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낮은 곳에 마음을 두라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까요? 여러분은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 상위 10% 정도에 속하는 부를 가지고 있다면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10%에 해당되는 사람이 부자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3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순자산 기준 우리나라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가구의 기준은 10억 8,1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10억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10% 안에 드는 자산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에 해당하는 가구의 수준은 32억 7,920만원이라고 합니다. 32억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나라 상위 1% 부자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순자산은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입니다.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해서 모든 부동산이 다 포함됩니다. 요즘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에서 12억 정도라고 하니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자산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서울에 사시는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소망교회 예배당은 어떤 곳입니까? 서울에서도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죠. 압구정동, 신사동 또는 청담동, 이런 곳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 중에는 자산 가치 상위 1% 안에 드시는 분들이 꽤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상위 1%에 드시는 분들? 상위 10%에 드시는 분들? 손을 드실 필요는 없겠습니다만은 느낌이 어떠신가요?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표정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있는 분들도 그다지 행복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과 앞서 말씀드린 통계 자료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산 상위 10% 정도에 해당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갖고 있어야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통계 결과를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요. 그랬더니 그분은 30억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1% 부자에 속하려면 어느 정도 자산이 있어야 될 것 같냐고 재차 물었더니, 2~300억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분의 대답이 통계 결과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비교 대상이 그야말로 큰 부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 대상이 너무 높으니까 착시현상이 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돈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만은 아마도 이쪽 분야에 관하여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 꽤 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입니다. 사실 돈이 있으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돈과 비례해서 우리가 과연 행복한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2022년 12월 28일 작년 말입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조사하여 발표한 국민행복포커스 4호에 실린 내용 중에 이런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2022년 한국인의 행복 조사의 주요 결과 및 최근 3년간 동향.”
해당 연구는 2020년 코로나가 발생한 시점부터 3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 추이를 조사한 내용입니다. 코로나가 막 발생했을 시점에 행복 지수는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21,22년도를 겪으며 행복 지수가 점차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게 됩니다.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은 가구 소득과 행복감과의 연관 관계였습니다. 이 내용이 저를 매우 자극하였는데요. 연구를 위해 매월 200만원 미만을 받는 가구, 2~300만원을 받는 가구, 3~400만원을 받는 가구, 4~500만원을 받는 가구, 5~600만원을 받는 가구, 마지막으로 600만원 이상을 받는 가구로 나뉘어 가구별 행복도가 조사됩니다.
흥미롭게도 200만원 미만을 버는 가구와 2~300만원까지 버는 가구의 경우에는 행복 지수가 가계 소득과 연동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가계 소득과 행복감이 함께 연결된 것이죠. 많이 버는 만큼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00만원 이상 되는 가구부터는 소득과 행복 지수가 그다지 연동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0.1~0.2% 정도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득이 300만원을 넘어서는 가구부터는 소득과 행복감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결론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경제 사정과 사회적 분위기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참으로 못 산 나라가 갑자기 부국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따져보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 2월에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행복 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59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는 36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 10위에 들어가 있지만 국민의 행복 지수는 정작 59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준거점이 높을수록 행복보다 불행을 느끼기 쉽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행복학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이 쓴 『지적 행복론』 (원제: An Economist’s Lessons on Hapiness; Farewell Dismal Science!)이라는 책이 2022년 작년에 한글판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책에는 작은 소제목이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제목과 함께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소제목이 말하듯이 이 책은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지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책의 연구에 의하면 소득과 행복이 단기적으로는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예를 듭니다. 국가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게 되면,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아이엠에프(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되면 모두가 힘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럴 때 사람들의 행복감은 급속도로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 불황이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감은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소득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행복 지수가 순간적으로 올라가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 행복감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현상의 비밀을 말하는 경제학자들로는 데니엘 커드만이나 아머스 트버스키 등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준거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스털린은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을 판단할 때에 판단의 기준을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상황 속에서 기준점을 발견한다고 하네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 키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178cm 정도 됩니다. 어렸을 때는 이 정도의 키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면 대부분 저보다 아래에 계시거나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볼 정도였죠. 저보다 큰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에 키가 작다는 생각을 많이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면, 저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큰지 위로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느끼게 되죠. ‘아, 내가 이렇게 키가 작았나?’ 과거의 저를 생각한다면 큰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 키가 작으신 분들의 애환을 알 것도 같네요. 이처럼 우리의 판단은 준거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학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마는, 한마디로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준거 기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와 비교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준거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적용해 보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행복을 찾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저 위로 올라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되면, 연구 논문을 많이 발표하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대부분은 위를 바라봅니다. 준거점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초라하고,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설이겠습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를 보지만 그 행위 자체가 도리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아래를 내려다본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키가 큰 사람이 됩니다. 1억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아니, 상위 10% 안에 든다는 10억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규모의 재산을 가진다고 한다면 행복감을 느끼긴 어렵겠죠. 더군다나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을 본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나는 10억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30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10억 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로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는 10억이 있는데 주변 사람은 1,2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아마도 부자라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무엇과 비교하는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구로동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30년을 그곳에 산 것 같네요. 저의 아버님께서 해방교회에서 10년의 목회를 하시다가 그만두시고 구로동으로 오셔서 개척을 시작하셨습니다. 교회를 12명으로 시작하시면서 조그마한 학교를 세우셨고요. 과부들이 모일 수 있는 조그마한 터전을 마련하셔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제가 생활한 주변 지역은 대부분 빈민 지역이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저는 부자라는 생각을 종종 해 온 것 같습니다. 부족함보다는 도리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 지역 대부분의 집에 개인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제가 길을 지나가다보면 공동 화장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나가곤 했습니다. 반면에 저희 집에는 개인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하나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도 참 어려운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마음을 가졌고, 자부심을 가지면서 건강하게 자라난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마음을 낮은 곳에 두기를 명령하며, 도움이 필요한 형제와 연합할 때 행복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롬 12:16)
짧은 말씀 속에 여러 교훈의 말씀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호텔에서 식사하시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정말 좋지 않나요? 기분이 정말 좋아집니다. 맛도 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매일 식사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어떨까요? 하루이틀은 좋을 수 있지만 사흘, 나흘이 되면 그저 그런 식사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은 행복감을 주지 못할 겁니다.
반면에 청량리나 서울역에서 무료로 급식을 나누어 주는 급식소에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해 볼까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봅니다. 한끼 식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선 분들을 봅니다. 물론 봉사가 힘들고 어렵지만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나는 그래도 참 행복하구나.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감격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려가는 것,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생각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허상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익숙해지고 나면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또 다른 높은 것이 보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낮은 데 처하다’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타페이노이스’(ταπεινοῖς, tapeinois)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께서 친히 전하신 말씀 중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라고 하실까요? 왜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무언가 더 앞서 나가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더 높이 오르고 싶을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 한 가지 쉼의 비결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참된 안식은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안식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온유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프라우스’(πραΰς, praus)입니다. 이 단어가 마태복음 5장 5절에 나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여기서 ‘온유하다’라는 말은 단순한 미약함이나 소심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의 온유함이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수하게 이끌리는 태도가 바로 온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를 안으려고 하자 막 버둥거립니다. 그러면 그 아이를 안을 수 있을까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칫 놓칠 수도 있고, 강렬하게 버둥거리는 아이는 잡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그런 아이는 온유한 아이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안을 때 모든 힘을 빼고 포근하게 안기는 아이, 그런 아이가 온유한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을 완전히 뺀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모든 힘을 빼는 겁니다. 스스로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행위야말로 온유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다가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믿음은 기다림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고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서 힘들어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 실망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겸손함’으로 번역된 ‘타페이노스’(ταπεινὸς, tapeinos)입니다. 마음을 낮은 데 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과연 스스로 ‘나는 겸손하다’, ‘나는 겸손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낮은 데 두는 행위일까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칭찬의 말을 건넬 때 그 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행위를 겸손이라고 할까요. 물론 보이는 모습으로서의 겸손일 순 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마음을 낮은 데 두는 것은 낮은 자들과 함께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과 몸을 함께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몸이 낮아질 때 마음이 낮아집니다. 삶이 낮아질 때 마음도 낮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소외된 자, 왕따당한 자, 무시당한 자, 세리들과 창녀들, 여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시며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삶의 모범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명품옷 입으면 좋지요. 예.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명품옷을 입으셔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명품옷을 사시다가 한 두 벌 쯤은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명품옷 살 돈으로 다른 옷 몇 개 더 사서 가난한 사람들, 고아들,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새옷을 입는 기쁨은 잠시일지 모르나 낮은 곳에 임할 때 보다 큰 행복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훈련하다보면 여러분은 명품옷을 입지 않고도 이미 명품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행복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Associate With People of Low Position
Romans 12:16
How much wealth does a man need to be called “wealthy” in Korea? How much do you think is needed to become a rich person? Are you rich if you are in the top 10% of household net worth in Korea? How much do you need to get into that group?
According to The 2022 Survey of Household Finances and Living Conditions published by Statistics Korea on March 20, 2023, a household needed at least 1.08 billion won in net assets, that is, total assets excluding debt, to belong to the top 10%. In other words, if your household net worth is about 1 billion won, you are in the top 10%. The threshold for the top 1% was 3.27 billion. So a family with net assets of about 3.2 billion won or above would be in the top 1%.
Net assets is defined as total assets minus total liabilities, including both movable and immovable properties. Net assets therefore includes any house or apartment that your family may possess. Since the average price of an apartment in Seoul these days is about 1 billion won, your family would be in the top 10% if you owned one in Seoul.
Those of you living in Seoul in your own apartment are rich. Of course, there will also be rich people among those listening to this sermon online in other cities. But, as for those of you attending this service, where are we? Many of our churchgoers live in the most expensive parts of Seoul, including Sinsadong, Apgujeongdong, and Cheongdamdong. Many who live near Somang Church will be among the top 1%.
So how do you feel? Those of you in the top 1% or in the top 10%… are you happy? (Oddly, however, you don’t look so happy to me.) Does all this not feel real to you?
Why are we not happy even when we have so much? Is it because we do not cherish what we have? Being in the top 10% is quite a big deal. But why aren’t we happy?
I once had a chat with someone on the statistics mentioned above. I asked her how much she thought was needed to belong to the top 10%. She answered, “About 3 billion won.” Then I asked how much she thought was needed to be in the top 1%. Her answer was “about 10 billion.” When I told her that the threshold for the top 10% was 1 billion won, she seemed surprised and said that seemed hardly enough to pass as the rich in Korea. What do you think?
Today I started by talking about money. Many people want to become rich. But how much is needed to become rich? How much net worth would make you happy?
In the December 2022 issue of Koreans’ Happiness Focus, a bi-monthly publication by the National Assembly Futures Institute, there was an article titled, “Main Results of the 2022 Happiness Survey of Koreans and Trends of 2019-22.”
According to this research, the level of happiness felt by Koreans gradually decreased since 2020. The article also mentioned a correlation between household earnings and happiness, which was intriguing.
The link between happiness and income was studied by surveying six groups of people according to their income: 2 million won and under; 2-3 million won; 3-4 million won; 4-5 million won; 5-6 million won; and 600 million won and above. Interestingly, a link between income and happiness was found only in the first two groups, that is, people earning less than 3 million won. In these groups happiness increased in proportion to income.
But for those earning 3 million won and more, no meaningful connection was found between income and happiness. In other words, once a household earns a certain amount of money, it is not any happier by earning more. That is, happiness is not largely related to how much money or asset one has.
This phenomenon seems to be related to Korea’s overall economic and social circumstances. Korea is now among the top 20 economies in the world. Our nation experienced rapid development, achieving unprecedented progress in a short period. It has become a rich country with a lot of money. But are Koreans happy? Through various sources we are well aware that Koreans are not as happy as—they are, in fact, unhappier than—people of poorer nations.
According to The 2022 Survey on Koreans’ Quality of Life published by Statistics Korea last February, Korea ranked 59th among 146 nations in terms of national happiness index. Furthermore, among the 38 OECD nations, it ranked 36th. We are in the top 20 in terms of wealth, but our ranking is 59th in terms of happiness.
In a word, while Korea has become a rich country with a lot of money, Koreans are not happy.
How has it come to this? I wonder.
Richard Easterlin is the “father of happiness economics” and was a candidate for the Nobel Prize in economics. In 2021 he wrote a book titled An Economist’s Lessons on Happiness: Farewell Dismal Science!, which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in Korea in 2022 with a subtitle that read, “A 97-year-old economist’s questions to this age: how much money do you need to be happy?”
As the Korean subtitle suggests, the book is, in short, a study on the question of “Does having more money make you happier?” According to Easterlin, while a short-term connection between money and happiness exists, there is no long-term one.
For example, he explains that when a recession hits people’s happiness immediately plummet, but in the months following it gradually recovers despite their economic difficulties. Likewise, a rapid increase in income boosts a person’s happiness in the short term; but this only has a temporary effect. The level of happiness does not go up continuously. This is called the “Easterlin Paradox.”
How can this be explained? The answer lies in what is called the “reference point effect.” Easterlin explains this as “social comparison.” Most people judge a situation based on their surrounding environment and people.
Let’s say I am 170 centimeters tall. Whether I am tall or not depends mostly on the people around me. If I am surrounded by people who are about 160 centimeters tall, I would be relatively tall; if however they are taller than 180 centimeters, I would feel short—which is what I am feeling these days.
Our assessment and perception change depending on our reference point.
I talked about economics, a field in which I am not an expert. To summarize, however, it may be said that the reason we feel unhappy even when we possessa lot is because of our reference point. Who do we compare ourselves with? This is critical. What criteria and reference points am I using?
Many people seek happiness. To find it, they think they need a higher salary and more money. They believe having more assets will bring them happiness. Accordingly, they look to people who are better off. They strive to belong to that group. But will they be able to reach happiness by doing so?
Our reference points are usually those who are better off than us. Then how does this make us feel? We feel relatively poor compared to them. We feel that we are lacking. Thus we are not satisfied. It is only natural that we cannot feel happiness.
Isn’t this our paradox? We look up to live happier lives. We look at people who are above us, who have more, who are more successful. Then we compare ourselves with them. We can never be happy this way.
Let’s think the opposite way. Let’s say we look down. When I enter a room full of people shorter than me, I am a tall person. Everyone would have to look up to see me.
Let’s say I had 100 million won. No, let’s assume I had 1 billion won, the bar for the top 10%. But if everyone around me had about the same or more, how would I feel? Would I feel rich? Happy?
If I had 1 billion won, but someone close to me had 3 billion won, how would I feel? I would be reduced to a person who has “only” 1 billion won. I would feel poor.
Let’s think differently. If I had 1 billion won, but all my acquaintances had only 0.1-0.2 billion won, how would I feel? I would see myself as a rich man with a whopping net worth of 1 billion won. Who do we compare ourselves to? This is important.
This is today’s Scripture, Paul’s admonition to us:
“Live in harmony with one another. Do not be proud, but be willing to associate with people of low position.”(Romans 12:16)
Dear brothers and sisters, a meal at a fancy hotel is a luxury. How magnificent it is! But what if you ate every meal at hotels day in, day out? Would you be happy? No, those meals would just be plain meals.
On the other hand, imagine yourself volunteering at a cafeteria in Cheongnyangni or Seoul Station giving out free meals. How would you feel seeing all the homeless and hungry lining up long queues for a single meal? Serving them would be hard work, of course, but you will surely be filled with thanksgiving on your way home, even if you served every day.
When we descend to a low position, we taste an unexpected and amazing happiness. And it is vastly different from what we normally expect or think.
We expect there will be unimaginable and amazing happiness when we rise to a higher place; but this happiness is only materialistic and fleeting. Once we get used to it, the feeling of happiness does not continue. In today’s verse there is a part that says, “Do not be proud, but be willing to associate with people of low position.” The original Greek word used for “of low position” is “tapeinois (ταπεινοῖς)”
This Greek word also appears in Jesus’ direct words in Matthew 11:29: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Matthew 11:28-29)
The original Greek for “humble” in the above verse is none other than “tapeinois (ταπεινοῖς).” Aren’t the above words one of the most famous and heartwarming statements of our Lord? What does Jesus say?
He calls us the “weary and burdened.” Why are we so burdened? What is the burden we carry on our backs? Perhaps it is the weight that comes from trying to possess more and reach higher.
A beginner hiker packs his rucksack thinking he may need this and that. He puts all kinds of things in his bag. He packs various equipment too. We must, of course, be prepared for emergencies, but a beginner usually packs more than he needs. He buys the newest shoes from a high-end store, wraps himself with high-end outdoor outfits, and observes items worn by other hikers. Is he a true hiker?
But the seasoned, expert hiker does not prepare as much as him. It may be because he is already familiar with the mountains. He climbs with just a few items, including a bottle of water. He is a true connoisseur of mountains.
Our Lord tells us the secret to rest—we who are weary and burdened. He tells us to come to Him, that He will give us rest. But what must we do specifically? The secret to rest is hidden in Jesus’ words: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Matthew 11:29)
Jesus is saying that true rest lies in a certain condition of the heart—that is,in a gentle and humble one.
The Greek word for “gentle” in this verse is “praus (πραΰς),”which is also used in the famous verse of Matthew 5:5: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Matthew 5:5)
Meekness here is not merely a weakness or a shyness. The biblical meaning of “gentleness/meekness” is not “weakness,” but an attitude that leaves all things up to God’s power and guidance. In short, it is an attitude that lets oneself to be led purely by His guidance. This is gentleness/meekness.
Who gets rest? It is the one who entrusts everything to God and follows His guidance in complete trust. Last week I preached that faith is waiting. The one who believes and waits, the one who follows His guidance and does not get disappointed is the man of faith. A voyager gets rest by leaving everything up to his guide. This way he can enjoy his travel. If you try to do everything even when you have a guide, you will not be able to rest. Likewise, we must leave everything up to God. After that, we must wait in faith.
A second word I wish to note in the above verse is “humble,” which in Greek is “tapeinos (ταπεινὸς).” This is to be humble and lowly in heart. This means to associate with people who are in low positions. We become truly humble when we walk with such people. When our bodies are in lowly places, our heart becomes humble too. When our life descends to a low position, or hearts too become humble.
I don’t think I need to elaborate more on what it means to be lowly in heart. When we are lowly in heart, that is, when we are willing to associate with people of low positions, true rest and happiness come. This is the way to enjoying the true rest that our Lord teaches us in His words that He will give us rest.
Let us be lowly in heart. Let us descend to lowly places. Jesus too descended to a lowly place, to this earth; He descended even lower. He ate with and lived among the poor, the sick, the demon-possessed, the outcasts, the marginalized, the neglected, tax collectors, prostitutes, and women. This is the example He showed us through His life.
His life was the answer to how we must live. Designer clothes are harmless—if you can afford them. But what about buying one or two less and givinggenerously to others with the money saved? Try buying one outfit less for yourself and buy several others for the poor, the needy, and orphans. This will give you a happiness far greater and deeper than the fleeting one that is felt only in the few hours of donningdesigner clothes. When you continue training this way, you will be able to live an exquisite life even without exquisite goods. It will be a life that buys happiness.
로마서 12: 16
16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까요? 여러분은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 상위 10% 정도에 속하는 부를 가지고 있다면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10%에 해당되는 사람이 부자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3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순자산 기준 우리나라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가구의 기준은 10억 8,1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10억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10% 안에 드는 자산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에 해당하는 가구의 수준은 32억 7,920만원이라고 합니다. 32억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나라 상위 1% 부자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순자산은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입니다. 살고 있는 집을 포함해서 모든 부동산이 다 포함됩니다. 요즘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에서 12억 정도라고 하니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자산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서울에 사시는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소망교회 예배당은 어떤 곳입니까? 서울에서도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죠. 압구정동, 신사동 또는 청담동, 이런 곳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 중에는 자산 가치 상위 1% 안에 드시는 분들이 꽤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상위 1%에 드시는 분들? 상위 10%에 드시는 분들? 손을 드실 필요는 없겠습니다만은 느낌이 어떠신가요?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표정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있는 분들도 그다지 행복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과 앞서 말씀드린 통계 자료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산 상위 10% 정도에 해당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을 갖고 있어야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통계 결과를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요. 그랬더니 그분은 30억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상위 1% 부자에 속하려면 어느 정도 자산이 있어야 될 것 같냐고 재차 물었더니, 2~300억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분의 대답이 통계 결과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비교 대상이 그야말로 큰 부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 대상이 너무 높으니까 착시현상이 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돈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만은 아마도 이쪽 분야에 관하여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 꽤 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입니다. 사실 돈이 있으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돈과 비례해서 우리가 과연 행복한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2022년 12월 28일 작년 말입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조사하여 발표한 국민행복포커스 4호에 실린 내용 중에 이런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2022년 한국인의 행복 조사의 주요 결과 및 최근 3년간 동향.”
해당 연구는 2020년 코로나가 발생한 시점부터 3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 추이를 조사한 내용입니다. 코로나가 막 발생했을 시점에 행복 지수는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21,22년도를 겪으며 행복 지수가 점차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게 됩니다.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은 가구 소득과 행복감과의 연관 관계였습니다. 이 내용이 저를 매우 자극하였는데요. 연구를 위해 매월 200만원 미만을 받는 가구, 2~300만원을 받는 가구, 3~400만원을 받는 가구, 4~500만원을 받는 가구, 5~600만원을 받는 가구, 마지막으로 600만원 이상을 받는 가구로 나뉘어 가구별 행복도가 조사됩니다.
흥미롭게도 200만원 미만을 버는 가구와 2~300만원까지 버는 가구의 경우에는 행복 지수가 가계 소득과 연동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가계 소득과 행복감이 함께 연결된 것이죠. 많이 버는 만큼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00만원 이상 되는 가구부터는 소득과 행복 지수가 그다지 연동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0.1~0.2% 정도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득이 300만원을 넘어서는 가구부터는 소득과 행복감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결론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경제 사정과 사회적 분위기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참으로 못 산 나라가 갑자기 부국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따져보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난 2월에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행복 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59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는 36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 10위에 들어가 있지만 국민의 행복 지수는 정작 59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준거점이 높을수록 행복보다 불행을 느끼기 쉽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행복학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이 쓴 『지적 행복론』 (원제: An Economist’s Lessons on Hapiness; Farewell Dismal Science!)이라는 책이 2022년 작년에 한글판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책에는 작은 소제목이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제목과 함께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소제목이 말하듯이 이 책은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지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책의 연구에 의하면 소득과 행복이 단기적으로는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예를 듭니다. 국가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게 되면,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아이엠에프(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되면 모두가 힘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럴 때 사람들의 행복감은 급속도로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 불황이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감은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소득이 급격히 올라갈 경우 행복 지수가 순간적으로 올라가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 행복감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현상의 비밀을 말하는 경제학자들로는 데니엘 커드만이나 아머스 트버스키 등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준거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스털린은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을 판단할 때에 판단의 기준을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상황 속에서 기준점을 발견한다고 하네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 키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178cm 정도 됩니다. 어렸을 때는 이 정도의 키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면 대부분 저보다 아래에 계시거나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볼 정도였죠. 저보다 큰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에 키가 작다는 생각을 많이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면, 저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큰지 위로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느끼게 되죠. ‘아, 내가 이렇게 키가 작았나?’ 과거의 저를 생각한다면 큰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 키가 작으신 분들의 애환을 알 것도 같네요. 이처럼 우리의 판단은 준거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학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마는, 한마디로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준거 기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와 비교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준거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적용해 보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행복을 찾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저 위로 올라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되면, 연구 논문을 많이 발표하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대부분은 위를 바라봅니다. 준거점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초라하고,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설이겠습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를 보지만 그 행위 자체가 도리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아래를 내려다본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키가 큰 사람이 됩니다. 1억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아니, 상위 10% 안에 든다는 10억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규모의 재산을 가진다고 한다면 행복감을 느끼긴 어렵겠죠. 더군다나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을 본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나는 10억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30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10억 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로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는 10억이 있는데 주변 사람은 1,2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아마도 부자라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무엇과 비교하는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구로동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30년을 그곳에 산 것 같네요. 저의 아버님께서 해방교회에서 10년의 목회를 하시다가 그만두시고 구로동으로 오셔서 개척을 시작하셨습니다. 교회를 12명으로 시작하시면서 조그마한 학교를 세우셨고요. 과부들이 모일 수 있는 조그마한 터전을 마련하셔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제가 생활한 주변 지역은 대부분 빈민 지역이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저는 부자라는 생각을 종종 해 온 것 같습니다. 부족함보다는 도리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 지역 대부분의 집에 개인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제가 길을 지나가다보면 공동 화장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나가곤 했습니다. 반면에 저희 집에는 개인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하나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도 참 어려운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마음을 가졌고, 자부심을 가지면서 건강하게 자라난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마음을 낮은 곳에 두기를 명령하며, 도움이 필요한 형제와 연합할 때 행복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롬 12:16)
짧은 말씀 속에 여러 교훈의 말씀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호텔에서 식사하시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정말 좋지 않나요? 기분이 정말 좋아집니다. 맛도 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매일 식사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어떨까요? 하루이틀은 좋을 수 있지만 사흘, 나흘이 되면 그저 그런 식사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은 행복감을 주지 못할 겁니다.
반면에 청량리나 서울역에서 무료로 급식을 나누어 주는 급식소에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해 볼까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봅니다. 한끼 식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선 분들을 봅니다. 물론 봉사가 힘들고 어렵지만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나는 그래도 참 행복하구나.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감격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려가는 것,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생각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허상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간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익숙해지고 나면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또 다른 높은 것이 보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낮은 데 처하다’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타페이노이스’(ταπεινοῖς, tapeinois)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께서 친히 전하신 말씀 중에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라고 하실까요? 왜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무언가 더 앞서 나가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더 높이 오르고 싶을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 한 가지 쉼의 비결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참된 안식은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안식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온유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프라우스’(πραΰς, praus)입니다. 이 단어가 마태복음 5장 5절에 나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여기서 ‘온유하다’라는 말은 단순한 미약함이나 소심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의 온유함이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수하게 이끌리는 태도가 바로 온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를 들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를 안으려고 하자 막 버둥거립니다. 그러면 그 아이를 안을 수 있을까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칫 놓칠 수도 있고, 강렬하게 버둥거리는 아이는 잡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그런 아이는 온유한 아이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안을 때 모든 힘을 빼고 포근하게 안기는 아이, 그런 아이가 온유한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을 완전히 뺀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모든 힘을 빼는 겁니다. 스스로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행위야말로 온유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다가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하여 ‘믿음은 기다림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고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서 힘들어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 실망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겸손함’으로 번역된 ‘타페이노스’(ταπεινὸς, tapeinos)입니다. 마음을 낮은 데 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과연 스스로 ‘나는 겸손하다’, ‘나는 겸손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낮은 데 두는 행위일까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칭찬의 말을 건넬 때 그 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행위를 겸손이라고 할까요. 물론 보이는 모습으로서의 겸손일 순 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마음을 낮은 데 두는 것은 낮은 자들과 함께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과 몸을 함께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몸이 낮아질 때 마음이 낮아집니다. 삶이 낮아질 때 마음도 낮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소외된 자, 왕따당한 자, 무시당한 자, 세리들과 창녀들, 여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시며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삶의 모범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명품옷 입으면 좋지요. 예.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명품옷을 입으셔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명품옷을 사시다가 한 두 벌 쯤은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명품옷 살 돈으로 다른 옷 몇 개 더 사서 가난한 사람들, 고아들,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새옷을 입는 기쁨은 잠시일지 모르나 낮은 곳에 임할 때 보다 큰 행복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훈련하다보면 여러분은 명품옷을 입지 않고도 이미 명품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행복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6월 18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믿음은 기다림이다” (롬 12장 16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89장, 41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롬 12장 16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6월 1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2022년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부채를 뺀 순자산이 10억 정도가 되면 상위 1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평균 10억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볼 때, 서울에서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다면 상위 10%에 해당하는 부자라는 뜻입니다. 사실 상위 10% 안에 든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서울에 사시는 분들 중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분들이 과연 행복할까요?
설교의 요약
가구의 소득은 일정 이상이 되면 소득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감은 돈이 많거나 자산이 많은 것과 크게 연동이 되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상관관계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누구와 비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준은 이미 나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만족이 안 되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자꾸 위를 바라봅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놀랍게 행복한 것들이 있을 것 같지만, 그것들은 물질적인 것이고 잠시 기쁨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익숙해지면 그것들이 더 이상 나에게 어떤 행복감도 주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 중에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낮은 데 처하다’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겸손하다’ 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참된 안식은 마음에 있다는 말씀이고 온유하고 겸손함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이 쉼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겸손함이란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할 때 낮아지게 됩니다. 낮은데 마음을 두면 우리에게 참된 안식, 행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알려주신 참된 쉼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낮은 곳에 마음을 두고, 낮은 곳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소외된 자, 무시당하는 자, 세리와 창녀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범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나누기
- 우리는 부유한 사람인가요? 다양한 측면에서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 우리는 “진실로” 부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 안식의 길, 쉼의 길을 열어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낮은 곳에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게 하옵소서. 낮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하시고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