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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것인가 따를 것인가

열왕기하 2: 1~8

김경진 목사

2023.10.01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끝까지 따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고, 그를 이어서 엘리사가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 2:1)

 

머지않아 엘리야가 하늘로 높이 올림받을 것이라는 상황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 자신이, 그리고 엘리사와 선지자 아래에서 훈련을 받은 수련생들이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떠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어디쯤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 엘리야가 제자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열왕기하 2장 2절 말씀입니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왕하 2:2a, 새번역)

 

우리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곳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곳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승의 말을 들은 엘리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나아갈 때, 벧엘에서 여리고로 나아갈 때,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나아갈 때 그러합니다. 그럴 때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스승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엘리야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따라갑니다.

그가 이토록 엘리야 곁을 떠나지 않고 따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사람이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 엘리야의 제자 약 50명 정도가 강가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곧 하늘로 승천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엘리야는 요단강 앞에서 겉옷을 벗고 둘둘 말은 후에 옷으로 강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강물이 마르게 되고, 열린 마른 길을 따라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 건너갑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마침내 스승 엘리야가 제자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네가 나를 따라다닌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엘리사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이 가지신 능력을 갑절로 받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나선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 지점입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가진 능력의 갑절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말합니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왕하 2:10, 새번역)

 

아주 묘한 말입니다. 엘리야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해석해 보면 이러합니다. “얼마 후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하늘로 들려올려질 텐데, 그때까지 네가 나를 따라오게 된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엘리야가 표면적으로는 길갈에서, 벧엘에서, 여리고에서 ‘여기 있어라’ 하고 말하였지만, 그가 정말 원한 것은 엘리사가 끝까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엘리사에게는 축복의 조건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며 하늘로 올려짐을 볼 때에 비로소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에 엘리사가 스승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벧엘에서 혹은 여리고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가르치는 수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스승보다 갑절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엘리야를 따라나선 이유였습니다.

 

<끝까지 스승을 따른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거룩한 열망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어떤 것을 배우게 됩니까? 사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을 선지자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나서지 않아도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스승인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을 소유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거룩한 열망’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견디는 능력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 견디고 인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견디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일에는 ‘거룩한 열정’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엘리사가에게는 분명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단지 학도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엘리야처럼, 아니 엘리야보다도 더 큰 능력을 소유한 선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세례 예식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예수는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례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와 같은 고민 끝에 결단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구속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린다는 면에서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의 매듭이 되기는 합니다만, 한편으로 세례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더 크고 넓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여정이 여러분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9:24 )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달라고 외친 한 아버지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세례받을 만큼 내가 믿나이다. 교회 출석할 만큼 믿나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밖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우시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것이 세례자의 고백이자 이곳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하는 우리 모두는 더 큰 믿음의 차원으로 전진해 나가는 신앙의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그러합니다. 창립 46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시기를 거치면서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연초에 말씀드린 것처럼 ‘퀀텀점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거룩한 열망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성장을 열망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더 깊은 곳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거룩한 열망이 함께할 때, 여호와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열망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와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중요한 한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강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역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엘리사가 따라갑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엘리야를 따라가기만 하면 갑절의 능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가 엘리야를 따라간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엘리야를 따라가기만 하면 능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했습니까?

종종 달을 가리키는 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달을 보라고 손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을 보는 경우를 뜻하곤 하죠. 엘리야의 이야기를 볼 때도 우리는 달을 보기보다 손을 볼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말씀 속에서 무엇이 발견되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2)

 

엘리야는 자신이 이동할 때마다 이러한 말씀을 했습니다. 또다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4)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6)

 

이 말씀은 엘리야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생애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으로 가게 된 이유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은 그 내용을 보다 강조하듯이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왕하 2:2, 새번역)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왕하 2:4, 새번역)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강으로 가야 한다. (왕하 2:6, 새번역)

 

이것에서 우리는 엘리사가 스승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적인 장면을 보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나아가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청종하며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이 일이 어렵기도 합니다.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도로 교회 출석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로 봉사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희생하라는 말씀, 화평하라는 말씀을 따라 나서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욕심이, 그 거룩한 열망이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안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창립 46주년을 맞는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들 안에 거룩한 열망이 가득차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가득한 소망교회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서 괜찮다고 안주하지 마십시다. 엘리야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벧엘로 가라 명하시면 벧엘로 나아가고, 여리고로 가라 명하시면 여리고로 가고, 요단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시면 요단으로 따라 나서는 신앙의 열정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소망교회가 세상의 등불이 될 것이고, 맛을 내는 소금의 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함께 서서 주님의 말씀을 민감하게 붙잡고, 거룩한 열정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십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Will You Stay Or Follow?

 

2 Kings 2:1-8

 

A man ordered fish at a restaurant. It was so delicious that he revisited the place two weeks later. But although he ordered the same dish, it was not impressive or fresh as the last time. Dissatisfied, he complained to the owner: “This dish was fresh and delicious the last time I came, but today it tastes odd.” The owner looked at him with an incredulous look on his face: “That’s impossible. I gave you exactly the same fish that was delivered to our restaurant two weeks ago.”

 

This is a cartoon that I read in a children’s newspaper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It gave me a piece wisdom at the time. So I remember cutting it out and keeping it for a long time.

 

The restaurant owner’s notion that a fish that was fresh two weeks would still be fresh today is simply ridiculous. Just like this fish, many things in life cannot be left as they are—because they will go bad or rot easily.

 

This applies to our faith too. Faith must not be left as it is for a long time. It cannot stay fresh just because it was fresh a long time ago. A beginning in our faith does not guarantee a good process or a good end. Your faith is not maintained just because you served beautifully once in the past.

 

Sometimes I meet Christians (not from our church) who rave about how committed and passionate they were in the past, thinking mistakenly that their faith is still as strong and passionate as then.

 

The Bible says whoever thinks they are standing firm must be careful so they will not fall, which is particularly true of our faith. Faith is like a race that must be run continually.

 

The Synoptic Gospels record Jesus taking Peter, John, and James to a mountain. There Jesus is transfigured magnificently. And He talks with Moses and Elijah. After seeing this, Peter say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Luke 9:33)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It is good here. Peter was truly satisfied at that moment. This is enough… If I have these kinds of people around me, I can have a good faith life with them. Our church is good enough… Peter’s confession is so much like our inner thoughts.

 

But Jesus did not stay there on the mountain. He was not satisfied with just happily talking to Moses and Elijah on the mountain. He came down the mountain and walked the path of suffering and death to the Cross.

 

Today’s passage tells a fascinating story of Elijah being taken up to heaven and Elisha succeeding Elisha’s ministry.

 

It starts with this verse:

 

“When the Lord was about to take Elijah up to heaven in a whirlwind, Elijah and Elisha were on their way from Gilgal.” (2 Kings 2:1)

 

Both Elijah and Elisha now have an idea that Elijah will be taken up to heaven. Of course, based on various circumstances, Elijah already considers Elisha as his successor. So the teacher takes the pupil with him as he leaves Gilgal. Elisha certainly has Elisha in his mind as his heir, but he tells Elisha three times to stay where he is:

 

“Elijah said to Elisha, ‘The Lord wants me to go to Bethel, but you must stay here.’” (2 Kings 2:2a CEV)

 

Elijah says, “stay here” to Elisha who is following him. But it is not specified where “here” is. Since they have already left Gilgal, it cannot be Gilgal; but it is unclear where Elisha must remain. All Elijah knows is where God wants him to go.

 

Elijah is not interested in where he is staying. It is God’s calling that is important, for as verse 2 says, “the Lord wants me to go to Bethel.” Again in verse 4 Elijah says, “Elisha, now the Lord wants me to go to Jericho, but you must stay here.” (2 Kings 2:4a CEV) Yet again in verse 6 he says, “Now the Lord wants me to go to the Jordan River, but you must stay here.” (2 Kings 2:6a CEV)

 

Elijah is continually following God’s calling. At God’s call, he leaves Gilgal, goes to Bethel and Jericho, and then heads toward the Jordan River. And every time he leaves in accordance with God’s command, he tells Elisha to “stay here.”

 

Since Elijah had apprentices everywhere he went, it seems there were schools or training centers for prophets in Bethel and Jericho. Elijah is perhaps telling Elisha to stay in these places to serve as the head of these schools. He may be telling Elisha to stay there and to care for the men there, instead of following him.

 

But Elisha replies, “I swear by the living Lord and by your own life that I will never leave you!”

 

Why does Elisha want to follow Elijah to the end? He follows his teacher to Bethel and to Jericho. Then from Jericho he goes to the Jordan River with Elijah.

 

When they get to the Jordan River, about fifty men, Elijah’s students, had followed him there. When Elijah took off his cloak, rolled it up and struck the water with it, the river parted. Then Elijah and Elisha walked across the Jordan River on dry land.

 

Here we see Elisha following Elijah to the very end. The other fifty apprentices had already stopped following Elijah at the Jordan River. Yet Elisha continues to follow his teacher.

 

Finally Elijah asks Elisha what he wants: “Tell me, what can I do for you before I am taken from you?” Elisha replies, “Please give me twice as much of your power as you give the other prophets” (2 Kings 2:9 CEV)

 

At last, Elijah’s purpose in following Elijah is revealed. He wanted a greater power than that of his teacher.

 

Elijah replies, “It won’t be easy. […] It can happen only if you see me as I am being taken away.” (2 Kings 2:10 CEV)

 

That is, Elisha’s wish will only come true if he follows Elijah to the end.

 

If Elisha had remained where he was when Elijah told him to stay, he would not have received this blessing. If he had stayed in Bethel or in Jericho, or if he had not crossed the Jordan with his teacher and had stayed behind, Elisha would not have received the glory of getting a double portion of Elijah’s power and becoming his successor.

 

Eventually Elisha saw Elijah being taken up to heaven in a whirlwind precisely because he had followed him continually and had advanced. If he had stayed where he was, he would not have enjoyed this grace.

 

What can we learn from Elisha’s actions? He was already established as Elijah’s successor. But he desired a greater power from God, a power as great as—no, greater than—that of his teacher.

 

Last week, I preached on the power of perseverance. In times of adversity, we need this power of perseverance; but when it comes to getting God’s power, we need a holy desire for it.

 

This holy desire is one that craves a greater grace. It is a desire for a greater power. A desire to go to a deeper place in our faith.

 

Today we gave baptisms. At every baptism ceremony I tell you this: baptism is the beginning, not the end, of your faith life.

 

Of course, your journey to your baptism would have been long and winding. Who is Jesus? Who am I? Why must I be baptized? What difference will it make?

 

Those of you baptized today after so much contemplation and life’s long journey have now resolved to believe in God, to accept the saving grace of Jesus, and to surrender yourselves to the Holy Spirit from now on.

 

Baptism is a sign of salvation and serves as a chapter in life in that you have given yourself wholly to God; but it is also a commitment to come to God and to advance toward a greater faith with the small faith you have.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Mark 9:24)

 

This cry of the father who yearned for the healing of his demon-possessed son is our confession.

 

Therefore, those of you who have been baptized today must now have within you a holy passion for God’s grace. Just as Elisha yearned for a double portion of Elijah’s power, you must crave God’s grace with a deeper, greater desire.

 

This goes for our church too. Somang Church is now celebrating its 46th anniversary of its founding. As a relatively established church, we may easily fall into the temptation of complacency, like a middle-aged person. However, we must not remain where we are. As I stressed to you at the year’s beginning, we need a quantum jump. We need a holy passion.

 

In his speech at a commencement ceremony of Stanford University, Steve Jobs is known to have said, “Stay hungry. Stay foolish,” stressing to the young graduates the importance of a challenge-loving spirit. Guus Hiddink, former manager of Korea’s national football team, said at the 2002 World Cup, “I’m still hungry,” even after Korea had reached the round of 16, showing that he was not yet satisfied and determined to meet greater challenges.

 

This applies to our lives as well. Many of us have pursued faith as Christians for a long time. Doing what we have always done is important; yet we need a deeper passion for faith. We need a heart that desires to go deeper, to draw nearer to our Lord.

 

Then how can we achieve that desire?

 

In the actions of Elijah and Elisha today, we read some clues. Elijah, as a minister, continually followed God’s call to Bethel, to Jericho, and to the Jordan River.

 

Elisah received a double portion of grace, the very thing he had desired, by following Elijah to the end. But what does his act of following Elijah to the end signify? What or who must we follow to the end?

 

We often talk about the finger that points to the moon. When we point to the moon so that someone may see it, he/she tends to look at the finger rather than the moon. This may also be true of how we look at the story of Elijah and Elisha. We may focus only on the scene where Elisha follows Elijah.

 

But the truly important part is actually hidden. Every time Elijah moves on and goes to another place, this is what he says this to Elisha:

 

“The Lord has sent me to Bethel.” (2 Kings 2:2a NIV)

“The Lord has sent me to Jericho.” (2 Kings 2:4a NIV)

“The Lord has sent me to the Jordan.” (2 Kings 2:6a NIV)

 

This tells us that Elijah was continually listening to God’s voice. Moving to the next place was not important; God’s voice was. That is why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translates this as follows:

 

“The Lord wants me to go to Bethel,” (2 Kings 2:2a CEV)

“The Lord wants me to go to Jericho,” (2 Kings 2:4a CEV)

“Now the Lord wants me to go to the Jordan River,” (2 Kings 2:6a CEV)

 

Where does the double portion of God’s power come from? From following God’s word. This was the secret to how Elijah received his power which was displayed to his pupil, Elisha.

 

Elijah obeyed God’s word to the end and finally reached the point where he was taken up to heaven. Our holy desire too must be to live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This is sometimes hard. At times, we are tempted to give into complacency, but when we get back up as we struggle to follow the word of God, we will see things that we formerly could not—just as Elisha did when he finally saw Elijah being taken up to heaven. Then we will become true disciples of our Lord.

 

As we celebrate our 46th anniversary, it is my hope that all of us at Somang Church will be filled with this holy desire so that we may become a holy church that displays God’s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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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 1~8

1~8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끝까지 따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고, 그를 이어서 엘리사가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 2:1)

 

머지않아 엘리야가 하늘로 높이 올림받을 것이라는 상황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 자신이, 그리고 엘리사와 선지자 아래에서 훈련을 받은 수련생들이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떠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어디쯤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 엘리야가 제자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열왕기하 2장 2절 말씀입니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왕하 2:2a, 새번역)

 

우리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곳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곳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승의 말을 들은 엘리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나아갈 때, 벧엘에서 여리고로 나아갈 때,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나아갈 때 그러합니다. 그럴 때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스승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엘리야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따라갑니다.

그가 이토록 엘리야 곁을 떠나지 않고 따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사람이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 엘리야의 제자 약 50명 정도가 강가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곧 하늘로 승천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엘리야는 요단강 앞에서 겉옷을 벗고 둘둘 말은 후에 옷으로 강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강물이 마르게 되고, 열린 마른 길을 따라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 건너갑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마침내 스승 엘리야가 제자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네가 나를 따라다닌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엘리사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이 가지신 능력을 갑절로 받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나선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 지점입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가진 능력의 갑절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말합니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왕하 2:10, 새번역)

 

아주 묘한 말입니다. 엘리야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해석해 보면 이러합니다. “얼마 후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하늘로 들려올려질 텐데, 그때까지 네가 나를 따라오게 된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엘리야가 표면적으로는 길갈에서, 벧엘에서, 여리고에서 ‘여기 있어라’ 하고 말하였지만, 그가 정말 원한 것은 엘리사가 끝까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엘리사에게는 축복의 조건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며 하늘로 올려짐을 볼 때에 비로소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에 엘리사가 스승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벧엘에서 혹은 여리고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가르치는 수장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스승보다 갑절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엘리야를 따라나선 이유였습니다.

 

<끝까지 스승을 따른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거룩한 열망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어떤 것을 배우게 됩니까? 사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을 선지자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나서지 않아도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스승인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을 소유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거룩한 열망’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견디는 능력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 견디고 인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견디는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일에는 ‘거룩한 열정’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엘리사가에게는 분명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단지 학도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엘리야처럼, 아니 엘리야보다도 더 큰 능력을 소유한 선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세례 예식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예수는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례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와 같은 고민 끝에 결단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구속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린다는 면에서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의 매듭이 되기는 합니다만, 한편으로 세례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더 크고 넓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여정이 여러분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9:24 )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달라고 외친 한 아버지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세례받을 만큼 내가 믿나이다. 교회 출석할 만큼 믿나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밖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우시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것이 세례자의 고백이자 이곳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하는 우리 모두는 더 큰 믿음의 차원으로 전진해 나가는 신앙의 순례자들인 것입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그러합니다. 창립 46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시기를 거치면서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연초에 말씀드린 것처럼 ‘퀀텀점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거룩한 열망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성장을 열망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더 깊은 곳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거룩한 열망이 함께할 때, 여호와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열망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와 엘리사의 모습 속에서 중요한 한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강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역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엘리사가 따라갑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엘리야를 따라가기만 하면 갑절의 능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가 엘리야를 따라간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엘리야를 따라가기만 하면 능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했습니까?

종종 달을 가리키는 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달을 보라고 손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을 보는 경우를 뜻하곤 하죠. 엘리야의 이야기를 볼 때도 우리는 달을 보기보다 손을 볼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말씀 속에서 무엇이 발견되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2)

 

엘리야는 자신이 이동할 때마다 이러한 말씀을 했습니다. 또다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4)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왕하 2:6)

 

이 말씀은 엘리야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생애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으로 가게 된 이유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은 그 내용을 보다 강조하듯이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왕하 2:2, 새번역)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왕하 2:4, 새번역)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강으로 가야 한다. (왕하 2:6, 새번역)

 

이것에서 우리는 엘리사가 스승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적인 장면을 보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나아가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청종하며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이 일이 어렵기도 합니다.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도로 교회 출석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로 봉사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희생하라는 말씀, 화평하라는 말씀을 따라 나서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욕심이, 그 거룩한 열망이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안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창립 46주년을 맞는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들 안에 거룩한 열망이 가득차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가득한 소망교회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서 괜찮다고 안주하지 마십시다. 엘리야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벧엘로 가라 명하시면 벧엘로 나아가고, 여리고로 가라 명하시면 여리고로 가고, 요단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시면 요단으로 따라 나서는 신앙의 열정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소망교회가 세상의 등불이 될 것이고, 맛을 내는 소금의 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함께 서서 주님의 말씀을 민감하게 붙잡고, 거룩한 열정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십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10월 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남을 것인가 따를 것인가 (왕하 2:1~8)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90장, 21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왕하 2:1~8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0월 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랫동안 같은 모양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옛날에 신선했다고 해서 여전히 신선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누구든지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있듯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거룩한 열망을 품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사모하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소망교회도 그러합니다. 이제 46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시기를 거치면서 더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여기 그냥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퀀텀 점프가 필요하고, 거룩한 열망이 계속하여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신앙의 삶을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더 큰 신앙의 열망이 필요합니다. 더 깊은 곳으로, 더 가까이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열망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늘 엘리야와 엘리사의 모습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베델로,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으로 사모하던 갑절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움직이는 이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한다.” (왕하 2:2 새번역)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한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 강으로 가야 한다.” (왕하 2:4, 6, 새번역)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갑절의 능력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승 엘리야가 제자 엘리사에게 보여 주는 능력을 받은 비결입니다. 엘리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갔고, 마침내 하늘로 올리어지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거룩한 열망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때로 이 일이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다시 일어서고 다시 따라가면, 우리는 하늘로 승천하는 엘리야를 보았던 엘리사처럼, 우리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창립 46주년을 맞는 소망의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열망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누기

 

  1.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2.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신만의 방법 혹은 신앙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축복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소명을 생각하게 하시고, 다시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로운 마음이 교회창립 46주년을 지나는 우리 소망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 새롭게 움트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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