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 14 ~ 17

김경진 목사

2021.12.19

<요시야 왕 시대에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 심판의 날을 선언하셨습니다.>

본문이 기록된 스바냐서는 3장으로 구성된 짧은 예언서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스바냐 1장 1절)

짧은 문장 안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스바냐가 히스기야의 현손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라는 점입니다. 스바냐의 말씀이 선포되던 역사적 상황은 이렇습니다. 히스기야가 죽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를 시작했는데, 악한 왕 므낫세의 폭정 아래 백성들은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유대 민족은 심각한 종교적, 도덕적 부패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종교적인 혼합주의 시대’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바알, 아세라 상과 같은 우상들을 예루살렘에 세우고 숭배하며 종교적인 예식으로서 매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일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 행위가 예루살렘 성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므낫세를 이은 아몬 왕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못했고, 아몬이 암살당한 이후 8살 난 요시야가 왕이 됩니다. 스바냐 1장 1절에 의하면 요시야 왕 시대에 스바냐가 예언 활동을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요시야는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한 왕이죠. 그 시기가 대략 주전 622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스바냐는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시행하기 이전에 예언 활동을 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요시야의 종교 개혁 배후에는 스바냐의 예언 활동이 있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1장 2절 안에 축약되어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스바냐 1장 2절)

하나님께서 스바냐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은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선고였습니다. 성경은 심판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개합니다. 스바냐서 1장 4~6절 말씀입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스바냐 1장 4~6절)

말씀 속에서 우리는 유대 민족이 어떤 죄를 짓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바알을 섬기고 그마림이라는 신을 섬기고, 별을 보며 경배했고, 말감을 가리켜 맹세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다고도 분명하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들을 향하여서 그분의 심판이 이르렀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날, 바로 심판의 날이 오리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다가왔으니, 주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라. (스바냐 1장 7절 중, 새번역)

이후 그날, 그때, 심판의 날이라는 표현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스바냐 1장 9절)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스바냐 1장 15절)

이처럼 그때, 그날이라는 단어가 스바냐 12절, 14절, 15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 그날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을 비롯한 다양한 우상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시면서 심판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발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스바냐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바냐 3장에 오면서 심판의 날에 대한 분위기가 조금씩 변화됩니다.>

스바냐서 3장 본문에도 ‘여호와의 날’이라 하는 ‘그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면서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3장에서도 여호와의 날이 여러 번 언급됩니다. 9절, 11절, 16절, 19절에서 그때 혹은 그날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죠. 우선 9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스바냐 3장 9절)

이방 나라의 백성들, 뭇 백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셔서 모두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선 1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겠다고 하셨는데 도리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이방 백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이 듭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이 나올까요? 그것도 그날, 여호와의 날에 말입니다. 이처럼 1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3장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또한 그렇습니다. 11절입니다.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바냐 3장 11절 중,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하나님을 향하여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입니다. 심지어 3장에서 스바냐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래하며 찬양하며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스바냐 3장 14~15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1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3장에 와서는 심판에 대한 말씀이 다 들어가고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형벌을 제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분위기를 변화시킨 걸까요? 이어지는 16절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장 16절)

스바냐서 1장에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하시며 희망의 메시지가 전파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날, 바로 그 심판의 날에 노래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의 형벌이 모두 제하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던 하나님의 의지는 어디로 가고 이스라엘을 향한 격려로 가득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의 날,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그날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날은 심판의 날이 됩니다. 잘못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날은 형벌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그날은 절망의 날이 됩니다. 이방신을 섬기며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온 이들에게 그날은 고통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며 공의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이날은 기쁨의 날입니다. 노래하는 날입니다. 즐거운 날입니다.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화를 당하는 게 아니라 축복과 감사가 있는 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무서운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한 분이십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요, 도우시는 분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는 진노의 자리가 되고 누구에게는 은혜의 자리가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둘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을 숭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하게 의지했던 한 두 사람을 향하여 주신 축복의 말씀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토록 스바냐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실까요?

<하나님이 동일한 날을 서로 다르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바냐서 3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스바냐 3장 15절 중)

은혜의 말씀, 회복을 주시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기도 하죠.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맞아 주시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대하시는 사람들에게도 죄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 형벌을 면하게 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에게는 죄를 물으시고 그 죄를 계속 추궁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둘을 가르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인간입니다. 원죄를 가진 인간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드릴 수 없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서 하나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도 전하는데, 그렇다면 이 둘을 가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종종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묵상합니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나누시며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어떤 사람에게는 “너는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오른편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왼편에 서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인생이 단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떨 때는 이런 일을 하고, 또 저런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날에는 너무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나타났다가 또 다른 날에는 냉철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을 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수십 년 살아오면서 때로는 선한 사람이 되었다가도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시며 천국 혹은 심판을 결정하실까요? 인생을 총량으로 해서 선을 베푼 것과 악을 행한 것을 나누어서 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쪽으로 판별하실까요? 도대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단 한 번의 모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말씀이 스바냐서의 척추와도 같은 곳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중앙 부분에 나오죠. 2장 1~3절 말씀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장 1~3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여호와를 찾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분노의 날에 숨을 수 있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분노의 날,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초청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을 향하여 숨을 곳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숨을 곳이란 어디겠습니까? 흥미로운 내용이 1장 7절에 숨겨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듯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스바냐 1장 7절)

<하나님은 심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며 ‘희생을 준비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날,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서 희생을 준비하셨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 가다 보면 이 말씀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이 자리에 적절하지 않은 말씀처럼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해석해 보면 성전에서 드리는 제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그리 적절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자들을 멸절하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을 선고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8절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벌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시죠. 그런데 그 사이에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셨다’, ‘여호와께서 청할 사람들을 구별하셨다’는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희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한 번 드려지는 성전에서의 제사가 아니라면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이미 읽었습니다만 흥미로운 또 다른 구절이 있는데 스바냐 3장 9절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때에 이방 민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예언이었을까요?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를 섬기게 되리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구약 역사를 알고 있듯이 당시에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간 적은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바냐서 3장 9절 말씀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이야기하는 구절입니다. 즉 먼 미래에 일어날 궁극적인 어떤 날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3장 9절은 역사적,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오시는 그날에 그분이 온전한 희생이 되어 드려지는 것을 예견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모든 이방 민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며 그들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온 땅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는 날,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을 하나님께서 스바냐 말씀 가운데 숨겨 놓으신 것입니다. 스바냐가 그날에 일어날 일을 노래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날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온전한 희생을 준비하시고 선택된 백성을 향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말씀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절이 옵니다. 성탄의 날을 예견하면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3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스바냐서의 말씀이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천사의 언어를 통하여 마침내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중)

<약속하신 희생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물론 큰 선물을 받을 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선물을 받게 되면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금도, 다이아몬드도 아닌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표징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너를 아끼는지, 이것이 바로 나의 사랑의 결정적 표징이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스바냐가 노래합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너를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예수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우리를 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 우리로 인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구유에 놓이신 아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보이는 모습으로까지 가까이 오셨다는 징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오심은 구유에 놓이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오심은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 오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결국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선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주로 오시기 이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희생의 양이 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재림의 심판 자리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사랑하는 이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존재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이 말씀 속에 숨겨진 성탄의 의미가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하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Do Not Let Your Hands Hang Limp

Zephaniah 3:14-17

This is the first verse of Zephaniah, a book of prophecies made up of three chapters:

“The word of the Lord that came to Zephaniah son of Cushi, the son of Gedalaih, the son of Amariah, the son of Hezekiah, during the reign of Josiah son of Amon king of Judah:”(Zephaniah 1:1)

This verse reveals that Zephaniah was a descendant of Hezekiah.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book of Zephaniah is as follows. Manasseh, the son of Hezekiah, was an evil king. Under his reign, the people of Judah suffered greatly and sunk into religious and moral decay.

This era was characterized by religious syncretism. The people of Judah not only worshipped other gods by setting up Asherah poles and altars for Baal, but also justified temple prostitution as a religious act. Furthermore, all sorts of religious practices, including sun-god worship, took place in Jerusalem.

The situation was not so different during the reign of Amon, Manasseh’s successor. But after the assassination of Amon, Josiah, only eight years old at the time, became king. Zephaniah 1:1 tells us that Zephaniah prophesied during the reign of King Josiah, who later instituted a great religious reform around 622 BC. It appears Zephaniah’s ministry took place before Josiah’s religious reform. Consequently, we may say Josiah’s reform was greatly influenced by Zephaniah.

God’s words spoken through Zephaniah are clear in Zephaniah 1:2:

“‘I will sweep away everything from the face of the earth,’ declares the Lord.”(Zephaniah 1: 2)

God’s intention to judge His people is even more clear in the following verses:

“I will stretch out my hand against Judah and against all who live in Jerusalem. I will destroy every remnant of Baal worship in this place, the very names of the idolatrous priests—those who bow down on the roofs to worship the starry host, those who bow down and swear by the Lord and who also swear by Molek, those who turn back from the Lord and neither seek the Lord nor inquire of him.”(Zephaniah 1: 4-6)

These verses give us a glimpse of the depravity of Judah. God’s people were worshipping Baal, bowing down to the starry host, and swearing by Molek. So God tells His people through Zephaniah that He will judge them. The Lorddeclares that the day of judgement will come:

“Be silent before the Sovereign Lord, for the day of the Lord is near.”(Zephaniah 1:7)

The verses following Zephaniah 1:7 continue to declare judgement:

“On that day I will punish all who avoid stepping on the threshold, who fill the temple of their gods with violence and deceit.”(Zephaniah 1:9)

Phrases such as “on that day” and “on the day” recur. In Zephaniah 1:12, 1:14, and 1:15 God warns His people about what will happen “on that day.”

“That day will be a day of wrath—a day of distress and anguish, a day of trouble and ruin, a day of darkness and gloom, a day of clouds and blackness—” (Zephaniah 1: 15)

As the verse tells us, that day will be a day of wrath and judgement. And Zephaniah declaresthat “thatday” iscoming.

ThesewordsrevealGod’sstrongdeterminationtojudgeHispeoplefallen intoBaalandAsherahworship,religious prostitution,Molekworship, and worship of the starry host.

Surprisingly,however,the depiction of “thatday” is entirely different in Zephaniah 3. “Thatday” isalso repeatedly mentioned in this chapter,includinginverses9,11,16,and19, but the way it is described i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Chapter 1:

“ThenIwillpurifythelipsofthepeoples,thatallofthemmay call on the nameoftheLordandservehimtoshouldertoshoulder.”(Zephaniah 3: 9)

Thisversetells us thatthelipsof foreign peopleswillbepurifiedsothattheywillallcalluponthenameoftheLordandworshipHim.WhydoesGodsuddenlysay such things in such a manner?AndwhywillthesethingshappenonthedayoftheLord?The prophecies in Chapter 3vastly differ from those inChapter1.

Zephaniah 3:11describeswhatitwillbelikeontheday:

“Onthatdayyou,Jerusalem,willnotbeputtoshameforallthewrongsyouhavedonetome,[…]” (Zephaniah 3:11)

Thisversetells us thatGod’speople“willnotbe”puttoshamefortheirsinsonthatday. What a stark contrast from God’swordsinChapter1!

Zephaniahis now prophesying inChapter3thatGod’speoplewill“sing” and “rejoice”on that day:

“Sing,DaughterZion;shoutaloud,Israel!Begladandrejoicewithallyourheart,DaughterJerusalem!TheLordhadtakenawayyourpunishment,hehas turned backyourenemy.TheLord,theKingofIsrael,iswithyou;neveragainwillyoufearanyharm.” (Zephaniah 3: 14-15)

What hashappened? How can we explainthissuddenchange?Let’s alsolookat Zephaniah 3:16:

“OnthatdaytheywillsaytoJerusalem, ‘Donotfear,Zion;donotletyourhandshanglimp.’” (Zephaniah 3:16)

GodisnowtellingHispeopletosing,tonotfear,andto“notlettheirhandshanglimp”onthedayofjudgement. He tells them that theirpunishmenthasbeentakenaway.

Howcanweexplainthisreversal?God’swill tojudgeHis people—where has it gone?Will He conclude the book of Zephaniah withwordsofencouragement?

There are two sides to the day oftheLord.

Forsome,itwillbeadayofjudgement.Forthosewhohavelivedwickedly,itwillbedayofpunishment.ForthosewhodonotknowtheLord,adayofdespair.Forthosewhoworshippedforeigngodsandpursued theirdesires, a dayofpain. Godispreparingthatday. For those people mentioned above,Godwill come as aGodofpunishment,aGodofjustice.

Butforothers,thedayoftheLordwillbeadayofrejoicingandsinging.TheywillnotbesubjecttoGod’s punishment and wrath,butwillexperienceblessingsandthanksgivingonthatday.Forthesepeople,Godwillcome as a lovingandkindGod,nottheterribleGodwhodeclaresdestructiononthosewhodidnotworshipHim.ForthesepeopleofGod,GodisaGodofblessings and grace, a God who helps.

Whatcreates thisdifference?Whywillsomefacewrathonthatday,whileothersgrace?WhydoesGodappeartousinthiscontrastingwayin Zephaniah?Whatistheessentialcriterionthatdividesthetwogroups?

Willwebedividedinto“thosewhoworshippedidols”and“thosewhodidn’t”?Willwebedividedinto “thesinnersgroup” and “therighteousgroup” onthatday? Zephaniah 3:15saysthatGodwilltakeawayoursins.Doesn’tthismeanthateventhosewhoescapeHisjudgement had beensinners?This means thatthedividingcriterionisnot whether wesinnedornot—forall men sin.Thenwhatisthe yardstickthatdividesthetwo?

Somecritical versesholdingananswertothisquestionarefoundattheheartof Zephaniah,thatis,attheverycenterofthe book.Those verses are Zephaniah 2:1-3:

“Gathertogether, gather yourselvestogether,youshamefulnation,beforethedecreetakeseffectandthatdaypasseslikewindblownchaff,beforetheLord’sfierceangercomesuponyou,beforethedayoftheLord’swrathcomesuponyou.SeektheLord,allyouhumbleoftheland,youwhodowhathe commands.Seekrighteousness,seekhumility;perhapsyouwillbeshelteredonthedayoftheLord’sanger.”(Zephaniah 2: 1-3)

AsthedayofGod’swrathandjudgementdrawsnear,GodisinvitingHis peopletoseekandreturntoHimbeforeitarrives.God ispreparingsomethingforthosewhowill return toHim,thosewhowillseekHim.An interesting verselieshiddenin Zephaniah 1:7, which is spokenasifinpassing:

“BesilentbeforetheSovereignLord,forthedayoftheLordisnear.TheLordhaspreparedasacrifice;hehasconsecratedthosehehasinvited.”(Zephaniah 1: 7)

Thisversetells us thatGodhaspreparedasacrificeforthatday,thatHehasconsecratedthoseHehas invited.Whatdoesthismean?Howcanwe interpret thisverse?Thesacrificeinthisversemay,ofcourse,simplymeanasacrificeofferedatthetemple.But,whenweconsideritscontext,wewillfindthatit isplacedinamostpeculiarlocation.

Zephaniah 1:6 warns that those who do not seek the Lord will be destroyed. Zephaniah 1:8 is also a declaration of God’s punishment. Yet in Zephaniah 1:7 God says that He has prepared a sacrifice, that He has consecrated those He has invited. What is this sacrifice?

Zephaniah 3:9 says that God will purify the lips of foreign peoples on that day, that they wi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and worship Him. Here we discover God, preparing a way of salvation for all peoples, including pagans.

Do you now understand? Yes, this peculiar verse, Zephaniah 1:7, is talking about the day that will come to pass, the day of the Lord. It is talking about the day that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saved by a single sacrifice. What is this day? Zephaniah sings of that day with these words: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the Mighty Warrior who saves.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Zephaniah 3:17)

God will rejoice over you and love you on that day.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on that day on which He will be with you. God is preparing the One Perfect Sacrifice. He is telling His people that He loves them, that He is pleased with them.

In a few days, Advent will end, and we will celebrate Christmas. As the angel prophesied the birth of Christ, he said to Mary, “The virgin will conceive and give birth to a son, and they will call him Immanuel (which means ‘God with us’).” (Matthew 1: 23)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e see that this verse in Zephaniah finally comes to passwith the birth of Jesus, in the Son incarnate, in Immanuel. The Nativity is the coming of Immanuel, meaning God with us. The birth of Jesus is God’s confession of love toward us.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the Mighty Warrior who saves.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Zephaniah 3:17)

In Jesus, we see this love of God for us. In the birth of Christ, Immanuel, we see God who sent His only Son to save us, God who takes delight in us, God who silently loves us, and God who rejoices in us. This God is revealed to us in the Nativity.

The birth of baby Jesus is God’s sign that He loves us greatly. Our Savior in the manger is God’s sign that He has come to earth in human form to be with us, that He has drawn near to us. The Nativity signifies God’s love and sacrifice for us.

The coming of Christmeans both the First Coming and the Second Coming. The First Coming was the birth of Jesus, Immanuel, in a manger. The Second Coming is His return on the day of judgement.

The person who does not know about the First Coming and does not accept God will face a God of judgement. No matter who he is, he will not survive on that day.

But the person who accepts God—who first came to us as Immanuel before returning as a God of judgement, who came to us in the form of a baby to save us—will be saved. God will rejoice in him and love him eternally.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the Mighty Warrior who saves.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in his love he will no longer rebuke you, but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Zephaniah 3:17)

I hope you will see the first Christmas hidden in these words. I pray that in baby Jesus you will find God Immanuel, God who loves you quietly and rejoices over you. I hope that you will hear God’s confession of love toward you in these words.

For all who accept Jesus as Lord, the day of the Lord, the last day, will be a day of salvation and rejoicing.

btn_switch

스바냐 3: 14 ~ 17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요시야 왕 시대에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 심판의 날을 선언하셨습니다.>

본문이 기록된 스바냐서는 3장으로 구성된 짧은 예언서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스바냐 1장 1절)

짧은 문장 안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스바냐가 히스기야의 현손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라는 점입니다. 스바냐의 말씀이 선포되던 역사적 상황은 이렇습니다. 히스기야가 죽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를 시작했는데, 악한 왕 므낫세의 폭정 아래 백성들은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유대 민족은 심각한 종교적, 도덕적 부패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종교적인 혼합주의 시대’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바알, 아세라 상과 같은 우상들을 예루살렘에 세우고 숭배하며 종교적인 예식으로서 매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일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 행위가 예루살렘 성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므낫세를 이은 아몬 왕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못했고, 아몬이 암살당한 이후 8살 난 요시야가 왕이 됩니다. 스바냐 1장 1절에 의하면 요시야 왕 시대에 스바냐가 예언 활동을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요시야는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한 왕이죠. 그 시기가 대략 주전 622년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스바냐는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시행하기 이전에 예언 활동을 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요시야의 종교 개혁 배후에는 스바냐의 예언 활동이 있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1장 2절 안에 축약되어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스바냐 1장 2절)

하나님께서 스바냐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은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선고였습니다. 성경은 심판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개합니다. 스바냐서 1장 4~6절 말씀입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스바냐 1장 4~6절)

말씀 속에서 우리는 유대 민족이 어떤 죄를 짓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바알을 섬기고 그마림이라는 신을 섬기고, 별을 보며 경배했고, 말감을 가리켜 맹세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다고도 분명하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들을 향하여서 그분의 심판이 이르렀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날, 바로 심판의 날이 오리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다가왔으니, 주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라. (스바냐 1장 7절 중, 새번역)

이후 그날, 그때, 심판의 날이라는 표현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스바냐 1장 9절)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스바냐 1장 15절)

이처럼 그때, 그날이라는 단어가 스바냐 12절, 14절, 15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 그날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을 비롯한 다양한 우상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시면서 심판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발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스바냐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바냐 3장에 오면서 심판의 날에 대한 분위기가 조금씩 변화됩니다.>

스바냐서 3장 본문에도 ‘여호와의 날’이라 하는 ‘그날’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면서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3장에서도 여호와의 날이 여러 번 언급됩니다. 9절, 11절, 16절, 19절에서 그때 혹은 그날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죠. 우선 9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스바냐 3장 9절)

이방 나라의 백성들, 뭇 백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셔서 모두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선 1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겠다고 하셨는데 도리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이방 백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이 듭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이 나올까요? 그것도 그날, 여호와의 날에 말입니다. 이처럼 1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3장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또한 그렇습니다. 11절입니다.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바냐 3장 11절 중,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하나님을 향하여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입니다. 심지어 3장에서 스바냐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래하며 찬양하며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스바냐 3장 14~15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1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3장에 와서는 심판에 대한 말씀이 다 들어가고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형벌을 제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분위기를 변화시킨 걸까요? 이어지는 16절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장 16절)

스바냐서 1장에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3장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하시며 희망의 메시지가 전파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날, 바로 그 심판의 날에 노래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의 형벌이 모두 제하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던 하나님의 의지는 어디로 가고 이스라엘을 향한 격려로 가득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의 날,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그날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날은 심판의 날이 됩니다. 잘못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날은 형벌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그날은 절망의 날이 됩니다. 이방신을 섬기며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온 이들에게 그날은 고통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며 공의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이날은 기쁨의 날입니다. 노래하는 날입니다. 즐거운 날입니다.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화를 당하는 게 아니라 축복과 감사가 있는 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무서운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한 분이십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요, 도우시는 분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는 진노의 자리가 되고 누구에게는 은혜의 자리가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둘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을 숭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하게 의지했던 한 두 사람을 향하여 주신 축복의 말씀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토록 스바냐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실까요?

<하나님이 동일한 날을 서로 다르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바냐서 3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스바냐 3장 15절 중)

은혜의 말씀, 회복을 주시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기도 하죠.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맞아 주시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대하시는 사람들에게도 죄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 형벌을 면하게 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에게는 죄를 물으시고 그 죄를 계속 추궁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둘을 가르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인간입니다. 원죄를 가진 인간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드릴 수 없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서 하나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도 전하는데, 그렇다면 이 둘을 가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종종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묵상합니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나누시며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어떤 사람에게는 “너는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며 오른편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왼편에 서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인생이 단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인생을 들여다보면 어떨 때는 이런 일을 하고, 또 저런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날에는 너무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나타났다가 또 다른 날에는 냉철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을 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수십 년 살아오면서 때로는 선한 사람이 되었다가도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시며 천국 혹은 심판을 결정하실까요? 인생을 총량으로 해서 선을 베푼 것과 악을 행한 것을 나누어서 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쪽으로 판별하실까요? 도대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단 한 번의 모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말씀이 스바냐서의 척추와도 같은 곳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중앙 부분에 나오죠. 2장 1~3절 말씀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장 1~3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여호와를 찾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분노의 날에 숨을 수 있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분노의 날,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초청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을 향하여 숨을 곳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숨을 곳이란 어디겠습니까? 흥미로운 내용이 1장 7절에 숨겨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듯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스바냐 1장 7절)

<하나님은 심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며 ‘희생을 준비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날,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서 희생을 준비하셨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 가다 보면 이 말씀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이 자리에 적절하지 않은 말씀처럼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해석해 보면 성전에서 드리는 제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그리 적절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자들을 멸절하시겠다는 심판의 말씀을 선고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8절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벌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시죠. 그런데 그 사이에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셨다’, ‘여호와께서 청할 사람들을 구별하셨다’는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희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한 번 드려지는 성전에서의 제사가 아니라면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이미 읽었습니다만 흥미로운 또 다른 구절이 있는데 스바냐 3장 9절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때에 이방 민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예언이었을까요?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를 섬기게 되리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가 구약 역사를 알고 있듯이 당시에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간 적은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바냐서 3장 9절 말씀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이야기하는 구절입니다. 즉 먼 미래에 일어날 궁극적인 어떤 날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3장 9절은 역사적,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오시는 그날에 그분이 온전한 희생이 되어 드려지는 것을 예견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모든 이방 민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며 그들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온 땅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는 날,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을 하나님께서 스바냐 말씀 가운데 숨겨 놓으신 것입니다. 스바냐가 그날에 일어날 일을 노래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날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온전한 희생을 준비하시고 선택된 백성을 향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말씀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대림절이 끝나고 성탄절이 옵니다. 성탄의 날을 예견하면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3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스바냐서의 말씀이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천사의 언어를 통하여 마침내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중)

<약속하신 희생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물론 큰 선물을 받을 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선물을 받게 되면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금도, 다이아몬드도 아닌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표징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너를 아끼는지, 이것이 바로 나의 사랑의 결정적 표징이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스바냐가 노래합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너를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예수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우리를 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 우리로 인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구유에 놓이신 아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보이는 모습으로까지 가까이 오셨다는 징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오심은 구유에 놓이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오심은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첫 번째 오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결국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선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주로 오시기 이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셔서 희생의 양이 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재림의 심판 자리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사랑하는 이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존재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이 말씀 속에 숨겨진 성탄의 의미가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하며,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1년 12월 19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14~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180, 52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습 3:14-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2월 19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여호와의 날을 말씀하셨습니다그날은 심판의 날이고 하나님의 분노가 임하는 날입니다그런데 스바냐 3장에서 선포되는 여호와의 날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그날은 이방 나라의 백성들까지 모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전혀 다른 두 상황의 변곡점은 어느 지점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고통과 절망의 날이 어떻게 회복과 기쁨의 날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설교의 요약

    여호와의 날하나님께서 임하실 그 날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날이고 어떤 이에게는 구원과 기쁨의 날입니다이 둘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하나님께서 두 부류로 나누어서 심판하겠다는 것일까요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면 그 나눔의 기준에서 자유 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스바냐 2장 1~2절의 말씀에는 심판의 그날이 이르기 전에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향해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심을 말씀합니다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날에 희생을 준비하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다(습 1:7)는 것입니다어색하게도 이 문맥 앞뒤로는 여호와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자를 벌하겠다는 말씀이 이어집니다그 사이에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며 그 정할 자를 구별하셨다는 말씀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죠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여호와께서 미리 준비하시는 희생은 무엇이고청할 자를 구별하셨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스바냐 3장에서 말하는 그 때, ‘여호와의 날은 온 나라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을 날로 말씀합니다이방민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길 날이라(습 3:9)고 선포하십니다그날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는 날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실 날이라(습 3:17)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바냐의 입술로 선포하신 여호와의 날은 단지 이스라엘의 멸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온 땅에 백성들이 구원을 얻는 그날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백성들이 구원을 얻을 그 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날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이죠곧 예수님의 탄생은 스바냐의 입술을 통한 고백처럼,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고백입니다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가까이 오셨다는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표현하는 징표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 속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하고자 말구유에 누인 임마누엘의 하나님그 하나님께서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나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고백에 잠기고 영의 눈이 열려 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며 마지막 그 날은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나누기

1. 주께서 말씀하는 다가올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로 다가옵니까두렵나요아니면 기쁨이 있습니까?

2. 오실 아기 예수님 바라볼 때 임마누엘이 늘어뜨린 손을 다시 들어 올릴 힘과 소망이 됩니까?

마무리기도

    사랑의 하나님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사랑하고 사랑하시어 기꺼이 희생하신 주님의 그 은혜를 돌아봅니다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아기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깨닫습니다그 기쁨감격감사를 주님 오실 그 날을 온전히 기다리는 믿음의 삶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