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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참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수업 내용 기억이 나시나요? 잘 기억이 안 나실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수업의 속성이 아닐까 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처음으로 가르치고자 하셨는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첫 번째 예수님의 수업에서 말씀의 능력을 확인하게 되었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과 이적들을 보고 경험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함께하였습니다. 말씀의 능력도 같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복음에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공관복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기적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에는 그곳에만 나오는 특별한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특별한 기적과 치유의 이야기들은 일관된 한 가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한결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입니다.
우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특별한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종들이 듣고 순종하자 그 말씀대로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가라.”라고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가 치유함을 받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 5:8~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을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있었던 무덤 앞으로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요 11:41~44)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그 말씀에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말을 들으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말을 따라 행동하셨습니다. 늘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예수님께 있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표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다.”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죠. 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러 간다. 그러고 나서 너희를 다시 데려가겠다.”라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참과 진리이며 분명히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고 배우며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별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구성을 보면 13장에서 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하셨던 날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 장들 속에 특별히 공관복음에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마태와 마가, 누가가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잔을 드시고 축사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식사하신 이야기를 아주 짧게 요약한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 뒤에 하셨던 세족의 예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족의 예식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특별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본문에 앞서서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기 자신이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아셨고,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곧 있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물론 공관복음이 전하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식사하시던 중에 일어나셔서 대야를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4~7)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를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풍습에는 식사 전에 발을 씻는 정결예식이 있습니다. 보통 정결예식은 식사 전에 이루어지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통상적인 정결예식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던 중에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다른 의미를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일반 정결예식은 종들이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는데,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모습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셨을까요? 표면적으로 본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족식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2~15)
예수님께서 자신이 왜 세족식을 거행하셨는지 이유를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너희도 가서 나와 같이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족식에는 ‘신을 벗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행하신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일까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라.’라는 메시지를 위해서 세족의 예식을 거행하셨을까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말씀을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세족’의 예를 드셨을까요? 어떤 분은 ‘세족의 예가 가장 극명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족의 예에 강력한 교육적 효과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세족의 예를 거행하셨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질문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말씀하실 때, 특히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지금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에 세족식을 행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왜 이런 말씀을 특별하게 하셨을까요? 또 다른 세족의 의미가 있다는 말인지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세족의 예식을 거행하셨는지 알기 위해서는 구약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구약의 이야기는 모세가 호렙산의 불붙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놀라운 장면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거룩한 땅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신을 벗어야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신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거룩한 곳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40여 년을 살았으니 그의 신발이 해질 만도 하고, 지저분할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을 벗었다고 해서 그의 발이 깨끗했겠습니까? 여전히 지저분한 그의 발이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명령은 ‘조금 더 깨끗해야 한다, 깨끗한 발로 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는 새로운 소명을 위해 ‘이제 신을 벗으라’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길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라’라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정리할 때 우리는 ‘이력서(履歷書)’를 만들곤 합니다. 이력서의 한자 중에 ‘이(履)’라는 단어는 ‘밟을 리, 신 리’입니다. ‘밟았다’ 또는 ‘신을 신고 다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력(履歷)’이라는 말은 신발의 역사이며 내가 밟아 온 길의 역사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든 삶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력, 새로운 삶의 길을 쓰라는 초청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엑소더스’라고 합니다. 이 말 역시 ‘길에서 벗어나라’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신을 벗고 새로운 소명으로 출애굽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 광야에서 살았던 방랑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명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 바로왕의 치하에서 살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삶의 길로 들어서라는 초청입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 엑소더스’입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는다’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소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소명의 길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이러한 구약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다시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흥미로운 요한복음의 전개가 뒤에 이어집니다. 비슷한 문장이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요한복음 13장 36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6)
무엇인가 유사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지만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베드로에게 지금은 네가 따라올 수 없지만 이후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길을 따라오라는 말씀일까요? 베드로는 직감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구나, 수난의 길을 따라오라는 것이구나’라고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께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요 13:37)
“저는 죽을 자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마음이 충분합니다.”라는 결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 13:38)
“너는 아직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올 수 없다. 도리어 너는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의미는 ‘섬기는 자가 되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길이 고난의 길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냥 따라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냥 취미로 따라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신발을 바꾸어 신고, 삶과 태도를 바꾸어 결의를 다지고서야 따라오는 길입니다. 바로 사랑의 길이고, 섬김의 길이고, 희생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또한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새로운 소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 내 제자가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결코 쉽거나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난의 길이며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길입니다. 결의를 다지고 단호하게 돌아서야 하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길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용서와 섬김의 길은 자기를 죽이고 욕망의 본성을 제어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바와 같이 끝까지 인내하며 사랑해 내는 것입니다. 상대의 상황이나 상대방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배신과 배반, 멸시와 천대, 폭력과 조롱 앞에서조차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사랑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진정한 사랑이며, 용서와 섬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 모습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치를 당하셨지만 주님은 잠잠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쳤고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말하며 왕으로 호칭하였지만, 그들은 같은 입으로 며칠 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 길로 들어서라는 초대이자 명령이 예수님께서 발을 씻으신 교훈의 이유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실 때 모두 도망갔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기는커녕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예수님조차 제대로 사랑하거나 지켜 내지 못하는 부끄러운 제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는 다시 새로운 소명을 받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말씀 후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 21:18~19)
세족의 자리에서는 ‘아직 나를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이후에는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베드로가 옆에 있는 다른 제자들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2)
‘다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더 사느냐?’, ‘나는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너는 그저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바라보고 고난의 길에 함께하라.”라는 초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보다 깊은 의미에 도달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각각 닦아 주시면서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을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아셨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는 멀리 인도까지 가고, 어떤 제자는 이방인들을 향해 가고, 어떤 제자는 수없이 맞으며 고난의 길을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법 긴 인생을 살고, 어떤 사람은 목이 잘려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에는 생명과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 용서와 평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 부활의 소망이 그들에게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실 때 그의 발에 훗날 예수님과 똑같은 못 자국이 생겨날 것을 주님께서는 미리 보셨겠지요.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얼마나 처량하고 안타까우셨을까요. 주님께서는 그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이 아니라 자신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깨끗하게 주님의 보혈로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사랑의 길, 용서의 길, 섬김의 길로 나오라.” 아직 그렇게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6)
아직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언젠가 너는 나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그 초청에 완전히 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Jesus’s Last Lesson
John 13:3-11
A few weeks ago, I preached a sermon titled, “Jesus’First Lesson.” By studying the wedding feast in Cana in John 2, we learned what Jesus wanted to show and teach His disciples. In this first lesson the disciples confirmed the power of Jesus’ words and learned that miraculous things can happen by obeying them. After thatrealization, they started to follow Jesus.
The disciples also witnessed the many miracles Jesus performed with His words during His public ministry. They saw Jesus heal the sick, feed five thousand people with just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and walk on the lake.
Interestingly, unlike the Synoptic Gospels—that is, Matthew, Mark, and Luke—the Gospel of John does not record that many miracles or healings of Christ. Furthermore, John mentions special stories of Jesus’miracles not mentioned in the other gospels. So, although it mentions the miracle of feeding the five thousand and some other healings, the contents of John do not overlap much with the Synoptic Gospels. Moreover,all thespecial miracles and healings in John deal with how Jesus’ words perform amazing events.
The first miracle of Jesus thatJohn records is the transformation of water into wine at a wedding in Cana. The servants did exactly as they were told by Jesus and experienced for themselves how water turned into wine. And the disciples saw this.
In John 5, Jesus heals a sick man at the pool of Bethesda. Here, too, He commands the paralytic to pick up his mat and walk, and the Bible testifies that the miracle occurredaccording to His word:
“Then Jesus said to him,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At once the man was cured; he picked up his mat and walked. The day on which this took place was a Sabbath,”(John 5:8-9)
Another miracle of Jesus in John is the resurrection of Lazarus. Here also Jesus speaks and it is done as He commands. Jesus tells the people to remove the stone at the grave. Then this is what our Lord does:
“‘I knew that you always hear me, but I said this for the benefit of the people standing here,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sent me.’When he had said this, Jesus called in a loud voice, ‘Lazarus, come out!’The dead man came out, his hands and feet wrapped with strips of linen, and a cloth around his face. Jesus said to them, ‘Take off the grave clothes and let him go.’”(John 11:41-44)
Through the story of Lazarus rising from the dead, John testifies again that God heard Jesus’ words and did as Jesus spoke. In short, John is stating that Jesus’ words are true, that they become the truth.
As such, the disciples learned the power of Jesus’ words and followed Him, the Lord of power. But now, it was time for them to part with Him. Today’s passage describes what Jesus showed and taught His disciples at precisely that moment of farewell.
If we follow the structure of John, we will see that chapters 13-17 have to do with the final days and hours Jesus spent with His disciples. While the Synoptic Gospels describe the Last Supper and what happened after it, the Gospel of John records, in more detail, what Jesus said to His disciples and His prayer to God after the Last Supper.
In particular, while the Synoptic Gospels write in detail about the Last Supper and how Jesus takes and blesses the bread and wine, John omits the details of the Last Supper and instead writes about Jesus washing the disciples’ feet. So the story of Jesus washing the disciples’ feet is a special one found only in John.
And that story starts like this: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ast. Jesus knew that the time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now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John 13:1)
As Jesus predicts His imminent death, He shares His last meal with His disciples. This would have been, of course, the Last Supper that the Synoptic Gospels write about. But during that meal, Jesus suddenly gets up and starts washing the feet of His disciples:
“so he got up from the meal, took off his outer clothing, and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After that,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his disciples’ feet, drying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wrapped around him.He came to Simon Peter, who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John 13:4-7)
Jesus washed the feet of His disciples with a certain intent. In fact, Jews observed the purification ritual of washings their feet before a meal. Normally, however, this would be done before the meal. But Jesus washed the feet of the disciples in the middle of it. So Jesus’ washing of the disciples feet was not just any purification ritual. Furthermore, usually the servantsdid the washing. This time, however, it was Jesus who washed the disciples’ feet.
Jesus also says to Peter that although he will notunderstand the meaning of His actions now, he will later. So, this was Jesus’ last lesson. Then what did He intend to teach the disciples through it?
The answer can be found easily by looking at what Jesus says to them after He washes their feet. The story continues like this:
“When he had finished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clothes and returned to his place. ‘Do you understand what I have done for you?’ he asked them.‘You call me Teacher andLord, and rightly so, for that is what I am.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John 13:12-15)
In short, Jesus is saying, “You must serve others as I did.”Our Lord is saying that we too must live a life of service to one another. We must go down to lowly places like Him, wash the feet of people in humility, and serve. This was our Lord’s last command.
Since our Lord Himself explained His actions as such, it would only be fitting for us to interpret the core lesson of Jesus washing His disciples’ feet as His command to become servants.
Yet a question remains. Why did Jesus say to Peter,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John 13:7)?Let me rephrase my question: if Jesus was going to explain the meaning of His actions a moment later, why then did He say this to Peter?
Might there be another reason that He washed the disciples’ feet? In fact, in order to understandHis intended lesson in washing their feet we must first look at a story in the Old Testament.
The first Old Testament story to examine isthe one on Moses encountering God at the burning bush on Mt. Horeb. When Moses approaches the strange sight, this is what God says:
“‘Do not come any closer,’ God said.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ground.’”(Exodus 3:5)
Before giving Moses a new calling, God made Moses take off his sandals. He had to stand on holy ground barefoot. But after 40 years of shepherding in the desert, do you think Moses’ feet would have been clean even without his sandals? No. He had taken off his sandals, but his feet were still dirty. But God commands Moses to take them off and then gives him a new calling: deliver My people from Egypt.
Therefore, taking off one’s sandals means not just to become a bit cleaner and less dusty; it is God’s invitation to a new path. To take off one’s sandals means to leave the path you have been taking and to enter a new road.
The Korean word for “curriculum vitae” is “iryeokseo.” The first syllable “i” comes from the Chinese word “履,” which means “to step on” or “shoe(s).” In other words, the Korean word for CVrefers to“the history of one’s shoes, the history of my steps.” So taking off one’s shoes means to get off the life path we have been taking and to enter a new one.
The book about the Israelites escaping Egypt is called “Exodus.”After taking off his sandals, Moses receives a new calling from God: God commands him to lead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The word “exodus” also means to “break away from one’s path.” It is to enter a new path, breaking away from one’s former path. Therefore,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was a break away from the way of life under Pharaoh and an entrance into anew path of life governed by God.
Therefore, to take off one’s sandals has a special meaning.
The prophet Isaiah sings of feet that have received a new calling:
“How beautiful on the mountains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who proclaim peace, who bring good tidings, who proclaim salvation, who say to Zion, ‘Your God reigns!’” (Isaiah 52:7)
God had Moses take off his sandals and sanctified his feet in order to make them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Now why don’t we return to the scene of Jesus washing the feet of the disciples, our passage for today, with these Old Testament stories in mind? Jesus’ritual of washing the disciples feet may primarily be seen as Jesus call to serve one another. But our Lord’s intention goes beyond that.
We have yet to find the answer to my previous question, that is, why Jesus said to Peter,“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John 13:4-7) Eventsdevelop in an intriguing way in John. A sentence that sounds similar to Jesus’s words to Peter while washing his feet is found in the last part of today’s passage, John 13:36:
“Simon Peter asked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replied,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John 13:36)
Don’t you see an interesting parallel? You do not realize now, but you will later.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later.
Jesus washed Peter’s feet. Just as Moses’ feet were sanctified under the burning bush, Peter’s feet were cleansed by Jesus’ hands. And Jesus is now saying that although you cannot follow Me now, you will follow Me later.
Which path was Jesus talking about? Peter instinctively knew what He meant. It was the path of laying down one’s life, the path of suffering.
This is why Peter says:
“Lord, why can’t I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John 13:37)
Jesus replies:
“Then Jesus answered, ‘Will you really lay down your life for me? I tell you the truth,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John 13:38)
Jesus is saying, ‘You cannot follow Me yet. You will instead disown me. You cannot follow the path I am taking now.’
Therefore, when Jesus washed the disciples’ feet, He meant not only that they must love and serve each other, but that their path will be one of suffering. The path will not be easy.
Before having such a conversation with Peter, this is what Jesus says: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John 13:34-35)
The reason Jesus washed the disciples’ feet was to give them a new calling. Love one another. Serve one another. By doing so, become My disciples. But this will not be easyor romantic. It will be a path of suffering in this world. It will be a path hard to follow. This was the paththat our Lord called His disciples to.
Love is not romantic. Forgiveness and service are not hobbies. It is to deny oneself, to control one’s desires and nature. It is to love to the end, just as Jesus did. This love should not change depending onthe circumstances of the one we ought to love; we must love in all situations, even in the face of betrayal, contempt, scorn, violence, and mockery. This is the love, forgiveness, and service that Jesus showed us.
Jesus showed this to us on the Cross. Although He was scorned on the Cross, was stripped of His clothes, and stood before people who mocked Him, He silently bore it. When Jesus entered Jerusalem, the crowds shouted, “Hosana! Save us!” But the same crowds shouted, “Crucify him!” Yet Jesus lovedthemto the end.
He instead prayed,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Luke 23:34) He prayed for those who wanted Him killed. This was the extent of His love.
The reason He washed the feet of the disciples was to invite them, to command them to enter this path.
That is why Peter couldn’t take this path readily. In fact none of the disciples did. They all ran away when Jesus was suffering; Peter even denied Him three times. They all failed to follow the path of the Lord.
But surprisingly, Peter receives a new calling after Jesus’resurrection. At Lake Tiberias, our risen Lord prepares a fire and fish for His disciples to eat. At this scene, He asks Peter, “Do you love Me?” and says, “Feed My sheep.” After repeating this three times, He says to Peter:
“‘Feed my sheep. I tell you the truth, when you were younger you dressed yourself and went where you wanted; but when you are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dress you and lead you where you do not want to go.’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Then he said to him, ‘Follow me!’”(John 21:18-19)
When Jesus washed Peter’s feet, He said he couldn’t follow Him yet. Our Lord said he would follow Him later. Jesus, however, now says to Peter, “Follow Me!”
Then Peter asks Jesus what will become of the disciple next to him. Jesus replies:
“If I want him to remain alive until I return, what is that to you? You must follow me.”(John 21:22)
Jesus is telling Peter, ‘Don’t ask how long that person will live, or how his suffering will be different from yours, or why your suffering is greater than his. Just follow me!’
Now we have come to understand the deeper meaning of Jesus’ washing of the disciples’ feet. As our Lord washed each of their feet, He saw the path they would go. He saw the road each one wouldtake. One disciple would go all the way to India, another would go to the Gentiles, and yet another would suffer terribly and be beaten countless times. But their feet would hold life, the Good News. Love, service, forgiveness, and peace! Their feet would hold the hope of resurrection Christ gave us.
When Jesus washed Peter’s feet, He would have known that they would someday be nailed to a cross too—just like Him. How His heart must have ached! Yet our Lord commanded Peter to follow Him as He washed his feet.
Dear Church, the path that our Lord walked was one of suffering. It was a path of scorn, contempt, betrayal, pain, and despair. But at the end of this path, there is the hope of resurrection. Today our Lord washes our feet too, inviting us to follow Him.
Even if the path of love, service, forgiveness, and sacrifice is hard and painful, at the end of it there is the hope of resurrection. That path is the only road to life.
That road is narrow and less trodden. But it is the path of life. It is the very path that our Lord took.
You may say you don’t have the courage to go that path yet. But let us remember what our Lord said to Peter: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John 13:4-7)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John 13:36)
It doesn’t have to be now. Washing our feet, our Lord says to us, “One day you will follow Me.” Even if we may not be ready yet to rise to His call, I hope we will all be able to say “Yes” in faith. ‘Lord, may I follow the path that You took.’ May this be our prayer today.
요한복음 13:3~11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참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수업 내용 기억이 나시나요? 잘 기억이 안 나실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수업의 속성이 아닐까 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처음으로 가르치고자 하셨는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첫 번째 예수님의 수업에서 말씀의 능력을 확인하게 되었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과 이적들을 보고 경험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함께하였습니다. 말씀의 능력도 같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복음에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공관복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기적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에는 그곳에만 나오는 특별한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특별한 기적과 치유의 이야기들은 일관된 한 가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한결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입니다.
우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특별한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종들이 듣고 순종하자 그 말씀대로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가라.”라고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가 치유함을 받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 5:8~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을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있었던 무덤 앞으로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요 11:41~44)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그 말씀에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말을 들으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말을 따라 행동하셨습니다. 늘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예수님께 있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표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다.”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죠. 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러 간다. 그러고 나서 너희를 다시 데려가겠다.”라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참과 진리이며 분명히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고 배우며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별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구성을 보면 13장에서 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하셨던 날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 장들 속에 특별히 공관복음에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마태와 마가, 누가가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잔을 드시고 축사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식사하신 이야기를 아주 짧게 요약한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 뒤에 하셨던 세족의 예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족의 예식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특별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본문에 앞서서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기 자신이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아셨고,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곧 있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물론 공관복음이 전하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식사하시던 중에 일어나셔서 대야를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4~7)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를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풍습에는 식사 전에 발을 씻는 정결예식이 있습니다. 보통 정결예식은 식사 전에 이루어지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통상적인 정결예식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던 중에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다른 의미를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일반 정결예식은 종들이 사람들의 발을 씻어 주는데,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모습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셨을까요? 표면적으로 본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족식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2~15)
예수님께서 자신이 왜 세족식을 거행하셨는지 이유를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너희도 가서 나와 같이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족식에는 ‘신을 벗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행하신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일까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라.’라는 메시지를 위해서 세족의 예식을 거행하셨을까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말씀을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세족’의 예를 드셨을까요? 어떤 분은 ‘세족의 예가 가장 극명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족의 예에 강력한 교육적 효과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세족의 예를 거행하셨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질문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말씀하실 때, 특히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지금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에 세족식을 행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왜 이런 말씀을 특별하게 하셨을까요? 또 다른 세족의 의미가 있다는 말인지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세족의 예식을 거행하셨는지 알기 위해서는 구약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구약의 이야기는 모세가 호렙산의 불붙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놀라운 장면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거룩한 땅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신을 벗어야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신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거룩한 곳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40여 년을 살았으니 그의 신발이 해질 만도 하고, 지저분할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을 벗었다고 해서 그의 발이 깨끗했겠습니까? 여전히 지저분한 그의 발이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명령은 ‘조금 더 깨끗해야 한다, 깨끗한 발로 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는 새로운 소명을 위해 ‘이제 신을 벗으라’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길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라’라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정리할 때 우리는 ‘이력서(履歷書)’를 만들곤 합니다. 이력서의 한자 중에 ‘이(履)’라는 단어는 ‘밟을 리, 신 리’입니다. ‘밟았다’ 또는 ‘신을 신고 다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력(履歷)’이라는 말은 신발의 역사이며 내가 밟아 온 길의 역사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든 삶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력, 새로운 삶의 길을 쓰라는 초청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엑소더스’라고 합니다. 이 말 역시 ‘길에서 벗어나라’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신을 벗고 새로운 소명으로 출애굽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 광야에서 살았던 방랑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명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 바로왕의 치하에서 살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삶의 길로 들어서라는 초청입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 엑소더스’입니다. 그러므로 ‘신을 벗는다’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소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소명의 길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이러한 구약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다시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흥미로운 요한복음의 전개가 뒤에 이어집니다. 비슷한 문장이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요한복음 13장 36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6)
무엇인가 유사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지만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베드로에게 지금은 네가 따라올 수 없지만 이후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길을 따라오라는 말씀일까요? 베드로는 직감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구나, 수난의 길을 따라오라는 것이구나’라고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께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요 13:37)
“저는 죽을 자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마음이 충분합니다.”라는 결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 13:38)
“너는 아직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올 수 없다. 도리어 너는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의미는 ‘섬기는 자가 되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길이 고난의 길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냥 따라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냥 취미로 따라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신발을 바꾸어 신고, 삶과 태도를 바꾸어 결의를 다지고서야 따라오는 길입니다. 바로 사랑의 길이고, 섬김의 길이고, 희생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또한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새로운 소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 내 제자가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결코 쉽거나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난의 길이며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길입니다. 결의를 다지고 단호하게 돌아서야 하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길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용서와 섬김의 길은 자기를 죽이고 욕망의 본성을 제어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바와 같이 끝까지 인내하며 사랑해 내는 것입니다. 상대의 상황이나 상대방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배신과 배반, 멸시와 천대, 폭력과 조롱 앞에서조차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사랑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진정한 사랑이며, 용서와 섬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 모습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치를 당하셨지만 주님은 잠잠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쳤고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말하며 왕으로 호칭하였지만, 그들은 같은 입으로 며칠 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 길로 들어서라는 초대이자 명령이 예수님께서 발을 씻으신 교훈의 이유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실 때 모두 도망갔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기는커녕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예수님조차 제대로 사랑하거나 지켜 내지 못하는 부끄러운 제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는 다시 새로운 소명을 받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 말씀 후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 21:18~19)
세족의 자리에서는 ‘아직 나를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이후에는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베드로가 옆에 있는 다른 제자들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2)
‘다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더 사느냐?’, ‘나는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너는 그저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바라보고 고난의 길에 함께하라.”라는 초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보다 깊은 의미에 도달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각각 닦아 주시면서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을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아셨을 것입니다. 어떤 제자는 멀리 인도까지 가고, 어떤 제자는 이방인들을 향해 가고, 어떤 제자는 수없이 맞으며 고난의 길을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법 긴 인생을 살고, 어떤 사람은 목이 잘려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에는 생명과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 용서와 평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 부활의 소망이 그들에게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실 때 그의 발에 훗날 예수님과 똑같은 못 자국이 생겨날 것을 주님께서는 미리 보셨겠지요.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얼마나 처량하고 안타까우셨을까요. 주님께서는 그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이 아니라 자신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깨끗하게 주님의 보혈로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사랑의 길, 용서의 길, 섬김의 길로 나오라.” 아직 그렇게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 13:7)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6)
아직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언젠가 너는 나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그 초청에 완전히 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3월 24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예수님의 마지막 수업” (요 13장 3~11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51장, 254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요 13장 3~11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3월 2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따라가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말씀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곧 있을 수난과 죽으심을 예견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식사를 하시던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겸손하게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섬기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명을 주시기 위해 모세의 신을 벗기셨던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이제 새로운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초청이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라는 초청입니다. 애굽의 치하에서 살아가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삶의 길로 들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은 일차적으로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는 소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의도는 이것을 넘어섭니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 13:7) – 이 말씀은 곧 목숨을 버리는 길, 수난의 길로 들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새로운 소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쉬운 길이 아닙니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고난의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길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길로 들어서라는 명령과 초대가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 주신 이유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길이 비록 힘이 들고 험할지라도, 용서와 희생의 길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길의 마지막에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나누기
-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 “네가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고 가치가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나를 따라오라 명하시며, 우리의 신을 벗기시고, 거룩하신 물로 우리의 죄악과 헛된 이력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새 길로 들어서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일어나 함께 가자, 나를 따르라 말씀하실 때, 용기를 낼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길을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