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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을 드리라

고린도후서 11: 1 ~ 3

김경진 목사

2019.11.24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

고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이야기 중에 제가 참 좋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의 방황을 마치고 하나님께 돌아온 그가 하나님께 고백한 내용입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온 우주와 세상이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나이다. 그런데, 왜 당신께서는 이렇게 작고 작은 나에게 오시어서, 내 안에 들어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전에 번역된 표현이 조금 더 감칠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건만, 왜 작고 작은 나에게 들어와 담기시려 하시나이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외침이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드리지 않으려 했던 그가 마침내 하나님께 자기 자리를 내어드리며 항복하는 장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저 자신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실존이 드디어 주님 앞에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크게는, 주님을 감히 담을 수 없는 이 땅에 성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노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나 자신의 마음 깊은 곳 곧 내 실존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어느 날 불붙은 떨기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을 벗어라.” 마치 그때처럼 아우구스티누스도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네 마음을 내어놓아라.” 주님의 이 음성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도로 절규합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왜 굳이 제 마음, 이 작고 작은 마음, 더럽고 누추한 곳에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까? 온 세상에 담기셔도 모자랄 당신이 왜 저처럼 작고 작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왜 나입니까?” 끈질지게 저항하던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겠습니까? 내 마음은 그저 내가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미 그의 마음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와 진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악한 것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참으로 구차해 보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 들어오십시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내놓으라고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실까요? 혹시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도 한두 번쯤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첫사랑에 빠졌던 경험이 있으시지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손자와 손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돈을 내고서라도 자랑을 하고야 마는, 그런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으시지요? 손주가 달라면 무엇이든 다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사랑에 빠진 마음입니다.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 그룹의 팬클럽 이름이 ‘아미’라고 합니다. CNN이 BTS 팬클럽을 조사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 수만 수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충성스러운 팔로워들이 있는데, 그들이 BTS의 중대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음악계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만드는 이들이 바로 BTS 아미입니다. 개인적으로 CD Player가 없는데도 BTS의 CD를 몇 개씩 구입한다고 합니다. BTS의 스트리밍 기록을 올려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수없이 여러 번, 수만 번까지도 같은 곡을 듣는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BTS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항의해 사과를 받아내기도 한답니다. 그야말로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지요.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모습이 곧 우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짝사랑하는 사람이지요. 마음은 빼앗겼는데 마음이 오지 않는 사람. 그래서 늘 약자입니다. 늘 불안합니다. 늘 바라만 봅니다. 언제나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안에 사랑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포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또 사람들을 만나 사귈 때도 마찬가지며, 이성 교제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가야 모든 것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먼저 눈이 가지만 그다음에는 마음이 가야 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내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없고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경험입니다. 참 신비롭지 않습니까?

< 마음이란 하나님마저 담을 수 있는 위대한 그릇입니다. >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육체와 구별해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가슴이나 심장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머리나 뇌 속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정신 활동이나 생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감정이나 호르몬 작용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존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지 간에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마음을 경험하며 항상 마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육체만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답지 못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인간으로서 우리 안에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고, 또 스스로 증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이며, 인간의 능력을 무한하게 하는 능력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란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육체가 담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물론 인간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고, 육체는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늙고 시들어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넓고 크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시간을 아우릅니다. 얼마든지 넓혀질 수 있고, 얼마든지 넓은 것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동양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본체는 넓고 크고 비었고 밝아 만 가지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이를 잘 길러 해침이 없다면 천지와 같이 크고 일월과 같이 밝으며 크기는 만물을 능히 담을 수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성인과 도인들이 자신의 마음에 만물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우주를 담고, 세상 전체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천지와 우주를 담을 만한 넓은 그릇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도 남음이 있는 무한의 땅인 동시에 온 세상의 더러운 것을 덮고도 남음이 있는 넘실거리는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담아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위대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을 담을 수 있도록 고안하셨으며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고안하셨기 때문에, 그 덕분에 인간이 만물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크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조그마한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는가에 대해 물으면서도, 그렇게 창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작고 작은 우리의 마음속에 만물이 들어오고도 남을 만큼의 여유를 만들어 주시고, 사실은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우리 마음을 고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큰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귀중한 통로가 되며,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되고,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결국 인간은 ‘마음’으로 믿어 구주를 받아들이고, 영원을 소유하게 되며, 구원의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

이어, 요한계시록 3장 20절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인간의 실존으로 들어가길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들어가길 원하시는 신의 모습, 곧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위대하고 크신 분께서 우리 안에 자유롭게 들어오지 않으시고, 아니, 들어오지 못하시고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으로 단숨에 들어오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조차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인간의 마음을 창조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며, 심지어 하나님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존재지만, 그 마음에 파수꾼이 있어 문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만 허용된다는 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닫히면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사물도,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시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무한하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그 안에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인간의 인격이 달라지고, 인간의 미래가 달라지며, 작은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큰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를 받아들이며 대자연과 함께 큰 숨을 쉬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마음에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좁디좁은 마음 구석에서 그저 조그마한 일들로 힘겨워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주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주처럼 큰마음이 되는 것이요, 자기 집과 식구들만 받아들이면 그 정도의 마음만 얻게 될 뿐이며, 나만 받아들이고 살면 겨우 나 한 사람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고, 우리 마음에 더럽고 추한 냄새가 나는 것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습니다. 더러운 말과 생각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으며, 아름다운 언어와 창조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

마음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성경이 말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마음대로 들어오시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또 시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시편 7:9)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땅을 멸하실 때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세기 6:5~6)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근심하셨다는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첫 번째 심판은 인간의 악한 마음을 보시고 취하신 하나님의 행동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시고, 감찰하시며,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따라 그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입과 행동을 통해, 곧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8~20절의 말씀대로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마태복음 15:18~20 중)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악한 생각과 더러움과 욕심과 음란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으면, 우리의 행동도 그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과 원망이 마음에 있으면, 결국 그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근심과 슬픔이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열등감과 배신감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필요 없는 것, 더러운 것들을 마음에 두고,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마음, 우주를 받아들이고도 남음이 있는 그 넓은 마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충분한 그 멋진 마음에 열등감, 배신감, 교만과 원망을 가득 채워 좁디좁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는 지금 무엇이 담겨있습니까?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 마음에 주님을 모셔 ‘그리스도의 마음’을 드러내는 삶을 삽시다. >

신명기 15장 9절은 말합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신명기 4장 9절은 말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시편 51편 10절에서 시인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권면하며,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있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2~3)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순전한 마음 곧 첫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뱀이 하와의 마음을 유혹했듯이, 끊임없이 사탄이 주님의 백성을 유혹함을 걱정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우리 안으로 모셔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내용이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시면, 주님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무엇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을 담고 있으면 악한 것이 나옵니다. 선한 것을 담고 있으면 선한 것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셔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악이 있으면,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중보자이신 그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그분이 우리를 심판의 자리에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면 마음에 만물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담은 성인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그 안에 모시지 못한다면 그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구원의 은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만이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건만, 왜 작고 작은 나에게 들어와 담기시려 하시나이까?”

그분은 우리가 문을 열 때만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여는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 함께 손을 가슴에 얹고, 제가 하는 기도를 따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Give Him Your Heart

2 Corinthians 11:1-3

One of my favorite lines in Augustine’s Confession is this: “Is there anything in me, O Lord my God, that can contain You? Do indeed the very heaven and the earth, which You have made, and in which You have made me, contain You? […] Why, then, do I ask You to come into me, since I indeed exist, and could not exist if You were not in me?”

These words struck my heart. In these lines we see Augustine, who had rejected God for a long time, finally surrendering to Him. I was deeply impacted because I saw myself in these words. I saw the “self” that had long resisted God finally crumbling before Him. It seems that one day Augustine stood before God who called him to give his heart to Him. Why does God tell us to give Him our hearts?

Have you seen people who have totally given their hearts to something or to someone? The ARMY,BTS’s fans, is a good example. The CNN described ARMY as “one of the most powerful fandoms in the world.” Made up of millions of fans, ARMY is creating a new, significant trend in the music industry. They listen to BTS’s songs tens of thousands of times to boost BTS’s streaming record and even protest collectively to get an apology from those who slander BTS.

The fact that man has a mind and heart is a mystery. We don’t know where the mind exists, although we are sure of its existence. We know that man is not just made up of his body. He also possesses a mind. It is what makes us human. It is what gives man unlimited power. Although his body is confined to time and space, his mind transcends them. Man’s mind is a limitless vessel that can contain even the whole universe. It is like a vast ocean that covers over all the ugliness in the world. Furthermore, it can contain even God. Not because it is greater than Him, but because God designed it to know and to receive Him. That is why Augustine asks, “Why, then, do I ask You to come into me, since I indeed exist, and could not exist if You were not in me?”

Therefore, the mind is a valuable bridge connecting us to God, a vessel that contains Him, and an important tool that leads man to salvation. In the end, it is man’s mind that believes in Christ, leading him to salvation.

Revelation 3:20 says,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that person, and they with me.” (Revelations 3:20) Here, we see Christ wanting to enter into man’s existence, his heart. Interestingly, our Great Lord cannot enter our hearts freely but has to knock on its door. How ironical! Although our Almighty Father has the power to break into our hearts, He did not design man’s heart that way. He made it so that it could chose to accept or refuse. That is why even God Himself cannot enter man’s heart unless he opens the door.

Since man’s mind is limitless and can choose to accept or refuse whatever tries to enter it, what is in the mind is very important. It determines his character and future. It can make him small or great. While there are people with great, big hearts that hold even the universe, there are those whose hearts are so small and tiny that all they can think of the whole day is a hurtful word someone said or a minor pain they experienced during the day. Some care for the universe, while others only for their family. We can fill our hearts with sheer beauty and goodness, or we can fill them with ugly thoughts and dirty words.

The Bible tells us something very important about man’s heart. God cannot force Himself into it, but He certainly weighs it: “A person may think their own ways are right,but the Lordweighs the heart.” (Proverbs 21:2)Psalms also says, “Bring to an end the violence of the wickedand make the righteous secure—you, the righteous Godwho probes minds and hearts.” (Psalms 7:9)

Genesis tells us that God saw man’s heart when He decided to flood the world: “The Lordsaw how great the wickedness of the human race had become on the earth, and that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the human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 The Lordregretted that he had made human beings on the earth, and his heart was deeply troubled.” Here, we see that God’s criteria for judgement was none other than man’s heart. God probes and weighs our hearts. This is why what is in our hearts is a critical matter. God will judge us depending on what we hold in our hearts.

A second reason why what is in our hearts is important is this. What we harbor in our hearts is manifested in how we speak, act, and live. This is exactly the teaching in Matthew 15:18: “For out of the heart come evil thoughts—murder, adultery, sexual immorality, theft, false testimony, slander.These are what defile a person; but eating with unwashed hands does not defile them.”

Indeed, depending on what is in our heart, a whole lot differs. If we harbor dirty, evil, adulterous thoughts, our actions and life will show it. If we have pride and hatred, they will manifest themselves, too. It goes the same for sadness and grief. If we harbor a sense of inferiority or betrayal, we will never be free of them.How tragic this is! And how many are those who harbor needless, dirty thoughts and suffer because of them!

That is why Deuteronomy 15:9 says, “Be careful not to harbor this wicked thought.” Romans 12:2 also says,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Psalm 51:10 says, “Create in me a pure heart, O God,and renew a steadfast spirit within me.” Indeed, the heart is the problem.

Therefore, we need to examine our hearts. Paul tells us in Philippians to “have the same mindset as Christ Jesus.” (Philippians 2:5) And in Ephesians 3:17 he says,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meaning that we should have Christ in our hearts.

In today’s passage, Paul expresses his fear that the saints in Corinth might be led astray from their pure and sincere devotion to Christ: “I am jealous for you with a godly jealousy. I promised you to one husband, to Christ, so that I might present you as a pure virgin to him. But I am afraid that just as Eve was deceived by the serpent’s cunning, your minds may somehow be led astray from your sincere and pure devotion to Christ.” (2 Corinthians 11:2-3)

Why should we have Christ in our hearts? Jesus is standing at the door and knocking. Why should we let Him in and harbor Him in our hearts and minds? Let me summarize. First, if Jesus is in our hearts, His heart, mind, and thoughts rule us. And His will will be manifested in our lives because whatever is in the heart comes out. Good comes out of a good heart, and bad comes out of a bad one. A heart that harbors Christ will show Christ.Second, God, our Judge, probes our hearts. This is a very important reason why our heart is critical. If we harbor evil, we will never escape judgement. But, if we have Christ in our hearts, the One who probes the heart will not discard us on the day of judgement.

Let’s reflect on Augustine’s prayer again: “Is there anything in me, O Lord my God, that can contain You? Do indeed the very heaven and the earth, which You have made, and in which You have made me, contain You? […] Why, then, do I ask You to come into me, since I indeed exist, and could not exist if You were not in me?”

I pray that a miracle will happen in this hour—a miracle that lets Him into our lowliest of hearts with gratitude. Let’s pray this together: “Dear God, thank you for giving us Jesus, our precious intercessor. We desire to let Him into our heart. Our heart is dirty, humble, and full of sin. But, Lord, we desire to have You in it. Come Lord, and cast out all the despair, evil, and filth in us and create in us true peace and jo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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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 1 ~ 3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

고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고백록』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이야기 중에 제가 참 좋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의 방황을 마치고 하나님께 돌아온 그가 하나님께 고백한 내용입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온 우주와 세상이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나이다. 그런데, 왜 당신께서는 이렇게 작고 작은 나에게 오시어서, 내 안에 들어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전에 번역된 표현이 조금 더 감칠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건만, 왜 작고 작은 나에게 들어와 담기시려 하시나이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외침이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드리지 않으려 했던 그가 마침내 하나님께 자기 자리를 내어드리며 항복하는 장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저 자신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실존이 드디어 주님 앞에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크게는, 주님을 감히 담을 수 없는 이 땅에 성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노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나 자신의 마음 깊은 곳 곧 내 실존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어느 날 불붙은 떨기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을 벗어라.” 마치 그때처럼 아우구스티누스도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네 마음을 내어놓아라.” 주님의 이 음성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도로 절규합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왜 굳이 제 마음, 이 작고 작은 마음, 더럽고 누추한 곳에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까? 온 세상에 담기셔도 모자랄 당신이 왜 저처럼 작고 작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왜 나입니까?” 끈질지게 저항하던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겠습니까? 내 마음은 그저 내가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미 그의 마음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와 진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악한 것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참으로 구차해 보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 들어오십시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내놓으라고 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실까요? 혹시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도 한두 번쯤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첫사랑에 빠졌던 경험이 있으시지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손자와 손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돈을 내고서라도 자랑을 하고야 마는, 그런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으시지요? 손주가 달라면 무엇이든 다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사랑에 빠진 마음입니다.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 그룹의 팬클럽 이름이 ‘아미’라고 합니다. CNN이 BTS 팬클럽을 조사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 수만 수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충성스러운 팔로워들이 있는데, 그들이 BTS의 중대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음악계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만드는 이들이 바로 BTS 아미입니다. 개인적으로 CD Player가 없는데도 BTS의 CD를 몇 개씩 구입한다고 합니다. BTS의 스트리밍 기록을 올려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수없이 여러 번, 수만 번까지도 같은 곡을 듣는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BTS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항의해 사과를 받아내기도 한답니다. 그야말로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지요.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모습이 곧 우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짝사랑하는 사람이지요. 마음은 빼앗겼는데 마음이 오지 않는 사람. 그래서 늘 약자입니다. 늘 불안합니다. 늘 바라만 봅니다. 언제나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안에 사랑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포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또 사람들을 만나 사귈 때도 마찬가지며, 이성 교제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가야 모든 것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먼저 눈이 가지만 그다음에는 마음이 가야 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내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없고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경험입니다. 참 신비롭지 않습니까?

< 마음이란 하나님마저 담을 수 있는 위대한 그릇입니다. >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육체와 구별해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가슴이나 심장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머리나 뇌 속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정신 활동이나 생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감정이나 호르몬 작용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존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지 간에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마음을 경험하며 항상 마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육체만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답지 못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인간으로서 우리 안에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고, 또 스스로 증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이며, 인간의 능력을 무한하게 하는 능력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란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육체가 담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물론 인간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고, 육체는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늙고 시들어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넓고 크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시간을 아우릅니다. 얼마든지 넓혀질 수 있고, 얼마든지 넓은 것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동양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본체는 넓고 크고 비었고 밝아 만 가지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이를 잘 길러 해침이 없다면 천지와 같이 크고 일월과 같이 밝으며 크기는 만물을 능히 담을 수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성인과 도인들이 자신의 마음에 만물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우주를 담고, 세상 전체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천지와 우주를 담을 만한 넓은 그릇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도 남음이 있는 무한의 땅인 동시에 온 세상의 더러운 것을 덮고도 남음이 있는 넘실거리는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담아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위대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을 담을 수 있도록 고안하셨으며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고안하셨기 때문에, 그 덕분에 인간이 만물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크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조그마한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는가에 대해 물으면서도, 그렇게 창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작고 작은 우리의 마음속에 만물이 들어오고도 남을 만큼의 여유를 만들어 주시고, 사실은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우리 마음을 고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큰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귀중한 통로가 되며,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되고,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결국 인간은 ‘마음’으로 믿어 구주를 받아들이고, 영원을 소유하게 되며, 구원의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

이어, 요한계시록 3장 20절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인간의 실존으로 들어가길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들어가길 원하시는 신의 모습, 곧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위대하고 크신 분께서 우리 안에 자유롭게 들어오지 않으시고, 아니, 들어오지 못하시고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으로 단숨에 들어오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조차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인간의 마음을 창조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며, 심지어 하나님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존재지만, 그 마음에 파수꾼이 있어 문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만 허용된다는 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닫히면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사물도,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시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무한하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그 안에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인간의 인격이 달라지고, 인간의 미래가 달라지며, 작은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큰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를 받아들이며 대자연과 함께 큰 숨을 쉬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마음에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좁디좁은 마음 구석에서 그저 조그마한 일들로 힘겨워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주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주처럼 큰마음이 되는 것이요, 자기 집과 식구들만 받아들이면 그 정도의 마음만 얻게 될 뿐이며, 나만 받아들이고 살면 겨우 나 한 사람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고, 우리 마음에 더럽고 추한 냄새가 나는 것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습니다. 더러운 말과 생각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으며, 아름다운 언어와 창조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

마음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성경이 말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마음대로 들어오시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또 시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시편 7:9)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땅을 멸하실 때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세기 6:5~6)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근심하셨다는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첫 번째 심판은 인간의 악한 마음을 보시고 취하신 하나님의 행동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시고, 감찰하시며,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따라 그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입과 행동을 통해, 곧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8~20절의 말씀대로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마태복음 15:18~20 중)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악한 생각과 더러움과 욕심과 음란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으면, 우리의 행동도 그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과 원망이 마음에 있으면, 결국 그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근심과 슬픔이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열등감과 배신감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필요 없는 것, 더러운 것들을 마음에 두고,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마음, 우주를 받아들이고도 남음이 있는 그 넓은 마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충분한 그 멋진 마음에 열등감, 배신감, 교만과 원망을 가득 채워 좁디좁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는 지금 무엇이 담겨있습니까? 우리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 마음에 주님을 모셔 ‘그리스도의 마음’을 드러내는 삶을 삽시다. >

신명기 15장 9절은 말합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신명기 4장 9절은 말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시편 51편 10절에서 시인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권면하며,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있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2~3)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순전한 마음 곧 첫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뱀이 하와의 마음을 유혹했듯이, 끊임없이 사탄이 주님의 백성을 유혹함을 걱정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우리 안으로 모셔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내용이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시면, 주님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무엇이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을 담고 있으면 악한 것이 나옵니다. 선한 것을 담고 있으면 선한 것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셔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악이 있으면,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중보자이신 그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그분이 우리를 심판의 자리에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면 마음에 만물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담은 성인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그 안에 모시지 못한다면 그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구원의 은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만이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담기실 어디가 아쉬우십니까?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히 당신을 담을 수 없건만, 왜 작고 작은 나에게 들어와 담기시려 하시나이까?”

그분은 우리가 문을 열 때만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여는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 함께 손을 가슴에 얹고, 제가 하는 기도를 따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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