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광야로 이끄시는 성령
< 성령은 어떻게 임재하십니까? >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약속해 주신 선물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령강림주일만 되면 읽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최초의 성령 강림 사건을 전하는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강력하고도 놀라운 첫 번째 성령 임재 사건을 극적이고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임재와 더불어 발생 된 일들은 매우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베드로가 거리로 나가 소리 높여 설교하자 단번에 3,000명이 회심하고 세례받았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오르던 중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자 그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신도들은 모두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고,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실 이러한 성령 강림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부러움과 함께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제대로 믿고 있는가? 제대로 성령 강림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때로는 현재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신앙적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는 본래 이와 같은 성령 체험을 경험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과 죄악 때문에 이러한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은 성령 체험을 위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력한 성령 임재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아야 하고, 여러 영적인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조금 더 과격한 분들은 기도할 때 사람들이 쓰러지는 일들도 일어나야 하고, 아말감으로 처리된 치아가 금니로 변화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병이 낫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치유와 방언, 예언, 모든 은사가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런 성령 사건을 반드시 체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 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에 임하십니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부터 열광적인 성령 운동을 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매우 넓게 확산되어 있는 생각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배경에서 다양한 이단이 파생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을 극도로 폄하하며, 성령 임재는 초대교회의 극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이므로 그 이후로는 이런 체험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관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다양한 성령 임재와 성령 체험 사건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처럼 극적인 임재 사건도 있지만, 때로는 성경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또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만나 식사하던 중 영적 체험을 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불현듯 성령 체험을 하고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 병 고침과 예언, 영 분별과 방언, 통역과 같은 은사를 허락하심으로써 나타나기도 하고,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허락하시며 임재하기도 합니다. 즉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강력하게 방언이나 통역, 예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동시에 조용하고 잠잠하게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온유, 절제 등으로, 또 인격으로 임하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모습은 기도할 때 극적으로 경험되기도 하며,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잔잔하게 경험되기도 합니다. 찬송할 때 뜨겁게 경험되기도 하고, 찬송가 가사를 읽어 내려가던 중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오기도 합니다.
성령 임재와 관련해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성령 임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다른 모양으로, 다른 육체로, 다른 속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성향과 기질에 맞게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극적이고 열광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을 허락하실 수도 있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을 경험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광적인 성령 체험만을 얻기 위해, 마치 그것만이 해답인 것처럼 열등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헤맬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극적인 경험이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또한 극적인 경험은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령 임재 또는 성령 강림 체험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예수님은 성령 체험을 하신 후 광야로 인도되셨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며,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성령 강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 강림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예수님의 세례 현장에서 벌어진, 즉 예수께 성령이 임재하던 그 현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또 다른 성령 임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과 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가복음 1:12)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좋은 게 아닙니까? 성령을 받으면 행복해지고, 풍성해지고, 능력이 많아지고, 못할 것이 없어지고, 아무런 부러움이 없을 만큼 좋아지는 상태가 성령의 임재 아니겠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이란 그런 게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성령 충만을 경험한 예수를 성령께서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누가복음 4:1)
예수님이 성령께 이끌려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셨다고 말씀합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성령을 체험하신 장면에서는 특별하거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시고 방언을 하셨다거나, 예언을 하셨다거나, 새로운 능력이 주어졌다는 말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의 성령 사건과 예수님의 능력을 결부시키지 않고 있다란 사실입니다. 도리어 성령 체험 이후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내몰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사탄의 시험대 앞에 섰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모든 것의 완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권능이나 능력의 쟁취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또 다른 곳으로의 인도였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광야’입니다. 예수님의 성령 체험은 한마디로 사탄의 시험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를 위해 성령께서 임재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9~10)
사도행전과 비슷하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성령이 예수께 임재할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증언합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의 내용이 사도행전과 사뭇 다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하늘의 아버지이신 성부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1)
사도행전에서의 성령 임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마가복음에서 성령 임재는,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한 곳에서는 ‘증언’으로, 한 곳에서는 ‘들음’으로 성령 임재가 다르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부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곧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하나님의 큰 기쁨을 받은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에 나타난 성령 임재의 모습입니다.
< ‘들음’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저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마음 상해 있던 2007년 어느 날, 저는 새벽기도를 하며 강대상 앞자리에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짧은 시간, 그러나 제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제가 예수님의 무릎 위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잠시 강렬한 빛이 제 눈을 자극했고, 강렬한 빛 너머로 예수님의 음성이 제 마음속으로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저는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그 자리에서 한껏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손길은 따뜻했고, 제 마음은 한없이 평안해졌습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그렇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의 말로, 잔잔한 언어로, 조용한 음성 가운데 다가오셨습니다.
들음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음으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성부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감탄사를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다.”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태어난 존재가 자신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내 마음은 기뻐 뛰놉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또한 잠시였습니다. 성령님이 곧바로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적인 엑스터시(ecstasy)에 매몰되게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십니다. 그리곤 극한의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나의 기뻐하는 자다.”라는 감탄이 무색할 만큼, 성령님은 예수님을 40일간이나 굶깁니다. 그를 배고프게 했고, 기진맥진하게 했으며, 인간의 모든 나약함이 드러나게 하신 후 사탄 앞에 세워놓으십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사탄은 돌로 떡이 되게 하라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신비한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지만,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기에 단호히 그 유혹을 말씀으로 거절하십니다. 사탄은 또다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허락하겠다고 유혹합니다. 이때도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결의를 다지며, 사탄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며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이 광야에서의 시험이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며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존재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앞으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를 결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입니다.
< 성령은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
우리는 종종 성령께서 이와 같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령님의 임재, 성령님의 강림을 광야에서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너는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다.”라는 음성을 마음에 새겨 주시고는,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지, 나를 정말 기뻐하시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 뒤 곧장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성령은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40일간 금식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셨으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모든 힘이 빠지며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는 자리로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깊은 슬픔의 자리에까지 들어서게 하시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케 하시고, 심한 영혼의 갈증으로 목마르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 그러하셨듯이, 성령은 사탄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사탄은 온갖 유혹을 하며 우리를 쓰러뜨리고자 합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약 나에게 절하면 모든 것들을 주리라. 하나님을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의지하라.”라며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배는 고프고, 지쳐 있으며, 광야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 광야의 자리에서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그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양식으로 살 것인가? 빵으로 살 것인가? 세상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권력을 얻기 위해 살 것인가? 유명해지기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어떻게 고백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고민과 결단을 광야에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또 힘들 때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을 결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믿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따라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께 경배해야지.’ 바로 이 결단의 순간, 이 결단의 시간, 바로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 체험 과정에서 드러난 성령님은 어떠한 능력을 부여하시는 분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후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이 말씀에 따르면, 성령님은 예수님을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눌린 자에 보내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가셨고, 이제 다시 가난한 자에게 보내시며, 포로 된 자, 그리고 눌린 자에게 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의 강림을 하나님의 능력과 힘과 관련해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권능을 받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꿈을 꿀 때가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근거로, 성령을 하나님의 권능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그러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을 괄호로 묶고 읽어 봅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유대로 보내시며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고, 갈릴리와 애굽,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포로 된 자, 가난한 자, 눌린 자에게 보내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 광야 같은 삶의 자리에서도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
지난 주간에 잠시 모스크바에 다녀왔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이는 선교대회에 참석하며 은혜의 말씀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50여 명의 선교사님들과 부부 및 자녀들이 함께했습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신 지 20년, 30년, 40년은 돼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처음 그곳에 가셨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 하나님을 만나는 극적인 체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던 그때처럼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 내가 기뻐하는 자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제가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간 곳은 광야였고, 예루살렘이었으며, 땅끝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사역하신 지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분들은 화려한 옷을 입지 않고 있었고,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삶이 참으로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는 것,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걱정과 여러 염려가 몰려왔을 것입니다. 배우자 중 약 80%가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병에 노출돼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은혜도 누렸습니다. 그분들이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 광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눈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는 주님 앞에서 주님의 종으로서, 돌이 떡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나는 사탄을 경배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따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바로 성령이 함께하시는 자리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강력한 능력으로, 강력한 소리로만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그럴 수 있으나, 고난의 자리, 광야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탱해 나가는 자리, 그 험난한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만 성령의 체험을 구하지 마십시오. 예배 현장에서만 성령의 임재를 구하지 마십시오. 뜨거운 찬양 가운데서만 성령의 임재를 찾지 마십시오. 힘들게 살아내는 광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그 자리에,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유대 땅에도 계시고, 예루살렘에도 계시고, 땅끝에도 계시는 성령님. 포로 된 자와 함께하시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눌린 자들과도 함께하시는 성령님. 그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 귀중한 성령님, 고난의 현장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함께하시는 그 성령님을 우리의 영의 눈을 떠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he Holy Spirit Sends Us Out into theWilderness
Mark 1:9-13
Today is Pentecost. The Holy Spirit is a gift promised and given to us by our risen Lord. The Spirit is also another form of God. A passage often read on Pentecost is Acts 2:1-4 which describes the first Pentecost when the Holy Spirit came upon the apostles: “Suddenly a sound like the blowing of a violent wind came from heaven and filled the whol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They saw what seemed to b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and came to rest on each of them.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Acts 2:2-4 NIV)
This passage dramatically describes the amazing and powerful descent of the Holy Spirit when it first came upon the believers in Acts. However, the events that take place after the Spirit’s descent are even more amazing. People began to speak in tongues. Peter preached powerfully to the crowd, baptizing three thousand that very day. Furthermore, while going up to the temple, Peter and John healed a man who was lame from birth. The believers shared their possessions, distributedthem to anyone who had need, met together every day, broke bread, and praised God.
How amazing this is! Whenever we read about these eventsfollowing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in Acts, we are filled with awe and envy and look back on our own faith lives. We even feel inferior to the believers in Acts. We ask ourselves, ‘Why don’t these things happen to us today?’
Based on such views, some go on to argue that all of us must experience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as shown in Acts. They say that, without such a dramatic experience, our faith life is dead. According to such an argument,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must be powerful and manifested by the speaking of tongues. Some even argue that people fall to the floor, amalgam teeth fillings turn to gold, and all sicknesses are healed. They say that healing, tongues, prophecies, and every spiritual gift accompany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What do you think about these views? Although the details of these argumentsdiffer, they are widespread and are sometimes connected to heresies.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re are those that argue that the dramatic events experienced by the early church when the Spirit came were just a one-time event and will not happen again. Accordingly, they believe such thingsas speaking in tongues do not happen today.
How should we understand these different views? The Bible describes the Holy Spirit coming upon believers in diverse patterns. Sometimes, it comes upon us dramatically as in Acts.At other times, it touches people’s hearts powerfully while reading the Scripture. The Spirit also leads two disciples on the road to Emmaus to meet Jesus.
In fact, the Bibles describes many ways in which the Holy Spirit comes upon us. Sometimes,it is in the form of spiritual gifts such as tongues,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prophecies, and healing. At other times,the Spirit manifests itself by its fruit, including love, joy, peace, forbeara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Even now,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manifested in tongues,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and prophecies as well as love, joy, peace, forbearance, and self-control. We experience the Spirit in a dramatic way when we pray powerfully,but we feel the Spirit’s gentle presence while reading the Scripture. We feel the powerful Spirit when we worship and shout to the Lord, but we also feel the Spirit quietly flowing through us as we meditate on the lyrics of hymns.
One thing to bear in mind is this:We should not confine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 our personal experiences or thoughts. That is, we must not fail to acknowledge the diverse ways in which the Spirit comes upon believers. God gave us the Holy Spirit as a gift. Dramatic encounters with the Holy Spirit are beneficial, but that is not the only way we experience the Holy Spirit.
This wasquite a lengthy introduction to today’s message on Pentecost. Against this backdrop, I would like to look at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in a slightly different perspective. I want to study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on Jesus at his baptism, rather than the passage describing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in Acts.I will be taking scripture from both Mark and Luke.
The verse that seems tostand out the most is verse 12: “At once the Spirit sent him out into the wilderness.” (Mark 1:12) Why did the Spirit send Jesus out into the wilderness? This is harder to understand considering that the Father, the Spirit, and the Son are one.
Yet, we see a similar verse in Luke: “Jesus, full of the Holy Spirit, left the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wilderness.” (Luke 4:1)
What is most interesting is that the Bible does not describe the amazing changes that Jesus go through when the Spirit comes upon him. Jesus does not speak in tongues, prophesy, or show any new powers when the Spirit comes upon him. Of course, it may be because Jesus already possesses all these. Still,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Bible does not focus on such powers.
Instead,the Scripture says that Jesus was led into the wilderness after the Spirit descended on him. And, there, Jesus fasts for forty days and is tested by the devil.That is, the Holy Spirit’s descent did not make things complete. Instead, it gave Jesus yet another trial, a series of tests in the wilderness.
Thus, we can understand this to be one of the waysin which the Spirit comes upon us. To Jesus, the Spirit was one who led him into the wilderness. It did not give him great powers, strong emotions, or other powerful spiritual experiences. Jesus’ experience with the Holy Spirit was fasting and going through temptations. In short, Jesus’ encounter with the Holy Spirit was to stand before the test of Satan.
What does this imply? Let’s take a deeper look at Jesus’ experience of the Holy Spirit.
First, how does the Spirit come upon him? “A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was baptized by John in the Jordan. Just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Mark 1:9-10)
Jesus encounters the Holy Spirit while being baptized. The Spirit comes upon him in a dramatic way as it does in Acts. The heaven is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s on him like a dove. Then comes God’s voic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Mark 1:11)
In Acts, the apostles start to experience the Holy Spirit by speaking in tongues, but Jesus experiences the Holy Spirit by hearing God’s voice toward him. In theHoly Spirit’s presence, Jesus hears the Father’s voice clearly. His sense of identity becomes clear. In that moment, it becomescrystal clear who he is, and he is sure about God’s thoughts toward him:“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I have a similar experience. In 2007, I was hurt deeply because I was wronged. One day, I was praying on my knees behind the pulpit early in the morning. Although I did not pray for long, it felt like a very long time. During that prayer time, I felt as if I were praying on Jesus’ lap. A bright light struck my eyes for a brief moment, and beyond that light I could hear Jesus’ voice in my heart: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To this day, I cannot forget that moment. Yes, I was complaining to Jesus in my prayer, but his embrace was so warm, filling me with an indescribable peace. That is how the Holy Spirit came to me.
There were many others who met Jesus by hearing his voice, including Paul, Augustine, and Luther. To them, the coming of the Spirit started by hearing his voice.
In the presence of the Spirit, Jesus meets God and hears wonderful words spoken by the Father: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How wonderful and powerful this is! Jesus came to us in flesh because he knew God’s heart toward us. So, we can imagine his joy and excitement when he heard that God was pleased with him.
However, that joyful moment did not last long. The Spirit quickly leads Jesus into the wilderness to be tested. The Spirit does not leave Jesus in a spiritual ecstasy.He sends him to the wilderness, testing man’s limits. He makes Jesus fast for forty days. The Spirit starves Jesus, exhausts him, and reveals weaknesses of the flesh. Ultimately, the Spirit makes him stand againstthe devil’s tests. This was the work of the Spirit in Jesus.
It is at this point that Jesus encounters a critical moment where he must determine his heart and mind in the face of Satan’s temptations. Satan tempts him to turn stone into bread,that is, to use his power for himself. But Jesus firmly refuses. When Satan tempts Jesus with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Jesus firmly responds that he will worship God alone. Finally, when the devil tells him to throw himself from the highest point of the temple, Jesusreplies, “Do not put the Lord your God to the test.”
What did these tests in the wilderness mean to Jesus? Through these tests, he was able to determine his identity, his purpose, his master, and how he would live his life. This was what the Spirit did to Jesus in the wilderness. The Spirit put him before Satan and ultimately made Jesus give himself completely to God and His purpose.
We, too, often see the Holy Spirit working in us this way. We experience the Holy Spirit coming upon us in the wilderness. Sometimes, the Spirit leads us into the wilderness after letting us hear God’s voice telling us that we are his beloved children with whom He is well pleased. There, in the wilderness, we are robbed of everything, left to starve, and threatened. The Spirit exhausts us and makes us hungry and weak. We are stripped of everything, experienceutmost grief, and become spiritually thirsty.And, at that very moment, the Spirit makes us stand against the devil. The enemy attacks us with all kinds of temptations. Yet, the Spirit is right there with us as we are tested.
In that painful place, we think hard about what we should live for. Should I live for bread or for God? For power and fame or for God? Will I live a life worshipping and thanking God or not? In that darkplace, we feel God’s invisible hand upon us as we resolve to live by faith. In the wilderness, our faith becomes solid.
The Holy Spirit is at work in all these stages. We encounter the Spirit in the wilderness. In fact, we experience the Holy Spirit leading us to the wilderness. There, we find ourselves, our way, and our hope. We achieve this as the Spirit walks with us.
Jesus’ encounter with the Holy Spirit was a little bit different from the Holy Spirit’s descent in Acts. The Holy Spirit led Jesus to the Jordan River, had him baptized, and then sent him out into the wilderness to be tested by the devil. The Spirit led Jesus to overcome these tests and take an important first step in his ministry.
In these scenes, the Holy Spirit continuously takes Jesus to different places. Instead of giving him power, he leads him here and there. Of course, the Spirit’s power is always present even if it is not revealed.
In Luke, Jesus speaks the following words in Nazareth after being tested by the devil: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because he has anointed meto proclaim good news to the poor.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to set the oppressed free,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Luke 4:18-19) According to these verses, the Spirit is sending Jesus to the poor, the prisoners, and the oppressed. This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e tend to link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with power and might. This view stems from our focus on the Holy Spirit’s “power” as described in Acts 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Acts 1:8)
However, we must be able to read this verse with a different focus. Let’s add a bracket and italicize some of the words: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This way, we can see how we are led to Jerusalem, Judea, Samaria, and the ends of the earth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us. And our mission there is to be his witnesses.
How can we be Christ’s witnesses?By living by the Word, serving only God, and giving ourselves completely to God wherever we are – in Jerusalem, in Judea, and in the ends of the earth – just as Jesus clearly confirmed his identity in the wilderness. We can be Christ’s witnesses by living with a clear sense of identity as God’s children as we hear Him telling us,“You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I am well pleased.” This is another meaning of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is not just in Mark’s upper room. The Spirit’s presence is found not just in church services. He is with us in the painful wilderness, in Jerusalem, in Judea, and in the ends of the earth. The Spirit is with the prisoners, the poor, and the oppressed. May the Spirit’s power be upon you like a magnetic field in all spheres of your life.
마가복음 1: 9 ~ 13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 성령은 어떻게 임재하십니까? >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약속해 주신 선물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령강림주일만 되면 읽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최초의 성령 강림 사건을 전하는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강력하고도 놀라운 첫 번째 성령 임재 사건을 극적이고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임재와 더불어 발생 된 일들은 매우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베드로가 거리로 나가 소리 높여 설교하자 단번에 3,000명이 회심하고 세례받았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오르던 중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자 그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신도들은 모두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고,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실 이러한 성령 강림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부러움과 함께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제대로 믿고 있는가? 제대로 성령 강림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때로는 현재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신앙적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왜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는 본래 이와 같은 성령 체험을 경험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과 죄악 때문에 이러한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은 성령 체험을 위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력한 성령 임재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아야 하고, 여러 영적인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조금 더 과격한 분들은 기도할 때 사람들이 쓰러지는 일들도 일어나야 하고, 아말감으로 처리된 치아가 금니로 변화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병이 낫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치유와 방언, 예언, 모든 은사가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런 성령 사건을 반드시 체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 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에 임하십니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부터 열광적인 성령 운동을 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매우 넓게 확산되어 있는 생각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배경에서 다양한 이단이 파생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을 극도로 폄하하며, 성령 임재는 초대교회의 극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이므로 그 이후로는 이런 체험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관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다양한 성령 임재와 성령 체험 사건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처럼 극적인 임재 사건도 있지만, 때로는 성경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또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만나 식사하던 중 영적 체험을 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불현듯 성령 체험을 하고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 병 고침과 예언, 영 분별과 방언, 통역과 같은 은사를 허락하심으로써 나타나기도 하고,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허락하시며 임재하기도 합니다. 즉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강력하게 방언이나 통역, 예언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동시에 조용하고 잠잠하게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온유, 절제 등으로, 또 인격으로 임하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모습은 기도할 때 극적으로 경험되기도 하며,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잔잔하게 경험되기도 합니다. 찬송할 때 뜨겁게 경험되기도 하고, 찬송가 가사를 읽어 내려가던 중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오기도 합니다.
성령 임재와 관련해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성령 임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제한하려는 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다른 모양으로, 다른 육체로, 다른 속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성향과 기질에 맞게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극적이고 열광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을 허락하실 수도 있고,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을 경험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광적인 성령 체험만을 얻기 위해, 마치 그것만이 해답인 것처럼 열등감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헤맬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극적인 경험이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또한 극적인 경험은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령 임재 또는 성령 강림 체험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예수님은 성령 체험을 하신 후 광야로 인도되셨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며,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성령 강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 강림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예수님의 세례 현장에서 벌어진, 즉 예수께 성령이 임재하던 그 현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또 다른 성령 임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과 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가복음 1:12)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좋은 게 아닙니까? 성령을 받으면 행복해지고, 풍성해지고, 능력이 많아지고, 못할 것이 없어지고, 아무런 부러움이 없을 만큼 좋아지는 상태가 성령의 임재 아니겠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이란 그런 게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성령 충만을 경험한 예수를 성령께서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누가복음 4:1)
예수님이 성령께 이끌려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셨다고 말씀합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성령을 체험하신 장면에서는 특별하거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시고 방언을 하셨다거나, 예언을 하셨다거나, 새로운 능력이 주어졌다는 말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의 성령 사건과 예수님의 능력을 결부시키지 않고 있다란 사실입니다. 도리어 성령 체험 이후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내몰리셨다고 증언합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사탄의 시험대 앞에 섰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모든 것의 완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권능이나 능력의 쟁취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 임재는 또 다른 곳으로의 인도였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광야’입니다. 예수님의 성령 체험은 한마디로 사탄의 시험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를 위해 성령께서 임재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9~10)
사도행전과 비슷하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성령이 예수께 임재할 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증언합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의 내용이 사도행전과 사뭇 다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하늘의 아버지이신 성부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1)
사도행전에서의 성령 임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마가복음에서 성령 임재는,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한 곳에서는 ‘증언’으로, 한 곳에서는 ‘들음’으로 성령 임재가 다르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부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곧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하나님의 큰 기쁨을 받은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에 나타난 성령 임재의 모습입니다.
< ‘들음’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저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마음 상해 있던 2007년 어느 날, 저는 새벽기도를 하며 강대상 앞자리에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짧은 시간, 그러나 제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제가 예수님의 무릎 위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잠시 강렬한 빛이 제 눈을 자극했고, 강렬한 빛 너머로 예수님의 음성이 제 마음속으로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저는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그 자리에서 한껏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손길은 따뜻했고, 제 마음은 한없이 평안해졌습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그렇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의 말로, 잔잔한 언어로, 조용한 음성 가운데 다가오셨습니다.
들음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음으로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성부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감탄사를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다.”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태어난 존재가 자신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내 마음은 기뻐 뛰놉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또한 잠시였습니다. 성령님이 곧바로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적인 엑스터시(ecstasy)에 매몰되게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십니다. 그리곤 극한의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나의 기뻐하는 자다.”라는 감탄이 무색할 만큼, 성령님은 예수님을 40일간이나 굶깁니다. 그를 배고프게 했고, 기진맥진하게 했으며, 인간의 모든 나약함이 드러나게 하신 후 사탄 앞에 세워놓으십니다. 성령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사탄은 돌로 떡이 되게 하라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신비한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지만,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기에 단호히 그 유혹을 말씀으로 거절하십니다. 사탄은 또다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허락하겠다고 유혹합니다. 이때도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결의를 다지며, 사탄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며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이 광야에서의 시험이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며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존재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누구를 경배하며 살 것인가? 앞으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를 결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입니다.
< 성령은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
우리는 종종 성령께서 이와 같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령님의 임재, 성령님의 강림을 광야에서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너는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다.”라는 음성을 마음에 새겨 주시고는,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지, 나를 정말 기뻐하시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 뒤 곧장 우리를 광야로 이끄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성령은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40일간 금식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셨으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모든 힘이 빠지며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는 자리로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깊은 슬픔의 자리에까지 들어서게 하시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케 하시고, 심한 영혼의 갈증으로 목마르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 그러하셨듯이, 성령은 사탄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사탄은 온갖 유혹을 하며 우리를 쓰러뜨리고자 합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약 나에게 절하면 모든 것들을 주리라. 하나님을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의지하라.”라며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배는 고프고, 지쳐 있으며, 광야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 광야의 자리에서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그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양식으로 살 것인가? 빵으로 살 것인가? 세상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권력을 얻기 위해 살 것인가? 유명해지기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어떻게 고백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고민과 결단을 광야에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또 힘들 때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을 결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믿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을 따라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께 경배해야지.’ 바로 이 결단의 순간, 이 결단의 시간, 바로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 체험 과정에서 드러난 성령님은 어떠한 능력을 부여하시는 분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후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이 말씀에 따르면, 성령님은 예수님을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눌린 자에 보내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가셨고, 이제 다시 가난한 자에게 보내시며, 포로 된 자, 그리고 눌린 자에게 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의 강림을 하나님의 능력과 힘과 관련해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권능을 받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꿈을 꿀 때가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근거로, 성령을 하나님의 권능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그러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을 괄호로 묶고 읽어 봅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유대로 보내시며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고, 갈릴리와 애굽,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포로 된 자, 가난한 자, 눌린 자에게 보내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 광야 같은 삶의 자리에서도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
지난 주간에 잠시 모스크바에 다녀왔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이는 선교대회에 참석하며 은혜의 말씀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50여 명의 선교사님들과 부부 및 자녀들이 함께했습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신 지 20년, 30년, 40년은 돼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처음 그곳에 가셨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 하나님을 만나는 극적인 체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던 그때처럼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 내가 기뻐하는 자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제가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간 곳은 광야였고, 예루살렘이었으며, 땅끝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사역하신 지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분들은 화려한 옷을 입지 않고 있었고,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삶이 참으로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는 것,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걱정과 여러 염려가 몰려왔을 것입니다. 배우자 중 약 80%가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병에 노출돼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은혜도 누렸습니다. 그분들이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 광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눈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는 주님 앞에서 주님의 종으로서, 돌이 떡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나는 사탄을 경배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따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지켜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바로 성령이 함께하시는 자리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강력한 능력으로, 강력한 소리로만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그럴 수 있으나, 고난의 자리, 광야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탱해 나가는 자리, 그 험난한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만 성령의 체험을 구하지 마십시오. 예배 현장에서만 성령의 임재를 구하지 마십시오. 뜨거운 찬양 가운데서만 성령의 임재를 찾지 마십시오. 힘들게 살아내는 광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그 자리에,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그 자리에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유대 땅에도 계시고, 예루살렘에도 계시고, 땅끝에도 계시는 성령님. 포로 된 자와 함께하시며,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눌린 자들과도 함께하시는 성령님. 그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 귀중한 성령님, 고난의 현장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함께하시는 그 성령님을 우리의 영의 눈을 떠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9년 6월 29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광야로 이끄시는 성령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190장, 18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막 1:9-13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6월 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여 주신 선물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최초의 성령강림사건을 전하는 사도행전 2:1-4절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극적인 성령체험이 없는 신앙생활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임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성령님은 병 고침, 예언, 영분별, 방언, 통역 등의 은사로, 혹은 성령의 9가지 열매(갈5:22-23절)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임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세례현장에 나타난 성령의 임재에 관한 내용으로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1:12)고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능력이나, 감정적인 뜨거운 경험 혹은 영적인 체험보다 광야의 굶주림과 유혹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체험은 한마디로 사탄의 시험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령 임재는 성령을 받는 사람들이 각기 방언으로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마가복음의 예수님의 성령임재는 예수님을 향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임재가운데서 성부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나가셨으며, 사십 일간 굶기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사탄 안에 세우시고, 그가 하나님의 일을 결단하고 삶을 드릴 수 있도록 역사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님께서 이와 같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 성령의 강림을 광야에서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령강림을 능력과 힘에 관련하여 생각했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에 나오는 권능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를 예루살렘으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경배하며, 그 분을 온전하게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성령강림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의 다락방에서만 성령의 체험만을 구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예배 안에서만 성령의 임재만을 구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내는 광야에도 계시며, 예루살렘과 유대, 땅 끝에도 계십니다. 포로 된 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눌린 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하신 능력이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 가운데 자기장처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나누기
1.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내가 발견한) 성령의 은사, 열매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2.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성령의 임재, 성령의 강림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삶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서로를 축복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 속에서 평화를 누리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속에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보고 느끼고 알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