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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삶과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동안 잘 보내셨는지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게 된 지 벌써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처소에서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계실 줄 압니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기쁨으로 돌아오리라’입니다.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아직 우리 상황이 편하지 않은데, 벌써 돌아올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배당으로 돌아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겠다는 의미에서 오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소망교회 목사로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한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예배당에 돌아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모습’으로 나아올 것인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다시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무엇을 들고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지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도 못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제목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벌써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여러분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껏 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일찍 집에 들어가고 가족의 안전을 염려하다 보니 가족과 더 친밀해진 것 같습니다. 다시 가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가족과 산책도 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나눠 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보낸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가족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고백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 중에도 우리는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다시 찾게 되어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쁘게만 살았는데,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는데, 왜 사는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내가 정말 제대로 살았는가? 바르게 걸어왔는가? 혹시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았는가? 쓸데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나 자신을 찾게 되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고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단 집단인 ‘신천지’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내가 신천지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나는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가? 무슨 목적으로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는가? 과연 신앙적으로 살아왔는가?”라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기간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잘 몰랐는데, 제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배당 문이 닫히고 나니, 내가 얼마나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가 찾아야 할 감사의 제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삶 속에서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시기를 감사와 사랑의 지혜로 보내는 소망의 성도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얼마 전 어느 교회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희에게 감사한 일이 무엇이냐? 학교도 못 가고, 교회도 못 가고 있는데, 감사한 제목이 있다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어떤 아이가 이렇게 문자로 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학교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있는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웃으셨어야 하는데, 여러분께서 웃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우리에게도 여러 감사 제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깊이 생각하시면서 그리움도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을 준비했는데,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과 각 처소를 담은 영상에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를 담아 보았습니다.
(영상 시청, 2분 15초)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
예배당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여전히 우리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전에 오르고픈 마음을 간절한 기도로 아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섬기던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였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서 이 어둠의 시간이 지나 함께 마음껏 예배할 날을 기대합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늘 기쁨으로 드나들던 예배당인데, 이렇게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공간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배당 문은 닫혔지만, 그러나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귀가 열리며,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자리는 비어 있지만, 저 빈자리가 바로 내 자리였음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큰 감사입니다.
우리 소망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님 중에 코로나19로 확진된 성도님이 계십니다. 찬양대 대원이자 집사님이신데, 얼마 전 퇴원을 하셨습니다. 건강하게 퇴원하시고, 지난 12일 저와 교우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편지 중 일부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찬양대에서는 릴레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 담임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 때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소식, 찬양대 담당 목사님께서는 기도문을 만들어 찬양대 전체가 밤 8시에 동시에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 새벽마다 말씀을 나눠 주시는 권사님,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사진으로 위로해 주시는 권사님, 힘이 되는 찬양과 영상을 공유해 주신 선생님과 집사님들의 수고와 격려, 매일 전화해서 저의 상태를 체크하고 설명해 주시면서 안심시켜 주신 찬양대 의사 선생님, 저를 아는 지인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저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다는 소식 등이 들려왔습니다. 혼자인 시간이었으나, 혼자가 아닌,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그의 친구들의 믿음으로 나음을 얻은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라는 말을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교회와 찬양대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세계가 하나인 것도 알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중보 해야 할 대상이 내 가족, 내 공동체뿐만 아니라 세계가 중보기도의 대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3주간의 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멋진 감사이지요? 저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우리 성도님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립니다. >
오늘 우리의 상황은 참 어렵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별히 사업을 하시는 분들,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이 큽니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감이 급습합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이, 또 내 가게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닙니다. 개학이 23일로 늦춰질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장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한 주를 더 버틸 힘이 없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라며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카톡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어린아이의 그림일기가 있습니다. 그림에는 온통 화난 사람들이 보이고,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방학이 길어지자 엄마들이 괴수로 변했다. 그중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사납다. 그래서 나는 아주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나는 아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것을 모르고 계실지 모르지만, 아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분은 사업하는 분대로, 또 가정은 가정대로, 이런저런 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사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환자들, 그분들의 가족, 또 그분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들일 것입니다. 올 초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있는데, 우한에서 가족이 격리되는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었습니다. 한쪽에는 환자 가족들이 서 있고, 한쪽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확진된 환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긴 줄이 그어져 있는데, 서로가 마주 보며 격려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중 한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환자로 확진된 엄마에게 아빠의 손에 들려 있던 도시락을 전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선 앞까지 가서 갖다 놓고 돌아오는데,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지도, 안아주지도 못하고, 돌아설 뿐입니다. 도시락을 받아든 엄마가 아이에게 “내가 꼭 살아서 올게. 아빠 말 잘 들으렴.”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아내에게 꼭 나아서 돌아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때 그 엄마가 살았을까? 살아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선교신학을 가르치시는 박보경 교수님이 대구 경북 지역에서 약 3주간 머물고 돌아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격리 생활을 하시고, 격리를 다 마친 뒤 글을 하나 쓰셨습니다. 그 글의 내용이 대구 경북 지역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감기몸살을 앓던 언니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언니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되었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설마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되고야 말았다. 뉴스로만 듣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가정에도 이렇게 갑자기 침입한 것이다. 언니는 확진을 받았으면서도 워낙 많은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자택에서 자가격리 하면서 대기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청에 연락했으나 계속 기다려 달라는 응답뿐이었다. 환자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지고, 의식도 조금씩 약해지는데, 더군다나 일주일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방 안에 계속 누워 있는 언니를 지켜보던 형부는 눈물로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죽더라도 링거 한 번 맞고 죽게 해 주셔야지요.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급차에는 산소호흡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라도 받게 해 주세요.” 119로 구급차를 불렀으나,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구급 대원은 눈물을 머금고 아픈 환자를 다시 내려놓고,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날 저녁 상태가 위급하여 다시 119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 안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이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병원 앞에서 마냥 기다리던 몇 시간을 보내던 형부는 구급 대원에게 병상이 마련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도록 해 달라고 애걸하는 상황이 됐다. 무작정 대기하고 있던 중 몇 시간 후, 기적같이 병상이 마련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후 겨우 안심을 한 것도 잠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졌으니 각오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하늘이 무너졌다. 지금도 언니는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났고, 대구는 이런 환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은 갑작스럽게 변해 버린 일상 때문에 총체적인 충격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통해하고 있다.
매스컴은 하루 사이 환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치료자는 몇 명쯤 나왔는지,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방송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정말 참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며칠 사이에 ‘감기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가 죽음의 지경까지 몰린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한 박보경 교수님은 그 와중에도 또 다른 감사의 제목을 올려놓으셨습니다. 그 내용도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와 내가 영상으로 들려오는 목사님의 찬송 소리와 함께 찬양할 때, 그리고 장로님의 기도에 맞춰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아멘, 아멘.”할 때, 그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다.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이 다가온 적이 얼마 만인지…. 또한 언니의 상태가 위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의 요청을 여기저기 청할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방법을 찾아주신 많은 분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에게 선을 베풀어 주시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에, 그나마 이렇게, 이만하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보내온 사랑과 격려로 인해 받은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는 이웃과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일이다. 이 감사의 고백이 오히려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 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아침, 박 교수님의 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감기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이 마감되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안에서 감사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감사, 이웃에 대한 감사,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감사입니다.
< 울며 씨 뿌리는 자가 마침내 기쁨의 단을 거둡니다. >
오늘 본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시편 126;1~4)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던 찬송입니다. 그들이 찬송하며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합니다. 포로로 잡혀가 예배드리지 못하던 때,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던 그때,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배당으로 올라가던 날을 기억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날,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우리 혀에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머잖아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예배당 문이 열리고 성도들이 가득 들어서는 그 날, 우리 입에 찬양이 넘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웃음이 넘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날을 기억하면서, 또 그 이후에도 그날을 기억하면서 예배의 자리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시편 126;4)
아직도 예배의 자리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달라고 강하게 청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그들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젠가 예배당으로 돌아갈 때, 성소로 나아갈 때, 자신들의 손에 곡식단이 들려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들고 하나님의 전에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울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씨를 뿌립니다. 성소에 올라가는 날 빈손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서, 곡식단을 들고 올라가고 싶어서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 주님의 성소로 들어서는 날,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만납시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당 문이 열릴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이 전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그저 기다렸다가, 잠시 쉬었다가, 숨을 고르고 들어오실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예배자가 되어 이 자리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어떤 변화를 얻어 예배자의 자리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무엇을 들고 들어오실 것입니까?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 무엇일까요?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이들과 함께 우는 일, 그들과 함께 애통해 주는 일, 그들이 속히 낫도록 힘써 도우며 기도해 주는 일, 이것이 바로 함께 울며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작게는 더는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 이것이 또 다른 씨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지만, 이로써 모든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도우며 불행에 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이것이 또 다른 울며 씨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픈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 치열하게 견디며 싸우는 일, 이것이 바로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는 엄마로서 자신의 일을 하고, 아빠는 아빠로서 치열하게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제물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인내의 과정을 통해 변화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귀한 제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여러 다른 장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지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 기쁨으로 함께 만나는 그 날, 우리가 준비한 예물을 들고 기쁨으로 주님을 찾아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변화된 모습으로, 정말 달라진 모습으로,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turn with Songs of Joy
Psalms 126:1-6
It’s already been three weeks since we startedto worship online. It may take longer for us to return to service as we know it. But our return must not be abrupt. That is, we must be prepared.
As your pastor, I would like to encourage you on a few points.
First,in this hard season, find things to be thankful for. We are unable to gather in church and faced with many difficulties. Still, I trust that you will be counting your blessings. For example, family time has increased, and father-child relationships are being restored.
Also, reflect deeply on yourself. ‘What did I live for? What will I live for? Do I have a true faith?’Through Shincheonji, we have come to reexamine the meaning ofgenuine faith, which is something to be thankful for. As we are prevented from worshipping in church, our love for it has been renewed. As such, weenjoy Hisblessings andhave many things to be thankful for. I hope this period will be a precious time of finding them.
Let me read you part of a thank you notewritten by one of our choir members who was hospitalized and recently released:
“I read the Bible and sang hymns every day to ease my anxiety. I heard that the choir was doing a prayer relay for me and Pastor Kim was praying for meat the early morning prayer.Every morning, a woman elder sharedBible verses, while others sentme videos of praise and encouragement. A doctor in our choir called me everyday to check up on my health. I was alone, but not alone. It was a time of grace. I was reminded of the story ofthe paralyzed man who was healed by the faith of his friends.”
“Through this ordeal, I have come to know that we are one in Christ. I especially thank the choir and the church for showing me that we are all connected by His love and blood. I also realized that the world is one, too. Therefore, I must intercede not just for my family and community, but for the world. Thank you, Lord, for allowing three weeks of rest and teaching me what it really means to walk with You.”
This letter filled me with so much pride for our congregation. I realize that this—that is, a heart of gratitude—is precisely what God wants from us in this time of difficulty.
We are facing hard times. It’s not easy togive thanks. Businesses, big and small, are worried about their very survival. Many people spend each day in fear and anxiety. Parents are stressed out by news that school closures may be extended. Some just can’t take it anymore. Children are frustrated, too. A screenshot of a boy’s diary went viral on Kakao Talk. Under a drawingof mad people, he wrote, “A long holiday has turned moms into monsters. My Mom is the scariest of them all.So, I am living in fear and pain.”
Recently, Professor Park Bokyung, a scholar of mission theology at the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wrote about her visit to Daegu on Facebook. Her sister in Daegu was ina critical condition after contracting Covid-19. Professor Park wrote:
“My sister, who showed symptoms of a cold,got worse and couldn’t even stand up. She was diagnosed with Covid-19. The virus which, up to that moment, was something that I had seen only on TVsuddenly invaded my family.”
“Although my sisterhad tested positive for the virus, all she could do wasto stay at home in isolation because there weretoo many people waiting to be hospitalized. She started to have difficulty breathing, her consciousness weakened, and, later, she couldn’t even get out of bed because she had not eaten for a week. My brother-in-law started to beg government officials and doctors with tears, ‘Please… she deserves at least some form of treatment before she dies, doesn’t she? Don’t you have respirators in ambulances? Please… let her use at least that…’”
“Even after an ambulance came, however, she still could not be hospitalized because there were no beds. Miraculously, after waiting on end, she was admitted. But we could not be reassured, and our hearts fell when the doctors told us to prepare for the worst as her condition had deteriorated too much. Even now, she is fighting death. All this happened in just a few days. Countless cases as ours are happening in Daegu. Our neighbors are stricken by grief as their lives have been turned upside down.”
Dear Church, how can we give thanks in such a situation? Yet, Professor Park did:
“Still, I must not forget to give thanks, even in this dark time. I am realizing how precious church service is. As my mother and I worshipped online, crying ‘Amen, Amen!’ to the message, we were filled with a totally new grace. I was desperate for the Word. I thanked the Lord for all the help and comfort He sent us as my sister fought death. I thanked the Lord for all the people who helped me when I was desperate. Words fail to express their love and encouragement. I am so thankful for friendswho came in this time of need. This thanksgiving strengthens my heart’s immunity.”
Like Professor Park, let’s find things to be thankful for in our circumstances. We can be thankful even in hard times. We are worshipping online. Let’s give thanks for this. Let’s find things to be thankful for. Let’s rejoice with the people around us.
Let me read from today’s scripture:
“When the Lordrestored the fortunes of Zion,we were like those who dreamed.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our tongues with songs of joy.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The Lordhas done great things for us,and we are filled with joy.Restore our fortunes, Lord,like streams in the Negev.” (Psalms 126:1-4)
The Israelites sang this song as they joyfully went up to the temple. Every time they entered the temple, they would reminiscethe Babylon captivity—a time when they were not able to worship in the temple. Theyalso recalled the day of freedom when they were finally able to return to Zion. Here we see that the Israelites are entering the place of worship with inexplicable joy. Every time they cameforworship, they remembered.
We, too, desire this joy. When we gather again for worship, our hearts will be filled with so much joy that it will be like dreaming.
“Those who sow with tearswill reap with songs of joy.Those who go out weeping,carrying seed to sow,will return with songs of joy,carrying sheaves with them.” (Psalms 126:5-6)
Why did the Israelites seek sheaves? It was because they wanted to carry them to the temple when they worshipped. This is why they “sowed with tears.”
Dear Church, we will return to worship. We will gather again. But what will we carry to worship when we return?What does it mean for us to “sow with tears”? Doesn’t it mean to weep for our neighbors who have “fallen into the hands of robbers”? Doesn’t it mean to pray for them and help them?
For doctors and nurses,“sowing with tears” will mean caring for the sick and saving patients. For patients, fighting the disease is to “sow with tears.” I believe we need this time. Now is an intense time to “sow with tears.” Through this process, we will be changed, ourselves becoming a perfect sacrifice to the Lord.
Dear Church, ask yourselves this question: ‘What will I carry to the temple when I return? What kind of worshipper will I be?’
Ijust received news that Professor Park’s sister passed away. After a hard fight, she is now in heaven with God. A part of me regrets not having prayed harder for her.
Dear Church, let’s pray for the sick. This is our way of “sowing with tears.” May we return to worship, carrying beautiful sheaves.
시편 126: 1 ~ 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삶과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
사랑하는 소망의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동안 잘 보내셨는지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게 된 지 벌써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처소에서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계실 줄 압니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기쁨으로 돌아오리라’입니다.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아직 우리 상황이 편하지 않은데, 벌써 돌아올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배당으로 돌아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겠다는 의미에서 오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소망교회 목사로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한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예배당에 돌아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어떤 모습’으로 나아올 것인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다시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무엇을 들고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지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도 못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제목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벌써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여러분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껏 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일찍 집에 들어가고 가족의 안전을 염려하다 보니 가족과 더 친밀해진 것 같습니다. 다시 가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가족과 산책도 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나눠 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시간을 보낸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가족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고백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 중에도 우리는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다시 찾게 되어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쁘게만 살았는데,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는데, 왜 사는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내가 정말 제대로 살았는가? 바르게 걸어왔는가? 혹시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았는가? 쓸데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나 자신을 찾게 되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고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단 집단인 ‘신천지’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내가 신천지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나는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가? 무슨 목적으로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는가? 과연 신앙적으로 살아왔는가?”라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기간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잘 몰랐는데, 제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배당 문이 닫히고 나니, 내가 얼마나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가 찾아야 할 감사의 제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삶 속에서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시기를 감사와 사랑의 지혜로 보내는 소망의 성도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얼마 전 어느 교회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희에게 감사한 일이 무엇이냐? 학교도 못 가고, 교회도 못 가고 있는데, 감사한 제목이 있다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어떤 아이가 이렇게 문자로 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학교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있는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웃으셨어야 하는데, 여러분께서 웃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우리에게도 여러 감사 제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깊이 생각하시면서 그리움도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을 준비했는데,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과 각 처소를 담은 영상에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를 담아 보았습니다.
(영상 시청, 2분 15초)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의 기도>
예배당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여전히 우리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전에 오르고픈 마음을 간절한 기도로 아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섬기던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였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서 이 어둠의 시간이 지나 함께 마음껏 예배할 날을 기대합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늘 기쁨으로 드나들던 예배당인데, 이렇게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공간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예배당 문은 닫혔지만, 그러나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귀가 열리며,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자리는 비어 있지만, 저 빈자리가 바로 내 자리였음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큰 감사입니다.
우리 소망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님 중에 코로나19로 확진된 성도님이 계십니다. 찬양대 대원이자 집사님이신데, 얼마 전 퇴원을 하셨습니다. 건강하게 퇴원하시고, 지난 12일 저와 교우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편지 중 일부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찬양대에서는 릴레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 담임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 때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소식, 찬양대 담당 목사님께서는 기도문을 만들어 찬양대 전체가 밤 8시에 동시에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 새벽마다 말씀을 나눠 주시는 권사님,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사진으로 위로해 주시는 권사님, 힘이 되는 찬양과 영상을 공유해 주신 선생님과 집사님들의 수고와 격려, 매일 전화해서 저의 상태를 체크하고 설명해 주시면서 안심시켜 주신 찬양대 의사 선생님, 저를 아는 지인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저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다는 소식 등이 들려왔습니다. 혼자인 시간이었으나, 혼자가 아닌,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그의 친구들의 믿음으로 나음을 얻은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라는 말을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교회와 찬양대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세계가 하나인 것도 알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중보 해야 할 대상이 내 가족, 내 공동체뿐만 아니라 세계가 중보기도의 대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3주간의 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멋진 감사이지요? 저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우리 성도님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립니다. >
오늘 우리의 상황은 참 어렵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별히 사업을 하시는 분들,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이 큽니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감이 급습합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이, 또 내 가게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닙니다. 개학이 23일로 늦춰질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장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한 주를 더 버틸 힘이 없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라며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카톡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어린아이의 그림일기가 있습니다. 그림에는 온통 화난 사람들이 보이고,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방학이 길어지자 엄마들이 괴수로 변했다. 그중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사납다. 그래서 나는 아주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나는 아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것을 모르고 계실지 모르지만, 아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분은 사업하는 분대로, 또 가정은 가정대로, 이런저런 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사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환자들, 그분들의 가족, 또 그분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들일 것입니다. 올 초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있는데, 우한에서 가족이 격리되는 장면이 촬영된 영상이었습니다. 한쪽에는 환자 가족들이 서 있고, 한쪽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확진된 환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긴 줄이 그어져 있는데, 서로가 마주 보며 격려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중 한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환자로 확진된 엄마에게 아빠의 손에 들려 있던 도시락을 전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선 앞까지 가서 갖다 놓고 돌아오는데,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지도, 안아주지도 못하고, 돌아설 뿐입니다. 도시락을 받아든 엄마가 아이에게 “내가 꼭 살아서 올게. 아빠 말 잘 들으렴.”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아내에게 꼭 나아서 돌아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때 그 엄마가 살았을까? 살아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선교신학을 가르치시는 박보경 교수님이 대구 경북 지역에서 약 3주간 머물고 돌아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격리 생활을 하시고, 격리를 다 마친 뒤 글을 하나 쓰셨습니다. 그 글의 내용이 대구 경북 지역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감기몸살을 앓던 언니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언니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되었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설마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되고야 말았다. 뉴스로만 듣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가정에도 이렇게 갑자기 침입한 것이다. 언니는 확진을 받았으면서도 워낙 많은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자택에서 자가격리 하면서 대기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청에 연락했으나 계속 기다려 달라는 응답뿐이었다. 환자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지고, 의식도 조금씩 약해지는데, 더군다나 일주일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방 안에 계속 누워 있는 언니를 지켜보던 형부는 눈물로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죽더라도 링거 한 번 맞고 죽게 해 주셔야지요.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급차에는 산소호흡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라도 받게 해 주세요.” 119로 구급차를 불렀으나,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구급 대원은 눈물을 머금고 아픈 환자를 다시 내려놓고,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날 저녁 상태가 위급하여 다시 119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 안에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이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병원 앞에서 마냥 기다리던 몇 시간을 보내던 형부는 구급 대원에게 병상이 마련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도록 해 달라고 애걸하는 상황이 됐다. 무작정 대기하고 있던 중 몇 시간 후, 기적같이 병상이 마련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후 겨우 안심을 한 것도 잠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졌으니 각오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하늘이 무너졌다. 지금도 언니는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났고, 대구는 이런 환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은 갑작스럽게 변해 버린 일상 때문에 총체적인 충격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통해하고 있다.
매스컴은 하루 사이 환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치료자는 몇 명쯤 나왔는지,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방송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정말 참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며칠 사이에 ‘감기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가 죽음의 지경까지 몰린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한 박보경 교수님은 그 와중에도 또 다른 감사의 제목을 올려놓으셨습니다. 그 내용도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와 내가 영상으로 들려오는 목사님의 찬송 소리와 함께 찬양할 때, 그리고 장로님의 기도에 맞춰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아멘, 아멘.”할 때, 그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다.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이 다가온 적이 얼마 만인지…. 또한 언니의 상태가 위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의 요청을 여기저기 청할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방법을 찾아주신 많은 분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에게 선을 베풀어 주시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에, 그나마 이렇게, 이만하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보내온 사랑과 격려로 인해 받은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는 이웃과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일이다. 이 감사의 고백이 오히려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 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아침, 박 교수님의 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감기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이 마감되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안에서 감사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감사, 이웃에 대한 감사,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감사입니다.
< 울며 씨 뿌리는 자가 마침내 기쁨의 단을 거둡니다. >
오늘 본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시편 126;1~4)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던 찬송입니다. 그들이 찬송하며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합니다. 포로로 잡혀가 예배드리지 못하던 때,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던 그때,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배당으로 올라가던 날을 기억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날,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우리 혀에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머잖아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예배당 문이 열리고 성도들이 가득 들어서는 그 날, 우리 입에 찬양이 넘치고, 우리 마음에 기쁨과 웃음이 넘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날을 기억하면서, 또 그 이후에도 그날을 기억하면서 예배의 자리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시편 126;4)
아직도 예배의 자리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달라고 강하게 청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그들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젠가 예배당으로 돌아갈 때, 성소로 나아갈 때, 자신들의 손에 곡식단이 들려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들고 하나님의 전에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울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씨를 뿌립니다. 성소에 올라가는 날 빈손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서, 곡식단을 들고 올라가고 싶어서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 주님의 성소로 들어서는 날,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만납시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당 문이 열릴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이 전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그저 기다렸다가, 잠시 쉬었다가, 숨을 고르고 들어오실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예배자가 되어 이 자리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어떤 변화를 얻어 예배자의 자리에 들어오실 것입니까? 무엇을 들고 들어오실 것입니까?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 무엇일까요?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이들과 함께 우는 일, 그들과 함께 애통해 주는 일, 그들이 속히 낫도록 힘써 도우며 기도해 주는 일, 이것이 바로 함께 울며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작게는 더는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 이것이 또 다른 씨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배당에 나오지 못하지만, 이로써 모든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도우며 불행에 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이것이 또 다른 울며 씨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픈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 치열하게 견디며 싸우는 일, 이것이 바로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는 엄마로서 자신의 일을 하고, 아빠는 아빠로서 치열하게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제물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인내의 과정을 통해 변화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귀한 제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여러 다른 장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지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 기쁨으로 함께 만나는 그 날, 우리가 준비한 예물을 들고 기쁨으로 주님을 찾아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변화된 모습으로, 정말 달라진 모습으로,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3월 1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기쁨으로 돌아오리라” (시 126:1-6)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38장, 49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 126:1-6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3월 1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요즘 우리의 상황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감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큰 기업은 큰 대로, 작은 기업은 작은 대로, 가게는 가게대로, 살길이 막막할 정도로 걱정이 많습니다. 이때 여러분에게 두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설교의 요약
첫째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기’입니다. 확진 판명을 받으시고 지난 12일에 퇴원하신 찬양대원이 보내주신 감사의 글입니다. “.. 찬양대에서는 릴레이기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 담임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 때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소식, 새벽마다 말씀을 나눠주시는 권사님, 저의 상태를 체크하고 설명해 주시면서 안심시켜주신 찬양대 의사 선생님, .. 이번 시기를 통해 제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중에 당사자 뿐 아니라 소망의 성도님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함으로 이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코로나 19 감염병이 우리에게 주는 이 공포는 사실, 그 감염병에 걸려서 몸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일입니다. 치료약도 없습니다. 그냥 내가 면역력이 약해서 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이 악화되면 누구든지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런 상황 속에도 앞의 찬양대원 집사님의 고백처럼, 우리를 감사의 고백으로 이끌게 합니다.
두 번째로 부탁드리는 것은 ‘그날을 준비하기’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날 멀리 포로로 잡혀가서 성전으로 올라가지 못하였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포로에서 해방되어 성전으로 올라가 예배했던 그 감격, 찬양이 가득 찼던 그날의 감격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리던 성전으로 올라갔던 그날을 생각하면서 노래 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6절). 이제 곧 우리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풀려나 감격가운데 성전으로 들어갔듯이 그렇게 예배의 자리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갈 것입니까?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서 준비하며 그 때를 기다리시겠습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눈물로 뿌리는 씨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 코로나 19의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견디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성전에 나아가는 그 날, 그 곡식 단을 들고 주님께 기쁨으로 나아갑시다. 내가 이 어려움 가운데서 눈물로 씨를 뿌려서, 얻게 된 귀한 열매, 그 열매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그러기 위하여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누기
1.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2.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 눈물로 뿌리는 씨앗은 무엇인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이 씨앗을 열매로 바꾸실까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어려운 가운데서도 눈물로 씨를 뿌려서 그 곡식, 열매로 주님께 나아가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을 기억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