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거룩한 거리두기

레위기 19: 2

김경진 목사

2020.03.22

<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건강하셨습니까? 지난 주간 우리 성도님 중 한 분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시던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현재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우리 권사님께서 건강하게 회복되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투병 중인 권사님뿐만 아니라 현재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모든 분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가정에서, 사무실에서, 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조금만 더 견딥시다.”
얼마나 교회가 그리우십니까? 저도 여러분이 많이 그립습니다. ‘얼마나 더 견디면 될까?’라며 손꼽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때가 되면, 우리도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인내하시며 기다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고, 많은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최근 여러 다양한 뉴스를 살펴볼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자연환경이 좋아졌다는 기사가 꽤 많습니다. BBC에서 방송한 내용을 보니, 올 초 자동차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예년보다 약 50% 줄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코로나 창궐 이후 중국의 대기가 파랗게 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베네치아에는 돌고래가 돌아왔다는 뉴스도 전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 갖는 일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 발병으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열심히 또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지구가 힘들어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전염병 확산으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쉼을 갖게 되었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구와 자연에게도 숨을 쉬게 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매체가 전망하기를, 코로나19로 변화된 우리 삶의 패턴이 돌아오기까지는 약 18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표현이 아마 ‘사회적 거리 두기’일 것입니다. 좌우로 1~2m 정도 떨어져 서로 접촉하지 않게 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는 최근 방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지난 3월 15일 스페인 출신의 아트 디렉터인 후안 델칸(Juan Delcan)이란 분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있습니다. 성냥개비가 마치 도미노처럼 나열되어 있는데, 연달아 불이 붙는 장면입니다. 불이 계속 붙는 과정 중에 성냥개비 하나가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데, 그와 동시에 성냥개비의 불이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립니다. 후안 델칸은 이 영상 제목을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Do your part and stay home. It’s all we can do.” “당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집에 있어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라는 말입니다. (출처: 가스펠투데이, http://www.gospeltoday.co.kr)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보도한 South China Morning Post(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성냥개비가 다 타는 애니메이션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떻게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Animated match-burning video shows how social distancing can stop the spread of Covid-19.)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것은 타인과 거리를 둠으로써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의지가 담긴 운동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싶지만, 거리를 두어야만 전염병의 확산이 발생하지 않음을 알기에 부득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통해 하루속히 전염병을 퇴치하고, 함께 모여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거리 두기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어떤 부분에서 우리에게 거리 두기를 원하고 계실까?’ 몇 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 가지 정도로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거리 두기’는 무엇일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장소’와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익숙해진 장소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19장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 19:2)

하나님께서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거룩이란 구별을 의미합니다. ‘따로 떼어 놓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리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굴레 같은 인간의 삶에서, 익숙한 그 삶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장소로부터 단절, 즉 거리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내려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0:2)

분명히 장소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셨다고 합니다.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아브라함도 경험했던 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익숙하고 안주하는 자리에서 떠나기를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떠나라는 명령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애굽에서 떠나고, 내가 살고 있던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도, 하나님은 익숙한 장소로부터 떠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거리 두기란 우리가 익숙하게 살고 있는 장소로부터의 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줄 땅,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선은 내가 익숙하게 거하던 장소로부터의 탈출입니다. 거기서부터 거리를 두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나올 때 우리에게는 항상 목표점이 생깁니다.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목적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 목적지가 최종 목적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목적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지시할 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그 목적지는 또 다른 도착점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도착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안주를 경험하게 됩니다. 익숙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그곳으로부터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또 다른 장소로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가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성경에서도 끊임없이 증언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고 애굽에서 탈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성막을 허락하시고, 그곳에서도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달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은 또 다른 의미의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지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으로, 율법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그들은 나라를 이루게 되고, 성막은 성전으로 바뀌며, 제사는 불변하는 법이 되고, 안식일 준수는 또 다른 율법이 됩니다. 또다시 익숙한 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또다시 익숙한 장소가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똑같은 장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 익숙한 곳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7장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 7:4)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거하며 이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곳이 안전하며 익숙한 곳이었고, 하나님을 만날 만한 온전한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이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종교적인 제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나 성막, 율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서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고, 안식일에도 일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기에 안식일은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전 역시 유일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그 형식과 틀을 깨뜨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셨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어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 성전을 헐라고 하시며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틀을 깨뜨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익숙한 것에서 떠나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요즘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배당의 고정된 자리에서 나가게 하셨습니다. 마치 광야로 이끄시듯이 우리를 온라인예배의 자리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자리, 곧 각자의 처소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예배가 또 다른 성전이 되거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익숙한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익숙함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또 다른 거리를 두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이 선포하고 인정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광야와 같은 시간에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에 안정감을 갖고 있었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익숙해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지금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광야 같은 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익숙했던 것들이 눈에 더 잘 보일 것입니다. 그 익숙한 것으로부터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일만 되면 습관처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던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정해진 헌금을 일정하게 드리며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우리의 일상화 된 헌금 생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과 함께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는 봉헌의 삶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인도를 느끼는 광야는 과연 어떤 곳일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던 봉사이고, 정말 열심히 하던 봉사인데, 과연 나는 그 봉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느끼고 있었는가? 경험하고 있었는가? 혹시 자기만족, 자기 자랑, 의미 찾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또 다른 장소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익숙했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또 다른 자리로…. 우리가 익숙해지면 다시 일으켜 또 다른 자리로, 또 다른 국면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끼기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 악에서 떠날 때, 삶의 본질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두 번째로 우리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은 ‘악한 행실’임을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악한 행실로부터 떠나는 거룩한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다고 했지만, 때로는 악한 일에 거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지켜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염병의 상황을 통해 우리를 의도적으로 분리해 놓으셨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두셨습니다. 스스로 홀로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한 번도 없었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때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자 축복의 기회로, 이 시간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악한 버릇, 악한 행위, 거짓된 말,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떠나는 거룩한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과 함께하면서 더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고, 더 좋은 말을 하고, 과거와는 다른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악을 떠나고 선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악을 떠나며, 욕망과 거리를 두고, 사탄과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기름을 뺀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신앙의 기름을 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사치품을 거의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화장도 잘 하지 않아서 화장품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게 불필요한 것, 내가 떠나야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것과 거리를 두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시간을 구별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시간’의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시간의 거리를 둔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쉼을 허락한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안식일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한 단락에 이런 표제가 있습니다. “불안에 저항하라.” 브루그만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안식일과 연결하여 서술합니다. 브루그만의 관점에서 해석된 내용을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은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파라오가 지배하는 체제는 불안으로 점철된 체제입니다. 절대 권력과 파라오가 있지만, 그들은 나일강 범람으로 늘 불안해합니다. 종종 찾아오는 기근 때문에도 또 다른 불안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합니다. 나일강이 범람할지라도 안전하게 살기 위해 성을 쌓기도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필요합니다. 농부들은 노예가 되고, 식량을 저장할 창고를 짓느라 백성이 노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들은 빈곤해지고 온갖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모든 것이 ‘불안’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던, 불안이 지배하던 세상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애굽에서는 늘 열심히 노동하여 창고에 식량을 거두어들였는데, 그래서 안심했는데, 정작 식량이 없을 것 같은 광야에서도 굶주리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에서 이끌어 낸 후 안식일을 명하셨습니다. 하루 휴식하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출애굽기 20장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브루그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허락하시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쉬셨듯이 쉬어라! 네가 쉴 때에는 네 주위 이웃들도 틀림없이 쉬게 하라. 정녕 불안을 야기하는 파라오의 시스템과 정반대인 쉼의 시스템을 북돋우라. 이는 너희가 더 이상 불안만 야기하는 파라오 시스템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약의 영역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신학적 뿌리와 정치적 생명력과 경제적 의미를 지닌 쉼을 만들어 주라.” (월터 브루그만, 『안식일은 저항이다』 중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며 살아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토요일까지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 노동의 배후에는 ‘불안’이 존재합니다.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하는 불안, ‘앞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불안이 있습니다.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존재합니다. 끊임없이 애굽의 파라오 같이 곡식을 저장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명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일하지 않는 날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식일을 지키는 데 집착했습니다. 그것을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을 따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거리를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매일같이 일하지만 쉼을 갖는 시간, 시간에 거리를 둠으로써 하나님이 임재할 자리를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 이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을 떼어 놓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통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세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깊이 생각하는 이때, 거룩한 거리 두기를 깊이 생각해 보자고 권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익숙했던 장소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악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시간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불안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끊임없이 불안한 가운데 일하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를 안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또 한 주간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거리 두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Holy Distancing

Leviticus19:2

I hope you are all well. I was hoping no one in our church would get Covid-19, but unfortunately an elder contracted the virus after her trip to the UK to see her son. We all miss church. All the pastors at Somang Church are praying for you and ministering as best we can. It is our earnest hope that we will gather again once school starts. Please be patient for a little longer.

The coronavirus has changed life. The streets are empty, people are practicing social distancing, factories have stopped, and restaurants and shops are empty.

Paradoxically, however, Covid-19 has significantly reduced CO2 levels, according to the BBC. With social distancing, human activities and travel have stalled, decreasing emissions. There was also an article on how China’s skies are now bluer and clearer because of the outbreak. Some articles reported on increased pregnancies in China due to more family time, while others noted that divorce rates and domestic violence were on the rise.

Although it is unclear how such phenomena should be interpreted, one thing is certain: the coronavirus has changed life as we know it. We are now acknowledging that humans have excessively destroyed the environment. By stalling human activity, Covid-19 has blessed nature with rest. The earth is now breathing as human life slows. Still, humans wish “normal life” will return.

However, many scholars forecast that we will not be able to return to our past, a “normal life”immediately—at least, not in the near future. Gideon Lichfield wrote in MIT Technology Review that “we’re not going back to normal” for about 18 months. Until then, we will have to live unusual way of life, practicing “social distancing.”

These days we hear the term “social distancing” a lot. Actually, it has become the most important prevention tool against Covid-19.

Juan Delcan, a Spanish art director, posted a video on Twitter to highlight the importance of social distancing. In the video matches are lined up like dominoes, and when one match is lit the rest start to catch fire. Meanwhile, one of the sticks steps aside, savingthose behind it. In a caption Delcan writes, “Do your part and stay home. It’s all we can do.”

Without a doubt, social distancing is the most effective way of eradicating a contagious disease. This is why the government, media, and society continue to stress its importance. We should practice it so that our children will be able to return to school, so that we will be able to return to life as usual. Ourchurch started online services for this reason, too: to practice social distancing. We accepted the advice of experts and doctors that said churches may become a pathway for the virus by gathering in large groups.

At first, we had many concerns as we started online services. Although these concerns have not disappeared altogether, we have come to experience how God works amazingly even through online services. We have also come to reflect on the very essence of faith.

When we get a mild disease such as indigestion, usually the doctor’s advice is to rest and fast. And when we do that, we recover. Likewise, this outbreak has stopped all our activities, and we are now waiting for a total recovery of our faith. It is as if God Himself prescribed this time of “fasting and resting.”

In today’s passage, God speaks to His chosen people, Israel. And this is God’s command, His desire, His request toward them:

“Speak to the entire assembly of Israel and say to them: ‘Be holy because I, the Lordyour God, am holy.” (Leviticus 19:2)

As I meditated on this verse, “distancing,” a word that we hear often these days, shed a new light on “be holy.” What does God want from us when He tells us to “be holy”? I believe He wants us to be set apart from the world—in other words, to“distance” ourselves from the world.

To be holy means to be set apart. That is why God said, “I am the Lord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when He gave the Ten Commandments to His people at Mt. Sinai. (Exodus 20:2)This verse is saying that God pulled slaves out of Egypt and set them apart. He distanced the Israelites from Egypt.

God did this to Abraham, too: “The Lordhad said to Abram, ‘Go from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to the land I will show you.’” (Genesis 12:1)

When God chose Abraham and when He delivered the Israelites from Egypt, He did not want His people to be trapped in the world. He wanted them to leave that place and go a pilgrim’s journey to the land He promised.

Dear Church, as we practice social distancing, I encourage you to practice a “holy distancing,” or a “holy separation,” which is what God want from us. Practice it and meditate on it deeply.

First, the “holy distancing” that God wants from us is to distance ourselves from the familiar. “Your father’s household” is a safe and familiar place. The Israelites were slaves in Egypt, but, still, it was a familiar place. God wanted them to leave it. God told Abraham to “go to the land I show you.” This does not mean to simply leave one place for another. It means to leave a familiar place and enter into a close relationship with God.

When we leave a certain place, we often seek a new destination. But when we arrive there, we get comfortable again, which is why God tells us to leave that place again. He does this because He does not want us to remain in a certain place or reality, butlive in His presence and under His rule.

God’s such intentions for us are repeatedly written in the Bible. After delivering His people from Egypt, He took them to the wilderness. There, Hegave them the Tabernacle and the Law, which express His rule. But upon entering Canaan, the Tabernacle simply became the Temple and the Sabbath a Law to be kept. So, God spoke through prophets:

“Do not trust in deceptive words and say, ‘This is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Jeremiah 7:4)

“But look, you are trusting in deceptive words that are worthless.Will you steal and murder, commit adultery and perjury, burn incense to Baal and follow other gods you have not known, and then come and stand before me in this house, which bears my Name, and say, ‘We are safe’—safe to do all these detestable things?” (Jeremiah 7:8-10)

God has always wanted us to be set apart. This does not mean that He wanted us to live within certain religious rules,the temple, or the Law. He wanted us to endlessly go beyond these and enter God’s rule.

That is why Jesus worked and healed even on the Sabbath. He did it to destroy the conventions of the Pharisees and teachers of the Law. But this does not mean that God wants us to tear down all conventions. As I mentioned, God ordered Abraham to leave his father’s household so that he would enter His rule. The important thing is to accept His authority and experience how our living God works in our lives.

In this sense, we are now experiencing something very important and meaningful through the coronavirus outbreak. God has made us leave our familiar place of worship, the church, and has led us into the “wilderness” as we worship online. But this does not mean that online services should become a “new temple” or another“idol”. God ceaselessly commands us to leave the familiar—because He wants to rule over us.

Therefore, let’s look back on our lives as we worship online in this “wilderness.” What was “familiar” to you in your faith life till now? What made you feel safe? Leave them. If you became too accustomed to church on Sunday, now is the time to ask God, ‘What do You want from me?’If offering a certain amountbecame a convention, rethink your tithing and offerings to God. What does it meant go on an adventure with God? Meditate deeply on what it means to feel, really feel, His living presence and guidance in the wilderness. This applies to service in the church, too. Are you truly experiencing His guidance in service? Have you, by any chance, been coming to worship for self-satisfaction, to show off, or to find personal meaning?

Dear Church, I pray that you will all practice “holy distancing” by abandoning all evil deeds. God has purposefully separated us from the world through social distancing. We should use this time as a divine and blessed opportunity to seek Him.

I pray for a “holy distancingmovement” that will allow us to correct all our wrongs, do away with evil, and abandon bad habits, evil deeds, deception, and lies. As we spend more time with family, I hope that families will foster good habits, be nicer to each other, encourage one another, and reinvent a family life that pleases God.

These days, luxury items are unnecessary and utterly meaningless. Hotels and department stores aren’t doing well because of this. Think about what is absolutely necessary, do away with what must be left behind, and practice holiness.

Finally, brothers and sisters, distance yourselves from anxiety and worry.In his book “Sabbath as Resistance,” Walter Brueggemann stresses the importance of resisting anxiety. He explains the exodus in relation to the Sabbath.

Egypt was a system full of anxiety. Although pharaohshad absolute authority, the Egyptians were always anxious due to the frequent flooding of the Nile andfamines. So they made farmers slaves. The Israelites, slaves, found life’s meaning in such a fettered state. But God delivered them from that state. And, in the wilderness, they ate without having to work. And God gave them the Sabbath, a day of rest:

“Remember the Sabbath day by keeping it holy. Six days you shall labor and do all your work, but the seventh day is a sabbath to the Lordyour God. On it you shall not do any work, neither you, nor your son or daughter, nor your male or female servant, nor your animals, nor any foreigner residing in your towns.” (Exodus 20:8-10)

Brueggemann writes:

“Rest as did the creator God! And while you rest, be sure that your neighbors rest alongside you. Indeed, sponsor a system of rest that contradicts the system of anxiety of Pharaoh, because you are no longer subject to Pharaoh’s anxiety system. Create restfulness with theological rootage, political viability, and economic significance for all in the domain of covenant.”

Dear Church, why did God give us the Sabbath? For six days, we work, make profit, try to appease our anxiety, but on the Sabbath, He wants us to declare His rule by entering His presence and breaking free from the principles of the world, the system of Pharaoh. By keeping the Sabbath we are confessing with faith, “God rules.”We realize that we can actually live without having to work. Resting is living! The Sabbath is a day that proves God rules.

To sum up, let’s practice “holy distancing” as we deeply consider social distancing. First, let’s distance ourselves from the familiar. Let’s leave the conventions of faith that we have become too accustomed to and experience the guidance of our living God. Second, let’s distance ourselves from all evil—all things that go against our conscience. Third, we must distance ourselves from anxiety, a way of life that makes us perpetually anxious, and experience a God of rest. All three ways will allow us to live under the rule of the living God.

God does not want us to be bound by something. He wants us to walk with Him in the wilderness. There, He speaks to us. There, He guides us powerfully. We see his guidance ever more clearly in the wilderness. Just as the Israelites left Egypt and headed for the wilderness, I hope all of us will experience His presence in our wilderness.

btn_switch

레위기 19: 2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건강하셨습니까? 지난 주간 우리 성도님 중 한 분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시던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현재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우리 권사님께서 건강하게 회복되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투병 중인 권사님뿐만 아니라 현재 코로나19로 고생하는 모든 분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가정에서, 사무실에서, 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조금만 더 견딥시다.”
얼마나 교회가 그리우십니까? 저도 여러분이 많이 그립습니다. ‘얼마나 더 견디면 될까?’라며 손꼽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때가 되면, 우리도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인내하시며 기다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고, 많은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최근 여러 다양한 뉴스를 살펴볼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자연환경이 좋아졌다는 기사가 꽤 많습니다. BBC에서 방송한 내용을 보니, 올 초 자동차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예년보다 약 50% 줄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코로나 창궐 이후 중국의 대기가 파랗게 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베네치아에는 돌고래가 돌아왔다는 뉴스도 전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 갖는 일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 발병으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열심히 또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지구가 힘들어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전염병 확산으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쉼을 갖게 되었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구와 자연에게도 숨을 쉬게 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매체가 전망하기를, 코로나19로 변화된 우리 삶의 패턴이 돌아오기까지는 약 18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표현이 아마 ‘사회적 거리 두기’일 것입니다. 좌우로 1~2m 정도 떨어져 서로 접촉하지 않게 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는 최근 방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지난 3월 15일 스페인 출신의 아트 디렉터인 후안 델칸(Juan Delcan)이란 분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있습니다. 성냥개비가 마치 도미노처럼 나열되어 있는데, 연달아 불이 붙는 장면입니다. 불이 계속 붙는 과정 중에 성냥개비 하나가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데, 그와 동시에 성냥개비의 불이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립니다. 후안 델칸은 이 영상 제목을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Do your part and stay home. It’s all we can do.” “당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집에 있어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라는 말입니다. (출처: 가스펠투데이, http://www.gospeltoday.co.kr)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보도한 South China Morning Post(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성냥개비가 다 타는 애니메이션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떻게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Animated match-burning video shows how social distancing can stop the spread of Covid-19.)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것은 타인과 거리를 둠으로써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의지가 담긴 운동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싶지만, 거리를 두어야만 전염병의 확산이 발생하지 않음을 알기에 부득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통해 하루속히 전염병을 퇴치하고, 함께 모여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거리 두기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어떤 부분에서 우리에게 거리 두기를 원하고 계실까?’ 몇 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 가지 정도로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거리 두기’는 무엇일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장소’와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익숙해진 장소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19장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 19:2)

하나님께서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거룩이란 구별을 의미합니다. ‘따로 떼어 놓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리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굴레 같은 인간의 삶에서, 익숙한 그 삶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장소로부터 단절, 즉 거리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내려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애굽기 20:2)

분명히 장소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셨다고 합니다. 애굽 땅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아브라함도 경험했던 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익숙하고 안주하는 자리에서 떠나기를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떠나라는 명령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애굽에서 떠나고, 내가 살고 있던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도, 하나님은 익숙한 장소로부터 떠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거리 두기란 우리가 익숙하게 살고 있는 장소로부터의 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줄 땅,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선은 내가 익숙하게 거하던 장소로부터의 탈출입니다. 거기서부터 거리를 두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나올 때 우리에게는 항상 목표점이 생깁니다.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목적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 목적지가 최종 목적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목적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지시할 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그 목적지는 또 다른 도착점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도착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안주를 경험하게 됩니다. 익숙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그곳으로부터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또 다른 장소로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가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성경에서도 끊임없이 증언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시고 애굽에서 탈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성막을 허락하시고, 그곳에서도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달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은 또 다른 의미의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지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막으로, 율법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그들은 나라를 이루게 되고, 성막은 성전으로 바뀌며, 제사는 불변하는 법이 되고, 안식일 준수는 또 다른 율법이 됩니다. 또다시 익숙한 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또다시 익숙한 장소가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똑같은 장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 익숙한 곳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7장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 7:4)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거하며 이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곳이 안전하며 익숙한 곳이었고, 하나님을 만날 만한 온전한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이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종교적인 제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나 성막, 율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서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고, 안식일에도 일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기에 안식일은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전 역시 유일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그 형식과 틀을 깨뜨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셨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어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 성전을 헐라고 하시며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틀을 깨뜨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익숙한 것에서 떠나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요즘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예배당의 고정된 자리에서 나가게 하셨습니다. 마치 광야로 이끄시듯이 우리를 온라인예배의 자리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자리, 곧 각자의 처소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예배가 또 다른 성전이 되거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다른 익숙한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익숙함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또 다른 거리를 두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이 선포하고 인정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광야와 같은 시간에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에 안정감을 갖고 있었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익숙해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지금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광야 같은 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익숙했던 것들이 눈에 더 잘 보일 것입니다. 그 익숙한 것으로부터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일만 되면 습관처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던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정해진 헌금을 일정하게 드리며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우리의 일상화 된 헌금 생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과 함께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는 봉헌의 삶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인도를 느끼는 광야는 과연 어떤 곳일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던 봉사이고, 정말 열심히 하던 봉사인데, 과연 나는 그 봉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느끼고 있었는가? 경험하고 있었는가? 혹시 자기만족, 자기 자랑, 의미 찾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또 다른 장소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익숙했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또 다른 자리로…. 우리가 익숙해지면 다시 일으켜 또 다른 자리로, 또 다른 국면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끼기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 악에서 떠날 때, 삶의 본질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두 번째로 우리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은 ‘악한 행실’임을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악한 행실로부터 떠나는 거룩한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다고 했지만, 때로는 악한 일에 거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지켜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염병의 상황을 통해 우리를 의도적으로 분리해 놓으셨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두셨습니다. 스스로 홀로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한 번도 없었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때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자 축복의 기회로, 이 시간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악한 버릇, 악한 행위, 거짓된 말,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떠나는 거룩한 거리 두기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과 함께하면서 더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고, 더 좋은 말을 하고, 과거와는 다른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악을 떠나고 선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악을 떠나며, 욕망과 거리를 두고, 사탄과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기름을 뺀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신앙의 기름을 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사치품을 거의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화장도 잘 하지 않아서 화장품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게 불필요한 것, 내가 떠나야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것과 거리를 두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시간을 구별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시간’의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시간의 거리를 둔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쉼을 허락한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안식일의 개념과 비슷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한 단락에 이런 표제가 있습니다. “불안에 저항하라.” 브루그만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안식일과 연결하여 서술합니다. 브루그만의 관점에서 해석된 내용을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애굽은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파라오가 지배하는 체제는 불안으로 점철된 체제입니다. 절대 권력과 파라오가 있지만, 그들은 나일강 범람으로 늘 불안해합니다. 종종 찾아오는 기근 때문에도 또 다른 불안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합니다. 나일강이 범람할지라도 안전하게 살기 위해 성을 쌓기도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필요합니다. 농부들은 노예가 되고, 식량을 저장할 창고를 짓느라 백성이 노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들은 빈곤해지고 온갖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모든 것이 ‘불안’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던, 불안이 지배하던 세상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애굽에서는 늘 열심히 노동하여 창고에 식량을 거두어들였는데, 그래서 안심했는데, 정작 식량이 없을 것 같은 광야에서도 굶주리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에서 이끌어 낸 후 안식일을 명하셨습니다. 하루 휴식하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출애굽기 20장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8~10)

브루그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허락하시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쉬셨듯이 쉬어라! 네가 쉴 때에는 네 주위 이웃들도 틀림없이 쉬게 하라. 정녕 불안을 야기하는 파라오의 시스템과 정반대인 쉼의 시스템을 북돋우라. 이는 너희가 더 이상 불안만 야기하는 파라오 시스템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약의 영역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신학적 뿌리와 정치적 생명력과 경제적 의미를 지닌 쉼을 만들어 주라.” (월터 브루그만, 『안식일은 저항이다』 중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며 살아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토요일까지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 노동의 배후에는 ‘불안’이 존재합니다.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하는 불안, ‘앞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불안이 있습니다.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존재합니다. 끊임없이 애굽의 파라오 같이 곡식을 저장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명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일하지 않는 날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식일을 지키는 데 집착했습니다. 그것을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을 따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거리를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매일같이 일하지만 쉼을 갖는 시간, 시간에 거리를 둠으로써 하나님이 임재할 자리를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 이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을 떼어 놓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통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에게 세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깊이 생각하는 이때, 거룩한 거리 두기를 깊이 생각해 보자고 권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익숙했던 장소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악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시간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불안으로부터 거리를 둡시다. 끊임없이 불안한 가운데 일하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를 안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또 한 주간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거리 두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3월 2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거룩한 거리두기” (레 19: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78장, 27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레 19: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조가 한창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면 서로가 전염병을 옮기는 도구가 되어서 전염병이 차단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의학계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거리두기’의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레 19:2).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은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첫째는 ‘익숙함으로부터의 거리두기’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익숙했던 안식일 율법에 묶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질을 보셨습니다.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셨고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안식일은 하나님의 법이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익숙했던 생각에 도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질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당에서 예배하던 고정된 자리에서 벗어나 온라인 예배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이 온라인 예배가 또 다른 익숙함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익숙함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늘 주일만 되면 나오던 교회, 정해진 헌금, 봉사를 다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는 ‘악한 행실로부터의 거리두기’입니다. 이 시간이 잘못된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 악한 버릇, 악한 행위, 거짓된 말,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떠나는 거룩한 거리두기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하면서 더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고, 더 좋은 말을 하고, 과거와는 다른 가정의 모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불안으로부터, 걱정으로부터 거리두기’입니다. 월터 부르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안식일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바로가 지배하는 체제는 불안으로 시작된 세상입니다. 나일 강의 범람, 기근으로 인한 걱정, 불안한 그들은 계속 바로의 착취 구조 속으로 더 빨려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애굽에서 부터 이끌어 내셨고, 노동하지 않는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을 갖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쉬셨듯이 쉬어라! 정녕 불안을 야기하는 파라오의 시스템과 정반대인 쉼의 시스템을 북돋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던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서 파라오의 원리, 세상의 원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때에, ‘거룩한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거리두기,’ ‘악한 것들로부터 거리두기,’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두기’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전 영역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누기

 1. 나는 어떤 ‘거룩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살았나요? 

 2. ‘거룩한 거리두기’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나의 연약한 모습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 연약함을 이길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익숙한 신앙의 형식으로부터, 악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거룩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