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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기도할까(2)

히브리서 13:1~3

김경진 목사

2025.08.24

<우리가 쌓아 가야 할 기도는 더 넓은 대상을 향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1)’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자녀를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또는 내 삶의 필요를 위한 기도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지평으로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세 부류의 대상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선하든 악하든, 그들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과 우리의 삶이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원수들입니다. 가장 기도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오히려 저주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주님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증명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듯이,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 그리고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복음이 더욱더 힘 있게 전파되고 성도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세 부류의 기도의 대상을 살피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보 기도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나라가 편안해지고,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며, 영적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때 성도가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대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더 넓고, 우리의 기도는 더욱더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또 다른 기도의 대상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 중에서도 이 기도는 공감이 잘되지 않아서 사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지요? 이번 2025년 3월 28일, 미얀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의 위력은 원자 폭탄 334개와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최소 5,456명 이상, 부상자는 최소 11,404명 이상, 재산 피해는 미얀마 전체 GDP를 초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재난 관련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번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죠. 올해 3월에 청도에서 일어난 산불을 시작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 불로 인해 100,000㏊ 이상의 광범위한 임야가 전소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었다고 합니다. 피해 규모는 불에 탄 면적이 축구장 146,422개와 비슷하고, 여의도 면적의 352배, 서울시 전체(605.2㎢) 면적의 약 1.73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33명이었고, 재산 피해액의 추정은 1조 원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이번 주 뉴스에서는 스페인에서 폭염과 산불로 1,149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오늘도 재앙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또 부상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이 받은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암이나 여러 가지 불치의 병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환자들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사실 그 상황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공감하거나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셨듯이, 그리스도인도 그 길을 따라 이웃의 아픔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저서 중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 없고, 상상력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와의 거리로 인해 쉽게 그리고 오래도록 공감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용어 중에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심리 현상을 꼬집는 말입니다.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다가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어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 돕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거나, 멀리서 일어난 일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설이나 영화처럼 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사건들에 조금 민감한 분들도 있겠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끔찍한 재난과 사고, 고통과 폭력의 소식을 봅니다. 그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고 무거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그런 소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름 아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죄가 없으심에도,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서 당하기 어려운 처참한 고통과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고통받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증명하고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사랑을 본받아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선 활동이나 연민의 정을 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받으며 보여 주신 삶의 현장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기꺼이 타인의 고통을 짊어지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통당하는 사람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특별히 병든 자들을 위해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히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재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진이나 산불, 홍수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우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너희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라는 말씀 속에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사랑하며, 그들이 당한 재난과 고통을 형제처럼 함께하라는 말씀이 포괄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재난을 당한 이들을 형제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가 특별히 기도해야 할 몇몇 중요한 이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 말씀은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4~15a)

 

성경은 병든 자에게 혼자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가 쓰이던 시대에 ‘장로’라는 명칭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때의 장로는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목회자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가 장로를 부른다’라는 것은 곧,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 고통을 함께 짊어지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병든 자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단순한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자를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과 권세 아래 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해 왔으며, 지금도 새벽 기도 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 재난을 당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작년부터 1년에 네 차례 ‘치유를 위한 성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고, 지금도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한 후로 곳곳에서 놀라운 소식들이 들려오곤 합니다. 검사 결과가 놀랍게 호전되었다는 소식, 치료가 예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또 오랜 마음의 우울과 질병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듣곤 합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난 7월에 우리 교회 한 권사님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휴가를 다녀오시고 들려주신 내용을 전해 드립니다. 주일에 권사님 내외께서 현지 한인 교회에 가서 소망교회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니,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고백하셨다고 합니다.

“몇 달 전 제 딸이 뇌종양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이후에 여러 가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는데, 마침 소망교회 한 집사님의 소개로 ‘치유를 위한 성찬예배’에 찾아가 안수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후에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지금은 딸아이가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담임목사님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백을 전해 듣고는 저 역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교회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여기서 말하는 의는 선한 사람이나 성인, 완벽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은 사람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의 기도,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재난당한 사람들에게 능력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구체적으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 중에서 한 부류의 사람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 13:3)

 

이 말씀은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이 말씀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학대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수많은 신들을 인정하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신만큼은 모두 섬겨야만 했습니다. 바로 황제의 신이었습니다. 황제를 구원자로 여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구원자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 들어가 고문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감금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요즘에도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만큼 기독교가 박해받는 곳이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있는데, 박해가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대한민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예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5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범위는 얼마나 크고 넓을까요? 2023년 10월 1일부터 2024년 9월 30일까지 이를 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은 4,476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박해로 위협을 받는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3억 8천만 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알기 쉽게 정리하면,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세계 어디에선가 박해받는 상황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픈도어즈’(Open Doors)라는 국제기구에서 매년 발행하는 ‘월드와치리스트’(WORLD WATCH LIST)가 있습니다. 이 자료에 반영된 기독교 박해의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재판 없이 구금되거나, 체포 및 투옥 – 4,744명
  2. 납치 – 3,775명
  3. 성폭행 또는 비기독교인과 결혼 강요 – 3,944명
  4. 신체적 또는 정신적 학대와 구타, 살해 위협 – 54,780명
  5.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공격과 약탈을 당한 주택, 상점, 사업체 및 사유재산 – 28,368명
  6. 신앙을 이유로 집을 떠나거나, 국내에 숨거나, 나라를 떠나야 하는 경우 – 209,771명

더불어 교회와 기독교 학교, 기독교 병원에 대한 공격은 14,766건, 폭력으로 인해 강제 이주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1,6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사실은 멀리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전 세계 오픈도어즈 선교회에서 기독교 박해 지수를 조사한 이래, 가장 박해가 심한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북한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여성 수감자들은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학대와 폭력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담대함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도행전 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배경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고 공의회에 넘겨진 이후의 상황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면 결국은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협박과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 4:29~30)

 

이들의 기도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핍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담대함을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들은 박해자의 위협 앞에서 사도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기도입니다.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복음의 전파가 방해받지 않고 더욱 강력하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담대함을 달라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기도는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지만, 한편으로는 재난을 당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 그들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이 병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당히 싸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겠죠. 그리고 또 이렇게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병이 낫게 해 주시고, 기적과 이적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상황이 변화되는 역사가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우리가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재난과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같습니다. “그들에게 이길 힘을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가 드러나서 상황이 변화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중보 기도의 내용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는 곧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 자신을 살리는 기도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남을 위해서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그저 나의 건강과 가족, 가까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네 겹의 기도, 네 곁의 기도’라는 주제를 2025년 1월에 함께 받고, 상반기 동안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에 대해서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는 대로 기도하셨겠죠? 아마 그 기도의 대부분은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자녀, 부모, 나 자신을 위한 네 겹의 기도가 쌓여 갔겠죠.

이제 2025년 후반기를 들어서면서 우리는 기도의 대상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 원수들, 영적인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로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자 및 약자들과 복음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영적인 유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가 처한 위치와 나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와 회개의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자선을 베풀 때 다가오는 넉넉함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얻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2)”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 능력이 더욱더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더욱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For Whom Should We Pray? (2)

 

Hebrews 13:1-3

 

Last week, I preached a message titled “For Whom Should We Pray?” When we think of prayer, we often imagine praying for our children, parents, or needs in life. However, the Bible guides our prayers to a much broader horizon.

 

In last week’s sermon, we examined three prayer targets, that is, three groups of people for whom we should pray. First, leaders. God commands us to pray for kings and those in high positions. It is because when pray for them, ultimately our lives become peaceful—whether they are good or evil, or whether we support them or not.

 

Second, we must pray for our enemies. Jesus taught us to pray for our enemies —people whom we would rather curse, let alone pray for. Because doing so proves that we are God’s children and is a way to overcome evil with good.

 

Third, spiritual leaders. Just as Paul asked the saints to “pray for me,” praying for pastors, church leaders, and missionaries helps the Gospel to spread more powerfully and benefits the spiritual growth of believers.

 

Looking at these three categories, we confirmed one thing: intercessory prayer is not merely about others, but ultimately benefits “us.” Praying for leaders brings peace to the nation; praying for enemies liberates our hearts; and praying for spiritual leaders benefits the church and believers.

 

However, the targets of prayer taught by the Bible do not end here. God’s interest is broader, and our prayers should be deeper.

 

Today, I want us to look at prayer for those facing disasters. Among intercessory prayers, this is most difficult.

 

My friends, do you remember the following incident?

 

On March 28, 2025, a major earthquake struck Myanmar. It was said to have the power equivalent to 334 atomic bombs. The death toll was at least 5,456 with over 11,404 injured, and the property damage is estimated to surpass Myanmar’s entire GDP.

 

Regarding disasters, we don’t need to look far. This year many wildfires broke out across various parts of our nation, starting from the one in Cheongdo in March. Over 100,000 hectares of forest and land were burned. It was said to be the largest wildfire in South Korea’s history. The burned area was roughly 146,422 football fields, 352 times the size of Yeouido, or about 1.73 times the size of Seoul (605.2 km²). Thirty-three people died, and property damage is estimated to be over one trillion won.

 

This week, I saw news reporting that 1,149 people died from the heatwave and wildfires in Spain. The number of deaths and injuries from the Israel-Hamas war and the Russia-Ukraine conflict is incalculable. Furthermore, around us today, many people are suffering from illnesses and seeking treatment. When I visit hospitals, especially wards, I am reminded of just how many are suffering from sicknesses. Is that all? Among businessmen and the self-employed, many face difficulties, close their business, suffer enormous losses, or lose everything and end up on the streets.

 

As such, countless people in this world are suffering due to disasters and unfortunate events. Then how should we as Christians respond when we see such people?

Apart from his most famous work “Wealth of Nations,” the economist Adam Smith wrote a book titled,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In it, he states that humans cannot directly experience others’ pain and can only feel it indirectly through imagination. Since we observe others’ suffering from a distance, Smith pointed out that we cannot empathize easily or for a long time.

 

In fact, there is a psychological term related to this—“the bystander effect.” The more witnesses there are, the less likely they are to help someone in trouble. This is caused by a “diffusion of responsibility.” People think, “Someone else will step in,” which decreases individual responsibility and ultimately prevents anyone from helping.

 

Today, we constantly see images of terrible disasters, accidents, pain, and violence on media such as TV and YouTube. Encountering such news continuously can be overwhelming and exhausting. Sometimes, to protect ourselves, we try to distance ourselves from these heavy emotions. This reaction may be a natural human response.

 

However, the Bible teaches us that Christians should not ignore the suffering of the world. It is because our Lord Jesus Christ Himself suffered and died on the Cross in order to bear all the pain and suffering of this world. Although He was the Son of God, He experienced firsthand all the pain and limitations that we experience by becoming like us.

 

Hebrews 4:15 proclaims: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e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he did not sin.” (Hebrews 4:15 NIV)

 

In this way, although Jesus was without sin, He bore the most painful suffering. Through the Cross, God confirmed His infinite love for a suffering world and opened the way for salvation.

 

Therefore, we, Christians, who have been saved through the Cross, have an obligation to imitate that love and practice it toward the suffering. This goes beyond mere charity or compassion; it means to willingly bear the pain of others, just as Jesus suffered for us.

 

Therefore, we should not turn away from the pain and suffering of our neighbors but instead face them, giving them our love, compassion, prayers.

 

Then, whom should we particularly pray for among those who are suffering from disasters? The Bible first instructs us to pray for the sick. James 5:14-15 states: “Is anyone among you sick? Let them call the elders of the church to pray over them and anoint them with oil in the name of the Lord.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make the sick person well; the Lord will raise them up. If they have sinned, they will be forgiven.” (James 5:14-15 NIV)

 

The Bible does not say that the sick should pray alone. Instead, it instructs us to call the elders of the church. Here, elders do not merely mean older people; they are spiritual leaders who represent the community. So, when the sick call on elders, it signifies that the church shares the burden of that suffering, and the entire community participates in it.

 

Therefore, one of the church’s vital ministries is to suffer together and pray with those who are ill.

 

Specifically, the passage tells elders “to pray over them and anoint them with oil in the name of the Lord.” This anointing is more than a simple ritual. It declares God’s presence and grace over the patient’s body and soul. It is a confession of faith committing the sick person not to human ability but to the Lord’s name and authority.

 

Brothers and sisters, this faith-filled declaration is also alive in our church today. Since last year, we have been holding communion services for healing four times a year. Many people have attended them, receiving grace together. After the services, we heard reports of recovery—stories of surprisingly improved test results, smoother treatment processes, and testimonies of being freed from long-standing depression and mental illnesses and experiencing peace.

 

In July, a senior deaconess of our church and her family went on a vacation to Portugal. There, they visited and worshiped at a local Korean church. Upon hearing that they came from Somang Church, the pastor was surprised and shared his testimony: “A few months ago, my daughter had to undergo brain tumor surgery in Korea. After the surgery, when she was suffering from all sorts of anxiety and fear, a deaconess at Somang Church told her about the communion service for healing at your church. So my daughter went and received prayer and anointing. To our amazement, her treatment went well after that, and now she is regaining her normal life, for which we are deeply grateful. Please convey our gratitude to your senior pastor when you return to Korea.” I also deeply thanked God after hearing this testimony.

 

Why should we pray for the sick? The Bible says, “The prayer of a righteous person is powerful and effective.” (James 5:16 NIV) Here, “righteous person” means not just someone who does good deeds, but someone who is clothed in the righteousness of Jesus Christ—that is, a believer who stands justified before God through faith. Therefore, when Christians pray for those affected by disasters, their prayers are based on the biblical conviction that their prayers can strongly influence the fulfillment of God’s will.

 

When we pray for the sick, we often experience miraculous healing. Therefore, the Lord has commanded us to pray for those who are ill.

 

So, who else should we pray for? This is a verse from today’s passage:

 

“Continue to remember those in prison as if you were together with them in prison, and those who are mistreated as if you yourselves were suffering.” (Hebrews 13:3 NIV)

 

This is not simply an encouragement to do missionary work for prisoners in jail. Of course, praying for them is important, but more precisely, it refers to those who are imprisoned and persecuted because of their faith in Christ.

 

At the time, the Roman Empire was a polytheistic society that recognized a myriad of gods. Yet there was one deity that everyone had to serve— the Roman emperor himself, who was worshipped as God and Savior. However, early Christians could not call the emperor their “Savior” for Jesus alone is the Christ and Savior. As a result, many Christians were imprisoned, tortured, and even martyred. The Bible instructs us to pray for these imprisoned individuals, that is, Christians who become imprisoned for working for the Gospel.

 

Many may wonder, ‘Is there still such persecution of Christians today that requires our prayers?’ Because we are free to worship, sing praises loudly, and pray without any restrictions, we might assume that everyone can worship freely as we do. But, even in Korea, it was not so long ago that believers faced persecution and even death.

 

As we celebrate the 80th anniversary of liberation, it’s worth reflecting o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 “105-Man Incident” of 1910 was a representative case of Japanese persecution against Christians, where Japan arrested 600 Christians in Pyongan Province, including leaders and members of the Shinmin Organization. The Japanese authorities inflicted all sorts of brutal torture on them to extract false confessions, prosecuting 128 of them.

 

Furthermore, from the mid-1930s, Japan, as part of its policy to convert Koreans into loyal subjects of the Japanese emperor, forced Koreans to participate in Shinto Shrine worship. Many believers resisted this, leading to severe persecution. Many churches were closed, and pastors and believers were imprisoned and even martyred. These events happened less than a century ago.

 

Of course, by God’s amazing grace, we are now living in a free, democratic Republic of Korea, enjoying religious freedom.

Even today, in 2025, there are still countless believers around the world facing extreme persecution and threats to their lives simply because they follow Jesus. How many do you think there are? According to research conducted from October 1, 2023, to September 30, 2024, 4,476 Christians were killed solely because of their faith in Jesus, and approximately 380 million Christians around the world face high levels of persecution. Simply put, one in seven Christians worldwide is experiencing some form of persecution somewhere on earth.

 

The following is data from the “World Watch List,” published annually by Open Doors,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The scope of Christian persecution reflected in this data includes:

 

  1. Detained, arrested, or imprisoned without trial – 4,744
  2. Kidnapped – 3,775
  3. Sexually assaulted or forced into marriage with non-Christians – 3,944
  4. Subjected to physical or mental abuse, beatings, or threats of murder – 54,780
  5. Homes, shops, or private property attacked or looted because of being Christians – 28,368
  6. Forced to leave their homes, hide within the country, or flee the nation due to their faith – 209,771

 

In 2024 there were 14,766 attacks on churches, Christian schools and hospitals worldwide. In Sub-Saharan Africa alone, around 16 million Christians have been forcibly displaced due to violence. Can you imagine?

 

We don’t have to look far. Since Open Doors began monitoring persecution, North Korea remains the country where Christians face the most severe persecution. Countless Christians in North Korea are detained in labor camps due to their faith, and female detainees are known to suffer sexual violence.

 

So how should we pray for Christians who are under such persecution and oppression?

 

The answer is found in Acts 4:29-30. Peter and John were released after being arrested and threatened by the Sanhedrin for preaching the Gospel. How terrified they would have been. That very same Sanhedrin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crucifying Jesus a few months ago. It was easy to predict that they, too, could be sacrificed. So this is how they prayed:

 

“Now, Lord, consider their threats and enable your servants to speak your word with great boldness. Stretch out your hand to heal and perform signs and wonders through your name of your holy servant Jesus.” (Acts 4:29-30 NIV)

 

Their prayer consisted of two main requests. First, they asked that God would grant boldness to believers facing persecution. They prayed that the saints would not fear in the face of persecution, and, instead, would be strengthened to boldly preach the Word of God.

 

Second, they prayed for God’s power. They prayed that God’s power would be revealed through healing, signs, and wonders. They prayed that through this, the Gospel would spread more powerfully without hindrance.

 

The core of their prayer for those suffering persecution was these two things: boldness and the manifestation of God’s power.

 

Why should we pray for those who are experiencing disasters? Such prayers can not only bring about direct changes in their situations, but, ultimately, becomes a pathway through which the best outcomes are created under the sovereignty of God, who governs all situations.

 

Whom should we pray for? Today, there are still about 380 million Christians worldwide who worship cautiously due to persecution. Among them are our brethren in the North. There are also countless patients suffering in hospital beds. May we at Somang Church pray the four levels of prayer, powerfully and intensively, deeming it our God-given calling to pray for thes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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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1~3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우리가 쌓아 가야 할 기도는 더 넓은 대상을 향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1)’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자녀를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또는 내 삶의 필요를 위한 기도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지평으로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세 부류의 대상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선하든 악하든, 그들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과 우리의 삶이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원수들입니다. 가장 기도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오히려 저주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주님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증명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듯이,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 그리고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복음이 더욱더 힘 있게 전파되고 성도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세 부류의 기도의 대상을 살피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보 기도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나라가 편안해지고,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며, 영적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 때 성도가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대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더 넓고, 우리의 기도는 더욱더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또 다른 기도의 대상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 중에서도 이 기도는 공감이 잘되지 않아서 사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지요? 이번 2025년 3월 28일, 미얀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의 위력은 원자 폭탄 334개와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최소 5,456명 이상, 부상자는 최소 11,404명 이상, 재산 피해는 미얀마 전체 GDP를 초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재난 관련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번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죠. 올해 3월에 청도에서 일어난 산불을 시작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 불로 인해 100,000㏊ 이상의 광범위한 임야가 전소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었다고 합니다. 피해 규모는 불에 탄 면적이 축구장 146,422개와 비슷하고, 여의도 면적의 352배, 서울시 전체(605.2㎢) 면적의 약 1.73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33명이었고, 재산 피해액의 추정은 1조 원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이번 주 뉴스에서는 스페인에서 폭염과 산불로 1,149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오늘도 재앙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또 부상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이 받은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암이나 여러 가지 불치의 병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환자들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사실 그 상황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공감하거나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셨듯이, 그리스도인도 그 길을 따라 이웃의 아픔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저서 중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 없고, 상상력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와의 거리로 인해 쉽게 그리고 오래도록 공감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용어 중에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심리 현상을 꼬집는 말입니다.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다가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어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 돕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거나, 멀리서 일어난 일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설이나 영화처럼 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사건들에 조금 민감한 분들도 있겠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끊임없이 끔찍한 재난과 사고, 고통과 폭력의 소식을 봅니다. 그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고 무거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그런 소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름 아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죄가 없으심에도,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서 당하기 어려운 처참한 고통과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고통받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증명하고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사랑을 본받아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선 활동이나 연민의 정을 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받으며 보여 주신 삶의 현장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기꺼이 타인의 고통을 짊어지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통당하는 사람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특별히 병든 자들을 위해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히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재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진이나 산불, 홍수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우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너희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라는 말씀 속에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사랑하며, 그들이 당한 재난과 고통을 형제처럼 함께하라는 말씀이 포괄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재난을 당한 이들을 형제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가 특별히 기도해야 할 몇몇 중요한 이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 말씀은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약 5:14~15a)

 

성경은 병든 자에게 혼자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가 쓰이던 시대에 ‘장로’라는 명칭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때의 장로는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목회자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가 장로를 부른다’라는 것은 곧,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이 고통을 함께 짊어지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병든 자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단순한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자를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과 권세 아래 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해 왔으며, 지금도 새벽 기도 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 재난을 당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작년부터 1년에 네 차례 ‘치유를 위한 성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고, 지금도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한 후로 곳곳에서 놀라운 소식들이 들려오곤 합니다. 검사 결과가 놀랍게 호전되었다는 소식, 치료가 예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또 오랜 마음의 우울과 질병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듣곤 합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난 7월에 우리 교회 한 권사님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휴가를 다녀오시고 들려주신 내용을 전해 드립니다. 주일에 권사님 내외께서 현지 한인 교회에 가서 소망교회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니,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고백하셨다고 합니다.

“몇 달 전 제 딸이 뇌종양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이후에 여러 가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는데, 마침 소망교회 한 집사님의 소개로 ‘치유를 위한 성찬예배’에 찾아가 안수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후에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지금은 딸아이가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담임목사님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백을 전해 듣고는 저 역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교회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여기서 말하는 의는 선한 사람이나 성인, 완벽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은 사람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의 기도,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재난당한 사람들에게 능력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성경은 구체적으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 중에서 한 부류의 사람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 13:3)

 

이 말씀은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이 말씀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학대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수많은 신들을 인정하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신만큼은 모두 섬겨야만 했습니다. 바로 황제의 신이었습니다. 황제를 구원자로 여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구원자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 들어가 고문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감금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요즘에도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만큼 기독교가 박해받는 곳이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있는데, 박해가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대한민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예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5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범위는 얼마나 크고 넓을까요? 2023년 10월 1일부터 2024년 9월 30일까지 이를 조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은 4,476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박해로 위협을 받는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3억 8천만 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알기 쉽게 정리하면,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세계 어디에선가 박해받는 상황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픈도어즈’(Open Doors)라는 국제기구에서 매년 발행하는 ‘월드와치리스트’(WORLD WATCH LIST)가 있습니다. 이 자료에 반영된 기독교 박해의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재판 없이 구금되거나, 체포 및 투옥 – 4,744명
  2. 납치 – 3,775명
  3. 성폭행 또는 비기독교인과 결혼 강요 – 3,944명
  4. 신체적 또는 정신적 학대와 구타, 살해 위협 – 54,780명
  5.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공격과 약탈을 당한 주택, 상점, 사업체 및 사유재산 – 28,368명
  6. 신앙을 이유로 집을 떠나거나, 국내에 숨거나, 나라를 떠나야 하는 경우 – 209,771명

더불어 교회와 기독교 학교, 기독교 병원에 대한 공격은 14,766건, 폭력으로 인해 강제 이주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1,6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사실은 멀리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전 세계 오픈도어즈 선교회에서 기독교 박해 지수를 조사한 이래, 가장 박해가 심한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북한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여성 수감자들은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학대와 폭력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담대함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도행전 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배경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고 공의회에 넘겨진 이후의 상황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면 결국은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협박과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 4:29~30)

 

이들의 기도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핍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담대함을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들은 박해자의 위협 앞에서 사도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기도입니다.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복음의 전파가 방해받지 않고 더욱 강력하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담대함을 달라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기도는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지만, 한편으로는 재난을 당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 그들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이 병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당히 싸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겠죠. 그리고 또 이렇게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병이 낫게 해 주시고, 기적과 이적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상황이 변화되는 역사가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우리가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재난과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같습니다. “그들에게 이길 힘을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가 드러나서 상황이 변화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중보 기도의 내용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는 곧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 자신을 살리는 기도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남을 위해서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그저 나의 건강과 가족, 가까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네 겹의 기도, 네 곁의 기도’라는 주제를 2025년 1월에 함께 받고, 상반기 동안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에 대해서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는 대로 기도하셨겠죠? 아마 그 기도의 대부분은 여러분의 가족들을 위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자녀, 부모, 나 자신을 위한 네 겹의 기도가 쌓여 갔겠죠.

이제 2025년 후반기를 들어서면서 우리는 기도의 대상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 원수들, 영적인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로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자 및 약자들과 복음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영적인 유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가 처한 위치와 나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와 회개의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자선을 베풀 때 다가오는 넉넉함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얻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2)”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 능력이 더욱더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더욱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2)” (히13:1~3)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366, 500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재난 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설교의 요약>

지난주에 우리는 세 부류의 기도 대상(지도자들, 원수들, 영적지도자들)을 살펴보았고,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재난당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 대해 살펴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지진, 산불, 전쟁 등 각종 재난과 질병,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재난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14-15은 병든 자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그들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고통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치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 때문에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구원자로 부를 수 없어 핍박받았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은 박해받고 있으며, 한 해 동안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이 4,476명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사도행전 4:29-30은 우리에게 이렇게 핍박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담대함을 달라는 기도,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같은 재난당한 이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의 상황에 직접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선한 결과를 이루어내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중보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나누기>

1.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박해받는 전 세계 3억 8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과 북녘 땅의 동포들을 위해 담대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함께 드려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병든 자의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며, 핍박받는 교회와 성도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멈추지 않게 하시고,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게 하시며, 오늘도 그 기도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세상이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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