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기억의 신비
<모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잊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또 기억받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기억한다는 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뇌의 기능으로,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기억은 우리의 존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도 기억은 존재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습니다. 반대로 잊히는 것은 소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잊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요즘 SNS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진과 글을 올립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까? 자신의 생각들을 알리며 존재감을 알리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며 세상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잊히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의 첫 감정이 어떠한지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갔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섰을 때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오고 한없이 슬프더랍니다. 세상은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갈 텐데, 나는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슬퍼졌다고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잘만 돌아가는데, 오직 나만 거대한 고통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구나.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나를 기억해 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음의 과정에서 느낄 고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잊힘’에 대한 공포입니다. 누구도 나를 기억해 주지 않고, 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완전히 삭제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줄어 갑니다. 잊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점차 존재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서 잊힘은 치명적이고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잊히는 것입니다.>
잊힘과 관련해서 믿는 사람들이 갖는 또 하나의 두려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잊힌다는 또 다른 두려움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에서 기도자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 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 (애 3:1~6, 새번역)
비슷한 상황을 노래하는 시편의 기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도 이제는 끊기는 것일까? 그분의 약속도 이제는 영원히 끝나 버린 것일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잊으신 것일까? 그의 노여움이 그의 긍휼을 거두어들이신 것일까?” 하였습니다. (시 77:7~9, 새번역)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로 70여 년을 보낸 후였습니다. 기성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성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돌 하나도 새롭게 올려진 것이 없었고, 하나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존재의 실오라기 같은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70여 년 동안 어떤 일도 하시지 않은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사 49:14)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몇십 년 정도까지도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났습니다.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났습니다. 그들은 한평생 동안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하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인가?” 그들은 다행히도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의 부존재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신이 나를 잊었다고 선언합니다. 대단한 섭섭함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대하시는 것처럼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시편 22편의 기도자가 이 느낌을 잘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1~2)
시편의 기도자는 자신을 돕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주시는 분이 왜 나에게는 냉정하신지에 대해서 토로합니다.
우리 조상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시 22:4~6, 새번역)
조상들의 기도와 다른 사람들의 기도는 들어주시는데, 왜 나는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지 않습니까? 왜 나를 이 고통 속에 묻어 두십니까? 이러한 처절한 탄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잊힌 것 같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은 쉽게 고쳐 주시는 것 같은데, 내 병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매우 섭섭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사 49:14)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내용을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반항하듯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이스라엘의 절망 섞인 탄식에 대해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숭고한 사랑인 ‘모성애’를 빌려 대답하십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사 49:15, 새번역)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시다’를 나타내는 단어인 ‘자카르(זָכַר[Zakar])’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추억을 떠올리는 의미를 넘어서는 말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자카르’는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행동하는 것을 함께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8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창 8:1)
성경은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라고 전하면서, 그때 바람이 불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알려 줍니다. 즉 하나님의 기억은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노아를 기억하시자 바람이 불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시니,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따라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항상 기억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기억하시며, 우리 삶에 언제나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현장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고난 속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인간을 대표한 탄원을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잊고 완전히 버려두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고,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을 감행하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으셨을까요?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서서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술을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잘 되거든 나가서 나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관원장이 자기를 기억하는 것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억압된 상황을 인간적으로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창 40:23). 요셉에게 관원장의 기억은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사람에게서 완전히 잊힙니다. 그렇게 감옥에서 2년 동안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요셉은 세상과의 모든 줄이 끊어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기억해 주어야 그곳에서 나갈 수 있을 텐데, 모두가 자기를 잊었습니다. 요셉이 느꼈을 존재론적 고독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적절한 시간, 적절한 때에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다시 세우십니다.
출애굽 사건도 그러합니다. 백성들은 430여 년간 애굽에서 살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1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닙니다. 무려 430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출애굽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 2:24~25)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넣으셨습니다.>
이렇듯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랑의 고백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49:1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왜 하필이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실까요? 손바닥은 우리가 일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늘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손은 무엇인가 만들고 일하는 데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겼다는 것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광대하고 바쁜 일과 중에도 때마다 손에 새겨진 나의 이름을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것은 온 우주의 많은 별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모든 것들과 더불어서 손바닥에 새겨진 저와 여러분의 이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겼다’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손에 글씨를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차카크(חָקַק[chaqaq])’는 돌이나 금속에 정을 대고 망치로 깊이 파내어 각인하는 ‘조각’을 의미합니다. 마치 문신과 같이 깊은 ‘상처’처럼 새기셨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말씀은 놀라운 말씀이자 주님의 경이로운 예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이 이사야의 예언이 역사의 어느 한 지점에서 어떻게 피비린내 나는 현실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좁고 가파른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을 한 남자가 걷고 있었습니다. 온몸은 채찍에 맞아 너덜너덜해 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박혀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골고다 언덕 정상에 다다랐을 때 로마 병정들은 그분을 거칠게 십자가 위에 누입니다. 그리고 차갑고 둔탁한 쇠망치와 커다란 대못을 들어 올립니다. “탕! 탕! 탕!”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한 뼘도 넘는 거친 대못이 주님의 손바닥 정중앙에 박힙니다. 살점이 찢기고 힘줄이 끊어지며 뜨거운 선혈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때 주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 상처 속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넣으십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이 손바닥에 너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이 못자국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이것은 나의 영원한 기억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세우시는 피 묻은 맹세의 자리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49:16)
못 박히신 손, 그 손의 상처는 부활하신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광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화려한 면류관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못 자국 난 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못 자국 난 손은 우리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을까’라고 의심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미시는 사랑의 증명서입니다.
<우리도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시며 주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를 손에 새겨 놓으신 수난의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한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기억하라는 부탁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할 테니, 너희도 나를 기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성찬의 자리에서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신실한 주님을 잊지 않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소망이 마지막 만찬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던 그 밤에 주님은 성찬을 재정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전 11:24, 새번역)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전 11:25, 새번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찬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수난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찢긴 살과 흘린 피를 우리의 몸속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손바닥이 왜 찢겨야 했는지를 우리 영혼의 골수에 새기는 일입니다.
여러분, “나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것은 권위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녀가 아버지를 잊고 방황하다가 캄캄한 세상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하며 던지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호소입니다. “제발 너희는 나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하듯이, 너도 너희의 심장에 나를 기억하여라. 너희가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먹을 때마다 나를 심장에 새겨라.”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까? 긴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깊은 탄식 속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손바닥을 함께 바라보며, 그 손에 새겨 놓으신 나의 이름을 봐야 합니다.
린 캐스틸 하퍼(Lynn Casteel Harper)의 저서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에 관련된 책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자는 내가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 내가 잊힌다는 그 자체가 큰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억해 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인간은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연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부족해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치매에 걸릴 수도 있겠고, 죽음을 맞이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와 모든 기능이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그 한 분이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존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기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꿀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신다는 기대를 가지고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he Mystery of Remembrance
Isaiah 49:14-17
The title of today’s message is “The Mystery of Remembrance.” We human beings remember. The word “to remember” has a profound meaning.
We tend to think of memory as a mere function of the brain. Memory is often thought of as simply storing information. But memory, or remembrance, from the biblical perspective, is “existence” itself. By being remembered by someone the worth of our existence is confirmed. Conversely, to be forgotten means to cease to exist.
That is why human beings strive endlessly not to be forgotten. These days, people constantly post photos and comments on social media. Why? And why do people reading such posts follow them? It appears to be the modern man’s desire to advertise, “I am alive.” It is man’s instinctive actions driven by his desire to “be remembered.” Modern people strive not to be forgotten in the world they are living in by constantly posting comments and photos online. This is because being forgotten on social network equals “social death.”
A man once told me what it felt like as he was leaving the hospital immediately after being diagnosed with a terminal illness. He said that the world looked completely different. A sudden loneliness and deep sadness came over him. He thought, The world will go on well without me. I will disappear and be forgotten forever in this world! This made him deeply sorrowful. The world continues to go on, while it is only me sinking in this great sea of pain. No one will remember me even if I were to disappear… He said tears flowed from his eyes.
Why do we fear death? Is it because of the pain we must experience in the process of dying? This may, of course, be one reason, but our greater fear is that we will be forgotten. The greatest misery of man is that no one will remember him, that his very existence will be totally erased from the face of the universe. This is death.
As we retire and get old, we experience that less people remember us. We try so hard not to be forgotten, but people’s interest in us fades inevitably. And we feel our existence gradually fading.
Regarding this theme of being forgotten, we believers have another fear that the people of this world do not have: the feeling that perhaps God has forgotten us. In Lamentations 3 it says:
“I am the one who has seen the afflictions that come from the rod of the Lord’s anger. He has led me into darkness, shutting out all light. He has turned his hand against me again and again, all day long. He has made my skin and flesh grow old. He has broken my bones. He has besieged and surrounded me with anguish and distress. He has buried me in a dark place, like those long dead.” (Lamentations 3:1-6 NLT)
A psalmist expresses similar feelings:
“Has the Lord rejected me forever? Will he never again be kind to me? Is his unfailing love gone forever? Have his promises permanently failed? Has God forgotten to be gracious? Has he slammed the door on his compassion?” (Psalms 77:7-9 NLT)
Some people feel the fear that God has perhaps forgotten them.
The people in today’s passage felt exactly this way. They had spent seventy years in Babylonian exile. A whole generation had died, and the temple in Jerusalem had long been in ruins. During that time there had been no sign of change in God’s temple, no shred of evidence of God’s presence. In that desperate reality that felt as if God was doing nothing for them for seven decades, the Israelites cried out:
“The LORD has forsaken me; the Lord has forgotten me.” (Isaiah 49:14 NIV)
Thankfully, they did not deny God or proclaim His death. They did not say that God was dead or that He did not exist. It seems they still acknowledged the existence of God. But they painfully declared that God had forgotten them.
Believers sometimes have similar experiences in life. We believe God is alive. We confess His reign and rule. Yet it seems God does not watch over me as He does others. We often feel spiritual isolation. In those times we feel frustrated and confused.
The psalmist of Psalm 22 confesses exactly this feeling: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Why are you so far from saving me, so far from my cries of anguish? My God, I cry out by day, but you do not answer, by night, but I find no rest.” (Psalms 22:1-2 NIV)
The psalmist feels sorrow toward God who does not help him. He seriously asks why the One who helps others does not help him:
“Our ancestors trusted in you, and you rescued them. They cried out to you and were saved. They trusted in you and were never disgraced. But I am a worm and not a man. I am scorned and despised by all!” (Psalms 22:4-6 NLT)
‘Why does God help others but is so harsh to me?’ They ask in pain. They fear they may have been forgotten by God.
As believers, we sometimes experience this feeling of being forgotten by God. It seems God readily grants others’ requests but ignores my prayers. Others’ illnesses are healed, yet my illness remains brutally forgotten and unchanged. In such moments we cry out in hurt:
“The LORD has forsaken me; the Lord has forgotten me.” (Isaiah 49:14 NIV)
So what does God say to us when we cry out in fear and pain?
Today’s passage is God’s word to those with such hearts, to His children who complain in protest.
To the Israelites who said God had forgotten them as if in rebellion, God answers:
“Zion said, ‘The LORD has forsaken me, the Lord has forgotten me.’ ‘Can a woman forget the baby at her breast and have no compassion on the child she has borne? Though she may forget, I will not forget you!’” (Isaiah 49:14-15 NIV)
In response to Israel’s cry of despair, God borrows the world’s most powerful and noble love — maternal love — to answer them:
“Can a mother forget the baby at her breast and have no compassion on the child she has borne? Though she may forget, I will not forget you!” (Isaiah 49:15 NIV)
In Scripture “to remember (zakar, זָכַר),” that is, God’s memory, does not mean merely recalling past events or thinking about memories in our minds. It signifies a concrete intervention and action for salvation. Zakar implies the beginning of action, not mere thought.
The first occurrence of “to remember” in the Bible is Genesis 8:1: “But God remembered Noah and all the wild animals and the livestock that were with him in the ark.” (Genesis 8:1 NIV) The Bible tells us that when God remembered Noah, a wind passed over the earth and the waters receded. In short, God’s remembrance brings events into motion and makes history. When God remembers, history happens. Something happens for the person whom God remembers.
Consider this meaning deeply.
Since God who did not forget Noah caused the wind to blow and the waters to recede, and since He does not forget me, does that not mean He is doing something for me now?
That God never forgets me means that everything happening now, including all that happens to me, occurs according to God’s remembrance.
This includes even painful realities. Because God always remembers me, He is at work for me even now.
“I will not forget you” is God’s declaration that He, the Lord, is actively working for you even now.
A God who never forgets us!
Think of Joseph. In prison he interpreted the cupbearer’s dream and begged him earnestly, “When you are well, please remember me.” For Joseph, the cupbearer’s remembrance was his only way out. But the Bible says, “The chief cupbearer, however, did not remember Joseph; he forgot him.” (Genesis 40:23 NIV) Joseph remained thoroughly forgotten and spent two more years in the cold prison. Imagine the ontological loneliness Joseph must have felt when every lifeline in the world was severed and he was erased from people’s memory. How despairing it would have been for him.
Yet though people forgot, God did not forget Joseph. God remembered him. And He raised him to be governor of Egypt.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is the same. The Israelites lived and were enslaved in Egypt for about 430 years. Not ten, not a hundred, but 430 years. But the Bible describes the beginning of the Exodus like this:
“God heard their groaning and he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with Isaac and with Jacob. So God looked on the Israelites and was concerned about them.” (Exodus 2:24-25 NIV)
God never forgot Israel. God never forgets me. Therefore, we must believe that He is working for us even now.
After declaring that even if a mother might forget, He will never forget us, God continues with the most astonishing declaration of love in the history of mankind:
“See,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Isaiah 49:16 NIV)
Why the “palms of my hands”? Why does He say He has engraved our names on His palms? The palm is where our eyes often rest—when we work, eat, shake hands, or pray. The hand is a vital part of our body for making and doing things.
That God has inscribed our names on His palms means that amid His vast, busy governance of the universe and every time He moves His hands, He sees “my” name engraved there. God gazes not only at the grand movements of the stars in the universe. His gaze is constantly fixed on the names engraved on His palms—yours and mine.
Here we should study the word “engraved” more deeply. It does not mean to just write something on one’s hand. The original Hebrew “chaqaq (חָקַק)” means to cut or carve deeply into stone or metal with a chisel and hammer—to literally “engrave.” In other words, God is saying He has inscribed our names on His palms like a tattoo, or rather engraved them like a deep wound.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Isaiah 49:16 NIV)
A truly astonishing statement.
We must see how this prophecy of Isaiah, which seems to be just a symbolic expression, became a bloody historical reality.
Two thousand years ago, on the narrow, steep Via Dolorosa in Jerusalem, a man walked the road of suffering. His body was torn by whipping, and His head pierced and bloody with a crown of thorns. It was Jesus Christ! When He reached the top of Golgotha, the Roman soldiers laid Him roughly on a cross. Then a cold, heavy hammer was raised.
“Bang! Bang! Bang!”
With sharp, shattering blows, a rough iron nail over an inch long was driven through the center of our Lord’s palm. Flesh was torn, tendons severed, hot blood gushed. What was the excruciating pain He felt then? It was not a mere physical pain. At the moment the nails pierced His palms, the Lord was engraving our names into that wound—letter by letter.
When the world discarded you as useless, when no one remembered your tears, the Lord opened His palms on the Cross and cried out, “See! I have carved out My flesh and engraved your name here so that I will not forget you, so that I will not lose you! These nail marks are my eternal remembrance of you!”
The Cross is the event in which God laid down His life so that humanity would not forget Him; but, at the same time, it is His blood-sworn vow that He will never forget us.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Isaiah 49:16 NIV)
Jesus’ nailed hands and the scars on His palms became a glorious mark even after His resurrection. The Lord did not show the doubting Thomas a glorious crown. Instead, He showed His him the nail marks on His palms.
Those nail marks are His identification of love that He shows us whenever we are suffering or doubting, ‘Has God forgotten me?’
The Lord speaks to us even now. ‘See, I have painfully engraved your name on these palms so that I will not forget you or lose you.’ The Cross is the climax of God’s remembrance, His promise that He will never forget us, humanity. It is the climax of God’s hope that He will not be forgotten by us.
The Lord’s Supper, the Last Supper, was an amazing covenantal act that expressed Jesus’ hope and desire that we would not forget the faithful Lord.
On the very night Jesus gave Himself up on this earth—on the night before He would engrave our names on His palms on the Cross—He instituted Holy Communion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1 Corinthians 11:24 NIV)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1 Corinthians 11:25 NIV)
Beloved friends, what does it mean to remember Christ’s passion and death during Holy Communion?
Each time we break the bread and drink the cup, we take into our bodies the Lord’s torn flesh and shed blood. By doing so, we are engraving into the marrow of our souls why the Lord’s palms had to be pierced. The moment we remember God, the dark clouds over our lives will withdraw, and the light of life of the One who engraved our names on His palms will begin to shine on our lives again.
My friends, how do these words sound to you? They are not an authoritative command from one sitting on a high throne. They are God’s anguished plea—an aching cry from a Father who fears His beloved child may forget Him and get lost in this dark world and lose the root of his existence and wither. ‘Please remember Me, so that you may live. As I have engraved you on My palms to remember you, engrave Me on the heart of your memory. Then no storm will swallow you.’
At this moment, is there anyone who is crushed under the weight of life and can barely breathe because of the pain?
Have you cried out to God, ‘Why have You forgotten me?’, because no matter how hard you pray with tears through the night, your reality remains unchanged?
Dear beloved, now lift your head from the abyss of despair and look at the hands of the risen Lord. Even now, He extends to you His nail-pierced hands that still bear the marks of the Cross, His palms on which your name is engraved.
With those compassionate hands our Lord wipes the hot tears from your cheeks and whispers to your soul:
‘My beloved son, my beloved daughter, I have never for a moment forgotten or forsaken you. Even when you forgot Me and wept alone, I looked at the name deeply engraved on My palm and suffered and wept with you. Even if the world turns away and forgets you, I will never let you go. It is because I cherish you more than My own life.’
Dear brothers and sisters, now take hold of those wounded hands of the Lord with faith. You can stop your miserable, painful struggle to prove your worth to the world. Instead, find true rest in the vast, overwhelming love of God who has forever engraved your name on His palms.
Because God, the Ruler of the whole universe, remembers you, you are already a victor that the world cannot defeat. As you confirm the clear engraving of your name on His palms in this time, your deepest despair will turn into a radiant hope, and the sighs from the depths of your heart will become praises of joy. Grasp the hand of the One who remembers us forever and walks with us to the end, and rise again with new strength. The Lord of Hosts is with you now and forever.
이사야 49:14~17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모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잊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또 기억받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기억한다는 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뇌의 기능으로,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기억은 우리의 존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도 기억은 존재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습니다. 반대로 잊히는 것은 소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잊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요즘 SNS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진과 글을 올립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까? 자신의 생각들을 알리며 존재감을 알리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며 세상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잊히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의 첫 감정이 어떠한지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갔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섰을 때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오고 한없이 슬프더랍니다. 세상은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갈 텐데, 나는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슬퍼졌다고 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잘만 돌아가는데, 오직 나만 거대한 고통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구나.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나를 기억해 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음의 과정에서 느낄 고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잊힘’에 대한 공포입니다. 누구도 나를 기억해 주지 않고, 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완전히 삭제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줄어 갑니다. 잊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점차 존재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서 잊힘은 치명적이고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잊히는 것입니다.>
잊힘과 관련해서 믿는 사람들이 갖는 또 하나의 두려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잊힌다는 또 다른 두려움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에서 기도자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 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 (애 3:1~6, 새번역)
비슷한 상황을 노래하는 시편의 기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도 이제는 끊기는 것일까? 그분의 약속도 이제는 영원히 끝나 버린 것일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잊으신 것일까? 그의 노여움이 그의 긍휼을 거두어들이신 것일까?” 하였습니다. (시 77:7~9, 새번역)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로 70여 년을 보낸 후였습니다. 기성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성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돌 하나도 새롭게 올려진 것이 없었고, 하나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존재의 실오라기 같은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70여 년 동안 어떤 일도 하시지 않은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사 49:14)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몇십 년 정도까지도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났습니다.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났습니다. 그들은 한평생 동안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하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인가?” 그들은 다행히도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의 부존재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신이 나를 잊었다고 선언합니다. 대단한 섭섭함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대하시는 것처럼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시편 22편의 기도자가 이 느낌을 잘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1~2)
시편의 기도자는 자신을 돕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주시는 분이 왜 나에게는 냉정하신지에 대해서 토로합니다.
우리 조상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시 22:4~6, 새번역)
조상들의 기도와 다른 사람들의 기도는 들어주시는데, 왜 나는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지 않습니까? 왜 나를 이 고통 속에 묻어 두십니까? 이러한 처절한 탄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잊힌 것 같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병은 쉽게 고쳐 주시는 것 같은데, 내 병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매우 섭섭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사 49:14)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내용을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반항하듯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이스라엘의 절망 섞인 탄식에 대해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숭고한 사랑인 ‘모성애’를 빌려 대답하십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사 49:15, 새번역)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시다’를 나타내는 단어인 ‘자카르(זָכַר[Zakar])’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추억을 떠올리는 의미를 넘어서는 말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즉, ‘자카르’는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행동하는 것을 함께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8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창 8:1)
성경은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라고 전하면서, 그때 바람이 불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알려 줍니다. 즉 하나님의 기억은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노아를 기억하시자 바람이 불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시니,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따라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항상 기억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기억하시며, 우리 삶에 언제나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현장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고난 속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인간을 대표한 탄원을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잊고 완전히 버려두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고,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을 감행하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으셨을까요?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서서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술을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잘 되거든 나가서 나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관원장이 자기를 기억하는 것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억압된 상황을 인간적으로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창 40:23). 요셉에게 관원장의 기억은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사람에게서 완전히 잊힙니다. 그렇게 감옥에서 2년 동안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요셉은 세상과의 모든 줄이 끊어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기억해 주어야 그곳에서 나갈 수 있을 텐데, 모두가 자기를 잊었습니다. 요셉이 느꼈을 존재론적 고독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적절한 시간, 적절한 때에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다시 세우십니다.
출애굽 사건도 그러합니다. 백성들은 430여 년간 애굽에서 살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1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닙니다. 무려 430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출애굽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 2:24~25)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넣으셨습니다.>
이렇듯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랑의 고백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49:1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왜 하필이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실까요? 손바닥은 우리가 일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늘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손은 무엇인가 만들고 일하는 데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새겼다는 것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광대하고 바쁜 일과 중에도 때마다 손에 새겨진 나의 이름을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것은 온 우주의 많은 별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모든 것들과 더불어서 손바닥에 새겨진 저와 여러분의 이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겼다’라는 단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손에 글씨를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차카크(חָקַק[chaqaq])’는 돌이나 금속에 정을 대고 망치로 깊이 파내어 각인하는 ‘조각’을 의미합니다. 마치 문신과 같이 깊은 ‘상처’처럼 새기셨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말씀은 놀라운 말씀이자 주님의 경이로운 예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이 이사야의 예언이 역사의 어느 한 지점에서 어떻게 피비린내 나는 현실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좁고 가파른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을 한 남자가 걷고 있었습니다. 온몸은 채찍에 맞아 너덜너덜해 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이 박혀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골고다 언덕 정상에 다다랐을 때 로마 병정들은 그분을 거칠게 십자가 위에 누입니다. 그리고 차갑고 둔탁한 쇠망치와 커다란 대못을 들어 올립니다. “탕! 탕! 탕!”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한 뼘도 넘는 거친 대못이 주님의 손바닥 정중앙에 박힙니다. 살점이 찢기고 힘줄이 끊어지며 뜨거운 선혈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때 주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 상처 속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넣으십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이 손바닥에 너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이 못자국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다. 이것은 나의 영원한 기억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세우시는 피 묻은 맹세의 자리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49:16)
못 박히신 손, 그 손의 상처는 부활하신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광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화려한 면류관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못 자국 난 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못 자국 난 손은 우리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을까’라고 의심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미시는 사랑의 증명서입니다.
<우리도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시며 주님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를 손에 새겨 놓으신 수난의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한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기억하라는 부탁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할 테니, 너희도 나를 기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성찬의 자리에서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신실한 주님을 잊지 않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소망이 마지막 만찬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던 그 밤에 주님은 성찬을 재정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전 11:24, 새번역)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전 11:25, 새번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찬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수난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찢긴 살과 흘린 피를 우리의 몸속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손바닥이 왜 찢겨야 했는지를 우리 영혼의 골수에 새기는 일입니다.
여러분, “나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것은 권위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녀가 아버지를 잊고 방황하다가 캄캄한 세상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하며 던지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호소입니다. “제발 너희는 나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하듯이, 너도 너희의 심장에 나를 기억하여라. 너희가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먹을 때마다 나를 심장에 새겨라.”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까? 긴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깊은 탄식 속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손바닥을 함께 바라보며, 그 손에 새겨 놓으신 나의 이름을 봐야 합니다.
린 캐스틸 하퍼(Lynn Casteel Harper)의 저서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라는 책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에 관련된 책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자는 내가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 내가 잊힌다는 그 자체가 큰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억해 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인간은 존엄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연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부족해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치매에 걸릴 수도 있겠고, 죽음을 맞이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와 모든 기능이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그 한 분이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존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기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꿀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신다는 기대를 가지고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억의 신비” (사49:14~17)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91, 31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하나님께 잊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기억은 단순히 정보 저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써 우리는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잊혀진다는 것은 곧 소멸을 의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은 경험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자 그들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절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성애를 빌려서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고 대답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억하다(자카르)’는 ‘구원을 위한 구체적인 개입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바로 바람이 불고 물이 줄어들었습니다(창 8:1). 요셉은 관원장에게 잊혔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430년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경이로운 사랑의 고백을 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 ‘새겼다(차카크)’는 정으로 쪼아 깊이 파내는 ‘조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상처처럼 새기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천 년 전 골고다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거친 대못이 예수님의 손바닥을 관통했을 때, 주님은 그 상처 속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넣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는 피 묻은 맹세입니다. 부활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못 자국은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라고 의심할 때마다 주님께서 내미시는 사랑의 신분증입니다.
또한 주님의 성찬은 우리가 주님을 잊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삶의 무게가 버겁고 “하나님조차 나를 잊으셨구나”라는 탄식 속에 있습니까? 이제 절망의 심연에서 고개를 들어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이름을 새겨놓은 그 상처 난 손을 우리를 향해 내밀고 계십니다.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시며 끝까지 동행하시는 그 능력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나누기>
1.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말씀이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나누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며 맡겨드릴 것은 무엇인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세상이 나를 잊은 것 같고, 나의 고통이 너무 길어 하나님마저 나를 잊으신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사람에게 기억되려 발버둥 치느라 지쳤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단 한 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면 내 존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음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바닥에 새겨진 나의 이름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상처 입은 손이 지금도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으며, 이제는 내가 주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안할 때나 고난 중에나 변함없이 주님을 기억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