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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

시편 126: 1 ~ 6

김경진 목사

2022.02.27

<3‧1절을 맞이하여 지난날 우리나라 해방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三角山이 이러나 뎌덩실 춤이라도 추고
漢江물이 뒤집혀 룡소슴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前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한울에 날르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바더 울리오리다
頭蓋骨은 깨어져 散散 조각이 나도
깃버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오리까

시인 심훈이 1930년에 발표한 시 ‘그날이 오면’의 일부입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드는 칼로 자신의 몸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 만들어서 들쳐 메고는 사람들 행렬에 앞장서고 싶다는 바로 그날, 그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그날은 ‘조선 독립과 해방의 날’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1936년에 요절하게 되면서 살아 있는 동안 그날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 자신이 직접 쓴 시 안에서 해방의 날을 충분히 경험하는 듯 보입니다. 비슷한 감동의 노래가 오늘 본문 속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오늘 본문인 시편 말씀은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배자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해방의 날, 노예로부터 풀려나왔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쁨, 그날의 환호를 기억하며 주님 앞에 노래합니다. 유다의 사람들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후 70여 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방 나라 땅에서 땅을 차지하지 못한 채 종의 신분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던 중에, 작은 민족으로 전락하여 희망 없이 살아가던 중에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을 이어 그들을 다스리던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각자의 고향으로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땅이 없던 민족이 이제는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를 예배자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기쁨과 감동을 하나님께 노래합니다.
흥미롭게도 조선의 독립과 해방도 이스라엘이 경험한 방식과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던 일제 치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들어가지 않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역사로부터 해방을 선물 받았습니다. 미국이 원자 폭탄을 일본 본토에 투하하자 일본이 미, 영, 중, 소에 항복하게 되면서 해방이 저절로 주어진 셈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기억하며 함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삼일절을 기억하면서 조금은 어색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삼일 운동은 과연 대한민국의 해방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삼일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로 말한다면 삼일 운동과 해방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삼일 운동이 1919년에 일어났지만 이후 26년간 여전히 우리는 일제의 지배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연합군의 참여가 없었다면, 그리고 일본의 패전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해방이란 단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많은 선조들이 일하고 노력했던 독립운동이 해방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선조들이 상해 임시 정부도 세우고 독립군도 양성하였습니다. 독립운동도 끈질기게 전개하였습니다. 이 일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준 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해방은 강대국들의 싸움 속에서 부산물처럼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삼일 운동은 실패한 운동일까요? 우리는 결코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삼일 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의미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민족이 단합하여서 한마음으로 민족의 자치와 주권을 세계만방에 알린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의미는 분명히 큽니다. 삼일 운동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삼일 운동의 결과가 해방으로 이어졌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방은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삼일 운동을 통해 혁명의 영향이 강화되어서, 즉 지속적인 운동력이 결과적으로는 해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와 같은 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1989년에 있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마찬가지입니다. 쿠데타라든지 군사적인 행동에 의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데모에 의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정부 관계자들의 소통 부족으로 또는 인터뷰 잘못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세상의 흐름은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박해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고, 심지어는 기독교를 고민하게 된 사건 역시 그렇습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꿈꾸었던 일로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승인하고 국교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끄시는, 우리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의 큰일들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습니다. 열심히 적금도 모으고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합니다. 그 가운데서 작은 일들은 소소하게 진행되지요. 그런데 뜻밖의 일들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생각해 온 계획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일을 경험합니다.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경륜이 나를 붙잡고 가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아마도 신앙인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하셨으리라 짐작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경륜을 기대하면서 살기만 하면 되는지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우리에게 삼일 운동은 불필요한 운동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선물로 해방을 주시고자 하셨기에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오늘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직접적으로는 해방과 삼일 운동의 관계에 관한 것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가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지요. 하나님께서 정해진 때에 정해진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고백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으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칠십 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방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때만 기다리면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나라의 운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포로로 잡혀갈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포로에서 회복될 수도 있으니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애쓰는 일이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편의 예배자 역시 해방의 날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노래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예배자가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주어가 여호와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셨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 모든 역사와 흐름이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됐고,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하나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해방의 관점에서 삼일 운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별히 믿는 우리들에게 그 의미는 무엇일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해방의 날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이 그들의 상황을 알려 줍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시 126:4)

이 말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과거, 해방의 사건을 기억하며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였던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해방의 시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회복의 축복을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노래를 부르면서 주님께 요청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시 126:4)

이들의 현실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언뜻 보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듯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표현은 달리 읽혀질 수 있습니다. ‘포로를 돌린다’라는 말로 옮겨진 히브리어 표현은 또 다른 의미로 ‘운명을 바꾼다’고 해석됩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번역에 동의하죠. 먼저 남방 시내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남방 시내란 물이 충분한 강이나 시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요단강이나 한강 같이 물이 차고 흘러내리는 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방 시내란 물길은 있는데 물이 보이지 않는 시내를 말합니다. 건천을 의미합니다. 평상시에는 바짝 말라 있어서 바닥이 드러나고 골짜기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기가 되면 산에서부터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이것이 바로 ‘남방 시내같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깐 “바짝 말라 있는 건천과 같은 곳에 물이 불어나서 흘려내려 오듯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라는 탄헌의 기도가 4절 말씀이겠습니다. 그렇게 예배자는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라고 탄헌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해방의 은혜를 기억하는 예배자는, 오늘 현실 속에 드리어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해방을 주신 주님, 그 주님께서 나의 척박하고 마른 건천과 같은 현장에 오셔서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바짝 말랐던 시내에 물이 넘쳐나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주십시오.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해 주셔야만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참으로 반전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갑자기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해방, 하나님께서 주시는 운명의 전환을 꿈꾸는 예배자가 갑자기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거둘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반드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기적을 베풀어 주셨듯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씨를 뿌리기 위해서 눈물로 나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해방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에 누워서 운명이 바뀌기만을 바라지도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사람처럼 씨를 뿌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고백이 매우 놀랍습니다.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것도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우리의 땀과 씨를 뿌리는 노력을 함께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배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믿음을 따라 눈물로 씨를 뿌리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삼일 운동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오늘 본문의 흐름으로 해석한다면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광복과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기에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해방을 열망하면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며 노력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해방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려서 우리 스스로 독립을 이루었다는 고백은 아닙니다. 모든 고통과 고난, 눈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기로 작정하시고 해방을 선물로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은 주님 앞에서 마음과 소원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시도록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가 씨를 뿌렸다고 해서 풍년을 항상 경험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과 성공은 때로는 불연속상에 놓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뿌렸다고 해서 반드시 거두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이 일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바로 그분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 일을 계속 합니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나를 위하여 일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전혀 예측하거나 계산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을 선물로 받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는 사실 말입니다. 씨를 뿌려도 싹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해는 망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두 해마저도 망칠 수 있습니다. 농사를 다 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해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운명을 바꾸어 주시는 기적을 마침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뿌린 씨앗을 넘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복을 더해 주십니다.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전하는 기대요, 메시지입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의 진격과 함께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에서 전투가 이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강력한 러시아군의 화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장의 곳곳에서 용맹한 투사들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군사들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탱크를 저지하고자 다리 폭파의 임무를 가지고 투입된 군인 청년 볼로디미로비치가 다리 위에서 스스로 자폭하여 탱크를 저지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러시아 군함으로부터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결사 항전을 고수하다 포격으로 전사한 열 세명의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의 이야기가 안타깝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들의 죽음이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겠지요. 세계사적인 정치 구도 속에서도 결정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이 이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투쟁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모습을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후에라도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혹여 그들이 뿌린 씨가 아니어도 다른 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선조들이 삼일 운동을 거행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우리 선조들이 독립군을 만들어 저항하지 아니하고 독립신문을 만들어 사상을 고취하지 아니하고 임시 정부를 만들어 나라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선물로 주셨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일 운동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이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는 관점에서는 솔직히 불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기에 연속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국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씨를 뿌려야 합니다.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고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분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위한 마음,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애국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내가 뿌린 씨가 그대로 자라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방식으로 풍성하게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사태를 보면서 약소민족의 설움과 고통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도 우크라이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서 큰 세력이 충돌하는 경계에 우리나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고 마른 천에 물이 흘러내려오는 기적을 선물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이 민족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애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ose Who Sow With Tears

Psalm 126: 1-6

This is the first stanza of “When That Day Comes,” a poem published by Shim Hun in 1930:

When that day comes,
Mt. Samgak will rise and dance,
The waters of Han River will rise up.
If that day comes before I perish,
I will soar like a crow at night
And pound the Jongro bell with my head.
The bones of my skull will scatter,
But I shall die in joy with no regrets. (Shim lines 1-8)

That day—the day when Mt. Samgak would rise and dance, the day the waters of the Han would rise up, the day the poet would skin his skin to make a large drum in celebration, the day he would lead a joyful procession, the day he so longed for—was none other than the day Korea was liberated.

Shim Hun, however, did not live to see that day since he died in 1936 of typhoid fever at a young age. But he had already seen and tasted that day of freedomwhen he wrotethis poem in 1930.

We see a similar song of joy in today’s Scripture:

“When the Lord restored the fortunes of Zion, we were like those who dreamed. 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 our tongues with songs of joy. 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and we are filled with joy.” (Psalm 126:1-3 NIV)

This song was sung by the Israelites as they ascended to the Temple in Jerusalem. As they sang this song, the worshippers recalled the day in their history when God gave them freedom. They remembered the joy and wonder of that day.

The people of Judah went into Babylonian captivity during the reign of King Nebuchadnezzar, living as stateless slaves in a foreign land for 70 years. But a sudden miracle was given to this miserable and powerless people, the object of scorn and contempt ina powerful nation. After Babylonia was conquered by Persia, Cyrus the Great of Persia declared a charter setting allforeign prisoners free and allowing them to return to their homelands. So, overnight, the fate of the Israelites was reversed. One day they were slaves,the next day they were free. Thisstateless and landless people could now return to their home and possess their land.

The worshipper is recalling this amazing historical event in Psalm 126. Although it happened long ago, he is currently singing to God about the joy and wonder of that day.

It is fascinating that Korea’s independence and Israel’s freedom came in a similar way. To all the Koreans who prayed for freedom from Japanese rule, believing and depending on the Bible, Korea’s liberation was a sheer gift from God. It was a present that came from God alone, not from their own efforts or work. Korea’s freedom came not because of anything Koreans did. It just happened as Imperial Japan succumbed tothe Allied Powers, that is, the United States, China, England, and Russia, after the U.S. dropped nuclear bombs in Japan.

This week we celebrate Korea’s liberation as we commemorate the March 1st Movement of 1919. I have already talked a lot about freedom and liberation. Still, I want to ask you this question. Did the March 1st Movement contribute substantially to Korea’s liberation? It’s a rather subversive question, isn’t it? Let me rephrase it then. Did liberation come “because” Koreans initiated and participated in the March 1st Movement?

In terms of historical accuracy, no direct correlation or cause-effect relationship can be found between the March 1st Movement and Korea’s liberation. Even after the Movementin 1919, Korea continued to be ruled by colonial Japan for the next 26 years. Furthermore, if it had not been for the Allied Powers and the surrender of Imperial Japan, The Republic of Korea may never have existed or tasted freedom.

So, my question is, did the liberation movementhave any impact on the nation’s liberation? Koreans established a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built an independence army, and persistently carried out independence movements on diverse fronts. However, all these efforts did not “cause”the nation’s liberation or independence. Korea’s liberation was a by-product of the struggle among powerful nations.

Then was the March 1st Movement a failed movement? Hardly. We have never seen it as a failure. Without a doubt, it was a critical event in Korea’s history, a moment when all Koreans united as one to let the world know that Koreans are a sovereign and autonomous people. As such, the significance of the Movement is paramount. Yet, to be precise, it did not lead to Korea’s liberation. Undisputedly, liberation was a gift from God.

Some believe that the Korea’s capacity to revolutionizewas strengthened through the Movement, claiming that a prolonged and continuous movement ultimately led to Korea’s liberation. But let’s be more honest and serious. When we think about it more deeply, we will find that many of the most powerful currents in history came like a sheer from God, just like Korea’s liberation.

Take,for example, the Fall of the Berlin Wall in 1989. This historical event came about like a gift. It was a by-product of a miscommunication among government officials, not the result of a military coup or a movement. Strangely enough, many great events in historyhappened in such a way. Perhaps it is the way of God,as He leads the world and guides the path of history.

This goes for our lives, too. The most important events in life don’t happen because we plan it that way. We may make small plans, such as saving up for a house and so on. But unexpected things happen. And when they do, all our plans and designs become futile and meaningless. We feel God’s mysterious hand upon us. If you are a follower of Christ, you would have had many such experiences.

If this is the case, must we do nothing and just wait on God to do His will? Should Koreans have just waited until God gave them liberation as a gift? If so, was the March 1st Movement unnecessary?

Although these questions are initially about Korea’s liberation and the March 1st Movement, from a broader view, they are questions we face daily in our faith.

We believe that God’s willprevails. We live with the belief that His will shall be done in His time and way. We see this in the restoration of Israel. Through Jeremiah, God continuously prophesied to His people how He would restore and deliver them. According to that prophecy, God restored them and allowed them to return to their homeland after 70 years of captivity. He did this in His own way.

Then does this mean that any effort on the part of Israel to bring about their independence was meaningless? Should they have just done nothing and waited for God’s time? What about the fate of Korea? If God decides to take us into captivity, then so it is. If God decides to set us free, then so it is. If this is the case, what use was our fight for Korea’s freedom orour efforts to build up the nation?

This alsorings true in today’s Scripture, a song sung by Israel’s worshippers. This was their song:

“When the Lord brought back his exiles t Jerusalem, it was like a dream! […] Yes, the Lord has done amazing things for us! What joy!”(Psalm 126: 1,3)

The Lord did it! He did amazing things for us! The Israelites sang that all of their history was started and finished by God. Then what was their role? And what was ours?

In terms of Korea’s liberation, what is the significance of the March 1st Movement?

Let’s return to today’s passage. The worshipper is ascending to the Temple in Jerusalem as he remembers the day God gave his people freedom. Then what is thepresent situation of the worshipper? Verse 4 tells it to us:

“Turn again our captivity, O Jehovah, as the streams in the South.” (Psalm 126:4 ASV)

What does this mean? Although the psalmist remembers and sings of the freedom the Israelites now have thanks to God’s work of freedom, the current situation of his people does not seem that great. First, it appears he is thinking of his fellow Israelites who are still in captivity. Is the psalmist waiting for them and praying for their return? This may be one interpretation. But, considering the context of this psalm comprehensively, we may reach a different conclusion.

The expression “turn again our captivity” in the original Hebrew text is somewhat different. A more faithful translation of the original text would be “return our fate” or “restore our fortunes.” Many commentators agree that Psalm 126 should be interpreted as such.

Also a study of “the streams in the South” reveals that these streams are not actually rivers overflowing with water. They are not referring to gushing rivers such as the Jordan. They are, in fact, a symbol for rivers that have run dry—rivers and streams that usually have no water, rivers with only a dry riverbed. But when the monsoon comes, water comes gushing down from the hills and makes even these dry rivers overflow. This is what “the streams in the South” really mean. Therefore, the psalmist is praying to God to “restore our fortunes” or “turn again our captivity” just as a great flood makes a dried up river overflow.

The worshipper, who remembers the grace of God who delivered Israel in the past, is currently facing a dark reality. In his miserable state, he is praying, ‘Lord, You gave us liberation in the past. So come into my life now and change my fortune, for it is like a driedup river.’

The worshipper is singing with absolute faith that only God can change his fate.

However, there is a big reversal in his next words:

“Those who sow with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Those who go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them.”(Psalm 126:5-6)

The flow of the poem changes completely in verses 5-6. The psalmist, who first sang of the freedom and change of fatethat came from God, suddenly sings, “Those who sow with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Those who go out weeping will surely return with sheaves of joy.”

Israel’s liberation was clearly a gift from God. When they heard of their sudden unexpected freedom, it was like a dream. Liberation was not their own doing. That is why the psalmist is imploring God to change their fortunes just as He delivered them in the past. The Israelites and the psalmist knew that their fate depended on Him and Him alone.

Yet the psalmist does not just wait for his fate to be changed. He is determined to go out and sow in tears.

This is truly amazing. Yes, liberation is a gift from God. If our fortunes are changed, then that is God’s gift, too. Yet, our efforts, sweat, and sowing coexist in that complete grace of God.

Let’s return to Korea’s March 1st Movement. This is what we come to understand if we interpret Korea’s history from the lens of Psalm 126.

Korea’s liberation and independence were a sheer gift from God. They came by His grace alone. We know this and praise God for it. But, at the same time, this is our confession. God gave us this gift because we wept and sowed with tears. God gave us liberation as a present—because we yearned for liberation through the March 1st Movement, because our patriotic leaders strived to build a provisional government, led independence movements, and toiled endlessly.

This is our confession. There might not be a direct correlation between Korea’s liberation and the March 1st Movement. But there is God who knows everything and everything we did for our independence. Therefore, we confess that God, knowing our pain, suffering, and sweat, decided to work for us and give us liberation as a gift.

Sowing in tears is a proactive action that conveys our wishes and desires to God. We are letting God know about our heart and our desires. This is true worship.

We may not always get a rich harvest from every seed we sow. Our efforts and successes do not always match. We may fail even when we try hard. But the one who sows with tears before God is the one who depends on God who seeseverything. He continues to do what he does, believing that God will change his fortune. And God, seeing everything, gives His gift in a totally unexpected way.

“Those who sow with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Those who go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them.”(Psalm 126:5-6)

Therefore, brothers and sisters, remember this. Sowing with tears is the first step to receiving His miraculous gift. Shoots may not come up after you plant a seed. The first harvest may be poor. But the one who sows with tears without stopping will finally see God’s fate-changing miracle. God will pour down blessings surpassing any dream in amazing ways. He will change his fortune. This is the hope and message of Psalm 126.

Russia’s invasion of Ukraine on February 24 is being condemned around the world. Deadly combats have already broken out in many parts of Ukraine, resulting in numerous deaths and casualties. Although Russia’smilitary power is overwhelmingly strong, the Ukrainian forces are fighting back with fierce determination. A Ukrainian soldier, Vitaliy Volodymyrovysh Skakun, blew himself up on a bridgeto stop Russians tanks as he didn’t have enough time to escape. We are also saddened by news of thirteen Ukrainian border guards being killed by Russian forces in the Black Sea after refusing to surrender. When told to lay down their weapons, they reportedly shouted, “Go to hell, Russia!”

How these deaths and sacrifices will affect Ukraine’s freedom and sovereignty, I do not know. The country’s sovereignty and independence depend on God’s will. Its fate will be determined in the complex structure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historical dynamics. But God sees the people of Ukraine who are nowfighting for their freedom and independence, sacrificing their lives, and sowing with tears.

Ukraine most probably will not win this war against Russia. But God is entirely capable of restoring the fortunes of Ukraine anytime. When there are those who sow with tears, God will work for them. And God is able to do His work even without these seeds sown by men.

If our ancestors had not carried out the March 1st Movement and just looked to heaven, if they had not resisted by organizing an independence army, if they had not raised awareness by issuing“TheIndependent,” if they had not made efforts to regain their country by establish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God may not have given Korea liberation as a gift.

In this sense, the March 1st Movement was hardly a failed movement. To be frank, from the perspective of power,impact, or revolutionary capacity, it did not directly cause Korea’s liberation. But we believe that it impacted our liberation because God saw it. God makes those who sow with tears return with sheaves of joy. God will do it. This is our faith.

Therefore, today, we must continue to sow with tears for our country and our people. The presidential elections are drawing near. We must search for the best leader and sow with tears. Let’s sow seeds with tears out of our love for our country and our people. Even if the seed we just planted does not grow, God will give us an abundant harvest in the end.

Seeing the current crisis in Ukraine, we feel the pain and suffering of a small nation. Korea’s situation is no different from that of Ukraine. It isin a tight spot between many powerful nations. We need people who sow with tears for this country. We need them today. When we sow with tears, God will change our fate and give us a miraculous gift. He will make dry rivers overflow with water. True patriotism is to build up this nation with God and to make God’s grace overflow in this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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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 1 ~ 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3‧1절을 맞이하여 지난날 우리나라 해방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三角山이 이러나 뎌덩실 춤이라도 추고
漢江물이 뒤집혀 룡소슴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前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한울에 날르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바더 울리오리다
頭蓋骨은 깨어져 散散 조각이 나도
깃버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오리까

시인 심훈이 1930년에 발표한 시 ‘그날이 오면’의 일부입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드는 칼로 자신의 몸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 만들어서 들쳐 메고는 사람들 행렬에 앞장서고 싶다는 바로 그날, 그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그날은 ‘조선 독립과 해방의 날’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1936년에 요절하게 되면서 살아 있는 동안 그날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 자신이 직접 쓴 시 안에서 해방의 날을 충분히 경험하는 듯 보입니다. 비슷한 감동의 노래가 오늘 본문 속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오늘 본문인 시편 말씀은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예배자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해방의 날, 노예로부터 풀려나왔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쁨, 그날의 환호를 기억하며 주님 앞에 노래합니다. 유다의 사람들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후 70여 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방 나라 땅에서 땅을 차지하지 못한 채 종의 신분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던 중에, 작은 민족으로 전락하여 희망 없이 살아가던 중에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을 이어 그들을 다스리던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각자의 고향으로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땅이 없던 민족이 이제는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를 예배자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기쁨과 감동을 하나님께 노래합니다.
흥미롭게도 조선의 독립과 해방도 이스라엘이 경험한 방식과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던 일제 치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들어가지 않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역사로부터 해방을 선물 받았습니다. 미국이 원자 폭탄을 일본 본토에 투하하자 일본이 미, 영, 중, 소에 항복하게 되면서 해방이 저절로 주어진 셈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기억하며 함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삼일절을 기억하면서 조금은 어색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삼일 운동은 과연 대한민국의 해방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삼일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로 말한다면 삼일 운동과 해방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삼일 운동이 1919년에 일어났지만 이후 26년간 여전히 우리는 일제의 지배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연합군의 참여가 없었다면, 그리고 일본의 패전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해방이란 단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많은 선조들이 일하고 노력했던 독립운동이 해방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선조들이 상해 임시 정부도 세우고 독립군도 양성하였습니다. 독립운동도 끈질기게 전개하였습니다. 이 일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준 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해방은 강대국들의 싸움 속에서 부산물처럼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삼일 운동은 실패한 운동일까요? 우리는 결코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삼일 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의미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민족이 단합하여서 한마음으로 민족의 자치와 주권을 세계만방에 알린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의미는 분명히 큽니다. 삼일 운동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삼일 운동의 결과가 해방으로 이어졌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방은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삼일 운동을 통해 혁명의 영향이 강화되어서, 즉 지속적인 운동력이 결과적으로는 해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역사의 흐름은 그렇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와 같은 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1989년에 있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마찬가지입니다. 쿠데타라든지 군사적인 행동에 의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데모에 의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정부 관계자들의 소통 부족으로 또는 인터뷰 잘못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세상의 흐름은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박해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가고, 심지어는 기독교를 고민하게 된 사건 역시 그렇습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꿈꾸었던 일로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승인하고 국교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끄시는, 우리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의 큰일들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습니다. 열심히 적금도 모으고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합니다. 그 가운데서 작은 일들은 소소하게 진행되지요. 그런데 뜻밖의 일들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생각해 온 계획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일을 경험합니다.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경륜이 나를 붙잡고 가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아마도 신앙인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하셨으리라 짐작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경륜을 기대하면서 살기만 하면 되는지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우리에게 삼일 운동은 불필요한 운동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선물로 해방을 주시고자 하셨기에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오늘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직접적으로는 해방과 삼일 운동의 관계에 관한 것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가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지요. 하나님께서 정해진 때에 정해진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고백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으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칠십 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방식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때만 기다리면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나라의 운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포로로 잡혀갈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포로에서 회복될 수도 있으니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애쓰는 일이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편의 예배자 역시 해방의 날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노래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예배자가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주어가 여호와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셨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 모든 역사와 흐름이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됐고,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하나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해방의 관점에서 삼일 운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별히 믿는 우리들에게 그 의미는 무엇일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해방의 날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이 그들의 상황을 알려 줍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시 126:4)

이 말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과거, 해방의 사건을 기억하며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였던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해방의 시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회복의 축복을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노래를 부르면서 주님께 요청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시 126:4)

이들의 현실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언뜻 보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듯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표현은 달리 읽혀질 수 있습니다. ‘포로를 돌린다’라는 말로 옮겨진 히브리어 표현은 또 다른 의미로 ‘운명을 바꾼다’고 해석됩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번역에 동의하죠. 먼저 남방 시내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남방 시내란 물이 충분한 강이나 시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요단강이나 한강 같이 물이 차고 흘러내리는 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방 시내란 물길은 있는데 물이 보이지 않는 시내를 말합니다. 건천을 의미합니다. 평상시에는 바짝 말라 있어서 바닥이 드러나고 골짜기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기가 되면 산에서부터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이것이 바로 ‘남방 시내같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깐 “바짝 말라 있는 건천과 같은 곳에 물이 불어나서 흘려내려 오듯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라는 탄헌의 기도가 4절 말씀이겠습니다. 그렇게 예배자는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라고 탄헌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해방의 은혜를 기억하는 예배자는, 오늘 현실 속에 드리어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해방을 주신 주님, 그 주님께서 나의 척박하고 마른 건천과 같은 현장에 오셔서 운명을 바꾸어 주십시오. 바짝 말랐던 시내에 물이 넘쳐나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주십시오.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해 주셔야만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참으로 반전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갑자기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해방, 하나님께서 주시는 운명의 전환을 꿈꾸는 예배자가 갑자기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거둘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반드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기적을 베풀어 주셨듯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씨를 뿌리기 위해서 눈물로 나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해방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에 누워서 운명이 바뀌기만을 바라지도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사람처럼 씨를 뿌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고백이 매우 놀랍습니다.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것도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우리의 땀과 씨를 뿌리는 노력을 함께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배자의 고백처럼 우리도 믿음을 따라 눈물로 씨를 뿌리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삼일 운동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오늘 본문의 흐름으로 해석한다면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광복과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기에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해방을 열망하면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며 노력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해방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려서 우리 스스로 독립을 이루었다는 고백은 아닙니다. 모든 고통과 고난, 눈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기로 작정하시고 해방을 선물로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은 주님 앞에서 마음과 소원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시도록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가 씨를 뿌렸다고 해서 풍년을 항상 경험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과 성공은 때로는 불연속상에 놓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뿌렸다고 해서 반드시 거두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이 일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바로 그분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 일을 계속 합니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나를 위하여 일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전혀 예측하거나 계산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을 선물로 받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는 사실 말입니다. 씨를 뿌려도 싹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해는 망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두 해마저도 망칠 수 있습니다. 농사를 다 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해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운명을 바꾸어 주시는 기적을 마침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뿌린 씨앗을 넘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복을 더해 주십니다.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전하는 기대요, 메시지입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의 진격과 함께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에서 전투가 이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강력한 러시아군의 화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장의 곳곳에서 용맹한 투사들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군사들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탱크를 저지하고자 다리 폭파의 임무를 가지고 투입된 군인 청년 볼로디미로비치가 다리 위에서 스스로 자폭하여 탱크를 저지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러시아 군함으로부터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결사 항전을 고수하다 포격으로 전사한 열 세명의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의 이야기가 안타깝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들의 죽음이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겠지요. 세계사적인 정치 구도 속에서도 결정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이 이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투쟁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모습을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후에라도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혹여 그들이 뿌린 씨가 아니어도 다른 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선조들이 삼일 운동을 거행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우리 선조들이 독립군을 만들어 저항하지 아니하고 독립신문을 만들어 사상을 고취하지 아니하고 임시 정부를 만들어 나라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선물로 주셨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일 운동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이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는 관점에서는 솔직히 불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기에 연속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국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씨를 뿌려야 합니다.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고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분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위한 마음,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애국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내가 뿌린 씨가 그대로 자라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방식으로 풍성하게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사태를 보면서 약소민족의 설움과 고통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도 우크라이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강대국들의 틈에 끼어서 큰 세력이 충돌하는 경계에 우리나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고 마른 천에 물이 흘러내려오는 기적을 선물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이 민족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애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2월 27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 (시편 126:1-6)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7장, 336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시편 126:1-6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2월 6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심훈의 ‘그날이 오면’ 중에서 

  

 설교의 요약

    바벨론의 식민지배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이어 당시 중동을 지배하던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포로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돌려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땅이 없던 민족에서 이제 자신의 고향과 터전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본문말씀에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하셨다!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다!”

    삼일절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삼일운동은 과연 대한민국의 해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을까요? 우리가 삼일운동을 했기 때문에 해방이 온 것일까요? 사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역사에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이끄시는 방법이 아닐까요?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내가 계획하던 것들이 모두 무너졌지만, 결국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우리를 붙잡은 경우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경험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면 되는 것일까요? 결국 이스라엘이나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4절에서 시인은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라고 노래합니다. 남만시내는 평상시에는 마른 건천을 뜻합니다. 그것은 오늘의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해주셔야만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바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5절)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배자가 결코 그 자리에 누워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아프고 힘들지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신의 삶에 충성하기를 다짐합니다. 즉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우리의 땀과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삼일운동과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분명 광복과 해방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울며 씨를 뿌리듯이, 삼일운동을 통해서 또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하며 노력하고 해방을 열망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눈물로 시를 뿌리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소원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이며 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나누기

1. 내 삶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내가 울며 씨를 뿌리듯, 힘들게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마무리기도

    주님, 주님은 주님의 뜻을 이루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것이 때로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도, 때로 우리가 기대했던 방법이 아니더라도, 주님은 주님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주님의 그 역사 앞에서 우리가 더욱 겸손히 그리고 더욱 성실히,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충성되이 감당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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