음 나오미를 따라오려고 할 때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알았을까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아스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따라가면 이런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오지 않았겠지요. 그저 단순했습니다. 자신의 시어머니를 살려야 된다,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길을 따라왔는데 어머니에게 하나의 축복의 씨앗이 남겨 있었습니다. 그의 친족 중에 한 사람, 보아스입니다. 그를 통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그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가 바라거나 찾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효성스러운 사람, 룻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면, 효도의 씨앗은 열매를 맺어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인격은 견습과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모습을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견습과 모방을 통해 그들에게도 효성이 형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대대로 전승되고 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대대로 아름다운 효도가 한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Blessing That Started From A Mother

 

Ruth 1:15-18

 

This was what I read in a newspaper article published on April 7.

 

A 50-year-old man was sentenced to 22 years in prison on April 5 for beating his mother to death. In September 2023, when his mother visited his home, he shoved her to the ground and ruthlessly assaulted her. Due to her son’s violent attacks, 21 ribs were found broken at the time of her death.

 

When I think of how this mother would have felt as she died from her son’s brutal attacks, my heart breaks.

 

Today is Parents’ Sunday. It is a day to thank and remember our parents who gave birth to us, raised us, and loved us; it is also a day to give thanks to the Lord blessing us with parents.

 

On Parents’ Sunday we always remember God’s commandment to us.

 

God called His people, the Israelites, out of Egypt, set them apart, and gave them His commandments at Mt. Sinai. The fifth of those Ten Commandments is “Honor thyfatherand mother”: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Exodus 20:12)

 

In fact, God’s command to honor our parents can be found in many places of the Bible. In the laws on assault we can also find a command regarding our relationship with parents:

 

“Anyone who attacks their father or mother is to be put to death.”(Exodus 21:15)

 

“Anyone who curses their father or mother is to be put to death.” (Exodus 21:17)

 

Leviticus says this:

 

“Anyone who curses their father or mother is to be put to death. Because they have cursed their father or mother, their blood will be on their own head.”(Leviticus 20:9)

 

Words on honoring parents are not confined to the Old Testament. This is what it says in Ephesians: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so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Ephesians 6:1-3)

 

Every Parents’ Sunday we recall these words. We meditate on its meaning.

 

This might sound strange, but let me ask this question: why is there a commandment on honoring our parents in the Bible? You may answer, ‘It’s only fitting!’ But reversing our thinking, we can ask, ‘Why isn’t there a commandment on loving our children in the Ten Commandments?’

 

It is because honoring our parents isagreater virtue than loving our children?

 

I believe it is because the former is much more difficult than the latter. Perhaps God knew that honoring our parents is a tough job, which is why Heeven promised a compensation.

 

You may say, ‘I honor my parents well.’You may even say, ‘It’s only fitting to do so. Why should that be so hard?’

 

However, delving deeper into the meaning of God’s commandment to honor our parents, we will understand that it is not easy to keep.

 

God commanded us to honor our parents. But what does thisreally mean?

 

Hans-Joachim Kraus, a world renown theologian, wrote in his book on systematic theology that the commandment to honor one’s parents applied to grownchildren who had the responsibility to ensure the survival of their old, frail parents. According to Kraus, this command has a great significance in our lives today. He points out our reality today in which young people insist on their right to comfort, while coldly ignoring or limitingseniors’rights to a decent life. Old and weak parents are sometimes forced to live in cold basements or cellars or are trapped in unpleasant nursing homes.

 

In other words, the primary target of God’s commandment to honor your parents is grown children who have ability and power such as economic power and social status, rather than underage children.

 

The father and mother in this commandment refer to a socially weak, elderly person who has lost his/her economic ability and social status. Thus the straightforwardmeaning of this commandis this: honor and support your parents who have become weak—physically, economically, and socially. What a fascinating interpretation.

 

Taking this interpretation into consideration, thisfifth commandment among the Ten Commandments may be rendered as such: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who are old and weak.”

 

Hans-Joachim Kraus, therefore, says that the commandment to honor our frail parents is a law that not only protects their right to live, but also ensures a happy old age. To achieve this, Kraus says the younger generation ought not only to provide for the physical needs of the elderly, but also ought to respect their experiences, pains, and atrophy, maintain a critical but friendly attitude toward traditions and customs, and show cooperation and kind help in big and small things.

 

It might only be natural for young children to honor their parents when they are growing up in their love. If your parents have economic ability, power, good health, and a sharp mind, it is only fitting to honor and obey them.

 

However, it would not be easy to honor and care for your parents if they are penniless, powerless, and ill;must be treated at the hospital; and, to make things worse, are mentally ill with a disease like dementia.

 

You may say hurtful words, be irritated at them, ignore them, verbally abuse them, or even physically abuse them like the son mentioned in the article.

 

But what the Bible commands us to do toward such elderly parents is to honor them.

 

Not so long ago, a deacon gave me a book which I had a chance to read during a presbytery retreat. The book is The Wisdom of Morrie: Living and Aging Creatively and Joyfully.

 

It is a collection ofunpublished writings by the late Morrie Schwartz, author of Tuesdays with Morrie. It contains Schwartz’s thoughts on and solutions to living happily in old age. The book, therefore, dedicates many passages to theproblem of ageing.

 

It uses the expression “age-casting” and “stigma of ageism”a lot. It observes that our society today discriminates against seniors,culturally and socially. Furthermore, Schwartz points outseveral reasons why age discrimination, ageist biases, and stigma of ageism occur.

 

First, individualism is pervasive in our society today. This makes us prize personal independence, which inevitably leads us to discount anyone who is unable take care of himself/herself and is dependent on others.

 

Second, we live in a society and culture that value money. In such a society, retired seniorswithout an income are seen as a failure. They are put in the same category as pensioners, low-income group, and the homeless.

 

Third, our society and culture worship youth. All around us, the media andculture idolize a person’s appearance, instead of his/her character, and admire youth. In this sense, a senior is just an unattractive person.

 

Furthermore, Schwartz points out that themodern desire for speed and efficiency is also a factor. Since old people cannot respond to speed well, they are written off as some broken down machine.

 

There are many reasons why seniors are not welcome in this world. It is a truly sadreality.

 

Let me quote some lines from a song by Seo Yoo-Seok, a singer and composer:“Have you ever been old? I have been young.From this moment on, it’s a new start.”Perhaps this is what our seniors want to say to the young.

 

I have talked abouta lot of things. But let me return to today’s Scripture.

 

Today’s passage is from the Book of Ruth. This book deals with a beautiful love story between Naomi and her daughter-in-law, Ruth. The Bible tells us that although Naomi led a tragic life, she had a loving and loyal daughter-in-law—Ruth.

 

The story starts with the tragic events that occurred in Naomi and Ruth’s family.

 

It was the era of the judges. When a famine struck Bethlehem in the land of Judah, Elimelech took his wife, Naomi, and their two sons to the land of Moab. There the sons got married to Moabite women.

 

But then, all the men in the family die. After the death of Naomi’s husband, her two sons, Mahlon and Kilion, also die. Only three widows are left.

 

So Naomi proposes that her two daughters-in-law return to their homes. She thinks that although she is too old and without hope, her two young daughters-in-law may have a chance of survival in their homelands.

 

When Naomi tried to send her daughters-in-law back home, she may have done so out ofsheer desperation.

 

First of all, Naomi has lost all economic ability. She says:

 

“‘Don’t call me Naomi,’ she told them. ‘Call me Mara, because the Almighty has made my life very bitter. I went away full, but the Lord has brought me back empty.’”(Ruth 1:20-21)

 

She is also old. She says:

 

“Return home, my daughters; I am too old to have another husband.” (Ruth 1:12)

 

And frankly, her health seems to have deteriorated considerably. This is reflected in the fact that Naomiwas unable to go out with Ruth to pick up the leftover grain in the fields when she returned to Bethlehem. We may guess that her health was very poor.

 

In short, she was a burden. She had no money. Her health was poor. She was old. If anyone received an ageist stigma, it would have been her. She was a socially weak person who couldn’t survivewithout someone else’s help.

 

Yet when Naomi encouraged her two daughters-in-law to return to their homes, Ruth insisted on following her. What an amazing decision! Living alone would have been a far better choice. Can you imagine the difficulties involved in living with and supporting an old mother-in-lawwith nothing? Considering that Ruth’s husband wasalready dead, how reckless her decision seems! Yet Ruth follows Naomi.

 

This was Ruth’s first act of service and filial love toward Naomi. Ruth protected Naomi, a woman who had lost everything, to the end by refusing to leave her. This is what Ruth says to Naomi who urges her to leave:

 

“Don’t urge me to leave you or to turn back from you.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stay I will stay.” (Ruth 1:16)

 

Ruth is truly beautiful in that she does not leave her poor, ill, weak, and utterly powerless mother-in-law.

Second, out of filial love, Ruth ensures the survival of theold and frail Naomi. Ruth willingly collects leftover grain to provide for her mother-in-law. As we saw in Kraus’ writings, the Bible depicts Ruth’s filial love as a love that supports a frail parent who cannot survive on his/her own, ensuring the safety and peace of that parent.

 

You have heard about Goryeojang of the Goryeo era. It was a custom of abandoning one’s parents in the mountains or a cave in old age. AlthoughGoryeojang is known to have been a crime committed out of destitution and necessity, it was a crime against humanity. I once saw a TV program on “the modern Goryeojang,” the abandonment of old parents in bustling airports or train stations today.

 

Although she was a Gentile, Ruth observed the fifth commandment of the Ten Commandments faithfully. She was a filial daughter-in-law who did not refrain from picking up leftover grain to ensure the survival of her frail mother-in-law in old age.

 

Lastly, Ruth shared her life with Naomi, allowing the old woman to enjoy a happy old age. Ruth told Naomi about what happened with Boaz on a daily basis, communicated with her constantly, and sought her advice. Ruth respected her mother-in-law’s advice and followed them. In Ruth 2 and 3, we see many scenes where the two women are talking and closely communicating. Let’s look at one of them:

 

“One day Ruth’s mother-in-law Naomi said to her, ‘My daughter, I must find a home for you, where you will be well provided for. Now Boaz, with whose women you have worked, is a relative of ours. Tonight he will be winnowing barley on the threshing floor. Wash, put on perfume, and get dressed in your best clothes. Then go down to the threshing floor, but don’t let him know you are there until he has finished eating and drinking. When he lies down, note the place where he is lying. Then go and uncover his feet and lie down. He will tell you what to do.’‘I will do whatever you say,’ Ruth answered.”(Ruth 3:1-5)

 

Ruth not only provided for Naomi, but made her feel respected and gave her a sense of happiness by becoming her family.

 

You rememberKraus’ words that honoring one’s parents is not just about providing for them, right? Let’s review his words again. Kraus argues that God’s commandment to honor our frail parents is a law that not only protects their right to live, but also ensures a happy old age. He also writes that the younger generation ought not only to provide for the physical needs of the elderly, but also must respect their experiences, pains, and atrophy; maintain a critical but friendly attitude toward traditions and customs; and offer cooperation and assistance in big and small things.

 

You have not completed your duty to honor your parents by just sending them money. Of course, giving parents your hard-earned money reflects a deep filial love. But God wants us to kindlyhelp our parentsin things big and small, talk to them, look up to them, and respect their words.

 

Ruth who displayed this filial love became the great-grandmother of David; furthermore, she was blessed to become an ancestor of Jesus. Perhaps, without this filial love of Ruth, David may not have been born; andneither could Jesus have been born in the family line of David.

 

Let me wrap up my sermon. The filial love shown by Ruth was to spend time with her mother-in-law and to be attentive to her. Furthermore, she was considerate toward the economic needs of her mother-in-law and tried to make her feel respected and happy as a person.

 

If we honor our parents, that seed of filial love will eventually bear fruit and come back to us. It is because not only God but also our children witness the lovewe show our parents.

 

A person’s character is built by seeing and copying. Children will learn from and copy their parents who honor their parents. The fruit of our love and actions will come back to us. Furthermore, when your children honor you, your grandchildren will see this, and they, too, will develop a character that honors their parents.

 

God desires Christian families to pass down filial love and respect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May your families be blessed with God’s grace so that this beautiful love for parents will endure for generations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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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5~18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부모 공경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난 4월 7일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의 내용이 실렸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마구잡이로 폭행해서 어머니를 숨지게 한 50대 한 사람이 징역 22년 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지난해 9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어머니를 밀어 넘어뜨리고는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서 어머니는 사망 당시에 갈비뼈가 21개가 부러졌다고 하는 내용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었을 텐데요. 얼마나 사랑스럽게 키운 아들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에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면서 죽어 간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종종 이런 일들이 일어나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기억하곤 합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 참 많이 있습니다. 율법 말씀 중에 부모에게 폭행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5)

 

또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7)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죽음에 해당된다는 아주 강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약 성경에만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말씀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이 말씀을 늘 함께 되뇌고 다시 상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공경에 대한 마음을 다시 갖곤 합니다. 조금 이상한 질문 같지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자녀를 사랑하라’라는 명령은 하지 않으셨을까요? 부모 공경이 자녀 사랑보다 더 큰 덕목이기 때문에 그러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십계명에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부모 공경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죠. “나는 이미 잘 부모님을 공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한 일 아닙니까?”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물론 소수의 분들 중에는 정말 효도를 잘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이 말씀의 본뜻을 우리가 잘 이해한다면 선뜻 내가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엔 시대의 편견을 거스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의 본뜻이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성사학자인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Hans Joachim Kraus)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십계명 중 5계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실제로 다섯째 계명의 청중은 연로한 부모의 생존권을 보장할 책임이 부과된 성장한 자녀들이다. 오늘날 이 계명은 주목할 만한 현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로한 부모들이 차가운 다락방과 지하실 또는 불쾌한 양로원에 처박혀 있는 상황, 즉 젊은 세대들이 그들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하는 권리주장들이 노인들의 생존권을 엄격하고 냉정하게 제약하거나 무시하는 상황에서 이 계명이 주어진다.”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1918-2000) 『조직신학-하나님의 나라, 자유의 나라』 414쪽.

 

다시 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이 말씀은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성인이 되어 경제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힘과 능력이 있는 자녀들이 말씀의 일차적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나오는 ‘네 부모’는 고령층에 접어들고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상실했으며 사회적인 약자가 되어 있는 부모들을 말합니다. 즉,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가 된 연로한 부모님들을 공경하고 봉양하라는 말씀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주된 내용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뜻을 담아서 제5계명을 번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너희의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

어린 자녀들이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날 때,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힘도 없는 자녀들이 부모를 버리고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부모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요. 또 부모님이 경제적인 능력과 힘이 있고 정신적으로 또렷하고 건강도 좋다면 나이가 어떠하든지 자녀들이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님이 힘이 있고 정신도 온전한데, 부모님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돈도 없고 힘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아 병원도 자주 가며 설상가상으로 치매까지 걸려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자녀가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무시하는 말을 하고 짜증도 잘 부리게 되죠. 또 상대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부모를 너희는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께서 저에게 좋은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모리가 화요일에 다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모리 교수의 미발표 유작들을 모아서 발간한 책입니다. 어떻게 노인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지 저자의 고민과 해결 방안이 들어 있습니다. 그 책에는 ‘노인 차별’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인 낙인’이라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사회 속에 노인 차별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히 많음을 저자는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노인으로 낙인찍는 것,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개인주의의 만연을 꼽았습니다. 개인주의는 개인이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은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유로 돈을 중시하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꼽았습니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은퇴 후 수입이 없으면 사회는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연금수급자, 저소득층, 노숙자 같은 범주에 두고 생산성 없는 존재로 차별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요소로는 젊음을 숭배하는 현대적인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꼽았습니다. 모든 매체와 문화가 인격보다는 외모와 젊음을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소해지고 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매력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요소 하나는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현대의 욕구를 꼽고 있습니다. 현대의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감에 노인들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노인층을 무시하고 낡은 기계처럼 여긴다는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그 책에는 노인들이 낙인찍히고 차별받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노인들이 냉대받을 수 있는 이유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은 노인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노인의 길을 가야만 할 텐데 말입니다. 가수이며 작곡가인 ‘서유석’님이 발표한 노래가 있습니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어쩌면 나이 드신 어른들은 이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 그런데 이 말을 젊은이들은 듣지 않지요.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아마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우리 노인들은 아마 이 노래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노인, 나오미의 곁을 지켜 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룻기입니다. 룻기는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 사이에 일어난 아름다운 사랑, 우정, 그리고 효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불행했던 나오미, 그런데 그 옆에 참으로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웠던 며느리 룻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오미와 룻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로부터 시작되지요. 때는 사사 시대였습니다. 유다 앞 베들레헴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 엘리멜렉은 그곳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더 좋은 땅을 찾아 모압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갔고, 그 땅에서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집안에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되었고, 또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깜짝할 사이에 세 여인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자기 자신은 나이가 많아 더 이상 희망이 없지만, 두 며느리는 젊은 여인이니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며느리를 돌려보내려는 마음속에는 어쩌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며느리들을 살펴 주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경제적인 능력이 상실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룻 1:20~21)

 

그가 나갈 때에는 큰 꿈을 꾸고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었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성에게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 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자신에게 기업을 무를 한 분이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 준다면 다시 생명의 길이 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가능성도 나오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어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룻 1:12)

 

자신을 아내로 맞이해서 생계를 책임져 줄 남자가 더 이상 없다고 말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가 건강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룻과 함께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가지 못하죠. 룻만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가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갈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귀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여의치 않습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노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자 사회적인 약자이죠.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나오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을 때, 룻은 도리어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결정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내가 죽으면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어머니를 떠난다면 내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단언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자기의 땅도 아닙니다. 그는 모압 여인입니다. 베들레헴 땅에서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결단입니다.

 

<룻은 나오미를 지켜 주고 함께할 뿐만 아니라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룻의 모습 속에서 나오미를 향한 아주 멋진 섬김과 효도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한 나오미의 곁을 끝까지 지켜 줍니다. 룻은 자신을 떠나라는 나오미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룻 1:16)

 

룻이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함께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내가 함께하겠습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이것이 룻이 보여준 첫 번째 효도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로 룻의 효도는 연로한 시어머니의 생존권을 보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나갈 수도 없을 정도의 형편입니다. 룻은 그를 대신해서 이삭 줍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부모, 스스로 생존이 어려운 부모를 안전하고 평안하게 모시는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고 필요를 채워 주는 효성이 룻의 모습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룻이 보여 주는 효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오미의 말년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나눈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아주 긴밀한 소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룻은 일어났던 일들을 그날그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이야기합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조언을 해 줍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조언을 존중하며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행동합니다. 룻기 2장과 3장을 보면, 룻과 나오미 사이에 긴밀한 소통과 아주 사랑스러운 대화의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한 곳을 한번 보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 3:1~5)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대화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대화입니까? 자기 아들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룻과 나오미 사이에 얼마나 친밀한 관계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서로 소통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한 것뿐만 아니라 깊은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어머니를 격려하고, 희망을 주고, 또 살 만한 행복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효도의 열매는 씨를 맺어 대대로 놀라운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인용한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연로한 나이 든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하였지요. 그는 그 책에서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연로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그들의 생존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뿐 아니라 행복한 노년기가 되도록 배려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제는 물질적인 보살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고난, 쇠잔과 쇠약에 대한 존경, 전통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이고 우호적인 태도, 크고 작은 일에서의 협력과 친절한 도움이 곁들여져야 한다.”

 

이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의 진정한 속뜻이라는 말씀입니다. 효는 그저 부모님에게 돈만 갖다 주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성스럽게 번 돈을 드리는 것 그 자체가 물론 어느 정도의 효도는 되겠지만, 그것만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크고 작은 일에서 부모님을 친절하게 도와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부모님께 존경을 표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부모님께서 걸어 왔던 역사를 존중해 주고 그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격려해 드리며, 또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을 지혜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효도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글쎄요, 룻이 처음 나오미를 따라오려고 할 때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알았을까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아스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따라가면 이런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오지 않았겠지요. 그저 단순했습니다. 자신의 시어머니를 살려야 된다,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길을 따라왔는데 어머니에게 하나의 축복의 씨앗이 남겨 있었습니다. 그의 친족 중에 한 사람, 보아스입니다. 그를 통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그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가 바라거나 찾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효성스러운 사람, 룻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면, 효도의 씨앗은 열매를 맺어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인격은 견습과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모습을 우리의 자녀들이 보고 견습과 모방을 통해 그들에게도 효성이 형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대대로 전승되고 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대대로 아름다운 효도가 한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5월 12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어머니를 통해 시작된 축복” (룻 1장 15~18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99장, 57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룻 1장 15~18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5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 공경의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이 말씀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의 말씀은 룻기서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다 베들레헴 땅에 기근이 들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이라는 곳에 가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은 모압여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죽게 됩니다. 결국 세 여인들만 과부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을 때, 룻은 도리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룻이 나오미에게 보여준 모습을 통해 부모 공경과 효도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첫 번째, 룻은 모든 것을 상실한 나오미 곁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룻은 연로한 시어머니의 생존권을 보장하여 주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생계를 위해 이삭 줍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룻은 나오미의 노년이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공유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의 있었던 일들을 그날그날 이야기하며 시어머니의 조언을 구하고 항상 소통했습니다.

 

이와 같이 룻은 나오미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 준 것이 아니라, 나오미가 모든 일에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한 가족이라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룻기가 보여주는 효의 내용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모의 경제적인 삶을 고려하며 무엇보다 그의 삶과 인격이 존중받고 참된 행복을 느끼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대대로 전승되고 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면 분명 그 효도의 씨앗은 다시 열매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한 효도는 하나님이 보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아이가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그리고 우리의 가문이 대대손손 그렇게 아름다운 효도가 한없이 이어지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문화, 노인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봅시다. 노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2. 지금, 우리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드리고 있나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도록 부모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노년에 이른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기를 바라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고, 그의 필요를 채우며, 그의 삶과 마음을 나눔으로 연약하고 힘든 노인들, 부모님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기쁨을 드리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 말씀을 따라 효를 행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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