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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28~30

곽선희 목사

2025.12.07

<몸의 건강처럼 우리의 믿음을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중한 몸의 건강을 위해 모름지기 1년에 한 번씩은 건강 진단을 받으시는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적 생명의 건강을 위해서도 진단을 한번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 한번 마음의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을 분석해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병 고침 받기 위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병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자기 소원 때문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침받을 때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눅 7:50; 8:48; 18:42)

그들의 작은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 믿음에 축복하사 병을 고쳐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병 걸린 사람들이 병 고침받은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아실 것입니다. 다 자기 집으로,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더 죄악된 세상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병 고침을 받을 때는 그만큼의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는 대로 되리라 해서 병 고침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교훈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예수님이 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병이 고침 받는 소원 하나만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중심적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에로스라고 합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가페’이고, 하나는 ‘에로스’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도 아가페입니다. 그러나 에로스는 내가 중심인 사랑입니다. 내 소원에 집중해서 예수님께 나온 이들은 에로스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그런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셨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들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가 나았느니라” 하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자와 제자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여기에 나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나병에 한 번 걸리면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가 되면 자기 집에 살 수 없었습니다. 추방되어 동굴이나 광야에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게 나병 환자에게 주어진 일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추방된 환자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모여 떼거리를 지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감히 가까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 나병 환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이것은 병이 나았을 때 제사장에게 가서 검진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에게 갈 때는 이미 병이 고쳐진 상태에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큼의 믿음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고침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고침받은 자인 것처럼 제사장에게 검진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에 몸이 깨끗해지고 병이 나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홉 사람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병 나음을 축하하기 위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몸이 나은 것을 알고 예수님 앞에 꿇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그때 하신 말씀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서글픈 말씀입니다.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을 고침받은 이들을 나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 집으로 다 가고 한 사람만 예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가진 믿음만큼의 은사를 힘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그들을 ‘신자’라고 불렀습니다. 신자는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아닙니다. 제자와 신자는 다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교훈을 받으며,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자기 병만 고치고 가버리는 이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 말씀하시며 성도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제가 언젠가 책을 읽다가 감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간학적으로 비판하던 분의 책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지를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도 연구했더니,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두 순교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본 신학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모두 예수님을 따라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자식이나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로 예수를 메시아라고 기록한 신학자의 글을 보고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계 여행을 많이 하시죠? 로마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성당만 보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베드로성당 외에도 요한성당이나 바울성당 같은 곳들도 있는데,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바울성당 한가운데 바울의 묘지가 있었고, 그 밑에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도 묻혀 있었습니다. 제자가 함께 스승의 길을 따라간 것이지요. 그것을 보고 굉장함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예수님 덕에 복받고 잘 살고자 합니다. 이 모습을 과연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하나님, 재물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라 (마 11:29)

이 말씀의 헬라 원문은 “내 제자가 되어라”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개역개정에서는 “내게 배우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자와 신자는 다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복받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평안과 부귀, 행복은 바라면서 예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라는 말은 교육학적으로 지식(Knowledge), 수용(Acceptance), 실천(Practice)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지식으로 배웁니다. 지식을 듣고 생각하고 자기 합리적으로 이해하면서 배웁니다. 그다음으로는 가슴으로 배웁니다.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감성적으로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충성하는 것으로 배웁니다. 전적으로 위탁하는 충성된 마음(Total Commitment)으로 따라갑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여러 번 실수해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4, 27)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얼마나 자기를 부인하고 있습니까? 나는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해야 제자가 될 수 있고 예수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의 의미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의 영광과 신비,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부활의 영광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에 응답한 제자는 예수님께 기도와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몇 가지 꼭 배워야 할 게 있는데, 첫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큰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40일 금식 기도하고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야 주님을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부터 시작하셨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기도가 먼저입니다. 공부보다도, 사업보다도 기도가 먼저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곧 다가올 십자가를 두고 예수님은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인간적인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아버지 뜻은 아랑곳없이 내 뜻, 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로 밤을 새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다시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을 배워야 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모든 기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끝은 반드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내가 기뻐하며,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안 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달게 지게 해 달라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시련을 귀하고 큰 역사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긍휼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세리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태라는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3)

여러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위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 좋은 일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가난한 자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자가 많아 집마다 밥을 구걸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명절에 제가 저희 집에 밥을 구걸하는 이들을 다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큰 상을 만들어서 음식을 많이 대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몸이 불편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거나 냄새가 나는 등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다 함께 앉아 식사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을 보였던 것이 아이들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만 하지 말고, 함께 드시기 바랍니다.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긍휼입니다. 여러분, 어디까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실천해 보았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것을 배워라. 예수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뱃고물에서 편안히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배가 요동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풍랑 속에서 예수님은 자고 계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걱정하기보다 자신들이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과연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잠에서 깨어 “믿음이 없는 자들아 어찌 의심하느냐”하고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항상 샬롬이 있습니다. 풍랑 속에도 편안하고, 운전할 때도, 병에 걸려도 항상 평안합니다. 이 샬롬은 믿음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진실한 제자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요한복음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끝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될 줄 알고 서로 권리 다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줄은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자기 자리를 위해 다투고 있는 한심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고 도리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 더러운 발을 예수님이 직접 씻으셨습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을 가장 먼저 씻기셨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도 씻기며 그를 믿어 주셨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믿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마침내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깊은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끝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

예수님은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신비로운 능력 속에 요구하신 십자가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셨습니다. 그 능력 속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능력 속에 내가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신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 26:54)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이 일을 예언한 말씀이 어떻게 응답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이 자신에게서 응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이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자 사랑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귀중한 제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0~11)

바울은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처럼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며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제자가 되어라. 신자가 아닌 제자가 되어라.” 제자 된 나의 신분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예, 제가 끝까지 주의 제자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Learn From Me

Matthew 11:28-30

Just as we get a health examination each year, I believe we need spiritual checkups. Second Corinthians 13:5 states,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When Jesus was alive, many followed Him, but there were two types of followers.

First, there were those who followed Jesus just to be healed, to have their wishes fulfilled, and to see their desires come true. The bulk of the crowd came for such reasons; and indeed they were healed. There was a condition, though: faith. The Bible states that Jesus, seeing their faith, healed them—even if it was imperfect and small. But after being healed, they returned to their old lives. Some even went back to a worse life. Such people did not care about Jesus’ teachings, His words, the reason He came, His death, or the cross. All they wanted was their own healing and the fulfillment of their wishes.

In short, their faith was self-centered. This, in theological terms, is called “eros.” There are two kinds of love: “agape” and “eros.” The former is God’s love towards us and our love that responds to it. But eros, the latter, is a self-centered love.

Jesus, out of His compassion, fulfilled even the wishes of those who came to Him with eros. Even when people came to Him with a distorted faith, He healed them, seeing their faith.

A good example of this is Jesus’ healing of the ten lepers. Leprosy was a serious, incurable disease in biblical times. Lepers had to live miserable, isolated lives. This was their fate. So when ten lepers who were living together heard that Jesus was passing by, they came to Him and cried out for healing. They asked for mercy. Hearing their simple and desperate plea, Jesus healed them, telling them to show themselves to the priests. The ten lepers believed in Jesus’ words. They had that faith. So even though they hadn’t been healed yet, they started their journey toward the priests—as if they had been healed. On the way, they realized they were healed. How grateful they must have been! So what must they do at this point? Nine of them went home. Only one—a Samaritan—came back to thank Jesus.

I think Jesus would have been sad to see only one leper return to thank Him. Yet Jesus had compassion on them all. As we can see in this story, those who have a certain amount of faith—however small and imperfect—receive gifts. This is for certain. But such people have no regard for Jesus’ teachings, His words, the reason He came, the cross, or the truth of the precious incarnation.

What should we call such people? After a hard think, I thought of the term “believer.” A believer is one who just believes. He/she is no disciple. There is a stark difference between a believer and a disciple. A disciple knows Jesus’ heart, follows His teachings, follows Jesus to the end, and even dies with Him. But a believer just listens to Jesus, receives His power, gets healed, and runs away.

Once, I was moved by an author who studied and criticized Jesus based on his humanistic ideas. He observed that every one of Jesus’ twelve disciples, including Matthias, was martyred. He pointed out that Jesus, therefore, was indeed the Messiah.

Rome is not just home to St. Peter’s Basilica. In Rome, there are also the Basilica of St. John and the Basilica of St. Paul, Paul’s grave. But the amazing fact is that under Paul’s tomb lies the grave of Timothy, Paul’s disciple. This shows the life of a disciple. The disciple should be buried under his teacher, should he not? So, if we are Jesus’ disciples, should we just live a life of blessing and happiness when our Lord was crucified?

A man once prayed earnestly. “Lord, do as You will. May Your will be done. But don’t forget the money.” He could not abandon his greed.

We read in today’s passage, “learn from me.” The original Greek for this is “μάθετε ἀπ’ ἐμοῦ” (mathete ap’ emou), which means “to learn, become a disciple.” Therefore, the deeper and true meaning of “learn from me” is “become my disciple.” Remember, friends, a disciple is not just a believer.

Even today, many people believe in Christ, want to be blessed, and dream about a utopia through Jesus. All they desire is peace, prosperity, and happiness. They don’t care about the deep meaning of living with Christ, bearing the cross with Him. They are not disciples. Dear Church, never forget that we must become disciples.

To become Jesus’ disciples, we must learn from Him. To learn from Him means to become His disciples. In educational psychology, learning is composed of three stages: knowledge, heart, and practice (commitment). First we learn through knowledge. We listen, understand, and learn through knowledge. Then, we learn with our hearts. Even if we don’t like what we hear, we follow Jesus because He loves me and I love Him. In the third stage, however, we become committed and faithful even when we cannot comprehend with our hearts. This is total commitment. We may have doubts; yet we follow. This was the life of Abraham. He followed God’s word. Even though he made many mistakes, he followed God to the end. This is the disciple.

This is why Jesus said in Matthew 16, “Whoever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me.” This is the disciple. Only when we take up our cross and follow Jesus can we participate in God’s glory. Think about the life of Jesus deeply. Think of how He denied Himself and bore the cross. We, however, struggle not to bear the cross. But only when we bear our cross and follow Him can we participate in the glory of His resurrection.

Therefore, become Jesus’ disciples. To become His disciples, we must learn from Him. Among the many things we must learn from Him, the following are essential.

First, we must learn prayer from Jesus. Before starting a great ministry, Jesus prayed and fasted for 40 days. Only after praying did He start His work. We fail to do this. We do as we want, fail, and at the very end we cry out to Him in prayer. But Jesus prayed and fasted for 40 days in the wilderness before He started His ministry. Prayer comes first. Don’t forget this. This is why early morning prayer is important. Prayer precedes study, work, and business. Jesus Himself showed us the model of prayer.

But when we pray, we must ask for God’s will to be done. Look at how Jesus praye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He prayed, “Father, if you are willing, take this cup away from me;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This was the prayer of Jesus. How do we pray? We stay up all night praying for what we want, not caring about God’s will. But we must learn the prayer of Jesus. We must pray for His will to be done, not mine. “Seek first His kingdom and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added to you.” We can pray for our needs and desires, but all our prayers must ultimately end with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We must not pray that we will not bear the cross. We must pray that we will gladly bear it. When we do so, God will pour out His abundant grace upon us and do great and precious things through our trials.

Second, we must learn compassion from Jesus. When people asked, “Why do you eat and drink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Jesus replied,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Tax collectors in those times were the worst of sinners, whom society held in contempt. But Jesus went into the house of Matthew, a tax collector, and ate with him. Jesus said He came to call sinners, not the righteous. He tells us to learn compassion from Him.

We all know that we should have compassion for the poor and needy. We know we should serve them food, give them donations, and do charity. But do you know what is even better than all these? Eating with them. During the Korean War, there were many beggars. I once invited beggars during Chuseok because I knew they would be shunned by families during this festive season. I told them to come to my house since people considered it bad luck to meet beggars during this time. After preparing a big table, I had my whole family, including my children, eat with them. Some were disabled, many stank, and some even spilled food from their mouths. But we all ate together and I think we did a beautiful thing. Remember this. Eating with the poor and needy. Being with them. This is love. This is Jesus’ compassion. We must learn this.

Third, we must learn Jesus’ faith. We know the story of Jesus calming the storm. When a fierce storm struck and all the disciples were panicking in fear, what was Jesus doing? He was sleeping peacefully at the stern of the boat. When the disciples asked, “Don’t you care that we are drowning?,” Jesus, after calming the storm, said, “Why are you so afraid? Do you still have no faith?” Those who believe in Christ are always at peace—in storms, while driving, and even in sickness. We must not forget this shalom. We must learn the peace that comes from faith. We must learn this from Jesus.

Fourth, we must learn Jesus’ love. I am moved every time I read John 13. It says,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Before His death, the disciples were fighting over their rights and positions, thinking Jesus would be the Messiah. How pathetic. But Jesus did not rebuke them. He washed their feet. He washed their dirty feet Himself, including those of Peter and Judas Iscariot. He not only washed their feet but also believed in them. He had faith in Peter. This is why all the disciples ended up dying for Him. They were moved by Jesus’ love, a love that loved them to the very end.

Finally, we must learn from Jesus the most important of all: the cross. We must know the cross. How can we describe the heart of Jesus when He was facing the cross? What did He think and feel? When the soldiers came to arrest Him, Jesus said, “Shall I not drink the cup the Father has given me?” This was the heart of Jesus. He did not blame, hate, or criticize anyone. He did not blame the world. He thought of the Father. He knew that God was asking Him to bear the cross in the mysterious power of the Father. So Jesus resolved to bear it.

Dear friends, think of the love of God, the power of His love. The cross lies in that power. No matter what trials you may endure, never forget the love of God. There is power in His love. We must confirm that we are in His love. This is to learn from Jesus. Believing in the power of the cross, Jesus said, “Shall I not drink the cup the Father has given me?” Furthermore, Jesus thought about the prophetic words in the Old Testament. He believed they would be fulfilled only by His death on the cross. He thought His obedience would fulfill those words. We must learn this from Jesus. Looking at the cross, Jesus felt the love of God. Furthermore, He believed that all the words prophesied in the Bible would be fulfilled in His life. This was Jesus’ faith and love. We must learn these from Jesus.

Paul, probably the greatest of Jesus’ disciples, says in Philippians 3: “I want to know Christ—yes, to know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participation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and so, somehow, attaining to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Paul wanted to die like Jesus and also experience the power of resurrection like Jesus. He wanted to die and be resurrected like Jesus.

In fact, the most important truth in the Bible is that we can be resurrected like Christ and participate in His glory when we die with Him.

Christ’s disciples must know the heart of Christ. They must know the will of Christ. They must be like Christ. They must follow Christ. And they must suffer with Christ.

When we die on the cross with Christ, we will participate in the glory of resurrection with our Lord. The Lord speaks to us even today. “Become My disciples. Not believers, but disciples.” May we be clearly aware of our status as disciples. And may we have the grace to promise God, “Yes, Lord, I will live as Your disciple to the very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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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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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몸의 건강처럼 우리의 믿음을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중한 몸의 건강을 위해 모름지기 1년에 한 번씩은 건강 진단을 받으시는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적 생명의 건강을 위해서도 진단을 한번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 한번 마음의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을 분석해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병 고침 받기 위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병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자기 소원 때문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침받을 때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눅 7:50; 8:48; 18:42)

그들의 작은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 믿음에 축복하사 병을 고쳐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병 걸린 사람들이 병 고침받은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아실 것입니다. 다 자기 집으로,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더 죄악된 세상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병 고침을 받을 때는 그만큼의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는 대로 되리라 해서 병 고침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교훈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예수님이 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병이 고침 받는 소원 하나만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중심적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에로스라고 합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가페’이고, 하나는 ‘에로스’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도 아가페입니다. 그러나 에로스는 내가 중심인 사랑입니다. 내 소원에 집중해서 예수님께 나온 이들은 에로스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그런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셨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그들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가 나았느니라” 하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자와 제자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여기에 나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나병에 한 번 걸리면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가 되면 자기 집에 살 수 없었습니다. 추방되어 동굴이나 광야에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게 나병 환자에게 주어진 일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추방된 환자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모여 떼거리를 지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감히 가까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 나병 환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이것은 병이 나았을 때 제사장에게 가서 검진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에게 갈 때는 이미 병이 고쳐진 상태에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큼의 믿음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고침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고침받은 자인 것처럼 제사장에게 검진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에 몸이 깨끗해지고 병이 나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홉 사람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병 나음을 축하하기 위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몸이 나은 것을 알고 예수님 앞에 꿇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그때 하신 말씀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서글픈 말씀입니다.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나병을 고침받은 이들을 나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자기 집으로 다 가고 한 사람만 예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가진 믿음만큼의 은사를 힘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그들을 ‘신자’라고 불렀습니다. 신자는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아닙니다. 제자와 신자는 다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교훈을 받으며,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자기 병만 고치고 가버리는 이들은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 말씀하시며 성도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제가 언젠가 책을 읽다가 감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간학적으로 비판하던 분의 책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지를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도 연구했더니,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두 순교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본 신학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모두 예수님을 따라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자식이나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로 예수를 메시아라고 기록한 신학자의 글을 보고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계 여행을 많이 하시죠? 로마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성당만 보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베드로성당 외에도 요한성당이나 바울성당 같은 곳들도 있는데,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바울성당 한가운데 바울의 묘지가 있었고, 그 밑에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도 묻혀 있었습니다. 제자가 함께 스승의 길을 따라간 것이지요. 그것을 보고 굉장함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예수님 덕에 복받고 잘 살고자 합니다. 이 모습을 과연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하나님, 재물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라 (마 11:29)

이 말씀의 헬라 원문은 “내 제자가 되어라”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개역개정에서는 “내게 배우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자와 신자는 다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복받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평안과 부귀, 행복은 바라면서 예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라는 말은 교육학적으로 지식(Knowledge), 수용(Acceptance), 실천(Practice)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지식으로 배웁니다. 지식을 듣고 생각하고 자기 합리적으로 이해하면서 배웁니다. 그다음으로는 가슴으로 배웁니다.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감성적으로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충성하는 것으로 배웁니다. 전적으로 위탁하는 충성된 마음(Total Commitment)으로 따라갑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여러 번 실수해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4, 27)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얼마나 자기를 부인하고 있습니까? 나는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해야 제자가 될 수 있고 예수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의 의미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의 영광과 신비,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부활의 영광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에 응답한 제자는 예수님께 기도와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몇 가지 꼭 배워야 할 게 있는데, 첫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큰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40일 금식 기도하고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야 주님을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부터 시작하셨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기도가 먼저입니다. 공부보다도, 사업보다도 기도가 먼저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곧 다가올 십자가를 두고 예수님은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는 인간적인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아버지 뜻은 아랑곳없이 내 뜻, 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로 밤을 새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다시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을 배워야 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모든 기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끝은 반드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내가 기뻐하며,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안 지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달게 지게 해 달라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시련을 귀하고 큰 역사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긍휼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세리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태라는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3)

여러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위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 좋은 일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가난한 자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자가 많아 집마다 밥을 구걸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명절에 제가 저희 집에 밥을 구걸하는 이들을 다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큰 상을 만들어서 음식을 많이 대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몸이 불편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거나 냄새가 나는 등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다 함께 앉아 식사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을 보였던 것이 아이들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만 하지 말고, 함께 드시기 바랍니다.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긍휼입니다. 여러분, 어디까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실천해 보았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것을 배워라. 예수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뱃고물에서 편안히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배가 요동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풍랑 속에서 예수님은 자고 계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걱정하기보다 자신들이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과연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잠에서 깨어 “믿음이 없는 자들아 어찌 의심하느냐”하고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항상 샬롬이 있습니다. 풍랑 속에도 편안하고, 운전할 때도, 병에 걸려도 항상 평안합니다. 이 샬롬은 믿음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진실한 제자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요한복음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끝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될 줄 알고 서로 권리 다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줄은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 자기 자리를 위해 다투고 있는 한심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고 도리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 더러운 발을 예수님이 직접 씻으셨습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을 가장 먼저 씻기셨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도 씻기며 그를 믿어 주셨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믿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마침내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깊은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끝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

예수님은 누구도 원망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신비로운 능력 속에 요구하신 십자가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셨습니다. 그 능력 속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능력 속에 내가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신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 26:54)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이 일을 예언한 말씀이 어떻게 응답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이 자신에게서 응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이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자 사랑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귀중한 제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0~11)

바울은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처럼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며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제자가 되어라. 신자가 아닌 제자가 되어라.” 제자 된 나의 신분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예, 제가 끝까지 주의 제자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내게 배우라” (마11:28~30)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05, 528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나는 요즘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나요?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얻으려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려는 마음입니까?

 

<설교의 요약>

고린도후서 13:5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자와 제자가 있습니다. 신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얻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오늘 본문 “내게 배우라”는 헬라어 원문으로 “내 제자가 되라”입니다. 제자는 스승과 함께하며 말씀과 행동 등 모든 것을 배우고 따라갑니다.

배움에는 세 가지 길(지식, 수용, 순종)이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아도 순종하면서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첫째,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둘째, 긍휼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멸시하던 세리 마태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풍랑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은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은 평안하셨습니다.  어떤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샬롬)을 경험해야 합니다.

넷째,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크리소스톰에 의하면 가롯 유다의 발을 제일 먼저 씻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고 믿어주셨습니다.

다섯째, 십자가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을 느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0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처럼 부활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나는 신자입니까, 제자입니까? 생이 다할 때까지 충실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나누기>

1. 나는 지금 ‘제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나눠봅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며 순종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고백한 것 같으나 주의 제자가 되지 못했고, 주님으로부터 내가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의 깊은 뜻을 알고 참된 주의 제자로 살고 끝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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