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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기도와 믿음의 공동체

사도행전 12:1~12

박경수 목사

2024.04.21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복과 고난이 모두 있습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을 아시고 또 가끔 사용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이 새옹의 말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새옹은 ‘변방의 노인’이라는 뜻이니 새옹지마는 ‘인생의 모든 일이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의 말과 같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중국의 고전인 『회남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

중국 국경의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좋은 말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마을 사람들이 여러 말로 위로했습니다. 그때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며 태연히 말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정말 가출한 말이 이웃 나라의 명마를 친구 삼아 돌아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자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명마를 타다가 그만 낙마해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정말 이 일은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오랑캐의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대부분 죽거나 다치게 되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의 장애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일은 변방에 사는 이 노인의 말과 같다’라는 의미에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앞일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기쁘고 좋은 일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까지 잊어버리고 기뻐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기쁨이 도리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혹 여러분 중에 어려운 고난 중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고난이 변하여 도리어 유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인생만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나는 나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좋다고 너무 들뜰 필요도 없고 힘들다고 너무 죽을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같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실 마음으로는 형통한 날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곤고한 날도 주신다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좋은 날에 기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어려울 때에 진짜 친구를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울 때, 고난의 때에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초대 교회에도 고난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 12:1)

 

“그 때에”라고 말하는 ‘때’는 어떤 때입니까? 초대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확장되어 갈 그때에 또 한 차례의 폭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의 때가 찾아 온 것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이 잘 되는 것,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고 시샘하는 아주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한 차례의 폭풍과 고난의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헤롯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41-44년 통치)입니다. 성경에 헤롯이라는 인물이 많이 나와서 어떤 헤롯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헤롯 가문은 사람 안 될 집안으로 유명한 가문입니다. 이 사람의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날 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 있는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죽인 살인마였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 헤롯 안디바는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사람인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이유도 가관입니다(마14, 막6). 헤롯 안디바가 자기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해서 세례 요한이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엄히 비판하자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즐거워서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마.”고 약속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와 의논한 후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 같으면 “떽!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나무랐겠지만 헤롯 안디바는 “오냐, 원하면 그렇게 해 주마.” 하고 세례 요한을 죽여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헤롯 안디바를 가리켜서 ‘여우’ 같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3:32).

이제 그 할아버지에 그 아버지를 본받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주후 44년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고보를 죽입니다. 생전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예수님의 보좌 우편과 좌편에 앉히기 위하여 치맛바람까지 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야고보는 12제자 중 최초로 순교함으로써 그렇게 원하던 예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롯당의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우매한 군중심리가 합쳐져서 박해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교회의 대표 격인 베드로까지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때는 무교절(유월절)이라 처형을 할 수 없어서 무교절 기간 동안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5장에서 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여호와의 사자의 도움으로 탈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철통경비를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본문 4절의 말씀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 12:4)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켰다고 말합니다. 4명씩으로 구성된 4개의 팀이 돌아가면서 베드로를 감시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본문 6절을 보면 더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 12:6)

 

2명은 베드로와 함께 수갑을 차고 늘 함께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세 명이 같이 가고, 잘 때에도 같이 자야만 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옥 밖에서 옥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면 베드로도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받은 축복이자 가장 큰 무기는 기도입니다.>

 

과연 이 절체절명의 순간 교회와 베드로는 어떻게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5절과 12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 12:5)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행 12:12)

 

먼저,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참 멋지고 부러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이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로 돕는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도 그래왔겠지만 앞으로 더욱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거룩한 백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야! 기도하면 떡이 생기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예, 기도하면 떡이 대수입니까. 더 엄청난 일도 일어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도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신앙에 힘이 없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의 체험을 가진 사람은 확신과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위기의 순간 교회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5절). 형식적인 기도, 어쩌다가 식사 때나 하는 기도와 간절한 기도는 천지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환도뼈가 위골되는 것도 감수하면서 악착같이 매달렸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파묻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의 기도가 무조건 베드로를 살려 달라는 기도였다기보다는 베드로가 어려운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고 순교의 순간에라도 의연히 이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무조건 어려운 일은 없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의 약속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에베소서의 약속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채워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초대 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또다시 살려 보내 주셨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와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과,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본문 8~9절의 말씀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행 12:8~9a)

 

본문에서 보듯이 수갑을 푸는 것과 쇠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베드로가 했듯이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걸어 나가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어려운 일, 힘든 상황 속에 계신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여러분의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는 하나님께 철저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으로 채워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확실히 믿으며 주님께서 하실 일을 고대해야 합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 오늘 본문이 말합니까? 이번에는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한 번 볼까요? 본문 6절입니다.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행 12:6b)

 

베드로는 옥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처형당할 사람이 양손에 쇠사슬까지 묶여서 옥 안에서 태연히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본문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주의 사자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만큼 깊이 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행 12:7b)

 

이것이 무슨 배짱입니까? 내일이면 사형당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천하태평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과거의 베드로였다면 어림없었겠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베드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채 편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시편 127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2b)

 

이 말씀은 설교 시간에 졸면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때에 사용할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잠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걱정 중 90%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한 걱정입니다. 저만 해도 이번 주에 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벌써부터 부담이 됩니다. 물론 계획하고 일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공연한 걱정과 염려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벌써 대학 보낼 걱정까지 합니다. 이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하나님께 맡기면 어떤 어려운 때에도 마음에 여유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염려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가는 길을 선한 목자 되시는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미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표어가 있습니다. ‘맡길 때는 과감히, 믿을 때는 확실히.’ 한번 따라서 해 보실까요? ‘맡길 때는 과감히, 믿을 때는 확실히.’ 베드로는 이후에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다 주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철저히 신뢰하며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십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고난을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것이 나를 성숙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고난은 한 사람을 깊이 있게 만드는 신비한 약과 같습니다. 고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은 생각과 마음이, 인격과 영성이 깊어지게 됩니다. 이럴 때에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난은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 가는 하나님의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로마서 5:3~4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일구어 내십니다.

고난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우리는 성숙이라는 땅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고난은 비록 아프기는 하지만 나를 깊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시키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두셨다고 말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서 인생이라는 옷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닥쳤을 때 오히려 그 날들을 깨닫는 기회로,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조지 마테슨(George Matheson, 1842-1906)은 스코틀랜드(글래스고 출신)의 유명한 목회자요 찬송시 작사자입니다. 그는 20살에 갑자기 실명하였습니다. 약혼녀도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그는 학자로, 목회자로,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베어드 강연자, 기포드 강연자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도 詩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는 나의 가시에 대하여 결코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장미꽃에 대해서는 수 천 번이나 감사하였지만

주님이 나에게 지워 준 십자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하다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나의 인생 항로를 완성하신 사랑의 주님이시여!

이제 저에게 이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하면 나의 눈물이 무지개 됨을 알겠나이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모두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시에 대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인해서 고난의 순간에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0)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합니다. 좋은 일, 기쁜 일에는 당연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 힘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는 복된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모든 날, 모든 시간, 모든 때를 간절한 기도와 신실한 믿음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귀한 소망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The Church, A Community of Prayer and Faith

 

Acts 12:1-12

 

“Sae-ong-ji-ma” is a well-known and often used Korean saying that comes from a Chinese idiom. It meansbad things may turn out to be a blessing in disguise. The literal meaning, however, is this: life is like what happened to the horse of an old man who lived near the border. This Chinese idiom originates fromHuainanzi, an ancient Chinese text. One day, the horse of an old man living near the border of Chinawandered across the border and went into a foreign land. His neighbors consoled the old man, but he said nonchalantly, “Who knows? This may turn out to be a blessing.” True to his words, the horse came back with several magnificent stallions from the foreign land. When his neighbors congratulated the old man, he answered, “Who knows? This may be the cause of a misfortune.” One day, his son who loved horse-riding fell off one of the stallions and broke his leg. His neighbors comforted him again, to which he answered nonchalantly, “Who knows? This may turn out to be a blessing.” The accident did turn out to be a blessing. When a war broke out, all able-bodied men were conscripted into the army, leaving most of them dead or disabled; but the old man’s son who was exempt from the service due to his broken leg lived happily with his father, taking good care of him. From then on, people used the idiom “Sae-ong-ji-ma,”to refer to“a blessing in disguise.”Indeed, we cannot know what life has in store for us.

 

Are there people here who have met a fortune? Rejoice. But don’t rejoice to the point of forgetting God. Who knows if that God-less joy will become a misfortune? Are there people here who are going through suffering? Don’t despair or be discouraged, as if God did not exist. If God is with you, who knows if that affliction will end up benefitting you? A Christian is a person who confesses that everything in life is in God’s hands. The author of Ecclesiastes realized this fact very clearly. In Ecclesiastes 7:14 he writes, “When times are good, be happy; but when times are bad, consider: God has made the one as well as the other. Therefore, a man cannot discover anything about his future.”What we clearly realize from these words is that we cannot know our future. Only God does. There is no need to get overly excited about good things; neither should we despair and act as if the world has come to an end when trouble comes. This is because God has made both the good days and the bad. If there is an uphill, there will be a downhill; wherethere is a mountain, there is a valley. As such, God has created both good times and bad times.

 

But in our hearts, we wish only for the good days. But what have we to say when God saysthat He will give us thebad days too? Rejoicing in good times is easy. But accepting and overcoming bad times is hard. There is a saying:“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How true. Likewise, a Christian in need exposes whether he is a Christian indeed. One’s faith is displayed depending on how he/she faces and overcomes times of trouble. The true Christian is the person who can change pain into a pathway of God’s blessing.

 

Today’s text starts with “It was about this time that…”(Acts 12:1) At around that time, King Herod arrested some Christians, intending to persecute them. When was this time? It was when the church was growing and expanding. But a storm struck. Tribulations came at this time. Satan tends to attack Christians and the church when they are doing well because he cannot stand their success. This time the enemy started to persecute the church and Christians through a man called Herod. This was Herod Agrippa who ruled over Judea between AD 41-44. Herod Agrippa’s family was notorious for its ruthless people. Herod the Great, Herod Agrippa’s grandfather, was a brutal murderer who ordered the killings of all boys under the age of two in Bethlehem in order to kill baby Jesus. Herod Agrippa’s father, Herod Antipas, was the man whobeheaded John the Baptist, “the greatest among those born of women.”His reason for doing so is appalling (Matthew 14, Mark 6). He puts John in prison for criticizing him aboutmarryingHerodias, the wife of his brother, Philip. When Herodias’ daughter, Salome, dancesbeautifully on his birthday, pleasing him greatly, he promises to give her whatever she asks. After consulting with her mother, Salome asks for the head of Johnthe Baptist on a platter. A sound person wouldhave replied angrily, “What? That is out of the question.” But Herod Antipas replies, “Yes, if that is what you want,”orders the execution of John, and delivers his head on a platter. Jesus calls Herod Antipas “that fox” in Luke (Luke 13:32).

 

Now in AD 44 Herod Agrippa, who takes after his grandfather, kills one of the twelve disciples, James. Do you remember how the mother of James and John asks Jesus to seat her two sons on His right side and His left side when He becomes king? Becoming the first martyr among the Twelve, James does come to sit on the right side of Jesus. When the zeal of the religious leaders of the Sanhedrin and the political leaders of the Herodians merged with a foolish mob psychology, the persecution against Christinas got worse.Eventually, Peter, the de facto leader of the church, got arrested and jailed. But since it was during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the authorities could not execute him. Peter received ironclad security because, as Acts 5 tells us, he had once already escaped from jail withthe help of an angel.In Acts 12:4 it says that he was “guarded by four squads of four soldiers each.” Four teams, each made up of four soldiers, guarded Peter taking turns. As if this were not enough, verse 6 describesthat Peter was chained and two soldiers were placed next to him at all times. The two guards followed Peter to thetoilet and were next to him even when he slept. The other two soldiers stood guard outside the cell. Escape was out of the question. And tomorrow Peter would finally be executed. Only death remained. If you were in such a situation, what would you have done? What does the Bible say Peter and the church did at this critical moment?

 

First the Bible says that the church “was earnestly praying.” In verse 12 it says that “many people had gathered and were praying.”What a beautiful relationship between pastor and flock! They prayed earnestly for each other. Do you have someone who earnestly prays for you? Nothing is more powerful than a fellow Christian supporting you with prayer. Dear Church, I hope that you will pray more earnestly for each other, becoming intercessors for your fellow Christians—as you have done till now. Pastors must pray for their flock; and the congregation must pray for their pastors. Christians must pray for each other; a church must become a community of God’s holy people. Unbelievers might say, “Praying does not give you bread!” But no. Bread is nothing compared to the tremendous things prayer produces. The Christian who does not believe in the power of prayer is not a true Christian. The faith of a Christian who has not experienced the power of prayer is powerless and unsure. But the Christian who has experienced answered prayer is full of hope andconfidence.

 

Today’s text tells us that the church “was praying earnestly” in a time of crisis.Earnest prayer is nothing likeprayer as a mere formality or perfunctory mealtime prayers. The Bible says that when Jesus prayed, His sweat became like drops of blood. When Jacob prayed by the Jabbok, he wrestled with an angel to the point of dislocating his hip. When Elijah prayed, he dug his head between his two knees. May you believethat an earnest prayer not only changes the man who prays but possesses the power to move the heart of God. I believe that when thechurch prayed for Peter, it did not justask God to save his life no matter what, but prayed that God would protect his faith under severe tribulation and that he would be able to face martyrdom with courage. Our prayers, too, must be like this: we ought not to pray that God will eliminate all difficulties in life, but should pray that we will be able to trust God in all circumstances and that He will give us the courage to overcome difficulties. At the same time, we must believe thatGod is He who is“able to do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as promised in Ephesians 3:20. God is a good Father who gives us immeasurably more than what we ask for. As His answer to the church’s earnest prayer, God saved Peter again and set him free.

 

To pray and to leave everything up to God does not mean that we stand idle, doing nothing. In times of difficulty and trouble, do your utmost. But entrust God with the final outcome and the things you cannot do.As we can see in verses 8-9 of today’s passage, we ought to leave it up to God to break the chains and open the iron cell doors, but it is we who must put on our clothes and sandals and walk out of the prison. Are there people here today going through difficulty and hardship? When you are facing troubles, I hope you will remember this: prayer is your powerful weapon. Do what you can and leave the results to God completely. Our God is a good God who gives us immeasurably more than all we ask or imagine.

 

Then what did Peter do? Verse 6 says that Peter was fast asleep between the two soldiers. The fact that a man, in prison and in chains, who would be executed in 24 hours, was fast asleep should not be glossed over. Verse 7 describes that an angel had to strike Peter on the side to wake him up. Where does this audacity come from? How can a dead man walking have so much peace? This would have been impossible for the Peter of the past, but the Peter who met the risen Lord could cast everything on God and rest peacefully. Psalm 127:2 sings, “he grants sleep to those he loves.” These words must be applied not to people dozing during service, but to situations such as Peter’s. God gave Peter a deep sleep. Today we have too many worries. But 90% of them are about things of the future, events that haven’t even happened. My heart is already heavy as I think about all the things I have to do this week. Plans and preparations are necessary, of course, but unnecessary worry and anxiety are not just useless but harmful. You worry about sending your kidsto college from when they are in primary school. This is precisely why Jesus said,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Matthew 6:34)

 

When you cast everything on God, peace and calm are restored in our hearts, even in the most difficult situations. We have rest. Our environment is not the problem; our faith is. Romans 8:28 states,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Do you believe these words? If you do, why do you worry? May you believe that God, our good Shepherd, guides your way. God is trustworthy and faithful. We must remember this slogan: “Be bold when you leave things up to God. Believe with certainty.” Shall we shout it out together? Peter later teaches us the following. In 1 Peter 5:7, he says,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May you cast everything on Him. Then our Lord will take care of us.

 

When Christians go through difficulties, they must consider whether their hardship is God’s will to make them grow. Trials are like a magical potion that matures a man. A man who has experienced andovercome suffering becomes more mature in terms of his thoughts, heart, character, and spirituality. In such cases, suffering is God’s blessing. Suffering may be God’s tool thatmolds us into more mature beings.As Romans 5:3-4 says, God creates perseverance through suffering, character through perseverance, and hope through perseverance. Unless we cross the river of suffering, we cannot reach the land of maturity. Suffering is painful, but it is a blessing that makes us mature asmenand women of God.

 

God says that He has made good times as well as bad times. Life is like a fabric woven with the warp and weft of good times and bad times. The man who uses bad times as an opportunity to grow and to consider is a truly blessed man. He is a true Christian.

 

George Matheson (1842-1906) was a famous minister and hymn writer of Scotland. He suddenly became blind at the age of 20. His fiancée left him. But even in such trials, he did his utmost as a scholar, minister, and spiritual leader; he was also appointed Baird lecturer and Gifford lecturer. The following is one of his poems:

 

My God,

I have never thanked You for my thorn.

I have thanked You a thousand times for my roses,

but not once for my thorn.

I have been looking forward to a world

where I shall get compensation for my cross;

but I have never thought of my cross as itself a present glory.

Teach me the glory of my cross;

Teach me the value of my thorn.

Show me that I have climbed to You by the path of pain.

Show me that my tears have made my rainbows.

(George Matheson)

 

I hope that this will be the prayer of us all. Will we truly be able to thank God for the thorns, the cross we have to bear? Will we be able to give thanks even in times of suffering? Paul says in Ephesians 5:20, “Alway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for everything,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Everythingmeanseverything. We give thanks in good, happy times. But I earnestly hope that even in times of trials and suffering, we will be able to give thanks for Jesus Christ, by His grace, in His name. In particular, if you are going through trials that others do not know about, I pray that your suffering may become a blessed opportunity to experience God’s grace and comfort. May all of you at Somang Church be more than conquerors, overcoming all seasons and times with earnest prayers and a strong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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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1~1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복과 고난이 모두 있습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을 아시고 또 가끔 사용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이 새옹의 말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새옹은 ‘변방의 노인’이라는 뜻이니 새옹지마는 ‘인생의 모든 일이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의 말과 같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중국의 고전인 『회남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

중국 국경의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좋은 말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마을 사람들이 여러 말로 위로했습니다. 그때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며 태연히 말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정말 가출한 말이 이웃 나라의 명마를 친구 삼아 돌아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자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명마를 타다가 그만 낙마해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정말 이 일은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오랑캐의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대부분 죽거나 다치게 되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의 장애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일은 변방에 사는 이 노인의 말과 같다’라는 의미에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앞일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기쁘고 좋은 일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까지 잊어버리고 기뻐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기쁨이 도리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혹 여러분 중에 어려운 고난 중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고난이 변하여 도리어 유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인생만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나는 나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좋다고 너무 들뜰 필요도 없고 힘들다고 너무 죽을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같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실 마음으로는 형통한 날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곤고한 날도 주신다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좋은 날에 기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어려울 때에 진짜 친구를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울 때, 고난의 때에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초대 교회에도 고난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 12:1)

 

“그 때에”라고 말하는 ‘때’는 어떤 때입니까? 초대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확장되어 갈 그때에 또 한 차례의 폭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의 때가 찾아 온 것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이 잘 되는 것,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고 시샘하는 아주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한 차례의 폭풍과 고난의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헤롯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41-44년 통치)입니다. 성경에 헤롯이라는 인물이 많이 나와서 어떤 헤롯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헤롯 가문은 사람 안 될 집안으로 유명한 가문입니다. 이 사람의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날 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 있는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죽인 살인마였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 헤롯 안디바는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사람인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이유도 가관입니다(마14, 막6). 헤롯 안디바가 자기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해서 세례 요한이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엄히 비판하자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즐거워서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마.”고 약속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와 의논한 후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 같으면 “떽!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나무랐겠지만 헤롯 안디바는 “오냐, 원하면 그렇게 해 주마.” 하고 세례 요한을 죽여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헤롯 안디바를 가리켜서 ‘여우’ 같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3:32).

이제 그 할아버지에 그 아버지를 본받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주후 44년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고보를 죽입니다. 생전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예수님의 보좌 우편과 좌편에 앉히기 위하여 치맛바람까지 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야고보는 12제자 중 최초로 순교함으로써 그렇게 원하던 예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롯당의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우매한 군중심리가 합쳐져서 박해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교회의 대표 격인 베드로까지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때는 무교절(유월절)이라 처형을 할 수 없어서 무교절 기간 동안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 5장에서 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여호와의 사자의 도움으로 탈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철통경비를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본문 4절의 말씀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 12:4)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켰다고 말합니다. 4명씩으로 구성된 4개의 팀이 돌아가면서 베드로를 감시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본문 6절을 보면 더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 12:6)

 

2명은 베드로와 함께 수갑을 차고 늘 함께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세 명이 같이 가고, 잘 때에도 같이 자야만 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옥 밖에서 옥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탈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면 베드로도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받은 축복이자 가장 큰 무기는 기도입니다.>

 

과연 이 절체절명의 순간 교회와 베드로는 어떻게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5절과 12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 12:5)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행 12:12)

 

먼저,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참 멋지고 부러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이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로 돕는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도 그래왔겠지만 앞으로 더욱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거룩한 백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야! 기도하면 떡이 생기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예, 기도하면 떡이 대수입니까. 더 엄청난 일도 일어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도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신앙에 힘이 없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의 체험을 가진 사람은 확신과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위기의 순간 교회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5절). 형식적인 기도, 어쩌다가 식사 때나 하는 기도와 간절한 기도는 천지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 환도뼈가 위골되는 것도 감수하면서 악착같이 매달렸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파묻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의 기도가 무조건 베드로를 살려 달라는 기도였다기보다는 베드로가 어려운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고 순교의 순간에라도 의연히 이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무조건 어려운 일은 없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의 약속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에베소서의 약속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채워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초대 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또다시 살려 보내 주셨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와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과,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본문 8~9절의 말씀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행 12:8~9a)

 

본문에서 보듯이 수갑을 푸는 것과 쇠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베드로가 했듯이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걸어 나가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어려운 일, 힘든 상황 속에 계신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여러분의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는 하나님께 철저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으로 채워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확실히 믿으며 주님께서 하실 일을 고대해야 합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 오늘 본문이 말합니까? 이번에는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한 번 볼까요? 본문 6절입니다.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행 12:6b)

 

베드로는 옥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처형당할 사람이 양손에 쇠사슬까지 묶여서 옥 안에서 태연히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본문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주의 사자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만큼 깊이 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행 12:7b)

 

이것이 무슨 배짱입니까? 내일이면 사형당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천하태평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과거의 베드로였다면 어림없었겠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베드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채 편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시편 127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2b)

 

이 말씀은 설교 시간에 졸면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때에 사용할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잠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걱정 중 90%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한 걱정입니다. 저만 해도 이번 주에 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벌써부터 부담이 됩니다. 물론 계획하고 일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공연한 걱정과 염려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벌써 대학 보낼 걱정까지 합니다. 이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하나님께 맡기면 어떤 어려운 때에도 마음에 여유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염려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가는 길을 선한 목자 되시는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미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표어가 있습니다. ‘맡길 때는 과감히, 믿을 때는 확실히.’ 한번 따라서 해 보실까요? ‘맡길 때는 과감히, 믿을 때는 확실히.’ 베드로는 이후에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다 주께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철저히 신뢰하며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십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고난을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것이 나를 성숙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고난은 한 사람을 깊이 있게 만드는 신비한 약과 같습니다. 고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은 생각과 마음이, 인격과 영성이 깊어지게 됩니다. 이럴 때에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난은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 가는 하나님의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로마서 5:3~4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일구어 내십니다.

고난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우리는 성숙이라는 땅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고난은 비록 아프기는 하지만 나를 깊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시키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함께 두셨다고 말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서 인생이라는 옷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닥쳤을 때 오히려 그 날들을 깨닫는 기회로,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조지 마테슨(George Matheson, 1842-1906)은 스코틀랜드(글래스고 출신)의 유명한 목회자요 찬송시 작사자입니다. 그는 20살에 갑자기 실명하였습니다. 약혼녀도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그는 학자로, 목회자로,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베어드 강연자, 기포드 강연자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도 詩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는 나의 가시에 대하여 결코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장미꽃에 대해서는 수 천 번이나 감사하였지만

주님이 나에게 지워 준 십자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하다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나의 인생 항로를 완성하신 사랑의 주님이시여!

이제 저에게 이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하면 나의 눈물이 무지개 됨을 알겠나이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모두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시에 대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인해서 고난의 순간에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0)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합니다. 좋은 일, 기쁜 일에는 당연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 힘든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는 복된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모든 날, 모든 시간, 모든 때를 간절한 기도와 신실한 믿음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귀한 소망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2024년 4월 21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교회, 기도와 믿음의 공동체” (행 12장 1~12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61장, 382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행 12장 1~12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4월 2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인생지사 새옹지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앞일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그리스도인은 인생만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쁘고 좋은 일을 만나면 기뻐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까지 잊어버리고 기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고난 중에 있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그 때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확장되어 갈 그 때에 또 한 차례의 폭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의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교회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와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수갑을 푸는 것과 쇠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베드로가 했듯이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걸어 나가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결과는 하나님께 철저히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감옥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양손에 쇠사슬까지 묶여서 옥 안에서 태연히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큰 배짱이고 천하태평의 마음입니다. 과거의 베드로였다면 어림없었겠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된 베드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채 편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계획하고 일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공연한 계획과 염려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어떤 어려운 때에도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맡길 때는 과감히, 믿을 때는 확실히.’ 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나누기

 

  1.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시에 대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 당했을 그 때에 환난을 통해 인내를,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일구어 내시는 주님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어려운 일은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곤고한 날이 닥쳤을 때, 오히려 그 날들을 깨닫는 기회로,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복 있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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