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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를 구하고 자비를 얻다 – 아브라함의 기도

창세기 18:22~26, 32~33

김경진 목사

2025.01.26

<나라를 위한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머뭇거릴 때, 성경 속의 첫 중보기도에서 기도의 지혜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올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함께 기도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네 겹의 기도’를 통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설을 맞이하며 모든 성도님의 가정에 기도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계속 기도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여러분께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라를 위한 기도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기도 내용과 방향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정말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도 듭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분 중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겠지만, 기도의 모습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이나 방향성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도 일어날 수 있죠. 그래서 오늘 말씀과 더불어 어떤 방향과 관점, 그리고 어떤 범위 안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분이 익숙하게 들어온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등장합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하게 된 시점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아서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구약성경을 앞에서 쭉 읽으면 이 기도가 최초의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강하게 다른 이를 위해서 드린 기도 내용입니다. 이 중보기도 안에는 매우 중요한 진리와 좋은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세 사람과 더불어 아브라함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실 때 그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영접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하죠. 그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첫 번째로 사라가 임신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고 늙어서 생리가 이미 끊어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제 그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살짝 이야기해 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창 18:20~21, 새번역)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몰라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암시를 주시는 거죠.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곧 심판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중보기도를 드리는데, 아주 도전적인 기도를 드립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된 배경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뉴스를 들었습니다. 굿 뉴스와 배드 뉴스를 들었죠. 하나는 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 좋은 소식입니다. 사라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고, 아브라함은 광대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좋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쁜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멀지 않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곧 멸망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신과 사라는 이미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강대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지만 주변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두 뉴스를 들은 후에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나에게는 어떤 문제나 불이익도 없으며 힘도 없으니,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눈을 감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상관하지 말자.’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이미 축복을 받았고 어떤 해도 입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기도의 마음을 가집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미 망해 가는 땅이죠. 악이 번성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악한 성이 사라지는 것은 주변 문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없어지는 것이 아브라함이나 그의 가족에게 큰 위험과 해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는 어떻게 기도하였을까요? 기도의 내용을 한번 깊이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창 18:23~25, 새번역)

아브라함은 의안이 악인과 더불어서 멸망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다면 대부분의 악인 때문에 그들도 멸망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것은 바른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이렇듯 강력하고 도전적으로 기도할까요? 사실은 그의 속마음에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조카인 롯입니다. 롯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안 아브라함은 제일 먼저 롯과 그의 가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겠죠. ‘왜 죄 없는 롯과 그의 가족이 주변 악인 때문에 함께 멸망해야 하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 다른 생각이 생겨났겠죠. ‘거기에는 롯과 그의 아내와 가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인들이 있지 않겠는가? 또 다른 의인들도 무참히 희생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항의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정의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셔야죠.”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해 기도하며 거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하고 강력한 중보기도가 그 기도의 내용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순히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창 18:26, 새번역)

하나님의 공의를 구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하겠다.”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뜻 약속하시자 아브라함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 같습니다. 혹시 의인이 그보다 더 적을 수 있는 상황에 조바심이 생겨난 듯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여쭙죠.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창 18:27~28, 새번역)

공의를 말하며 의인 50명을 놓고 하나님과 약속을 받아 내었던 아브라함은 이제 45명의 의인을 놓고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실 한 번 약속이 체결되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의이자 정의입니다. 다시 번복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번복하며 약속을 다시 바로잡습니다. 그러니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자기를 낮춥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의인이 45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또다시 40명, 30명을 부르고 또다시 20명으로 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인 10명을 놓고 하나님께 약속을 번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면서 시작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어찌 보면 점차 공의롭지 못한 기도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와 재계약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한 번도 아닙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계약이 파기되고 다시 세워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성에 의인 10명만 있더라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헤어지게 되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창 18:33)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여러 번 조건을 바꾸면서까지 끈질기고 강력하게 드린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의 기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창세기 19장에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성에 10명의 의인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기도의 결과를 판단해 본다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번복하면서까지 끈질기게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뜻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땅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한 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성경에 비치고 있습니다(창 19:27~28). 기도했던 성이 멸망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들과 더불어 사랑하는 롯과 그의 가족들도 함께 죽는구나.’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한번 다시 숫자를 낮추어서 5명으로 낮추었더라면 혹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살지 않았을까? 그러면 롯과 그의 가족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으로 후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롯의 가족은 총 6명이었습니다. 롯, 롯의 아내와 두 딸, 딸들과 결혼한 사위가 있습니다. 합하면 6명입니다. 롯의 가족들만 의인으로 서 있었더라면 5명으로 말씀드렸을 경우 롯의 가족 때문만이라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숫자를 셀 수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속내에는 자기 가족만을 살리려는 사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정의를 말씀드리고 있었기에 자기 자신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브라함은 5명까지 낮추지는 않았습니다. 롯의 가족 중에 6명이 있으니 의인 4명만 더 있어도 이 성은 멸망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생각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아브라함이 5명을 불렀고,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하셨더라면 그 성은 온전했을까요? 한번 상상해 봅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말씀을 보면 주님의 사자들이 롯의 집에 가서 피하라고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은 두 사람이 먼저 등장합니다. 도리어 그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죠. 롯의 사위들입니다. 그러므로 롯의 사위들은 의인에 들기 어렵다고 볼 수 있겠죠. 이미 4명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그리고 도망을 가던 중에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죠. 그러니까 그도 사실은 의인으로 볼 수 있지 않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를 피하여 나간 롯과 두 딸조차도 과연 그들이 의인이었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사실은 정확하게 의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의인 5명을 불렀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구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때로 사소한 내용보다 ‘누가’,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한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히고는 있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곳에 의인 10명만 있더라도 그 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했죠. “롯의 가족들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심판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라면 의인 10명이 안 되는 그 성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합니다. 결국 롯이 의인이든 아니든 그 안에서 죽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자가 롯과 그의 가족에게 피하라고 전하는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결국 롯과 그의 두 딸이 살아남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그들이 의인이어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19장에 이 이야기가 한 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 19:2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라는 표현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내보내셨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을 내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들을 내보내셨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롯과 그의 가족은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전해 줍니다. 특별히 중보기도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알려 줍니다. 우선 첫 번째로, 기도 자체와 기도의 내용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가 기도하는가’, ‘누구의 기도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기도의 목적과 내용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가 기도하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기도한다고 합니다. ‘기도’라는 말은 기독교 범주 안에서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도한다는 말은 교회 범주 안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기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기도, 주님의 백성들의 기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기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의 중보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거룩한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 민족을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앞에서 보았듯이, 기도의 내용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담아내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의 이득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한 기도를 넣지 않고 미시적이지 않은 거시적인 기도, 거대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든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던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굽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이 그의 기도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고 소소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정의로운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세워져야 한다고 기도하였죠.
우리가 기도할 때 때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거대하고 크게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러합니다. 또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가 정의롭게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정의로운 정치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정의롭고 거짓 없는 국회의원들이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이 나라를 다스리는 많은 사람들이 신실하게 해 주십시오.” 어찌 보면 거대할 수 있는 기도 내용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알고 채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기도가 소용이 있을까요? 이런 기도가 우리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기도가 과연 이루어질까요? 역사를 보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나와 상관이 없는 기도 같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런 큰 기도를 드려야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 중보기도 중에 이런 기도도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병자를 생각하며 기도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땅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드리죠. 거대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 하며 오고 가는 길에 안전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세상의 인류를 붙잡고 마치 지구를 떠받듯이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은 것, 많은 것을 거두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때는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 자녀, 손주가 힘들어질 텐데….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미끄러져야 우리 손주가 올라갈 텐데.’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승리하고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공적인 기도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도 그래야 하고, 백성과 세상을 위한 기도도 그러해야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중보기도들이지만, 이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바꾸어 듣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 열 명이 악인들과 함께 죽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이렇게 들으셨습니다. “하나님 나의 조카 롯을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라는 기도로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롯의 가족을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자비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중보 기도의 매력입니다.
중보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이기에 공허하고 쓸데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득과 상반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공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속마음과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샅샅이 알고 계셨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아픈 이를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기도가 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 나의 문제를 보고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 앞에 “이 땅이 정의로운 땅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나의 필요도 함께 채워 주십니다. 이것처럼 좋은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중보 기도의 비밀입니다. 마태복음 6장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장 잘 표현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여러분, 중보기도 할 마음이 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매일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Seek Righteousness, Receive Mercy: Abraham’s Prayer

Genesis 18:22-26, 32-33

Today’s passage records Abraham’s prayer to God as he sought to prevent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This prayer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intercessory prayer in the Bible among the four types of prayer.

Why did Abraham pray for Sodom and Gomorrah? How did he pray? And what were the consequences of his prayers?

This story starts with God visiting Abraham under the great trees of Mamre. God appears in the form of three men to whom Abraham extends great hospitality.

After receiving this warm welcome, God tells Abraham that Sarah will conceive and have a son. Even though she was old and her period had stopped, God gives the prophecy that she will bear a son and blesses Abraham, promising that he will become a great and powerful nation and thatall nation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him.

In additionGod shares with Abraham His plan for Sodom and Gomorrah. This is what God says:

“The outcry against Sodom and Gomorrah is so great and their sin so grievous that I will go down and see if what they have done is as bad as the outcry that has reached me. If not, I will not know.”(Genesis 18:20-21)

Upon hearing this, Abraham senses right away that God’s judgement against Sodom and Gomorrah is imminent. So he approaches God and starts praying for the city.

This is the background of Abraham’s intercessory prayer for Sodom and Gomorrah as presented in today’s text.

First, I thought of this. Abraham received both good and bad news from God. The good news was that his wife would soon be blessed with a son. The bad newshad to do with God’s impending judgement on Sodom and Gomorrah, a city not far from his home, and God’s plan to go and see if all the city’s evils were true.

I tried to think from Abraham’s perspective. He and Sarah had been blessed. He would have a son and become a great nation. However, a city near his home would be subject to God’s judgement.

How would you have responded? If you were Abraham, what would you have done? Would you have gone to God in prayer, interceding on behalf of Sodom and Gomorrah? Or would you have not cared about whathappens to others since you hadalready been blessed?

What makes Abraham greatis that he had a heart to pray for Sodom and Gomorrah even in such asituation. The city was already falling. Rampant with evil, the city was already a bad social influence on its neighbors. The region might be better off without it. The city’s destruction would not harm or pose a threat to Abraham and his family in any way.

Yet Abraham approaches God for the sake of Sodom and Gomorrah. And he prays. Then how did he pray to God for the city?

This is how he prayed:

“Then Abraham approached him and said: ‘Will you sweep awa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What if there are fifty righteous people in the city? Will you really sweep it away and not spare the place for the sake of the fifty righteous people in it? Far be it from you to do such a thing—to kill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treating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like. Far be it from you! Wi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right?’”(Genesis 18:23-25)

Abraham prays to God, arguing that it would not be righteous of Him to sweep away the righteouswith the wicked. Abraham claims that it would not be fair if there were fifty righteous men in the city and God destroyed them along with the wicked.

Why did Abraham pray such a prayer to God—as if in protest to Him? It is likely because his nephew Lot and his family were living there.

When Abraham first pictured Sodom and Gomorrah being destroyed, the first thing that crossed his mind would have been Lot and his family. ‘Why does my nephew have to die with them? This is too unfair.’

Furthermore, he would have thought it unfair if not just Lot and his family but also other righteous people died along with the unrighteous. This is probably why he protested so strongly to God in prayer.

And God willingly responded to his protest:

“If I find fifty righteous people in the city of Sodom, I will spare the whole place for their sake.”(Genesis 18:26)

But after receiving this promise from God, Abraham seems to have been somewhat worried. ‘What is there are less than fifty righteous people in the city?’

So he asks God again:

“Then Abraham spoke up again: ‘Now that I have been so bold as to speak to the Lord, though I am nothing but dust and ashes, what if the number of the righteous is five less than fifty? Will you destroy the whole city for lack of five people?’‘If I find forty-five there,’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Genesis 18:27-28)

After getting God’s promise that He will not destroy the city for the sake of fifty righteous people out of His righteousness, Abraham now asks again if He will destroy the city if there are 45 righteous people. A promise is a promise. It must not be changed. This is not right. So Abraham feels ashamed. This may be why he humbles himself, calling himself nothing but dust and ashes. God responds to this by promisingthat He will not destroy the city if there are 45 righteous men.

But as we well know, the story does not end here. Abraham asks God to revise His promise again and again, reducing the number of righteous men to 40, 30, 20, and finally to 10.

Abraham’s prayer for Sodom and Gomorrah, which initially appealed to
God’s righteousness, now evolves into a continuation of unrighteous and unilateral breaches and renegotiations of the contract on the part of Abraham. Finally, God promises him that He will not destroy the city if there are just 10 righteous men.

After this conversation, God and Abraham each return to their places.

“When the Lord had finished speaking with Abraham, he left, and Abraham returned home.”(Genesis 18:33)

Then what were the results of Abraham’s prayer for Sodom and Gomorrah and how where they manifested? Genesis 19 tells us that the city was eventually destroyed by God’s judgement.

In short, Abraham’s intercessory prayer ended in failure.

Although he had tried so hard to save the city by even persistently revising God’s promises to him, he failed. The city was destroyed due to there not being even 10 righteous men.

How would Abraham have felt as he watched God’s judgement fall upon the city? He would have been crushed as he thought of his nephew and his family living there.

He may even have had deep regrets. ‘What if I had reduced the number to 5? Would that have saved the city and Lot’s family?’ He may even have shed tears of regret.

Come to think of it, the reason he prayed so many times to God, negotiating with Him on the number of righteous men, was all probablybecause of Lot and his family.

Lot had a wife and two daughters. The daughters also had husbands. Considering Lot’s family, it may have been wise to reduce the number of righteous men to 5.

But Abraham did not pray this way. It appears he felt he was in no position to ask God to save the city out of His mercy for Lot and his family.

Abraham may have considered such a prayer too selfish. Consequently, he appealed to God’s justice, persuading God that it would not be right to sweep away the righteous along with the unrighteous. Although he wanted to save Lot, he could not bring himself to pray to God for just Lot’s deliverance.

Then would Sodom and Gomorrah have escaped God’s judgement if Abraham had asked Him to save the city for the sake of just five righteous men, and if God had consented?

No, it doesn’t seem likely.

Even if Abraham had gotten God to agree to five righteous men, the city would still have been destroyed. As you know, Lot’s wife turned into a pillar of salt, and his sons in laws thought Lot was merely joking when he told them the city would soon be demolished, whichreflects the extent of depravity.

But doesn’t something seem a bit strange to you? If Sodom and Gomorrah had to be destroyed for the lack of 10 righteous men, don’t you think that even if there were nine righteous men, it would only be fair thatthey shoulddie with the wicked? I mean, considering Abraham’s prayer to God, doesn’t this seem only right?

Abraham did not pray for the deliverance of Lot and his family. Nor did he pray for thedeliverance ofrighteous men in the city—if there were any. He prayed that God would not destroy the city if there were just ten righteous men.

In this sense, it would only be fitting that even the righteous men of Sodom and Gomorrah—if there were any—be killed along with the wicked when the city faced destruction.

But interestingly Lot and his family were saved when the city wasdestroyed. How could this have happened?

Genesis 19:29 says:

“So when God destroyed the cities of the plain, he remembered Abraham, and he brought Lot out of the catastrophe that overthrew the cities where Lot had lived.”(Genesis 19:29)

The above verse provides a critical clue. Lot and his family were saved not because they were righteous. The Bible clearly states they were saved because God remembered Abraham.

Lot was saved thanks to Abraham. Abraham did not pray to God for Lot’s deliverance. All he prayed was that God would not destro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But at the bottom of that prayer, he was thinking of Lot. And God knew Abraham’s heart.

This story teaches us a very important lesson on intercessory prayer.

First, it teaches us how we ought to pray when we intercede for others.

Abraham sought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prayed that He would not sweep away the righteous along with the wicked. In this way, Abraham prayed to save Sodom and Gomorrah.

In a sense, this is a grandiose prayer. A grand prayer to save the city. It is agreat prayer seeking to save all thepeople of the city. It isa great prayer appealing to unfailing justice of God.

When we do intercessory prayer, we too can pray with this perspective.

Sometimes,when we pray such great, grandiose prayers, we may think, ‘Why should I pray such lofty prayers for things and people that do not concern me?’

We pray for the healing of the sick, for justice in the business sector. We also pray for the safety of people as they travel and for students taking the CSAT. We pray that they may reap the fruit of their study and labor. We pray that those who have worked hard will getgood results.

These prayers seem irrelevant to us. However, God who sees the center of our hearts as we intercede for others hears those intercessory prayers in a different way.

When Abraham prayed, ‘Lord, it is not fair that the righteous be swept away with the wicked,’ God heard it differently: ‘Lord, have mercy on my nephew Lot.’ And He answered that prayer.

Dear Church, some of you may be questioning, “Do we have time to pray for others when we don’t even have enough time to pray for ourselves? I am inundated with so many personalproblems and troubles; how can I possibly pray for the nation, the society, the business sector, and areas that do not concern me directly?”

But one thing we learn from Abraham’s intercessory prayer in today’s passage is that although he sought justice and righteousness for the world in his prayer, God responded in mercy. Regardless of whether Lot was a righteous man or not, God saved him and his daughters for the sake of Abraham.

This is the secret of intercession that we learn from Abraham’s prayer.

Therefore, when we pray for others we are in no way just praying for them .

Praying for our country is to pray for ourselves; interceding for the sick is to pray for ourselves; and interceding for those going through tribulations is to pray for our own problems. Therefore, intercessory prayer gives life to us all.

Moreover, intercessory prayer holds mysterious secrets. Our prayers for our country become prayers for ourselves; prayers for the sick become prayers for ourselves; and our earnest prayers for the faithful and decent become prayers for ourselves too.

When Abraham prayed for Sodom and Gomorrah to God, he was in fact hiding his real intent and desire. His prayer appealed to God’s justice, arguing that the righteous should not be destroyed with the wicked. But God saw through the heart and intent of the intercessor. Finally God granted Abraham’s deepest wishes.

When we pray, God does not focus on the words we utter, but sees and hears what is hidden in our hearts. And, in His mercy, He answers the deep prayers of our hearts.

May all the saints of Somang Church intercede for others and for the world with all their hearts with this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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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22~26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창세기 18:32~33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나라를 위한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머뭇거릴 때, 성경 속의 첫 중보기도에서 기도의 지혜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올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함께 기도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네 겹의 기도’를 통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설을 맞이하며 모든 성도님의 가정에 기도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계속 기도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여러분께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 많은 분이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라를 위한 기도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기도 내용과 방향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정말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도 듭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시는 분 중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겠지만, 기도의 모습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이나 방향성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도 일어날 수 있죠. 그래서 오늘 말씀과 더불어 어떤 방향과 관점, 그리고 어떤 범위 안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분이 익숙하게 들어온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등장합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하게 된 시점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아서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구약성경을 앞에서 쭉 읽으면 이 기도가 최초의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강하게 다른 이를 위해서 드린 기도 내용입니다. 이 중보기도 안에는 매우 중요한 진리와 좋은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세 사람과 더불어 아브라함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실 때 그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영접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하죠. 그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첫 번째로 사라가 임신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고 늙어서 생리가 이미 끊어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제 그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살짝 이야기해 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창 18:20~21, 새번역)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몰라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암시를 주시는 거죠.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곧 심판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중보기도를 드리는데, 아주 도전적인 기도를 드립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된 배경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뉴스를 들었습니다. 굿 뉴스와 배드 뉴스를 들었죠. 하나는 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 좋은 소식입니다. 사라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고, 아브라함은 광대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좋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쁜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멀지 않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곧 멸망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신과 사라는 이미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강대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지만 주변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두 뉴스를 들은 후에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나에게는 어떤 문제나 불이익도 없으며 힘도 없으니,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눈을 감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상관하지 말자.’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이미 축복을 받았고 어떤 해도 입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기도의 마음을 가집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미 망해 가는 땅이죠. 악이 번성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악한 성이 사라지는 것은 주변 문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없어지는 것이 아브라함이나 그의 가족에게 큰 위험과 해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는 어떻게 기도하였을까요? 기도의 내용을 한번 깊이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창 18:23~25, 새번역)

아브라함은 의안이 악인과 더불어서 멸망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성에 50명의 의인이 있다면 대부분의 악인 때문에 그들도 멸망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것은 바른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이렇듯 강력하고 도전적으로 기도할까요? 사실은 그의 속마음에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조카인 롯입니다. 롯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안 아브라함은 제일 먼저 롯과 그의 가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겠죠. ‘왜 죄 없는 롯과 그의 가족이 주변 악인 때문에 함께 멸망해야 하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 다른 생각이 생겨났겠죠. ‘거기에는 롯과 그의 아내와 가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인들이 있지 않겠는가? 또 다른 의인들도 무참히 희생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항의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정의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셔야죠.”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해 기도하며 거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브라함의 간절하고 강력한 중보기도가 그 기도의 내용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순히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창 18:26, 새번역)

하나님의 공의를 구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하겠다.”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뜻 약속하시자 아브라함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 같습니다. 혹시 의인이 그보다 더 적을 수 있는 상황에 조바심이 생겨난 듯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여쭙죠.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창 18:27~28, 새번역)

공의를 말하며 의인 50명을 놓고 하나님과 약속을 받아 내었던 아브라함은 이제 45명의 의인을 놓고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사실 한 번 약속이 체결되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의이자 정의입니다. 다시 번복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번복하며 약속을 다시 바로잡습니다. 그러니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자기를 낮춥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의인이 45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또다시 40명, 30명을 부르고 또다시 20명으로 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인 10명을 놓고 하나님께 약속을 번복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면서 시작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어찌 보면 점차 공의롭지 못한 기도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와 재계약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한 번도 아닙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계약이 파기되고 다시 세워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성에 의인 10명만 있더라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헤어지게 되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창 18:33)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여러 번 조건을 바꾸면서까지 끈질기고 강력하게 드린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의 기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창세기 19장에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성에 10명의 의인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기도의 결과를 판단해 본다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번복하면서까지 끈질기게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뜻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땅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한 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성경에 비치고 있습니다(창 19:27~28). 기도했던 성이 멸망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들과 더불어 사랑하는 롯과 그의 가족들도 함께 죽는구나.’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한번 다시 숫자를 낮추어서 5명으로 낮추었더라면 혹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살지 않았을까? 그러면 롯과 그의 가족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으로 후회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롯의 가족은 총 6명이었습니다. 롯, 롯의 아내와 두 딸, 딸들과 결혼한 사위가 있습니다. 합하면 6명입니다. 롯의 가족들만 의인으로 서 있었더라면 5명으로 말씀드렸을 경우 롯의 가족 때문만이라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숫자를 셀 수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속내에는 자기 가족만을 살리려는 사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정의를 말씀드리고 있었기에 자기 자신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브라함은 5명까지 낮추지는 않았습니다. 롯의 가족 중에 6명이 있으니 의인 4명만 더 있어도 이 성은 멸망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생각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아브라함이 5명을 불렀고, 하나님께서 다시 약속하셨더라면 그 성은 온전했을까요? 한번 상상해 봅니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말씀을 보면 주님의 사자들이 롯의 집에 가서 피하라고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은 두 사람이 먼저 등장합니다. 도리어 그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죠. 롯의 사위들입니다. 그러므로 롯의 사위들은 의인에 들기 어렵다고 볼 수 있겠죠. 이미 4명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그리고 도망을 가던 중에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죠. 그러니까 그도 사실은 의인으로 볼 수 있지 않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를 피하여 나간 롯과 두 딸조차도 과연 그들이 의인이었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사실은 정확하게 의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의인 5명을 불렀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구원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때로 사소한 내용보다 ‘누가’,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한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히고는 있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곳에 의인 10명만 있더라도 그 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했죠. “롯의 가족들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지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심판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라면 의인 10명이 안 되는 그 성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합니다. 결국 롯이 의인이든 아니든 그 안에서 죽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자가 롯과 그의 가족에게 피하라고 전하는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결국 롯과 그의 두 딸이 살아남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그들이 의인이어서 구원을 받았을까요? 창세기 19장에 이 이야기가 한 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 19:2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라는 표현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이 의인이었기 때문에 내보내셨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을 내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들을 내보내셨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롯과 그의 가족은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전해 줍니다. 특별히 중보기도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알려 줍니다. 우선 첫 번째로, 기도 자체와 기도의 내용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가 기도하는가’, ‘누구의 기도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기도의 목적과 내용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가 기도하는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기도한다고 합니다. ‘기도’라는 말은 기독교 범주 안에서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도한다는 말은 교회 범주 안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기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기도, 주님의 백성들의 기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기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의 중보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거룩한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 민족을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앞에서 보았듯이, 기도의 내용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담아내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의 이득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한 기도를 넣지 않고 미시적이지 않은 거시적인 기도, 거대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든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던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굽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이 그의 기도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고 소소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정의로운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세워져야 한다고 기도하였죠.
우리가 기도할 때 때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거대하고 크게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러합니다. 또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가 정의롭게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정의로운 정치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정의롭고 거짓 없는 국회의원들이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이 나라를 다스리는 많은 사람들이 신실하게 해 주십시오.” 어찌 보면 거대할 수 있는 기도 내용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알고 채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기도가 소용이 있을까요? 이런 기도가 우리 속에 있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기도가 과연 이루어질까요? 역사를 보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나와 상관이 없는 기도 같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런 큰 기도를 드려야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 중보기도 중에 이런 기도도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병자를 생각하며 기도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땅의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드리죠. 거대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 하며 오고 가는 길에 안전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세상의 인류를 붙잡고 마치 지구를 떠받듯이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은 것, 많은 것을 거두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때는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우리 자녀, 손주가 힘들어질 텐데….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미끄러져야 우리 손주가 올라갈 텐데.’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승리하고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공적인 기도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도 그래야 하고, 백성과 세상을 위한 기도도 그러해야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중보기도들이지만, 이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바꾸어 듣지 않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 열 명이 악인들과 함께 죽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이렇게 들으셨습니다. “하나님 나의 조카 롯을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라는 기도로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롯의 가족을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자비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중보 기도의 매력입니다.
중보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이기에 공허하고 쓸데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득과 상반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공적인 유익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속마음과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샅샅이 알고 계셨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아픈 이를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기도가 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 나의 문제를 보고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 앞에 “이 땅이 정의로운 땅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나의 필요도 함께 채워 주십니다. 이것처럼 좋은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중보 기도의 비밀입니다. 마태복음 6장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장 잘 표현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여러분, 중보기도 할 마음이 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매일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5년 1월 26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공의를 구하고 자비를 얻다-아브라함의 기도” (창18:22~26, 32~3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70장, 36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나라를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될까요?

<설교의 요약>

  우선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찾아오셔서는 아내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의 말씀을 주시며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나쁜 소식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들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을 알아보러 가겠다 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와 가정에 대한 축복에 만족하면서 나와 상관없을 수도 있는 악한 성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아브라함과 가족에게도 나을 수도 있겠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논지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항의를 들으시고 의인 50명만 있어도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의 숫자를 줄여 나갑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마침내 10명까지 약속을 번복합니다. 공의를 운운하면서, 공의롭지 못하게도 약속파기와 재계약을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요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맙니다. 중보기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의 가족도 죽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숫자를 5명까지 줄여볼걸 하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깝지만,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다면, 의인 9명 있었어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롯과 가족들은 구출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의인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중보기도해야 하는지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배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의인이 함께 희생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소돔과 고모라를 살리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대단한 기도이고, 하나님의 정의가 굽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위대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크고 거창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와 별로 연관이 없지만, 병자들이 낫고,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기를,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보기를, 등등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바꾸어 들으십니다. 아브라함이 의인 10명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조카 롯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로 바꾸어 들으셨듯이 말입니다.

  누가 드리는 기도인지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공의와 정의를 구했고, 하나님은 자비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롯이 의인이든 아니든,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구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기도에서 배우는 중보기도의 비밀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아픈 이를 위한 기도가 곧 나를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이며,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해 중보하는 것이 나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시고 자비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마음껏 세상을 위해, 다른 이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함께 구할 중보기도의 제목들을 나누고 함께 기도합니다.

2.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더불어 이루실 우리의 소원도 함께 나누고 서로 중보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구할 때, 주님은 자비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감히 주님 앞에 내어 놓지 못하는 것까지도 주님은 아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 우리가 중보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역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세밀히 섬세하게 살피시는 손길을 경험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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