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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자의 원칙

히브리서 12: 1 ~ 3

박경수 목사

2021.02.07

< ‘믿음의 경주’, 평생에 완주해야 할 길입니다. >

흔히들 한국 사람의 병 아닌 병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 병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한국인들이 만들고 확산시키는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외국인들도 식당이나 거리에서 ‘빨리빨리’라고 말하며, 흉내 내곤 합니다. 그 말을 듣던 한국인들이 좋다고 웃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을 일일까요? 생각해 보면 한국의 문화는 ‘빨리빨리’ 문화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음식 문화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재료는 ‘장’입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하나같이 오랜 시간 숙성되고 발효되어야 제 맛을 내는 음식이지요. 장은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오래된 장으로 찌개나 탕을 끓이면 말 그대로 진(眞)맛입니다. 이처럼 한국 음식은 빨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오히려 ‘빨리빨리’ 음식의 대표적인 예는 말 그대로 ‘Fast Food’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식으로 식사한다면 적어도 30분, 넉넉하게는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러나 햄버거는 10분이면 충분히 먹는 음식입니다. 심지어는 차를 타고 Drive Through로 지나가면서 햄버거와 콜라를 받아서 먹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미국 문화가 ‘빨리빨리’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하는 것도 있지만 느리다 못해 분통이 터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살았던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일 처리가 무척 느린 지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병이 있다고 지적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오래된 장맛의 문화를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빠른가, 느린가’에 있지 않습니다. 빠르게 할 일은 빨리 해야 하고, 천천히 꾸준하게 해야 할 일은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한국의 ‘빨리빨리’ 병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해야 할 일들을 성급하게 서두른 데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야말로 ‘빨리빨리’ 병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평생에 걸쳐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름 아닌 ‘믿음의 경주’입니다. 믿음 생활은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자신과 부단히 싸워 가면서 평생에 걸쳐 달려야 할 길이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을 경주자에 비유합니다. 본문 12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 12장 1절 중)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는 본문이 히브리서 11장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우리는 믿음의 수많은 선배들을 만납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수많은 선지자들.. 이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로 둘러싸며 경주를 시작하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육상 경기장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선배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믿음의 경주에서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3절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을 권면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에 기억해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무거운 짐과 죄의 짐을 벗어 버리고 달려야 합니다. >

경주자의 첫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부가 말하고 있듯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버리는 것]입니다. 경주자가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뛸 수는 없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가장 가볍게 한 상태로 뛰어야 합니다. 러닝셔츠와 짧은 바지만 입고 달려야 합니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려면 머리를 짧게 깎거나, 미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여러분,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영웅 ‘아베베’라는 사람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에티오피아의 군인이던 이 사람은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1960년 로마 올림픽,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2관왕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신발이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전해서 신발이 가볍고 공학적이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랐기 때문에 아베베는 신발도 벗고 맨몸, 맨발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기관차’라는 별명까지 얻었지요. 믿음의 경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무거운 짐과 죄의 짐을 내려놓아야만 달려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티아고 도시에는 가 보았지만 순례길을 걸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제주의 올레길도 일부 구간은 걸었지만 전체는 걷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제자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국내에서 사역지를 구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많이 한 분입니다. 가족이 있으니 대리운전도 하고 영업용 택시 운전도 했습니다. 사역자로서 쓰임 받지 못하는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달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저에게 이야기하기를, 짐을 간단하게 챙긴다고 했는데도 며칠 걷다 보니 천근만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져간 큰 카메라와 여러 가지 짐들을 싸서 우편으로 산티아고에 보냈다고 합니다. 욕심으로 가져온 짐들 때문에 걷지 못하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우편 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짐들은 목적지에 보내고, 간단한 옷가지만 들고 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례자는 가장 가벼운 차림이어야 합니다. 이 땅의 순례자로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저와 여러분 역시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릴 때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한 길로 달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물질에 대한 욕심입니까? 자존심과 명예욕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입니까? 믿음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짐들이라면 무엇이든지 벗어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중)

주님 앞에 우리 짐을 내려놓을 때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경주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짐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순한 삶이 영적인 삶입니다. 프랑스 개혁교회 목회자 샤를 와그너(Charles Wagner, 1852-1918)라는 사람이 오래 전 『단순한 삶』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와그너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단순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아내와 함께 파리의 바스티유 작은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생각, 말, 돈, 인간관계, 교육,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단순하게 할 수 있을지 조언해 줍니다. 이 책이 1895년에 출판되었으니 벌써 1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필요한 충고와 조언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심플 라이프’, ‘미니멀리즘’, ‘신박한 정리’ 등은 기술과 방법에 초점을 두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단순함은 태도의 문제이자,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삶이란 우리 삶이 부수적인 것들에 휘둘릴 때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며 머무르는 것입니다. 단순함이란 본질에 충실한 것입니다. 온갖 미디어의 헛된 소문과 복잡하고 바쁜 세상 소리에 휘둘리면서 환경에 지배 당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아니면 단순함에 뿌리를 내리고 본질에 집중하면서 환경을 지배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와그너 목사는 “단순함과 기쁨은 서로 오래된 친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단순할수록 내면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경주에 나섰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죄의 짐들을 내려놓고, 단순한 충실함으로 믿음의 한 길을 달려갈 수 있길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인내로써 경주해야 합니다. >

경주자의 두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부에 나타나듯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예수를 알고 난 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이 장거리 경주를 하는 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필립 얀시처럼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할 때도 있을 것이고, ‘예수 믿는 것을 당장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여러분, 마라톤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고 멈추고 싶을까요?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참고 또 참고 인내하죠. 믿음의 경주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만 같은 순간에도, 어쩌면 살 소망이 다 끊어졌다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인내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은 참는 것은 비겁한 약자의 변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황금의 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설교에 타고난 능력을 보였던 초대 교회 지도자 크리소스토무스는 인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에게 그릇된 대우를 받고 잘못 취급 받아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는 힘.” 그 부당함을 참고 인내하는 힘이 바로 인내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비겁한 약자의 변명이 아니라, 강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 그렇습니다. 사랑은 인내이지요.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황당하고, 이상하고, 심지어 심각한 일을 자꾸 벌여 보세요. 그 사람이 몇 번까지 참을 수 있을까요? 아마 몇 번 참다가 폭발하겠죠. 바로 거기까지가 그 사람의 사랑의 크기일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했지”하고 마음에 악한 것을 꽁하고 품으며,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으셨고 지금도 참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3장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로마서 3장 25절 중)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길이 참으셨습니다. 어쩌면 천 년을 하루같이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마음에 꽁하고 품지 아니하시고 잊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간과하시는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저와 여러분이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 역시 오래 참아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자녀, 부모, 형제자매, 이웃,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인내는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 가운데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때에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은 얼마나 인내하면서 믿음의 길을 달리게 될까요? 인내하지 못하면 은혜도, 믿음도 쏟아 버리게 됩니다. 그동안 달려온 거리를 다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하는 믿음이야말로 보석처럼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평생 동안 믿음을 지켜 나가면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목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

경주자의 세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2절이 말하듯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엉뚱한 곳으로 달리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목표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야지 다른 곳으로 뛰어서는 안 되겠지요. 예배를 마치고 저의 집으로 가려면 올림픽 대교를 타고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 방향을 잘못 잡고 서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서해안에 빠지게 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엉망이 되고, 인내할수록 힘만 듭니다.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도 목표 지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의 헛된 것을 보고 달려서는 안 됩니다. 영어 성경은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을 “fix our eyes on Jesu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을 예수에게 ‘fix’, ‘고정하라’는 겁니다. 시선 고정입니다.
오늘 우리 시선이 어디에 가장 많이 고정됩니까? 컴퓨터 모니터입니까? 휴대폰 화면입니까? 텔레비전입니까? 유튜브 방송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시선이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에, 하늘의 것보다 땅의 것에, 주님에게보다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할 때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요 소망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장 2절 후반부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기쁨’,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까지 참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인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결코 게을리 할 수 없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12장 3절의 말씀처럼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참으신 그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피곤하여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믿음의 한 길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께만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하고 달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이들에게 하늘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

옛 격언에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아픈 시간이지만 고난을 겪고 나면 감미로운 시간이 온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달리고 난 후에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장 7~8절)

믿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한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의 칭찬과 면류관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 곁에서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름 같이 허다한 믿음의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특별히 우리 앞에서 우리를 보며 손짓하고 계시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믿음의 경주가 좌절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힘이 샘솟아 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남은 평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믿음의 경주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Rules of the Race of Faith

Hebrews 12:1-3

A commonly known “disease” of Koreans is the “hurry, hurry” (빨리빨리,ppali ppali) culture. This, of course, has a negative connotation. In fact, it is Koreans themselves who coined and spread this term. As some Koreans made haste, some foreigners started to do the same, saying “ppali, ppali” in their awkward accent in the streets and in restaurants. This made Koreans laugh. But is it laughable?

In truth, the Korean culture is far from making haste. A country’s cuisine best represents its culture. A signature Koreaningredient is fermented pastes. You can’t make proper Korean dishes without fermented chili paste, fermented bean paste, or fermented soy sauce, which all require a long period of fermentation and ripening. The longer the period the better. Jjigae (or stews), hot soup, steamed monkfish using long-fermented chili paste or bean paste are exquisite. Korean food cannot be made in a rush. You must wait.

The best example of food made with hasteare fast foods such as hamburgers of the United States. Hamburgers are served quickly and mass-produced. It takes an hour toproperly enjoy a Korean meal. But you can gobble down a hamburger within 10 minutes. You can even get them drive thru, eating your hamburger and coke on the move. But this does not imply thatAmericans have a “hurry, hurry disease.” In a way, fast foods are fast, but in other ways they are slow. In California, where I spent some time, the service was slow and frustrating. It may have been the warm climate. Likewise, in some respects, Koreans may seem to always be hurrying, butthey also have other cultural aspects, such as the long-fermented pastes.

The problem is not speed. Korea’s “hurry, hurry” culture gets mocked when things that should be done with care and precision are done in haste. This has led to some painful and failed experiences. Our faith must never follow this “hurry, hurry” culture. The thing that must be pursued with perseverance our whole life is running the race of faith. Our faith is a long race, a marathon. We must run this race, a lifelong one, by continuously struggling against the self.

Today’s passage from Hebrews compares Christians to athletes runninga race. Let’s look at the first part of 12: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The conjunction “therefore” connects this passage to the previous chapter. All the ancestors of faith mentioned in chapter 11—Abel, Enoch, Noah, Abraham, Moses, Sarah, Rahab, Gideon, Samson, David, Samuel, and other prophets—surround us like a cloud, cheering us on to win in the race of faith.

Imagine a track and field tournament. Can you hear the fathers of faith cheering their lungs out? How can we stop ourselves from falling behind in the race? How can we persevere to the finish line and achieve victory? Today’s passage from Hebrews introduces three important principles that will helpus finish the race. These are rules that we must remember our whole life in order to guard our faith.

The first ruleis to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ccording to the latter part of Hebrews 12:1. A runner must make himself as light as possible—in terms of both his body and mind. No runner can run with a suit and briefcase. He needs shorts and a running shirt. To reduce air resistance getting a haircut or even shaving his head is recommended. Do you remember Abebe Bikila the famous Ethiopian marathon runner? Abebe, a former soldier who fought even in the Korean War, won two gold medalsin the 1960 Rome Olympics and in the 1964 Tokyo Olympics. He ran barefoot, which gave him a nickname among Koreans “the barefoot engine.” The Bible teaches us that in our race of faith we, too, must“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Have any of you been to the pilgrimage route to Santiago, Spain? Or to the Jeju Olle trail? Although I visited Santiago, I did not walk the pilgrimage route. And Ihaven’t walked the whole Olle trail yet. Astudent I taught in seminary couldn’t find work as a pastor after graduating. With mouths to feed, heeven took up odd jobs such as taxi driving and chauffeuring. Devasted at failing to be used by God, he decided to walk the pilgrimage route to Santiago for a month, leaving everything behind. He later told me that—even though he had packed lightly—the lightest bag felt heavy and he wanted to throw away everything. Eventually he had to mail all his belongings, including the camera he brought to take pictures, to Santiago. This left him with just the bare necessities and some clothes. As such, a pilgrim must throw off all heavy baggage—even his camera. The pastor is now preaching the gospel as an overseas missionary.

What is the heavy burden and sin preventing you from steadily running the race of faith? A desire for wealth? Pride?Desire for fame? Health? Or is it “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 (John 1 2:16) Whatever it is that hinders you from running the race, I hope you will throw them all off before our Lord. Jesus said,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atthew 11:28)

The author of Hebrews also says, “Let us then approach God’s throne of grace with confidence so that we may receive mercy and find grace to help us in our time of need.” When we lay down our burdens before Him, we will experience freedom and liberation. And we will be able to run the race of faith with a light heart and body. If you truly want to live in faith, you must first lay down your heavy burdens and sins.

A simple life is a spiritual life. Charles Wagner (1852-1918), a pastor of the reformed church of France, wrote in his book “The Simple Life” that a simple life is the only Christian life. Hehimself lived a frugal life in Bastille with his wife in a small apartment. He wrote in his book how to practice simplicity in all areas of life, including speech, thought, lifestyle, money, relationship, and education. Published in 1895, this book is 130 years old, but still offers us crucial advice today. Simple life, minimalism, and organizing methods talked of today focus on technique and tips, but Wagner’s “The Simple Life” emphasizes the simplicity of the mind and attitude.

Today we are bombarded with unnecessary things, but living a simple life is to concentrate on—and to stay focused on—what we really need to look at. Simplicity is to be faithful to the essence. Will you live a hectic life swayed by all the empty talk of the media and all the complicated, unnecessary noise of the world? Or will you live a simple life focusing on the essence and having control over your environment? Pastor Wagner says that simplicity and happiness are “old friends.” A simple life brings happiness. A simple life will help us recover from our disease of making haste and open up a happy, slow, and leisurely life.

The second rule for an athlete running in a race is mentioned in the latter part of 12:1—to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The race of faith starts the moment we meet Christ and continues until we die. It is a marathon with countless trials and tribulations. We may complain along the way, “I am disappointed in You, God”—as did Phillip Yancey. Sometimes we might want to quit being a Christian altogether. It is at such times that perseverance is needed. They say a marathon is a fight with the self. You mustkeep on fighting your impulses that scream, “I want to stop!” and keep running. The race of faith requires even a greater perseverance than a marathon. Even when God seems absent, even when all hope seems to be gone and life seems meaningless, you must persevere again and again. This is the path of faith.

Perseverance is endurance. The Greek philosophers at the time of the Early Church believed that endurance was the attitude of the weak and cowardly. But Christians taught differently. John Chrysostom, an important Early Church Father also known as “the golden-mouthed,” taught that perseverance is the power to overlook a hurtful or unjust treatment done to oneself by others, even when one has the power to avenge himself. It is the power to withstand and overcome that injustice. Perseverance is, therefore, not an excuse for the weak and cowardly, but a virtue possessed only by the strong.

In the famous chapter on love in First Corinthians, Paul first writes,“love is patient.” (1 Corinthians 13:4) The first characteristic of love is patience, in other words, perseverance. One way to know just how much someone loves you is to see how patient he/she is with you when you do the most crazy, unimaginable, and damaging things. See how long it takes for him/her to explode. If he/she explodes, “How many times do I have to put up with you? I just can’t take it anymore!”, that means her/his love is just that much. First Corinthians 13:5 says, “love does not keep record of wrongs.” This means that one who loves does not harbor bitterness or remember the evil actions or injustice done to him/her. If you think, ‘I remember what you did’ with bitterness, then it is not love.

For how long has God been—and continues to be—patient with us? Romans 3:25 says,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Romans also says that He forgave us and saved us. It says He was patient with us for a long time. He was patient—as if a thousand years were a day (2 Peter 3:8). He also left our past sins unpunished. He did not remain bitter about our sins and transgressions, but forgot about them. Without His patience and overlooking we would not be alive now.

Therefore, it is only right that we, too, run our race of faith in forbearance. As First Thessalonians says, we must “be patient with everyone” (1 Thessalonians 5:14).We must pray, ‘Lord, give me patience and faith!’ because patience is the fruit of the Spirit. Galatians 5:22-23 says that patience is one of the nine fruits of the Spirit, which are love, joy, peace, forbeara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The apostle James said, “Let perseverance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James 1:4) Our faith becomes complete through perseverance.

How many times do we have to be patient today and run the race of faith? If you lose patience, you lose grace and faith, too. You will be set back in your race of faith. A patient man of faith shines like a beautiful gem. I hope that you and I will keep our faith to the end and run the race with perseverance.

The third rule is to “fix our eyes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Hebrews 12:2)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a runner is to fix his eyes on the goal. He must run toward the finish, not somewhere else. If I want to go home after this sermon, I have to go east, taking the Olympic highway—not west. If I went west and persevered, I would end up drowningin the West Sea. Direction is more important than speed. If you go fast and persevere in the wrong direction, it will only make things more difficult. The most crucial thing in the race of faith is direction and goal. Our eyes must be fixed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We must set our eyes on Him only.

What do you fix your eyes on the most? What do you look at the most? Your computer? Cell phone screen? TV? YouTube? Do you look to powerful people and powerful positions? If we, as Christians, listen more to what the world says than to God, if our eyes are fixed on earthly things instead of heavenly things, and if our eyes are fixed on people instead of God, we should be ashamed.

We will be able to persevere when we fix our eyes on Jesus because He is the foundation of our faith and hope. As the latter part of Hebrews 12:2 says, Jesus bore the shame on the cross for us. If we think of this, we cannot run the race lazily, and we cannot give up because it’s hard. As 12:3 says, if we think of our Lord’s endurance for us, we will surely be able to overcome the difficulties that come our way. When we think of Jesus, we will be able to strengthen our feeble arms and weak knees and run the race of faith. I hope that we will fix our whole hearts on Jesus this week. I hope that you and I will be faithful runners that look to only Jesus our whole lives.

As the adage goes, “Perseverance is bitter, but its fruit is sweet.” There is also a Korean saying that goes, “After bitterness comes sweetness.” After perseverance comes a sweet time. Looking back on his life, Paul confessed,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 (2 Timothy 4:7-8)

On the last day God will also reward us with praises and a crown if we do our best to run the race of faith. Whenever you feel weary or hardships come your way, think of the cloud of witnesses surrounding you, cheering you on. Most of all, look to Jesus who stands before you, waving His hand. This will give you new strength. I earnestly hope that we will throw off all our burdens and do our best to run the race of faith in perseverance with our eyes fixed on Jesus, the perfecter and Lord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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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 1 ~ 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 ‘믿음의 경주’, 평생에 완주해야 할 길입니다. >

흔히들 한국 사람의 병 아닌 병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 병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한국인들이 만들고 확산시키는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외국인들도 식당이나 거리에서 ‘빨리빨리’라고 말하며, 흉내 내곤 합니다. 그 말을 듣던 한국인들이 좋다고 웃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을 일일까요? 생각해 보면 한국의 문화는 ‘빨리빨리’ 문화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음식 문화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재료는 ‘장’입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하나같이 오랜 시간 숙성되고 발효되어야 제 맛을 내는 음식이지요. 장은 오래될수록 좋습니다. 오래된 장으로 찌개나 탕을 끓이면 말 그대로 진(眞)맛입니다. 이처럼 한국 음식은 빨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오히려 ‘빨리빨리’ 음식의 대표적인 예는 말 그대로 ‘Fast Food’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식으로 식사한다면 적어도 30분, 넉넉하게는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러나 햄버거는 10분이면 충분히 먹는 음식입니다. 심지어는 차를 타고 Drive Through로 지나가면서 햄버거와 콜라를 받아서 먹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미국 문화가 ‘빨리빨리’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하는 것도 있지만 느리다 못해 분통이 터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살았던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일 처리가 무척 느린 지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병이 있다고 지적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오래된 장맛의 문화를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빠른가, 느린가’에 있지 않습니다. 빠르게 할 일은 빨리 해야 하고, 천천히 꾸준하게 해야 할 일은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한국의 ‘빨리빨리’ 병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해야 할 일들을 성급하게 서두른 데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야말로 ‘빨리빨리’ 병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평생에 걸쳐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름 아닌 ‘믿음의 경주’입니다. 믿음 생활은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자신과 부단히 싸워 가면서 평생에 걸쳐 달려야 할 길이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을 경주자에 비유합니다. 본문 12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 12장 1절 중)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는 본문이 히브리서 11장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우리는 믿음의 수많은 선배들을 만납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수많은 선지자들.. 이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로 둘러싸며 경주를 시작하는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육상 경기장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선배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믿음의 경주에서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3절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을 권면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에 기억해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무거운 짐과 죄의 짐을 벗어 버리고 달려야 합니다. >

경주자의 첫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부가 말하고 있듯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버리는 것]입니다. 경주자가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뛸 수는 없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가장 가볍게 한 상태로 뛰어야 합니다. 러닝셔츠와 짧은 바지만 입고 달려야 합니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려면 머리를 짧게 깎거나, 미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여러분,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영웅 ‘아베베’라는 사람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에티오피아의 군인이던 이 사람은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1960년 로마 올림픽,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2관왕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신발이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전해서 신발이 가볍고 공학적이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랐기 때문에 아베베는 신발도 벗고 맨몸, 맨발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기관차’라는 별명까지 얻었지요. 믿음의 경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무거운 짐과 죄의 짐을 내려놓아야만 달려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티아고 도시에는 가 보았지만 순례길을 걸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제주의 올레길도 일부 구간은 걸었지만 전체는 걷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제자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국내에서 사역지를 구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많이 한 분입니다. 가족이 있으니 대리운전도 하고 영업용 택시 운전도 했습니다. 사역자로서 쓰임 받지 못하는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달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저에게 이야기하기를, 짐을 간단하게 챙긴다고 했는데도 며칠 걷다 보니 천근만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고 가져간 큰 카메라와 여러 가지 짐들을 싸서 우편으로 산티아고에 보냈다고 합니다. 욕심으로 가져온 짐들 때문에 걷지 못하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우편 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짐들은 목적지에 보내고, 간단한 옷가지만 들고 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례자는 가장 가벼운 차림이어야 합니다. 이 땅의 순례자로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저와 여러분 역시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릴 때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한 길로 달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물질에 대한 욕심입니까? 자존심과 명예욕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입니까? 믿음의 경주에 방해가 되는 짐들이라면 무엇이든지 벗어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중)

주님 앞에 우리 짐을 내려놓을 때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경주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짐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순한 삶이 영적인 삶입니다. 프랑스 개혁교회 목회자 샤를 와그너(Charles Wagner, 1852-1918)라는 사람이 오래 전 『단순한 삶』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와그너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단순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아내와 함께 파리의 바스티유 작은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생각, 말, 돈, 인간관계, 교육,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단순하게 할 수 있을지 조언해 줍니다. 이 책이 1895년에 출판되었으니 벌써 1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필요한 충고와 조언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심플 라이프’, ‘미니멀리즘’, ‘신박한 정리’ 등은 기술과 방법에 초점을 두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단순함은 태도의 문제이자,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삶이란 우리 삶이 부수적인 것들에 휘둘릴 때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며 머무르는 것입니다. 단순함이란 본질에 충실한 것입니다. 온갖 미디어의 헛된 소문과 복잡하고 바쁜 세상 소리에 휘둘리면서 환경에 지배 당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아니면 단순함에 뿌리를 내리고 본질에 집중하면서 환경을 지배하는 삶을 살 것입니까? 와그너 목사는 “단순함과 기쁨은 서로 오래된 친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단순할수록 내면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경주에 나섰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죄의 짐들을 내려놓고, 단순한 충실함으로 믿음의 한 길을 달려갈 수 있길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인내로써 경주해야 합니다. >

경주자의 두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부에 나타나듯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예수를 알고 난 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이 장거리 경주를 하는 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필립 얀시처럼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할 때도 있을 것이고, ‘예수 믿는 것을 당장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여러분, 마라톤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고 멈추고 싶을까요?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참고 또 참고 인내하죠. 믿음의 경주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만 같은 순간에도, 어쩌면 살 소망이 다 끊어졌다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인내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은 참는 것은 비겁한 약자의 변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황금의 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설교에 타고난 능력을 보였던 초대 교회 지도자 크리소스토무스는 인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에게 그릇된 대우를 받고 잘못 취급 받아 상처를 받았을 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는 힘.” 그 부당함을 참고 인내하는 힘이 바로 인내라고 말합니다. 인내는 비겁한 약자의 변명이 아니라, 강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 그렇습니다. 사랑은 인내이지요.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황당하고, 이상하고, 심지어 심각한 일을 자꾸 벌여 보세요. 그 사람이 몇 번까지 참을 수 있을까요? 아마 몇 번 참다가 폭발하겠죠. 바로 거기까지가 그 사람의 사랑의 크기일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했지”하고 마음에 악한 것을 꽁하고 품으며,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으셨고 지금도 참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3장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로마서 3장 25절 중)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길이 참으셨습니다. 어쩌면 천 년을 하루같이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마음에 꽁하고 품지 아니하시고 잊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간과하시는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저와 여러분이 살아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 역시 오래 참아야 마땅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자녀, 부모, 형제자매, 이웃,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인내는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 가운데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때에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은 얼마나 인내하면서 믿음의 길을 달리게 될까요? 인내하지 못하면 은혜도, 믿음도 쏟아 버리게 됩니다. 그동안 달려온 거리를 다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하는 믿음이야말로 보석처럼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평생 동안 믿음을 지켜 나가면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자는 목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

경주자의 세 번째 원칙은 히브리서 12장 2절이 말하듯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엉뚱한 곳으로 달리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목표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야지 다른 곳으로 뛰어서는 안 되겠지요. 예배를 마치고 저의 집으로 가려면 올림픽 대교를 타고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 방향을 잘못 잡고 서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서해안에 빠지게 됩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엉망이 되고, 인내할수록 힘만 듭니다.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도 목표 지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의 헛된 것을 보고 달려서는 안 됩니다. 영어 성경은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을 “fix our eyes on Jesu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을 예수에게 ‘fix’, ‘고정하라’는 겁니다. 시선 고정입니다.
오늘 우리 시선이 어디에 가장 많이 고정됩니까? 컴퓨터 모니터입니까? 휴대폰 화면입니까? 텔레비전입니까? 유튜브 방송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시선이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에, 하늘의 것보다 땅의 것에, 주님에게보다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할 때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요 소망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장 2절 후반부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기쁨’,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까지 참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인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결코 게을리 할 수 없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12장 3절의 말씀처럼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참으신 그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피곤하여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믿음의 한 길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께만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하고 달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이들에게 하늘의 상급이 주어집니다. >

옛 격언에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아픈 시간이지만 고난을 겪고 나면 감미로운 시간이 온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달리고 난 후에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장 7~8절)

믿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한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의 칭찬과 면류관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 곁에서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구름 같이 허다한 믿음의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특별히 우리 앞에서 우리를 보며 손짓하고 계시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믿음의 경주가 좌절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힘이 샘솟아 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남은 평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믿음의 경주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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