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기도의 모범

누가복음 22:39~46

김경진 목사

2025.03.30

<다가오는 수난 앞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겟세마네의 기도로 알려진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셨던 기도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모든 공관복음서가 다루고 있는데, 이번엔 특별히 누가복음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나누려고 합니다. 누가복음의 오늘 본문 말씀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종 나타나는 누가복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다른 복음서의 내용보다 분량이 적고 단순하며 간단합니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관점을 전해 줍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누가복음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늘 즐겨 하셨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 주는 복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후에 올라오셔서 기도하실 때 일어난 성령 세례가 누가복음 3장에 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눅 3:21~22)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다음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에도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선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 6:12~13)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다음 변화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눅 9:18, 28). 그리고 종종 자주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곤 하셨습니다(눅 11:1).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든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수난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본문 속에서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과 기도의 모범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 22:39)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습관을 따라”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습관적으로 기도하셨겠지만,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조금 더 의미심장합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 감람산으로 가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다 더 분명하게 해석하려면 바로 앞장인 21장 37절 말씀과 연결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오신 후에 낮에는 성전에 나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 머무시면서 기도하시고 쉬기도 하시며 잠도 주무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습관을 따라서 감람산으로 가시매”라는 말씀의 뜻은 늘 하시던 대로 일정을 마치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셨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신 곳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곳에 이르러… (눅 22:40a)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겟세마네’라는 특별한 장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이르렀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기도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시던 장소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상의 자리’에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듯 늘 기도하시던 자리에서 기도하셨지만,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의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늘 기도하던 자리였지만, 그날의 기도 자리는 비장했을 것입니다. 이미 제자들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감당해야 하는 시험 앞에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선 내용에는 ‘검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고, 더 나아가서 베드로에게는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는 말씀까지 이미 해 두신 터였습니다. 그러니 제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도 다가오고 있는 운명에 대해서 긴장된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비장한 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위기 속에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아는 장소로 예수님께서 가셨다”라는 말로 이 말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동선을 잘 알고 있죠. 예수님의 은신처가 감람산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는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올 것입니다. 이미 예상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일상적으로 가셨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수난을 간절히 피하기를 바라셨다면 늘 가던 장소로 가시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셔서 숨으셔야 했겠죠. 다른 곳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어야 했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운명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가 끝난 바로 다음 장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눅 22:47~48)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은신처를 알고 따라왔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라는 말씀은 수난을 당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수난이 앞에 놓여 있는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눅 22:40)

이 표현은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다른 표현과 아주 유사하게 보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 22:46)

이 단어가 한국어로는 한쪽에서는 ‘유혹’으로, 한쪽에서는 ‘시험’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원어로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pĕirasmŏs], peirasmos)’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시험에 들지 않게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제자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는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죠. 기도의 목적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네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라”, “성공하기 위해 기도하라”, “병이 낫기 위해 기도하라.”
이러한 표현이 기도의 동기와 열정을 불어넣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을 운명에 처했으니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 기도하라”고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시험이나 시련을 겪을 때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겪고 있을 때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려움과 고통, 심지어 박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의 마음을 조율하여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두드러진 장면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본능적인 뜻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이를 믿음과 신뢰로 메꾸려고 노력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 관점에서 오늘의 기도를 다시 한번 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눅 22:42a)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잔이 옮겨지기를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룁니다. “어느 누가 스스로 죽음의 잔을 마시려고 하겠습니까? 죄도 없이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스스로 죽임을 당하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잔을 옮겨 주십시오.” 이 고백은 인간 예수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운명에 체념한 기도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시도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지만, 그와 반하는 나의 뜻을 강력하게 아뢰는 절규, 호소와 같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기도를 고치시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b)

이 지점에서 예수님의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과 정반대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 복종을 향한 그 투쟁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성경은 그의 땀이 핏방울과 같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천사들이 와서 함께 도왔다고까지 설명합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3~44)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도왔던 것은 예수님의 뜻을 관철해서 잔을 마시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힘써 기도하면서 땀이 핏방울처럼 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힘겹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결연한 싸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리는 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과 마음, 소원을 조정하여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기도의 모습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주저앉은 이들을 위하여 주님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에서 누가복음이 전하는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고 세 번 방문할 때마다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고 경책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단 한 번만 제자들을 향하여 가신 것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조금 야단치시며 안타까워하시는 듯한 표현이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반대로 다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또한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공관복음서와 누가복음이 다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육신이 약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누가복음에는 다른 흥미로운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슬픔’이라는 단어입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 22:45)

왜 이곳에 ‘슬픔’이라는 단어가 있을까요? 이 단어 속에 제자들에게도 이미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예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슬퍼서 잠이 들었다’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슬프셨기에 제자들이 잠자는 모습이 슬퍼 보였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제자들이 슬퍼서 잠이 들었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제자들이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고, 그래서 그들이 슬퍼하다가 잠이 들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슬퍼했을까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3년 동안이나 따르면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슬퍼서 기도할 수조차 없는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의 경험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슬플 때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슬픔 때문에 믿음이 자라나지 않고,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꼭 이렇게 하셔야만 했을까?’ 생각하는 상황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슬퍼지죠. 우리는 신앙적으로 지독한 슬픔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꼭 필요한 사람을 데리고 가셨을 때, 너무나도 때가 아닌 것 같은 시기에 형벌 같은 불행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지독한 슬픔을 경험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할 힘조차도 없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잠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렇게 될 것을 염려하십니다. 내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에 나를 조율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토록 힘겹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셨습니다. 천사들이 도와주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어 가고 있는데, 제자들의 마음이야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도저히 하나님의 뜻에 맞출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힘조차 없습니다. 지독한 슬픔은 믿음을 잃게 만듭니다. 지독한 슬픔은 우리의 신앙을 잠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시죠.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 22:46)

예수님께서 잠든 제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이 아픔은 ‘내가 이제 곧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질 텐데, 너희가 이렇게밖에 못하느냐?’라는 짜증스러운 섭섭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슬퍼서 기도조차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조율할 수 없어서 낙망한 제자들의 모습에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천사들이 힘을 합하기까지 했던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 속에는 연약한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 그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죠.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눅 22:34)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2)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께서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연약한 사람들, 잠든 이를 위한 기도입니다. 슬퍼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중보의 기도입니다.
오늘도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예배의 자리조차도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퍼서 울다가, 또다시 울다가 잠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이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래니 울프(Lanny Wolfe)가 작사 작곡한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가 있죠. 가사가 이렇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Lanny Wolfe,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투쟁이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힘겨운 과정입니다. 특별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힘겹게 견뎌야 할 때, 이해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슬픔을 이겨 가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힘겨운 싸움이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주님께서 제일 먼저 견뎌 내셨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기도의 자리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어려운 상황이든, 좋은 상황이든 늘 기도하십시오.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면 더욱더 기도하십시오. 불행을 경험하고 있다면 결코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의 여러분을 향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Model Prayer

Luke 22:39-46

Today’s passage contains Jesus’prayergenerally known as the prayer at Gethsemane. Predicting His suffering and death, our Lord prays earnestly to God. This scene is recorded in all of the Synoptic Gospels, but today I would like to study the one in Luke.

Luke has a few characteristics that set Luke apart from the other Synoptic Gospels. One of Luke’s general traits is that its contents are shorter and simpler than the other gospels. Meanwhile, it offers some different contents and perspectives. In this regard, it is meaningful that we are studying Jesus’ prayer in Luketoday.

Luke repeatedly tells us that Jesus prayed, challenging us to do the same. As I have preached in previous sermons, Jesus prayed at every critical moment in His life; Luke not only tells us this fact but also that He prayed in earnest.

Luke writes that when Jesus prayed after being baptized, the Holy Spirit came upon Him: “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as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on him in bodily form like a dove.”(Luke 3:21-22a)Our Lord also prayed after healing a man with leprosy: “But Jesus often withdrew to lonely places and prayed.” (Luke 5:16) He prayed all night before choosing the Twelve: “One of those days Jesus went out to a mountainside to pray, and spent the night praying to God.When morning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chose twelve of them, whom he also designated apostles:”(Luke 6:12-13) He prayed after feeding the five thousand an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Luke 9:18, 28) He prayed often in lonely places as well. (Luke11:1)

And in today’s passage we see our Lord praying earnestly before the Passion. In it we will find the characteristics and model of Jesus’ prayer. This is how today’s text starts: “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and his disciples followed him.”(Luke 22:39)

One interesting expression unique to Luke is “as usual.” When we read this, we understand it to mean that Jesus prayed as usual, or out of habit. Of course, our Lord prayed as usual, out of habit. But this verse holds a deeper meaning.

Primarily, it is telling us that Jesus went to the Mount of Olives to pray as usual. This verse must be read in connection to the preceding chapter, more specifically, 21:37: “Each day Jesus was teaching at the temple, and each evening he went out to spend the night on the hill called the Mount of Olives,”(Luke 21:37) In other words, from entering Jerusalem until His suffering, Jesus spent each day according to a certain pattern. Each day, He taught in the temple during the day and at night He went to the Mount of Olives to rest and sleep. In this sense, the phrase “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may be read as Jesus going to the Mount of Olives as He did every day. So Luke is telling us that Jesus went to the very place that He went to each day. “On reaching the place, […](Luke 22:40a).”It is interesting that Luke does not mention the name of the place, Gethsemane. He just writes that Jesus reached “the place.”

First, we see in the scene of Jesus’ prayer at Gethsemane that He prayed at the usual place. In short, He prayed at the place He ordinarily went to every day. By not specifically mentioning the name “Gethsemane,” unlike the other gospels, Luke conveys the fact that Jesus’ place of prayer was not a special place, but an ordinary, daily one.

Although Jesus prayed at the place He always prayed daily, this time when He prayed on the Mount of Olives the situation was different. The time of His capture was drawing bear. Jesus of all people knew this well.

Although it was the same usual place where He had been praying, His prayer that night wouldhave been resolutely determined. The disciples would have noticedthis determination. And considering their previous conversation on “swords,” it seems they were instinctively aware that a crisis was nearing. Just before Jesus’ prayer at Gethsemane, Jesus had His last supper with His disciples during which He prophesied that Peter would deny Him three times. So that night, theatmosphere would surely have been extremely solemn.

But the statement that “Jesus went out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at this moment of crisis holds yet another meaning. It means that Jesus was preparing for the suffering ahead. Soon, Judas Iscariot would come with soldiers to capture Jesus. Jesus had already been predicting this. If He already knew Judas would come, He ought not to go to His usual place of prayer. He should hide elsewhere. But Jesus didn’tattempt toavoid His suffering through human methods. This is what happens after He finishes praying:

“While he was still speaking a crowd came up, and the man who was called Judas, one of the Twelve, was leading them. He approached Jesus to kiss him,but Jesus asked him, ‘Judas, are you betraying the Son of Man with a kiss?’”(Luke 22:47-48)

Therefore, that Jesus went up to pray “as usual to the Mount of Olives” means that Jesus went knowing that He would suffer and determined to accept His suffering. Already, Jesus was determined to obey the will of God.

Then our Lord says: “Pray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Luke 22:40) This expression reappears at the end of today’s text: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Luke 22:46) The Greek word for temptation is“πειρασμός (peirasmos).”So, as Jesus prayed on the Mount of Olives, He told His disciples twice to pray so as not to fall into temptation—beforeand after His prayer.

This shows how worried Jesus was for His disciples. So He urged them to pray.

From these words of Jesus we learn one reason we ought to pray. Why do we pray? These words give us an answer.

Why do we pray? Generally, we pray to tell God about what we want and, if possible, to achieve it. This makes the purpose of prayer gettingwhat we want. From this point of view, thefollowing statements on prayer may sound more familiar to us: “Pray to accomplish your will,”“Pray to succeed,” or “Pray so that you may be healed.” Of course, such statements give us the motive and passion to pray, and they are among our purposes of prayer, but Jesus teaches us in today’s Scripture that they are not the sole purpose for praying.

Jesus does not say, “Pray to persuade God.” Nor does He say, “Pray to move God’s heart and to change your destiny.”

He says, “Pray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n what does this mean?

Koreans joke that students taking the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should never recite the Lord’s Prayer. If they do, they will fail the test—because of the phrase “lead us not into temptation.”(T/N: In Korean “temptation” is translated as “siheom (시험),” meaning “test.”) So what does “lead us not into temptation” mean?

This is a plea asking that our faith not be weakened or lost when we are tempted or experience trials andunexpecteddifficulties. That is, when we are in trouble, let our faith not crumble.

Now let’s read the Jesus’command again: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Luke 22:46) Here we find one reason, one purpose of prayer.

We must pray so that we will not lose faith when we face trials, when our will is not aligned to God’s will, or when we are going through extreme difficulties and cannot understand His will. This is the reason we must pray even in trials, in pain, and even under extreme circumstances like persecution.

Something stands out in the scene of our Lord’s Passion. At this place of prayer, Jesus knew that there was a gap between God’s will and His own will, or His instinctive will. Yet our Lord tries to bridge that gap with faith and trust. This is what we see in our Lord’s prayer on the Mount of Olives.

Then let’s look at His prayer from this perspective: “Father, if you are willing,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Luke 22:42a)

Jesus wants His cup to be taken from Him. He honestly confesses this to God: “Take this cup from me.” Who on earth would willingly want to drink the cup of death? Who would enjoy being killed unjustly at a young age? “Take this cup from me.” This is an honest confession. This prayer is not a prayer thatleaves everything up fate in despair. It is a passionate petition to God. Although Jesus knew the will of God, He strongly appeals to God about His own will that is opposed to God’s will.

God, must I drink this cup? Can you, by any chance, change Your will so that I will not drink it?

However, Jesus revises His prayer in the next breath: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Luke 22:42b)

Here we reaffirm an attribute of Jesus’prayer. Throughprayer, He struggles to obey God’s will which is different from His own will. This was what Jesus did in His place of prayer.

Thisstruggle for obedience was so fierce that the Bible says that His sweat became like blood.Even an angel came to help Him pray.

“An angel from heaven appeared to him and strengthened him.And being in anguish, he prayed more earnestly, and his sweat was like drops of blood falling to the ground.”(Luke 22:43-44)

The reason the angel came and strengthened Jesus was not to help Him achieve His will and to change God’s will. The reason Jesus prayed so earnestly—to the point that His sweat became like blood—was not to achieve His will and to save His life.

Through prayer, Jesus fought hard to obey God’s will, although it went against His will. Jesus’ prayer was the process of a determined fight to obey God’s will. This is the model prayer that Jesus showed us.

Praying is not about getting our wishes, but the process of adjusting ourselves to God’s will and to change our thoughts, hearts, and wishes so that they become one with God’s will. This is true prayer.

Jesus’ prayer on the Mount of Olives has another unique characteristic. While in the other Synoptic Gospels Jesus awakens the disciples three times in order to tell them to pray, Luke only describes this once.

Furthermore, the reason that the disciples fall asleep is different. In the other Synoptic Gospels Jesus talks about the body being weak, but Luke inserts an interesting word as he describes this incident: sorrow.

“When he rose from prayer and went back to the disciples, he found them asleep, exhausted from sorrow.”(Luke 22:45) Why is the word “sorrow” used here?

This word reflects that even the disciples werepredicting Jesus’ death and suffering. The fact that they fell asleep in sorrow may mean they were too grieved to pray anymore.

The disciples were too grieved to pray. In life, we too experience times when we can’t pray and lose our faith because of sorrow.

When we cannot understand why God did what He did, a deep sadness engulfs our faith. When we lose a loved one, when God takes away a badly needed person from us, when misfortune comes at a most inopportune time like a punishment, we feel great sorrow. And that sorrow tests us.

Jesus was worried that this was precisely what may happen to His disciples. Aligning our will to God’s will is that hard. Even Jesus struggled to do this. An angel even came to strengthen Him and His sweat became like blood as He tried to align His will to God’s will. If it was so hard even for Jesus, how much more difficult would it be for the disciples? Extreme sorrow erodes our faith. It makes our faith fall into a slumber.

Jesus was worried about this difficult time that the disciples would face. That is why He tells them to pray.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Luke 22:46)

Yet the disciples fell asleep. How this would have pained our Lord! But this pain would not have been our Lord’s frustration at their inability to keep awake with Him and be at His side when He was suffering.It would have been pity for the weak human being, His disciples, who were disappointed and in despair because they couldn’t align their will with that of God’s.

That is why Jesus prayed on the Mount of Olives. Strengthened by an angel, Jesus prayed earnestly, and His prayers would have included prayers for His weak disciples.

In Jesus’ words to Peter preceding today’s text, we can see His heart. Jesus prophesies that Peter would deny Him thrice: “I tell you, Peter, before the rooster crows today, you will deny three times that you know me.”(Luke 22:34)
But at the same time our Lord says: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Luke 22:32)

Jesus says He prayed that Peter’s faith would not fail, that is, that Peter would not fall into temptation.

Therefore, Jesus’ prayer was for the weak. It was for those who had fallen asleep, those who couldn’t pray due to sorrow. Even today, there are those who cannot pray. They cannot pray because they are too grieved andsad, because they cannot understand God, because they cannot accept what is happening to them. They cry themselves to sleep only to wake up again and cry.

Jesus’ prayer was for such people.

You will be familiar with the song “Someone Is Praying For You” by Lanny Wolfe:

When it seems that you prayed ’til your strength is all gone,
and your tears fall like raindrops all the day long
Jesus cares and He knows just how much you can bear
He’ll speak your name to someone in prayer

Someone is praying for you
someone is praying for you
So when it seems you’re all alone, and your heart would break in two
remember someone is praying for you.
(“Someone Is Praying For You,”Lanny Wolfe)

Dear Church, prayer is not a struggle to get what we want. It is not a means to achieve our purpose, but a struggle to obey God’s will.

It is a hard fight fought to obey God’s will, to overcome sorrow, and to guard our faith, when trials come our way, when we are wronged, when we have to withstand unjust situations, and when we face incomprehensible, unacceptable situations.

Our Lord was the first One to be at that place of prayer; He prays for, and encourages, us who will also reach that place.

Dear Church, always keep your place of prayer. Whether happy, sad, or in difficulty, pray always. If you are going through hard, rough times, pray all the more. If you are experiencing misfortune, pray all the more. By doing so, guard your faith and don’t let sorrow put your soul to sleep. Get up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Even now our Lord is praying for you.

btn_switch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다가오는 수난 앞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겟세마네의 기도로 알려진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셨던 기도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모든 공관복음서가 다루고 있는데, 이번엔 특별히 누가복음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나누려고 합니다. 누가복음의 오늘 본문 말씀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종 나타나는 누가복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다른 복음서의 내용보다 분량이 적고 단순하며 간단합니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관점을 전해 줍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누가복음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늘 즐겨 하셨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 주는 복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후에 올라오셔서 기도하실 때 일어난 성령 세례가 누가복음 3장에 있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눅 3:21~22)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다음에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에도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선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 6:12~13)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다음 변화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눅 9:18, 28). 그리고 종종 자주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곤 하셨습니다(눅 11:1).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든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수난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본문 속에서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과 기도의 모범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 22:39)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습관을 따라”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습관적으로 기도하셨겠지만,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조금 더 의미심장합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 감람산으로 가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다 더 분명하게 해석하려면 바로 앞장인 21장 37절 말씀과 연결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오신 후에 낮에는 성전에 나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 머무시면서 기도하시고 쉬기도 하시며 잠도 주무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습관을 따라서 감람산으로 가시매”라는 말씀의 뜻은 늘 하시던 대로 일정을 마치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셨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신 곳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곳에 이르러… (눅 22:40a)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겟세마네’라는 특별한 장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이르렀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기도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시던 장소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상의 자리’에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듯 늘 기도하시던 자리에서 기도하셨지만,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의 상황은 예전과 사뭇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늘 기도하던 자리였지만, 그날의 기도 자리는 비장했을 것입니다. 이미 제자들도 그것을 눈치채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감당해야 하는 시험 앞에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선 내용에는 ‘검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고, 더 나아가서 베드로에게는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는 말씀까지 이미 해 두신 터였습니다. 그러니 제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도 다가오고 있는 운명에 대해서 긴장된 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비장한 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위기 속에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아는 장소로 예수님께서 가셨다”라는 말로 이 말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동선을 잘 알고 있죠. 예수님의 은신처가 감람산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가룟 유다는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올 것입니다. 이미 예상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일상적으로 가셨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수난을 간절히 피하기를 바라셨다면 늘 가던 장소로 가시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셔서 숨으셔야 했겠죠. 다른 곳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어야 했겠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운명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가 끝난 바로 다음 장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눅 22:47~48)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은신처를 알고 따라왔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라는 말씀은 수난을 당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수난이 앞에 놓여 있는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눅 22:40)

이 표현은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다른 표현과 아주 유사하게 보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 22:46)

이 단어가 한국어로는 한쪽에서는 ‘유혹’으로, 한쪽에서는 ‘시험’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원어로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pĕirasmŏs], peirasmos)’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시험에 들지 않게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제자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는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죠. 기도의 목적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네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라”, “성공하기 위해 기도하라”, “병이 낫기 위해 기도하라.”
이러한 표현이 기도의 동기와 열정을 불어넣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기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을 운명에 처했으니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 기도하라”고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시험이나 시련을 겪을 때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겪고 있을 때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려움과 고통, 심지어 박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의 마음을 조율하여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두드러진 장면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본능적인 뜻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이를 믿음과 신뢰로 메꾸려고 노력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 관점에서 오늘의 기도를 다시 한번 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눅 22:42a)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잔이 옮겨지기를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룁니다. “어느 누가 스스로 죽음의 잔을 마시려고 하겠습니까? 죄도 없이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스스로 죽임을 당하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잔을 옮겨 주십시오.” 이 고백은 인간 예수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운명에 체념한 기도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시도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지만, 그와 반하는 나의 뜻을 강력하게 아뢰는 절규, 호소와 같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기도를 고치시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b)

이 지점에서 예수님의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과 정반대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 복종을 향한 그 투쟁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성경은 그의 땀이 핏방울과 같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천사들이 와서 함께 도왔다고까지 설명합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3~44)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도왔던 것은 예수님의 뜻을 관철해서 잔을 마시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힘써 기도하면서 땀이 핏방울처럼 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힘겹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결연한 싸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리는 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과 마음, 소원을 조정하여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기도의 모습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주저앉은 이들을 위하여 주님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에서 누가복음이 전하는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고 세 번 방문할 때마다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고 경책하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단 한 번만 제자들을 향하여 가신 것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조금 야단치시며 안타까워하시는 듯한 표현이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반대로 다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또한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공관복음서와 누가복음이 다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육신이 약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누가복음에는 다른 흥미로운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슬픔’이라는 단어입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 22:45)

왜 이곳에 ‘슬픔’이라는 단어가 있을까요? 이 단어 속에 제자들에게도 이미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예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슬퍼서 잠이 들었다’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슬프셨기에 제자들이 잠자는 모습이 슬퍼 보였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제자들이 슬퍼서 잠이 들었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제자들이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고, 그래서 그들이 슬퍼하다가 잠이 들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슬퍼했을까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3년 동안이나 따르면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슬퍼서 기도할 수조차 없는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의 경험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슬플 때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슬픔 때문에 믿음이 자라나지 않고,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꼭 이렇게 하셔야만 했을까?’ 생각하는 상황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슬퍼지죠. 우리는 신앙적으로 지독한 슬픔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꼭 필요한 사람을 데리고 가셨을 때, 너무나도 때가 아닌 것 같은 시기에 형벌 같은 불행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지독한 슬픔을 경험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할 힘조차도 없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 슬픔이 우리를 잠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렇게 될 것을 염려하십니다. 내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에 나를 조율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토록 힘겹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셨습니다. 천사들이 도와주고,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어 가고 있는데, 제자들의 마음이야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도저히 하나님의 뜻에 맞출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힘조차 없습니다. 지독한 슬픔은 믿음을 잃게 만듭니다. 지독한 슬픔은 우리의 신앙을 잠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걱정하시죠.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 22:46)

예수님께서 잠든 제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이 아픔은 ‘내가 이제 곧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질 텐데, 너희가 이렇게밖에 못하느냐?’라는 짜증스러운 섭섭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슬퍼서 기도조차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마음을 조율할 수 없어서 낙망한 제자들의 모습에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천사들이 힘을 합하기까지 했던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 속에는 연약한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 그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죠.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눅 22:34)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2)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님께서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연약한 사람들, 잠든 이를 위한 기도입니다. 슬퍼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중보의 기도입니다.
오늘도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예배의 자리조차도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퍼서 울다가, 또다시 울다가 잠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이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래니 울프(Lanny Wolfe)가 작사 작곡한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가 있죠. 가사가 이렇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Lanny Wolfe,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투쟁이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힘겨운 과정입니다. 특별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힘겹게 견뎌야 할 때, 이해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슬픔을 이겨 가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힘겨운 싸움이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주님께서 제일 먼저 견뎌 내셨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기도의 자리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어려운 상황이든, 좋은 상황이든 늘 기도하십시오.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면 더욱더 기도하십시오. 불행을 경험하고 있다면 결코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의 여러분을 향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의 모범” (눅22:39~46)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70장, 361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기도할만한 때가 있으셨습니까?

<설교의 요약>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예견하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습관을 따라”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고 주무셨는데, 그 날도 습관을 따라 평소 늘 계시던 일상의 장소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곳에 숨어 수난을 모면하지 않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의 결단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에라도, 고통과 박해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말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습니다. 천사들까지 와서 힘을 더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일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슬픔 때문에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슬픔 때문에 기도가 막히고, 믿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지독한 슬픔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오늘도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연약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힘겨운 과정, 슬픔을 이기며 믿음을 지켜나가는 힘겨운 싸움에 주님께서 제일 먼저 계셨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격려하십니다.

  늘 기도하는 자리를 만듭시다. 즐거울 때 기도하고, 어려우면 더욱 기도합시다. 믿음을 지키며 슬픔으로 영혼이 잠들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나누기>

1. 기도가 잘 되기도 하고, 기도가 잘 안되기도 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기도가 잘 되었던 이유와, 기도가 막히고 어려웠던 이유가 특별히 있으셨습니까?

2.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구역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힘겨운 믿음의 길에서 서로를 위해 중보하고 격려하며 함께 감당하는 구역이 되기를 위대 기도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수난의 자리로 나가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를 묵상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주님의 모습을 우리도 따라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오니, 우리의 기도의 자리에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순종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