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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갑자기 풍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찬송가 345장, 1절)
찬송가 345장의 첫 절입니다. 김활란 박사가 1921년에 작사한 찬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2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성난 물 큰 파도 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 줄 몰라 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찬송가 345장, 2절)
캄캄한 밤입니다. 사나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망망한 바다 위에 외로운 배 한 척이 힘겹게 바람과 맞서고 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뱃사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나 두려울까요? 얼마나 외로울까요?
김활란 박사는 1936년 이후에 친일 행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만, 1921년에 그가 쓴 시에는 나라 사랑에 대한 걱정과 마음이 한껏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찬송시에서 일제강점기를 캄캄한 밤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상황을 외로운 배 한 척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조선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이 아닌지 싶어서 절로 이 찬송이 저의 입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꼭 한 주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의 보석과도 같은 귀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갑자기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뇌출혈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출혈이 더 심해져서 지금은 중환자실에 누워 홀로 힘겨운 생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부는 바다 가운데 무섭게 몰아치고 있는 성난 파도를 마주하며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공의 모습이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장로님 같습니다. 위태한 상황 가운데 있는 장로님이 힘겨운 싸움을 잘 이겨 내서 속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또 이와 같은 일을 이미 경험하였을까요? 사업 중에 이런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인생의 바람을 막아 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을 찾기 위해서 애쓰면서 힘껏 노를 저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억울한 재판이나 모함을 당해서 외로운 배 한 척처럼 힘겹게 싸움을 견디는 사람도 있겠죠. 오늘 말씀은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떠나고, 또 떠나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다지 감동적이거나 세밀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매우 담백하고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듯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단순한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요 6:16~17)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몰려드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셨을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을 보이신 후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물러가서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인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명성을 얻으려고 했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홀로 물러나셨고 잠시 홀로 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연히 제자들만 남아 있었겠죠. 그리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두고 그들끼리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합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고 그들만 배를 타고 갔는지, 성경은 그 내용에 대해선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은 동일하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오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어찌 보면 거칠어 보이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 없이 떠난 항해”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베테랑급 선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갈릴리 바다에서 일하며 바다가 익숙했던 사람들이니, 아마도 항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큰 걱정 없이 항해를 나섰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수많은 도시를 잇는 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는 이곳저곳을 일상적으로 오고 갔겠죠. 어부였던 제자들도 배를 여기저기 가지고 다니면서 고기잡이를 했을 것입니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가버나움입니다. 그들은 편한 마음으로 늘 하던 대로 가버나움으로 향하여 갔을 것입니다. 이 평범한 본문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버나움을 향해 떠난 제자들의 모습에서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또 어딘가에 도착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서 열심히 떠나갑니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 도착합니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또다시 목표를 정해서 그 지점을 향해 열심히 항해합니다. 그 목표지에 도달하면 다시 다른 목표지로 떠나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 삶의 여정입니다.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는 배를 띄웠던 것처럼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는 배를 띄우고 그 항해를 지금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항해를 ‘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는 목적지를 ‘성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로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꿈과 성공을 향해서 우리는 항해를 떠나가곤 합니다.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모든 인생은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제자들이 탔던 배가 십여 리쯤 갔을 때 큰 풍랑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제자들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해 줍니다. 언뜻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예수님이 없어서 풍랑을 만난 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성경의 다른 본문에는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셨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을 만났던 적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인데, 예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 이들인데, 왜 그들에게 풍랑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은 또한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우리에게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고 고통이 없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으로 고통을 피하려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지로 향하던 중에 얼마든지 고난과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묻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 없음, 하나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실재를 나타냅니다. 인간 자체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이기에 고난과 풍파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로님께서 쓰러지신 후에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특별히 장로님을 따르는 많은 젊은 학생들이 안타까워하며 원망하듯 하나님께 묻는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쓰러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현실임에는 분명합니다. 시편 23편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그러니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제자들도 이 마음으로 항해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겠죠.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어려움을 만나면 얼마나 황당하고 원망스럽겠습니까? 하지만 시편의 기도자는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이야기한 후에 이렇게 이어 갑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시 23:4)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말을 하려면, 내게는 절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오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기도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인간이 마주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자는 “그럴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시편 기도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제자들에게도, 훌륭한 주님의 일꾼들이나 목회자, 어떤 사람에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반드시 있습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모세와 이스라엘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목적지였습니다. 출발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룩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면 출애굽 후에 그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나 장애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경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폭풍 치는 바다의 경험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넘실거리는 물 앞에서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그곳에서 그냥 뛰어들었다면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폭풍 치는 바다’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겪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 많은 사람들이 큰 폭풍을 만나고 위태한 시간을 경험합니다. 찬송가 가사에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위태하게 떠 있는 것처럼, 무섭게 몰아치는 비바람과 큰 파도 앞에서 애쓰는 뱃사공처럼 우리는 위험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위기를 면제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폭풍을 뚫고 한걸음에 달려오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풍랑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장면으로 묘사됩니다. 조금 전에 소개했던 김활란 박사의 찬송가는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찬송가 345장, 3-4절)
오늘 본문 말씀은 폭풍을 만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신비한 능력으로 바다 위를 걸어오셨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오셨을까요? 과연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평행 구절인 마태복음 14장에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물 위로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고는 물 위로 몇 걸음 걸어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걸어가다가 그만 물결을 보면서 다시 물속으로 빠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것이 마태복음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있겠다’라고 희망을 품기도 하죠. 또한 이 본문에서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는 정신을 고취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은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다른 의미를 보게 하십니다. 다른 이야기를 모두 다 없애고 이야기 하나만을 밋밋하게 전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 속에 한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폭풍 속에서 힘겨워하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폭풍을 만나서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은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 폭풍을 뚫고 달려오십니다.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폭풍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기쁨과 신앙의 충일함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셨겠죠. 그러나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 어려움을 당한 것을 알게 되신 주님은 그들을 향해 달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위태로운 제자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뱃길로 십 리 이상, 바다 한가운데 4km 지점까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아니 달려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바다를 걷는 능력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칭송받기를 원하셨다면, 그 밤에 달려오실 필요는 없었겠죠. 그리고 그 밤에 제자들만 있는 곳으로 달려오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바다 걷는 능력을 보이려고 하셨다면, 오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바로 바다에서 능력을 보여 주며 영광을 받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오시는 이 사건은 예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규명하려는 사건이 아닙니다.
<모진 바람이 불고 있지만 권능의 손이 노를 젓고 있는 바다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밤에 폭풍 속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이 발걸음에는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폭풍을 만난 사람들, 이미 바다 깊이 들어와서 꼼짝달싹 못 하고 바람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 외로운 배 한 척 붙잡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폭풍을 뚫고 달려오십니다. 그렇게 오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요 6:20)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다른 복음서를 보면 “유령인가 하여서 제자들이 두려워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내가 유령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신 이 말씀은 “내가 왔다. 그러니 안전할 것이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맡겨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주님은 십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던 바닷길을 뚫고 폭풍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오셨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김활란 박사의 찬송은 다시 이어집니다.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찬송가 345장, 5절)
작사가는 모진 바람 큰 물결이 덮치고 있지만, 권능의 손이 노를 젓고 계시니 나에게 이 바다는 맑은 바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예수님을 폭풍 속에서 만나죠. 왜냐하면 폭풍 속에 달려오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암흑의 현장에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폭풍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폭풍은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풍랑이 넘실거리는 바다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폭풍 속에서 언제나 맨발로 달려오고 계시는 주님, 그 주님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21절입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요 6:21a)
폭풍 속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 드리는 제자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입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21b)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 없이 출발했습니다. 그들에게 목표가 있었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그들에게 오셔서 배 위에 오르신 후에 그들은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릅니다. 오늘의 본문은 분명히 폭풍에 처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말씀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고마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07편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큰 물을 헤쳐 가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하신 행사를 보고, 깊은 바다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기적을 본다.
그는 말씀으로 큰 폭풍을 일으키시고, 물결을 산더미처럼 쌓으신다.
배들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깊은 바다로 떨어진다.
그런 위기에서 그들은 얼이 빠지고 간담이 녹는다.
그들이 모두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그들의 지혜가 모두 쓸모 없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
(시 107:21~30, 새번역)
Lead, Kindly Light
John 6:16-21
“Fierce winds blowin the pitch dark night.
On the vast, endless sea,
A lonesome boat sails.
O, how perilous, how perilous.”
There are the lyrics of a hymn writtenby Dr. Kim Hwal-lan in 1921. Verse two goes like this:
“As rains andstorms pelt menacingly
And angry waters rise in great waves,
The boatman knows not what to do.
O, how pitiful, how pitiful.”
It is a dark night. Fierce winds are blowing. A lonesome boat is sailing in this vast, stormy sea, struggling against the winds and waves. The boatman is at a loss. How terrified he would be! How lonely!
Although Dr. Kim has been criticized for his pro-Japanese actions after 1936, this hymn written in 1921 deeply reflects his love and concern for Korea. He seeks God’s help,comparing Japanese colonial rule to a pitch dark night and the state of Chosun to a lonesome boat.
Korea’s situation today seems, in many ways, like this boat, which is why I find myself singing this hymn a lot these days.
Just a week ago, Elder Lee Heung-lak, one of the most beloved elders at Somang Church, fell critically ill. He was rushed to the ER after suddenly finding that he couldn’t move. It was a stroke. Although he underwent surgery, his hemorrhage is worsening, and he is currently fighting for his life in the ICU.
Elder Lee seems just like theboatman in Kim’s hymn, struggling against the fierce waves in a stormy sea on a pitch dark night. A solitary boat in the vast sea on a pitch dark night, struggling against menacing winds. May Elder Lee fight this fight well.
How many others will be in such a situation? How many havealready gone through it? Many are struggling alone against all kinds of winds and storms, as they runtheir business, trying not to lose their grip on the oars. Many are struggling hard and alone, withstanding fierce winds.
Like Elder Lee, many terrified patients are fighting for their lives in hospitals, in ERs, and in ICUs, taking hard breaths and bearing the pain without knowingwhat will become of them.
There are also children who have lost both their parents in accidents and have to go to an orphanageor to a relative’s home. There are children living harsh lives, fearful of the future and crying every day for their parents.
Today’s Scripture is our Lord’s words to those who are strugglingagainst sudden storms in their lives. If you are one of them, may today’s message comfort and encourage you.
The contents and structure of today’s passage are very simple. This is how the story starts:
“When evening came, his disciples went down to the lake, where they got into a boat and set off across the lake for Capernaum. By now it was dark, and Jesus had not yet joined them.”(John 6:16-17)
In the passage preceding today’s text, Jesus feeds five thousand people with just two fish and five loaves of bread. Furthermore, in the passage followingtoday’s text, crowds flock to Jesus even to the point of getting in boats to get near Him. In short, the time was when Jesus was ministering actively and performing many miracles. Accordingly, many people had come to see Jesus, not just on foot but also on boats.
But after performing the miracle of feeding the five thousand, Jesus retreats to a mountain alone for a while to get away from the crowd. In short, He hides Himself. Jesus was truly wise; He knew how to empty Himself.
It was when Jesus had gone away for a while. Only the disciples were left. And it was evening. Interestingly, the disciples took a boat to Capernaum, leaving Jesus behind.
The Bible doesn’t tell us exactly why they left Jesus behind and got on a boat themselves. Interestingly, however, parallel texts, Matthew 14 and Mark 16, bothclearly state that Jesus was not on the boat with them when theyset sail.
Although today’s story is simple, it begins with one very important fact:“a voyage without Jesus.”
For reasons unknown to us, the disciples, who had always been with Jesus till then, set sail forCapernaum even though their Lord had not arrived. Perhaps they had agreed to meet up in Capernaum, but one thing is clear: they started their journey without Jesus.
The disciples were, of course, expert sailors. They were seasoned fishermen who had fished in the Sea of Galilee for a long time. They would have started their voyage without much worry. In fact, sailing to Capernaum would have been an ordinary event. They were used to traveling here and there on boats.
Their destination was set. Capernaum. So they headed for Capernaum with a light heart, as usual.
Now shall we put ourselves in the story to make it ours? The disciples sailing for Capernaum are a lot like us who are also journeying toward our own destinations.
In fact, our lives are a continuation of departures and arrivals. We humans are always busily going somewhere. After setting a goal, we use our time to reach it; we endeavor. When we reach a certain goal, we set another one, and, again, make every effort to reach it.
Just as the disciples set sail for Capernaum, we too have our own destinations. We want our businesses to succeed. We want to become actors/actresses, singers, announcers, professors, scholars, and writers in order to leave a mark in this world.
Like the disciples who sailed for Capernaum, we all are voyaging to a certain destination.
The Bible however recordsthat when the disciples had gone about three or four miles, they met a great storm. The fact that they faced a storm has many implications for us.
First, even faithful followers of Jesus, including us, meet storms and waves. What I am saying is that even faithful Christians are not free from pain and hardship.
We face hardships in life as we journey toward our desired destinations. This does not mean God is absent; it is merely man’s reality. As humans, we encounter storms and hardships in life.
This is Psalm 23: “The Lord is my shepherd, I lack nothing.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fear no evil…”(Psalm 23:1, 4)
The psalmist confesses that the Lord is his shepherd, and, therefore, he lacks nothing. But immediately after this confession, he sings,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He has just confessed he lacks nothing. But in the next breath he sings about walking through the valley of death. If one confesses he lacks nothing, shouldn’t he also say there will be no dark valley in his life?
Yet, the psalmist sings, “Yes, there will be a time when I pass through dark valleys. Still I lack nothing because God is with me…”
Even to people who believe in God there will be dark valleys. We, too, must face desperate and terrifying times like others.
You will remember how Moses and the Israelites escaped Egypt and headed for Canaan. They left Egypt for their new destination, Canaan. That departure was God’s command, a holy departure led by Him.
But that didn’t mean they didn’texperience valleys of death and stormy seas. The Israelites immediately faced massivewaters, the Red Sea. If they had just fell in, they would have all drowned in thatdark sea of death. All this is the reality of the life of man, which no man can escape.
As the lyrics of the hymn goes, they are bound to meet perilous, dangerous seasons: “The boatman knows not what to do.”
Believing in God does not mean no storms.
Nevertheless, there is no need to despair. As the psalmist sings,“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don’t have to fear evil.”“Because the Lord is with me.”
The third scene is Jesus rushing to the disciplesin the storm.
The hymn written by Dr. Kim continues with these lyrics:
“In despair the boatman trembles.
But seeing a beam of light,
He believes God is with him—even in the boat.
O! He prays. He prays:”
“Father, watch over this sinner,
Calm the fierce storm,
Save my poor life.
O! Our God, our God.”
Today’s passage testifies that Jesus walked on the sea with mysterious power toward His disciples in the storm.
Here we wonder. Why did Jesus walk on the sea? Was it because He wanted to show the people He is able to do so?
Matthew 14, a parallel text, records that Peter tried to walk on water like Jesus after seeing the Lordapproach him. Accordingly, in interpreting this text, many have focused on the miraculous deed done by Jesus, that is, walking on water. They stress the fact that Jesus walked on water; therefore, we too can walk on water if we have faith.
Accordingly, sometimes when we read this passage, we often encourage the “cando spirit” of believers, that is, the belief that “to those who believe, nothing is impossible.”
But this passage should be interpreted differently. It contains a solemn confession that “we cannot do it,”rather than a cando spirit.
The disciples are alarmed because they have met a storm. And Jesus rushes to them in the midst of it. Imagine this scene. How happy and relieved they would have been! Jesus couldn’t just stand by and watch them suffer in the storm. So He races to them. The lake was blocking Him, but this was no obstacle for our Lord. He walked—no, ran—on water, as if on land.
If Jesus wanted to receive praise from the people by performing this miracle, He would not have rushed to the disciples at night when only His disciples were looking. If He had walked on water with such a mind, He would have been tempted by Satan long ago.
Therefore, what today’s passage is conveying to us is not about Jesus’ mysterious power. It reveals His compassion. The love of Jesus.
The disciples had already rowed about four miles. This meansthat Jesus had walked quickly—ran, rather—four miles on water. And what did He say to the disciples when He met them in the storm? He said, “It is I; don’t be afraid.” Jesus races to the disciples in the storm and says, “I have come. Do not be afraid.”
People tend to interpret these words as merely Jesus’ calming assurance to His disciples who thoughtthey were seeing a ghost. However, these words in this passage mean much more than that.
“You are in a storm. I have come four miles to see you; to Me, even walking on water is not impossible. Now I have come. So do not be afraid.” This is what Jesus is saying.
The hymn continues:
“No matter how high the waters or fierce the winds,
No matter how angrily they pelt us,
His powerful hands row the boat.
O, how clear the sea. How clear.”
The songwriter writes thatmenacing winds and great waves are pelting him, but because His powerful hand is at the oars, the sea is clear. The sea is clear.
Indeed, many encounter Jesus in a storm. They meet Jesus who visits them in their darkesttime of suffering. “It is I. I will be with you. I will help you. I will truly uphold you.” This is what Jesus says to those in a storm.
A storm is the very place where Jesus visits us. It is where we meet our Lord. In the storms that we face, there is always Jesus who runs to us, barefoot, on stormy waters.
The problem is whether we welcome Him or not. Let’s look at today’s Scripture. Verse 21.“Then they were willing to take him into the boat”(John 6:21)
Jesus came to the disciples in the midst of a storm. And they happilyreceived Him. So today’s story has a happy ending. And it ends like this:“And immediately the boat reached the shore where they were heading.”(John 6:21b)
At first, the disciples started sailing without Jesus. They had a goal, but met a great storm that prevented them from reaching that goal. But after Jesus came into their midst and got on their boat, they started sailing again. Finally, they reached their destination.
Today’s passage clearly gives hope to many in this world who are facing storms. Our Lord wants us to see Jesus who graciously runs to us, our merciful God.
In closing, let me read from Psalms. Psalm 107:21-30:
“Let them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is unfailing love and his wonderful deeds for mankind. […] Some went out on the sea in ships; they were merchants on the mighty waters. They saw the works of the Lord, his wonderful deeds in the deep. For he spoke and stirred up a tempest that lifted high the waves. They mounted up to the heavens and went down to the depths; in their peril their courage melted away. They reeled and staggered like drunkards; they were at their wits’ end.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in their trouble, and he brought them out of their distress. He stilled the storm to a whisper; the waves of the sea were hushed. They were glad when it grew calm, and he guided them to their desired haven.”(Psalm 107: 21-30)
요한복음 6:16~21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갑자기 풍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찬송가 345장, 1절)
찬송가 345장의 첫 절입니다. 김활란 박사가 1921년에 작사한 찬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2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성난 물 큰 파도 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 줄 몰라 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찬송가 345장, 2절)
캄캄한 밤입니다. 사나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망망한 바다 위에 외로운 배 한 척이 힘겹게 바람과 맞서고 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뱃사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나 두려울까요? 얼마나 외로울까요?
김활란 박사는 1936년 이후에 친일 행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만, 1921년에 그가 쓴 시에는 나라 사랑에 대한 걱정과 마음이 한껏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찬송시에서 일제강점기를 캄캄한 밤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상황을 외로운 배 한 척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조선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가 이런 상황이 아닌지 싶어서 절로 이 찬송이 저의 입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꼭 한 주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소망교회의 보석과도 같은 귀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갑자기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뇌출혈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출혈이 더 심해져서 지금은 중환자실에 누워 홀로 힘겨운 생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부는 바다 가운데 무섭게 몰아치고 있는 성난 파도를 마주하며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공의 모습이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장로님 같습니다. 위태한 상황 가운데 있는 장로님이 힘겨운 싸움을 잘 이겨 내서 속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또 이와 같은 일을 이미 경험하였을까요? 사업 중에 이런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인생의 바람을 막아 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을 찾기 위해서 애쓰면서 힘껏 노를 저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억울한 재판이나 모함을 당해서 외로운 배 한 척처럼 힘겹게 싸움을 견디는 사람도 있겠죠. 오늘 말씀은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떠나고, 또 떠나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다지 감동적이거나 세밀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매우 담백하고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듯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단순한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요 6:16~17)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몰려드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셨을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을 보이신 후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물러가서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인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명성을 얻으려고 했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홀로 물러나셨고 잠시 홀로 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연히 제자들만 남아 있었겠죠. 그리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두고 그들끼리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합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고 그들만 배를 타고 갔는지, 성경은 그 내용에 대해선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은 동일하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오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어찌 보면 거칠어 보이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 없이 떠난 항해”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베테랑급 선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갈릴리 바다에서 일하며 바다가 익숙했던 사람들이니, 아마도 항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큰 걱정 없이 항해를 나섰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수많은 도시를 잇는 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는 이곳저곳을 일상적으로 오고 갔겠죠. 어부였던 제자들도 배를 여기저기 가지고 다니면서 고기잡이를 했을 것입니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가버나움입니다. 그들은 편한 마음으로 늘 하던 대로 가버나움으로 향하여 갔을 것입니다. 이 평범한 본문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버나움을 향해 떠난 제자들의 모습에서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또 어딘가에 도착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서 열심히 떠나갑니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 도착합니다. 어딘가에 도착하면 또다시 목표를 정해서 그 지점을 향해 열심히 항해합니다. 그 목표지에 도달하면 다시 다른 목표지로 떠나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 삶의 여정입니다.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는 배를 띄웠던 것처럼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는 배를 띄우고 그 항해를 지금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항해를 ‘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는 목적지를 ‘성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로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꿈과 성공을 향해서 우리는 항해를 떠나가곤 합니다.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모든 인생은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제자들이 탔던 배가 십여 리쯤 갔을 때 큰 풍랑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제자들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해 줍니다. 언뜻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예수님이 없어서 풍랑을 만난 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성경의 다른 본문에는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셨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을 만났던 적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인데, 예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 이들인데, 왜 그들에게 풍랑이 일어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사실은 또한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우리에게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고 고통이 없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으로 고통을 피하려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지로 향하던 중에 얼마든지 고난과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묻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 없음, 하나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실재를 나타냅니다. 인간 자체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이기에 고난과 풍파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장로님께서 쓰러지신 후에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특별히 장로님을 따르는 많은 젊은 학생들이 안타까워하며 원망하듯 하나님께 묻는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쓰러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현실임에는 분명합니다. 시편 23편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그러니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제자들도 이 마음으로 항해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겠죠.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던 중에 어려움을 만나면 얼마나 황당하고 원망스럽겠습니까? 하지만 시편의 기도자는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이야기한 후에 이렇게 이어 갑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시 23:4)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말을 하려면, 내게는 절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오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시편 기도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인간이 마주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자는 “그럴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시편 기도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제자들에게도, 훌륭한 주님의 일꾼들이나 목회자, 어떤 사람에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반드시 있습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모세와 이스라엘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목적지였습니다. 출발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룩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면 출애굽 후에 그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나 장애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경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폭풍 치는 바다의 경험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넘실거리는 물 앞에서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그곳에서 그냥 뛰어들었다면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폭풍 치는 바다’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겪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 많은 사람들이 큰 폭풍을 만나고 위태한 시간을 경험합니다. 찬송가 가사에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위태하게 떠 있는 것처럼, 무섭게 몰아치는 비바람과 큰 파도 앞에서 애쓰는 뱃사공처럼 우리는 위험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위기를 면제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폭풍을 뚫고 한걸음에 달려오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풍랑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장면으로 묘사됩니다. 조금 전에 소개했던 김활란 박사의 찬송가는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찬송가 345장, 3-4절)
오늘 본문 말씀은 폭풍을 만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신비한 능력으로 바다 위를 걸어오셨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오셨을까요? 과연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평행 구절인 마태복음 14장에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물 위로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고는 물 위로 몇 걸음 걸어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걸어가다가 그만 물결을 보면서 다시 물속으로 빠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것이 마태복음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있겠다’라고 희망을 품기도 하죠. 또한 이 본문에서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는 정신을 고취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의 본문은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다른 의미를 보게 하십니다. 다른 이야기를 모두 다 없애고 이야기 하나만을 밋밋하게 전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 속에 한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폭풍 속에서 힘겨워하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폭풍을 만나서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은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 폭풍을 뚫고 달려오십니다.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폭풍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기쁨과 신앙의 충일함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셨겠죠. 그러나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 어려움을 당한 것을 알게 되신 주님은 그들을 향해 달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위태로운 제자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뱃길로 십 리 이상, 바다 한가운데 4km 지점까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아니 달려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바다를 걷는 능력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칭송받기를 원하셨다면, 그 밤에 달려오실 필요는 없었겠죠. 그리고 그 밤에 제자들만 있는 곳으로 달려오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바다 걷는 능력을 보이려고 하셨다면, 오천여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바로 바다에서 능력을 보여 주며 영광을 받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오시는 이 사건은 예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규명하려는 사건이 아닙니다.
<모진 바람이 불고 있지만 권능의 손이 노를 젓고 있는 바다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밤에 폭풍 속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이 발걸음에는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폭풍을 만난 사람들, 이미 바다 깊이 들어와서 꼼짝달싹 못 하고 바람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 외로운 배 한 척 붙잡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폭풍을 뚫고 달려오십니다. 그렇게 오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요 6:20)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다른 복음서를 보면 “유령인가 하여서 제자들이 두려워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내가 유령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신 이 말씀은 “내가 왔다. 그러니 안전할 것이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맡겨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주님은 십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던 바닷길을 뚫고 폭풍 속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오셨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김활란 박사의 찬송은 다시 이어집니다.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찬송가 345장, 5절)
작사가는 모진 바람 큰 물결이 덮치고 있지만, 권능의 손이 노를 젓고 계시니 나에게 이 바다는 맑은 바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예수님을 폭풍 속에서 만나죠. 왜냐하면 폭풍 속에 달려오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암흑의 현장에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폭풍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폭풍은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풍랑이 넘실거리는 바다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폭풍 속에서 언제나 맨발로 달려오고 계시는 주님, 그 주님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21절입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요 6:21a)
폭풍 속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 드리는 제자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입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21b)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 없이 출발했습니다. 그들에게 목표가 있었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그들에게 오셔서 배 위에 오르신 후에 그들은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릅니다. 오늘의 본문은 분명히 폭풍에 처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말씀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고마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07편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큰 물을 헤쳐 가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하신 행사를 보고, 깊은 바다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기적을 본다.
그는 말씀으로 큰 폭풍을 일으키시고, 물결을 산더미처럼 쌓으신다.
배들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깊은 바다로 떨어진다.
그런 위기에서 그들은 얼이 빠지고 간담이 녹는다.
그들이 모두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그들의 지혜가 모두 쓸모 없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
(시 107:21~30, 새번역)
2025년 2월 16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요6:16~21)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93장, 37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찬송가 345장은 캄캄한 밤, 힘겹게 바람에 맞서는 한 뱃사공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곡을 쓴 김활란 박사는 1921년 일제 강점기를 캄캄한 밤, 조선의 상황을 외로운 배 한 척으로 묘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풍랑의 상황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의 요약>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몰리는 사람들을 떠나 잠시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두고는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떠났습니다. “예수님 없이 떠난 항해”였습니다.
가버나움으로 항해를 떠난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을 봅니다. 가버나움을 목표로 배를 띄웠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목적지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풍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실재입니다.
시편23편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부족함이 없다”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처절하고 두려운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을 목적지로 출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명령으로 떠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거룩한 출발이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폭풍 치는 바다와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만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달려오신 것입니다. 345장의 찬송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 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왜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걸어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폭풍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제자들을 그냥 두고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려오셨습니다.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도,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아니 달려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물 위를 걸으시는 신비한 능력보다,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뱃길로 10리를 왔습니다. 4km 정도를 예수님께서는 걸어서, 뛰어서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폭풍 속에 있구나. 내가 10리를 멀다하지 않고, 바닷길을 불가능하다 하지 않고 너를 찾아왔다. 이제 내가 왔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찬송이 이어집니다.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많은 사람들이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고통스런 암흑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은 “나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내가 참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폭풍은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장소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폭풍 속으로 맨발로 달려오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예수님을 우리 안으로 모셔 들이는가 입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본문은 해피엔딩입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폭풍 속에서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고마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시편 107편 21~30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2. 인생의 폭풍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 때에,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찾아오셨습니까?
<마무리 기도>
거룩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심을 다시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불안하지 않게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맑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임을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깊이 새기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