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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반문합니다.>
한 가지 문제를 여러분께 내보겠습니다. 구약의 총 장 수는 몇 장쯤 될까요? 또 구약의 총 절 수는 몇 절쯤 될까요? 구약의 장은 929장이고 총 절수는 23,145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르셔도 됩니다. 암기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리는 질문 정도는 답하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은 총 몇 권으로 되어 있습니까? 39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첫 권은 무슨 이름입니까? 창세기입니다. 구약의 맨 마지막은 말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라기입니다. 제가 말라기로 처음 설교하는데 말라기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려 드리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라기를 읽던 중에 상당히 큰 감동을 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 1:2a)
하나님의 섭섭한 감정이 잘 묻어나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약의 마지막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말 1:2a)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 1:2a, 새번역)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구약의 맨 마지막 아닙니까? 구약의 첫 부분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말라기까지 내려오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던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약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도리어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 섭섭한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마음을 아신 것 같습니다. 일찍이 이사야서를 통해서 배신하는 자식에 대한 아픔을 이렇게 노래하신 적이 있죠.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 1:2~3)
애지중지 자식을 키웠는데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것도 한 자식만 편애하듯이 사랑해 주었는데, 정작 그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모른 척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섭섭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 1:2b~3)
어찌 보면 부모로서 조금 구차해 보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형도 마다하고 동생인 너희를 살펴 주었는데 너희가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하며 섭섭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모든 인류를 다 사랑하셔야 했겠지만, 구약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중에서도 이삭을 선택하시고, 또 이삭의 자녀 에서와 야곱 중에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그들의 자손들을 특별하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구약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족속을 만드셔서 끊임없이 돌보시며 인도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모든 구약의 이야기는 그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건너가서 수백 년을 살다가 하나님께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하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40여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주리지 않게 하셨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실패하고 말았죠. 하나님은 그들에게 친히 계명도 내려 주시고 기적도 보여 주시며 함께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한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어머니가 딸 또는 아들로부터 버림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오늘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의 한탄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이 그들의 질문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께 이런 불경한 말을 쏟아 내는 것일까요? 그들의 형편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금 망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있습니다. 근근이 생명을 이어 가고는 있지만 그저 생존하고 있을 뿐 위대한 나라를 건설해 보지도 못하였고 세상을 지배해 본 적도 없습니다.
말라기의 시대적인 배경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합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오는 시점일 수도 있겠고, 혹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 수십 년이 지난 학개와 스가랴 활동 이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이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녹록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현실은 지금 포로에서의 생활을 막 끝내고 돌아오는 시점이거나, 혹은 돌아와서 자그마한 성전은 지었지만 수십 년 동안 여전히 이웃 백성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처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말라기에서 항변하고 있는 그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왜 우리는 이 모양밖에 되지 않습니까? 이집트의 라 태양신은 이집트를 저토록 부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바벨론의 벨, 마르둑은 바벨론을 저토록 큰 나라로 만들어 주었는데, 우리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가졌을 법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전은 보잘것없고 그들의 형편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주신 말씀, ‘내가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한 약속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도리어 반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 1:2a, 새번역)
이 반항적인 질문이 구약의 맨 마지막 책 첫 장 첫 절에 쓰여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마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종결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서 다시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로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의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업은 번성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나의 사업은 이토록 힘들게 만드시는 것일까?’,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나를 이렇게 보잘것없는 자리에 그냥 내팽개쳐 두시는가?’
또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이렇게나 하나님을 잘 믿는 우리 아들, 우리 딸을 먼저 데려가셔야만 했습니까? 왜 사랑하는 남편, 아내에게 몹쓸 병을 주셔서 고생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저렇게 건강하게 잘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을 잘 믿는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진실은 예수님의 삶 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저도 평안한 인생의 길을 걸어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하시고 버리신 것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시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큰 실망으로 산에서 뛰어내릴 뻔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07년 새벽 기도를 하던 중에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문득 예수님의 무릎 위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는데 밝은 빛이 내려와서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내 위에, 옆에, 앞에 주님께서 계시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주님께 항의하듯 이렇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래요? … 왜 이렇게 하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요?”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항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수도 없이 시험에서 떨어집니까? 왜 억울하게 악한 사람들에게 당해야 합니까? 그것도 못 막아 주시면서 사랑한다고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묵상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늘로부터 들려왔던 음성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두 번의 사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죠. 먼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 17:5)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분명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특별한 음성을 두 번 이상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의 인생은 어떠했습니까? 이 땅에서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드시면서 살아가셨나요?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하셨고, 가난하셨으며,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셨고, 폭도들에 의해서 끌려가셨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셨고, 가장 참혹한 처형인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늘로부터 들렸던 음성에 대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일어나도록 하십니까?’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버지,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시죠. 그리고는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아버지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믿음에 반응하시듯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었던 자리에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예수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으로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굴레로서 겪는 가난과 고통, 모함과 억울함 그리고 배신과 죽음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심지어 우리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고통, 그의 십자가를 면제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참한 죽음에 처할 때에 그를 다시 살려 내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을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10)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중요한 것을 주시려는 사랑입니다.>
어려운 시절, 이웃들과 함께하던 구로동 시절을 종종 말씀드렸습니다. 과부의 아이들이 성탄절 때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인 새 신발을 신고 동네에 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에게는 새로운 신발이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동네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주셔서 집집마다 신발을 나눠 주셨는데, 정작 저희에게는 신발을 주시지 않았던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되어 아버지께 “우리에게는 왜 신발을 안 사 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너는 아버지가 있지 않니?”
사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섭섭한 말씀이긴 합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를 늘 다시 한번 되묻곤 합니다. 이런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너는 지금 아버지가 있어. 내가 지금 네게 신발은 사 주지 않아. 그러나 네가 더 어렵게 되거나 이것보다 더 큰 것을 필요하게 될 때 나는 네게 무언가를 줄 거야. 나는 너의 아버지야. 그러니 네게 꼭 필요할 때에 나는 너를 돌볼 것이다.’ 이 약속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 아버님께서는 성탄절 때마다 신발은 안 주셨지만 제가 어려울 때 ‘내 아들이 어려울 때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를 보살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라기가 참 안타깝게 끝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결렬된 것 같은 모습으로 구약 성경이 마무리되죠. 수백 년 동안 그 마지막 항변이 메아리처럼 흐르고 또 흘러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그 사랑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말라기는 어려운 현실과 포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포로 생활,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고, 신앙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말라기가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요한일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마침내 신앙인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건강에 관련된 일희일비하는 어떤 사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업의 번성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인간의 가장 큰 문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표지이며 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항의할 수 있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애타게 하나님 앞에 울부짖을 때 주님은 그때마다 피 묻은 손으로 우리의 머리에 안수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못 자국 난 손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죽어도 살리기를 원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최근 쇼펜하우어라든지 많은 철학자들의 글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 많은 분이 철학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세상을 알차게 살아야 되겠죠.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세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해야 될 또 다른 현실은 죽음입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넘어 다른 세상을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서야 ‘주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셨구나. 참 감사하다.’라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기도 하겠습니다.
I Have Loved You
Malachi 1:2-5
How many chapters are there in the Old Testament? And how many verses? Someone has conveniently summarized the answers. The Old Testament is comprised of a total of 929 chapters and 23,145 verses. It is composed of 39 books—the first being Genesis and the last Malachi. So Malachi is the book that wraps up the Old Testament.
As I was reading Malachi, a verse reverberated in my heart. It made me think about a lot of things. That verse is none other than Malachi 1:2, the Scripture we just read today:
“‘I have loved you,’ says the Lord. But you ask, ‘How have you loved us?’”(Malachi 1:2a NIV)
It seemed to me that these words, almost like God’s soliloquy, are the conclusion of the entirestory of the Old Testament.
God speaks to the people of Israel,“I have loved you.” But they answer back, “Really? How have you loved us?”(Malachi 1:2a NLT)
How heartbreaking this question must be for God! God had alreadyspoken to Isaiah about His pain of seeing His children betray Him:
“Hear me, you heavens! Listen, earth! For the Lord has spoken: ‘I reared children and brought them up, but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The ox knows its master, the donkey its own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Isaiah 1:2-3)
Can you imagine the heart of the parent whose children have no idea how their mother/fathercherished and raised them? Moreover, if that parent had particularly adoredone of them—almost to the degree of favoritism—but that child abandons him/her, how would that parent feel?
Today’s passage expresses the heart of such a parent with these words:
“‘Was not Esau Jacob’s brother?’declares the Lord. ‘Yet I have loved Jacob, but Esau I have hated, and I have turned his hill country into a wasteland and left his inheritance to the desert jackals.’”(Malachi 1:2b-3)
These words sound rather feeble coming from God, our Parent. God created the whole world and the entire mankind through Adam and Eve. And among all of mankind, He especially chose Abraham, extending His special love to his family. Furthermore, within that family, He chose Jacob over his brother Esau, loving Jacobs’children with a special love.
The story of the Old Testament is about God choosing Jacob, making him the father of His people Israel, blessing them, making them His children, and guiding them especially. In other words, even among Isaac’s children, God loved Jacob more and loved Esau less. In short, God’s special love was given to Jacob and his descendants.
The Old Testament is clear about this. Jacob’s descendants go down to Egypt and live there, but God, hearing their cry, decides to deliver them. He calls Moses to lea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And He guides them to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God allows them to live there, in Canaan, worshipping Him.
But in the Promised Land the Israelites fail to serve only God. God Himself gives them His commandments, shows them miracles, and is with them, but they fail to respond to His love.
Perhaps this can be compared to the plight of a mother who lives her entire life solely for her only son only to be abandoned by him.Or perhaps it may be compared to the son rebelling against her after growing up. The beginning of Malachi reminds us of such scenes.
Then why do the Israelites speak such blasphemy against God? Their actions may be explained by their plight. They are currently witnessing the fall of Israel. The people of Israel are barely getting by, struggling to survive; they have failed to build a great country or to rule the world.
Although the historical context of Malachi is unclear, scholars guess that it was written either upon the Israelites’return from Babylonian captivity or sometime after, that is, in the days of Haggai or Zechariah. Whichever view we take, one thing is clear: the circumstances of the Israelites were grim.
The reality facing God’s chosen people was either the period when they had returned from captivity or decades after their return when they had restored just a small temple andwere barely surviving among hostile peoples.
Why are we in such a state when God has chosen us? The sun god of Egypt prospered Egypt, and Bel of Babylon, Marduk, made it a powerful nation. But what has our God done for us? The Israelites did not reflect on their own sins, blaming and hating only God.
Their temple seemed worthless and their circumstances did not seem to have improved one bit. Where was God’s promise to Abraham that promised He would make him a blessing? The people of Israel felt worthless, poor, and useless. Why wasn’ttheir condition getting better and why should theystruggle so under the rule of external powers? So this is what they say:
“Really? How have you loved us?”(Malachi 1:2a NLT)
It is quite surprising that the first verse of the first chapter of the last book of the Old Testament should be so rebellious. Furthermore, that rebellious verseappears to be the conclusion of the story of God and His people in the Old Testament.
We too experience such feelings. There are times when we too want to protest against God just as the Israelites vented their bitterness to God.
Why are the businesses of unbelievers booming while mine, the firm of a child of God, continues to struggle? If God gives me power and success in my business, I will be able to do great things for Him. So why doesn’t He make this happen? Why does He leave me in such an unimportant position? Where is the proof that He loves me?
Why did God take my son/daughter, a faithful child of God, to heaven? Why did God give my beloved husband/wife this wicked disease and so much pain and then take him/her away? Thatman, an unbeliever, is enjoying good health and a good life. Why doesn’t God deliver us, good Christians, from pain? Where is the proof that God loves us?
As I havetold you before, my life has not been an easy one. At times I have felt that God is far from me, that He has abandoned me. I even felt as if God didn’t exist. A deep disappointment nearly led me to throw myself off a cliff. But one early morning in 2007 in an early morning prayer service, I felt the presence of the Lord.
While I was bent down in prayer, I suddenly felt as if I was praying on Jesus’ knees. As I opened my eyes and looked up, I clearly experienced that the Lord was above me—although I couldn’t see with my eyes because of the bright light. Then I heard a voice from above: “I love you.”At that moment, however, a question slipped outautomatically as if in protest: “But why is my life so?Why are you doing such things?”
Where is the proof that God loves me? Why do such things happen if God loves me? Why am I sick, why don’t I havewhat I want, why do I have to fail in tests countless times, why do I have to suffer unfairly because of wicked people? How can You just say You love me when You can’t even prevent these things from happening?
But one day I understood Jesus’ heart.
Jesus also heard the voice of the Father from heaven. He heard that voice at the very scene of his baptism:
“And a voice from heaven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with him I am well pleased.’”(Matthew 3:17)
It wasn’t just once. Jesus heard the same voice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hile he was still speaking, a bright cloud covered them, and a voice from the cloud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Listen to him!’”(Matthew 17:5)
Jesus heard God’s voice too. “This is my Son, whom I love.” But what was Jesus’ life like? Did He live in luxury in this world, eating and doing all He desired? How did Jesus, the beloved Son of God, live?
Jesus, who heard God say to Him “I love you,” was scorned by the Jews, was poor, was falsely charged, was led away by mobs, was stripped of His clothes, and died the most terrible death on the Cross.
“I love you…” But why are You doing this to me?
Don’t you think Jesus has the right to ask this question? But our Lord only said,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and went the path of suffering. He trusted in the Father’s love, believed that He would save Him, and entrusted everything to the Father. This was the faith of Jesus.
Through the miracle of raising Jesus from the dead, God confirmed His love for His Son.
The love of God manifested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does not exempt us from our yoke—such as poverty, pain, false charges, unfairness, betrayal, and death—but restores us and raises us up wherever we are and whatever we may face,including a wrongful, tragic death.
This the meaning of God’s word that He loves us. God loved Jesus. But He did not exempt Jesus from pain or crucifixion. God accomplished His righteousness and confirmed His love by raising Jesus from His tragic death.
This is the love of God.
Therefore, Paul confesses this faith as such: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2 Corinthians 4:8-10)
When I was living in Guro-dong among impoverished neighbors as a little boy, my friends whose fathers had passed away always got new pairs of shoes on Christmasfrom Santa, but I didn’t. My father used to say to me, “You have me, your dad.” Looking back, I must confess I was ratherdisappointed by my father’s words, and true, Ididn’t get to wear new shoes. But what was the meaning of these words? He was saying, “You have me, your dad.”
Although I didn’t get you new shoes, I am your father who can give you much greater things when you need them. Just believe this. I am your dad who loves you. You have a father, don’t you?
As I mentioned earlier, Malachi ends with a word of protest—“Really? How have you loved us?”
Centuries pass after this rebellious question. The period when the Israelites cried out in protest to God, “How have you loved us?”,has passed… and finally the New Testament testifying about the Lord’s coming proclaims: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John 3:16)
This is the very answer to the Israelites’question to God in Malachi. Malachi poses a question to God amidst theirpainful reality of exile.
God, it is too painful. This life of exile, this life of poverty and lack, a desert-like world where we cannot even worship properly or keep our faith… God, O God, where is the proof that You love us?
The Bible’s answer to this question in Malachi is this: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John 3:16)
First John 4:9 also testifies about the proof of God’s love:
“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among us: He sent his one and only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1 John 4:9)
God’s love has already been clearly revealed to us. His love does not fluctuate between our joy and sorrow that come from good or bad health. Neither does it change according to the success or failure of our business. It is a lovethat has to do with eternal life, a love clearly manifested by the Cross of Christ.
Therefore, Romans 5:8 says: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s for us.” (Romans 5:8)
The answer to the question“Does God love us?” is not determined by our circumstances or condition.
As I said, God sent His one and only Son Jesus Christ to save us from death and to give us eternal life and a hope that transcends this world. This is the Gospel, our hope.
Therefore, the Cross of Jesus Christ is the greatest sign that God loves us.
We experience countless pains, struggles, and disappointments in this world. Every time we do, we ask God, “God! Do You really love us?” Where is the proof of Your love for us?
However, every time we ask thisquestion, our Lord will say to us, “I have loved you,” as He lovingly caresses us with His hands stained with the precious blood He shed on the Cross. Those nail-pierced hands are proof that testifies that God has already loved us.
The Bible states:
“This is how God showed his love among us: He sent his one and only Son into the world that we might live through him.”(1 John 4:9)
God desires to save us. He wants to save us even after we die; He wants us to live forever. On the day we enter the eternal Kingdom, we will confess, “God has really loved me.”
Therefore, the prophet Habakkuk sings: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Habakkuk 3:17-18) Amen.
말라기 1:2~5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반문합니다.>
한 가지 문제를 여러분께 내보겠습니다. 구약의 총 장 수는 몇 장쯤 될까요? 또 구약의 총 절 수는 몇 절쯤 될까요? 구약의 장은 929장이고 총 절수는 23,145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르셔도 됩니다. 암기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리는 질문 정도는 답하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은 총 몇 권으로 되어 있습니까? 39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첫 권은 무슨 이름입니까? 창세기입니다. 구약의 맨 마지막은 말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라기입니다. 제가 말라기로 처음 설교하는데 말라기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려 드리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라기를 읽던 중에 상당히 큰 감동을 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 1:2a)
하나님의 섭섭한 감정이 잘 묻어나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약의 마지막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말 1:2a)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 1:2a, 새번역)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구약의 맨 마지막 아닙니까? 구약의 첫 부분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말라기까지 내려오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던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약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도리어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 섭섭한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마음을 아신 것 같습니다. 일찍이 이사야서를 통해서 배신하는 자식에 대한 아픔을 이렇게 노래하신 적이 있죠.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 1:2~3)
애지중지 자식을 키웠는데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것도 한 자식만 편애하듯이 사랑해 주었는데, 정작 그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모른 척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섭섭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 1:2b~3)
어찌 보면 부모로서 조금 구차해 보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형도 마다하고 동생인 너희를 살펴 주었는데 너희가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하며 섭섭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 모든 인류를 다 사랑하셔야 했겠지만, 구약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중에서도 이삭을 선택하시고, 또 이삭의 자녀 에서와 야곱 중에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그들의 자손들을 특별하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구약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족속을 만드셔서 끊임없이 돌보시며 인도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모든 구약의 이야기는 그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건너가서 수백 년을 살다가 하나님께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하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40여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주리지 않게 하셨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실패하고 말았죠. 하나님은 그들에게 친히 계명도 내려 주시고 기적도 보여 주시며 함께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한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어머니가 딸 또는 아들로부터 버림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오늘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의 한탄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이 그들의 질문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께 이런 불경한 말을 쏟아 내는 것일까요? 그들의 형편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금 망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있습니다. 근근이 생명을 이어 가고는 있지만 그저 생존하고 있을 뿐 위대한 나라를 건설해 보지도 못하였고 세상을 지배해 본 적도 없습니다.
말라기의 시대적인 배경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합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오는 시점일 수도 있겠고, 혹은 포로에서 돌아온 후 수십 년이 지난 학개와 스가랴 활동 이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이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녹록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현실은 지금 포로에서의 생활을 막 끝내고 돌아오는 시점이거나, 혹은 돌아와서 자그마한 성전은 지었지만 수십 년 동안 여전히 이웃 백성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처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말라기에서 항변하고 있는 그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왜 우리는 이 모양밖에 되지 않습니까? 이집트의 라 태양신은 이집트를 저토록 부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바벨론의 벨, 마르둑은 바벨론을 저토록 큰 나라로 만들어 주었는데, 우리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가졌을 법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전은 보잘것없고 그들의 형편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주신 말씀, ‘내가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한 약속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도리어 반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 1:2a, 새번역)
이 반항적인 질문이 구약의 맨 마지막 책 첫 장 첫 절에 쓰여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마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종결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서 다시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로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의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업은 번성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나의 사업은 이토록 힘들게 만드시는 것일까?’,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나를 이렇게 보잘것없는 자리에 그냥 내팽개쳐 두시는가?’
또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왜 이렇게나 하나님을 잘 믿는 우리 아들, 우리 딸을 먼저 데려가셔야만 했습니까? 왜 사랑하는 남편, 아내에게 몹쓸 병을 주셔서 고생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저렇게 건강하게 잘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을 잘 믿는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진실은 예수님의 삶 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저도 평안한 인생의 길을 걸어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하시고 버리신 것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시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큰 실망으로 산에서 뛰어내릴 뻔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07년 새벽 기도를 하던 중에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문득 예수님의 무릎 위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는데 밝은 빛이 내려와서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내 위에, 옆에, 앞에 주님께서 계시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주님께 항의하듯 이렇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래요? … 왜 이렇게 하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요?”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항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수도 없이 시험에서 떨어집니까? 왜 억울하게 악한 사람들에게 당해야 합니까? 그것도 못 막아 주시면서 사랑한다고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묵상할 때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늘로부터 들려왔던 음성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두 번의 사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죠. 먼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 17:5)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분명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특별한 음성을 두 번 이상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의 인생은 어떠했습니까? 이 땅에서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드시면서 살아가셨나요?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하셨고, 가난하셨으며,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셨고, 폭도들에 의해서 끌려가셨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셨고, 가장 참혹한 처형인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늘로부터 들렸던 음성에 대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일어나도록 하십니까?’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버지,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시죠. 그리고는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아버지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믿음에 반응하시듯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었던 자리에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예수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으로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굴레로서 겪는 가난과 고통, 모함과 억울함 그리고 배신과 죽음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심지어 우리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고통, 그의 십자가를 면제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참한 죽음에 처할 때에 그를 다시 살려 내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을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10)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중요한 것을 주시려는 사랑입니다.>
어려운 시절, 이웃들과 함께하던 구로동 시절을 종종 말씀드렸습니다. 과부의 아이들이 성탄절 때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인 새 신발을 신고 동네에 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에게는 새로운 신발이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동네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주셔서 집집마다 신발을 나눠 주셨는데, 정작 저희에게는 신발을 주시지 않았던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되어 아버지께 “우리에게는 왜 신발을 안 사 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너는 아버지가 있지 않니?”
사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섭섭한 말씀이긴 합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를 늘 다시 한번 되묻곤 합니다. 이런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너는 지금 아버지가 있어. 내가 지금 네게 신발은 사 주지 않아. 그러나 네가 더 어렵게 되거나 이것보다 더 큰 것을 필요하게 될 때 나는 네게 무언가를 줄 거야. 나는 너의 아버지야. 그러니 네게 꼭 필요할 때에 나는 너를 돌볼 것이다.’ 이 약속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 아버님께서는 성탄절 때마다 신발은 안 주셨지만 제가 어려울 때 ‘내 아들이 어려울 때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를 보살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라기가 참 안타깝게 끝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결렬된 것 같은 모습으로 구약 성경이 마무리되죠. 수백 년 동안 그 마지막 항변이 메아리처럼 흐르고 또 흘러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그 사랑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말라기는 어려운 현실과 포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포로 생활,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고, 신앙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말라기가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요한일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마침내 신앙인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 사랑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건강에 관련된 일희일비하는 어떤 사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업의 번성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인간의 가장 큰 문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최고의 표지이며 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항의할 수 있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애타게 하나님 앞에 울부짖을 때 주님은 그때마다 피 묻은 손으로 우리의 머리에 안수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못 자국 난 손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죽어도 살리기를 원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최근 쇼펜하우어라든지 많은 철학자들의 글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 많은 분이 철학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세상을 알차게 살아야 되겠죠.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세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해야 될 또 다른 현실은 죽음입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넘어 다른 세상을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서야 ‘주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셨구나. 참 감사하다.’라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기도 하겠습니다.
2024년 6월 23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말 1장 2~5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295장, 304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말 1장 2~5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6월 2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부모가 자녀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자녀가 부모를 외면할 때의 마음이 어떠한지 한 번 상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교의 요약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섬기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친히 계명도 주시고, 기적도 보여 주시며, 함께해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측면에서 이것은 마치 한 아이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가 그 아들로부터 버림받는 느낌이랄까요? 그 아들이 장성하여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의 형편을 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보고 있습니다.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그저 생존하고 있을 뿐,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말라기의 시대적인 배경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온 시점일 수 있고, 혹은 이후 학개, 스가랴의 활동이 있은 이후일 수도 있는데, 어느 시점이든, 이스라엘의 상황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반항적인 질문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론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께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멸시를 당하셨고, 가난하셨고, 마침내 억울한 누명을 쓰셨고, 폭도들에 의해 끌려가셨고, 벌거벗기우는 수치를 당하셨고, 가장 참혹한 처형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 왜 이러시는 건가요?” 라고 말씀하실 만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시며,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다시 건지실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보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굴레로써 가난과 고통, 모함과 억울함, 배신과 죽음에서 우리를 면제하여 주시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심지어 우리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다시 살려 내시는,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나누기
-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 때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2..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vs. “주님께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이 두 가지 사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나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사랑의 자취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친히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를 보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슬픔을 당한 사람, 실족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에 이 주님의 말씀이 머물게 하시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주님의 구원하심을 기뻐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