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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가 있는가

창세기 35:1~5

김경진 목사

2024.01.21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아시나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YI FU TUAN, 1930-2020)이라는 분이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은 1977년에 출간된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태어나서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이 <공간> 혹은 <장소>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감각을 통해 공간과 장소를 구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기준은 ‘가치’에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공간은 장소보다는 훨씬 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야말로 비어 있는 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었던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점차 장소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장소애(場所愛)라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요. 즉 인간이 공간 중에서 이동하는 중에 정지하게 되면(pause in movement), 그곳이 바로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연인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지금 이곳은 공간이겠죠. 그냥 비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전봇대 밑에 서서 둘이 키스하게 되었다면, 그 자리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을 더 깊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과 장소를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모든 사람은 공간이라는 곳에 살아가는 동시에 공간 안에서 장소를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푸 투안이 말하는 장소의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때로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가는 곳이 있기도 하고요. 사업을 위해서, 기타 여러 가지 일로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장신대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교계의 여러 단체에서, 어느 교회에서 학교 옆 호텔에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기억됩니다.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사기가 진작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참 교수님 중 몇 분은 호텔에 가서 식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곤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 신학생들에게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셨죠.

제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 해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두 주를 연달아서 호텔 뷔페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교수님들도 제법 흥분하셨던 것 같습니다. 한 주 가서 식사하고, 또 한 주가 지나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첫 번째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곳은 그리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식사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주시는 분을 보면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나고 두 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음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스시 코너로 기억됩니다. 그때 제 옆에 엄한 교수님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도 반대는 하시지만 모임에는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식사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그만 주방에 계신 분이 저를 알아보신 겁니다. 한 주 전에 인사를 해서 그런지 기억하시고는 알아보신 것 같았습니다. “아, 또 오셨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안녕하세요..”라고 침착하게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뒤에 계셨던 엄한 교수님께서 “이 사람 자주 와요?”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예, 우리 단골이신데요.” 그날 저는 호텔 식당의 단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엄하신 교수님 눈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늘 피해 다닌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에게도 단골 장소가 있으시죠? 혹시나 술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우리 단골이시네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자주 간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교회나 기도처를 제외하고 간 곳인데요. 첫 번째 장소는 김포공항입니다. 학업을 하다가 지친다 싶으면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보던 시간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유학을 떠나야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비행기를 탈 수 있겠지…’ 그렇게 비행기를 한참 보다가 집으로 돌아와 힘을 낸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로 자주 다닌 장소는 노량진의 수산시장입니다. 저의 비밀을 다 말씀드리는 것 같긴 합니다. 밤새 공부를 하다가 잘되지 않거나 힘이 빠지면 괜히 저 혼자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에 새벽 첫차를 타고 수산시장으로 향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새벽에 깨어 있다니…’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세 번째로 자주 간 공간은 병원의 응급실입니다. 지금도 종종 들리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통제하지 않아서 편하게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통제가 조금 심하기도 합니다. 응급실에 앉아있다 보면 사람들이 참 천차만별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다쳐서 들어오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오는 사람도 보게 되고, 전구를 갈려고 사다리를 타다가 그만 떨어져서 오시는 분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잠자기 전에 안약을 넣고 자려다가 알고보니 무좀약을 넣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참으로 유약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응급실을 나오곤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마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하시고 싶은 말씀이 꽤 많으실 겁니다.

 

<야곱은 공간이 장소로 변화되는, 벧엘의 경험을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그 자리가 있는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공간과 장소와 관련해서 본다면 ‘그 장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장소가 있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여러분이 가는 장소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덕스럽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서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만나시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에게 “당신에게 장소가 있다면 어디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벧엘입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벧엘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동생입니다. 그는 결국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하란 땅을 떠나서 한 곳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그곳에서 꿈을 꾸기 전까지는 그저 어느 한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1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성경은 분명하게 ‘한 곳’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장소가 아닌 공간입니다. 어느 공간에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자, 야곱이 어느 한 공간을 처음으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곳이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창세기 28장 12-15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줍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28:12-15)

 

야곱이 어느 공간에서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위에 서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내가 너를 고향 땅으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 일을 이루기까지 나는 너와 꼭 함께할 것이다.”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꿈을 꾼 후에 야곱에게 그곳은 ‘그 자리’, ‘그 장소’가 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28:16~17)

 

야곱은 이 자리를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말로 바꾸어 부릅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자리를 가리켜 ‘벧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벧엘은 이미 예비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시기로 작정하고 기다리신 장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린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야곱을 만나시고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지나가면서 머무른 곳이 하나님께는 이미 ‘그 자리’, ‘그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벧엘의 경험이 야곱에게는 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가 벧엘로 다시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어디에 있었기에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까? 삼촌 라반의 손에서 벗어나서 하란에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중에 에서의 위협이 있었지만 에서와 화해하게 되고,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먼저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는데, 그곳 장막터를 세겜의 아버지 하몰과 그의 아들들에게서 값을 치르고 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가정에 위기가 닥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세겜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난 것입니다. 디나를 폭행한 세겜은 야곱에게 디나를 자신의 아내로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용납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희 모든 가족들이 할례를 받게 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그때 디나를 줄 수 있겠다.”라고 거짓으로 약속합니다. 약속대로 세겜 사람이 할례를 받았을 때 몸이 불편한 틈을 타서 세겜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 앞부분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35:1)

 

위기가 도래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불러올리십니다. 그리그 그곳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이전에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꾼 후에 하나님과 약속한 적이 있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28:21~22)

 

그러나 정작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이 야곱과 그 가족이 보여 준 신앙의 현주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35:4)

 

야곱의 가족들은 이방의 신상들과 이방신을 섬기는 데 사용된 귀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야곱과 그 가족이 이방신을 섬기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벧엘로 부르셨고, 야곱과 가족들은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와 이방 신을 섬기던 물건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정결한 모습으로 벧엘로 다시 올라갑니다. 이것이 야곱이 경험한 벧엘입니다. 예배의 자리로, 서원한 자리로, 하나님과 만난 자리로,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벧엘’, 그 자리로 저와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소망의 모든 성도들이 벧엘의 경험을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자리,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 자리,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그 자리. 벧엘이 여러분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벧엘은 어떤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자리, 바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 교인들에게 벧엘은 곧 소망교회입니다. 이곳, 이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의 교육을 받고 자라나고 있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여러분에게는 벧엘입니다.

2020년 1월, 우리는 우한 폐렴의 위협을 느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난 2월 23일,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험을 직감하면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지킬 수 없는 것만 같아 안타까워하였고, 참 많이 눈물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에 새기며 전염병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하고 마음을 합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긴 포로의 기간이 끝나고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 예배가 익숙하여 예배당에 나와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 또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불러올리셨습니다. 야곱 역시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벧엘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이 예배당이 우리에게는 그런 곳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하거나 폄하할 마음은 결코 없습니다. 그 자리가 정말 예배의 자리가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언약의 자리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다만 그런 자리가 되지 아니하고 임시적인 자리로 머문다면 벧엘로 올라오시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우리 안에 다른 신상이 함께한다면, 이제는 벧엘로 다시 올라오시라고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젊은 분들이 더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온라인 예배를 더 선호한다네요. 거동이 불편하시기도 하고 예배당에 오시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집에서는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서 도리어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다면 나쁘지는 않겠죠. 그러나 여러 다른 환경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기에 우리에게는 예배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는 단지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찬송하는 성도님의 소리를 듣고, 찬양대의 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느낍니다. 이것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함께 느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을 받습니다. ‘흩어진 자를 모으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모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당에 나와서 먼저 앉아 있는 분을 향해 이곳이 내 자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땐 그 옆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올 한 해 ‘그 자리’를 함께 사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앞 좌석부터요. 사실 뒤에 계신 분들은 성도들의 노랫소리가 주는 전율을 잘 느끼시지 못합니다. 앞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필요합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예배당 앞자리가 여러분의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곳을 함께 공유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그 자리,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35:1)

 

‘그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어 ‘그 말씀이 있습니까?’ 질문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그 자리가 있습니까?’ 질문을 드립니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Do You Have That Place?

 

Genesis 35:1-5

 

Space and Place is a book by Yi Fu Tuan (1930-2020), who was a Chinese American geographer and world renowned humanistic geographer. After its publication in 1977, it has given great insight to many around the world. 

 

According to the author, the area man is born and lives in becomes “space” or “place.” But man instinctively differentiates the two with his senses as he lives.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space and place? It is value. According to Yi Fu Tuan, space is more abstract than place. He argues that space with no particular characteristics at first becomes place as we come to know it better and place value on it. 

 

He uses a special term, “topophilia,” defined as “the affective bond with one’s environment,” to explain this. Place is a pause in movement. Because of that pause, that halt, a certain place becomes the center of our values. 

 

For example, the place where you had your first kiss with your lover goes beyond the concept of space and becomes place. Summarizing such a profound book as Space and Place is hard, but since I have to go on with my sermon I will have to stop here.  

 

You may say although we inhabit a world called space, we live in and experience place in all that space. 

 

There will be a certain place that you often go to, even if it doesn’t exactly match Yi Fu Tuan’s concept of place. There will a place that you habitually visit for work, business, or other purposes. Where do you often go to? 

 

Let me tell you a story about when I had just become a professor at the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Near the school, there was a big hotel, and one of the professors who was senior to me was not very pleased with seminary students, professors, and pastors going there. He was a rather strict man. But back then the National Organization of the Korean Presbyterian Women or a church would sometimes invite the professors at the seminary to a special dinner or lunch to express their gratitude for the work we do.  

 

Once, however, I was invited to such a special occasion twice in two weeks. This did not happen often at all, but it did that year. One week, I was invited to an event at the hotel’s buffet restaurant; the next week, I was there again for another event. All the professors were there too at the second event. 

 

At the buffet I felt awkward because I wasn’t used to eating at buffets, so when I went to get my food, I said hello to the servers handing it out. The second time I went, however, the strict professor was standing right behind me as I went to get sushi. When I got my sushi, the server recognized me and said “hello.” I said “hello” back. Seeing this, the strict professor asked the server, “Do you know this man?” The server replied, “Of course. He’s a regular.” Just like the professor himself, I had gone there only twice, all on school business, but I had become a “regular.” The professor gave me such a look that I was embarrassed.  

 

You will also have a place that you often go to. Are there, by any chance, anyone sitting here to whom a bargirl would say, “Oh, he’s one of our regulars”? 

 

A pastor once told me a story of himself. He had entered seminary late in life after giving up a successful business he had been running for years. One Sunday, as he was seeing out his congregation after service, he spotted a woman who worked at a bar that he had often frequented. He was deeply flustered, but she came all the way up to him, shook his hand, and said, “Pastor, I liked your sermon today.” He said the incident made him recall his embarrassing past.   

 

What is that place that you often go to? When I was studying to become a pastor, I had three special places that I would go to, besides church and a place to pray. To this day, I cannot forget the three. The first is Gimpo Airport. When I was worn out from my studies, I would take the airport bus to Gimpo Airport, thinking, ‘I will have to study abroad someday…’ Gazing for hours at planes, a means of transport I had never taken in my life before, would help me clear my head. 

 

Second, I would go to Noryangjin Fisheries Wholesale Market. When I my studies didn’t go well even though I had studied all through the night, I would get discouraged: ‘Is it just me trying so hard?’ Then I would take the first bus at dawn and head to Norayngjin. The sight of all those people at the market working so hard from dawn would revitalize me, spurring me on to do my best again. 

 

The third special place for me was the emergency room. During a walk, I would just enter an emergency room of a hospital, and the sight of patients would make me acutely aware of the vanity of life and the weakness of man. My visits to the emergency room made me reflect on my own weakness and my fleeting life.  

 

I could go on forever with such stories. You too will have such a special place or places in your life. Place is a space with meaning. As Yi Fu Tuan said, place is a space to which we have added value.

 

The title of today’s sermon is “Do You Have That Place?” “That Place” here refers to place, the concept we have examined thus far, but, at the same time, it refers to a more restricted meaning of place. That place in my sermon’s title refers to “that place where we meet God,” “that place where we do God’s work.”  

 

I hope that the place you frequent will be a pleasing sight to the people around you as well as to God. Furthermore, I hope that in 2024 you will all have such a place where you encounter God.  

 

Today’s passage tells the story of Jacob returning to Bethel and building an altar there. 

 

I think Bethel was most likely “that place” for Jacob. 

 

After stealing Esau’s blessing, Jacob becomes a fugitive whose life is threatened. On his way to Haran, his mother’s home, he reaches a certain place. This place was just a space to him until he had a dream there. 

 

Genesis 28:11 states, “When he reached a certain place, he stopped for the night because the sun had set. Taking one of the stones there, he put it under his head and lay down to sleep.” Here we see the expression “a certain place.”

 

To Jacob that place was clearly “a certain place.” It was the first time he was there. But that space becomes a “place” where he meets God. In a word, it becomes “that place”: 

 

“He had a dream in which he saw a stairway resting on the earth, with its top reaching to heaven, and the angels of God were ascending and descending on it. There above it stood the LORD, and he said: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I will give you and your descendants the land on which you are lying. Your descendants will be like the dust of the earth, and you will spread out to the west and to the east, to the north and to the south.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offspring.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Genesis 28:12-15)

 

“A certain place” becomes “that place” after Jacob has a dream.

 

Jacob confesses: 

 

“When Jacob awoke from his sleep, he thought,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 not aware of it.’ He was afraid and said, ‘How awesome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is is the gate of heaven.’” (Genesis 28:16-17)

 

Jacob calls that place Bethel. That space was originally called Luz, but now he is inscribing that place in his heart as “his place.” Bethel, House of God… There he makes a covenant with God.   

 

Of course, from God’s perspective that place was the place where God had planned to meet Jacob and had waited for him, which I mentioned in one of my earlier sermons, “The Place That Became Bethel.” God was waiting for Jacob at the place where Abraham had already built an altar. To God, a certain place that Jacob happened to pass by was “the place,” “that place.” 

 

This was how Jacob’s Bethel came to be… Even after returning home, Bethel would still have a place in Jacob’s heart. Today’s passage is about his return to Bethel.  

 

After escaping a life of oppression under Laban and returning to his homeland, Jacob reconciles with Esau and starts a new life. First Jacob settles in Canaan where he buys a plot of ground from the sons of Hamor, the father of Shechem. But a crisis suddenly hits the family.  

 

Dinah, Jacob’s daughter is raped by Shechem, leading to a serious conflict with the people of Shechem. Shechem asks for Dinah’s hand in marriage.      

 

However, Jacob’s sons have no intention of accepting that request. After agreeing to accept the marriage only on the condition that all Shechem’s men be circumcised, Jacob’s sons violently kill all the men in the city of Shechem while they were still in pain due to circumcision. 

 

This incident results in a serious crisis for Jacob and his family. They can no longer live in the region. It is at this moment that God appears to Jacob: 

 

“Then God said to Jacob, ‘Go up to Bethel and settle there, and build an altar there to God, who appeared to you when you were fleeing from your brother Esau.’” (Genesis 35:1)

 

When a crisis struck, God called Jacob back to Bethel. And He commands him to build an altar there. In a sense, it is a collapsed altar. 

 

In fact, Jacob had promised God that he would serve only Him at Bethel. This is what he had promised: 

 

“so that I return safely to my father’s house, then the LORD will be my God and this stone that I have set up as a pillar will be God’s house, and of all that you give me I will give you a tenth.” (Genesis 28:21-22)

 

But what did Jacob do after returning home? Today’s passage describes how he actually lived:

 

“So they gave Jacob all the foreign gods they had and the rings in their ears, and Jacob buried them under the oak at Shechem.” (Genesis 35:4) 

 

Jacob’s family already had statues of foreign gods and earrings. Jacob who had resolved to serve only God was serving foreign gods with his family. 

 

But now God is calling him and his family again to Bethel. So they bury all their foreign gods, rings in their ears, and other objects of idolatry under an oak three and go up to Bethel. This is Bethel, the very place Jacob is experiencing. 

 

Dear Church, what kind of place are you in now? What places do you go to often? 

 

Jacob resolves to go back to Bethel in the face of a crisis in his life. No, God calls him back to that place, Bethel. God calls Jacob to return to the place of worship, the place where he made a promise to God, the place where he met Him. 

 

Although Jacob wandered for a while, he returns to that place. He goes back to the place where God was with him, the place where God’s promise which first started with Abraham is so alive and fresh. 

 

Dear Church, I hope all of you will now return to that place. I hope we will all be there together.  

 

That place is a place of worship. That place is a place where God becomes “my God,” where I become His people, His child. That place is a place where God’s promise is alive and vibrating. It is a place where God’s protection dwells. 

 

If you have gone astray for a while, now is the time to bury everything under the oak tree and draw near to the Lord again. Let us go to that place. 

 

For you, that place is the place of service and worship, your church. For members of Somang Church, that place is this very place of worship at Somang Church. It is here that you made a covenant with the Lord, that your children continue to grow in faith, that you were blessed by God. This place is your “Bethel.”   

 

In January 2020, we were worshiping together under the threat of a mysterious respiratory disease that started in Wuhan, China. After the Sunday service on February 23, 2020, Somang Church decided to temporarily switch to online services as the country faced a life-threatening situation due to the pandemic caused by Covid-19. 

 

At the time, we wept because it seemed we were failing to observe the Lord’s command to remember the Sabbath and keep it holy. But recalling the Lord’s command not to kill, we decided to endure a time of temporary “exile” during the pandemic.   

 

Finally in 2023 our time of exile ended, and we were able to come to church for offline worship. 

 

Yet many of us are still comfortable with online worship and do not come to church for services. Yes, God is everywhere, and we can worship anywhere. But we must remember that God called Jacob to Bethel. Jacob could have worshiped anywhere, and God could have been exalted anywhere; yet God made Jacob come up to Bethel.  

 

This very place is Bethel. I have no intention of banning online worship, which is necessary for some due to various circumstances; nor do I intend to denigrate it. If your online worship is truly “that place” for you, then good. But if it is not “that place” and only a temporary and comfortable place, then I ask that you return to that place. 

 

I thought that young people would prefer online service and that the older generation would find it unfamiliar. But as time passed, I discovered that the latter like it more. I have heard some elderly members of our church say that while they cannot hear the sermon well at church and have difficulty moving around, they can turn up the volume at home, which is why they prefer online worship.      

 

If you can have a deeper encounter with God in the place that you are worshiping, that may be good too; but since it is hard to concentrate on God in our various circumstances, we need a place for worship. 

 

Someone told me that he first listens to the Sunday sermon online and then comes to church for service. This is a person who desires a place of worship. It is my hope that we will all have such a revival this year.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want to increase the number of congregants. I say this because it is my earnest hope that each and every one of you, each of our congregants at Somang Church, will be in a place where they can encounter God.   

 

I believe this is my God-given mission as the senior pastor of this church. 

 

I hope that you will be in “that place” throughout 2024. Let us all please the Lord by being in that place of worship, that place of service to our neighbors, that place where we take on the ministry of the church.  

 

Let us remember God’s words to Jacob: 

 

“Go up to Bethel […] and build an altar there to God.” (Genesis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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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1~5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아시나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YI FU TUAN, 1930-2020)이라는 분이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은 1977년에 출간된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태어나서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이 <공간> 혹은 <장소>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감각을 통해 공간과 장소를 구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기준은 ‘가치’에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공간은 장소보다는 훨씬 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야말로 비어 있는 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특징이 없었던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점차 장소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장소애(場所愛)라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요. 즉 인간이 공간 중에서 이동하는 중에 정지하게 되면(pause in movement), 그곳이 바로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연인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지금 이곳은 공간이겠죠. 그냥 비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전봇대 밑에 서서 둘이 키스하게 되었다면, 그 자리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됩니다. 이것을 더 깊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과 장소를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모든 사람은 공간이라는 곳에 살아가는 동시에 공간 안에서 장소를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푸 투안이 말하는 장소의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때로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가는 곳이 있기도 하고요. 사업을 위해서, 기타 여러 가지 일로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장신대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교계의 여러 단체에서, 어느 교회에서 학교 옆 호텔에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기억됩니다.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사기가 진작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참 교수님 중 몇 분은 호텔에 가서 식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곤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이 신학생들에게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셨죠.

제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 해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두 주를 연달아서 호텔 뷔페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교수님들도 제법 흥분하셨던 것 같습니다. 한 주 가서 식사하고, 또 한 주가 지나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첫 번째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곳은 그리 익숙하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식사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주시는 분을 보면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나고 두 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음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스시 코너로 기억됩니다. 그때 제 옆에 엄한 교수님이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도 반대는 하시지만 모임에는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식사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그만 주방에 계신 분이 저를 알아보신 겁니다. 한 주 전에 인사를 해서 그런지 기억하시고는 알아보신 것 같았습니다. “아, 또 오셨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안녕하세요..”라고 침착하게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뒤에 계셨던 엄한 교수님께서 “이 사람 자주 와요?”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예, 우리 단골이신데요.” 그날 저는 호텔 식당의 단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엄하신 교수님 눈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늘 피해 다닌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에게도 단골 장소가 있으시죠? 혹시나 술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우리 단골이시네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자주 간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교회나 기도처를 제외하고 간 곳인데요. 첫 번째 장소는 김포공항입니다. 학업을 하다가 지친다 싶으면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보던 시간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유학을 떠나야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비행기를 탈 수 있겠지…’ 그렇게 비행기를 한참 보다가 집으로 돌아와 힘을 낸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로 자주 다닌 장소는 노량진의 수산시장입니다. 저의 비밀을 다 말씀드리는 것 같긴 합니다. 밤새 공부를 하다가 잘되지 않거나 힘이 빠지면 괜히 저 혼자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에 새벽 첫차를 타고 수산시장으로 향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새벽에 깨어 있다니…’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세 번째로 자주 간 공간은 병원의 응급실입니다. 지금도 종종 들리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통제하지 않아서 편하게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통제가 조금 심하기도 합니다. 응급실에 앉아있다 보면 사람들이 참 천차만별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다쳐서 들어오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오는 사람도 보게 되고, 전구를 갈려고 사다리를 타다가 그만 떨어져서 오시는 분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잠자기 전에 안약을 넣고 자려다가 알고보니 무좀약을 넣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참으로 유약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응급실을 나오곤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마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하시고 싶은 말씀이 꽤 많으실 겁니다.

 

<야곱은 공간이 장소로 변화되는, 벧엘의 경험을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그 자리가 있는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공간과 장소와 관련해서 본다면 ‘그 장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장소가 있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여러분이 가는 장소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덕스럽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서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만나시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에게 “당신에게 장소가 있다면 어디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벧엘입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벧엘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동생입니다. 그는 결국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하란 땅을 떠나서 한 곳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그곳에서 꿈을 꾸기 전까지는 그저 어느 한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1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성경은 분명하게 ‘한 곳’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장소가 아닌 공간입니다. 어느 공간에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자, 야곱이 어느 한 공간을 처음으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곳이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창세기 28장 12-15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줍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28:12-15)

 

야곱이 어느 공간에서 꿈을 꿉니다. 사닥다리가 위에 서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내가 너를 고향 땅으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 일을 이루기까지 나는 너와 꼭 함께할 것이다.”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꿈을 꾼 후에 야곱에게 그곳은 ‘그 자리’, ‘그 장소’가 됩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28:16~17)

 

야곱은 이 자리를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말로 바꾸어 부릅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자리를 가리켜 ‘벧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벧엘은 이미 예비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시기로 작정하고 기다리신 장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린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야곱을 만나시고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지나가면서 머무른 곳이 하나님께는 이미 ‘그 자리’, ‘그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벧엘의 경험이 야곱에게는 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가 벧엘로 다시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어디에 있었기에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까? 삼촌 라반의 손에서 벗어나서 하란에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중에 에서의 위협이 있었지만 에서와 화해하게 되고,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먼저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는데, 그곳 장막터를 세겜의 아버지 하몰과 그의 아들들에게서 값을 치르고 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가정에 위기가 닥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세겜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난 것입니다. 디나를 폭행한 세겜은 야곱에게 디나를 자신의 아내로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용납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희 모든 가족들이 할례를 받게 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그때 디나를 줄 수 있겠다.”라고 거짓으로 약속합니다. 약속대로 세겜 사람이 할례를 받았을 때 몸이 불편한 틈을 타서 세겜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 앞부분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35:1)

 

위기가 도래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불러올리십니다. 그리그 그곳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이전에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꾼 후에 하나님과 약속한 적이 있죠.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28:21~22)

 

그러나 정작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이 야곱과 그 가족이 보여 준 신앙의 현주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35:4)

 

야곱의 가족들은 이방의 신상들과 이방신을 섬기는 데 사용된 귀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야곱과 그 가족이 이방신을 섬기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벧엘로 부르셨고, 야곱과 가족들은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와 이방 신을 섬기던 물건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정결한 모습으로 벧엘로 다시 올라갑니다. 이것이 야곱이 경험한 벧엘입니다. 예배의 자리로, 서원한 자리로, 하나님과 만난 자리로,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벧엘’, 그 자리로 저와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소망의 모든 성도들이 벧엘의 경험을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자리,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 자리,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그 자리. 벧엘이 여러분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벧엘은 어떤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자리, 바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망교회 교인들에게 벧엘은 곧 소망교회입니다. 이곳, 이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의 교육을 받고 자라나고 있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여러분에게는 벧엘입니다.

2020년 1월, 우리는 우한 폐렴의 위협을 느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난 2월 23일,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험을 직감하면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지킬 수 없는 것만 같아 안타까워하였고, 참 많이 눈물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마음에 새기며 전염병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하고 마음을 합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긴 포로의 기간이 끝나고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 예배가 익숙하여 예배당에 나와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우리 또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불러올리셨습니다. 야곱 역시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벧엘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이 예배당이 우리에게는 그런 곳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하거나 폄하할 마음은 결코 없습니다. 그 자리가 정말 예배의 자리가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언약의 자리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다만 그런 자리가 되지 아니하고 임시적인 자리로 머문다면 벧엘로 올라오시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우리 안에 다른 신상이 함께한다면, 이제는 벧엘로 다시 올라오시라고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젊은 분들이 더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온라인 예배를 더 선호한다네요. 거동이 불편하시기도 하고 예배당에 오시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집에서는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서 도리어 좋아하신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다면 나쁘지는 않겠죠. 그러나 여러 다른 환경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기에 우리에게는 예배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는 단지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찬송하는 성도님의 소리를 듣고, 찬양대의 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느낍니다. 이것이 예배의 자리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함께 느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을 받습니다. ‘흩어진 자를 모으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모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배당에 나와서 먼저 앉아 있는 분을 향해 이곳이 내 자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땐 그 옆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올 한 해 ‘그 자리’를 함께 사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앞 좌석부터요. 사실 뒤에 계신 분들은 성도들의 노랫소리가 주는 전율을 잘 느끼시지 못합니다. 앞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필요합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예배당 앞자리가 여러분의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곳을 함께 공유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그 자리,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35:1)

 

‘그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어 ‘그 말씀이 있습니까?’ 질문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그 자리가 있습니까?’ 질문을 드립니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1월 2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그 자리가 있는가” (창 35장 1~5)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87장, 312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창 35장 1~5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월 2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차이가 있습니다. 별다른 특징이 없었던 공간은 우리가 그곳을 더 알게 되고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서 장소가 됩니다. 그 장소는 우리가 느끼는 가치의 중심지가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사무적으로, 혹은 사업을 위해 자주 가는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설교의 요약

 

오늘의 본문은 야곱이 다시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로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하란으로 가던 중, 어떤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가 그곳에서 꿈을 꾸기 전까지 그곳은 그냥 공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한마디로 “그 자리”가 됩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은 에서와 화해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가나안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세겜 사람과 갈등이 생겨납니다. 디나를 폭행한 세겜은 야곱에게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면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조건을 내 건 후에, 몸이 불편한 틈을 타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로 인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위기가 도래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야곱을 벧엘로 부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하였던 야곱은 이미 가족들과 더불어 이방신을 섬기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와 다른 신을 섬기던 물건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야곱은 삶의 위기 속에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는 결단을 합니다. 예배의 자리, 서원의 자리, 하나님과 만난 그 자리로 말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되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팔았다면, 이제 그 모든 것들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주님 앞으로 다시 나아가십시다. 그 자리로 나아가십시다.

 

 

나누기

 

  1.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2. 온라인 예배가 “그 자리”인가요, 아니면 다시 돌아가야 할 성전의 예배당이 “그 자리”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어디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장소를 초월하는 분이시지만, 우리는 한 장소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주님과 대면합니다. 야곱을 위하여 한 장소를 마련하시고, 그 자리에서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그 자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봉사하며, 그 자리에서 은혜를 얻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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