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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긍휼을 입은 자인가

에베소서 3: 1 ~ 4

김경진 목사

2020.07.05

<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인생입니다. >

지난 주일 저는 ‘내가 긍휼을 입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잘나서일까?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일까? 하나님께서 나를 훗날 사용하시기 위해서일까?’라고 그동안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그러한 신앙의 태도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 중심의 신앙생활과 기복주의적인 신앙생활에서 한 걸음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부르셨다는 것, 나 같은 죄인도 사용하신다는 것, 주님의 복음에 방해꾼과 같은 나도 하나님께서 길이 참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전한 뒤에 몇몇 분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그중 이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지요?” “저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싶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그와 같은 메시지를 받고 사실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내가 긍휼함을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이유를 찾기 전에 ‘아직 나는 긍휼하심을 받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해요.’라고 간절히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의 절실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 몇 년째 자격 시험을 치르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보는데 몇 차례 떨어지면서 실망이 큽니다. 그분은 아마 늘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올해는 꼭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힘들게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제가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마 이런 기도를 드리실 것입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치료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실직해서 일자리를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이 어려움을 당해 극복하느라 애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한 가지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하고 당연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긍휼을 구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의 특권이자 권리입니다. 그 자체가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빈손으로 설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빈손에 무언가를 채워 주시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모습입니다.
제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신학대학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신학 공부를 한 후, 로스쿨에도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목사이자 변호사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변호하며 목회의 길을 가겠다는 포부를 가진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고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는데, 검사를 해 보니 처음엔 뇌수막종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계속 검사를 하며 진단했는데, 종양이 머리뿐만 아니라 임파선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곳에서도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최종 진단은 ‘림프종’이었습니다. 바로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참으로 힘들어하는 제자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가 그 제자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을 맞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아이를 바라보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은율입니다. 여러분도 기억나실 때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분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이 아이보다 더 급하고 절실한 기도 제목도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 분들이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긍휼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보다 “하나님, 저는 지금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긍휼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

저는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이유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는가?’ 지난 주일에 함께 읽은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14)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치도록 풍성하다!”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말한 뒤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16)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셨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사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입니다. 스데반이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가말리엘의 문하의 사람이었으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장차 유대교를 이끌어 갈 미래의 인재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거기서 그의 인생이 뒤바뀝니다. 다메섹에 올라가 눈을 고친 후에는 다메섹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추격자가 도망자로 바뀌는 기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 이후로부터 달라졌습니다. 그의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마지막에 목이 잘려 죽는 순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일까요? 정말 그렇게 확신할 만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습니까? 그가 말하는 긍휼은 어떤 것입니까?

< 사도 바울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다. >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회고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새번역)

이런 삶을 산 자가 과연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말합니다. 채찍과 돌로 맞았다고 합니다. 수없이 위협을 당했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 회상합니다.
이런 인생이 과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인생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인생이냐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난받았으나 정신적으로는 기쁘고 행복했다면 그래도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회고를 확인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8~30, 새번역)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정신적으로 괜찮았다면 그나마 견딜 만했겠지만, 바울은 정신적으로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처럼 그도 염려했고, 힘들어했으며,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아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마음도 들지 않게 했습니까? 마치 성자처럼 날마다 기쁨으로 살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2~24)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음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함에도, 끊임없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세상적인 감정, 사탄의 유혹을 끊어 내야만 했습니다. 영적인 전투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으려는 사탄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곤고함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정리하면, 그는 육체적으로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매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염려와 연약함에 싸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영적으로도 계속해서 죄의 유혹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엇이며,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육체의 가시를 제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 말씀이 이렇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린도후서 12:7~9 중)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세 번이나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 제하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기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토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 정도쯤은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

도대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어떤 긍휼을 입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에베소서 3:1~4)

차분하게 써 내려 가는 바울의 글 속에서 그가 강력하게 누리고 있는 한 가지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는 서신서를 통해 끊임없이 그 비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나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은혜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가 훼파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 소망이 있게 되었다는 사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비밀에 감격해 은혜가 충만함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또 다른 비밀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어지는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이 작용하는 대로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의 선물을 따른 것입니다. (에베소서 3:6~7, 새번역)

사도 바울이 유대인으로 살 때만 해도,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 안에 갇혀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안에 제한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굉장한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놀라운 구원의 경륜을 깨닫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8~9, 새번역)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비전’과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어떤 자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직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역’을 맡겨 주셨습니다. 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건강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꿈과 비전, 사역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사실을 노래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비전을 주셨다니, 이렇게 위대한 꿈을 주셨다니! 내 평생의 동력이 될 만한 소명을 주셨다니!”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이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우리 삶의 비전과 소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알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내가 만든 꿈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 하나님께 받았다고 생각되는 비전이 있습니까?
바울에게는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바울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살만한 동기를 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도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목회자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장로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권사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하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방언하는 일로, 어떤 사람은 선행을 베푸는 일로, 어떤 사람은 통역하는 일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유지하며, 어떤 사람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키우는 일로, 어떤 사람은 부모를 봉양하는 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비전으로 여기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삶의 은혜가 있습니까? 만약 그 은혜가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 때가 많고, 빈손으로 서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그렇게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마땅한 길이자 삶의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배우게 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이유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받아드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이유를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살 이유를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요, 넘치는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맥추감사주일’로, 많은 교회가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다시 돌아봅시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내 은혜가 족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크십니다. 나에게 소명을 주시고, 나에게 할 일을 주시고,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큽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Have I Been Shown Mercy?

Ephesians 3:1-4

The title of last week’s sermon was “Why I Was Shown Mercy.” I talked about why God show us mercy. It’s not because we are worthy, useful, or good. It is, as Paul said, because God wants to reveal that even the worst of sinners—like Paul and us—can be used for His purposes. I talked about how we must humble ourselves, viewing ourselves from the perspective of God and others.

Regarding last week’s sermon, I received a number of text messages: “Pastor, God will show me mercy, won’t He?” “I want to be shown mercy, Pastor. Please pray for me.” These messages shocked me a little. I realized that many of our congregants were seeking mercy itself, rather than the reason for being shown it. I realized that many of us were still earnestly awaiting the mercy of God.

This search for mercy is perfectly understandable. For example, if you have been failing a qualifying test for several years, you would, of course, pray for His mercy. Or you may be seeking His mercy because you haven’t found a spouse yet.You may be going through serious business difficulties. Or you may be praying for your children who are taking college aptitude tests. You may be getting treatment for an illness. You may be desperately looking for a job after being laid off. You may be having serious relationship issues.

All such people seek God’s mercy. They pray for protection, for mercy, and for God to solve their problems. As humans this is only natural. Seeking God’s help is precious in itself. Man has always prayed to God with his empty hands lifted up, asking that He would fill them.

A student of mine married his wife in seminary and now has a five-year-old son. Unfortunately, the boy was frequently ill, vomiting often. The doctors found a lump in his head. At first, they thought it was meningioma, but later they found tumors in his lymph glands and kidneys. Finally, he was diagnosed with lymphoma. This was a week ago. Yesterday was the father’s birthday. I was heartbroken to see a Facebook photo of him crying in front of a drugstore. The boy’s name is Ko Eunyul. Please, if you can, pray for him.

“Pastor, I want to be shown mercy. Please pray for me.” I know the depth of these words all too well. I constantly and earnestly pray that those who seek mercy will be shown it. For such people,considering “why I was shown mercy” may be a luxury. Because all they want is His mercy.

This got me thinking, though. How was Paul able to say that he had been shown mercy by God in front ofso many witnesses? What did Paul mean when he mentioned God’s mercy? What is God’s mercy?

In last week’s scripture Paul confesses, “The grace of our Lord was poured out on me abundantly, along with the faith and love that are in Christ Jesus.” (1 Timothy 1:14) After saying that he is the worst of all sinners, he goes on to say, “But for that very reason I was shown mercy so that in me, the worst of sinners, Christ Jesus might display his immense patience as an example for those who would believe in him and receive eternal life.” (1 Timothy 1: 16)

In the earlier part of 1 Timothy, Paul displays immense gratitude toward God and His grace for him. He is confident that God has shown him mercy. What made Paul have this attitude? What exactly is the grace and mercy that Paul says he received?

As you well know, Paul was formerly known as Saul. He persecuted followers of Jesus with enormous zeal. He was even present when Stephen, the first Christian martyr, was stoned to death. He was a student of Gamaliel, a perfect Pharisee, a citizen of Rome, a rare talent of Israel, and a prominent Jewish leader.

Saul, however, dramatically encounters Jesus on the road to Damascus. He was actually on his way to persecute the church. After this encounter, his life changed. He became a fugitive for testifying about Jesus before the Jews in Damascus. His life and fate changed, forever. He was finally martyred—beheaded, actually—after a religious trial. So was he shown mercy by God? Can you really say that he was shown mercy from a worldly perspective?

Listen to what Paul had to say to the church in Corinth:

“Are they servants of Christ? (I am out of my mind to talk like this.) I am more. I have worked much harder, been in prison more frequently, been flogged more severely, and been exposed to death again and again. Five times I received from the Jews the forty lashes minus one.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pelted with stones,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I spent a night and a day in the open sea, I have been constantly on the move. I have been in danger from rivers, in danger from bandits, in danger from my fellow Jews, in danger from Gentiles; in danger in the city, in danger in the country, in danger at sea; and in danger from false believers. I have labored and toiled and have often gone without sleep; I have known hunger and thirst and have often gone without food; I have been cold and naked. (2 Corinthians 11: 23-27)

Is this really a man who has received God’s mercy? Is all this God’s grace? Paul says that he got the forty lashes minus one five times. He was stoned and pelted. He says he has faced countless dangers and has known hunger, thirst, and cold. Truly, is this the life of a man who has received God’s mercy? Yet, Paul says he has received abundant mercy and grace—in spite of all this.

Then did he have a peace of mind through it all? His honest confession is that he was weak, tormented, and anxious like anyone else:

“Besides everything else, I face daily the pressure of my concern for all the churches. Who is weak, and I do not feel weak? Who is led into sin, and I do not inwardly burn?If I must boast, I will boast of the things that show my weakness.” (2 Corinthians 11: 28-30)

He was even tormented by good and evil fighting against each other within him:

“For in my inner being I delight in God’s law; but I see another law at work in me,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at work within me.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that is subject to death?”
(Romans 7: 22-24)

To summarize, Paul did not lead a comfortable life in terms of the flesh. He was stoned, was pelted, was imprisoned, faced starvation, and died a horrible death. Mentally, he had all sorts of weaknesses and anxieties like any other human being. Spiritually, he struggled with the law of sin that constantly tried to entrap him.

On top of that, he says God even gave him “a thorn in his flesh” which he so earnestly prayed that God would remove but didn’t. Instead God told him that His grace was enough:

“[…] or because of these surpassingly great revelations. Therefore, in order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I was given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Three times I pleaded with the Lord to take it away from me.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2 Corinthians 12: 7-9)

I cannot imagine the depth and width of God’s mercy and grace toward Paul that He should say, “My grace is sufficient.”

Let’s read today’s passage again. Paul is now in prison:

“For this reason I, Paul, the prisoner of Christ Jesus for the sake of you Gentiles—Surely you have heard about the administration of God’s grace that was given to me for you, that is, the mystery made known to me by revelation, as I have already written briefly. In reading this, then, you will be able to understand my insight into the mystery of Christ.” (Ephesians 3: 1-4)

In Paul’s calm tone we hear a strong confidence about one thing: that he has gained insight into the mystery of Christ which can be understood by reading his letters. This mystery is what excites him. It is what moves him. Paul tells us about this mystery:

“This mystery is that through the gospel the Gentiles are heirs together with Israel, members together of one body, and sharers together in the promise in Christ Jesus.I became a servant of this gospel by the gift of God’s grace given me through the working of his power.” (Ephesians 3: 6-7)

Why is Paul so grateful? What is the reason that he says such a sinner like himself has received God’s mercy? It is because he has gained insight into God’s administration of this mystery, which for ages past was kept hidden in God, who created all things. He has come to know this secret. This is what thrills him. Furthermore, he has been called to take part in this mystery. What an amazing grace!

Thanks to the gospel and Jesus who broke down all the barriers between him and God, Paul has become an heir in Christ, a member of His body, and a participant in God’s promises. Paul has come to know that God wants this great gospel—the administration of this amazing salvation—to be proclaimed, even to the Gentiles. He has come to know that he was called for this work. This is what he is so grateful for.

Paul confesses, “Although I am less than the least of all the Lord’s people, this grace was given me: to preach to the Gentiles the boundless riches of Christ, and to make plain to everyone the administration of this mystery, which for ages past was kept hidden in God, who created all things.” (Ephesians 3: 8-9)

To Paul, God’s mercy wasGod’s calling. God revealed His mystery to Paul. In other words, He gave him a vision. God gave him something to do. God didn’t give Paul a position. He gave him a work, a mission. He didn’t give him a job or a title. Nor did He give him resources, worldly authority, or health.

In a word, God gave him a reason to live. God having mercy on us is God giving us a purpose in life. This is grace. For Paul, this was His overflowing mercy. And this was enough for him. In spite of the fact that Paul was beaten, faced starvation and thirst, and was even beheaded, this—a purpose in life—was sufficient for him.

Dear Church, has God given you a purpose in life? If He has, then you have received His mercy. If you know what to live for and you accept that purpose as a holy and perfect calling from God, then you are blessed. You have been shown mercy.

Dear Church, what is God’s mercy to you? What is the mercy that you seek from Him? Of course, we mayask for His mercy in the many areas of life as we live in this world. And God answers those prayers. We experience His mercy when we receive His helping grace in times of need.

But there is another mercy, a true mercy, that we must ultimately seek—one that Paul teaches us. To Paul, receiving God’s mercy was discovering Paul’s reason for living. It was to become a tool for His will. Paul did not create his own vision. God gave it to hm. To Paul, this was grace, God’s overflowing mercy.

We are in the midst of a global pandemic of Covid-19. This says it all. Today many churches are celebrating the Feast of Harvest. But, in this crisis, what can we give thanks for? In this hard season, what is the purpose in life that God is giving me?

Dear Church,let’s thank the Lord for giving us a reason to live. We have been shown mercy b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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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 1 ~ 4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인생입니다. >

지난 주일 저는 ‘내가 긍휼을 입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잘나서일까?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일까? 하나님께서 나를 훗날 사용하시기 위해서일까?’라고 그동안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그러한 신앙의 태도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 중심의 신앙생활과 기복주의적인 신앙생활에서 한 걸음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부르셨다는 것, 나 같은 죄인도 사용하신다는 것, 주님의 복음에 방해꾼과 같은 나도 하나님께서 길이 참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전한 뒤에 몇몇 분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그중 이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지요?” “저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싶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그와 같은 메시지를 받고 사실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내가 긍휼함을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이유를 찾기 전에 ‘아직 나는 긍휼하심을 받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해요.’라고 간절히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의 절실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 몇 년째 자격 시험을 치르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보는데 몇 차례 떨어지면서 실망이 큽니다. 그분은 아마 늘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올해는 꼭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힘들게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제가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마 이런 기도를 드리실 것입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치료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실직해서 일자리를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이 어려움을 당해 극복하느라 애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한 가지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하고 당연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긍휼을 구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의 특권이자 권리입니다. 그 자체가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빈손으로 설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빈손에 무언가를 채워 주시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모습입니다.
제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신학대학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신학 공부를 한 후, 로스쿨에도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목사이자 변호사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변호하며 목회의 길을 가겠다는 포부를 가진 가정입니다. 그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고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는데, 검사를 해 보니 처음엔 뇌수막종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계속 검사를 하며 진단했는데, 종양이 머리뿐만 아니라 임파선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곳에서도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최종 진단은 ‘림프종’이었습니다. 바로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참으로 힘들어하는 제자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가 그 제자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을 맞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아이를 바라보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은율입니다. 여러분도 기억나실 때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분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이 아이보다 더 급하고 절실한 기도 제목도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 분들이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긍휼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보다 “하나님, 저는 지금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긍휼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

저는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이유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는가?’ 지난 주일에 함께 읽은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14)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치도록 풍성하다!”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또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말한 뒤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16)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셨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사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입니다. 스데반이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가말리엘의 문하의 사람이었으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장차 유대교를 이끌어 갈 미래의 인재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거기서 그의 인생이 뒤바뀝니다. 다메섹에 올라가 눈을 고친 후에는 다메섹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추격자가 도망자로 바뀌는 기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 이후로부터 달라졌습니다. 그의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마지막에 목이 잘려 죽는 순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일까요? 정말 그렇게 확신할 만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습니까? 그가 말하는 긍휼은 어떤 것입니까?

< 사도 바울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다. >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삶을 회고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새번역)

이런 삶을 산 자가 과연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말합니다. 채찍과 돌로 맞았다고 합니다. 수없이 위협을 당했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 회상합니다.
이런 인생이 과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인생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인생이냐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난받았으나 정신적으로는 기쁘고 행복했다면 그래도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회고를 확인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8~30, 새번역)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정신적으로 괜찮았다면 그나마 견딜 만했겠지만, 바울은 정신적으로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처럼 그도 염려했고, 힘들어했으며,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아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마음도 들지 않게 했습니까? 마치 성자처럼 날마다 기쁨으로 살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2~24)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음에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함에도, 끊임없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세상적인 감정, 사탄의 유혹을 끊어 내야만 했습니다. 영적인 전투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으려는 사탄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곤고함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정리하면, 그는 육체적으로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매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염려와 연약함에 싸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영적으로도 계속해서 죄의 유혹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엇이며,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육체의 가시를 제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 말씀이 이렇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린도후서 12:7~9 중)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세 번이나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 제하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기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토록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 정도쯤은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

도대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어떤 긍휼을 입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에베소서 3:1~4)

차분하게 써 내려 가는 바울의 글 속에서 그가 강력하게 누리고 있는 한 가지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는 서신서를 통해 끊임없이 그 비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나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은혜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가 훼파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 소망이 있게 되었다는 사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비밀에 감격해 은혜가 충만함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또 다른 비밀에 대해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어지는 뒷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이 작용하는 대로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의 선물을 따른 것입니다. (에베소서 3:6~7, 새번역)

사도 바울이 유대인으로 살 때만 해도,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 안에 갇혀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안에 제한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굉장한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놀라운 구원의 경륜을 깨닫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8~9, 새번역)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비전’과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이방인들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어떤 자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직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역’을 맡겨 주셨습니다. 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건강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꿈과 비전, 사역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사실을 노래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비전을 주셨다니, 이렇게 위대한 꿈을 주셨다니! 내 평생의 동력이 될 만한 소명을 주셨다니!”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이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우리 삶의 비전과 소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알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내가 만든 꿈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 하나님께 받았다고 생각되는 비전이 있습니까?
바울에게는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바울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살만한 동기를 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도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목회자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장로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권사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하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방언하는 일로, 어떤 사람은 선행을 베푸는 일로, 어떤 사람은 통역하는 일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유지하며, 어떤 사람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키우는 일로, 어떤 사람은 부모를 봉양하는 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비전으로 여기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삶의 은혜가 있습니까? 만약 그 은혜가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 때가 많고, 빈손으로 서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그렇게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마땅한 길이자 삶의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배우게 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이유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받아드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이유를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살 이유를 주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요, 넘치는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맥추감사주일’로, 많은 교회가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다시 돌아봅시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내 은혜가 족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크십니다. 나에게 소명을 주시고, 나에게 할 일을 주시고,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큽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2020년 7월 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나는 긍휼을 입은 자인가” (엡 3:1-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288장, 295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엡 3:1-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최근 몇 년간 자격시험을 치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아직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이가 있습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의치 않고 위기가 참 많습니다. 이들 모두 하나님의 긍휼을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셔서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란 무엇일까요?

 설교의 요약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6).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정말 그렇게 긍휼과 은혜로 가득 찼을까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인재요 유대교를 지켜나갈 일꾼이었던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인생이 바뀝니다. 그리고 도망자가 됩니다. 감옥에도 살았고, 매도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고, 파선도 당해봤고, 강도의 위험에도 처해봤고 (고후 11:23-27), 마지막엔 참혹한 순교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모습일까, 하나님의 은혜일까?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바울은 거기에 더하여 육체의 가시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것이 떠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 12:7-9). 도대체 하나님은 바울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주셨기에, 그에게 얼마나 큰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바울이 그렇게 고백한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 (엡 3:6). 바울은 이 예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까지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이 놀라운 구원의 경륜(經綸, dispensation/섭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이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시는 삶의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내가 살아야할 목표가 보이고, 이것이 하나님으로 나오는 거룩하고 완전한 소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오늘도 척박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발견하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누기

 1.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간절히 필요한 하나님의 긍휼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긍휼은 ‘소명’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오늘 가정에서 일터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에 참여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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