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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사랑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이실 겁니다. 에우리디케는 유리디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죠.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었습니다.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게 되자,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으로 괴로워하다가 저승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후 뱃사공 포네 앞에서 감동적인 리라 연주를 해서 강을 건너가게 되고, 지하 세계 문지기인 케르베로스 앞에서도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어서 지하 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저승 사자 하데스 역시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에 감동을 받고 죽은 에우리디케를 내어놓습니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따랐습니다. 이승으로 나갈 때까지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에우리디케 손을 잡고 이승을 향하여 계속해서 올라가다가 마지막 문턱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이승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안타까운 이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그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프랑스 화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1796-1875)라는 분의 그림인데 스산한 느낌이 드는 지하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지하 세계를 상징하는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상의 세계로 막 올라가려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오르페우스 손에는 등잔불과도 같은 리라 악기가 들려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생각이 들지만,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에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창 19:26)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그만 소돔과 고모라 성을 뒤돌아보게 되자 한순간에 소금 기둥으로 변화되고 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내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 그동안 잘 참아왔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혜를 얻는 것, 머리가 좋은 것, 신체가 건강한 것 등등 다 필요하겠습니다마는 무엇보다 ‘참아내는 능력’, ‘견디는 능력’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능 시험이 50일 정도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이 시간 동안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좋은 학원을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 아래 지도받는 일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수험생에게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견디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견디는 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지혜가 많아도 결국엔 아무것도 나의 것으로 삼지 못하게 됩니다.
<‘인내’는 정신적, 육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필요합니다.>
견디는 힘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견디는 힘은 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정신적인 힘을 가리킵니다.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문제를 뚫고 나가는 정신력이 견디는 힘에서부터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견뎌내는 힘도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도 육체가 따라가지 못하면 견뎌낼 수 없습니다. 육신도 건강해야 합니다.
요즘 주변에 마운팅 클라이밍이라든지, 절벽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럴 때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어디에다 발을 놓고, 손은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와 같은 기술도 필요하겠습니다마는, 절벽에 올라서서 가려면 실제로 힘이 필요합니다. 근육의 능력, 손아귀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체력이고, 지탱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정신력이 아무리 좋아도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절벽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신력이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합니다.
지탱하는 능력은 신앙생활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형통하게 살 수 있는지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1편 말씀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시편 1편에 따르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형통한 삶의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은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내고자 힘씁니다. 노력합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타협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지속적’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지난주, 지지난주 설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지난주에 전해 드린 설교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슬기로운 입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였죠. 따뜻한 말, 격려의 말을 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에는 ‘원망은 불신앙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와 간구로 아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설교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은 ‘따뜻한 말을 해야지’, ‘원망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루, 한 주가 지난 후에도 여러분 가운데 따뜻한 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까? 원망하기보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지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내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뜻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녀에게 하면 반응이 어떻습니까? 떨떠름해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설교를 듣고 와서 모처럼 따뜻한 말을 건넸는데 반응이 왜 그러느냐며 야단을 친단 말입니다. 따뜻한 말은 겨우 한마디 하고, 야단으로 바뀌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이 신앙생활에도 나타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체력을 가꾸려고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운동을 합니다. 근육을 키웁니다. 특별한 부위에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까지 근육을 만듭니다. 그러면서 힘을 만들어 갑니다. 체력을 세워 갑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어도 견디는 사람이 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말씀이니까 살아봐야지.’ 하고서 한 번 하고 좌절하게 되면, 운동하는 법은 알지만 운동하지 않는 사람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운동하는 법을 알고 운동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를 안다면, 마지막으로 할 일은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견디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듯이 ‘사랑해야지’, ‘믿어야지’, ‘희생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만 잊어버리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인내하는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과정입니다.>
베드로후서는 성숙한 신앙을 성품과 관련하여 표현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3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벧후 1:3, 새번역)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하면 경건에 이르고, 영생에 이르는지 하나님께서 이미 다 말씀해 주셨다고 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관하여 다 알려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힙니다.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벧후 1:4, 새번역)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도달하는 사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생명과 경건에 관하여 이미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이 붙듯이,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점점 더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성장해 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말 얼마나 귀합니까? ‘희생합시다’라는 말은 또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지식에만 머물러 있다면 삶 속에서 역동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장 5~7절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 … 마치 운동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가며 근육을 키워 가듯이 영적인 훈련도 유사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 하나씩 더해 가는 훈련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에 다가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베드로후서 1장 10~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10~11)
영적인 훈련을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다가가게 되면 실족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말씀대로 사는 삶을 지속하지 못해서 실패합니다. 계시록의 말씀 또한 그러합니다. 14장 12절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성도들이 어떤 부분에서 인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영역은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희생하라는 말씀을 지키고자 끝까지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영역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믿음을 따라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열매가 맺힙니다.>
참 재미있게도 장신대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은 부임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강의나 설교 때마다 줄곧 하시는 행동이 있습니다. 항상 ‘사랑합니다’를 외치시는 겁니다. 그냥 말로만 하지도 않으시고 꼭 제스처와 함께 인사를 하시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번은 ‘조금 명목적이지 않은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감동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사랑을 스스로 훈련하신다고 합니다. 이를 악물고 사랑해야지만, 이를 악물고 사랑하기로 노력해야지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서 드러날 수 있다고 하신 이야기가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연습해야만 하고, 희생을 연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사랑을 연습하고, 희생을 연습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 3:14)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죠.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무엇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에 합당한 것들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며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권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따뜻한 말을 합시다. 원망하지 맙시다. 감사의 말을 합시다. 사랑의 말을 합시다. 희생의 삶을 살아갑시다.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확신한 바를 붙잡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붙잡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예배당 나와서 좋은 말씀 듣는 것, 물론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듣는 것에서만 머문다면 영적인 성장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운동하듯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숲속의 사랑』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김영갑 갤러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일찍이 요절한 사진작가 김영갑님이 생전에 찍어 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서 한 가지를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조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그림을 찾아보았습니다마는 그보다는 좀 못합니다.
실제 사진은 이것보다 훨씬 더 검은색의 하늘,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분위기, 그 속에서 갈대들이 강력하게 흩날리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게 된다면 아마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사진 옆에는 이생진 시인이 쓴 시가 함께 있는데요. 이 시가 제 마음에 늘 와닿습니다.
거센 바람이 시기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약한 풀꽃
그러나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숲속의 사랑, 16 이생진 시)
특별히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이 시구가 참으로 와닿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참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원수 같은 사람과 살면서 참아야 하고요. 가족이어서 참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인내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과정을 겪으시면서 참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깊이 생각하실 수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성경 말씀은 아니지만 마음에 떠올리시면 어떻겠습니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One Who Perseveres Will Prevail
Hebrews 3:12-14
The story ofOrpheus and his wife Eurydice is a famous love story in Greek mythology. When Eurydice dies after being bitten by a poisonous snake, Orpheus, the son of Apollo and great poet and musician, becomes stricken with grief; so he goes to the land of the dead to bring her back.
Moved by his lyre playing, Hades, the god of the dead, and his wife Persephone return Eurydice to him on one condition: he must not look at her until they getaway from land of the dead. But only a few feet away from the exit, Orpheus looks back to make sure his belovedis behind him, losing her forever. Ever since, he keeps himself from women, blaming himself for Eurydice’s death; he is eventually killed by the women who are left feeling bitter by his rejections.
Many artists have captured this sad tale in their works, including the French painter Camille Corot (1796-1875). Let me show you his painting, titled, “Orpheus Leading Eurydice from the Underworld (1861, Oil on canvas).The bleak landscape represents the realm of the dead and you can see how Corot tries to capture the moment of Orpheus’ ascension to the world of the living. Orpheus, with his lyre held up high,is taking powerful strides, whichis in stark contrast to the chilly and still background. We are saddened by the feeling that if had not looked back at the last moment, he would have returned to a life of bliss with his beloved Eurydice.
The Bible also tells a story about not looking back: “But Lot’s wife looked back, and she became a pillar of salt.”(Genesis 19:26)
There are also many other stories of people failing because of their inability to wait to the end. This gets us thinking, “If there ever was one important and helpful virtue in life, wouldn’t it be perseverance?’
Even if you have the most brilliant idea or the cleverest strategy, none of these will be yours if you do not see them through to the end. Two weeks ago, we resolved to speak wisely and warmly. Last week, we decided not to grumble—but instead to live with thanks in prayer.
How wonderful these resolutions are! If only we can keep them, our lives will be peaceful and happy.
The problem is that we fail to live them out by continuing to follow them with endurance. The problem, therefore,is discontinuance.
Let’s say you tried speaking kindly to your wife. But she responds critically, saying, “What’s the matter with you today?” She would, of course,have been happy inside, but finds it awkwardto respond kindly. This goes for our children too. Even when we make the effort to encourage them with positive words, their response is strained. This is understandable, especially during puberty. But our problem is that we stop being nice to them when we see their coldness and eventually start scolding them again.
The ability to say kind words continually, to give thanks continually without grumbling, to pray continually istrue power.
This is also true of exercise, right? Most people know how to exercise. They know which routines will make them fit. The problem is they fail to do them continually with perseverance.
The important thing, therefore, is perseverance and continuity.
This applies to our spiritual life too. There are things we must do to be filled with the peace and joy of God: we must read the Scripture continually and live according to it.
“Blessed is the one who does not walk in step with the wicked or stand in the way that sinners take or sit in the company of mockers, but whose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who meditates on his law day and night. That person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they do prospers.” (Psalm 1:1-3)
The problem is this: are we living a life that continues to followthe Word?
Like Orpheus in Greek mythology, we fail often because we cannot wait and persevere to the end.
Dear brothers and sisters, say kind words to those around you. It may be awkward at first, and people may make fun of you. But try speaking words of love and faith continually without giving up. Then the circumstances will change, along with the people and their fate.
The problem is continuity. Persevering in the path which we must take is critical. This applies to both exercise and life. Our lives lack power because ofour inconsistent living.
“His divine power has given us everything we need for a godly life through our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goodness,”(2 Peter 1:3)
The above is saying that God already opened up to us the way to godliness. He has already taught us how to live through the Word.
He has done so because He wants us to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in the world caused by evil desires.”(2 Peter 1:4)That is, we can find a divine nature in us. But it is displayed when we know and follow all the knowledge of God that leads to godliness.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godliness; and to godliness, mutual affection; and to mutual affection, love.”(2 Peter 1:5-7)
The apostle Peter goes on to say: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make every effort to confirm your calling and election. For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never stumble, and you will receive a rich welcom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2 Peter 1:10-11)
The reason the kingdom of God has not come to earth is not because we don’t know how, but because we do not do it, which prevents us from participating in the divine nature. Because we fail to continually and firmly live the life God wants from us, God’s peace and righteousness are not manifested in our lives.
“This calls for patient endurance on the part of the people of God who keep his commands and remain faithful to Jesus.” (Revelation 14:12)
Revelation talks about two kinds of endurance required of Christ-followers. First, they must keep His commands; second, they must remain faithful to Jesus.
Observing God’s commands may easily become a legalistic activity. Sometimes observing the law itself may become an absolute good or one’s merit. Following the Word well is an amazing thing.
But guarding one’s faith for Jesus is also critical. We cannot do it ourselves. We cannot keep all the commands continually. We fail. We despair. Yet the reason we can get up again is because we believe that Jesus died on the Cross for a sinner like me.
Therefore, what we need is to continually apply the Word of God to our lives and, by doing so, to participate in the divine nature; but, at the same time, we must share with each other the love and grace of God who forgives us despite all our weaknesses.
Today’s passage also has a word about perseverance:
“We have come to share in Christ, if indeed we hold our original conviction firmly to the very end.”(Hebrews 3:14 NIV)
The NLT translates it as follows:
“For if we are faithful to the end, trusting God just as firmly as when we first believed, we will share in all that belongs to Christ.” (Hebrews 3:14 NLT)
Let us persevere. The one who perseveres will prevail.
It is not easy to say kind, warm, and wise words of faith and love. Moreover, doing it continually seems almost impossible.
But just as we see results when we exercise continually, we will see amazing changes in our ourselves as we come to possess a divine nature if we continually try and practice what we ought to do in our faith lives.
Let me read you a poem that I like. It is a poem compiled in the book “Love In The Forest,” which is displayed in The Kim Young Gap Gallery Dumoak in Jeju Island. This gallery houses the worksof photographer Kim. Although I cannot show you Kim’s work due to copyrights issues, I can show you something similar. Enjoy it while I read you the poem:
The fierce wind envies
Love is always a fragile grass flower
But the wind lasts only three days
So endure, and you will prevail
(Lee, Saeng-Jin. Compiled in “Love In The Forest”)
“But the wind lasts only three days / So endure, and you will prevail.”
I love this verse. All we need to do is endure a little. Then the wind will die down and peaceful days will come. The day of victory will come.
It is not the one who knows that prevails—but the one who perseveres. This is true of our faith and our lives.
We know what is best in faith. And we have chosen that life. Now the one remaining task for us is to continually follow what we have chosen and to persevere. Some people recover their overall health through exercise. Such an endurance is required of us too. When we continue to do and persevere in the single work of love, of giving, and of helping, we will see amazing, indescribable fruits.
히브리서 3: 12~14
12~14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인생에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사랑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이실 겁니다. 에우리디케는 유리디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죠.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었습니다.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게 되자,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으로 괴로워하다가 저승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후 뱃사공 포네 앞에서 감동적인 리라 연주를 해서 강을 건너가게 되고, 지하 세계 문지기인 케르베로스 앞에서도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어서 지하 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저승 사자 하데스 역시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에 감동을 받고 죽은 에우리디케를 내어놓습니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따랐습니다. 이승으로 나갈 때까지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에우리디케 손을 잡고 이승을 향하여 계속해서 올라가다가 마지막 문턱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이승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슬픈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안타까운 이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에 의해서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그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프랑스 화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1796-1875)라는 분의 그림인데 스산한 느낌이 드는 지하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지하 세계를 상징하는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상의 세계로 막 올라가려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오르페우스 손에는 등잔불과도 같은 리라 악기가 들려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생각이 들지만,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에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창 19:26)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그만 소돔과 고모라 성을 뒤돌아보게 되자 한순간에 소금 기둥으로 변화되고 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내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 그동안 잘 참아왔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혜를 얻는 것, 머리가 좋은 것, 신체가 건강한 것 등등 다 필요하겠습니다마는 무엇보다 ‘참아내는 능력’, ‘견디는 능력’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능 시험이 50일 정도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이 시간 동안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좋은 학원을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 아래 지도받는 일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수험생에게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견디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견디는 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지혜가 많아도 결국엔 아무것도 나의 것으로 삼지 못하게 됩니다.
<‘인내’는 정신적, 육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필요합니다.>
견디는 힘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견디는 힘은 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정신적인 힘을 가리킵니다.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 그래서 어려운 중에도 문제를 뚫고 나가는 정신력이 견디는 힘에서부터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견뎌내는 힘도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도 육체가 따라가지 못하면 견뎌낼 수 없습니다. 육신도 건강해야 합니다.
요즘 주변에 마운팅 클라이밍이라든지, 절벽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럴 때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어디에다 발을 놓고, 손은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와 같은 기술도 필요하겠습니다마는, 절벽에 올라서서 가려면 실제로 힘이 필요합니다. 근육의 능력, 손아귀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체력이고, 지탱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정신력이 아무리 좋아도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절벽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신력이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합니다.
지탱하는 능력은 신앙생활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형통하게 살 수 있는지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1편 말씀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시편 1편에 따르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형통한 삶의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은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내고자 힘씁니다. 노력합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타협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지속적’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지난주, 지지난주 설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지난주에 전해 드린 설교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슬기로운 입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였죠. 따뜻한 말, 격려의 말을 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에는 ‘원망은 불신앙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와 간구로 아뢰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설교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은 ‘따뜻한 말을 해야지’, ‘원망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루, 한 주가 지난 후에도 여러분 가운데 따뜻한 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까? 원망하기보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지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내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뜻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녀에게 하면 반응이 어떻습니까? 떨떠름해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설교를 듣고 와서 모처럼 따뜻한 말을 건넸는데 반응이 왜 그러느냐며 야단을 친단 말입니다. 따뜻한 말은 겨우 한마디 하고, 야단으로 바뀌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이 신앙생활에도 나타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체력을 가꾸려고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운동을 합니다. 근육을 키웁니다. 특별한 부위에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까지 근육을 만듭니다. 그러면서 힘을 만들어 갑니다. 체력을 세워 갑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어도 견디는 사람이 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말씀이니까 살아봐야지.’ 하고서 한 번 하고 좌절하게 되면, 운동하는 법은 알지만 운동하지 않는 사람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운동하는 법을 알고 운동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를 안다면, 마지막으로 할 일은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견디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듯이 ‘사랑해야지’, ‘믿어야지’, ‘희생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만 잊어버리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인내하는 성도의 삶이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과정입니다.>
베드로후서는 성숙한 신앙을 성품과 관련하여 표현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3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벧후 1:3, 새번역)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하면 경건에 이르고, 영생에 이르는지 하나님께서 이미 다 말씀해 주셨다고 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관하여 다 알려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힙니다.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벧후 1:4, 새번역)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도달하는 사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생명과 경건에 관하여 이미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이 붙듯이,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점점 더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성장해 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말 얼마나 귀합니까? ‘희생합시다’라는 말은 또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지식에만 머물러 있다면 삶 속에서 역동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장 5~7절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 … 마치 운동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가며 근육을 키워 가듯이 영적인 훈련도 유사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 하나씩 더해 가는 훈련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에 다가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베드로후서 1장 10~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10~11)
영적인 훈련을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다가가게 되면 실족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말씀대로 사는 삶을 지속하지 못해서 실패합니다. 계시록의 말씀 또한 그러합니다. 14장 12절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성도들이 어떤 부분에서 인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영역은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희생하라는 말씀을 지키고자 끝까지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영역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믿음을 따라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열매가 맺힙니다.>
참 재미있게도 장신대에 계시는 교수님 한 분은 부임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강의나 설교 때마다 줄곧 하시는 행동이 있습니다. 항상 ‘사랑합니다’를 외치시는 겁니다. 그냥 말로만 하지도 않으시고 꼭 제스처와 함께 인사를 하시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번은 ‘조금 명목적이지 않은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감동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사랑을 스스로 훈련하신다고 합니다. 이를 악물고 사랑해야지만, 이를 악물고 사랑하기로 노력해야지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서 드러날 수 있다고 하신 이야기가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연습해야만 하고, 희생을 연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사랑을 연습하고, 희생을 연습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 3:14)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죠.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무엇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음에 합당한 것들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며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권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따뜻한 말을 합시다. 원망하지 맙시다. 감사의 말을 합시다. 사랑의 말을 합시다. 희생의 삶을 살아갑시다. 얼마나 좋은 말들입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확신한 바를 붙잡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붙잡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예배당 나와서 좋은 말씀 듣는 것, 물론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듣는 것에서만 머문다면 영적인 성장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운동하듯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숲속의 사랑』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김영갑 갤러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일찍이 요절한 사진작가 김영갑님이 생전에 찍어 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서 한 가지를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조금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그림을 찾아보았습니다마는 그보다는 좀 못합니다.
실제 사진은 이것보다 훨씬 더 검은색의 하늘,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분위기, 그 속에서 갈대들이 강력하게 흩날리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곳에 가시게 된다면 아마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사진 옆에는 이생진 시인이 쓴 시가 함께 있는데요. 이 시가 제 마음에 늘 와닿습니다.
거센 바람이 시기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약한 풀꽃
그러나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숲속의 사랑, 16 이생진 시)
특별히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이 시구가 참으로 와닿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참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원수 같은 사람과 살면서 참아야 하고요. 가족이어서 참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인내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과정을 겪으시면서 참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깊이 생각하실 수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성경 말씀은 아니지만 마음에 떠올리시면 어떻겠습니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9월 24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견디는 자가 이기리라” (히 3:12-14)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47장, 53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히 3:12-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9월 24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덕목이 있다면, 끝까지 참아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고 전략이 있어도, 견디는 힘이 없으면 그것이 나의 것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의 영적 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평안으로 가득하고, 기쁨으로 가득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경건에 이르는 길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벧후 1:3, 5-7)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경건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벧후 1:4)이 됩니다. 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실천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굳게 잡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이고,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부족함에도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라(히 3:14)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견디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바르고 따뜻한 말로 사람을 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렇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듯이 조금씩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바꾸어 간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놀라운 신의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진작가인 김영갑 작가의 작품 중 ‘갈대’ 사진이 있습니다. 숲속의 사랑이라는 책에서 그 사진 아래에 이생진 시인이 이런 시를 적어두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시기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약한 불꽃
그러나 그 바람 사흘을 못 가나니
참아라. 그러면 네가 이기리라.”
견디는 자가 이길 것입니다. 우리가 지속하고 견딘다면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나누기
- 내가 지속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일에는 무엇이 있나요?
- 벧후 1:5-7절의 말씀 중 앞으로 내가 지속하고 견뎌야 하는 경건의 자세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경건의 비밀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고 참아내는 인내의 과정을 통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