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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참한 현실에 예레미야가 애가를 부릅니다. >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예레미야애가입니다.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에카’입니다. 이는 ‘아, 어찌하여!’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래서 애가로 번역된 것은 아닙니다. 본래 ‘애가’라는 말은 한자어로 ‘슬픈 노래’라는 뜻입니다. 당시 랍비들이 슬픈 내용을 담고 있는 본서에 ‘키노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이 말이 ‘슬픈 노래’라는 뜻인데, 이것이 한국어 성경으로 번역되면서 ‘애가’라고 붙여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서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될 때 불린 비탄의 노래입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영화로웠던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전이 처참히 훼손된 것을 바라보면서 애통해하는 노래입니다. 애가서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 1:1)
‘영광스러웠던 예루살렘 성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비참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단 말인가?’라는 한탄이 쏟아집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굳게 믿어왔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지켜내실 줄 알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예배드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버리시다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시다니,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만 같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남은 사람들도 얼마 안 됩니다. 절기가 다가와도 예배드릴 사람이 마땅치 않습니다. 성전도 훼파되어 예배드릴 장소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이렇게 토로합니다.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예레미야애가 1:4 중, 새번역)
명절이 되었습니다. 예배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끊겼고, 제사장은 한탄합니다. 제사 드릴 성전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돌아봅니다.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예레미야애가 1:7)
환난과 고통이 도래하던 그 날, 그들은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리하는 자 같고 다른 이들의 손에 넘겨진 자 같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대적들도 조롱합니다. 버려진 이스라엘, 파괴된 예루살렘.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는 예레미야가 울고 있습니다.
< 폐허가 된 남유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같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의 애가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 아름다웠던 내 삶에 비해 초라해져 버린 지금의 삶, 내 모습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과 참담한 오늘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대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과거의 화려하고 영광스러웠던 교회를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교회가 된 오늘의 현실, 수치를 당하게 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어지는 슬픈 노래는 그 생각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죄를 짓더니,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그를 떠받들던 자가 모두 그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서 그를 업신여기니, 이제 한숨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예레미야애가 1:8, 새번역)
이 일로 내가 우니, 눈에서 눈물이 물처럼 흐른다. 내게 생기를 되돌려 주고 위로하여 줄 이가 가까이에 없다. 원수들이 우리를 이기니, 나의 아들딸들이 처량하게 되었다. 시온이 손을 들어 빌었으나, 그를 위로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적들을 시켜서 야곱을 치게 하셨으니,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더러운 성으로 여기는구나. (예레미야애가 1:16~17, 새번역)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황량함,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더럽게 치부하는 오늘의 처참한 현실이 마치 애가서의 현실과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애가서 2장에서 예레미야는 또다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하며 묻습니다.
아, 슬프다. 주님께서 어찌 이렇게 진노하셔서 도성 시온의 앞길을 캄캄하게 하셨는가?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영광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셨는가? 진노하신 날에, 주님께서 성전조차도 기억하지 않으시다니! … 주님께서 타오르는 진노로 이스라엘의 힘을 모두 꺾으시더니, 원수 앞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오른손을 거두시고,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키는 불꽃처럼 야곱을 불사르셨다. (예레미야애가 2:1,3, 새번역)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는가? 이 교회를 버리셨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어찌하여 영광스러웠던 교회의 영광을 땅으로 던져 버리셨는가?” 예레미야가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 예레미야는 재난의 현실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
한편 예레미야는 진노의 불꽃 아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예레미야애가 3:1~3)
“고난 당하는 자는 나로다!”라고 자신을 규정합니다. “나는 지금 고난 당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가? 누구로부터 고난을 당하는가? 바로 분노의 매로다! 누구로부터 오는 분노의 매인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분노의 매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예레미야애가 3:12~14, 새번역)
심각한 고통의 현실 속에서 예레미야는 이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내 심장을 겨누셨다고, 하나님이 내 심장에 화살을 꽂으셨다고 토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분노의 매로 고난 당하는 자가 되었다고 밝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이 모습이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 같고, 우리 교회의 모습 같으며, 내 모습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저립니다. 하나님의 화살이 나를 향하고 심장을 뚫는 것 같은 절망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쓴 쑥으로 내 배를 불리시고, 쓸개즙으로 내 배를 불리시는 하나님, 내게서 평안을 빼앗아 가시고 행복을 거두어 가시는 하나님, 바로 그 진노의 맹렬한 불길을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만약 하나님께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애가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예레미야는 어떻게 희망을 발견하고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예레미야애가 3:19~25, 새번역)
예레미야는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고난은 하나님께부터 왔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로부터 고통과 재난이 왔다는 사실이 절망인 것 같지만, 예레미야는 도리어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 예레미야는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지! 당신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며 선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 아버지를 생각하고 돌아갔듯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도리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26,31~33)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한 예레미야는 거기서부터 희망을 발견합니다. ‘아, 그렇지!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의 본심은 다른 데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코 현실을 보고 도달한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생각한 뒤에 도달한 결론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노를 푸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므로 잠잠히 기다리자. 인내로 기다리자.”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재앙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9절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예레미야애가 3:39)
그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이 모든 재앙이 결국 내 죄 때문이구나. 내가 지은 잘못 때문이구나. 나의 허물 때문이구나.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바로 우리의 죄, 나의 죄로 인해 이런 상황이 도래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죄는 이미 하나님의 벌을 받기에 합당할 정도로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재앙이 임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 할 이유는 넘치도록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고 있을 뿐이지, 우리의 죄가 부족해서 심판이 도래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또 한 가지 원인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7절입니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이제 그들은 가고 없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7, 새번역)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가 남아 후손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아버지가 지은 죄, 어머니가 지은 죄, 선조들이 지은 죄로 인해 후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깊게 해석하면, 내가 지은 죄는 아니지만 나와 연관된 사람들의 죄로 인해 나 역시 이 재앙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 물으시고, 다른 이들의 죄조차 함께 있는 자들에게 물으시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은 죄만으로도 재앙을 받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선조들의 죄 때문에,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잠잠히 그분의 은혜를 구합시다. >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예레미야애가 3:40~41, 새번역)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라!”
절망스러운 일을 만날 때, 우리는 걱정부터 하곤 합니다. ‘이제 어떻게 살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다면, 우리가 전능하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난 속에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두려움 속에서도, 무서움 속에서도, 앞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거나 근심하게 하는 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있다면, 결과 역시 이미 예상되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의 처절한 현실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55절 이후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주님, 그 깊디깊은 구덩이 밑바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못들은 체 하지 마시고, 건져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55~57, 새번역)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듯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살던 아름다운 성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며 절망하는 사람들, 성전을 오르내리며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 줄 알았는데 무너진 성전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성전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 “고난 당하는 자가 바로 나로라!”라며 탄식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형벌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우리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을 기도의 시간으로 초청하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이 절망과 고통,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시는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중)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15)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I Am the Man Who Has Seen Affliction
Lamentations 3:19~25
Today’s Scripture is from Lamentations. The Hebrew titles of Old Testament booksare the first words that appear in the book. The Hebrew title of Lamentations is, accordingly, Eykhoh, which means “Alas, How!”
Aega, the Korean title for Lamentations,does not however come fromthe sound of Eykhoh, but from the Chinese characters that mean sad song. This Korean title derives from what the Jewish Rabbis used to call Lamentations, Kinot, which means sad song. It is quite fascinating that Aega and Eykhoh sound similar.
Lamentations, which starts with “Alas! How!”, is a lament fo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Babylonians in 596 BC. It is a collection of five poems, or dirges, for the beautiful city of God and the glorious temple of Jerusalem that have been laid waste by a foreign people.
The first verse of the first chapter is as follows: “How deserted lies the city,once so full of people!How like a widow is she,who once was great among the nations!She who was queen among the provinceshas now become a slave.”(Lamentations 1: 1)
Thus, the book starts with this question: Oh, how could such a glorious city become so deserted? Oh, the devastation! How could it be?
The Israelites firmly believed Jerusalem to be God’s city, a land ruled by God. They thought God would defend His holy temple to the end—for His glory, at least. But God abandoned both Jerusalem and its glorious temple. How sorrowful! Why did the God I serve not protect this holy city? Why did He abandon it?
The people of Judah are now slaves. There are not many left to worship God in Jerusalem and the destroyed temple no longer fit for sacrifices.
So, Jeremiah laments as follows: “The roads to Zion mourn,for no one comes to her appointed festivals.All her gateways are desolate,her priests groan,her young women grieve,and she is in bitter anguish.” (Lamentations 1:4)
Reminiscing the country’s past glory, he mourns the present: “In the days of her affliction and wanderingJerusalem remembers all the treasuresthat were hers in days of old.When her people fell into enemy hands,there was no one to help her.Her enemies looked at herand laughed at her destruction.” (Lamentations 1: 7)
Israel abandoned, Jerusalem in ruins! Jeremiah is also called the “weeping prophet.” Jeremiah wept because of what he saw all around him.
What comes to your mind reading Today’s Scripture from Lamentations?Does your present seem miserable compared to your glorious past? Perhaps the present state of this nation seems pitiful compared to its glorious past. Both are possible adaptations. If you feel either way about Today’s Scripture, please receive that meditation as a message from God.
Reading the above verses from Lamentations, I found myself comparing the misery of Israel to the current state of the Korean Church, mocked and abandoned by the world today. The sad lament that follows reinforces this comparison: “Jerusalem has sinned greatlyand so has become unclean.All who honored her despise her,for they have all seen her naked;she herself groansand turns away.”(Lamentations 1: 8)
“This is why I weepand my eyes overflow with tears.No one is near to comfort me,no one to restore my spirit.My children are destitutebecause the enemy has prevailed.Zion stretches out her hands,but there is no one to comfort her.The Lordhas decreed for Jacobthat his neighbors become his foes;Jerusalem has becomean unclean thing among them.” (Lamentations 1:16-17)
The above verses about utter destitution and no comfort from the people seem to correspond to the bitter reality of Korean churches today, shunned by the world as if they have become an unclean thing.
In chapter 2 Jeremiah cries “How!” again, as if to voice his incomprehension: “How the Lord has covered Daughter Zionwith the cloud of his anger!He has hurled down the splendor of Israelfrom heaven to earth;he has not remembered his footstoolin the day of his anger. […] In fierce anger he has cut offevery horn of Israel.He has withdrawn his right handat the approach of the enemy.He has burned in Jacob like a flaming firethat consumes everything around it.” (Lamentations 2: 1, 3)
Seeing himself under the cloud of God’s anger, Jeremiah defines himself as follows: “I am the man who has seen afflictionby the rod of the Lord’s wrath.He has driven me away and made me walkin darkness rather than light;indeed, he has turned his hand against meagain and again, all day long.” (Lamentations 3: 1-3)
“He drew his bowand made me the target for his arrows.He pierced my heartwith arrows from his quiver.I became the laughingstock of all my people;they mock me in song all day long.” (Lamentations 3:12-14)
Dear Church, perhaps you are experiencing what Jeremiah went through. To me, the above verses seem like a description of the Korean Church and myself today, which breaks my heart.
Are you going through desperate times, as if God has pierced your heart with His arrow? WhenGod fills us with bitter herbs, gives us galls to eat, and robs us of peace and happiness, our hearts melt like a captain amid a storm.
When we go through such afflictions, what must we do? What does God tell us through Lamentations? How did Jeremiah find hope in his shocking and devastating reality?
“I remember my affliction and my wandering,the bitterness and the gall.I well remember them,and my soul is downcast within me.Yet this I call to mindand therefore I have hope: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They are new every morning;great is your faithfulness.I say to myself, ‘The Lordis my portion;therefore I will wait for him.’ The Lordis good to those whose hope is in him,to the one who seeks him; (Lamentations 3: 19-25)
Yes, it is truly an incomprehensible, shocking situation. It is as if God is attacking you. You feel as if you will never be able to get up again. The world is mocking you, and there is no one to help you. It’s as if God Himself has abandoned you.
Yet… Jeremiah recalls one thing. He gathers his wits and thinks carefully: Who is God? What kind of God is He? Who is this unchanging and everlasting God?
God is everlasting and unchanging. And His love and compassion endure forever. He is my all, my hope! He is the One who blesses those who seek Him and wait upon Him. This is our God.
Just as the prodigal son thought of his father and his father’s character when he had squandered everything, which gave him the courage to return home, Jeremiah asks himself, ‘Who is God?’ Jeremiah asks this question underHis rage—or, rather, despite it.
After such ruminations, Jeremiah reaches the following conclusion:
“It is good to wait quietlyfor the salvation of the Lord.[…] For no one is cast offby the Lord forever.Though he brings grief, he will show compassion,so great is his unfailing love.For he does not willingly bring afflictionor grief to anyone.(Lamentations 3: 26, 31-33)
Then where did this affliction come from? What is the reason for this painful reality, this punishment which makes it seem that even God is not on our side?
God speaks though Jeremiah: “Why should the living complainwhen punished for their sins?” (Lamentations 3: 39) This verse is telling us that this situation has come upon us because of our sins—my sins.God says, ‘How can the living complain?’
Dear Church,our sins deserve His punishment, and there are plenty of reasons for His judgement and devastation. So, how can we complain?
However, God mentions another reason,which we have yet to consider: “Our ancestors sinned and are no more,and we bear their punishment.”(Lamentations 5: 7)
That is, our ancestors’ sins may be a reason for our disaster now. In a broader sense, this means that even if we ourselves do not sin, we may be afflicted because of the sins of another person related to us. Unfair as it may sound, God makes the descendants bear the punishment for the sins of their ancestors. But we cannot complain about this, either.
Then what can we do now? What must we do in this painful reality?
“Let us examine our ways and test them,and let us return to the Lord.Let us lift up our hearts and our handsto God in heaven, and say:”(Lamentations 3:40-41)
God speaks to us through Jeremiah: Pray!
When we are faced with despair, we often start to worry. How will we live? What must I do? Can I overcome this?
But if we believe in God, if we believe that He is the all-knowing and almighty One who loves us and has compassion on us, the first thing we must do is to pray.
Are you uncertain about the future? Pray. Are you afraid, scared? Pray. Lonely? Pray. Has poverty struck you? Pray. Are you worried that all this is God’s punishment? Pray.
God tells us clearly that He does not willingly bring affliction or grief to anyone. If we know His true will, we know what will come. Let’s have faith in God to the end. Let’s pray. Let’s accept this miserable reality as God’s anger and turn to Him.
The verses starting from 3:55 renews our hope: “I called on your name, Lord,from the depths of the pit.You heard my plea: ‘Do not close your earsto my cry for relief.’You came near when I called you,and you said, ‘Do not fear.’” (Lamentations 3:55-57)
To people going through times of punishment, to those bleeding from the wounds of His arrows, to those despairing because of the fallen city, to thosebitter toward God for letting His temple be destroyed and not protecting them, to those weeping at the foot of the temple, and to those lamenting, ‘I am the man who has seen affliction!’… God says He still has compassion and comfort left for them. God does not want us to lose faith in Him, even in times of punishment.
Dear brothers and sisters, let’s pray together for a moment. Reflect on yourself in each of yourplaces. Are you going through affliction? Are you overwhelmed by despair? Do you feel as if God has abandoned you? Are you going through times of punishment?
Our Lord said,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atthew 11: 28)
Jesus also said this:“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You believe in God ; believe also in me.”(John 14:1)“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John 16: 33)
Furthermore, this is what God says in Psalms: “And call on me in the day of trouble;I will deliver you, and you will honor me.” (Psalm 50: 15)
May we take a moment to pray quietly to God now.
Prayer: Holy Father, in times of trouble we call on Your name. We sing dirges in the courtyard of your fallen temple. Forgive us our sins and transgressions. Yet, we trust in Your everlasting love and compassion. Listen to our lament and tearful pleas and deliver us. Lord, draw near to us and comfort us. In the name of Jesus, our one and only Savior, Amen.
예레미야애가 3: 19 ~ 25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 비참한 현실에 예레미야가 애가를 부릅니다. >
오늘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예레미야애가입니다.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에카’입니다. 이는 ‘아, 어찌하여!’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래서 애가로 번역된 것은 아닙니다. 본래 ‘애가’라는 말은 한자어로 ‘슬픈 노래’라는 뜻입니다. 당시 랍비들이 슬픈 내용을 담고 있는 본서에 ‘키노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이 말이 ‘슬픈 노래’라는 뜻인데, 이것이 한국어 성경으로 번역되면서 ‘애가’라고 붙여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서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될 때 불린 비탄의 노래입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영화로웠던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전이 처참히 훼손된 것을 바라보면서 애통해하는 노래입니다. 애가서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애가 1:1)
‘영광스러웠던 예루살렘 성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비참히 무너져 내릴 수 있단 말인가?’라는 한탄이 쏟아집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굳게 믿어왔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지켜내실 줄 알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예배드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버리시다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시다니,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만 같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남은 사람들도 얼마 안 됩니다. 절기가 다가와도 예배드릴 사람이 마땅치 않습니다. 성전도 훼파되어 예배드릴 장소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이렇게 토로합니다.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예레미야애가 1:4 중, 새번역)
명절이 되었습니다. 예배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끊겼고, 제사장은 한탄합니다. 제사 드릴 성전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돌아봅니다.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예레미야애가 1:7)
환난과 고통이 도래하던 그 날, 그들은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리하는 자 같고 다른 이들의 손에 넘겨진 자 같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대적들도 조롱합니다. 버려진 이스라엘, 파괴된 예루살렘.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는 예레미야가 울고 있습니다.
< 폐허가 된 남유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같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의 애가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 아름다웠던 내 삶에 비해 초라해져 버린 지금의 삶, 내 모습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과 참담한 오늘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대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과거의 화려하고 영광스러웠던 교회를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교회가 된 오늘의 현실, 수치를 당하게 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어지는 슬픈 노래는 그 생각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죄를 짓더니,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그를 떠받들던 자가 모두 그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서 그를 업신여기니, 이제 한숨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예레미야애가 1:8, 새번역)
이 일로 내가 우니, 눈에서 눈물이 물처럼 흐른다. 내게 생기를 되돌려 주고 위로하여 줄 이가 가까이에 없다. 원수들이 우리를 이기니, 나의 아들딸들이 처량하게 되었다. 시온이 손을 들어 빌었으나, 그를 위로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적들을 시켜서 야곱을 치게 하셨으니,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더러운 성으로 여기는구나. (예레미야애가 1:16~17, 새번역)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황량함,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더럽게 치부하는 오늘의 처참한 현실이 마치 애가서의 현실과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애가서 2장에서 예레미야는 또다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하며 묻습니다.
아, 슬프다. 주님께서 어찌 이렇게 진노하셔서 도성 시온의 앞길을 캄캄하게 하셨는가?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영광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셨는가? 진노하신 날에, 주님께서 성전조차도 기억하지 않으시다니! … 주님께서 타오르는 진노로 이스라엘의 힘을 모두 꺾으시더니, 원수 앞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오른손을 거두시고,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키는 불꽃처럼 야곱을 불사르셨다. (예레미야애가 2:1,3, 새번역)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는가? 이 교회를 버리셨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어찌하여 영광스러웠던 교회의 영광을 땅으로 던져 버리셨는가?” 예레미야가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 예레미야는 재난의 현실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
한편 예레미야는 진노의 불꽃 아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예레미야애가 3:1~3)
“고난 당하는 자는 나로다!”라고 자신을 규정합니다. “나는 지금 고난 당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가? 누구로부터 고난을 당하는가? 바로 분노의 매로다! 누구로부터 오는 분노의 매인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분노의 매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예레미야애가 3:12~14, 새번역)
심각한 고통의 현실 속에서 예레미야는 이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내 심장을 겨누셨다고, 하나님이 내 심장에 화살을 꽂으셨다고 토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분노의 매로 고난 당하는 자가 되었다고 밝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이 모습이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 같고, 우리 교회의 모습 같으며, 내 모습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저립니다. 하나님의 화살이 나를 향하고 심장을 뚫는 것 같은 절망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쓴 쑥으로 내 배를 불리시고, 쓸개즙으로 내 배를 불리시는 하나님, 내게서 평안을 빼앗아 가시고 행복을 거두어 가시는 하나님, 바로 그 진노의 맹렬한 불길을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만약 하나님께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애가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예레미야는 어떻게 희망을 발견하고 있습니까?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예레미야애가 3:19~25, 새번역)
예레미야는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고난은 하나님께부터 왔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로부터 고통과 재난이 왔다는 사실이 절망인 것 같지만, 예레미야는 도리어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 예레미야는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지! 당신을 찾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며 선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 아버지를 생각하고 돌아갔듯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도리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26,31~33)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한 예레미야는 거기서부터 희망을 발견합니다. ‘아, 그렇지!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의 본심은 다른 데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코 현실을 보고 도달한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생각한 뒤에 도달한 결론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노를 푸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므로 잠잠히 기다리자. 인내로 기다리자.”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재앙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9절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예레미야애가 3:39)
그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이 모든 재앙이 결국 내 죄 때문이구나. 내가 지은 잘못 때문이구나. 나의 허물 때문이구나.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바로 우리의 죄, 나의 죄로 인해 이런 상황이 도래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죄는 이미 하나님의 벌을 받기에 합당할 정도로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재앙이 임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 할 이유는 넘치도록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루고 있을 뿐이지, 우리의 죄가 부족해서 심판이 도래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또 한 가지 원인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7절입니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이제 그들은 가고 없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7, 새번역)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가 남아 후손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아버지가 지은 죄, 어머니가 지은 죄, 선조들이 지은 죄로 인해 후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깊게 해석하면, 내가 지은 죄는 아니지만 나와 연관된 사람들의 죄로 인해 나 역시 이 재앙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 물으시고, 다른 이들의 죄조차 함께 있는 자들에게 물으시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은 죄만으로도 재앙을 받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선조들의 죄 때문에,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잠잠히 그분의 은혜를 구합시다. >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예레미야애가 3:40~41, 새번역)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라!”
절망스러운 일을 만날 때, 우리는 걱정부터 하곤 합니다. ‘이제 어떻게 살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다면, 우리가 전능하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난 속에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두려움 속에서도, 무서움 속에서도, 앞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거나 근심하게 하는 게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있다면, 결과 역시 이미 예상되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의 처절한 현실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55절 이후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주님, 그 깊디깊은 구덩이 밑바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못들은 체 하지 마시고, 건져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55~57, 새번역)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듯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살던 아름다운 성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며 절망하는 사람들, 성전을 오르내리며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실 줄 알았는데 무너진 성전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성전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 “고난 당하는 자가 바로 나로라!”라며 탄식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형벌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우리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을 기도의 시간으로 초청하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이 절망과 고통,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하게 여기시는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1)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중)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15)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2020년 9월 1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고난당하는 자는 나로다” (애 3:19-25)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72장, 300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애 3:19-2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9월 1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아! 어찌하여!’(히브리어 ‘에카’)라는 말로 시작되는 예레미야의 애가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모습을 보면서 비통해하는 노래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하나님의 도성, 그토록 영화로웠던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참담하게 파괴된 것을 보면서 슬퍼하는 다섯 장의 짧은 형식의 슬픈노래, 조가가 오늘 본문입니다.
설교의 요약
여러분은 이 슬픈 노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시나요? 나의 영광스러웠던 과거와 오늘의 초라한 모습이 비교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교회, 수치를 당하는 교회의 모습이 자꾸 비교가 됩니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죄를 짓더니,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그를 떠받들던 자가 모두 그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서 그를 업신여기니, 이제 한숨 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애 1:8, 새번역).
이런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한결 같으신 분, 사랑이 다함이 없는 분, 긍휼이 끝이 없으신 분..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애 3:26, 3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애 3:39). 바로 나의 죄로 인하여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였음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른 원인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으나, 이제 그들은 가고 없고,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애 5:7, 새번역). 이 말씀을 넓게 해석하면, 내가 지은 죄가 아니지만, 나와 연관된 다른 이의 죄로 인하여 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억울한 듯 생각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 (애 3:40-41, 새번역).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을 전능하신 분으로,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끝까지 믿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의 처절한 현실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받아들이고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나누기
1. 요즘 나에게 있는 슬픈 노래(애가)는 무엇인가요?
2. 내가 이 땅의 죄, 한국교회의 죄를 나의 죄로 알고 대신 짊어 질 때, 어떤 기도가 나오시나요?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환란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무너져 내린 성전의 뜰에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여전하신 사랑과 긍휼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