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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믿음과 행위의 불가분리적 관계를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는 우리 마음을 벅차게 하면서도 혼란스럽게 하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특별히 마지막 구절인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마음에 혼란을 줍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단 말인가?’와 같은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여기에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구절이 우리를 더욱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원문을 살펴보면 ‘구원을 이루라’는 현재형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게 아닙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완료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서 지금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에베소서에 기록된 또 다른 시각의 말씀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장 8~9절)
에베소서에 따르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과거이고 완료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가복음 16장 15~16절)
예수님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을 유지하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어 온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치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처럼 구원의 일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니, 우리가 이미 구원받은 것 아닌가? 그런데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하는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확신은 가지지만, 그 믿음을 계량하고 증명하는 방법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주님을 믿는다”라고 말할 때에 믿음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마음의 확신일까요? 마음속의 뜨거운 감정이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낼 수 있을까요?
건강 검진 센터에 가면 체성분 분석기 기계가 있습니다. 기계에 올라서서 손에 계측기를 잡고 서 있으면 몸의 성분들이 하나하나 그래프로 나타나는 기계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두 번쯤은 기계 위에 오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언젠가 체성분 분석기에 올라가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근육량이 적게 나오는 것 같아서 살짝 힘을 줬는데도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기계의 정확성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연 기계가 분석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믿음 분석기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곳에 잠시 올라서 있으면 믿음이 계량화되어서 그래프로 나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인간 믿음의 총 평균치가 나오고 그 수치보다 나의 믿음이 큰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에 따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 아닌지 합격 여부가 판정된다면 어떨까 상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와 같은 믿음 판독기를 두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도리어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믿음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일에 대한 비유이죠. 이 비유 속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믿음을 분별하시거나 믿음의 크기를 재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에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처녀 다섯 사람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만이 나올 뿐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적다 혹은 많다, 또는 믿음을 많이 준비했다거나 믿음의 자격이 있었다는 말씀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충실히 일한 종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칭찬 듣지 못하는 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크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믿음이 작다”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 비유에서는 천사들과 함께 온 예수님이 사람들을 좌우로 나누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나누시는 모습이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보시면서 “믿음이 크니 오른쪽으로, 너는 믿음이 작으니 왼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내가 주릴 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나에게 입을 옷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한쪽에 서게 하셨고, 어떤 이에게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지 않았고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다른 한편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믿음을 계측하지 않으시고 삶과 삶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들, 그리고 그 일들을 이루어 가는 과정들을 보시면서 판단하시고 규정해 내셨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에서 믿음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과연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었는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했는지, 어려운 이웃을 도왔는지’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을 판단하시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즉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았고 하나님의 선물임이 분명함에는 틀림없지만, 믿음은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모습 속에서 구원의 결과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며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가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보고서 2장 14~17절)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행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족적들은 믿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문 말씀은 큰 도전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다루며 삶의 원리로서 ‘복종’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라는 표현은 바울이 일차적으로 빌립보 교회에게 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없는 동안에도’, ‘나 바울이 떠나 있는 동안에도’라는 말이죠.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는 또 다른 영적인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에도’,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나 있을 오해를 대비하여 주님께서는 이어지는 13절에서 그 범위와 원인을 규정해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미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모든 행동의 근저에는 하나님의 선재적인 행동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의미를 규정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신자의 행위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알려 줍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립보서 2장 15절)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즉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흠 없는 자녀로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 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종말의 시대 우리가 붙잡고 살아가야 할 삶의 중요한 원리는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이 이어집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러분, 어떠십니까? 이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중에 저는 조금 허무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웅장하면서도 심오한 명령, 힘 있는 명령을 들으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여기에 이어지는 대답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가면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항상 복종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 앞에 ‘복종하다’는 표현이 바로 붙어 있죠. 그리고 ‘복종하다’는 말은 앞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8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겸비하심, 지독히도 낮아지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하심,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장 최악의 형벌로써 십자가를 지시는 데까지 나아가시는 삶의 여정, 이와 같은 삶의 여정을 따라가시는 예수님의 복종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초대 교회 찬가를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복종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5~8절)
‘복종하며’라는 단어는 모든 말씀을 하나로 요약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겸비함, 종의 형체로 내려오신 낮아지심, 사람과 같이 되신 비하, 종국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는 희생과 사랑,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복종하신 예수님의 모든 삶의 흔적이 복종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겸비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복종의 삶을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종의 삶, 복종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듯이 우리가 낮아지고 겸비해지고 복종할 때에 이 땅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된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종과 같이 섬기게 될 때, 우리 가정 안에 시비가 없고 원망이 없어집니다. 자기를 비우고 종과 같은 모습으로 섬길 때 우리 교회 안에 시비가 없고 원망이 없습니다. 구원의 삶을 살아나갈 때 우리 사회 속에 시비가 없어지고 원망이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종하셨을 때,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입술로 예수를 시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예수님의 희생과 자발적인 비움을 통해서 일어났고, 그것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낮추고 비우고 복종하면서 구원의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고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며 자신을 비우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도 또한 그분의 삶을 취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104분의 권사 임직 예식을 갖습니다. 주님의 새로운 일꾼으로 소망교회를 섬기실 분들입니다. 권사님으로 오늘 임직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이미 권사님이신 분들, 그리고 모든 임직자 분들께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아니, 저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든 직분자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종이 필요합니다. 어떤 권위나 목회자에게 복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종의 형상이 되어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입니다. 겸손하고 낮아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나서라는 선언이자 초청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복종할 때에 구원을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이고 진행형입니다. 우리 구원은 ‘믿습니다’는 구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이신 복종의 길, 섬김의 길을 따라 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 되면 이런 말들을 많이 하곤 합니다. “아기 예수를 맞이합시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다!” 여러분 그런데 2,000년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장에서, 역사 속에서 태어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저 2,0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환영하자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아기로 오신 예수님, 겸손하게 오신 예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겸비하신 예수님처럼 섬김과 복종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자는 말씀입니다. 대림절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곳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널리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시며 죽음에까지 완전히 이르신 예수님을 살려내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히 내려가 스스로를 낮추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구원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대림절의 신앙이 우리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Work Out Your Salvation
Philippians 2:12-16
A phrase in today’s Scripture is confusing. Let’s look at Verse 12: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Philippians 2: 12)
The part that confuses us is “work out your salvation.” What does this mean? Does it mean that we should do something to be saved? Wasn’t salvation a gift from God? How can we“work out” our salvation?’ The words “with fear and trembling” also make us nervous. What does God mean by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The verb used in the original text is in the present tense, implying that we must do something “in the present” to be saved. So what must we do for salvation? Today’s text is perplexing as it seems to contradict other verses in the Bible, such asthe one found in Ephesians: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and this 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Ephesians 2:8-9)
According to the book of Mark, Jesus also said,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Mark 16:15-16)
Based on such Scripture, we believe that we are not saved by “works”, but by “faithalone.” Therefore, whoever believes in Jesu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Yet today’s Scripture tells us differently, that we must “work out” our salvation. It talks as if salvation is something we must continuously work for. How should we interpret these words?
Even if we have an assurance of salvation, the problem of proving our faith remains. Isa personal assurance of the heart sufficient? In most health checkups, you are told to get on a device called a “body composition analyzer.”If you stand on this machine and hold the hand grips, it gives you an accurate analysis of your body composition, including your fat and muscle ratios and whether theyare within the normal range. I once flexed my muscle on the machine to see if it would change the results, but it didn’t. Although it’s sometimes hard to believe, this machine is surprisingly accurate.
This got me thinking. What if something called a “faith analysis” existed, and we had to get on it the day we finally stand before God? What if there was a machine that told us theaveragefaith of men and analyzed our faith in comparison to that?
What if there was such a device at the gates of heaven, and we would be given a “pass” or a “fail” depending on the result? In fact, the Bible depicts a similar scene: Jesus separating people at the last day. In Matthew Chapter 25, three parables appear. But these stories talk about whether one has a faith or not and does not mention the amount of one’s faith.
The first parable in Matthew Chapter 25 is the one of the ten virgins waiting for the bridegroom. While five wise virgins prepared enough oil for their lamps, the other foolish five didn’t.
The second is the parable of the talents. With the talents given to them by their master, two faithful servants put them to use and gained more money, while one servant dug a hole in the ground and hid the money.
The third story is about Jesus separating the people in the last day as a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In this story, too, Jesus does not talk about a person’s faith, but that He will judge whether that person gave to the hungry, the thirsty, and the needy.
In short, on the day of judgement Jesus will not “measure” our faith, but will judge the life we lived, that is, thejourney and result of our lives.
In the parables above, the criteria used to judge a person’s faith was his actions: Did the virgins prepare enough oil? Did the servants put their talent to use? Did the people give clothes to those without clothes and give food to the hungry?
In other words, we are clearly saved by faith and salvation is a gift from God, but that faith is manifested in our life and actions, and our salvation reveals itself in the life we live.
This is why Jame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our actions: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Suppose a brother or a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If one of you says to them, ‘Go in peace;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their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James 2: 14-17)
The above is saying that when we stand before God, all our actions will be revealed. And those actions will prove our faith. In this sense, today’s Scripture from Philippians challenges us: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Philippians 2:12)
On the one hand, “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may be interpreted as Paul’s admonishment to the church in Philippi to act in a certain way not only while Paul is there with them but also when he is gone. On the other hand, however, it may also be viewed asGod’s words spoken to us through Paul. If we take this view, these words may mean that God wants us to act in a certain wayin the absence of Jesus, that is, until His return.
Therefore, as we celebrate Advent, a season of waiting, we may understand today’s Scripture as God’s wordto us. Then what does God mean by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What does He want us to do?
How do we reach salvation? Our Lord delineates the scope of this question in the following verse to dispel any misunderstanding: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in order to fulfill his good purpose.” (Philippians 2:13)
This verse tells us that God acts before us, that His actions preempt any of our own. In other words, God is behind each and every one of our actions. Therefore, at the bottom of all our actions God’s power exists. This means that we must not think highly of ourselves, as if we are doing the work.
The Bible also describes the outcome of working out 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So that you may become blameless and pure, ‘children of God without fault in a warped and crooked generation.’ Then you will shine among them like stars int eh sky.” (Philippians 2:15)
By working out 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we become the light of the world, children of God without fault in this warped and crooked world. Working out 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brings light to the world.
Then what exactly is “working out 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This, in fact, is a question regarding life’s most important principles in the end times.
To answer this question, we must focus on a critical phrase in Philippians 2:12: “as you have always obeyed.” This phrase must be understood in connection to the preceding verses in Philippians Chapter 2. Where can we find the word “obey” in the verses preceding Philippians 2:12?
The theme of obedience is found in Jesus’ great sacrifice, that is, Christ’s obedience and humility on the cross: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Philippians 2:8)
The meaning of obedience in Verse 12, therefore, is Christ’s humility and obedience on the cross as explained in Verse 8.
Quoting a hymn sung by early Christians, Paul described obedience as follows:
“In your relationships with one another, have the same mindset as Christ Jesus:Who, being in very nature God,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used to his own advantage;rather, he made himself nothingby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being made in human likeness.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he humbled himselfby becoming obedient to death—even death on a cross!” (Philippians 2: 5-8)
Jesus’ obedience was an obedience of love, a sacrifice shown by His death on the cross, a humility that led the Son of God to become a man, and a lowliness of a servant.
Paul links this life of obedience of our Lord to the life of believers. In other words, his admonishment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is his advice to believers to humble themselves like Jesus “by becoming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
When Jesus showed such an obedienc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and every tongue acknowledge that Jesus is Lord. In short, the great work of salvation was achieved by Jesus’ sacrifice and self-emptying.
When we become humble and obedient, God raises up and builds. This is God’s grace. When we become humble, self-denying servants, God’s true work of salvation is done.
Today will ordain 104 senior deaconesses who will serve Somang Church. I pray that each of them will work out thei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The words “as you have always obeyed” does not mean you should obey your pastor or an authority, but that you must bear the cross by making yourself nothing and becoming a servant. It means that you must become humble and lowly, and walk the path ofJesus Christ.
By such obedience we work out our salvation. Our salvation lies not in a slogan “We believe!”, but in the path of obedience and serviceshown to us by our Lord.
Today is the third week of Advent. In this season of waiting, we often say, “Let’s welcome baby Jesus!” How can we welcome baby Jesus who came to us 2000 years ago? What does it mean to welcome Him? We cannot go back two millennia. Nor will baby Jesus be born this Christmas. The Nativity was a historical event that happened 2000 years ago. All we can do this year is to recall it.
Then what does it mean to “welcome baby Jesus” during Advent? It means to embrace His way of life—that is, the humility shown by His incarnation, His lowliness, His service and obedience—as our life principles. This is the wisdom that Advent imparts.
When we humble ourselves to the lowliest point and become obedient to death, our Lord will lift us up and complete our salvation.Understanding of the true meaning of Advent, I hope that this beautiful faith will grow in you.
The Lord speaks to us today: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Philippians 2: 12)
빌립보서 2: 12 ~ 16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믿음과 행위의 불가분리적 관계를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는 우리 마음을 벅차게 하면서도 혼란스럽게 하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특별히 마지막 구절인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마음에 혼란을 줍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단 말인가?’와 같은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여기에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구절이 우리를 더욱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원문을 살펴보면 ‘구원을 이루라’는 현재형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게 아닙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완료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서 지금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에베소서에 기록된 또 다른 시각의 말씀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장 8~9절)
에베소서에 따르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과거이고 완료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가복음 16장 15~16절)
예수님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을 유지하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어 온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치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처럼 구원의 일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니, 우리가 이미 구원받은 것 아닌가? 그런데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하는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확신은 가지지만, 그 믿음을 계량하고 증명하는 방법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주님을 믿는다”라고 말할 때에 믿음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마음의 확신일까요? 마음속의 뜨거운 감정이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낼 수 있을까요?
건강 검진 센터에 가면 체성분 분석기 기계가 있습니다. 기계에 올라서서 손에 계측기를 잡고 서 있으면 몸의 성분들이 하나하나 그래프로 나타나는 기계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두 번쯤은 기계 위에 오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언젠가 체성분 분석기에 올라가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근육량이 적게 나오는 것 같아서 살짝 힘을 줬는데도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기계의 정확성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연 기계가 분석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믿음 분석기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곳에 잠시 올라서 있으면 믿음이 계량화되어서 그래프로 나온다면 어떻겠습니까? 인간 믿음의 총 평균치가 나오고 그 수치보다 나의 믿음이 큰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에 따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 아닌지 합격 여부가 판정된다면 어떨까 상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와 같은 믿음 판독기를 두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도리어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믿음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일에 대한 비유이죠. 이 비유 속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믿음을 분별하시거나 믿음의 크기를 재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에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처녀 다섯 사람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만이 나올 뿐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적다 혹은 많다, 또는 믿음을 많이 준비했다거나 믿음의 자격이 있었다는 말씀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충실히 일한 종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칭찬 듣지 못하는 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크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믿음이 작다”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째 비유에서는 천사들과 함께 온 예수님이 사람들을 좌우로 나누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나누시는 모습이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보시면서 “믿음이 크니 오른쪽으로, 너는 믿음이 작으니 왼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내가 주릴 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나에게 입을 옷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한쪽에 서게 하셨고, 어떤 이에게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지 않았고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다른 한편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믿음을 계측하지 않으시고 삶과 삶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들, 그리고 그 일들을 이루어 가는 과정들을 보시면서 판단하시고 규정해 내셨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에서 믿음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과연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었는지,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했는지, 어려운 이웃을 도왔는지’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을 판단하시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즉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았고 하나님의 선물임이 분명함에는 틀림없지만, 믿음은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삶의 지속적인 모습 속에서 구원의 결과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며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가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보고서 2장 14~17절)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행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족적들은 믿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문 말씀은 큰 도전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다루며 삶의 원리로서 ‘복종’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라는 표현은 바울이 일차적으로 빌립보 교회에게 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없는 동안에도’, ‘나 바울이 떠나 있는 동안에도’라는 말이죠.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는 또 다른 영적인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에도’,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혹시나 있을 오해를 대비하여 주님께서는 이어지는 13절에서 그 범위와 원인을 규정해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미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모든 행동의 근저에는 하나님의 선재적인 행동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의미를 규정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신자의 행위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알려 줍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립보서 2장 15절)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즉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흠 없는 자녀로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 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종말의 시대 우리가 붙잡고 살아가야 할 삶의 중요한 원리는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이 이어집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러분, 어떠십니까? 이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중에 저는 조금 허무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웅장하면서도 심오한 명령, 힘 있는 명령을 들으면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여기에 이어지는 대답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가면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항상 복종하여”라는 말씀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 앞에 ‘복종하다’는 표현이 바로 붙어 있죠. 그리고 ‘복종하다’는 말은 앞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8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겸비하심, 지독히도 낮아지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하심,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장 최악의 형벌로써 십자가를 지시는 데까지 나아가시는 삶의 여정, 이와 같은 삶의 여정을 따라가시는 예수님의 복종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초대 교회 찬가를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복종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5~8절)
‘복종하며’라는 단어는 모든 말씀을 하나로 요약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겸비함, 종의 형체로 내려오신 낮아지심, 사람과 같이 되신 비하, 종국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는 희생과 사랑,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복종하신 예수님의 모든 삶의 흔적이 복종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겸비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복종의 삶을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종의 삶, 복종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듯이 우리가 낮아지고 겸비해지고 복종할 때에 이 땅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된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종과 같이 섬기게 될 때, 우리 가정 안에 시비가 없고 원망이 없어집니다. 자기를 비우고 종과 같은 모습으로 섬길 때 우리 교회 안에 시비가 없고 원망이 없습니다. 구원의 삶을 살아나갈 때 우리 사회 속에 시비가 없어지고 원망이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종하셨을 때,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입술로 예수를 시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예수님의 희생과 자발적인 비움을 통해서 일어났고, 그것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낮추고 비우고 복종하면서 구원의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고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대림절을 보내며 자신을 비우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도 또한 그분의 삶을 취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104분의 권사 임직 예식을 갖습니다. 주님의 새로운 일꾼으로 소망교회를 섬기실 분들입니다. 권사님으로 오늘 임직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이미 권사님이신 분들, 그리고 모든 임직자 분들께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아니, 저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든 직분자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종이 필요합니다. 어떤 권위나 목회자에게 복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종의 형상이 되어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입니다. 겸손하고 낮아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나서라는 선언이자 초청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복종할 때에 구원을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이고 진행형입니다. 우리 구원은 ‘믿습니다’는 구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이신 복종의 길, 섬김의 길을 따라 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 되면 이런 말들을 많이 하곤 합니다. “아기 예수를 맞이합시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다!” 여러분 그런데 2,000년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장에서, 역사 속에서 태어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저 2,0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환영하자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아기로 오신 예수님, 겸손하게 오신 예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겸비하신 예수님처럼 섬김과 복종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자는 말씀입니다. 대림절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곳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널리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시며 죽음에까지 완전히 이르신 예수님을 살려내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히 내려가 스스로를 낮추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며 구원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대림절의 신앙이 우리 가운데 더욱 풍성하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12절)
2021년 12월 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16)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85장, 521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빌 2:12~16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2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임이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며 체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구원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야 할까요? 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설교의 요약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에 대한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이 세 비유 속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믿음이 있는지 가늠할 기준은 믿음의 계측이 아닙니다. 삶을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들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지만, 그 믿음은 삶과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이죠. 행함이 믿음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이 큰 도전이 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 대림절을 보내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바울을 통해 주시는 주님 말씀으로 받는다면 이는 어떤 뜻이겠습니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일까요? 이어진 13절 말씀은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 나에게 있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허락하셔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빌 2:13) 그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성도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까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 빛이 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빌 2:15)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세상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삶의 양태 앞에 본문 말씀은 중요한 한 단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건 “항상 복종하여”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 앞에서 ‘복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복종입니다.(빌 2:5~11)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 낮아지심,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복종,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복종입니다. 예수님의 이 복종의 삶을 성도들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곧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복종하는 삶을 살아내라는 간곡한 권면입니다.
대림절이 되면 아기 예수를 맞이하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이 속뜻은 무엇일까요?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섬김과 복종의 삶을 나의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소망이요, 결단입니다. 끝까지 아래로 내려가서 겸손히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할 때 주님께서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을 완성케 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이 주는 지혜입니다.
대림절, 이 땅 오신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성도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나누기
1.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혜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입니까?
2. 대림절,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며, 예수님의 섬김과 복종의 삶을 내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소망과 결단으로 나왔다면 이를 어떻게 구체적 삶의 양태로 옮기겠습니까?
마무리기도
주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항상 복종하여 구원의 완성이 되셨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겸손과 섬김과 십자가의 희생 길을 함께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을 완성케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영광스럽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강림하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 뵙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