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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왜 가난하게 될까요? 가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잘 살다가 가난하게 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요? 가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증이 종종 생겨나곤 합니다. 1961년, 가난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두고 역사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오스카 루이스라는 인류학자가 연구한 내용인데요. 연구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 바로 『산체스의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입니다. 2011년에 개정판 50주년이 나왔고, 2013년에는 박현수 역으로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오스카 루이스와 루스 루이스 부부가 멕시코시티의 빈민가 베씬다드 까사그란데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생애를 4년에 걸쳐 살펴보며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오스카 루이스는 아주 역사적인, 매우 중요한 이론을 펼칩니다. 바로 ‘빈곤 문화’라는 표현입니다. 빈곤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구해 보니 빈곤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있더라는 주장입니다. 책은 빈곤 문화의 속성을 여러 가지로 소개합니다. 먼저는 빈곤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니깐 폭력이 항상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역사의식도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부족해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고도 합니다. 낮은 동기 부여로 인해 무엇을 하려는 의지도 거의 보이지 않고, 취직은 했지만 낮은 직업 윤리 의식 때문에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그만 두는 악순환도 계속 되었다고 언급합니다. 게다가 빈민가의 대다수 사람들은 약물에 중독되거나 알콜 중독자가 많았고, 혼전에 동거를 하는 등 인생의 여정이 수없이 엉킨 상황들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그의 연구가 발표된 후에 많은 토론들이 있어 왔고, 오늘날에도 가난의 원인에 대한 토론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습관이 있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가지신 분들도 상당히 많은 줄로 압니다. 다시 말해 가난이란 삶의 습관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생긴 결과물이라는 주장이죠. 이것과는 조금 반대되는 연구가 한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의 결과물로 출판된 책이 『사당동 더하기 25』입니다. 이 책은 1986년 유니세프의 후원으로 진행된, 재개발 예정 철거촌 주민들에 대한 사회학 연구로부터 시작합니다. 약 2년 동안 연구를 진행한 후 보고서를 냈지만, 연구자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가난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2년이 되는 해 <사당동 더하기 22>(2009)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다시 3년이 지나 앞서 소개해 드린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33년이 지난 2020년에는 <사당동 더하기 33>이라는 다큐가 새롭게 만들어져서 발표되었죠.
이 연구자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나 습관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고 노력하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이라는 그 자체가 그들을 계속 묶고 있더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즉 가난은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희생자였다는 내용입니다. 알콜 중독이나 낮은 동기 부여와 같은 빈민들에게 나타나는 모습도 연구해 보니 문화가 먼저가 아니라 가난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조은이라는 이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혼전 임신 문화를 두고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빈곤 문화 연구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욕망을 제어할 만한 즉각적인 능력이 없어서 혼전 임신 문화가 생겨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조은은 이 역시 가난이 만든 결과였음을 발견합니다. 아빠가 술을 먹고 와서는 잔소리하는 엄마를 때리자 아이가 결심합니다. ‘난 크면 술 안 마실 거야, 남편한테 잔소리 안 할 거야.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 안 할 거야.’ 그리고는 불행한 부모 곁을 떠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면 행복해진다고 믿죠. 그래서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지만 삶의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렵게 살 수밖에 없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생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불행은 반복되고, 그 불행 속에서 결국 폭행을 행하는 자신으로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부모가 힘들게 산 이유는 부모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사람이 아닌 환경을 탓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두 책을 장황하게 말씀드리긴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가난은 잘못 살아온 습관과 문화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테고,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력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가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구로동의 빈민가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어렵게 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빈민들을 위한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한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삶의 굴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젊은 청년 때 예수 믿으면서 잘 살려고 다짐도 하고 노력도 해 보지만,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좋은 곳에서 열심히 살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친구들도 보고 있습니다. 두 상황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맞는지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쩌면 두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왜 가난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뜻일까요? 가난한 자들은 가난하게 살도록 계획하신 건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2절)
분명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부자로 만들고, 이 땅에서 창대케 하고, 민족을 이끄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 하던 이스라엘을 끌어내실 때에도 하나님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시고 강들이 흘러가게 하시고 실과들이 열리는 나무들을 세우시며 그곳에 아담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담을 향하여 선악과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먹도록 허락하시며 완전한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와를 만들어 주시며 돕는 베필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만드실 때부터 인간이 행복하고 안전하며 부족함 없는 상태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창세기의 이야기를 볼 때에 가난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에서 일하면서부터 출발되었으리라고 보입니다. 어느 날 저는 신명기 15장 말씀을 읽다가 가난이 온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나름의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명기 15장 4~5절)
이 말씀 속에 가난해지지 않는 방법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가난이 없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가난이 없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5장 4~5절 이후 11절에 가면 이런 말씀이 나타납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명기 15장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11절에서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땅에서 그치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의 말을 청종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나의 명령을 따라 온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진단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을 이야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죄를 지은 사람이고, 부자는 하나님과 연합하고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적인 차원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들의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들이 없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표현하자면 가난한 자가 있다는 의미는 한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죄악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다루시며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 주십니다. 먼저는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서 다루십니다. 첫 번째 단서로 말씀 속에 희년 제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희년을 계획하시며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시죠. 50년 동안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해집니다. 어떤 이는 빚쟁이가 되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래 주어진 분깃으로 돌아가며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법입니다. 이렇게 행할 때에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명령은 엄청난 명령이자 가난한 이들을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극단적인 처방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이 잘 지켜졌나요? 유대 역사를 보면 희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50년이 되었을 때 가진 재산을 내어놓으며 원점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성이죠.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으로 가난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매 일곱째 해에 안식년을 주시며 행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3장입니다.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출애굽기 23장 11절)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두시며 가난한 사람이 땅에서 나는 식량을 먹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에서는 매년 추수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3장 22절)
매년 추수할 때, 밭모퉁이에 있는 곡물을 베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혹여나 떨어진 곡물이 있거든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이 얻도록 하신 것이죠.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이와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욕심과 욕망을 먼저 알고 계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명기 15장 말씀처럼 모두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그들 중에 없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의 문제를 구조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도 다루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인간적인 욕망과 모든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며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저는 잠언서를 읽어 가는 중에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몇 구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는 잠언 14장 31절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장 31절)
비슷한 말씀이 17장 5절에도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잠언 17장 5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사람을 향하여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한 걸음 나아가 궁핍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죠.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잠언 29장 13~14절)
성경에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자,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렇지요.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면 왕위가 영원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도력을 계속해서 세워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편 112편 1~3절 속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시편 112편 1~3절)
공의를 행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사람의 집에 부와 재물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시편 112편 9절 말씀입니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리리로다 (시편 112편 9절)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잠언 19장 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장 17절)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에 영원히 썩지 않는 바구니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이고, 더불어 이 땅에서 받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행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가난한 자들, 그들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며, 이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35편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과 같은 분이 누굽니까? 주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을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십니다. 이것은 나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시편 35편 10절, 새번역)
멋진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이 어떻게 운행하시는지 살펴보았더니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편이셨다는 증언입니다. 다윗은 이 고백을 뼛속 깊은 자신의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 얻는 방법을 묻자 예수님께서 답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 19장 21절)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서 ‘오징어게임’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세계 90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루저들이 벌이는 생존 게임입니다. 계급 투쟁 현실을 조명한 드라마라고 하는데요. 10월 2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오징어게임의 성공 요인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돌아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부족함 없이 함께 살기 위하여 돌보는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충실한 청지기를 하나님은 찾고 계시며 그들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고자 하십니다.
Help The Poor
Proverbs 29:7, 13-14
Is there a reason the poor are poor? The Children of Sanchez: Autobiography of aMexican Family written in 1961 by anthropologist Oscar Lewis is a watershed book on poverty. Lewis writes that the poor have distinct habits that make them poor. He also observes that poverty is the result of one’s countless repeated actions. The book has also been translated into Korean.
The Children of Sanchez is based on a four-year interview of a Mexican family living in the Casa Grande tenement, a slum in Mexico City.It reveals that the “culture of poverty” has some characteristics: continual violence, a lack of historical orientation, a lack of planning for the future, low motivation, poor work ethics, addiction to alcohol and drugs, cohabitation before marriage, early initiation into sex, gambling, and so on.
Sadong-dong Plus 25, written by Jo Eun, is another book on poverty. Sponsored by the UNICEF in 1968, it started as a sociological study of residents living in the slums of Sadang-dong, Seoul, which would soon be demolished and redeveloped. The researcher, however, continued to follow and document the lives of the residents even after the two-year study. And after 22 years, she released a documentary titled “Sadang-dong Plus 22,” and three years after that published Sadong-dong Plus 25. In 2020, she released another documentary titled “Sadang-dong Plus 33.”
In her book Jo Eun states that alcoholism and low motivation are not the “cause” of poverty, but the “result” of it—for the poor come to depend on alcohol because they are poor, and their motivation is low because they lack opportunities in society that allow them to feel a sense of achievement. In short, the reason for poverty is because the poor are born poor.
Jo Eun’s book documents three generations of a family who had lived in Sadong-dong. It finds that the poor are actually victims of the capitalist social structure and points out that this negative structure makes it impossible for them to break free from their inherited poverty through individual efforts.
Atypical trait of the culture of poverty is children born to cohabiting parents. Researchers and sociologists point out that the poor lack the motivation to defer instant gratification. But Jo Eun writes that a closer scrutiny of the culture of poverty reveals that this culture is not a cause but the result of poverty.
Children who have seen their father repeatedly beat their mother often think, ‘I won’t drink when I’m grown up. I won’t be a nagging wife. I’m not going to fight in front of the kids.’ And they believe they will be happy by leaving their unhappy homes and starting their own family. That is why they start cohabitation, have kids, and start a family. But when faced with material hardships, they, too, experience unhappiness in the home. They finally realize why their parents had struggled so much. It was not because there was something wrong with them, but because of their harsh circumstances. In most cases, the cause of a problem is not the person himself, but his environment.
When I came to Somang Church, I found that Gangnam’s rich were generous, not rushed, good-mannered, patient, and refined. Furthermore,even their children were all good-hearted, pure, considerate, diligent, and intelligent.
How can we explain this? Were these children born with aDNA free from the culture of poverty? Or is it because they live in the “culture of the rich” where most people work hard in a comfortable and decent environment?
Since the two theories continue to contest each other, I would have to say that both elements contributed to what I saw among the children of Gangnam’s rich. If this is so, people living in Gangnam and other affluent areas—and their children, too—must be grateful for their environment.
Then what does God want for us? Is poverty God’s will?
When God called Abraham, He said,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I will make your name great, and you will be a blessing.”(Genesis 12: 2)Also, in ExodusChapter 3, God promised his people that He would free them from slavery in Egypt and take them to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hen does God have the power to make the poor rich? This was Hannah’s confession:
“The Lord brings death and makes alive; he brings down to the grave and raises up. The Lord sends poverty and wealth; he humbles and he exalts. He raises the poor from the dust and lifts the needy from the ash heap; he seats them with princes and has them inherit a throne of honor.” (1 Samuel 2:6-8)
Then how is poverty overcome? What does the Bible say about it?
“However, there need be no poor people among you, for in the land the Lord is giving you to possess as your inheritance, he will richly bless you, if only you fully obey the Lord your God and are careful to follow all these commands I am giving you today.”(Deuteronomy 15:4-5)
Then why are there so many poor people in this world?
“There will always be poor people in the land. Therefore I command you to be openhanded toward your fellow Israelites who are poor and needy in your land.” (Deuteronomy 15: 11)
According to Scripture, poverty is the result of not following the word of God and failing to carefully keep His commands.
At the same time, God wanted to solve the structural problem of poverty. A prime example of His will to defeat poverty is the Jubilee:
“Consecrate the fiftieth year and proclaim liberty throughout the land to all its inhabitants. It shall be a jubilee for you; each of you is to return to your family property and to your own clan. […] If one of your fellow Israelites becomes poor and sells some of their property, their nearest relative is to come and redeem what they have sold. […] But if they do not acquire the means to repay, what was sold will remain in the possession of the buyer until the Year of Jubilee. It will be returned in the Jubilee, and they can then go back to their property.” (Leviticus 25: 10, 25, 28)
God desired to solve the structural problem of poverty through the Law.
“But during the seventh year let the land lie unplowed and unused. Then the poor among our people may get food from it, and the wild animals may eat what is left. Do the same with your vineyard and your olive grove.” (Exodus 23: 11)
“When you reap the harvest of your land, do not reap to the very edges of your field or gather the gleanings of your harvest. Leave them for the poor and for the foreigner residing among you. I am the Lord your God.” (Leviticus 23: 22)
This is God’s will and command.
Then why must we look after the poor? As we have read, it is because God commanded us to do so, and it God’s will that we do so.
Yet there is an even greater reason we must care for the needy.
First, to care for them is to fear and revere the Lord. That is, looking after the poor is synonymous to worshiping our Lord:
“Whoever oppresses the poor shows contempt for their Maker, but whoever is kind to the needy honors God.” (Proverbs 14: 31)
“Whoever mocks the poor shows contempt for their Maker, whoever gloats over disaster will not go unpunished.” (Proverbs 17: 5)
Caring for the poor is to heap God’s blessings on oneself.
“Praise the Lord. Blessed are those who fear the Lord, who find great delight in his commands. Their children will be mighty in the land; the generation of the upright will be blessed. Wealth and riches are in their houses, and their righteousness endures forever.” (Psalm 112:1-3)
“They have freely scattered their gifts to the poor, their righteousness endures forever; their horn will be lifted high in honor.” (Psalm 112:9)
“The poor and the oppressor have this in common: The Lord gives sight to the eyes of both. If a king judges the poor with fairness, his throne will be established forever.” (Proverbs 29: 13-14)
Furthermore, providing for the poor makes God indebted to us.
“Whoever is kind to the poor lends to the Lord, and he will reward them for what they have done.” (Proverbs 19: 17)
This is because the Lord is on the side of the poor.
“My whole being will exclaim, ‘Who is like you, Lord? You rescue the poor from those too strong for them, the poor and needy from those who rob them.’” (Psalm 35: 10)
When a young man asked Jesus what he must do to get eternal life, Jesus answered, “If you want to be perfect, go,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Matthew 19: 21)
Today, God is calling us with an aching heart for the poor.
Recently, “Squid Game,” a Korean survival drama streaming on Netflix, is gaining enormous popularity around the world. It has become the most-watched content on Netflix in 90 countries. It is about a survival game played financially broke adults who are promised a great sum of money upon winning. It reveals, in a way, the class struggle in our society. The Wall Street Journal commented on October 2, 2021, that the drama’s popularity is partly due to the widening gap between the rich and poor which has become even worse during the pandemic.
Dear Church, by caring for the poor we do His will and are blessed. Don’t look after the needy to become richer. Look after them because we must all live together without lack.
God is seeking out such faithful stewards. And He will give greater missions to such.
잠언 29: 7 ~ 14
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가난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왜 가난하게 될까요? 가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잘 살다가 가난하게 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요? 가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증이 종종 생겨나곤 합니다. 1961년, 가난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두고 역사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오스카 루이스라는 인류학자가 연구한 내용인데요. 연구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 바로 『산체스의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입니다. 2011년에 개정판 50주년이 나왔고, 2013년에는 박현수 역으로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오스카 루이스와 루스 루이스 부부가 멕시코시티의 빈민가 베씬다드 까사그란데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생애를 4년에 걸쳐 살펴보며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오스카 루이스는 아주 역사적인, 매우 중요한 이론을 펼칩니다. 바로 ‘빈곤 문화’라는 표현입니다. 빈곤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구해 보니 빈곤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있더라는 주장입니다. 책은 빈곤 문화의 속성을 여러 가지로 소개합니다. 먼저는 빈곤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니깐 폭력이 항상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역사의식도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부족해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고도 합니다. 낮은 동기 부여로 인해 무엇을 하려는 의지도 거의 보이지 않고, 취직은 했지만 낮은 직업 윤리 의식 때문에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그만 두는 악순환도 계속 되었다고 언급합니다. 게다가 빈민가의 대다수 사람들은 약물에 중독되거나 알콜 중독자가 많았고, 혼전에 동거를 하는 등 인생의 여정이 수없이 엉킨 상황들이 발생했다는 것이죠.
그의 연구가 발표된 후에 많은 토론들이 있어 왔고, 오늘날에도 가난의 원인에 대한 토론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습관이 있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가지신 분들도 상당히 많은 줄로 압니다. 다시 말해 가난이란 삶의 습관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생긴 결과물이라는 주장이죠. 이것과는 조금 반대되는 연구가 한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의 결과물로 출판된 책이 『사당동 더하기 25』입니다. 이 책은 1986년 유니세프의 후원으로 진행된, 재개발 예정 철거촌 주민들에 대한 사회학 연구로부터 시작합니다. 약 2년 동안 연구를 진행한 후 보고서를 냈지만, 연구자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계속 따라다니며 가난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2년이 되는 해 <사당동 더하기 22>(2009)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다시 3년이 지나 앞서 소개해 드린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33년이 지난 2020년에는 <사당동 더하기 33>이라는 다큐가 새롭게 만들어져서 발표되었죠.
이 연구자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나 습관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고 노력하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이라는 그 자체가 그들을 계속 묶고 있더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즉 가난은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희생자였다는 내용입니다. 알콜 중독이나 낮은 동기 부여와 같은 빈민들에게 나타나는 모습도 연구해 보니 문화가 먼저가 아니라 가난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조은이라는 이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혼전 임신 문화를 두고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빈곤 문화 연구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욕망을 제어할 만한 즉각적인 능력이 없어서 혼전 임신 문화가 생겨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조은은 이 역시 가난이 만든 결과였음을 발견합니다. 아빠가 술을 먹고 와서는 잔소리하는 엄마를 때리자 아이가 결심합니다. ‘난 크면 술 안 마실 거야, 남편한테 잔소리 안 할 거야.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 안 할 거야.’ 그리고는 불행한 부모 곁을 떠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면 행복해진다고 믿죠. 그래서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지만 삶의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렵게 살 수밖에 없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생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불행은 반복되고, 그 불행 속에서 결국 폭행을 행하는 자신으로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부모가 힘들게 산 이유는 부모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사람이 아닌 환경을 탓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두 책을 장황하게 말씀드리긴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가난은 잘못 살아온 습관과 문화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테고,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력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가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구로동의 빈민가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어렵게 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빈민들을 위한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한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삶의 굴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젊은 청년 때 예수 믿으면서 잘 살려고 다짐도 하고 노력도 해 보지만,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좋은 곳에서 열심히 살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친구들도 보고 있습니다. 두 상황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맞는지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쩌면 두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왜 가난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뜻일까요? 가난한 자들은 가난하게 살도록 계획하신 건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2절)
분명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부자로 만들고, 이 땅에서 창대케 하고, 민족을 이끄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 하던 이스라엘을 끌어내실 때에도 하나님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시고 강들이 흘러가게 하시고 실과들이 열리는 나무들을 세우시며 그곳에 아담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담을 향하여 선악과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먹도록 허락하시며 완전한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와를 만들어 주시며 돕는 베필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만드실 때부터 인간이 행복하고 안전하며 부족함 없는 상태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창세기의 이야기를 볼 때에 가난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에서 일하면서부터 출발되었으리라고 보입니다. 어느 날 저는 신명기 15장 말씀을 읽다가 가난이 온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나름의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명기 15장 4~5절)
이 말씀 속에 가난해지지 않는 방법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가난이 없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가난이 없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5장 4~5절 이후 11절에 가면 이런 말씀이 나타납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명기 15장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11절에서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땅에서 그치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의 말을 청종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나의 명령을 따라 온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진단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을 이야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죄를 지은 사람이고, 부자는 하나님과 연합하고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적인 차원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들의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들이 없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표현하자면 가난한 자가 있다는 의미는 한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죄악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난을 다루시며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 주십니다. 먼저는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서 다루십니다. 첫 번째 단서로 말씀 속에 희년 제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희년을 계획하시며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시죠. 50년 동안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해집니다. 어떤 이는 빚쟁이가 되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래 주어진 분깃으로 돌아가며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법입니다. 이렇게 행할 때에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명령은 엄청난 명령이자 가난한 이들을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극단적인 처방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이 잘 지켜졌나요? 유대 역사를 보면 희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50년이 되었을 때 가진 재산을 내어놓으며 원점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성이죠.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으로 가난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셨습니다. 매 일곱째 해에 안식년을 주시며 행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3장입니다.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출애굽기 23장 11절)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두시며 가난한 사람이 땅에서 나는 식량을 먹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에서는 매년 추수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3장 22절)
매년 추수할 때, 밭모퉁이에 있는 곡물을 베지 말라고 명령하시며 혹여나 떨어진 곡물이 있거든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이 얻도록 하신 것이죠.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이와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욕심과 욕망을 먼저 알고 계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명기 15장 말씀처럼 모두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그들 중에 없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의 문제를 구조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도 다루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인간적인 욕망과 모든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난을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며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저는 잠언서를 읽어 가는 중에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몇 구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는 잠언 14장 31절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장 31절)
비슷한 말씀이 17장 5절에도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잠언 17장 5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사람을 향하여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한 걸음 나아가 궁핍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죠.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잠언 29장 13~14절)
성경에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자,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이 여러 번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렇지요.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면 왕위가 영원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도력을 계속해서 세워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편 112편 1~3절 속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시편 112편 1~3절)
공의를 행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사람의 집에 부와 재물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시편 112편 9절 말씀입니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리리로다 (시편 112편 9절)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잠언 19장 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장 17절)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에 영원히 썩지 않는 바구니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이고, 더불어 이 땅에서 받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행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가난한 자들, 그들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며, 이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35편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과 같은 분이 누굽니까? 주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을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십니다. 이것은 나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시편 35편 10절, 새번역)
멋진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이 어떻게 운행하시는지 살펴보았더니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편이셨다는 증언입니다. 다윗은 이 고백을 뼛속 깊은 자신의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 얻는 방법을 묻자 예수님께서 답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 19장 21절)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서 ‘오징어게임’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세계 90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인 루저들이 벌이는 생존 게임입니다. 계급 투쟁 현실을 조명한 드라마라고 하는데요. 10월 2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오징어게임의 성공 요인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돌아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부족함 없이 함께 살기 위하여 돌보는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충실한 청지기를 하나님은 찾고 계시며 그들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고자 하십니다.
2021년 10월 1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가난한 자를 도우라” (잠 29:7, 13-1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40장, 317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잠 29:7, 13-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0월 1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는 『산체스의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이란 책에서 사람들은 빈곤문화(폭력, 약한 윤리의식, 약물, 성문란 등)로 인해서 가난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는 다르게 조은 작가는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가난은 구조적 문제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가난을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설교의 요약
하나님은 가난 보다는 복을 주기 위해서 사람(아브라함)을 부르시고(창 12:2), 복된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3장). 그리고 만일 그렇게 인도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 명령을 잘 지키면 반드시 복을 받고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신 15:4-5)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땅에는 가난한 자가 많은가요? 하나님은 위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는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은 결과(신 15:11)라고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2)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하나님은 ‘희년’(禧年, Jubilee)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라)…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레 25:10, 28). 또한 출애굽기 23:22과 레위기 23:22 말씀을 통해 ‘일곱 째 해에는 밭을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가난한 자들을 먹게 하고,’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아서’ 가난한 자를 배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하는 이유는 이것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주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즉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1). 둘째,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축복을 쌓는 것입니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잠 29:13). 셋째,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야 할 부채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잠 19:17).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돌아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복을 누립니다. 내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두가 부족함이 없이 살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충실한 청지기들을 찾으시며 이런 사람들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나누기
1. 오늘 말씀처럼 가난한 자를 도왔을 때 내게 주신 축복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2.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부하게 살기 위해서 (구약의 ‘희년’제도처럼) 사회가 구조적으로 보완해야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다시 세어 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 모든 것들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어 쓰라고 주신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님을 공경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