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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가복음 10:13~16

김경진 목사

2025.05.25

<어린아이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부족함과 미완으로 대표되는 존재였습니다.>

 

옛날에는 방앗간이 참 많았습니다. 방앗간을 가깝게 사용하는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연초나 명절이 되면 떡을 만들어 먹기 위해 방앗간을 방문하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방앗간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매우 어렸을 때, 가래떡을 뽑으러 할머님과 가족들이 함께 방앗간을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떡이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서 뛰어놀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방앗간의 주인이 저에게 아주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이유는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가게의 문턱을 짓밟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이 연초부터 복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얼마나 호되게 야단을 치는지 깜짝 놀라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를 무시하거나 막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린아이들을 괜히 혼내는 어른들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동네에 공이 하나 생기면 어린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공놀이하곤 했는데요, 공이 그 당시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이 어떤 집 담벼락을 넘어가면 대체로 공을 다시 던져 주셨지만, 어떤 집에서는 절대로 공을 내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며칠 동안 공을 주지 않는 분도 있었고, 더러는 공을 찢어 던져 버리는 아주 나쁜 분도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어린아이들을 귀찮게 여기고 야단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상황이 그러하니,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어린아이의 상황은 어떠했겠습니까? 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겠죠. 그러나 어린아이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대우는 아마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 사이에서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죽게 되면 그 아이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 논쟁이 있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어린아이는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고 미완의 존재, 도상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건강 상태나 성별을 확인하고 아이를 버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어린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린아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5월이나 어린이주일이 되면 자주 읽고 묵상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막 10:13)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이들의 부모였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같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늘 여전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속죄의 날이나 명절에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랍비나 율법학자에게 안수와 축복을 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주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예수님에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안수와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들은 아이들이 축복을 받고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당시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하는 태도가 제자들에게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태도일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아닌 어린아이들에 대한 편견의 태도들이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전통적인 어른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말씀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반응하시는 장면이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마가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노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무시하고 밀어내는 모습을 마땅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5)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겠구나,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질문은 이렇게 이어지죠.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될 것입니다. 순수하고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는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죠.

물론 이러한 생각은 매우 타당한 해석의 한 방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특성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겸손하고 의존적이며 신뢰와 믿음을 갖고 전적으로 사랑과 복종을 하는 어린아이의 특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시편 131편의 말씀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 131:1~3)

 

젖 뗀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보고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순결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해석은 정통적인 해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오늘은 이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 해석은 전적으로 어른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실존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읽으면 어떻게 보일까요? 당시 어린아이들은 쉽게 무시당하고 배척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꾸짖는 그 모습이 그 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습니다. 이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습과 말씀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다가오려고 할 때,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도리어 어른들에게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0:14). 초대교회로부터 모든 교회는 이 말씀을 근거로 어린이를 위한 유아세례를 베풀어 왔습니다. 유아들은 아직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존재들이죠. 신앙의 내용도 잘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듯 불완전한 아이들이지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으시며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4b~15)

 

앞서 어른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다시 봅니다. 지금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님께 쭈뼛쭈뼛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꾸짖으며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아이야, 너는 지금 장난꾸러기이고 실수도 많이 하는 때지. 야단도 많이 맞고 어른들에게 볼품없는 존재로 여겨지지. 그러나 너는 나에게 오기에 합당하단다. 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야. 이미 너는 그런 존재다. 너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어.”라는 격려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너와 같은 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맨날 실수하고 혼나는 개구쟁이 같은 어린아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두 팔을 벌리고 멋지게 격려하면서 품에 안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며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한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늘 부모에게 혼나고 동네 사람들한테 종종 꾸짖음도 당하는 미완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어마어마한 격려의 말씀이 아니었겠습니까? 예수님께 놀라운 격려의 말씀을 듣고 축복과 안수를 받은 이 어린아이는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소망교회 설교 제목이 신청하신 분들에게 전달됩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제목이 보내지고서 한 제자로부터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ㅋㅋㅋ

반갑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목사님의 그 아이는

 

거저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베풀기 위해 다짐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해 주세요.

ㅎㅎㅎㅎ

 

건강하세요.

목사님 ^^”

 

중학교 시절에 만났던 아이는 이제 50대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 아이가 저에게 보낸 작은 소식 문자였습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성경 공부를 가르쳤던 아이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죠. 정말 깊이 사랑하고 아끼며 기도했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지방의 어느 방송사에서 만든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박대성 작가의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세계가 인정하는 동양화 작가로, 특별히 수묵화의 대가로 알려진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렸을 때 공비들이 쳐들어와서 아버지를 죽이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의 팔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병신이 되어서 살아간 인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달리기 시합에서 1등으로 들어왔는데, 그때 옆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우, 저 병신이 1등을 하네.” 그 말이 깊은 상처가 되어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그 어린아이에게 큰 형님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우리 대성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어.” 이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형님의 한마디가 위대한 작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이후로 70년 동안 꼬박 그림을 그려 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의 미술 전시회에서 어떤 아이가 수억 원 대의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어린아이에게 야단도 치지 않고 그냥 용서해 주었다는 일화가 그 방송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보험 처리도 할 수 있고 보상이나 배상도 요구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어? 내가 경험해 보아서 알아.” 상처를 받았던 사람, 상처를 아는 그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를 위한 마음이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함과 미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며 축복해 주십니다.>

 

다시 예수님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첫 번째로 ‘어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관점을 보고 나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니? 미숙하고 미완의 어린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축복해 주고 있지 않니? 너희 어른들도 내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여라.” 이러한 초청의 말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 그리고 청년주일을 보내며 가족을 생각하는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이는 것처럼 너희도 어린아이들을 격려하고 사랑해라.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하라”라는 말씀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들었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초대교회를 세우고 주님께 헌신했던 어떤 사람, 어떤 성도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성직자나 순교자가 되었을까요? 교회의 큰 일꾼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간 인물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그저 상상할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이 말씀은 어른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어린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족한 존재, 실수가 많은 미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어린아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넘어 부족함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자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삭개오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잘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다가오시지요. 그리고 그에게 예수님이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으로 취급받던 삭개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과 식사를 나누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사람들에게 버려진 존재,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장 삭개오를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막지 말라.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라는 말씀은 세리장 삭개오도 막지 말라는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죄인으로 여겨지던 이들을 막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들 가까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씀으로 변화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너무 멀리 왔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혹은 ‘나는 예수님에게 나오기에는 너무 허물이 많다’거나 ‘예수님께 나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혹시 있습니까? 어린아이를 기쁘게 맞아 주신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 6:20~22)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은 세리와 창녀, 가난한 자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음을 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b)

 

당시에 하나님의 나라와는 멀다고 여겨진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도리어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며 격려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어린아이들, 소외된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심지어 주님은 자신의 옆에서 죽어 가며 긍휼을 구하는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아이들은 부모의 손에 떠밀려서 예수님의 앞에 나왔을 것입니다. 정말 장난기도 많고 실수도 많았을 아이들을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누군가에게 끌려 나오신 분이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허물이 많아 하나님께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는 말씀으로 격려하며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맞아 주시듯, 나 같은 사람도 맞아 주시고 축복하시며 약속을 주시고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나의 모습은 절박하고 어렵고 힘든 삶이며, 돌아보면 너무나도 많은 문제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 같은 사람을 품에 안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잘 왔다.”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What Would Have Become of that Child?

          

Mark 10:13-16

 

Once when I was a boy, a grain mill owner shouted rough words at me for playing at the mill’s door. He scolded me so harshly for stepping up and down the door frame, considered bad luck in Korea, that I ran away, shocked and dazed. The incident affected me for quite some time after that, and I still remember it to this day.

 

When I was a boy, there were a lot of people who ignored and mistreated children.

 

When I was little, balls, such as soccer balls, were hard to come by. When my friends and I happened to get one, we would happily play with it, but sometimes it would go over a fence and into someone else’s home. While some adults readily gave it back to us, some didn’t and would even puncture it before returning it.

 

Thinking back on it, I cannot understand why they would do such a thing. But there was a time when children were considered a nuisance and ignored.

 

This is unimaginable these days.

 

If the treatment of children was such when I was little, how much worse would it have been 2000 years ago in Jesus’ time? While parental love for children would have been equally great, then and now, society’s treatment of children in those times would have been very poor.

 

At the time, there was a debate over whether a child would enter heaven if he/she died at a young age. This reflects people’s perception of children at the time: unfinished humans or adults in the making.

 

In Sparta, a city-state in Ancient Greece, newborns were abandoned on the basis of health or sex. Children’s rights were completely absent in those times.

 

However, our Scripture for today tells the story of a child. This is a precious text often read and meditated upon in May on Children’s Sunday. This is how the story starts:

 

“People were bringing little children to Jesus for him to place his hands on them, but the disciples rebuked them.” (Mark 10:13)

 

Here the “people” who brought little children to Jesus were most likely the parents. A parent’s heart is always overflowing with love for his/her child. Furthermore, at the time, there was a custom of taking children to the elders, the teachers of the law, or the rabbis on Jewish festivals, such as the Day of Atonement, for them to bless the little ones.

 

Accordingly, the parents would have taken their children to Jesus, who appeared to be an extraordinary rabbi, so that He could place His hands on them and bless them. However, the Bible states that when the disciples saw this, they rebuked them.

 

The disciples’ actions are a good reflection of the attitude toward, and prejudice against, children in those times. However, the passage immediately goes on to describe Jesus’ reaction to this:

 

“When Jesus saw this, he was indignant. He said to them,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Mark 10:14)

 

The Book of Mark especially notes that Jesus was “indignant,” angry. This shows that Jesus was displeased with the disciples’ behavior of ignoring children and casting them aside.

 

Then Jesus speaks again: “Truly I tell you,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Mark 10:15)

 

As we read these words spoken by our Lord, we think, ‘To receive the Kingdom of God and to enter it, we must become like little children! By taking a child as an example, Jesus is teaching us to become like little children!’

 

Then what does it mean to become like little children? How can we grownups become like little children?

 

‘Wouldn’t Jesus be referring to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children, such as their innocence and their complete trust in their parents?’ These are the thoughts that cross our mind.

 

Of course, such thoughts are a very reasonable interpretation of Jesus’ words.

 

By using the image of a child, Jesus explains the basic traits that the people, or members, of the Kingdom of God ought to possess. In other words, Jesus is saying that the Kingdom of God consists of people who are like little children.

 

As a result, we come to deeply reflect on what it means to become like little children.

 

We think of a child’s attributes, such as humility, dependance, trust, faith, and love. As Psalm 131 sings:

 

“My heart is not proud, LORD, my eyes are not haughty; I do not concern myself with great matters or things too wonderful for me. But I have calmed and quieted myself, I am like a weaned child with its mother; like a weaned child I am content. Israel, put your hope in the LORD both now and forevermore.” (Psalm 131:1-3)

 

Recalling such verses, we resolve to live our lives looking to God like this child above.

 

As I mentioned, such an interpretation is only natural and the most conventional; yet we need to view today’s text from a slightly different perspective. It is because this conventional understanding and interpretation are based on a wholly grownup’s point of view.

 

Then shall we revisit today’s Scripture from a child’s perspective? In biblical times, it was common to ignore and dismiss children. The disciples’ admonition of them, therefore, reflects the very culture of the time.

 

But look at what Jesus did. When He saw the adults ignore and scorn the children, how did our Lord respond to the children who came to Him?

 

He scolded the adults instead. And He tells them not to hinder the children from coming to Him. In fact, these words provided the basis for infant baptisms performed by all churches since the Early Church. Infants and children are incapable of confessing their own faith. They cannot understand the tenets of Christianity; nor can we explain them to them. Yet Jesus embraced these “incomplete” beings and forbade adults from hindering them.

 

Then our Lord said, “[…]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Truly I tell you, anyone who wi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like a little child will never enter it.” (Mark 10:14b-15)

 

If we have viewed these words from a grownup point of view until now, let’s reconsider them from a child’s perspective. Imagine a little child hesitatingly approach Jesus. The disciples scorn and scold him/her. Yet Jesus allows this child to come to Him and welcomes him/her instead, telling the disciples not to hinder him/her. He even adds that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What significance do our Lord’s actions and words have for the child? It is as if He is saying, “Child, you are more than qualified to come to Me. You are a citizen of the Kingdom of God. You are also a member of it.” Wouldn’t this be the meaning of Jesus’ words? “You are a citizen of the Kingdom of God. Children such as you are qualified to enter it.” Then Jesus held the child in His arms and laid His hands on him/her.

 

The children who experienced this—what would they have felt? These little ones, considered “incomplete,” would have been constantly scolded by their parents, shouted at for making mistakes, and rebuked by adults. But Jesus says to such children, “Children such as you are citizens of the Kingdom of God.”

 

Surely, this is a great encouragement to them. I wonder what later became of this child who heard such amazing words from Jesus Himself. What would have become of this child after hearing such words of encouragement, being laid hands on by none other than our Lord Jesus, and being blessed by Him?

 

Somang Church texts the title of the coming Sunday’s sermon in advance on Friday to those who have applied for the service. “What Would Have Become of that Child?” After this title was sent out, a former student of mine texted me:

 

Pastor, hello. 😊

“What would have become of that child?”

That child remembers the love and grace that was freely given to him.

And he is now resolved to share them with others.

Please pray that he will live out his resolution. 😊

God bless you, Pastor Kim. 😊

 

I had taught the sender of this text when he was in middle school. Now he is almost 50.

 

I often wonder. ‘What would have become of that child?’ Many faces come to my mind. The faces of the children whom I loved so dearly, cherished, and prayed for. What would they be doing now?

 

Anecdotes abound on how a word transformed a life. Yes, one word of encouragement can change a person’s life. I recently saw a video about Park Daesung, a master of ink drawing. He is currently one of the world’s best artists in the domain of oriental painting. When he was a boy, communist guerillas attacked his home and killed his father before his eyes. Due to this incident, he lost his left hand and had to live the rest of his life as a disabled person.

 

When he came in first in a running race in grade 2, one of the kids said, “I can’t believe that cripple came in first.” These words wounded him deeply. However, a completely different word spoken by his big brother transformed his life: “Daesung is really talented in drawing.” This one word spoken by his brother, which acknowledged and encouraged him, made him into one of the greatest artists of our time.

 

Not long ago, a little boy damaged one of Park’s works valued at hundreds of millions of won. But the artist just let the matter go. Park said, “I could have filed an insurance claim, or demanded indemnification. But I didn’t. It would have hurt the boy.” Park was an adult who knew the hearts and hurts of children.

 

Let’s return to the story of Jesus. What would have become of that child who heard those amazing words of Jesus? Let’s use our imagination a bit. Wouldn’t that child later have become a faithful member, a committed saint, who built the Early Church and committed his/her life to Jesus? Wouldn’t that child have become a great servant and leader of the church?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Mark 10:14)

 

From the grownup’s perspective, these words seem to be teaching us to become like little children in order to enter the Kingdom of God. But from the child’s perspective, they are Jesus’ words saying He receives little ones like me just as I am—even though I am weak, am lacking, and make many mistakes and problems.

 

Therefore, these words are our Lord’s encouragement and invitation not just to children, but to anyone who is weak and lacking.

 

This is why Jesus befriended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Doesn’t Zaccheus’ story convey this very message to us?

 

Jesus approaches Zaccheus who had climbed up a sycamore-fig tree and tells him He wants to stay at his house. Our Lord came to Zaccheus, a scorned, lonely man considered a sinner.

 

After dinner, Zaccheus says to Jesus: “Look, Lord! Here and now I give half of my possessions to the poor, and if I have cheated anybody out of anything, I will pay back four times the amount.” (Luke 19:8)

 

At these words of Zaccheus, what did Jesus say to him?

 

“Today salvation has come to this house, because this man, too, is a son of Abraham.” (Luke 19:9)

 

Jesus, who commanded not to hinder little children, did not prevent Zaccheus, a chief tax collector, from coming to Him. Neither did He stop other tax collectors or prostitutes, considered sinners at the time, from coming to Him. Furthermore, He declared that the Kingdom of God belonged to such as these.

 

Do you think you have strayed too far? Do you think you are too weak to draw near to Jesus? Won’t Jesus, who gladly welcomed little children, embrace and receive you too?

 

Our Lord says: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Blessed are you who hunger now, for you will be satisfied. Blessed are you who weep now, for you will laugh. Blessed are you when people hate you, when they exclude you and insult you and reject your name as evil, because of the Son of Man.” (Luke 6:20-22)

 

Jesus’ words not to hinder little children from coming to Him are His words allowing tax collectors to come to Him and commanding not to hinder them. They are His words telling us not to prevent prostitutes from coming to Him and to let them draw near. They are also His commands not to prevent the poor from coming to Him. They are His words not to stop those who hunger, mourn, and are scorned from coming to Him.

 

Furthermore, our Lord declares that the Kingdom of God is near such as these: “[…]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Mark 10:14b)

 

Our Lord says this even to the thief who was crucified on His right side and sought His mercy: “Truly I tell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Luke 23:43)

 

Our Lord welcomed the little children, who were nudged by their parents to approach Him, and gave them the blessing of the Kingdom of Heaven. Have you, by any chance, come to church today because someone led you here? Jesus welcomes you warmly. He says,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Jesus who welcomed even little children will embrace us, bless us, and give us the Kingdom of God that He has promised us as a gift. This is the faith that we all must have as we approach our Lord. All we can do is to offer thanksgiving and praise to our Lord who receives us just as w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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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어린아이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부족함과 미완으로 대표되는 존재였습니다.>

 

옛날에는 방앗간이 참 많았습니다. 방앗간을 가깝게 사용하는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연초나 명절이 되면 떡을 만들어 먹기 위해 방앗간을 방문하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방앗간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매우 어렸을 때, 가래떡을 뽑으러 할머님과 가족들이 함께 방앗간을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떡이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서 뛰어놀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방앗간의 주인이 저에게 아주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이유는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가게의 문턱을 짓밟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이 연초부터 복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얼마나 호되게 야단을 치는지 깜짝 놀라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를 무시하거나 막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린아이들을 괜히 혼내는 어른들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동네에 공이 하나 생기면 어린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공놀이하곤 했는데요, 공이 그 당시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이 어떤 집 담벼락을 넘어가면 대체로 공을 다시 던져 주셨지만, 어떤 집에서는 절대로 공을 내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며칠 동안 공을 주지 않는 분도 있었고, 더러는 공을 찢어 던져 버리는 아주 나쁜 분도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어린아이들을 귀찮게 여기고 야단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상황이 그러하니,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어린아이의 상황은 어떠했겠습니까? 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겠죠. 그러나 어린아이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대우는 아마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랍비들 사이에서는 이런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죽게 되면 그 아이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 논쟁이 있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어린아이는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고 미완의 존재, 도상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건강 상태나 성별을 확인하고 아이를 버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어린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린아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5월이나 어린이주일이 되면 자주 읽고 묵상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막 10:13)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이들의 부모였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같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늘 여전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속죄의 날이나 명절에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랍비나 율법학자에게 안수와 축복을 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주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예수님에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안수와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들은 아이들이 축복을 받고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당시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하는 태도가 제자들에게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태도일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아닌 어린아이들에 대한 편견의 태도들이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전통적인 어른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말씀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반응하시는 장면이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마가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노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무시하고 밀어내는 모습을 마땅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5)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겠구나,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질문은 이렇게 이어지죠.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될 것입니다. 순수하고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는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죠.

물론 이러한 생각은 매우 타당한 해석의 한 방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특성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겸손하고 의존적이며 신뢰와 믿음을 갖고 전적으로 사랑과 복종을 하는 어린아이의 특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시편 131편의 말씀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 131:1~3)

 

젖 뗀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보고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순결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해석은 정통적인 해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오늘은 이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 해석은 전적으로 어른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실존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읽으면 어떻게 보일까요? 당시 어린아이들은 쉽게 무시당하고 배척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꾸짖는 그 모습이 그 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습니다. 이 어린아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습과 말씀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다가오려고 할 때,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도리어 어른들에게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0:14). 초대교회로부터 모든 교회는 이 말씀을 근거로 어린이를 위한 유아세례를 베풀어 왔습니다. 유아들은 아직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존재들이죠. 신앙의 내용도 잘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듯 불완전한 아이들이지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으시며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0:14b~15)

 

앞서 어른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다시 봅니다. 지금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님께 쭈뼛쭈뼛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꾸짖으며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아이야, 너는 지금 장난꾸러기이고 실수도 많이 하는 때지. 야단도 많이 맞고 어른들에게 볼품없는 존재로 여겨지지. 그러나 너는 나에게 오기에 합당하단다. 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야. 이미 너는 그런 존재다. 너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어.”라는 격려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너와 같은 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맨날 실수하고 혼나는 개구쟁이 같은 어린아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두 팔을 벌리고 멋지게 격려하면서 품에 안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며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한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늘 부모에게 혼나고 동네 사람들한테 종종 꾸짖음도 당하는 미완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어마어마한 격려의 말씀이 아니었겠습니까? 예수님께 놀라운 격려의 말씀을 듣고 축복과 안수를 받은 이 어린아이는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소망교회 설교 제목이 신청하신 분들에게 전달됩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제목이 보내지고서 한 제자로부터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ㅋㅋㅋ

반갑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목사님의 그 아이는

 

거저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베풀기 위해 다짐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해 주세요.

ㅎㅎㅎㅎ

 

건강하세요.

목사님 ^^”

 

중학교 시절에 만났던 아이는 이제 50대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 아이가 저에게 보낸 작은 소식 문자였습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성경 공부를 가르쳤던 아이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죠. 정말 깊이 사랑하고 아끼며 기도했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지방의 어느 방송사에서 만든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박대성 작가의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세계가 인정하는 동양화 작가로, 특별히 수묵화의 대가로 알려진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렸을 때 공비들이 쳐들어와서 아버지를 죽이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자신의 팔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병신이 되어서 살아간 인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달리기 시합에서 1등으로 들어왔는데, 그때 옆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우, 저 병신이 1등을 하네.” 그 말이 깊은 상처가 되어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그 어린아이에게 큰 형님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우리 대성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어.” 이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형님의 한마디가 위대한 작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이후로 70년 동안 꼬박 그림을 그려 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의 미술 전시회에서 어떤 아이가 수억 원 대의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어린아이에게 야단도 치지 않고 그냥 용서해 주었다는 일화가 그 방송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보험 처리도 할 수 있고 보상이나 배상도 요구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어? 내가 경험해 보아서 알아.” 상처를 받았던 사람, 상처를 아는 그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를 위한 마음이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함과 미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며 축복해 주십니다.>

 

다시 예수님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첫 번째로 ‘어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관점을 보고 나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니? 미숙하고 미완의 어린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축복해 주고 있지 않니? 너희 어른들도 내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여라.” 이러한 초청의 말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 그리고 청년주일을 보내며 가족을 생각하는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이는 것처럼 너희도 어린아이들을 격려하고 사랑해라.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하라”라는 말씀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들었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초대교회를 세우고 주님께 헌신했던 어떤 사람, 어떤 성도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성직자나 순교자가 되었을까요? 교회의 큰 일꾼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간 인물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그저 상상할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

 

이 말씀은 어른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어린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족한 존재, 실수가 많은 미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어린아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넘어 부족함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자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삭개오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잘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다가오시지요. 그리고 그에게 예수님이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으로 취급받던 삭개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과 식사를 나누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사람들에게 버려진 존재,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장 삭개오를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막지 말라.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라는 말씀은 세리장 삭개오도 막지 말라는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죄인으로 여겨지던 이들을 막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들 가까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씀으로 변화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너무 멀리 왔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혹은 ‘나는 예수님에게 나오기에는 너무 허물이 많다’거나 ‘예수님께 나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혹시 있습니까? 어린아이를 기쁘게 맞아 주신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 6:20~22)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는 이 말씀은 세리와 창녀, 가난한 자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음을 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4b)

 

당시에 하나님의 나라와는 멀다고 여겨진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도리어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며 격려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어린아이들, 소외된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심지어 주님은 자신의 옆에서 죽어 가며 긍휼을 구하는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아이들은 부모의 손에 떠밀려서 예수님의 앞에 나왔을 것입니다. 정말 장난기도 많고 실수도 많았을 아이들을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누군가에게 끌려 나오신 분이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허물이 많아 하나님께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는 말씀으로 격려하며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맞아 주시듯, 나 같은 사람도 맞아 주시고 축복하시며 약속을 주시고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나의 모습은 절박하고 어렵고 힘든 삶이며, 돌아보면 너무나도 많은 문제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 같은 사람을 품에 안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잘 왔다.”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막10:13~1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39, 56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들 중에, 기억에 남는 말, 마음에 새겨진 말들이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예전에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가 좋지 못했습니다. 어린이가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 물을 정도로 어린이는 미완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나오자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안수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나왔겠지만, 제자들은 당시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편견을 반영하는 태도로 이를 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겸손하고, 의존적이고,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어린아이의 특성을 생각해 봅시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배척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어른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이에게 “너는 나에게 나오기 합당하다. 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이미 너는 그런 존재다”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마어마한 격려의 말씀을 들은 아이는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뀝니다. 최고의 동양화가로 알려진 박대성 작가는 어린시절 상처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에 큰 형님의 “우리 대성이가 그림의 소질이 있다.”는 그 말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말씀을 들은 아이는 훗날 초대교회를 세우고 주님께 헌신했던 사람들 중에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부족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삭개오와 같은 사람들, 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미움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사람들의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오늘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자존감을 높여주고, 믿음을 세워주는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사랑의 말을 나누어 봅니다.
  2. 나의 여러 부족한 부분들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용납하여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받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부족한 모습이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온 우리를 부족하다 아니하시고,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우리도 받아 주시고, 더럽고 추한 우리도 받아 주시는 주님,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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