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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

갈라디아서 6:2~10

박경수 목사

2024.06.30

<갈라디아서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는 모두 6장, 149절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할 때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더불어 꼭 포함됩니다. 그만큼 갈라디아서는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책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小로마서’라고도 불립니다. 로마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로마서가 차분하고 조직적이고 논리적이라면, 갈라디아서는 과격하고 감정적이고 전투적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48~49년 사이에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바울이 전도여행 때 다녔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같은 도시들이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속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보낸 편지 갈라디아서는 은혜, 믿음, 자유, 사랑과 같은 복음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기에 교회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편지로 간주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갈라디아서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었을 때 가장 애용한 책이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비유적으로 “나의 아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6장은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는 공동체여야 함을 말해 줍니다.

저는 소망교회가 오늘 본문 6장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본문 6장 2절은 우리를 향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6장 8절에서는 성령을 위하여 씨앗을 심는 성도와 교회가 되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두고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서로 짐을 지워 줌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모세의 법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구약의 옛 계명과는 다른 새로운 계명,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이지요. 또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사도 바울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앞장 갈라디아서 5장 13~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3下~14)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법이고 모세의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서 질 때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우리를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놀라운 진리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한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나무의 가지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주의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나’로 인해 ‘너’가 있고 ‘너’로 인해 ‘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너의 지체가 되고 너는 나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손이나 발이나 귀나 눈이나 어떤 지체라도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손가락 끝의 작은 부분에 조그만 문제라도 있으면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립니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몸에 아픈 지체가 있으면 그 몸은 병든 것입니다. 오늘 소망교회의 유치부 아이 한 명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면 우리 교회는 병든 교회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아프면 그 나무가 아픈 것이고, 하나의 나무가 아프면 자연 전체가 아픈 것이고, 자연이 아프면 하나님이 아픈 것입니다. 한 형제나 한 자매가 아파하는데 온 교회가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빚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합니다.>

 

‘빚지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져도 괜찮은 빚이 사랑의 빚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a)

 

사랑의 빚은 감사로 받으면 빚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감사로 받으면 그것은 빚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빚은 꼭 받은 그 사람에게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구에게 갚으면 되는 것이 사랑의 빚입니다.

저도 대학부터 박사과정까지 20년 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과 여러 기관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그분들에게 혹은 그 기관에게 사랑의 빚을 갚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죠. 이것이 사랑의 선순환이 아닐까요? 저는 소망교회가 서로의 어렵고 무거운 짐을 나누며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을 내 옆에 있는 형제와 자매에게 갚을 줄 아는 멋진 신앙의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늘 본문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가진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2절에서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고 말했는데, 5절에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미숙한 부분입니다. 현대 영어성경에서는 2절의 ‘짐’이라는 단어는 ‘burden’으로 번역하고, 5절의 ‘짐’이라는 단어는 ‘load’로 다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원어인 그리스어는 2절의 짐은 ‘바로스’(βαρος)라는 단어로 한 사람이 들 수 없는 크고 무거운 짐을 말하는 것이고, 5절의 짐은 ‘포르티온’(φορτιον)이라는 단어로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보퉁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보통의 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면, 그것은 각각 자기의 짐을 충실하게 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나서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가 있다면 공동체가 함께 그 짐을 나누어 서로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곳이 주님의 교회입니다. 성령을 좇아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우리’ 소망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뿐만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앞의 말씀과 연속성을 갖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성령을 위하여 씨앗을 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한 가지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下)

 

그것은 6장 7절에 있는 것처럼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콩 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 심은 곳에는 팥이 납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거두는 시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즉각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씨앗을 심으면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면 그에 합당한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수확의 법칙, 건강의 법칙이 있듯이 축복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유아스러운 사람들은 자꾸 법칙을 무시하고 요행을 바랍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는데 혹시 바위가 깨지는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아파트 28층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리 기도했다고 해도 28층에서 뛰어내리면 안 됩니다. 중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꼭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와 같을지라도 날마다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에 어울리는 합당한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는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나 자신의 마음 밭에 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처럼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인격과 성숙이 분명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몇 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예배하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어려웠을 때 제 아버지가 성경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거의 아흔이 다 되신 분이니까 건강도 그렇고 필사를 쓴다는 게 너무 힘든 일로 보였습니다. 하다가 중단하시겠지 생각했더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써 버린 겁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뒤에 집에 다시 가 보니까 다시 쓰고 계십니다. 두 번째 왜 그러시냐 물으니, 노트에다 그냥 쓴 게 마음에 안 드시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옆에서 성경을 쓰는 책에 착착 맞춰서 쓰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참 좋아 보였던 것이지요. 거기에 또 처음부터 다시 써서 드디어 성경 전체를 두 번을 필사를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감사해서 감사 기념패를 만들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 말씀대로 영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 밭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말씀을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부지런히 뿌립시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제가 홈페이지에서 인도네시아 아우유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출판해서 그들 언어로 성경을 주는 일에 소망교회가 함께했다는 영상을 봤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바라기는 우리 소망교회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밀라노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시우스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 모니카에게 “기도하는 사람의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정말 그 어머니의 기도대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람은 우리 교회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목회자,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저 입에서 나와서 공기만 진동시키다가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5장과 8장은 천사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금 그릇에 담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는 기적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 기도의 기적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신명 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는 사무엘이 선언했던 것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구한다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하신 우리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항상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외우시는 말씀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참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서를 절대로 끊어 읽으면서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습니다. 바로 앞 절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입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마지막 부분에 있는 “항상 선을 따르라”는 말씀은 쏙 빼고 암송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경은 장과 절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이 나누어 진 것은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신약성경에 최초로 장 구분이 나타난 것은 1204/5년에 스테펜 랑톤(Stephen Langton)의 불가타 성서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절이 구분된 것은 한참 뒤인 1551년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가 펴낸 제네바 성서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장과 절을 나누다 보니 그만 “항상 선을 따르라”라는 귀한 말씀은 쏙 빼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라는 말씀만 외우게 되었습니다.

분명 항상 선을 따르는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다가 별 반응이 신통치 않거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항상 선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우리는 오늘 뿌린 씨앗에 합당한 열매를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매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원한 것을 위해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어떤 씨앗을 심겠습니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를 지내겠습니까? 우리의 한 평생 동안 무엇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다가 어떤 것을 거둘 것입니까?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의 말처럼 헛된 바람만을 심다가 광풍을 거둘 것입니까(호8:7)?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둘 것입니까? 이제 소망교회는 어떤 씨앗을 뿌릴 것입니까? 말씀과 기도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립시다. 10절의 말씀처럼 선행의 씨앗을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부지런히 뿌립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복음의 나눔과 구제의 씨앗을 우리의 이웃에게 더욱 널리 뿌립시다.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로 올해의 꼭 절반이 지나갑니다. 새해 기도하며 다짐했던 일들을 얼마나 이루셨습니까? 6개월 달려오면서 조금 흐트러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느슨해진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어 남은 6개월을 경주해 봅시다. 성령에 의지하여 말씀과 기도와 선행의 씨앗을 이웃과 믿음의 가정들에게 부지런히 뿌리고,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2024년 하반기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하여 성실하게 말씀과 기도와 선행의 씨앗을 소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심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장인 6장이 인상적인 것은 시작하는 단어와 마지막 단어가 끝의 “아멘”을 제외하면 모두 “형제들아”라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형제들아”로 시작해서 “형제들아”로 끝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갈라디아서 마지막 6장 18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갈 6:18)

 

그러나 그리스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형제들아! 아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자매이며,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 지체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로 짐을 지고 서로 선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에게 한 마지막 인사를 여러분에게 하고 싶습니다(1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형제자매들아! 아멘.”

The Church that Fulfills the Law of Christ

 

Galatians 6:2-10

 

Galatians, our Scripture for today, is a short book composed of 6 chapters and 149 verses. But its influence is by no means small. In the selection ofPaul’s most important letters, Galatiansalong with Romans is alwayson the list. Becausethe contents of the two books are very similar, Galatians is often called a “short Romans.”Though the message of Galatians and Romans are similar, theirtones and atmospheres are hardly so. While the latter is characterized as calm, systematic, and logical, the former is ratheraggressive, emotional, and militant in tone. Galatians is Paul’s epistle sent to the churches in Galatia between AD 48-49. The region of Galatia, modern-day Turkey, includedcities such as Antioch, Iconium, Lystra, and Derbe that Paul had visited on his mission trips.

 

Galatians, containing the core themes of the Gospel such as grace, faith, freedom, and love, has always been considered a pivotal letterin the church’s history. Historically, it was the book most loved and quoted by Martin Luther in the course of starting the Reformation. He called it “my Katie von Bora,” referring to his wife. Galatians 6, the chapter we read today, teachesthat the church must be a community that encourages and builds each other up with love.

 

I dearly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become a church that“fulfills the law of Christ” as written in Galatians 6:2. How can we become such a church? First, Galatians 6:2 teaches us to “carry each other’s burdens.” Second, 6:8 tells us to become a church that “sows to please the Spirit.” I wish to focus on these two points in sharing mymessage and meditation regarding today’s text.

 

First of all, Christians ought to fulfill the law of Christ by bearing each other’s burdens. In today’s text Paul uses the term “the law of Christ”as opposed to the law of Moses. What is the law of Christ? Needless to say, it is love. In John 13:34 Jesus Himself states,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Our Lord also says in John 15:12,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Furthermore Paul says in Galatians 5:13b-14, the chapter that comes right before today’s passage, “Rather, serve one another humbly in love. For the entire law is fulfilled in keeping this on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ndeed, love is the law of Christ and the fulfillment of the law of Mose. When we bear each other’s burdens, the law of Christ’s love is fulfilled through us.

 

One of the most amazing truths of Christianity is that we are all God’s children, therefore,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Christians can be compared to the branches of the same tree. Christianity is not an individualistic religion but a communal faith. In Christ, you and I are not different or separate beings. “I” exist because of “you,” and vice versa. In Christ, I become a part of you, and vice versa. As Paul said, since we are all parts of one body, the whole body hurts when a hand, foot, or even a fingernail or toenail hurts. As you may have experienced, when even the tiniest part of your fingernail hurts, your whole body feels it. Even when the littlest part of our body is ill, the body is sick. If a little boy in our Sunday School is hurting inside, our church hurts. If a leaf is ill, the tree is ill; if a tree is ill, then nature is ill; if nature is ill, God is pained. If the whole church does not feel pain when one of its members is in pain, that church is gravely sick. To be precise, it cannot be called a church as a community. If there is a member of our church today suffering from a heavy burden that he/she cannot bear alone, we ought to share that burden. Because that is the law of Christ’s love.

 

If you are trying to be clever, thinking, ‘I won’t bother anyone andneither will I seek help,’ this is not the Christian mindset. Such a person can never become a good Christian. The believer who can receive love with a pure and grateful heart is the good Christian. All you can say to God’s freely given grace is “Amen. Thank you.”Imagine someone says, “Grace for free? As the Korean saying goes, if you like free things, you will become bald. So no thank you.” How can such a person be a good Christian? I think that receiving love is more difficult than giving it. Only the one who can receive love can give it. I hope that no one at Somang Church will want to be clever and refuse love. I sincerely hope that all of you, including pastors and church members, will be able to receive love with a grateful heart and also give it in purity.

 

There is a saying: Never owe anyone anything. Yet a debt of love is an exception. That is why in Romans 13:8 Paul says,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 A debt of love is not a debt if you have received that love with thanksgiving. It is grace. How great is the debt of love between us and God? It is indescribable. But if you receive that love from God with thanksgiving, it becomes grace, not a debt. And a debt of love is not something we must pay back to the giver; all we have to do is love another person in need of our love. During my twenty years of study, from college to Ph. D., I received scholarships from many people and institutions. However, I now pay off that debt of love not by repaying them, but by loving and teachingmy students. Isn’t this the virtuous cycle of love? I sincerely hope that Somang Church becomes a beautifulcommunity of faith that knows how to share each other’s burdens and repays God’s great love by loving the brothers and sisters you see every week.

 

Some of you may have this question:Isn’t it odd that Galatians 6:2 tells us to “carry each other’s burdens,”while 6:5 teaches us to “carry their own load?” This becomes more puzzling when we read the passage in Korean because the Korean translation uses the same word for “burden” and “load.” But note that the NIV differentiates the two by using “burden” in verse 2 and “load” in verse 5. The Greek word for burden in verse 2 is “βαρος,” which refers to a large and heavy load that cannot be carried by one person; but the Greek for “load” in verse 5 is “φορτιον,”which is a bundle that one person can carry. In our faith lives, there are loads that we ourselves must bear, loads that cannot be shared with anyone else. We must not shirk from bearing even such small bundles. These must be carried alone silently. But with regard to large burdens that must be shared, the law of Christ states that we must bear them together.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mourn with those who mourn.” (Romans 12:15) As these words teach us, true Christians share their joys and sorrows. In the Lord’s church,one step taken by a hundred men is more precious that a hundred steps taken by one man. May we become a community of faith that fulfills the law of Christ by sharing each other’s burdens in the Spirit.

 

Second, Christians must not only bear each other’s burdens but also sow good seeds to please the Spirit. This teaching is a continuation of Galatians 5:25, the chapter preceding today’s passage that says,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Living by and in step withthe Spirit means to sow seeds for the Spirit. Today’s passage states an unchanging law. It states the eternal truth, “A man reaps what he sows”(6:7b). Yes. You reap what you sow. If you sow little, you reap little. If you sow for the flesh, you will reap perishable things of the flesh; if you sow for the Spirit, you will reap eternal life from the Spirit. The time of reaping may come quickly or slowly. I believe that if we sow according to God’s will, we will certainly get an answer even if it takes a long time. As Psalm says, though we may sow in tears, we will reap with joy at the proper time. Therefore, Paul says in Galatians,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If we sow to please the Spirit, we will get an eternal harvest that corresponds to what we have sowed. This is the law. Just as there are laws on harvest andhealth, there is a law on blessings. Immature Christians ignore this law and wish for luck. They think, ‘It’ll work out somehow…’ If you hit a rock with an egg,the egg will break, of course. But such immature Christians wonder, ‘Isn’t it possible that the rock will break?’I currently live on the 28th floor. No matter how much I pray, jumping off my balcony is out of the question. The law of gravity will pull me to the ground.

 

Then what seeds must Christians sow? If we truly want to live by the Spirit, if we want to become true disciples of Christ, we must sow the seeds of the Word, of good deeds, and of prayer. First, we must sow the seed of the Word. More than anything else, we must read the Word of God diligently and sow it our hearts. Though at first it may seem small like mustard seeds, it will surelygrow into lush trees where birds nest. If you sow the seed of Scripture by reading the Bible every single dayregularly, you will experience amazing changes in just one year. If you experience the joy of reading and meditating on Scripture every day, your faith will become deeper and more mature. Furthermore, you should also diligently sow the seed of Scripture among your neighbors by sharing the Word of God with them. Don’t rely on eloquent speech but on the power of the Word; preach the Wor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Our responsibility is to preach the Word. Bearing fruit is God’s responsibility. It is my hope that Somang Church will be like the early church in Jerusalem where the Word flourished.

 

Second, we must sow the seed of prayer. Ambrose, an early church father, said that the child of a praying parent will never be ruined. Our prayers do not just come out of our mouths, create a vibration in the air, and then fall to the groundand disappear. Revelation 5 and 8 tell us that angels take our prayers to God on a golden plate. God listens to our prayer attentively. Prayers prayed according to His will have the power to create miracles. Without experiencing these miracles of prayer, our faith lives will never be joyful. May Somang Church keep itself from the sin of “failing to pray” (1 Samuel 12:23) and become a church that “prays continually.” Our Lord has given us this promise—“You may ask me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John 14:14) As Scripture says, God will do it if we pray.

 

Third, we must sow the seed of good deeds. As you may well memorize, Thessalonians 5:16-18 says, “Rejoice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How precious are these words. But when we divide the Bible into verses, we may miss important parts. In memorizing Thessalonians 5:16-18, we leave out the last part of the preceding verse, Thessalonian 5:15, which says, “but strive to do what is good.” (“Make sure that nobody pays back wrong for wrong, but always strive to do what is good for each other and for everyone else.” (Thessalonians 5:15)) The Bible was not originally divided into chapters and verses. Divisions of chapters and verses were introduced much later. Chapter divisions in the New Testament were introduced in 1204/5 by Stephen Langton asreflectedin the Vulgate. Verse divisions were introduced much later in 1551 by Robert Stephanus in the Geneva Bible.But with chapter and verse divisions, we tend to memorize only the verses on praying and giving thanks, leaving out a critical versethatcommands us to“always strive to do what is good.” Always striving to do good is God’s will for us too. Therefore we must sow the seed of good deeds. But as we do good works, we sometimesget disappointed and give up when we don’t get a good response and recognition. But the Bible tells us to “always strive to do what is good.” Galatians 6:9 states,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The seeds we sow today will surely lead to a harvest someday.

 

What seeds will you sow today? What thoughts will you fill your days with? What must we do, strive for, and reap in our lives? Will you “sow the wind and reap the whirlwind” as Hosea writes in Hosea 8:7? Or will you sow to please the Spirit and reap eternal life? What seeds will Somang Church sow? Let us sow the seeds of the Word and prayer diligently. Let us diligently sow the seed of good deeds to all, especially to the families of faith, as Galatians 6:10 encourages us. (“Therefore, as we have opportunity, let us do good to all people, especially to those who belong to the family of believers.”) Let us sow more widely the seed of sharing and giving to our neighbors in need. God will repay us with precious fruits.

 

Today marks the end of the first half of 2024. How much of your New Year’s resolutions made in prayer have you accomplished so far? Let us renew our minds thathave become fuzzy in the past six months, tighten our belts, and diligently run the remaining race of 2024. I pray that we will diligently sow the seeds of the Word, prayer, and good deeds to our neighbors and families of faith by trusting in the Spirit and that we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 by taking up each other’s burdens in the second half of 2024. Christians fulfill the law of Christ’s love by sharing each other’s burdens. Also they ought todiligently sow the seeds of the Word, prayer, and good deeds for the Lord with hope.

 

What is unique about Galatians 6, the last chapter of the book, is that, with the exception of the last word,“Amen,”the first and last words are the same—“brothers and sisters.”In other words, it starts and ends with “brothers and sisters.” Although in the Korean translation “brothers and sisters” come at the beginning of Galatians 6:18, the English and Greek Bibles sa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r spirit, brothers and sisters. Amen.” This stresses that we are all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who ought to bear each other’s burdens, pray for each other, and do good to each other. I hope we, you and I, will bear each other’s burdens and do good deeds to each other. In closing,I wish to greet you with the same greeting that Paul spoke to the Christians in Galatia in verse 18.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r spirit, brothers and sister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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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2~10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라디아서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는 모두 6장, 149절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할 때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더불어 꼭 포함됩니다. 그만큼 갈라디아서는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책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小로마서’라고도 불립니다. 로마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로마서가 차분하고 조직적이고 논리적이라면, 갈라디아서는 과격하고 감정적이고 전투적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48~49년 사이에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바울이 전도여행 때 다녔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같은 도시들이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속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보낸 편지 갈라디아서는 은혜, 믿음, 자유, 사랑과 같은 복음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기에 교회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편지로 간주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갈라디아서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었을 때 가장 애용한 책이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비유적으로 “나의 아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6장은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는 공동체여야 함을 말해 줍니다.

저는 소망교회가 오늘 본문 6장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본문 6장 2절은 우리를 향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6장 8절에서는 성령을 위하여 씨앗을 심는 성도와 교회가 되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점에 초점을 두고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서로 짐을 지워 줌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모세의 법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구약의 옛 계명과는 다른 새로운 계명,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이지요. 또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사도 바울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앞장 갈라디아서 5장 13~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3下~14)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법이고 모세의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서 질 때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우리를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놀라운 진리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한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나무의 가지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주의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나’로 인해 ‘너’가 있고 ‘너’로 인해 ‘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너의 지체가 되고 너는 나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손이나 발이나 귀나 눈이나 어떤 지체라도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손가락 끝의 작은 부분에 조그만 문제라도 있으면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립니다. 아무리 작은 지체라도 몸에 아픈 지체가 있으면 그 몸은 병든 것입니다. 오늘 소망교회의 유치부 아이 한 명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면 우리 교회는 병든 교회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아프면 그 나무가 아픈 것이고, 하나의 나무가 아프면 자연 전체가 아픈 것이고, 자연이 아프면 하나님이 아픈 것입니다. 한 형제나 한 자매가 아파하는데 온 교회가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빚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합니다.>

 

‘빚지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져도 괜찮은 빚이 사랑의 빚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a)

 

사랑의 빚은 감사로 받으면 빚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감사로 받으면 그것은 빚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빚은 꼭 받은 그 사람에게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구에게 갚으면 되는 것이 사랑의 빚입니다.

저도 대학부터 박사과정까지 20년 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과 여러 기관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그분들에게 혹은 그 기관에게 사랑의 빚을 갚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죠. 이것이 사랑의 선순환이 아닐까요? 저는 소망교회가 서로의 어렵고 무거운 짐을 나누며 하나님께 받은 큰 사랑을 내 옆에 있는 형제와 자매에게 갚을 줄 아는 멋진 신앙의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늘 본문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가진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2절에서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고 말했는데, 5절에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미숙한 부분입니다. 현대 영어성경에서는 2절의 ‘짐’이라는 단어는 ‘burden’으로 번역하고, 5절의 ‘짐’이라는 단어는 ‘load’로 다르게 번역하였습니다. 원어인 그리스어는 2절의 짐은 ‘바로스’(βαρος)라는 단어로 한 사람이 들 수 없는 크고 무거운 짐을 말하는 것이고, 5절의 짐은 ‘포르티온’(φορτιον)이라는 단어로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보퉁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보통의 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면, 그것은 각각 자기의 짐을 충실하게 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나서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가 있다면 공동체가 함께 그 짐을 나누어 서로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곳이 주님의 교회입니다. 성령을 좇아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우리’ 소망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뿐만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앞의 말씀과 연속성을 갖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성령을 위하여 씨앗을 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한 가지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下)

 

그것은 6장 7절에 있는 것처럼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콩 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 심은 곳에는 팥이 납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거두는 시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즉각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씨앗을 심으면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면 그에 합당한 영원한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수확의 법칙, 건강의 법칙이 있듯이 축복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유아스러운 사람들은 자꾸 법칙을 무시하고 요행을 바랍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는데 혹시 바위가 깨지는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아파트 28층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리 기도했다고 해도 28층에서 뛰어내리면 안 됩니다. 중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꼭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와 같을지라도 날마다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에 어울리는 합당한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는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나 자신의 마음 밭에 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처럼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인격과 성숙이 분명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몇 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예배하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어려웠을 때 제 아버지가 성경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거의 아흔이 다 되신 분이니까 건강도 그렇고 필사를 쓴다는 게 너무 힘든 일로 보였습니다. 하다가 중단하시겠지 생각했더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써 버린 겁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뒤에 집에 다시 가 보니까 다시 쓰고 계십니다. 두 번째 왜 그러시냐 물으니, 노트에다 그냥 쓴 게 마음에 안 드시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옆에서 성경을 쓰는 책에 착착 맞춰서 쓰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참 좋아 보였던 것이지요. 거기에 또 처음부터 다시 써서 드디어 성경 전체를 두 번을 필사를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감사해서 감사 기념패를 만들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 말씀대로 영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 밭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말씀을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부지런히 뿌립시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제가 홈페이지에서 인도네시아 아우유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출판해서 그들 언어로 성경을 주는 일에 소망교회가 함께했다는 영상을 봤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바라기는 우리 소망교회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밀라노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시우스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서 밤낮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 모니카에게 “기도하는 사람의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정말 그 어머니의 기도대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람은 우리 교회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목회자,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저 입에서 나와서 공기만 진동시키다가 땅에 떨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5장과 8장은 천사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금 그릇에 담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는 기적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 기도의 기적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신명 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는 사무엘이 선언했던 것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구한다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하신 우리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항상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외우시는 말씀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참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서를 절대로 끊어 읽으면서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습니다. 바로 앞 절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입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마지막 부분에 있는 “항상 선을 따르라”는 말씀은 쏙 빼고 암송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경은 장과 절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이 나누어 진 것은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신약성경에 최초로 장 구분이 나타난 것은 1204/5년에 스테펜 랑톤(Stephen Langton)의 불가타 성서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절이 구분된 것은 한참 뒤인 1551년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가 펴낸 제네바 성서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장과 절을 나누다 보니 그만 “항상 선을 따르라”라는 귀한 말씀은 쏙 빼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라는 말씀만 외우게 되었습니다.

분명 항상 선을 따르는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다가 별 반응이 신통치 않거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항상 선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우리는 오늘 뿌린 씨앗에 합당한 열매를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매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원한 것을 위해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어떤 씨앗을 심겠습니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를 지내겠습니까? 우리의 한 평생 동안 무엇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다가 어떤 것을 거둘 것입니까?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의 말처럼 헛된 바람만을 심다가 광풍을 거둘 것입니까(호8:7)?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을 거둘 것입니까? 이제 소망교회는 어떤 씨앗을 뿌릴 것입니까? 말씀과 기도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립시다. 10절의 말씀처럼 선행의 씨앗을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부지런히 뿌립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복음의 나눔과 구제의 씨앗을 우리의 이웃에게 더욱 널리 뿌립시다.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로 올해의 꼭 절반이 지나갑니다. 새해 기도하며 다짐했던 일들을 얼마나 이루셨습니까? 6개월 달려오면서 조금 흐트러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느슨해진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어 남은 6개월을 경주해 봅시다. 성령에 의지하여 말씀과 기도와 선행의 씨앗을 이웃과 믿음의 가정들에게 부지런히 뿌리고,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2024년 하반기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하여 성실하게 말씀과 기도와 선행의 씨앗을 소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심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장인 6장이 인상적인 것은 시작하는 단어와 마지막 단어가 끝의 “아멘”을 제외하면 모두 “형제들아”라는 단어라는 점입니다. “형제들아”로 시작해서 “형제들아”로 끝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갈라디아서 마지막 6장 18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갈 6:18)

 

그러나 그리스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형제들아! 아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자매이며,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 지체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로 짐을 지고 서로 선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에게 한 마지막 인사를 여러분에게 하고 싶습니다(1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형제자매들아! 아멘.”\

2024년 6월 30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 (갈 6장 2~10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95장, 220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갈 6장 2~10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6월 3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어떤 곳인가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는 아주 작은 성경책이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책이고, 소로마서라고도 불립니다. 복음의 핵심내용을 적고, 또 담고 있기에 교회 역사에서도 항상 중요한 편지로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6장은 교회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는 공동체여야 함을 말해줍니다. 이를 위해, 첫째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고 말합니다. 둘째, “씨앗을 심는 성도와 교회가 되라”고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개인주의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 신앙입니다.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손이나 발이나 눈이나 허리나 심지어 손톱이나 발톱이라도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면, 온 몸이 아프게 됩니다. 한 형제나 한 자매가 아파하는데 온 교회가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고, 그것은 엄밀히 말해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거두는 시기는 즉각적일 수도 있고,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의 말씀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때가 이르면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하나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에 어울리는 합당한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선행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규칙적으로 매일 말씀의 씨앗을 심는다면 일 년만 지나면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부분은 “형제들아”로 시작해서 “형제들아”로 끝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자매이며,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할 지체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로 짐을 지고 서로 선을 행하는 우리 모두다 되기를 원합니다.

 

 

나누기

 

  1. 사랑은 받는 것이 어려울까요, 주는 것이 어려울까요?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성령을 위하여 씨앗을 심었을 때, 혹시 열매를 맛 본 적이 있나요? 그 경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 갈라디아서를 통해 배운 말씀과 같이 우리 소망교회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위하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선순환을 이루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성령을 위하여 선한 씨앗을 심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선행을 베푸는 모습이 늘 있음으로, 주님의 은혜가 우리 심령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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