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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을 견고케 하소서

시편 90: 1~4, 11~17

김경진 목사

2022.11.06

<재난과 고통을 경험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얼마 전에 일어난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하여서 소망교회도 귀중한 한 분의 성도님을 잃었습니다. 성모병원의 장례식장에 들어갈 때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 기도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영정 앞에 젊은 아내가 있고 그 밑에 열 살, 일곱 살 아이들이 철모르듯 엄마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용하셨을까 싶어 뾰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150여 명의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자녀를 잃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잃고 울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싶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 중에 참으로 힘든 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하시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를 만나면 묻곤 하시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요? 왜 이토록 우리 집안을 힘들게 하실까요?” 그럴 때마다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도할 뿐입니다. 마음 한편으로 저 역시 하나님께 불평하곤 합니다. “하나님, 저 목회하기 싫어요.” 당회를 잘 이끌어 가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비전대로 목회하는 일이 어려워서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시는 분들을 보는 제 마음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줄까?” 하고 물으신다면 서슴없이 “치유의 은사를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것 같습니다. 치유받고 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설교를 잘하면 좋지요. 명설교가 되는 것도 꿈이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치유의 은사를 우선순위에 두고 싶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잘 이끄는 것도 참 좋겠습니다만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제가 설교를 잘 못하게 되면 ‘아, 목사님이 기도를 안하셔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시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이태원 사고를 보면서 성도님들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계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그곳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감사하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고, 그곳에 간 사람들이 잘못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죄를 받았다고도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더러는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겠다고 새롭게 결심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모든 경우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 가족이 피해받지 않았을 뿐 언젠가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죽었을 때,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론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던 분들 중에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를 그렇게 잘 믿어도 병이 오고,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사는 사람도 사건과 사고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태원 사건을 두고서 죄가 많아서 죽었다고 한다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난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떤 신앙적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티끌 같은 인간 존재를 겸허히 인정합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90편입니다. 기도의 형태이자 탄원의 형태로 되어 있는 말씀이죠. 저는 이 기도를 읽을 때마다 마치 저의 기도처럼 여겨져서 공감이 가곤 합니다. 시편 90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소제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이신 주”라는 설명이 또 하나의 작은 제목으로 붙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모세의 기도로 제목이 붙여진 유일한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꿰뚫고 있는 듯한 지혜자 모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긴 연설을 마친 후에 여호수아에게 지도권을 이양하고, 느보 산에서 백성들을 환송하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홀로 남아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듯한 본문이 오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을 회고하는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

 

그의 첫 번째 기도 내용은 이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부릅니다. 모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의 아버지의 하나님, 그 아버지의 하나님, 거슬러 올라가 야곱의 하나님이시자 이삭의 하나님이시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을 부른 것입니다. 선조들의 하나님을 부른 셈이죠.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모세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은 홀로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공간에 갇혀 계시거나 고립되신 분이 아니라 인간과 끊임없이 교류하시고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자, 이렇게 모세는 인간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분에 대한 성품을 표현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그리고 땅과 세계가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계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이야기한 모세는 인간의 척박한 현실을 이어서 묘사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3~4)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해 인간은 참으로 미약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결국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고백한 인간의 현주소였습니다.

성경은 ‘티끌’이라는 단어에 각주를 달고, “파멸로”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가능하다고 알려 줍니다.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이자 파멸로 치닫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의 인생은 힘들고 어려운 일로 가득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위기를 겪으며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입니다. 다행히 왕궁에서 40여 년을 살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벌인 살인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광야에서 이름 없이 4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애굽에서는 바로 왕과 맞서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는 다른 민족과 싸워야 하는 전쟁의 위협도 숱하게 일어났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또 어땠습니까? 고라 자손의 반역이 있었고,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임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 안에 계속되는 불평과 반역을 경험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모세는 여러 사건과 사고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나온 백성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는 성경의 증언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 모든 것을 보아 온 모세가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는 인간이 겪는 문제를 거명하지는 않습니다. 절망케 하는 일, 질병이나 기근, 전쟁이나 억울한 사고 등을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본 인간의 현주소이자 종말적인 모습입니다. 이 현실이 다르게도 표현됩니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시 90:5~6)

 

홍수에 쓸려가는 듯 인간이 죽어 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아마도 이 말을 하면서 모세는 홍해에 떠 있던 애굽 군대들의 주검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좇다가 죽임을 당했을까요? 참으로 참혹한 죽음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갑니다. 명분 없는 싸움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 가는 현실을 봅니다. 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겠습니까? 과연 애국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을까요? 그나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목숨을 잘 유지해서 세상 떠날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전쟁 경험 없이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삶이 쉽게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 아닙니까? 아침에 돋은 풀이 저녁에 시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다양하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을 목도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청합니다.>

 

티끌처럼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또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하심에 소멸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7~9)

 

하나님의 진노 중에 죽어 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추는 백성들이 있었고, 고라 자손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그만 땅이 갈라져서 모든 가족과 재산이 삼키어지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일들을 회고하며 하나도 숨기지 않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애석하게 여기시는 죽음도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이 그러한 경우였습니다. 아말렉 군대는 백성의 후미를 쳐서 이스라엘의 아이들과 연약한 이들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참으로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모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게 하셨는데, 아말렉 군대의 공격에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불평이 따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도 이 공격에 대해서는 진노하고 계셨습니다. 아말렉의 비겁한 전투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도, 그분의 뜻도 아니었습니다.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패역한 사건들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아말렉과 같은 종족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7~19)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하나님께서도 화를 내시며 아말렉을 기억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연약한 자들이 힘없이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경험한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인생 속에서 다양하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을 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내심으로 죽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인간은 결국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이자 파멸로 치닫는 존재입니다. 홍수처럼 쓸어 가실 때 쓸려가고, 풀이 마르듯 짧은 인생을 보내고 시드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만드는 죽음도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하며 모세가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하나님 앞에서 인간사를 솔직히 고백한 모세는 이제 탄원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우리의 날을 계수할 능력을 주십시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언제 죽는지 알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겠습니까? 아마도 이 기도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진실로 알게 해 달라는 탄원이 아니겠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 깨달을 수 있다는 모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티끌과도 같은 인생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혜로운 마음”을 간청합니다. 여기서 지혜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알고, 이 무력함으로부터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도 인생이 그저 풀과 같이 허무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번의 인생이라 여기고 쾌락주의로 빠지기도 하죠. 그러나 모세는 인간의 허무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직시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로부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스스로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인간의 처절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 90:13)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이 모세의 첫 번째 탄원입니다. 티끌과도 같은 인간 존재를 인정하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탄원하며 기도하는 것이죠. 이어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 90:14~16)

 

<하나님의 지혜가 따를 때 불완전한 우리 인생도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티끌로 돌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인정하고 날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물론 억울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스런 날들도 있겠죠. 억울하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당한 화의 연수대로 기쁜 일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일을 공평하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후손을 통하여 대신 갚아 주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또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한 지혜입니다.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잠 90:17)

 

우리가 행한 일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풀과 같은 인생, 티끌로 돌아가는 인생이 만들어 놓은 것이 과연 얼마나 대단하며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영원하신 주님께서 세워 주시고 단단하게 하시면, 그것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합니다. “우리 손으로 행한 것이 비록 티끌과 같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손이 함께할 때, 우리의 행한 바들이 견고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번역된 구절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도 표현합니다. ‘은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암’(נֹעַם)은 은혜라는 뜻도 있지만 ‘아름다움’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KJV 번역본은 beauty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견고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반전의 미, 죽을 것을 살리는 생명의 미, 모자란 것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시는 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노래한 인생이었고, 인생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태원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 마음속에는 큰 상처로 남아 있고, 여전히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살펴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하나님께 원망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인생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시고 바르게 해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이 믿음으로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신 날들을 기쁨으로 채워 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십시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Lord,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Psalm 90: 1-4, 11-17

 

 

A few days ago, I struggled to enter a funeral held in Seoul St. Mary’s Hospital. What would I say to the bereaved? What words or prayer will comfort them? My heart was heavy as I paid my respects to the family who had lost a loved one—a father, husband, and son—in the tragic accident in Itaewon. The deceased, who is also a member of our church, was returning home from a business meeting in Itaewon with a foreign buyer. At the funeral, I saw his widow and her two sons, a ten year-old and a seven year-old, who were clinging to her, unaware of what was exactly happening. I can’t recall what I said or prayed, as I tried to comfort the bereaved family who were weeping. This past week my heart was heavy and my head numb.

 

All 156 funerals of those who died in the tragic crush incident in Itaewon would have been the same. Overnight, husbands, sons, daughters, brothers, and sisters were lost. I cannot even begin to imagine the pain and grief. All of you would have been heartbrokenby the incident.

 

Adding to this grief, I was told that a young member of our church, who had been serving the church passionately, suddenly had a stroke and was in a critical condition. The next few days will be crucial. Even today, I am praying for him with all my heart, asking God for a miracle.

 

Furthermore, a very close friend called me a few days ago. He was already going through an extremely hard season because of his wife who has terminal cancer that has spread to other parts of her body, butrecently another member of his family was diagnosed with cancer. He asked me, “Why is God doing this to me? What did I do wrong that such terrible things are happening to me and my family?” I had no words for him, and my heart broke. I cried, and I don’t even remember how I hung up.

 

I often say to people that I don’t want to do ministry. It is not because managing the session is hard, or because church members are giving me trouble, or because I cannot do the ministry I have in mind. It is because of the pain ofseeing loved ones and members of the church experience hardship, serious illnesses, and even death of their loved ones.

 

I sometimes say to our associate pastors, “If I were to ask God for one spiritual gift as senior pastor, it would be, without hesitation, the gift of healing.” Of course, it would be great if I could move many people’s hearts with great sermons, if I could build a marvelous church with great leadership, wisdom, and vision, if I could build a happy, peaceful church by fostering good relationships. But the one thing that pains me the most as a pastor is my powerlessness to help the sick and dying. That is why I wish God would give me the gift of healing to comfort those in pain.

 

I thought to myself, ‘How would our church members take in this devastating incident at Itaewon?’ I may be worried as your pastor. ‘Would our congregationbe thinking they are fortunate that no one in their family died in the incident? Would they be thinking that the victims died because they did something wrong? Or would they be thinking they should follow the Lord more faithfully in the future in order to avoid such tragic incidents?’

 

Dear brothers and sisters, you will soon realize that all of the above thoughts are in fact meaningless—because even ifwe, that is, I or my family, are not a victim today, we may be in the future. We may try to analyze the wrongs and mistakes of the people who died, but we must remember what Jesus said when the tower at Siloam fell and killed 18 people. He clearly said, “Do you think they were more guilty than all the others living in Jerusalem? I tell you, no!” (Luke 13:4b-5a)

 

We can find many examples in life where even God-fearing people are not exempt from tragic incidents. Therefore, the thoughts that I listed above cannot be the lessons gained from the Itaewon crush incident.

 

Then what must our thoughts be as we go through pain and grief in disasters like the recent one in Itaewon? I want todeeply consider this problem with you today.

 

Today’s Scripture from Psalm 90 is written in the form of a prayer or petition. Whenever I read it, I feel as if the psalmist’s words are my own because I can deeply relate to them.

 

The subtitle ofPsalm 90 is “A prayer of Moses the man of God.”It is the only psalm in Psalms titled as Moses’ prayer. In it we get a glimpse of Moses, a wise man who seems to see right through life.

 

I can imagine this scene. Right before the Israelites enter the Promised Land, Moses delivers a long speech on the Plains of Moab and transfers all his power to his successor Joshua. And after bidding farewell to the people at Mt. Nebo, he looks back on his whole life. It is at this moment, I think, that he prays Psalm 90.

 

As he reflects on his life, he first prays:

 

“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Psalm 90:1)

 

Moses describes God as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God is not just his God, but the God of his father, his grandfather, Jacob, Isaac, and Abraham. Moses confesses that God is the God of all his ancestors.

 

What does this mean? It means that the God he worships and prays to is not a God that exists in isolation, but a God that is in a relationship with His people, a God who is with them. Moses sings that God is a God who has been man’s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Then who is this God that is at man’s side, that is in a relationship with him throughout all generations?

 

“Before the mountains were born or you brought forth the world,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you are God.” (Psalm 90:2)

 

Moses sings that God is an “everlasting” God. He was there even before the mountains, earth, and the world was born. He is God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After confessing that God is a great and everlasting God, Moses describes the reality of man:

 

“You turn people back to dust, saying, ‘Return to dust, you mortals.’ A thousand years in your sight are like a day that has just gone by, or like a watch in the night.” (Psalm 90:3-4)

 

While God is everlasting, man is entirely weak. Man’s fate is that he will return to dust eventually. This is the reality of man that Moses saw before the everlasting God.

 

The Korean Bible gives an annotation to the word “dust”, explaining that it may also be translated as “destruction.” As Moses looks back on his life, he realizes that man is a powerless being who will return to dust, or destruction, in the end.

 

Let’s look at the life of Moses. He was a great leader, but his life was fraught with difficulties and tribulations. As a baby, he almost died after being thrown into the Nile. Fortunately, he lived as a prince in the Pharoah’s palace for 40 years, but after committing murder, he lived as an anonymous fugitive in the desert for the next 40 years. After being called by God, he returned to Egypt to deliver his people and he did accomplish amazing things, but the last 40 years of his life was again fraught with difficulties due to endless complaints and rebellionscoming from the Israelites.

 

There was the rebellion of Korah and the death of many Israelites after their worship of the golden calf. Moses also lost many of his people in deadly wars, including the one against the Amalekites. Furthermore, many Israelites who complained in the wilderness died by being bitten by venomous snakes. Though the Bible does not describe them all, Moses would have witnessed countless deaths in the many incidents and accidents that happened in the Israelites’ 40-year journey in the wilderness.

 

The Bible says that among all those who came out of Egypt with Moses, only Joshua and Caleb lived to enter the Promised Land. This gives us an idea of just how many deaths Moses would have witnessed during those 40 years.

 

In Psalm 90, Moses does not list all the specific problems faced by man. Instead he candidly acknowledges before God the reality of man in its entirety. Sickness, famine, tragic accidents and the sort only serve as a shoddy cover for the miserable reality of man.

 

Man who eventually returns to dust and destruction! This is the ultimate, eschatological fate of man according to Moses. This is man’s true reality.

 

Moses describes it in another way:

 

“You sweep people away like dreams that disappear. They are like grass that springs up in the morning. In the morning it blooms and flourishes, but by evening it is dry and withered.” (Psalm 90:5-6)

 

Man is swept away by death, just as a flood sweeps away everything. In writing these words, Moses might have thought of the Egyptian army drowning in the Red Sea. How did they become Egyptians soldiers and end up dying in the bottom of the sea while chasing the Israelites?

 

Even today, countless people are being killed in the war between Ukraine and Russia. Many Russian men have fled the country to evadeconscription, but still many Russians are dying in this unjust war. How must we understand their deaths? Can patriotism explain them all?

 

There are of course regular people living regular lives. But even such people feel the fleeting nature of time. They wonder, ‘How has life gone by so quickly?’ Our life is like the grass that blooms in the morning but withers in the evening.

 

Moses also confesses that among all those who have disappeared like dust, there are people who died as a result of God’s fury and wrath, that is, His judgement:

 

“We are consumed by your anger and terrified by your indignation. You have set our iniquities before you, our secret sins in the light of your presence. All our days pass away under your wrath; we finish our years with a moan.” (Psalm 90:7-9)

 

The Israelites who worshipped and danced before the golden calf were consumed by God’s fury. The sons and daughters of Korah died as the earth split beneath their very feet, swallowing them and all their possessions, when they rebelled against Moses, and 250 men who offered the incense were also killed by fire. As such, God’s fury and judgement sometimes lead to man’s death.

 

Some died because of God’s wrath. Still, there were other deaths over which God was heartbroken. For example, God was heartbroken when His people were killed in the war against the Amalekites.

 

The Amalekite army attacked the Israelites from the rear, killing many children and the weak. This was an extremely cowardly act.

 

How would Moses have felt when his people, especially the young and weak, were brutally murdered by the Amalekites? He would have been deeplygrieved and heartbroken: ‘Why did God take these innocent lives out of Egypt only to let them die tragically in the hands of our enemies? What is God doing?’

 

But God too was furious with the Amalekites and their cowardice. Their attack was not something God condoned; nor was it the will of God.It was just one of the many rebellious incidents of man.

 

Therefore, God later says to the Israelites that the name of Amalek must be blotted out from under heaven:

 

“Remember what the Amalekites did to you along the way when you came out of Egypt. When you were weary and worn out, they met you on your journey and attacked all who were lagging behind; they had no fear of God. […] you shall blot out the name of Amalek from under heaven. Do not forget.” (Deuteronomy 25:17-19)

 

Can you imagine God’s grief as He told His people never to forget or to forgive the Amalekites? In this part of the Bible, we see how even God’s heart breaks when weak and powerless people are sacrificed.

 

As such, Moses saw many people die in diverse circumstances and for various reasons. Some were consumed by God’s wrath and fury, but even if it was not God’ anger that caused a man’s death, Moses saw that all men returned to dust and destruction eventually. Man is swept away by death just as a flood sweeps away everything; his life is fleeting just like the grass that blooms and withers in a day. Still there are those who die unjustly and tragically, which breaks God’s heart.

 

After taking all this into consideration, Moses reaches the following conclusion:

 

“Our days may come to seventy years, or eighty, if our strength endures; yet the best of them are but trouble and sorrow, for they quickly pass, and we fly away.” (Psalm 90:10)

 

After praying to God about man’s condition in a most candid manner, Moses makes this plea: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Psalm 90:12)

 

In the face of man’s desperate reality, Moses makes this one plea. He is asking God to teach man how to number his days. Then what does it really mean? Man is incapable of ever knowing when he will die. He cannot count his remaining days. So is Moses asking God for this impossible ability? No. He is asking God to give man the proper understanding that he is weak and that life is fleeting. This, I believe, is what Moses is asking.

 

‘Life is but dust. Man will return to dust. So please, God, let us know this.’ This is Moses’ prayer.

 

Next Moses asks for a “heart of wisdom.” Here wisdom means to know the powerlessness of man, but, at the same time, it is to learn how to have hope in the face of this utter powerlessness.

 

The wisdom that Moses seeks is not one that merely comes to grips with the emptiness and futility of the life of man, who is only but dust. It is a wisdom that also understands that the God Everlasting is concerned for man and is with him throughout all generations. This is true wisdom.

 

Man can never reach such wisdom on his own, which is why Moses asks God for it. This wisdom can only be gained when God allows it to man.

 

Therefore, the ambience of Moses’ prayer changes from this point where he asks God for wisdom. He cries out to God fervently as he comes to grips with man’s miserable reality.

 

“Relent, Lord! How long will it be? Have compassion on your servants.” (Psalm 90:13)

 

First, he asks God to have a concern for man who is only but dust. Then he asks God for His compassion. He is entrusting man to the everlasting God.

 

There is no other hope than this.

 

Moses isentrusting the life of man to God, trusting Him to make everything right and fair:

 

“Satisfy us in the morning with your unfailing love, that we may sing for joy and be glad all our days. Make us glad for as many days as you have afflicted us, for as many years as we have seen trouble. May your deeds be shown to your servants, your splendor to their children.”(Psalm 90:14-16)

 

What is true wisdom? It is to live each day happily and joyfullyin the presence of the living and everlasting God, acknowledging that our lives will eventually return to dust. This it true wisdom.

 

Life is filled with injustice. There will be painful days. People may die painfully and unjustly. But we must entrust our remaining days to God. God will give us joy for as many days as He has afflicted us. Even if that joy does not come in this world, He will surely make all things just and fair. We must believe in this.

 

We must believe that God will reward our children, if we fail to get our reward or do not accomplish something. This is wisdom.

 

Lastly, Moses prays:

 

“May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rest on u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for us—yes,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Psalm 90:17)

 

Lord, establish the work of our hands. Lord, make the work of our hands stand firm. Can the work of dust-like creatures be great? Can the work of grass-like beings be marvelous? Never. But if our everlasting God establishes our work, then it becomes complete and everlasting. The Bible calls this beauty.

 

While the NIV translation is “May the favor of the Lord our God rest on us,” the word “favor” heremay otherwise be translated as “beauty.” The Hebrew word for favor is “noam (נֹעַם)” which means delightfulness, pleasantness, favor,or beauty. This is why the KJV translates this as “beauty.” This is God’s beauty.

 

It is a beauty of reversal, a beauty that gives life to the dying. It is God’s beautiful work that transforms a lack into a beautiful creation. This is the very life that Moses sings of in Psalm 90. This is the wisdom he is singing about.

 

We lost 156young people in the tragic incident in Itaewon. We are heartbroken by their deaths. We lost family members too.

 

Yet we gain wisdom from this incident. We come to grips with man’s powerlessness and his misery, but, at the same time, we see God Everlasting who is at our side. We come to understand that we are eternal and the works of our hands are everlastingonly when we trust in God.

 

Life is full of incomprehensible events, but we believe that God will finally make everything right and fair. Let us become people of God, filling each day He has given us with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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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0: 1~4, 11~17

1~4, 11~17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재난과 고통을 경험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얼마 전에 일어난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하여서 소망교회도 귀중한 한 분의 성도님을 잃었습니다. 성모병원의 장례식장에 들어갈 때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 기도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영정 앞에 젊은 아내가 있고 그 밑에 열 살, 일곱 살 아이들이 철모르듯 엄마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용하셨을까 싶어 뾰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150여 명의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자녀를 잃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잃고 울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싶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 중에 참으로 힘든 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하시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를 만나면 묻곤 하시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요? 왜 이토록 우리 집안을 힘들게 하실까요?” 그럴 때마다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도할 뿐입니다. 마음 한편으로 저 역시 하나님께 불평하곤 합니다. “하나님, 저 목회하기 싫어요.” 당회를 잘 이끌어 가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비전대로 목회하는 일이 어려워서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시는 분들을 보는 제 마음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줄까?” 하고 물으신다면 서슴없이 “치유의 은사를 주십시오.”라고 요구할 것 같습니다. 치유받고 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설교를 잘하면 좋지요. 명설교가 되는 것도 꿈이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치유의 은사를 우선순위에 두고 싶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잘 이끄는 것도 참 좋겠습니다만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제가 설교를 잘 못하게 되면 ‘아, 목사님이 기도를 안하셔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시고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이태원 사고를 보면서 성도님들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계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그곳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감사하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고, 그곳에 간 사람들이 잘못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죄를 받았다고도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더러는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겠다고 새롭게 결심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린 모든 경우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 가족이 피해받지 않았을 뿐 언젠가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죽었을 때,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징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론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던 분들 중에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를 그렇게 잘 믿어도 병이 오고,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사는 사람도 사건과 사고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태원 사건을 두고서 죄가 많아서 죽었다고 한다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난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떤 신앙적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티끌 같은 인간 존재를 겸허히 인정합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90편입니다. 기도의 형태이자 탄원의 형태로 되어 있는 말씀이죠. 저는 이 기도를 읽을 때마다 마치 저의 기도처럼 여겨져서 공감이 가곤 합니다. 시편 90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소제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이신 주”라는 설명이 또 하나의 작은 제목으로 붙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모세의 기도로 제목이 붙여진 유일한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에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꿰뚫고 있는 듯한 지혜자 모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긴 연설을 마친 후에 여호수아에게 지도권을 이양하고, 느보 산에서 백성들을 환송하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홀로 남아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듯한 본문이 오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을 회고하는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

 

그의 첫 번째 기도 내용은 이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부릅니다. 모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의 아버지의 하나님, 그 아버지의 하나님, 거슬러 올라가 야곱의 하나님이시자 이삭의 하나님이시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을 부른 것입니다. 선조들의 하나님을 부른 셈이죠.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모세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은 홀로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공간에 갇혀 계시거나 고립되신 분이 아니라 인간과 끊임없이 교류하시고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자, 이렇게 모세는 인간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분에 대한 성품을 표현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그리고 땅과 세계가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계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이야기한 모세는 인간의 척박한 현실을 이어서 묘사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3~4)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해 인간은 참으로 미약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결국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고백한 인간의 현주소였습니다.

성경은 ‘티끌’이라는 단어에 각주를 달고, “파멸로”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가능하다고 알려 줍니다.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이자 파멸로 치닫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의 인생은 힘들고 어려운 일로 가득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위기를 겪으며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입니다. 다행히 왕궁에서 40여 년을 살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벌인 살인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광야에서 이름 없이 4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고, 애굽에서는 바로 왕과 맞서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는 다른 민족과 싸워야 하는 전쟁의 위협도 숱하게 일어났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또 어땠습니까? 고라 자손의 반역이 있었고,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임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 안에 계속되는 불평과 반역을 경험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모세는 여러 사건과 사고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나온 백성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는 성경의 증언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 모든 것을 보아 온 모세가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는 인간이 겪는 문제를 거명하지는 않습니다. 절망케 하는 일, 질병이나 기근, 전쟁이나 억울한 사고 등을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본 인간의 현주소이자 종말적인 모습입니다. 이 현실이 다르게도 표현됩니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시 90:5~6)

 

홍수에 쓸려가는 듯 인간이 죽어 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아마도 이 말을 하면서 모세는 홍해에 떠 있던 애굽 군대들의 주검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좇다가 죽임을 당했을까요? 참으로 참혹한 죽음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갑니다. 명분 없는 싸움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 가는 현실을 봅니다. 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겠습니까? 과연 애국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을까요? 그나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목숨을 잘 유지해서 세상 떠날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전쟁 경험 없이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삶이 쉽게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 아닙니까? 아침에 돋은 풀이 저녁에 시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다양하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을 목도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청합니다.>

 

티끌처럼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또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하심에 소멸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7~9)

 

하나님의 진노 중에 죽어 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추는 백성들이 있었고, 고라 자손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그만 땅이 갈라져서 모든 가족과 재산이 삼키어지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일들을 회고하며 하나도 숨기지 않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 죽은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애석하게 여기시는 죽음도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이 그러한 경우였습니다. 아말렉 군대는 백성의 후미를 쳐서 이스라엘의 아이들과 연약한 이들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참으로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모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게 하셨는데, 아말렉 군대의 공격에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불평이 따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도 이 공격에 대해서는 진노하고 계셨습니다. 아말렉의 비겁한 전투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도, 그분의 뜻도 아니었습니다.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패역한 사건들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아말렉과 같은 종족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7~19)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하나님께서도 화를 내시며 아말렉을 기억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연약한 자들이 힘없이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경험한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인생 속에서 다양하게 소멸되어 가는 인간을 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내심으로 죽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인간은 결국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이자 파멸로 치닫는 존재입니다. 홍수처럼 쓸어 가실 때 쓸려가고, 풀이 마르듯 짧은 인생을 보내고 시드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만드는 죽음도 일어납니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하며 모세가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하나님 앞에서 인간사를 솔직히 고백한 모세는 이제 탄원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우리의 날을 계수할 능력을 주십시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언제 죽는지 알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겠습니까? 아마도 이 기도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진실로 알게 해 달라는 탄원이 아니겠습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 깨달을 수 있다는 모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티끌과도 같은 인생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혜로운 마음”을 간청합니다. 여기서 지혜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알고, 이 무력함으로부터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도 인생이 그저 풀과 같이 허무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번의 인생이라 여기고 쾌락주의로 빠지기도 하죠. 그러나 모세는 인간의 허무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직시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로부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스스로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혜를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인간의 처절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 90:13)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이 모세의 첫 번째 탄원입니다. 티끌과도 같은 인간 존재를 인정하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탄원하며 기도하는 것이죠. 이어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 90:14~16)

 

<하나님의 지혜가 따를 때 불완전한 우리 인생도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티끌로 돌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인정하고 날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물론 억울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스런 날들도 있겠죠. 억울하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당한 화의 연수대로 기쁜 일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일을 공평하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후손을 통하여 대신 갚아 주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또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한 지혜입니다.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잠 90:17)

 

우리가 행한 일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풀과 같은 인생, 티끌로 돌아가는 인생이 만들어 놓은 것이 과연 얼마나 대단하며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영원하신 주님께서 세워 주시고 단단하게 하시면, 그것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합니다. “우리 손으로 행한 것이 비록 티끌과 같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손이 함께할 때, 우리의 행한 바들이 견고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번역된 구절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도 표현합니다. ‘은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암’(נֹעַם)은 은혜라는 뜻도 있지만 ‘아름다움’으로도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KJV 번역본은 beauty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견고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반전의 미, 죽을 것을 살리는 생명의 미, 모자란 것을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시는 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노래한 인생이었고, 인생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태원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 마음속에는 큰 상처로 남아 있고, 여전히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살펴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하나님께 원망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인생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시고 바르게 해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이 믿음으로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신 날들을 기쁨으로 채워 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십시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11월 6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우리의 일을 견고케 하소서” (시 90:1-4, 11-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72장, 28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 90:1-4, 11-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1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지난 주 이태원에서 사고로 사망한 156명의 사람들 중 우리 교회의 한 젊은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외국인 바이어와 만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인파에 휩쓸려 그만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며칠 전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에 다녀오는데,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 앞에서 어떻게 기도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간 가슴이 무겁고 머리가 멍멍한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 시편 90편의 말씀은, 탄원의 형태로 되어 있는 시편입니다. 이 탄원시편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소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데, 바로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이신 주’라는 설명입니다. 이 시는 시편에서 유일한 모세의 기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다시 돌아보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 90:1).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대대에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이라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저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인간의 현실에 대해 ‘티끌’로 돌아가게 될 뿐이라고 자평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미약합니다. 결국 티끌로 돌아가고, 파멸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모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의 인생은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출애굽과 광야를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나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인생이 정말 날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느새 벌써 여기까지 와있는지, 돌아보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아침에 풀이 났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치는 듯 느껴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모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이러한 인간사를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한 모세는 이러한 탄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며 동시에 이 무력함에서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아는 지혜를 달라는 탄원의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단지 허무함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고 티끌같은 존재인 인간과 함께 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다. 영원하신 주님께 우리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티끌같고 풀과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한 일들이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영원한 일들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반전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일시적이고 찰나와 같은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여 영원한 소망으로 품는 것이 바로 참 지혜의 소망입니다.

나누기

1.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2. 우리도 모세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해달라고 간청할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예: 교회, 가정, 자녀, 사업, 나라 등)

마무리기도

참으로 받아 들이기 어려운 고난과 죽음 앞에서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주님께 손을 내밀어 주님 붙잡게 하옵소서. 영원과 잇대어 이 유한한 티끌이 영원함에 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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