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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소유’와 ‘생명’을 연결하며 가르침을 전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재물을 보고,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우 귀중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 앞에서 강론하고 계실 때입니다. 성경은 당시에 얼마나 많은 무리가 모여 있었는지 증언합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눅 12:1 중)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때에 갑자기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눅 12:13 중)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눌 만한 이야기 같지는 않은데 요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형으로 하여금 유산을 나누어 달라는 그의 요청이 어떤 이유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주님이 강론해 주신 이전의 말씀과 연관되는 흐름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 그러니까 외식하는 바리새인에 관하여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며 율법을 행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죠.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 사람이 바리새인 같은 자신의 형을 염두에 두며 주님께 나아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우리 형이 바로 그런 사람이예요. 하나님을 믿는 척, 경건한 척하지만 실상 제가 받을 유산까지 빼앗은 사람입니다. 주님, 저의 형에게 말씀하셔서 예산의 분깃을 받도록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4~15)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주제어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물건, 소유, 탐심’과 관련된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라는 주제입니다. 조금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말씀이죠. 예수님께서는 재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신 다음에 도리어 ‘생명’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계십니다. 왜 그러셨을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 모두는 소유를 더 늘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우리 안에 잠재합니다. 어쩌면 인지상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것을 가진 부자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청을 가지고 나온 한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5)
여기 보면 ‘탐심’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무엇인가를 더 가지고 탐하려는 욕심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소유의 넉넉함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즉 이 말씀의 핵심은 소유의 문제가 생명의 문제와 연관되어서 풀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후에 주님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시죠.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가 가을에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소출을 거두었는지 곡식을 쌓아 둘 곳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답니다. 그러자 부자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큰 곳간을 지어야 하겠다!’ 곳간이 완성된 다음에 그가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제 되었다! 여러 해 쓸 곡식을 모두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지내자. 즐겁게 지내자. 먹고 마시며 살자!’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신 비유의 내용입니다.
조금은 극단적인 상황이 가정된 비유입니다. 재산과 생명의 관계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전하시고자 한 중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 부자에게 지금 많은 소출이 있습니다. 가을에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한마디로 재산이 늘어난 것입니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곳간을 새로 지어야 할 만큼 큰 부가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부자는 이 많은 소출을 자신의 것으로서 마음껏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곳간을 더 크게 짓기로 결정합니다. 그 안에 모든 소출을 보관하고 편안함을 누리기로 작정합니다. 이 부자는 자신의 소출에 대해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유 속에 또 다른 내용이 이어집니다. ‘부자의 생명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부자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의 생명을 오늘 거두실지, 내일 거두실지는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가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가지신다는 것, 우리가 재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지금 가진 모든 것이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동안에 재물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생명’이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전도서 말씀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 5:19)
전도서는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죠.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소유와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온 한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 12:13 중)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재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것 같은데 형이 모두 가진 상황처럼 보입니다.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여러분, 유산은 어떻게 생깁니까? 유산은 누군가가 죽고 나서 주어지게 되죠.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두 형제에게 유산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곳간을 새로 짓고, 편안하게 살아야겠다고 이야기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실은 이 사람의 아버지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명이 거두어지자 그의 소유가 아들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서로 유산을 갖고자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허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재산을, 지금은 두 아들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싸움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재물은 우리의 생명이 있는 순간까지입니다. 생명이 끝나게 되면 모든 재산은 다른 이의 몫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재물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면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야겠다. 하나님과 모든 문제를 풀어야겠다.’ 그래서 주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1)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과 ‘하나님께 대하여’라는 말이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용할 때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이겠습니까? 그 대답이 이어지는 말씀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야기로만 끊어서 읽게 된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에게 해답을 줍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을 따로 떼어서 읽곤 합니다. 물론 각자가 그 자체로 교훈을 가지기 때문에 따로 읽어도 되겠습니다만,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는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본문이 서로 연결된다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나오는데, 바로 ‘창고’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소출을 얻은 다음에 창고를 더 크게 지어야 되겠다는 부자의 독백을 비유에 풀어서 말씀하셨죠. 그때 사용하신 단어가 헬라어로 ‘아포데케’(ἀποθήκη, barn, storehouse)입니다. 이 단어가 뒤에 이어지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4)
여기서 ‘창고’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바로 ‘아포데케’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이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소유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니 소유가 없을지라도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말씀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곳간을 짓고자 한 마음에는 미래를 향한 염려와 걱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가뭄이 들어서 몇 년 동안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했기에 큰 곳간을 짓고, 여러 해 동안 먹을 것들을 쌓아 두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이 곳간을 짓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염려와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눅 12:27~30)
그리고 놀랍게도 소망의 말씀을 이어서 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1)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부자를 향해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하셨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청지기는 때를 따라 소유를 나누며 이웃을 섬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의 마지막 구절에 잘 담겨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생명이 있는 동안에 우리가 가진 재물을 구제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자를 구제할 때 우리 가진 재물이 하늘 위로 쌓아지고, 하늘의 썩지 않는 배낭에 넣어 두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사라지면 결국 소유도 다른 사람의 것이 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에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섬긴 소유는 하늘에 저장됩니다. 그러므로 소유를 나누고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자입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대사인데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남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뿐입니다.” 주님은 오늘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소유가 진정 우리 자신의 것이 되는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누어 주는 만큼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어리석은 부자 비유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 뒤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어라.’ 이 말씀이 앞의 흐름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종말을 말하고 있다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것이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말씀합니다. 그 말씀 가운데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2-43)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을 보며 칭찬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는 종이 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있는 우리를 보시면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자, 돌아가 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얻었을 때 큰 곳간을 짓기로 작정하고 자기를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반면에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곳간을 더 크게 지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곳간 안에 모든 것을 쌓아 두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때를 따라 소출을 나누며 섬깁니다. 주님은 후자의 사람을 향하여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주,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대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1년을 결산하면서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나 많은 부가 주어졌는지를 계산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 가진 모든 것을 진정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대답하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4)
기도하겠습니다.
Before Filling Your Barn
Luke 12:13-21
Today’s Scripture is a precious passage full of wisdom on the Bible’s perspective on wealth and how we must use it.
This is how the story starts. Jesus was speaking before a large crowd. There were so many people that the Bible describes the scene as such: “a crowd of many thousands had gathered, so that they were trampling on one another…” (Luke 12:1)
Just then a man in the crowd makes a sudden request to Jesus: “Teacher, tell my brother to divide the inheritance with me.” (Luke 12:13)
The Bible doesn’t tell us why exactly he suddenly made such a remark, but it seems somewhat related to what Jesus was teaching. Our Lord was talking heatedly about being on guard against the yeast of the Pharisees, that is, hypocrisy.
Jesus warned against the Pharisees who acted holy on the outside and appeared to keep all the laws, but in truth were not at all who they appeared to be. It is likely that Jesus’ words reminded the man of his brother, a Pharisee.
‘Yes, my brother is just like that. He pretends to be holy and faithful, but he took my inheritance.’Perhaps this was what the man was thinking as he made his request to Jesus.
But Jesus’ response was this:
“‘Man, who appointed me a judge or an arbiter between you?’ Then he said to them,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a man’s life does not consist in the abundance of his possessions.’”(Luke 12:14-15)
Two important themes appear in this short answer. The first is represented by words such as “possessions” and “greed”; and the second by “life,” a word that comes up rather abruptly.
Why does Jesus mention “life” here? Why does He mention it particularly in the course of talking about possessions and greed? This is hard to understand.
Humans have always had a desire to increase their wealth and possessions. They want more, better things, and things others don’t have. When they see a wealthier person, they envy him/her. Isn’t this natural? Don’t such desires of man drive him to work and try harder?
Yes, this is important; yet our Lord says: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a man’s life does not consist in the abundance of his possessions.”(Luke 12:15)
The crux of this message is this: the problem of possessions must be understood in terms of the problem of life.
Then our Lord tells a parable.
There was a rich man who reaped an abundant harvest one fall. His harvest was so great that there was not enough room to store it. So the man thought, ‘This is what I’ll do. I’ll build a bigger barn to store it all.’ After building new barns and storing all his harvest, he thinks, ‘Everything’s set. I have piled up enough to consume for several years to come.Now I can rest, eat, and drink in peace!’
But God says to him, “You fool! This very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from you. Then who will get what you have prepared for yourself?”
This parable does assume an extreme situation. The story has been exaggerated to illust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possessions and life.
Then what is Jesus’ central message in this parable? A closer reading reveals an interesting structure.
The rich man has seen a large harvest. That is, he now has possessions. In fact, he has amounted tremendous wealth. His life is a success. He even has to build more barns for his excessive wealth. And he has the freedom and right to do as he wants with it. So he decides to build more barns for himself and fill them with his surplus crops.
However, it is God who controls his life. God can do as He wants with it. His life depends on God’s decision.
In short, the rich man has his crops, but God has his life. What a fascinating structure!
I have my wealth, but God has my life. I can do as I wish with my possessions, but God can do what He wishes with my life.
When God takes my life, what I thought was mine becomes someone else’s. Thus, the conclusion is this: all that I have is not really mine.
This is what it says in Ecclesiastes:
“Moreover, when God gives any man wealth and possessions, and enables him to enjoy them, to accept his lot and be happy in his work–this is a gift of God.(Ecclesiastes 5:19)
All the wealth and possessions I have and enjoy are a gift from God. In short, it is grace. It is essential to know this clearly.
Now let’s return to the man who made a requestto Jesus about his brother. He said to the Lord, “Tell my brother to divide the inheritance with me.”(Luke 12:13) But let’s have a think. How did the inheritance come into being in the first place? In making his request to Jesus, the man is only thinking about his current state, the problem of dividing the inheritance. He wants it to be divided well.
However, Jesus touches upon the fundamental reason the inheritance came to the brothers: the death of someone. The brothers came to possess an inheritance due to their father’s death.
Perhaps the rich man in the parable is alluding to the father. ‘I must build a bigger barn and live in peace!’ Perhaps is the father that the rich man is pointing to.
Perhaps that is why our Lord says,“a man’s life does not consist in the abundance of his possessions.”
If this is the case, this may be our conclusion: all the wealth I think I possess may be a mere illusion. The reality of man becomes clear in this passage: the son is now claiming what the father had claimed was his.
We humans do possess wealth, but our possessions only last till we have life. When we die, our wealth only becomes someone else’s. Furthermore, our lives are determined by God.
In other words, all our wealth is up to God, too. When we have considered all this, we cannot but consider God deeply. We come to think, ‘It is God whom I must impress.’
Therefore, our Lord says: “This is how it will be with anyone who stores up things for himself but is not rich toward God.”(Luke 12:21)
All that I have has been given neither for myself alone, nor for my exclusive use. It has been given to be used well in my relationship with God.
Jesus’ teaching on being “rich toward God” is talking about this. Then what does it mean to become rich toward God?
The answer is found in Jesus’ next teaching.We often view Jesus’ parable on the foolish rich man and His teaching on not to worry, which immediately follows the parable, as two independent stories. Of course, each one is important in its own right and holds many lessons in and of itself, which means reading them separately is also necessary. But the two are, in fact, deeply correlated, and various clues inferring that Jesus meant them to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each other are found.
One of them is the use of the word “barn.”Jesus says that the rich man thought to build bigger barns to store his excessive wealth. The original Greek word used for “barn” is “ἀποθήκη(apothéké),” which means barn or storehouse. Interestingly, this word is used again in verse 24:
“Consider the ravens: They do not sow or reap, they have no storeroom or barn; yet God feeds them. And how much more valuable you are than birds!”(Luke 12:24)
The Greek word for “storeroom or barn” in this verse is also “ἀποθήκη(apothéké).” The rich man thinks of building bigger barns, but God teaches us to consider the ravens. They do not have storehouses or barns but God feeds them.
Therefore, Jesus’ lesson on not to worry is,in effect, dealing with another dimension of possessions and wealth.
Jesus is saying that all our needs will be met by God. While Jesus teaches that what we think is ours is not actually ours in the parable of the foolish rich man, He talks about how God will meet all our needs even if we don’t have any possessions in His following teaching on not to worry.
When the rich man thought of building bigger barns, he probably did it out of worry and anxiety. The fundamental reason men build barns and storehouses is their worry and anxiety. But our Lord says:
“Consider how the lilies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Yet I tell you,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how much more will he clothe you, O you of little faith!And do not set your heart on what you will eat or drink; do not worry about it.For the pagan world runs after all such things, and your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Luke 12:27-30)
After these words,Jesus adds an amazing word of hope:
“But seek his kingdom, and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Luke 12:31)
We must seek His Kingdom.When we do this, God will give us all other things. This is what Jesus is saying.
Then what does it mean to seek His Kingdom? And what does it meant to be rich toward God?
Our Lord says:
“Sell your possessions and give to the poor. Provide purses for yourselves that will not wear out, a treasure in heaven that will not be exhausted, where no thief comes near and no moth destroys.” (Luke 12:33)
The true way to make our possessions ours is to use them to provide for the poor. Our Lord says that when giving to the needy, the poor, and our neighbors in need is to store our treasure in heaven and to provide ourselves with purses that will not wear out.
Furthermore, when we do this, the world we create becomes the Kingdom of God.
This is a line from the film Babette’s Feast: “The only things I can take from this life are those that I gave to others.”
Our Lord is teaching us how we can make our possessions truly ours. Only what I have given becomes truly mine.
The story that follows this teaching develops in a more interesting way. It is related to preparing for the last days. It talks about how we must be awake and prepared. Then at the last part it says:
“Who then is the faithful and wise manager, whom the master puts in charge of his servants to give them their food allowance at the proper time?It will be good for that servant whom the master finds doing so when he returns.” (Luke 12:42-43)
Jesus depicts a master who is pleased with his servant for distributing food at the right time while he was gone. When our Lord comes again, He will be pleased with those who are like this wise and faithful servant.
This is how we ought to prepare for the end times. It is also how we can make our lives worthy.
Todays is Thanksgiving Sunday, and next Sunday will be the first day of Advent. What must we consider before storing our barns with all our crops? How can we make what is seen and what appears to be mine truly ours?
May you think hard about this question this week.
Our Lord says: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Luke 12:34)
누가복음 12:13~21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수님이 ‘소유’와 ‘생명’을 연결하며 가르침을 전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재물을 보고,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우 귀중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 앞에서 강론하고 계실 때입니다. 성경은 당시에 얼마나 많은 무리가 모여 있었는지 증언합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눅 12:1 중)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때에 갑자기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눅 12:13 중)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눌 만한 이야기 같지는 않은데 요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형으로 하여금 유산을 나누어 달라는 그의 요청이 어떤 이유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주님이 강론해 주신 이전의 말씀과 연관되는 흐름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 그러니까 외식하는 바리새인에 관하여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며 율법을 행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죠.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 사람이 바리새인 같은 자신의 형을 염두에 두며 주님께 나아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우리 형이 바로 그런 사람이예요. 하나님을 믿는 척, 경건한 척하지만 실상 제가 받을 유산까지 빼앗은 사람입니다. 주님, 저의 형에게 말씀하셔서 예산의 분깃을 받도록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4~15)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주제어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물건, 소유, 탐심’과 관련된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라는 주제입니다. 조금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말씀이죠. 예수님께서는 재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신 다음에 도리어 ‘생명’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계십니다. 왜 그러셨을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 모두는 소유를 더 늘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우리 안에 잠재합니다. 어쩌면 인지상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것을 가진 부자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청을 가지고 나온 한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5)
여기 보면 ‘탐심’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무엇인가를 더 가지고 탐하려는 욕심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소유의 넉넉함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즉 이 말씀의 핵심은 소유의 문제가 생명의 문제와 연관되어서 풀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후에 주님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시죠.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가 가을에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소출을 거두었는지 곡식을 쌓아 둘 곳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답니다. 그러자 부자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큰 곳간을 지어야 하겠다!’ 곳간이 완성된 다음에 그가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제 되었다! 여러 해 쓸 곡식을 모두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지내자. 즐겁게 지내자. 먹고 마시며 살자!’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신 비유의 내용입니다.
조금은 극단적인 상황이 가정된 비유입니다. 재산과 생명의 관계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전하시고자 한 중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 부자에게 지금 많은 소출이 있습니다. 가을에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한마디로 재산이 늘어난 것입니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곳간을 새로 지어야 할 만큼 큰 부가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부자는 이 많은 소출을 자신의 것으로서 마음껏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곳간을 더 크게 짓기로 결정합니다. 그 안에 모든 소출을 보관하고 편안함을 누리기로 작정합니다. 이 부자는 자신의 소출에 대해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유 속에 또 다른 내용이 이어집니다. ‘부자의 생명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부자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의 생명을 오늘 거두실지, 내일 거두실지는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가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가지신다는 것, 우리가 재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지금 가진 모든 것이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동안에 재물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생명’이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전도서 말씀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 5:19)
전도서는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죠.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누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소유와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온 한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 12:13 중)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재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것 같은데 형이 모두 가진 상황처럼 보입니다.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여러분, 유산은 어떻게 생깁니까? 유산은 누군가가 죽고 나서 주어지게 되죠.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두 형제에게 유산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곳간을 새로 짓고, 편안하게 살아야겠다고 이야기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실은 이 사람의 아버지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명이 거두어지자 그의 소유가 아들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서로 유산을 갖고자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허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재산을, 지금은 두 아들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싸움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재물은 우리의 생명이 있는 순간까지입니다. 생명이 끝나게 되면 모든 재산은 다른 이의 몫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재물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면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야겠다. 하나님과 모든 문제를 풀어야겠다.’ 그래서 주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1)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과 ‘하나님께 대하여’라는 말이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용할 때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이겠습니까? 그 대답이 이어지는 말씀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야기로만 끊어서 읽게 된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에게 해답을 줍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을 따로 떼어서 읽곤 합니다. 물론 각자가 그 자체로 교훈을 가지기 때문에 따로 읽어도 되겠습니다만,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는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본문이 서로 연결된다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나오는데, 바로 ‘창고’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소출을 얻은 다음에 창고를 더 크게 지어야 되겠다는 부자의 독백을 비유에 풀어서 말씀하셨죠. 그때 사용하신 단어가 헬라어로 ‘아포데케’(ἀποθήκη, barn, storehouse)입니다. 이 단어가 뒤에 이어지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4)
여기서 ‘창고’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바로 ‘아포데케’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이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소유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니 소유가 없을지라도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말씀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곳간을 짓고자 한 마음에는 미래를 향한 염려와 걱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가뭄이 들어서 몇 년 동안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했기에 큰 곳간을 짓고, 여러 해 동안 먹을 것들을 쌓아 두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이 곳간을 짓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염려와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눅 12:27~30)
그리고 놀랍게도 소망의 말씀을 이어서 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1)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와 염려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부자를 향해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하셨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청지기는 때를 따라 소유를 나누며 이웃을 섬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의 마지막 구절에 잘 담겨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생명이 있는 동안에 우리가 가진 재물을 구제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자를 구제할 때 우리 가진 재물이 하늘 위로 쌓아지고, 하늘의 썩지 않는 배낭에 넣어 두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이 사라지면 결국 소유도 다른 사람의 것이 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에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섬긴 소유는 하늘에 저장됩니다. 그러므로 소유를 나누고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자입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대사인데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남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뿐입니다.” 주님은 오늘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소유가 진정 우리 자신의 것이 되는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누어 주는 만큼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어리석은 부자 비유와 염려하지 말라는 강론의 말씀 뒤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어라.’ 이 말씀이 앞의 흐름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종말을 말하고 있다면,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것이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말씀합니다. 그 말씀 가운데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2-43)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을 보며 칭찬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는 종이 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있는 우리를 보시면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자, 돌아가 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얻었을 때 큰 곳간을 짓기로 작정하고 자기를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반면에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곳간을 더 크게 지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곳간 안에 모든 것을 쌓아 두고 있다면, 다른 사람은 때를 따라 소출을 나누며 섬깁니다. 주님은 후자의 사람을 향하여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주,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대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1년을 결산하면서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나 많은 부가 주어졌는지를 계산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 가진 모든 것을 진정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대답하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4)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11월 26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 전에” (눅 12:13-21)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79장, 43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눅 12:13-21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1월 2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소유, 물건들에 대해서 늘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지요. 더 많은 것을 가진 부자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당연한 마음 아닌가요? 이러한 욕심이 있기에 우리가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닐까요?
설교의 요약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 앞에서 강론하셨습니다. 그때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불쑥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 12:13)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사람의 요청에 대하여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드러납니다. 하나는 ‘소유’라는 주제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과 비유에는 흥미로운 구조가 담겨 있습니다. 부자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 대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부자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어떻게 하실지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즉 부자는 재물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내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이 됩니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실제로 내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며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유산을 나누게 해달라는 형제의 말씀을 돌이켜 보면, 예수님은 형제들의 유산분쟁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유산분쟁이 생기게 된 근원을 들추어내신 것입니다. 아마도 그 형제의 아버지는 부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죽고 난 뒤 그 많은 재산 때문에 형제 간에 유산으로 분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눅 12:21)
결국 우리의 소유는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은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소유로 구제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눅 12:33) 즉 우리의 소유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이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주어진 소유를 진정으로 갖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내가 나누어 준 것이 정말 내 것이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나누기
- 내가 가진 재산이나 소유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 나의 소유를 어떻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마무리 기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고 나눔과 섬김을 통해 하늘에 재물을 쌓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욕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