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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면류관(Corona Christi)

고린도후서 11: 30 ~ 33

김경진 목사

2022.03.13

<놀랍게도 ‘코로나’(Corona)라는 단어는 로마 시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서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갑니다. 그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게 들려온 단어가 있다면 코로나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코로나 델타, 코로나 오미크론과 같은 여러 이름으로 끊임없이 들어왔죠. ‘코로나’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입니다. ‘Crown’이라는 뜻을 가진, 즉 왕관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에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살펴보니 입자의 표면이 왕관과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보기에는 참 멋진 모양인데 병균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코로나 관련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새벽기도 시간에 잠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로마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말고 말 그대로 왕관으로서 수여되는 여러 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왕관은 왕이 직접 쓰기도 했지만 영웅이나 특별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왕관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로 말씀드리는 관은 코로나 트리움팔리스(Corona triumphalis) 라는 영예로운 관입니다. 이 관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스런 관으로 월계수 잎, 혹은 올리브 잎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관은 코로나 옵시디오날리스(Corona Obsidionalis) 입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영예로운 관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던 중에 적진으로 들어가서 포로된 사람들을 구출한 장군에게 수여된 관이었다고 합니다. 이 관에 사용된 재료가 재미있는데요. 포로에 잡혀갔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가져온 풀들을 짜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코로나 시비카(Corona Civica)라는 관입니다. 이 또한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자 관이었습니다. 참나무 잎으로 만든 관인데 전쟁 중에 시민의 생명을 구한 병사에게 주어졌답니다. 이 관을 받은 사람은 자신과 그의 아버지, 친할아버지까지도 세금을 면제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코로나 무랄리스(Corona Muralis)라는 관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듯이 성벽 모양으로 되어 있는 관이죠. 주로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과거에 어떤 성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성벽을 넘거나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 제일 먼저 성벽을 넘은 사람에게 주어진 관이라고 합니다.
다섯 번째 관은 코로나 발라리스(Corona Vallaris) 입니다. 보시듯이 울타리, 말뚝 모양을 하고 있는 금으로 만든 관입니다. 이 또한 코로나 무랄리스처럼 가장 먼저 적진의 울타리를 넘어선 군인에게 수여되었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로는 코로나 나발리스(Corona Navalis) 관이 있습니다. 이 관은 파도 모양 같기도 하고 배의 돛 같기도 한데, 적의 배에 첫 번째로 오른 사람이 받은 관입니다. 이렇듯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코로나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서 어떤 코로나를 가지고 싶으신가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감염병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안 받으시려고 하겠지만, 로마 시대 관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영예로운 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로마 시대 코로나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합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있는데, 그중 26권 48장을 보면 코로나 무랄리스와 관련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당시 로마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루는 중이었습니다. 기원전 209년, 로마의 젊은 귀족이었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카르타고 노바’(현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르타 헤나)를 공략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카르타고 노바는 대부분의 성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었는데, 스키피오는 썰물 때에 한쪽 벽의 바닥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성벽은 내륙 쪽의 가파른 성벽보다 낮았고 방어 병력도 별로 없었기에 매우 효과적인 공략이었죠.
48장은 이 전쟁에서 승전한 다음 날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스키피오가 승리를 거둔 다음 날, 정규군(legionary troops)과 해군(marines)을 소집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인 성을 손쉽게 얻은 것을 감사했던 제사였죠. 그리고는 함께했던 병사들을 치하하면서 가장 먼저 성벽을 넘은 사람에게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두 사람이 나왔다고 합니다. 4군단의 백인 대장 트레벨리우스와, 해병대에 속한 디기티우스라는 해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먼저 성에 올랐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성에 제일 먼저 올라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서로가 자신이 먼저였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각 부대의 장병들까지 가세하니 패가 나뉘어 팽팽한 싸움이 일어날 지경입니다. 결국 스키피오는 두 사람이 동시에 성벽에 올랐다고 인정하고, 모두에게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록입니다.
이처럼 코로나 무랄리스 관은 누가 가장 먼저 적군의 성벽을 허물었는지 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관을 수여하기 전에 항상 신 앞에서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코로나 무랄리스 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코로나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이 코로나 무랄리스 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그의 고린도후서 강해에서 본문 말씀과 코로나 무랄리스를 잘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인데요.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바울의 고백을 살펴볼 때, 매우 역설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11장 3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31~33)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맹세합니다. 마치 코로나 무랄리스 관을 수여받기 위해서 병사들이 보는 가운데 신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고 나서 뒤따르는 이야기가 “내가 다메섹 성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광주리를 타고 내려왔고, 결국은 도망갔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 만한 내용입니까? 더군다나 자랑할 만한 내용이었을까요?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면 성을 올라가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지금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한 이유를 두고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바울이 로마 시대에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했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도리어 그 내용을 거꾸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면 성을 올라가야 하지요. 제일 먼저 용맹하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신 앞에서 맹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는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며 맹세까지 하고는 도리어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성을 내려갔고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에게서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러웠을까요?
본문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였지만 거짓 교사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자기 자랑하기 바빴고, 자신들만이 옳다는 주장으로 교회가 분열의 양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마저도 배척받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일들을 책망합니다. 그리고는 바울 자신도 자랑의 대열에 합류하며 고백하죠.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고후 11:18)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고후 11:22~23 중)

이렇게 세상적인 자랑에 합류하듯 말하던 사도 바울은 곧바로 태도를 바꾸며 다시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이것이 바울의 맹세이고 자랑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이렇게 요약하기도 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30)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한 후에 그는 다메섹 성을 내려가 도망치던 모습을 말합니다. 도망은 수치이지요. 매를 맞는 일도 수치입니다. 가난한 자처럼 헐벗은 모습은 사람을 초라하게도 만듭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매를 맞은 적이 있으십니까? 그 수치심과 모욕감이 어마어마하다고들 이야기하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자랑합니다. 그 일이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코로나 무랄리스 같은 면류관을 원합니다. 용맹스럽고 영광스럽고 영웅적이며 정복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정복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지배자, 힘쓰는 자, 배부른 자가 되길 원하죠.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과 고통, 배고픔과 배신, 배척과 조롱을 들으면서, 그리고 죄인이 되어 매를 맞고 도망자가 되어 숨어 다니면서도 자랑합니다.

<바울의 역설적인 고백은 진짜 면류관, Corona Christi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5~8)

바울은 코로나 무랄리스를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코로나 크리스티,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기다립니다.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시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예수님은 끝까지 내려가시는 분이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낮아지셔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셨고, 죽음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면류관은 결코 코로나 무랄리스가 아닙니다. 그림에서 보이듯 위대한 성벽을 오르신 분이 아니십니다. 용맹스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쓰신 면류관은 바로 ‘가시 면류관’이었습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막 15:17~19)

조롱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성경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지셔서 조롱받으시며, 참으로 보기 싫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이 땅에 세워지셨습니다. 그 길을 바울이 따랐고, 수많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따랐습니다.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는 초대 교회 교인들이 경험한 혹독한 박해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로마의 고문은 혹독했다. 더러는 조개껍질이나 쇠갈고리로 온 몸이 토막 났고, 어떤 경건한 처녀들은 검투사나 포주에게 넘겨져 욕을 당했다. 227명의 회심자들이 달궈진 쇠로 한쪽 다리를 절단당하고, 한쪽 눈을 후벼 패인 채 광산으로 보내졌다는 내용도 있다. 또 더러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불에 몇 시간 동안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었고, 더러는 사지가 갈가리 찢기고, 혹은 펄펄 끓는 납 용액을 뒤집어쓰고 죽었으며, 더러는 소금과 식초에 절궈져 고문대에서 피 흘리며 죽었다(93) …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51)._필립 샤프,『니케아 이전의 기독교』중에서

그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 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가진 진리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진리를 믿었기에, 진리를 알았기에, 그들은 죄인처럼 대우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잔혹한 죄를 지은 사람보다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면류관, Corona Christi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 1:12)

그들은 분명 생명의 면류관, 그리스도의 면류관, 코로나 크리스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면류관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트리움 팔리스도, 시비카도, 무랄리스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가시관입니다. 주님은 이 가시 면류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진정 내려가고 가난해지는 자가 나에게는 진짜 영웅이다. 나와 같이 가시관을 쓰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자가 참된 영웅이다. 내가 그를 기뻐할 것이다.”
지난주에 대선이 있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그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올라가고 정복하고 부수는 영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내려가고 낮아지고 더 내려가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런 자리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 나오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읽어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지역 주민들과 사뭇 다르게 단정하다. 고향에 살면서도 나그네처럼 산다. 시민의 의무는 다하면서도 외국인으로서 수모를 겪는다. 타향이 고향이고, 고향이 타향이다. … 가진 게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넉넉하다. 비난을 받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상모략을 당하지만 무고하다. 저주를 당하면서도 축복한다. 조롱을 당하면서도 존경을 한다. 선을 행하면서도 범죄자처럼 처형을 당한다. 처형을 당할지라도 다시 살 것을 생각하고서 기뻐한다._<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중에서

이것이 바로 Corona Christi,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공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Corona Christi

2Corinthians 11: 30-33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corona” has become a very familiar word. For the past two years the coronavirus has forced us to live a completely different way of life. Corona, a Latin word, means crown. Covid-19 gets its name from the shape of the virus whose edgeslook like a crown under a microscope.

I want to talk more about corona (or crown) today.

The Romans had many types of coronas. The primary one was, of course, that of the king, but various crowns of honor awarded to ordinary people by the king were also called “coronas.”

One of them was the “corona triumphalis”, a crown of the highest honor awarded to a general who returned home after a great victory. This crown was made of olive leaves.

Second, there was the “corona obsidionalis,” a crown given to soldiers who went into enemy territory and saved prisoners of war. This crown was especially made from the leaves taken from where the prisoners were captured.

The third crown of honor was the “corona civica.”This was a crown made from oak leaves awarded to soldiers who saved the lives of citizens during war. History records that the recipient of this crown, his father, and his grandfather were exempt from taxes.

Fourth, there was the “corona muralis,”a crown made of gold which looked like castle walls. This was given to a valiant person who first scaled the enemy’s wallsfor in ancient times a castle or a city could only be defeated by either climbing over its walls or destroying the gates.

Fifth, there was the “corona vallaris,” a gold crown which looked like a fence or a stake. Like the corona muralis, this was given to a soldier who first climbed over the enemy’s fence.

Sixth, there was the “corona navalis.” This crown looked like a wave or a ship’s sail. It was given to a person who first boarded an enemy ship during battle.

As such, there were many types of coronas in Rome.

Titus Livius wrote about the corona muralis in his book, “The History of Rome,” Book 26 Chapter 48. At the time, Rome was engaged in the Second Punic War (218-202 BC). In 209 BC Publius Cornelius Scipio, a young Roman aristocrat, attacked New Carthage (modern Cartagena, a port city in Spain).

Most of New Carthage’s walls were adjacent to the sea, which made it a fortress blessed with natural barriers for defense, but Scipio discovered that at low tide the seabed of one part of the walls became dry. Furthermore, that wall wasnot only lower than the other walls facing land but also less heavily armed. So scaling that part of the wall was an extremely effective plan.

Chapter 48 tells the story about what happened the day after Rome defeated New Carthage. The day after his victory, Scipio gathered all the legionary troops and marines to worship and thank the gods for his victory over Spain’s most prosperous city and for giving him allthe riches of the land including Africa. As he commended his men, he proclaimed that the coronal muralis would be awarded to the man who first went over the walls. Two men, the centurion Trebellius and the marine Digitius came forward. Both claimed they were the first to scale the walls of New Carthage, and even their men came forward to vouch for them. Trebellius and Digitius even swore to the gods that they were telling the truth. In the end Scipio solved the problem byrecognizing both men and awardedthem each the corona muralis.

In a separate story in Book 23 Chapter 28, Hannibal, the commander of the forces of Carthage, declared in 216 BC that the corona muralis would be awarded to the man who first climbed over the walls of Casilinum. But the attack failed, and the crown went to no one.

The reason why I am going into a lot of detail about the coronas of Rome is because today’s Scripture is especially relevant to the Roman tradition of awarding the corona muralis. In his Bible study guide to 2 Corinthians, theologian Tom Wright makes a fascinating connection betweenRome’s corona muralis and2 Corinthians 11. Now let’s delve into today’s Scripture, 2 Corinthians 11:30-33.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who is to be praised forever, knows that I am not lying. In Damascus the governor under King Aretas had the city of Damascenes guarded in order to arrest me. But I was lowered in a basket from a window in the wall and slipped through his hands.” (2 Corinthians 11:31-33)

In terms of the structure of these verses, first, Paul vows that he is not lying, and then he gives a confession. Next, he talks about how he escaped by being lowered in a basket from the walls of Damascus.

To be awarded the corona muralis, one must climb a wall. He must become the first to bravely scale it. And the brave soldier who did so even swore to the gods about his feat, as we saw in the story of Trebellius and Digitius. But Paul’s story is completely the opposite.

In these verses Paul swears before God that he is telling the truth, likeTrebellius and Digitius who swore before the gods in order to receive the corona muralis. But after this vow, Paul talks about how he escaped by being let down from the wall in a basket. Where is the honor in that? And why does he tell such a story?

To understand this passage more accurately, a deeper knowledge of the church in Corinth is required. The church in Corinth was planted by Paul, but after its foundation it experienced many troubles due to false teachers. It experienced a powerful working of the Holy Spirit, but this only made it proud, leading to many divisions and conflicts. Even Paul was rejected by the members of the church in Corinth.

In the course of rebuking their pride, Paul also did some boasting of his own. He said, “Since many are boasting in the way the world does, I too will boast.”(2 Corinthians 11:18)

Paul also went on to say, “Are they Hebrews? So am I. Are they Israelites? So am I. Are they Abraham’s descendants? So am I. Are they servants of Christ? (I am out of my mind to talk like this.) I am more.”(2 Corinthians 11: 22-23)

However, Paul, who first started out as if he would join the others in worldly boasting, changes his tone and starts to boast in a different way:

“I have worked much harder, been in prison more frequently, been flogged more frequently, and been exposed to death again and again. Five times I received from the Jews the forty lashes minus one.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pelted with stones,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I spent a night and a day in the open sea, I have been constantly on the move. I have been in danger from rivers, in danger from bandits, in danger from my fellow Jews, in danger from Gentiles; in danger in the city, in danger in the country, in danger at sea; and in danger from false believers. I have labored and toiled and have often gone without sleep; I have known hunger and thirst and have often gone without food; I have been cold and naked.” (2 Corinthians 11: 23-27)

Finally, Paul wraps up his boasting with these words:

“If I must boast, I will boast of the things that show my weakness.”(2 Corinthians 11:30)

Then comes today’s passage. After all this boasting, Paul talks about how he doesn’t lie before God, and how he escaped Damascus.

Running away is not something to be proud of.It is considered shameful to be beaten with rods. Being cold and naked is embarrassing. Have you ever been flogged or beaten? They say the shame and insultare unbearable. But Paul is boasting of these. He is boasting that these are his crowns.

The world wants a crown of honor like thecorona muralis. Everyone in this world wants to become the brave hero who defeats the enemy. They want to live as victorious rulers of this world, as conquerors, as men of power, as men who beat others up, and as men of wealth.

But Paul did not live such a life. He faced trials, suffering, hunger, betrayal, rejection, scorn, beatings, and false accusations, and even became a fugitive. Yet he is boasting of all these.

Why? Because he had his eyes on the prize the Lord would finally give him. This was Paul’s confession: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y.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for my departure is near.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 (2 Timothy 4:5-8)

Paul did not run for the corona muralis. He ran for the “Corona Christi,” the Crown of Christ.

Jesus, the Incarnation who became flesh in this world, gave Himself wholly to the very end. He humbled Himself to the lowliest place. He was with the afflicted. He even humbled Himself to death. Therefore, His crown is not a corona muralis. It is a crown of thorns.

Jesus humbled Himself to the lowliest of places, even became a sinner, was mocked and scorned by people, was stripped naked and shamed, and wore a crown of thorns.

“They put a purple robe on him, then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set it on him. And they began to call out to him, ‘Hail, king of the Jews!’ Again and again they struck him on the head with a staff and spit on him. Falling on their knees, they paid homage to him.” (Mark 15:17-19).

Corona Christi. The Crown of Christ was a crown of thorns.

Paul followed that path, as did countless Christians of the early church.

Let me read to you from Philip Schaff’s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Ante-Nicene Christianity”:

“We read of Christians bound inchains of red-hot iron, while the stench of their half-consumed flesh rose in a suffocating cloud toheaven; of others who were torn to the very bone by, shells or hooks of iron; of holy virgins givenover to the lust of the gladiator or to the mercies of the pander; of two hundred and twenty-sevenconverts sent on one occasion to the mines, each with the sinews of one leg severed by a red-hotiron, and with an eye scooped from its socket; of fires so slow that the victims writhed for hoursin their agonies; of bodies torn limb from limb, or sprinkled with burning lead; of mingled salt andvinegar poured over the flesh that was bleeding from the rack; of tortures prolonged and variedthrough entire days. […] The philosophy of persecution is best expressed by the terse word of Tertullian […]:‘The blood of the Christians is the seed of the Church.’”
(Schaff,“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ume II:Ante-Nicene Christianity,” p 54 & p 26)

Even when the early Christian martyrs believedand acted in the truth, they were treated as evil criminals. They were tortured in the most horrendous ways—in ways more cruel than those used against violent criminals—and were murdered. Yet they did not give up their way. They did not fear—for they believed that at the end of the road there was Corona Christi.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having stood the test, that person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the Lor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James 1:12)

Clearly, the martyrs looked to a crown. But it was not a crownof the world. It was not a coronatriumphalisor a corona civica or a corona muralis.

Corona Christi is a crown of thorns. Our Lord speaks to us through this crown:

‘The one who truly humbles himself and becomes poor is the true hero—My hero. The one who wears the crown of thorns like Me and befriends the afflicted is the true hero. I will delight in him.’

Last week, Korea elected a new president. We may have different opinions, but now that a new president has been elected, it is time to pray for him.

Let’ pray that he will not become a hero that destroys and conquers, but a leader who, like Jesus, humbles himself and befriends the afflicted. No, let’s pray that we all become this humble person.

In closing, let me read to you a passage from “The Epistle of Mathetes to Diognetus” which depicts the manner of the early Christians:

“[…] following the customs of the natives in respect to clothing, food, and the rest of their ordinary conduct, they [Christians] display to us their wonderful and confessedly striking method of life. They dwell in their own countries, but simply as sojourners. As citizens, they share in all things with others, and yet endure all things as if foreigners. Every foreign land is to them as their native country, and every land of their birth as a land of strangers. […] They are poor, yet make many rich; they are in lack of all things, and yet abound in all; they are dishonoured, and yet in their very dishonour are glorified. They are evil spoken of, and yet are justified; they are reviled, and bless; they are insulted, and repay the insult with honour; they do good, yet are punished as evil-doers. When punished, they rejoice as if quickened into life.” (“The Epistle of Mathetes to Diognetus”)

This is Corona Christi—the way of those who have their eyes on the crown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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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 30 ~ 33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놀랍게도 ‘코로나’(Corona)라는 단어는 로마 시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서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갑니다. 그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게 들려온 단어가 있다면 코로나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코로나 델타, 코로나 오미크론과 같은 여러 이름으로 끊임없이 들어왔죠. ‘코로나’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입니다. ‘Crown’이라는 뜻을 가진, 즉 왕관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에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살펴보니 입자의 표면이 왕관과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보기에는 참 멋진 모양인데 병균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코로나 관련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새벽기도 시간에 잠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로마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말고 말 그대로 왕관으로서 수여되는 여러 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왕관은 왕이 직접 쓰기도 했지만 영웅이나 특별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왕관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로 말씀드리는 관은 코로나 트리움팔리스(Corona triumphalis) 라는 영예로운 관입니다. 이 관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스런 관으로 월계수 잎, 혹은 올리브 잎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관은 코로나 옵시디오날리스(Corona Obsidionalis) 입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영예로운 관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던 중에 적진으로 들어가서 포로된 사람들을 구출한 장군에게 수여된 관이었다고 합니다. 이 관에 사용된 재료가 재미있는데요. 포로에 잡혀갔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가져온 풀들을 짜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코로나 시비카(Corona Civica)라는 관입니다. 이 또한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자 관이었습니다. 참나무 잎으로 만든 관인데 전쟁 중에 시민의 생명을 구한 병사에게 주어졌답니다. 이 관을 받은 사람은 자신과 그의 아버지, 친할아버지까지도 세금을 면제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코로나 무랄리스(Corona Muralis)라는 관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듯이 성벽 모양으로 되어 있는 관이죠. 주로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과거에 어떤 성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성벽을 넘거나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 제일 먼저 성벽을 넘은 사람에게 주어진 관이라고 합니다.
다섯 번째 관은 코로나 발라리스(Corona Vallaris) 입니다. 보시듯이 울타리, 말뚝 모양을 하고 있는 금으로 만든 관입니다. 이 또한 코로나 무랄리스처럼 가장 먼저 적진의 울타리를 넘어선 군인에게 수여되었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로는 코로나 나발리스(Corona Navalis) 관이 있습니다. 이 관은 파도 모양 같기도 하고 배의 돛 같기도 한데, 적의 배에 첫 번째로 오른 사람이 받은 관입니다. 이렇듯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코로나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서 어떤 코로나를 가지고 싶으신가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감염병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안 받으시려고 하겠지만, 로마 시대 관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영예로운 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로마 시대 코로나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합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있는데, 그중 26권 48장을 보면 코로나 무랄리스와 관련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당시 로마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치루는 중이었습니다. 기원전 209년, 로마의 젊은 귀족이었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카르타고 노바’(현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르타 헤나)를 공략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카르타고 노바는 대부분의 성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었는데, 스키피오는 썰물 때에 한쪽 벽의 바닥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성벽은 내륙 쪽의 가파른 성벽보다 낮았고 방어 병력도 별로 없었기에 매우 효과적인 공략이었죠.
48장은 이 전쟁에서 승전한 다음 날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스키피오가 승리를 거둔 다음 날, 정규군(legionary troops)과 해군(marines)을 소집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인 성을 손쉽게 얻은 것을 감사했던 제사였죠. 그리고는 함께했던 병사들을 치하하면서 가장 먼저 성벽을 넘은 사람에게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두 사람이 나왔다고 합니다. 4군단의 백인 대장 트레벨리우스와, 해병대에 속한 디기티우스라는 해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먼저 성에 올랐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성에 제일 먼저 올라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서로가 자신이 먼저였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각 부대의 장병들까지 가세하니 패가 나뉘어 팽팽한 싸움이 일어날 지경입니다. 결국 스키피오는 두 사람이 동시에 성벽에 올랐다고 인정하고, 모두에게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록입니다.
이처럼 코로나 무랄리스 관은 누가 가장 먼저 적군의 성벽을 허물었는지 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관을 수여하기 전에 항상 신 앞에서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코로나 무랄리스 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코로나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이 코로나 무랄리스 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그의 고린도후서 강해에서 본문 말씀과 코로나 무랄리스를 잘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인데요.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바울의 고백을 살펴볼 때, 매우 역설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11장 3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31~33)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맹세합니다. 마치 코로나 무랄리스 관을 수여받기 위해서 병사들이 보는 가운데 신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고 나서 뒤따르는 이야기가 “내가 다메섹 성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광주리를 타고 내려왔고, 결국은 도망갔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 만한 내용입니까? 더군다나 자랑할 만한 내용이었을까요?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면 성을 올라가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지금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한 이유를 두고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바울이 로마 시대에 코로나 무랄리스를 수여했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도리어 그 내용을 거꾸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면 성을 올라가야 하지요. 제일 먼저 용맹하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신 앞에서 맹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코로나 무랄리스를 받으려는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며 맹세까지 하고는 도리어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성을 내려갔고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에게서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러웠을까요?
본문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였지만 거짓 교사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자기 자랑하기 바빴고, 자신들만이 옳다는 주장으로 교회가 분열의 양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마저도 배척받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일들을 책망합니다. 그리고는 바울 자신도 자랑의 대열에 합류하며 고백하죠.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고후 11:18)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고후 11:22~23 중)

이렇게 세상적인 자랑에 합류하듯 말하던 사도 바울은 곧바로 태도를 바꾸며 다시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이것이 바울의 맹세이고 자랑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이렇게 요약하기도 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30)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한 후에 그는 다메섹 성을 내려가 도망치던 모습을 말합니다. 도망은 수치이지요. 매를 맞는 일도 수치입니다. 가난한 자처럼 헐벗은 모습은 사람을 초라하게도 만듭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매를 맞은 적이 있으십니까? 그 수치심과 모욕감이 어마어마하다고들 이야기하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자랑합니다. 그 일이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코로나 무랄리스 같은 면류관을 원합니다. 용맹스럽고 영광스럽고 영웅적이며 정복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정복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지배자, 힘쓰는 자, 배부른 자가 되길 원하죠.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난과 고통, 배고픔과 배신, 배척과 조롱을 들으면서, 그리고 죄인이 되어 매를 맞고 도망자가 되어 숨어 다니면서도 자랑합니다.

<바울의 역설적인 고백은 진짜 면류관, Corona Christi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5~8)

바울은 코로나 무랄리스를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코로나 크리스티,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기다립니다.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시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예수님은 끝까지 내려가시는 분이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낮아지셔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셨고, 죽음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면류관은 결코 코로나 무랄리스가 아닙니다. 그림에서 보이듯 위대한 성벽을 오르신 분이 아니십니다. 용맹스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쓰신 면류관은 바로 ‘가시 면류관’이었습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막 15:17~19)

조롱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성경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지셔서 조롱받으시며, 참으로 보기 싫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이 땅에 세워지셨습니다. 그 길을 바울이 따랐고, 수많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따랐습니다.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는 초대 교회 교인들이 경험한 혹독한 박해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로마의 고문은 혹독했다. 더러는 조개껍질이나 쇠갈고리로 온 몸이 토막 났고, 어떤 경건한 처녀들은 검투사나 포주에게 넘겨져 욕을 당했다. 227명의 회심자들이 달궈진 쇠로 한쪽 다리를 절단당하고, 한쪽 눈을 후벼 패인 채 광산으로 보내졌다는 내용도 있다. 또 더러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불에 몇 시간 동안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었고, 더러는 사지가 갈가리 찢기고, 혹은 펄펄 끓는 납 용액을 뒤집어쓰고 죽었으며, 더러는 소금과 식초에 절궈져 고문대에서 피 흘리며 죽었다(93) …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51)._필립 샤프,『니케아 이전의 기독교』중에서

그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 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가진 진리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진리를 믿었기에, 진리를 알았기에, 그들은 죄인처럼 대우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잔혹한 죄를 지은 사람보다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겁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면류관, Corona Christi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 1:12)

그들은 분명 생명의 면류관, 그리스도의 면류관, 코로나 크리스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면류관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트리움 팔리스도, 시비카도, 무랄리스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가시관입니다. 주님은 이 가시 면류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진정 내려가고 가난해지는 자가 나에게는 진짜 영웅이다. 나와 같이 가시관을 쓰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자가 참된 영웅이다. 내가 그를 기뻐할 것이다.”
지난주에 대선이 있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그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올라가고 정복하고 부수는 영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내려가고 낮아지고 더 내려가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런 자리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에 나오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읽어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지역 주민들과 사뭇 다르게 단정하다. 고향에 살면서도 나그네처럼 산다. 시민의 의무는 다하면서도 외국인으로서 수모를 겪는다. 타향이 고향이고, 고향이 타향이다. … 가진 게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넉넉하다. 비난을 받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상모략을 당하지만 무고하다. 저주를 당하면서도 축복한다. 조롱을 당하면서도 존경을 한다. 선을 행하면서도 범죄자처럼 처형을 당한다. 처형을 당할지라도 다시 살 것을 생각하고서 기뻐한다._<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중에서

이것이 바로 Corona Christi,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공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3월 13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그리스도의 면류관(Corona Christi)” (고후 11:30-33)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41, 45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고후 11:30-33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1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코로나라는 말이 참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본래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Crown)를 의미합니다고대 로마시대에 코로나(Corona)는 왕이 쓰는 관이었으나 반면 왕이 수여하는 영예로운 관을 ‘Corona’로 부르기도 했습니다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 보내는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관을 자주 언급하고 있지요영웅들에게 로마의 황제가 수여하는 영예로운 관(Corona)을 생각했을 때바울이 그토록 바랐던 주님께서 수여하는 관은 어떤 영광으로 주어지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로마시대에는 다양한 ‘Corona’ 면류관이 있었습니다그중에서 Corona Muralis’라는 관이 있습니다. 성벽 모양을 하고 있는 관인데요고대에는 어떤 성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성벽을 넘거나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했는데 용맹하게 제일 먼저 성벽에 오른 사람에게 주어진 관이라고 합니다용맹스럽게 제일 먼저 성벽에 오른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을 신들 앞에 정직하게 맹세하고 이후에 면류관이 영예롭게 주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Corona Muralis’ 받았던 당시 상황을 차용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말합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맹세를 합니다그런데 그 맹세는 내가 광주리를 타고 성벽에서 내려와 성에서 도망쳤다는 것을 증언하는 맹세입니다용맹하게 성벽을 오른 사람이 면류관을 받기 위해 내가 그렇게 했다고 자랑하고 맹세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어찌 자랑할 것들이 되겠습니까그런데도 바울은 도망하고 숨어 다니며 매를 맞고 배고픔과 배척조롱을 들으면서 도리어 내가 약한 것을 도리어 자랑한다”(고후 11:30) 고백하고 있습니다왜 그렇습니까바울이 주님께 바라는 그 관은 Corona Muralis’와는 달랐기 때문입니다바울이 그토록 주님으로부터 얻고자 했던 관은 Corona Muralis’가 아닌 ‘Corona Christi’, 그리스도의 면류관이었습니다그리스도의 면류관은 가시관입니다이 땅에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임하신 그리스도고통 받은 자들과 함께 하셨고수치와 고통의 죽음의 자라까지 내려가신 그리스도께서 쓰셨던 관이 바로 가시 면류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쓰신 그 영광의 가시 면류관을 얻고자 바울이 따랐고수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길을 따랐습니다이들은 진리를 믿고 행하면서도 죄인들로악인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잔혹한 죄를 지은 어떤 이들보다 더 잔인한 고문과 고통을 당하였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그래도 그들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겁내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그 길의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Corona Muralis’같은 면류관을 원합니다용맹스럽고영웅적이며정복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인은 ‘Corona Christi’,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내려가고 더 내려가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명의 가시 면류관을 쓰는 것입니다.

가진 게 없으면서도 넉넉하게 여기고비난을 받지만 도리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저주를 당하면서도 축복하고조롱을 당하면서도 존경을 하며선을 행하면서도 범죄자처럼 처형을 당하고처형을 당할지라도 다시 살 것을 생각하고 기뻐한다.” – 초대교회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

이것이 바로 Corona Christi’,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바라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나누기

1.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2. 그리스도의 면류관(Corona Christi)을 얻는 길은 어떠하였습니까그리스도의 면류관을 얻고자 오늘 내가 싸우고 달려가야 할 모습은 무엇일까요?

마무리기도

    주님사순절을 보내며 낮고 낮아져서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을 따르길 소망합니다우리에겐 분명 Corona Christi’,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영예롭게 주어짐을 알기에 기쁨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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