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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창세기 26: 19~22

김경진 목사

2023.07.09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이삭은 이곳저곳에 정착하며 사는 나그네였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붙잡았던 야베스의 기도를 함께 생각해 보았죠. “내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내 지역을 넓게 해 주십시오.”라는 그 간절한 기도가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주일 설교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하던 그때,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그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며 친척과 가족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입니다. 고대 시대에 사람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 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그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은 인원이 움직이는데도 도적이 출몰할 수 있었고, 도시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죽임당할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어려운 정착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 아브라함의 순례 과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르라는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란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란에 이어 세겜으로, 벧엘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기근이 나자 이번에는 이집트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집트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벧엘 지역으로 올라오게 되고, 헤브론에 정착하게 됩니다. 단, 호바, 사웨 골짜기 등을 계속해서 거치게 되죠. 이후 헤브론에 다시 정착합니다. 이곳에도 기근이 들자 그랄 지역으로 옮긴 후, 브엘세바라는 곳에 잠시 머뭅니다. 그리고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가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게 됩니다. 정말로 많은 곳을 이동한 아브라함의 일생이었습니다.

그가 이동할 때마다 정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여행만 가도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낯선 이방 땅에서 정착하고 머물다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나서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찾아 움직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비슷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움직였겠죠. 브엘세바에 머무른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모리아 산에 올라간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헤브론에서 함께 살기도 했을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난 이후로는 그의 힘으로 순례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리브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독립해서 다른 곳에 잠시 산 것 같습니다. ‘브엘라해로이’라는 지역입니다. 성경에는 그곳에 흉년이 들어서 그랄 지역으로 옮겨 간 내용이 나옵니다. 어쩌면 이삭에게는 그랄로 옮겨가는 것이 인생에서 첫 번째 이동이자 모험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삭이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기보다 과거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머무른 장소로 올라갑니다. 바로 그랄 지역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아비멜렉이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전에 아버지와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기근이 심해지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한 모양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창 26: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지시하신 땅이 어디였느냐 하면,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그랄 지역이었습니다. 결국 이삭이 이곳 그랄 지역에 머물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삭이 거주하기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던 땅으로 보입니다. 그의 아내 리브가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나름대로 그랄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방편을 세운 것이지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껴안은 이삭을 보게 됩니다. 큰일 날 뻔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보호해 주는 명령을 내립니다. 리브가와의 결혼을 금지하는 명령을 선포하고 두 사람이 편안히 살도록 배려해 준 것입니다. 이제 그랄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삭이 이동하는 과정에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 이삭이 그만 거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창 26:12~14a)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계속해서 무엇인가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삭은 목축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양떼를 거느리고 소를 키우며 이동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랄에 어느 정도 안전이 유지되면서 농사를 짓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농사가 너무 잘되었어요. 그래서 곡식을 먹은 소와 양과 모든 가축들이 더 잘 자라게 됩니다. 아브라함 때에 미리 판 우물에서 충분한 물도 공급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가 된 이삭을 블레셋 사람들이 보면서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창 26:14b~15)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거주할 때 파놓은 우물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우물들을 이삭이 물려받아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랄 지역 사람들이 이삭 편에서 상속받은 재산과도 같은 우물을 모두 메꾸어 버리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삭이 억울함을 풀고자 그랄 지역의 왕 아비멜렉을 찾아갑니다. 아마도 종들을 책망하고 보상받기를 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

 

도리어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가라는 추방 명령입니다. 이삭이 억울하게 당한 것을 보상해 주기는커녕 나가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아브라함 때부터 그랄 지역에 머물고자 노력해 온 정착 과정이 허무로 돌아간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결국 그랄 땅을 억울하게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곳에 머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가 그랄 지역의 어느 골짜기에 들어가서 머물기 시작합니다. 골짜기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은 곳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 26:19~20)

 

‘에섹’이라는 단어는 ‘다투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지역에서 우물을 팠는데 또다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힘든 분쟁의 시작을 알려 주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이후의 일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 26:21)

 

‘싯나’라는 뜻은 ‘대적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갈등이 끊임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삭은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우물을 새롭게 팝니다.

 

이삭이 거기에서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 때에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가 살 곳을 넓히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하면서,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였다. (창 26:22, 새번역)

 

<쫓기고 쫓기던 이삭에게 넓은 곳이라는 르호봇우물이 솟아오릅니다.>

 

‘르호봇’이라는 뜻은 ‘넓다’, ‘넓은 곳’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드디어 마음 놓고 정착할 수 있는 자신들의 영역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이삭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은 듯 보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밀리고 쫓겨나는 사이에 이삭의 가족과 그 종들의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점차 강성한 족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삭을 향해 싸움을 걸어올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쫓기고 쫓기는 인생을 산 이삭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삭은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분들이 이삭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지 질문하곤 합니다. 당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맥을 찾는 방법도 몰랐을 고대 시대에 어떻게 우물을 팔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사막과 같은 땅에서 파는 곳마다 어떻게 우물이 나올 수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만큼 우물을 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우물을 가지는 일은 큰 재산을 획득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삭에게는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이 점에 관하여 이삭이 보여 주는 온화한 성품, 싸움은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성향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그는 분명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싸움을 늘 피했고요. 싸움을 피해 옮겨다니면서 넓은 땅을 얻게 됩니다. 한편으론 자신의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 못한 면에서 그랄 지역의 사람들을 두려워했을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얻게 된 우물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면이 이삭에게 공존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르호봇’이라는 이름의 우물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지경을 넓혀 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는 그랄 골짜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은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넓은 곳을 의미하는 르호봇에 이르게 됩니다. 쫓기고 또 쫓기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이삭이 마지막에 얻은 것은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르호봇을 차지한 이삭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브엘세바’라는 지역으로 올라갑니다. 그의 지경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랄 지역의 왕 아비멜렉이 군사령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옵니다. 자칫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평화 조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삭의 상황이 점점 더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말로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이삭이 부유해지고 많은 종을 거느리는 것을 보면서 실제로는 위협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판 우물을 메꾸며 이삭을 내쫓은 사건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삭이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화 조약을 맺으며 과거를 청산하려는 심정이었겠죠.

이때 이삭이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제법 세력이 커졌으니 그랄 지역을 침략하고 차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나 보복보다는 평화를 선택합니다. 성경은 평화 조약을 맺은 이후의 일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로 맹세하였으며, 그런 다음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고 보고하였다. (창 26:31~32, 새번역)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얼마든지 그랄 지역을 침략해서 빼앗긴 우물을 되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고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그날 이삭의 땅에서 우물이 터져 나옵니다. 또 다른 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선택한 이삭에게 또 다른 우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부릅니다. ‘맹세의 우물’, ‘일곱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입니다.

 

<르호봇 우물을 얻기까지 이삭 안에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삭과 관련한 우물 이야기를 쭉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힘들었는데 다른 사업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 있었는데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이 마음속에 내리시는 그 결단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를 그런 의미에서만 받아들인다면 그보다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습니다. 어렵고 힘든 중에도 그는 끝까지 싸우지 않고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 경험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이삭에 관한 26장의 말씀을 둘러싼 다른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장 25장은 이삭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특히 25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야곱이 에서를 속이며 팥죽으로 장자권을 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름대로 그가 계략을 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7장으로 넘어가면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또다시 나옵니다. 에서가 사냥하러 산에 간 사이,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거짓말로 가로챕니다. 다시 말해서 이삭의 아름다워 보이는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앞과 뒤에 위치한 말씀은 속고 속이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25장에서 그랄로 올라가는 이삭 이야기에도 거짓말은 등장합니다. 그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며 거짓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야곱은 축복을 받고자 거짓말을 했다면, 이삭은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더 잘 살고자 거짓말을 하고, 생존하고자 거짓말을 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랄 지역의 견제를 피해 이삭은 살고자 도망칩니다. 재산과도 같은 우물을 포기하면서요. 그랄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이삭을 쫓아내고 자신들이 좀 살아야겠다는 심보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25장부터 26장, 27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속고 속이는, 쫓고 쫓기는, 누군가는 차지하고 누군가는 양보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삭이 사람들과 싸우기보다 피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유지하며 우물을 파고, 또 판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살고자 애쓰고 더 축복받기 위해서 애쓰는 인간의 군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삭은 싸우지 않고 평화를 선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쫓고 또 쫓기는 과정에서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상황들 속에서도 선택된 백성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이삭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큰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에도 지켜내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이삭에게 반복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 26:3~5)

 

하나님께서는 장자권을 탐내며 속임수를 부리는 야곱을, 살고자 거짓말을 하는 이삭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 신실함을 지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이삭을 인도하시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반드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주의를 천명하는 것, 물론 이삭의 삶을 통해 본받을 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툼을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근원적인 것은 이삭의 역사 배후에 누가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살피면서 ‘나는 평화주의가 좋아. 싸움을 하지 않으면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라는 막연한 결과를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싸움을 하지 않고 평화만을 유지한다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잃게도 됩니다. 더 이상 보상받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실패자가 되고 낙오자가 됩니다. 그럼에도 이삭이 낙오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뒤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평화롭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죽음에 이르실 때까지도 폭력을 사용하지 아니하시며 용서하셨습니다. 죽음 뒤에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양보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한 것까지도 다시 얻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또 다른 샘이 솟아오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평화주의를 이념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는 실패를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평화를 보여 주셨습니다. 스스로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쫓기는 상황일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우리 삶에 새롭게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nlarge My Territory!

 

Genesis 26:19-22

 

Last week we studied the prayer of Jabez. We imagined it as the desperate prayer of the people of Judahwho were on their way home from Babylonian captivity. It would have been a desperate prayer because although they were returning to Jerusalem, the land they believed to be theirs, the people who had settled there for the past seven decades would not let them in easily. The people of Judah now had to squeeze into a land inhabited by other nations. How can they settle well in this now foreign land? This would have been a great challenge. This was why they clung to this prayer: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nlarge my territory!”

 

Today’s Scripture, in this sense, is related to the theme of last week’s message. It travels back in history to tell the ancient story of how the Israelitescame to settle in Canaan when they were becoming a people.

 

God chooses Abraham and commands him to leave the land of his fathers. This is the story of Genesis 12. Accordingly Abraham leaves his homeland for the unknown world to which God calls him. He starts his journey as a true sojourner, facing the problem of having to settle somewhere.

 

Abraham leaves his home, a region called Ur. After his departure, he moves to various regions. First, he goes to Haran, after which he moves to Shechem and Bethel, consecutively. When a famine strikes, he goes down to Egypt for a while. Then he comes back to Bethel and settles in Hebron. But then he moves again to places such as Dan, Hobah, and the Valley of Shaveh before settling in Hebron again. When a famine comes, he goes to Gerar and stays in Beersheba for a while, before returning to Hebron where he spends the last of his days.

 

It would no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Abraham’s life was a journey in search of God’s promised land. But Isaac, too, experienced such a journey. Although his journey was not as dynamic or geographically diverse as that of his father’s, Isaac also experienced many difficulties in settling in Canaan. Today’s Scripture must be read from the backdrop of such a context.

 

After getting married to Rebecca, Isaac, who hadmost likely spent his childhood traveling to various regions with his father including Beersheba, Mt. Moriah, and Hebron, leaves his father and lives in Beer Lahai Roi for a while. But Isaac has a hard time. A famine drives him to Gerar where he must start the difficult process of settling in a new place all over again. This was in fact the first time Isaac had to settle on his own. Let’s look at that process.

 

Interestingly, Isaac settles not in a completely new land but in a place which he and his father had inhabited in the past. Gerar was a Philistine region ruled by King Abimelek. Since Isaac had lived there before, settling there would not have been so hard. But when a famine strikes, he tries to go to Egypt, just as his father did in the past. However God appears to Isaac and tells him not to go there but to stay in the land He commands him to live:

 

“The Lord appeared to Isaac and said, ‘Do not go down to Egypt; live in the land where I tell you to live.’”(Genesis 26:2)

 

From then on God tells Isaac where to go—just as He directed Abraham. But where did God want him to live? It was none other than Gerar, his current location. This is what God says to him:

 

“Stay in this land for a while, and I will be with you and will bless you. For to you and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all these lands and will confirm the oath I swore to your father Abraham. I will make your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will give them all these lands, and through your offspring all nations on earth will be blessed, because Abraham obeyed me and did everything I required of him, keeping my commands, my decrees and my instructions.” (Genesis 26:3-5)

 

After hearing this, Isaac obeys God’s command. This is how the Bible summarizes his response:

 

“So Isaac stayed in Gerar.”(Genesis 26:6)

 

But living in an unfamiliar, foreign land was not easy. It appears Isaac felt his lifewas threatened there. This tells us how hard it was in ancient times for a sojourner to settle in a foreign land. Isaac tries to solve his problem in the same way that his father did.

 

“When the men of that place asked him about his wife, he said, ‘She is my sister,’ because he was afraid to say, ‘She is my wife.’ He thought, ‘The men of this place might kill me on account of Rebekah, because she is beautiful.’”(Genesis 26:7)

 

However, when Abimelek sees Isaac embracing Rebecca, he finds out the truth; fortunately, Abimelekcommands that they be protected. This was how Isaac came to settle in Gerar where he seems to have lived for a considerable period of time:

 

“When Isaac had been there a long time,”(Genesis 26:8a)

 

Furthermore the Bible tells us that Isaac became a wealthy man in Gerar:

 

“Isaac planted crops in that land and the same year reaped a hundredfold, because the Lord blessed him. The man became rich, and his wealth continued to grow until he became very wealthy. He had so many flocks and herds and servants that the Philistines envied him.”(Genesis 26:12-14a)

 

Isaac had originally been a herder. But it appears he was also a successful farmer. With his abundant harvest he fed his cattle, which further multiplied his cattle. He also seems to havehad plenty of water from the wells of his father. However when he became wealthy, the Philistines started to envy him:

 

“[…] the Philistines envied him. So all the wells that his father’s servants had dug in the time of his father Abraham, the Philistines stopped up, filling them with earth.”(Genesis 26:14b-15)

 

This text reveals to us that Abraham had dug many wells in Gerar and that Isaac had inherited and used them. Butthe Philistines stopped them up.

 

How unfair! But what did Isaac do? Isaac seems to have gone to King Abimelek to petition his case. Most likely, hesought punishment for the Philistines and a compensation for his loss. But what happened?

 

“Then Abimelek said to Isaac, ‘Move away from us; you have become too powerful for us.’”(Genesis 26:16)

 

In short, he was told to leave. It was a command of deportation. In effect, this command rendered worthless all the efforts of two generations, that is, Abraham and Isaac, to settle in Gerar.

 

This was how Isaac was unfairly kicked out of Gerar. But it seems he did not go far. He moved to the Valley of Gerar. The word “valley” suggests that it was an unpopulated area.

 

But there, Isaac finds a source of water:

 

“Isaac’s servants dug in the valley and discovered a well of fresh water there. But the herders of Gerar quarreled with those of Isaac and said, ‘The water is ours!’ So he named the well Esek, because they disputed with him.”(Genesis 26:19-20)

 

“Esek” means “dispute.” This name suggests a start of a tough conflict. This is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vents that followed:

 

“Then they dug another well, but they quarreled over that one also; so he named it Sitnah.” (Genesis 26:21)

 

“Sitnah” means “to contest.” This name suggests that quarrels continued.

 

So Isaac moves again and digs another well. He is again successful in finding water:

 

“He moved on from there and dug another well, and no one quarreled over it. He named it Rehoboth, saying, ‘Now the Lord has given us room and we will flourish in the land.’”(Genesis 26:22)

 

“Rehoboth” means “vast place.”Finally Isaac and his people reached a land where they could settle without conflicts. Although he had been chased again and again, hefinally came to obtaina piece of land after an arduous process. This was the moment when Isaac’s territory was enlarged.

 

Many people wonder how Isaac could have responded the way he did. Digging a well was extremely difficult in those days. Not all such attempts led to water; so it was a truly hard task. Yet Isaac dug, again and again, even after being kicked out of an area where he had successfully dug a well. Many point to Isaac’s gentle character that disliked confrontations. According to their assessment, Isaac, as a pacifist, avoided fighting and continued to move to new places, which eventually enlarged his territory.

 

However, when we consider the previous story of how he lied about his wife out of fear for his life, it seems he was also afraid. It is therefore also possible that he was forced to leave his wells behind, move to the next region, and dig again for water—simply for survival.

 

I think both explanations may be applied to Isaac’s behavior. Isaac most likely had an inherently gentle and peace-loving personality; but at the same time he had a fear. This is why he continued to avoid quarrels, moving to new places and digging new wells.

 

I can imagine what Isaac was thinking in his heart when he finally names the land he arrives at “Rehoboth”:‘You continued to quarrel with me and drive me out, but the world is vast. If you kick me out, I will go to a new place. There is still land for me out there.’ Wouldn’t this have been what Isaac was thinking?

 

After finally reaching Rehoboth, however, Isaacs takes a step further and goes up to Beersheba. In short, he enlarges his territory.

 

At this, Abimelek comes to Isaac from Gerar with Phicol, the commander of his forces. The presence of a military commander gives us the feeling that a war or a military confrontation is imminent. But surprisingly, it is Abimelek who feels threatened by Isaac who has amassed enormous wealth and power.

 

In other words, the Philistines appears to have been afraid of a possible retaliation by Isaac for stopping up and confiscating his wells. This is why Abimelek signs a peace treaty with him. Abimelek is, in effect, attempting to put the past behind them. Isaac readily accepts the offer. Isaac has become a sizeable power in the region with many servants who could easily make up an army. Yet he chooses peace over war or retaliation.

 

And this is the Bible’s dramatic description of the events following the peace treaty and the return of Abimelek:

 

“Early the next morning the men swore an oath to each other. Then Isaac sent them on their way, and they went away peacefully. That day Isaac’s servants came and told him about the well they had dug. They said, ‘We’ve found water!’”(Genesis 26:31-32)

 

God gifted yet another well to Isaac who chose peace. And that place was named “Beersheba,” which means “Well of Seven” or “Well of Oath.”

 

What a wonderful life! Isaac’s life has no trace whatsoever of conflicts. At times he appears cowardly; at times he seems only to shirk problems.Yet Isaac was persistent in seeking peace.The result was that he was blessed with an enlarged territory.

 

Then what is the lesson we must learn from him? Isaac’s way of life—that is, the virtues of non-violence, peace, and aversion to conflicts—must of course be learned. Our Lord also taught us to love and to sacrifice ourselves.

 

However, if we interpret today’s Scripture to mean just the above, we may be reaching a hasty conclusion. The Bible is not just about peace. Sometimes God commands His people, the Israelites, to fight, to conquer a land or a city, and to destroy everything and everyone in it.

 

How ideal it would be if we could live life always yielding to others? However there are times when we have to, and want to, guard what is ours. It is okay to yield unconditionally? What if someone barged into our homes and started living there? Should we just give up our homes and move to another house? Is this the kind of attitude in life that God wants from us?

 

Now, let’s take a macro-view of today’s text. In terms of its location, it comes after the story of Esau and Jacob described in last part of Genesis 25.

 

Here Jacob buys the right of the firstborn from Esau with a mere bowl of lentil soup. This is a story about how a younger brother quietly steals a firstborn’s right by making him sell it in the confusion of the moment. It is a story of the foolish Esau and the wily Jacob.

 

Then the story goes back several decades to the time of their father, Isaac. This is chapter 26. After the story of Isaac, Jacob’s story resumes. The Bible resumes the story by describing the scene where Jacob tricks Isaac into blessing him instead of Esau.

 

In short, all the stories surrounding Genesis 26 are about lies, tricks, and deception. They are embarrassing stuff for a great family.

 

Today’s text about Isaac is placed at the center of such embarrassing stories. So if we were to reread it considering the bigger flow of lies and deceit, it would be something like this: First Isaac is faced with an unexpected trial, a famine. Consequently he is forced to move to a new place, Gerar. There begins to lie. Isaac also takes part in deception as he tricks Abimelek. Yet another trial awaits in him in Gerar. He sees massive losses as the Philistines unjustly stop up the wells he inherited from his father. How unfair! Furthermore he is deported from that land. He then moves to a new place and works hard to dig up a new well, but that too he loses due to quarrels. This happens numerous times.

 

In short, Isaac’s experience in Gerar was marked by famine, loss of inheritance and property, unfair deportation, and unending quarrels and conflicts. So the overarching theme of deception continues to be seen the stories of Jacob and Isaac as well as in the resumed story of Jacob.

 

But really, what is that one true theme that recurs consistentlythroughout all these stories? It is none other than God’s unchanging protection in diverse situations.

 

God made a promise to Abraham. And God kept it withcomplete faithfulness. The following word of God spoken to Isaac reveals that faithfulness clearly:

 

“Stay in this land for a while, and I will be with you and will bless you. For to you and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all these lands and will confirm the oath I swore to your father Abraham. I will make your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will give them all these lands, and through your offspring all nations on earth will be blessed, because Abraham obeyed me and did everything I required of him, keeping my commands, my decrees and my instructions.”(Genesis 26:3-5)

 

This is the most essential part of Isaac’s story that must not be missed.

 

Today’s text on Isaac is not only surrounded by Jacob’s story of deception but the text itself is filled with stories of Isaac’s deception. Yet God does not rebuke their weakness; nor does He break His promise to Abraham because of such weaknesses.

 

The people of Gerar harassed and deported Isaac; but even in such difficult circumstances God blessed Isaac by giving him fresh water in every new well he dug. Finally He gave him a land to settle in, a peace treaty with those around him, and yet another blessing of a well.

 

I believe that the essential theme of today’s story is God’s faithfulness.

 

Yes, we must learn from the life of Isaac the pacifist. It would be wise to avoid fights in this world by learning from him.

 

But a more fundamental and important question is this: “Who was behind Isaac?”

 

Isaac was a pacifist who moved to new places to avoid fights; yet he was still a man of trickery, a man who was afraid of the world. But behind him was a faithful God! It was God who guided Isaac and finally allowed him to live peacefully in Beersheba.

 

Dear brothers and sisters, how must we live in this world? The story of Isaac imparts a wisdom that seeks peace, avoids quarrels, and allows us to be resilient even after being forced to leave a certain place.

 

But this way of life, in itself, does not possess power. If we always avoid fights, we may become losers, victims, and failures who cannot get up again.

 

Yet how is it possible that Christians resolve to live, and actually live, such a life? It is possible because of the God who was behind Isaac who lived such a life, the God who is behind us now even when we seem to be living a reckless life in the eyes of the world. It is possible because we trust and follow Him.

 

Therefore, we Christians can let others have their way. We can gladly give up. Because God will give us another well. Because He will make freshwater spring up for us again. Because we believe in this.

 

A man who adheres to pacifism, as an idea,will likely see his life fail. But if he does so, believing in God, his pursuit of peace will create an amazing history.

 

Our faith is in the faithful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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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 19~22

19~22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이삭은 이곳저곳에 정착하며 사는 나그네였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붙잡았던 야베스의 기도를 함께 생각해 보았죠. “내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내 지역을 넓게 해 주십시오.”라는 그 간절한 기도가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주일 설교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하던 그때, 아브라함 그리고 이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그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며 친척과 가족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입니다. 고대 시대에 사람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 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그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은 인원이 움직이는데도 도적이 출몰할 수 있었고, 도시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죽임당할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어려운 정착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 아브라함의 순례 과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르라는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란으로 이동했습니다. 하란에 이어 세겜으로, 벧엘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기근이 나자 이번에는 이집트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집트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벧엘 지역으로 올라오게 되고, 헤브론에 정착하게 됩니다. 단, 호바, 사웨 골짜기 등을 계속해서 거치게 되죠. 이후 헤브론에 다시 정착합니다. 이곳에도 기근이 들자 그랄 지역으로 옮긴 후, 브엘세바라는 곳에 잠시 머뭅니다. 그리고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가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게 됩니다. 정말로 많은 곳을 이동한 아브라함의 일생이었습니다.

그가 이동할 때마다 정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여행만 가도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낯선 이방 땅에서 정착하고 머물다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나서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찾아 움직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비슷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움직였겠죠. 브엘세바에 머무른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모리아 산에 올라간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헤브론에서 함께 살기도 했을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난 이후로는 그의 힘으로 순례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리브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독립해서 다른 곳에 잠시 산 것 같습니다. ‘브엘라해로이’라는 지역입니다. 성경에는 그곳에 흉년이 들어서 그랄 지역으로 옮겨 간 내용이 나옵니다. 어쩌면 이삭에게는 그랄로 옮겨가는 것이 인생에서 첫 번째 이동이자 모험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삭이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기보다 과거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머무른 장소로 올라갑니다. 바로 그랄 지역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아비멜렉이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전에 아버지와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기근이 심해지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한 모양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창 26:2)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지시하신 땅이 어디였느냐 하면,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그랄 지역이었습니다. 결국 이삭이 이곳 그랄 지역에 머물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삭이 거주하기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던 땅으로 보입니다. 그의 아내 리브가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나름대로 그랄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방편을 세운 것이지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껴안은 이삭을 보게 됩니다. 큰일 날 뻔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보호해 주는 명령을 내립니다. 리브가와의 결혼을 금지하는 명령을 선포하고 두 사람이 편안히 살도록 배려해 준 것입니다. 이제 그랄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삭이 이동하는 과정에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 이삭이 그만 거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증언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창 26:12~14a)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계속해서 무엇인가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삭은 목축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양떼를 거느리고 소를 키우며 이동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랄에 어느 정도 안전이 유지되면서 농사를 짓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농사가 너무 잘되었어요. 그래서 곡식을 먹은 소와 양과 모든 가축들이 더 잘 자라게 됩니다. 아브라함 때에 미리 판 우물에서 충분한 물도 공급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가 된 이삭을 블레셋 사람들이 보면서 시기하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창 26:14b~15)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거주할 때 파놓은 우물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우물들을 이삭이 물려받아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랄 지역 사람들이 이삭 편에서 상속받은 재산과도 같은 우물을 모두 메꾸어 버리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삭이 억울함을 풀고자 그랄 지역의 왕 아비멜렉을 찾아갑니다. 아마도 종들을 책망하고 보상받기를 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

 

도리어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가라는 추방 명령입니다. 이삭이 억울하게 당한 것을 보상해 주기는커녕 나가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아브라함 때부터 그랄 지역에 머물고자 노력해 온 정착 과정이 허무로 돌아간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결국 그랄 땅을 억울하게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곳에 머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가 그랄 지역의 어느 골짜기에 들어가서 머물기 시작합니다. 골짜기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은 곳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 26:19~20)

 

‘에섹’이라는 단어는 ‘다투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지역에서 우물을 팠는데 또다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힘든 분쟁의 시작을 알려 주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이후의 일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 26:21)

 

‘싯나’라는 뜻은 ‘대적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갈등이 끊임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삭은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우물을 새롭게 팝니다.

 

이삭이 거기에서 옮겨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 때에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주님께서 우리가 살 곳을 넓히셨으니, 여기에서 우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하면서,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였다. (창 26:22, 새번역)

 

<쫓기고 쫓기던 이삭에게 넓은 곳이라는 르호봇우물이 솟아오릅니다.>

 

‘르호봇’이라는 뜻은 ‘넓다’, ‘넓은 곳’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드디어 마음 놓고 정착할 수 있는 자신들의 영역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이삭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은 듯 보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밀리고 쫓겨나는 사이에 이삭의 가족과 그 종들의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점차 강성한 족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삭을 향해 싸움을 걸어올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쫓기고 쫓기는 인생을 산 이삭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삭은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경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분들이 이삭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지 질문하곤 합니다. 당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맥을 찾는 방법도 몰랐을 고대 시대에 어떻게 우물을 팔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사막과 같은 땅에서 파는 곳마다 어떻게 우물이 나올 수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만큼 우물을 판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우물을 가지는 일은 큰 재산을 획득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삭에게는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이 점에 관하여 이삭이 보여 주는 온화한 성품, 싸움은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성향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그는 분명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싸움을 늘 피했고요. 싸움을 피해 옮겨다니면서 넓은 땅을 얻게 됩니다. 한편으론 자신의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 못한 면에서 그랄 지역의 사람들을 두려워했을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얻게 된 우물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면이 이삭에게 공존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르호봇’이라는 이름의 우물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지경을 넓혀 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는 그랄 골짜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은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넓은 곳을 의미하는 르호봇에 이르게 됩니다. 쫓기고 또 쫓기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이삭이 마지막에 얻은 것은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르호봇을 차지한 이삭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브엘세바’라는 지역으로 올라갑니다. 그의 지경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랄 지역의 왕 아비멜렉이 군사령관 비골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옵니다. 자칫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와서 평화 조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삭의 상황이 점점 더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말로는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이삭이 부유해지고 많은 종을 거느리는 것을 보면서 실제로는 위협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판 우물을 메꾸며 이삭을 내쫓은 사건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삭이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화 조약을 맺으며 과거를 청산하려는 심정이었겠죠.

이때 이삭이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제법 세력이 커졌으니 그랄 지역을 침략하고 차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나 보복보다는 평화를 선택합니다. 성경은 평화 조약을 맺은 이후의 일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로 맹세하였으며, 그런 다음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니, 그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고 보고하였다. (창 26:31~32, 새번역)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얼마든지 그랄 지역을 침략해서 빼앗긴 우물을 되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고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그날 이삭의 땅에서 우물이 터져 나옵니다. 또 다른 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선택한 이삭에게 또 다른 우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부릅니다. ‘맹세의 우물’, ‘일곱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입니다.

 

<르호봇 우물을 얻기까지 이삭 안에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삭과 관련한 우물 이야기를 쭉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힘들었는데 다른 사업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 있었는데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이 마음속에 내리시는 그 결단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를 그런 의미에서만 받아들인다면 그보다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습니다. 어렵고 힘든 중에도 그는 끝까지 싸우지 않고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 경험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이삭에 관한 26장의 말씀을 둘러싼 다른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장 25장은 이삭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특히 25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야곱이 에서를 속이며 팥죽으로 장자권을 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름대로 그가 계략을 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7장으로 넘어가면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또다시 나옵니다. 에서가 사냥하러 산에 간 사이,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거짓말로 가로챕니다. 다시 말해서 이삭의 아름다워 보이는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앞과 뒤에 위치한 말씀은 속고 속이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25장에서 그랄로 올라가는 이삭 이야기에도 거짓말은 등장합니다. 그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며 거짓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야곱은 축복을 받고자 거짓말을 했다면, 이삭은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더 잘 살고자 거짓말을 하고, 생존하고자 거짓말을 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랄 지역의 견제를 피해 이삭은 살고자 도망칩니다. 재산과도 같은 우물을 포기하면서요. 그랄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이삭을 쫓아내고 자신들이 좀 살아야겠다는 심보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25장부터 26장, 27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속고 속이는, 쫓고 쫓기는, 누군가는 차지하고 누군가는 양보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삭이 사람들과 싸우기보다 피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유지하며 우물을 파고, 또 판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살고자 애쓰고 더 축복받기 위해서 애쓰는 인간의 군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삭은 싸우지 않고 평화를 선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쫓고 또 쫓기는 과정에서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상황들 속에서도 선택된 백성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이삭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큰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에도 지켜내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이삭에게 반복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 26:3~5)

 

하나님께서는 장자권을 탐내며 속임수를 부리는 야곱을, 살고자 거짓말을 하는 이삭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 신실함을 지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이삭을 인도하시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반드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주의를 천명하는 것, 물론 이삭의 삶을 통해 본받을 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툼을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근원적인 것은 이삭의 역사 배후에 누가 계시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살피면서 ‘나는 평화주의가 좋아. 싸움을 하지 않으면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라는 막연한 결과를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싸움을 하지 않고 평화만을 유지한다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잃게도 됩니다. 더 이상 보상받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실패자가 되고 낙오자가 됩니다. 그럼에도 이삭이 낙오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뒤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평화롭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죽음에 이르실 때까지도 폭력을 사용하지 아니하시며 용서하셨습니다. 죽음 뒤에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양보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한 것까지도 다시 얻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또 다른 샘이 솟아오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평화주의를 이념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는 실패를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면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평화를 보여 주셨습니다. 스스로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쫓기는 상황일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믿음 가지고 우리 삶에 새롭게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379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26:19-22)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29장, 482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창 26:19-22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7월 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어린시절 아버지 아브라함과 더불어 브엘세바, 모리아산, 헤브론을 전전했을 이삭은 후에 아버지를 떠나 리브가와 함께 가정을 이루며 브엘라헤로이라는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그는 다시금 다른 정착지를 찾아 헤매야만 했습니다. 이삭은 본래 애굽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6:2)

 

설교의 요약

흥미롭게도 이삭은 과거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머물렀던 그랄 지역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곳은 블레셋 민족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곳이었습니다. 이삭은 그곳에 머물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아내인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낯선 땅에서 거주하면서 거부가 된 이삭을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하며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파놓았던 우물을 막고 흙으로 매워버렸습니다.

너무 억울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그랄의 왕인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추방명령을 내려버립니다. 결국 이삭의 가족은 골짜기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골짜기에서 이삭은 또 다른 우물의 근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며 이 우물이 자시들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벌입니다. 이삭은 그렇게 우물을 2군데나 팠고, 이는 모두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 즉 다툼이라고 불렀고, 싯나, 즉 대적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랄 목자들과 대적하지 않고 또 자리를 옮겨서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도 우물이 솟았는데 이번에는 다툼이나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이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는데, 이 말의 뜻은 ‘넓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제야 이삭은 마음 놓고 정착할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쫓기고 쫓겨나는 인생이 아니라, 마침내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도 그를 찾아와 평화조약까지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삭은 또 다른 7개의 우물, 곧 브엘세바가 터지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비폭력과 평화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창세기 25장부터 26장까지는 인간들이 서로 속고 속이고, 빼앗고, 거짓말과 책략을 벌이는 일들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우리가 양보하고, 포기하고, 평화를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나누기

  1. 이삭의 우물이 매워지듯, 내게 가장 억울한 일들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2. 하나님께서 갈등과 다툼을 화해와 평화로 인도하시고, 나의 지경을 넓혀주신 사건이 있나요?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말씀하신 언약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대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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