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 속에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범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신년 예배에서 “네 겹의 기도”를 말씀드렸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이 함께 기도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네 겹의 기도’란 ‘탄원’, ‘언약 혹은 약속’, 그리고 ‘중보’와 ‘감사’ 차원의 네 겹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신앙인의 역사의식”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그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우리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특권이며 동시에 능력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지금까지 기도를 드리며 기도하는 법을 모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기도의 여러 예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중에 한 모델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요즘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또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기도일까요?
오늘 느헤미야 1장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에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하나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느 1:1)
이때는 유대인의 상황 역사적 상황 속에 어떤 지점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관대한 종교 정책을 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간 그들은 그곳에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지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전을 다시 세웁니다. 물론 아주 초라한 성전이지만, 이제 드디어 다시 성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80여 년쯤 지난 후에 학자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중심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제사를 회복하는 영적인 갱신에 힘썼습니다. 에스라가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사역한 지 13년쯤 지난 날입니다.
그즈음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의 제20년째 해입니다. 이미 수많은 유다 백성이 93여 년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향 땅에 돌아왔지만, 그러나 아직도 유대인으로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는 당시 수산궁에 있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수산궁은 아닥사스다 왕이 살고 있었던 페르시아의 궁전 3곳 중 한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장 11절 후반부입니다.
그 때에 나는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느 1:11b, 새번역)
개역개정은 그를 “왕의 술 관원”이라고 표현합니다. 왕의 술 관원이라는 표현은 그냥 술을 따르는 역할을 하는 어떤 신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왕의 신뢰를 받아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술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술에 독이 있는지 확인하며 왕의 측근에서 왕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로서 한마디로 왕을 보좌하는 일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 경호실 실장쯤 되는 직책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도 술 관원 이야기가 나오죠. 그만큼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술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고국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런 자리에까지 올라간 유대인이 느헤미야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왕의 측근에서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던 느헤미야였지만,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국인 예루살렘을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산궁에서 술 관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에게 고국 예루살렘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고국으로 돌아가서 정착한 지 오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예루살렘의 성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성문들이 모두 불타서 누구든지 마음껏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주변 민족에게 침략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 1:3)
이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는 나라의 백성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수일 동안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어떻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위해 그토록 마음이 아플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는 아마도 태어나서 한 번도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족인 유대인에게 그토록 큰 관심을 가질 이유도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미 그는 성공했고 페르시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습니다. 당시 가장 화려한 수산궁에서 왕과 함께 최고의 권력 옆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이 그에게 큰 슬픔이 되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죠. 어찌 보면 이것이 느헤미야의 위대한 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자신은 안전하고 고국의 문제는 얼마든지 외면할 수도 있지만,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동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라 사랑이 그의 마음 안에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탄원과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의 기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기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어떻게 자신의 조국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성벽이 무너져서 수많은 적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조국을 위해서 그는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우선 그는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5)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합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 첫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은혜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언약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느헤미야의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두 번째 근거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판단 아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회개의 기도, 탄원의 기도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 1:6~7)
조국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회개와 탄원의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네 겹의 기도 중 첫 번째로 말씀드린 그 차원입니다. 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백성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께 먼저 회개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이렇게 다른 기도를 드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다 불에 탔답니다. 속히 성벽이 재건되고 성문이 다시 복원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기도드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는 영적으로 깨닫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 훼손과 무너짐, 그리고 백성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는 상황을 단지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끊어진 관계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영적으로 진단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어려운 국면에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단지 대통령의 어떤 헤프닝, 하나의 정치적·사회적인 문제일까요? 혹은 국회의 어떤 상황 때문에 발생한 어떤 문제일까요? 느헤미야가 만일 오늘의 문제를 진단해 준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민족의 죄악을 먼저 지적하며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범죄하고 불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기도하기를 그쳤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하게 살아 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문제이고 우리의 죄악입니다. 이러한 회개 탄원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이 배제되지 않은 기도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는 진실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회개 탄원의 기도에서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과는 정말 먼 거리에 있는 수산궁에 살고 있던 느헤미야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백성들의 죄악을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집도 이 죄악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느 1:6b, 새번역)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기도입니다.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나 때문입니다’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내 가족이, 우리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얼마든지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죠.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는 수산궁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90여 년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잘못하고 있으니, 저들의 문제가 아닙니까?’라며 얼마든지 손가락질할 수 있겠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문제입니다. 국회의원, 국무위원, 국군의 문제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도에서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나의 잘못입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소서, 우리 백성을 용서하소서.” 이것이 느헤미야가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를 시키시어, 우리에게 내리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우리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느 1:7, 새번역)
이렇게 회개와 탄원의 기도를 드린 느헤미야는 주님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기도로 전환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9)
이제 느헤미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꼭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네 겹의 기도’의 차원에서 ‘언약·약속’의 차원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는 반드시 백성들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 약속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백성이 주님 섬기는 길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언약의 기도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기도는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과 약속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냥 ‘이 나라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물론 그 기도도 필요하지만, 어찌 보면 그 기도는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을 반드시 내가 돌아오게 하겠습니다’라는 결의가 함께 있습니다. ‘백성들을 주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꼭 지켜 주십시오’라는 탄원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나라를 위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형통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결연한 의지를 그의 기도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 1:11)
여러분, 이 기도가 언뜻 보면 이해가 안 되거나 그저 자연스러운 기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서 읽어 보면 이 기도가 무언가 이상해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허물어져 있는 예루살렘 성벽을 두고 하나님께 울고 금식하며 기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기도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됩니다. “주님, 그러므로 제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 주십시오.” 자기가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새한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오늘 주님의 종인 제가 부디 잘되게 해 주십시오. 이 사람이 저에게 자비를 베풀게 만들어 주십시오.” (느 1:11, 새한글)
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까요? 나라를 위한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던 그는 왜 자기 자신의 형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 기도에 매우 중요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기도를 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어떻게 해서든지 참여해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의무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발 제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백성과 고국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사용하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그 의미가 ‘저를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수산궁에 있는 자신이 더 큰 영화를 누리고 더 부유해지며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기복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의무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나에게 힘을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써 주십시오. 제가 잘 되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과 백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에 쓰임을 받게 해 주십시오.”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결하지만 간절합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을 내어놓는 기도입니다. 그 이후 2장을 보면 그는 왕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그가 기도했던 대로 형통해집니다. 그래서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갖은 박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일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갑니다. 그는 진정한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나중에 수산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다시 술 관원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가 잠시 다시 수산궁으로 돌아왔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흔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부요하고 명예로운 길을 내려놓고 백성을 위하여 헌신했던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저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 되어 저로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비전을 갖고 으니 저와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국회의원으로 있는 많은 분들, 혹은 정치 지도자나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 많은 분이 이 말씀 안에서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셨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이 자리에서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자리가 있죠. 사업하는 분은 사업하는 자리에서, 가르치는 분은 가르치는 자리에서, 그리고 정치하는 분은 정치하는 자리에서, 여러 자리에서 여러분의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이 자리에서 내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제가 사용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한 기도로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함께합시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우리 속에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자,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Nehemiah’s Prayer
Nehemiah 1:4-11
In the New Year’sservice I preached about “the four layers of prayer,” proposingto pray together in 2025. The four layers were petition, promise,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Last week the sermon’s title was “The Historical Awareness of Christians,” and I talked about the importance of prayer in our lives and history.
It is God who always guides history; andat its every inflection point there was prayer. Throughprayer we participate and become coworkers in God’s creation ministry. Prayer is the privilege and power of Christians.
Today I want to talk about how to pray.
Many of us will be determined to pray for our country and people, as we witness the many troubling political situations taking place in Korea today.
I too haveencouraged you to pray for this country. Then how can we pray for it? What must we pray about? How must we pray for our country?
Nehemiah’s prayer, recorded in today’s Scripture from Nehemiah 1, is a splendid textbook about how to pray for our country and people.
This is how the first chapter of Nehemiah begins:
“The words of Nehemiah son of Hakaliah: In the month of Kislev in the twentieth year, while I was in the citadel of Susa,”(Nehemiah 1:1 NIV)
It was the twentieth year of King Artaxerxes reign. When was it then in terms of Israel’s history?
One day, after the Israelites had been taken to Babylon as captives, around 538 BC when Cyrus king of Persia had conquered Babylon, the Israelites hear news of freedom as Cyrus declares a policy of religious toleration. They are allowed to return to their homeland. Thus many Jews returned to Jerusalem under the leadership ofJeshua and Zerubbabel. The first thing they did upon their return was to rebuild the temple.
Eighty years on, Ezra, a scholar and priest, gets the permission of Artaxerxes I of Persia and leads anothergroup of Jews to Jerusalem. After Erza returns, the Israelites strive to be spiritually revived by teaching the Law of Moses and restoring sacrifices.
Thirteen yearspass since Ezra’s return to Jerusalem. It is now the twentieth year of King Artaxerxes’ reign, astoday’s passage writes.
Although many Jews returned to their homeland, a considerable number did not andstill livedin Persia. One of them was Nehemiah. The Bible says he was in the citadel of Susa at the time. The citadel of Susa wastheroyal palace where King Artaxerxes lived.
What was Nehemiah doing there?
The last part of Nehemiah 1:11 tells us the answer:
“I was cupbearer to the king.”(Nehemiah 1: 11b NIV)
The NIV translation says that Nehemiah was “cupbearer to the king.”A cupbearer to the king was not just someone who poured the king wine, but a senior official deeply trusted by the king. He not only chose the king’s wine, but also ensured it was safe from poison; in short, he was the king’s close aide in charge of his security. Today a cupbearer would be the equivalent of the president’s chief of staff or chief of security.
The Jew in such a position was none other than Nehemiah. He was a successful man who had risen to the highest possible positionfor a Jew.
Although he was a man of power close to the king, it seems he never forget the fact he was a Jew. His love for his country and Jerusalem ran deep.
When he was cupbearer to the king in the citadel of Susa, he heard some alarming news about his homeland. Although considerable time had passed since the Jews had returned to Jerusalem and settled in their homes, the wall of Jerusalem had not been restored properly. As a result, they were attacked and harassedby the other peoples in the province:
“They said to me, ‘Those who survived the exile and are back in the province are in great trouble and disgrace. The wall of Jerusalem is broken down, and its gates have been burned with fire.’”(Nehemiah 1: 3)
Nehemiah’s heart breaks at this news, as he thinks about his fellow Israelites. He was so crushed that for some days he wept and fasted before God:
“When I heard these things, I sat down and wept. For some days I mourned and fasted and prayed before the God of heaven.”(Nehemiah 1:4 NIV)
Nehemiah weeps, fasts, and prays before God in sadness upon hearing devastating news about his country and Jerusalem.
How could he feel so much pain for Jerusalem? This is not so easy to understand. He may not even have visited Jerusalem once in his lifetime.
Moreover, there seems to be not much reason for him to be so concerned about his fellow Jews. He is already successful, assisting the king in the most extravagant place of the time, the royal palace in Susa. Being close to themostpowerful man in Persia, he too had power.
It is not easy to understand how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could sadden him so. Yet he had not forgotten that he was a Jew and God’s people. Furthermore, he had a love for his people and his country.
It was in this context that Nehemiah prayed his prayer in Nehemiah 1. This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prayers in the Old Testament.
Now, how did Nehemiah pray to God for his country, Judea, and Jerusalem? What did he pray about as he prayed for devasted Jerusalem and his country harassed and attacked by many enemies?
First, he prays:
“Then I said: ‘Lord, the God of heaven, the great and awesome God, who keeps his covenant of love with those who love him and keep his commandments,’”(Nehemiah 1:5)
First, he calls upon God. But this is how he describes the God he is praying to: God, who keeps his covenant with those who keep his commandments. God, who is compassionate to those who love Him.
This first section of Nehemiah’s prayerteaches us how to prayin order to receive the grace of God.
First, since God keeps His promises, we can receive His grace based on them, and second, as God is compassionate, we can receive His grace when we seek His compassion. The reason our prayers can be answered is because of these two facts.
Now, with this faith and understanding, Nehemiah first seeks the compassion of God. He starts to pray a prayer of repentance and petition:
“let your ear be attentive and your eyes open to hear the prayer your servant is praying before you day and night for your servants, the people of Israel. I confess the sins we Israelites, including myself and my father’s family, have committed against you. We have acted very wickedly toward you. We have not obeyed the commands, decrees and laws you gave your servant Moses.”(Nehemiah 1:6-7 NIV)
Nehemiah’s prayer for his country starts with repentance and petition. Why did he start to repent after hearing the news that the wall of Jerusalem was broken down and his people were in disgrace?
It isbecause he had a spiritual perception that its destruction and damage and the disgraceful state of his people were not just military, political, or social problems, but had to do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the Israelites.
Nehemiah doesn’t pray, “Lord, the wall of Jerusalem is broken. Please rebuild it.” Instead, he considers the sins of his people as he sees the broken wall. He sees how God is still judging His people.
Dear Church, how must we perceive the confusing and tumultuous situation in Korea today? Is it just a matter of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If Nehemiah were alive today and diagnosed our problem, he would most likely have told us to first repent of our people’s sins.
It is because the people of this land are sinning spiritually and have fallen into unrighteousness. The church has neglected to pray and failed to obey the word of God. It has failed to become the light of the world and has become the object of scorn.
We must note one important aspect of Nehemiah’s prayer of repentance and petition. Nehemiah, who is far from Jerusalem in the royal palace in Susa, confesses in his prayer that he and his father’s family are not an exception, as he prays for his country and repents of his people’s sins:
“I confess that we have sinned against you. Yes, even my own family and I have sinned!”(Nehemiah 1: 6b NLT)
He includes himself in this prayer of repentance. I am not an exception. It is not because of the sins of others. I have sinned. My family has sinned. We have sinned.
“We have sinned terribly by not obeying the commands, decrees, and regulations that you gave us through your servant Moses.”(Nehemiah 1:7 NLT)
After praying such a prayer of repentance and petition, Nehemiah shifts to a prayer that recalls the promises of God:
“Remember the instruction you gave your servant Moses, saying, ‘If you are unfaithful, I will scatter you among the nations, but if you return to me and obey my commands, then even if your exiled people are at the farthest horizon, I will gather them from there and bring them to the place I have chosen as a dwelling for my Name.’”(Nehemiah 1:8-9 NIV)
Now Nehemiah clings to God’s promises. He prays, “Lord, please do as you have promised.”
Among the four kinds of prayer, this is the prayer of promise. He prays holding on to God’s promise. He prays that God will keep His covenant.
He is asking God to keep His promises, to have compassion,and to accept the Israelites if they repent and return to Him.
This prayer holds Nehemiah’s firm determination that he will do whatever it takes to make his people return to God and obey His commands. Nehemiah has yet to do this. But he asks God not to forget this promise, as he reminds Him of it. He is earnestly asking God to forgive His people and to have compassion on them when they return to their rightful place of obedience.
After confessing the sins of his people and repenting, Nehemiah promises God that they will return to God. And he seeks God’s compassion. In this prayer, Nehemiah is making a tacit promise that he would do all it takes to make his people return to God.
When we pray to God for Korea, can we pray with this heart and determination too? Words may come easy, but, the truth is, prayingsuch a prayer is hardly so. When we pray for our country, we must have a firm will like Nehemiah that we will do all we can to make our people return to God. Such determination is required of us who pray.
Just praying, “Lord, bless Korea,” is not a sincere prayer for this nation. It is an empty prayer. Nehemiah is absolutely determined to make his people return to God. He prays that he will make them obey the law of God. So, Lord, remember Your promise to us. This is how he is praying.
His firm determination is seen the last part of theprayer. This is how he prays:
“‘Lord, let your ear be attentive to the prayer of this your servant and to the prayer of your servants who delight in revering your name. Give your servant success today by granting him favor in the presence of this man.’ I was cupbearer to the king.”(Nehemiah 1:11)
Dear Church, how does this prayer sound to you? Nehemiah started by praying for his country and his people. But this is how he ends his prayer: “Lord, give me success today. Make things go well for me. May the king have favor on me.”
The NLT translates this as follows:
“Please grant me success today by making the king favorable to me. Put it into his heart to be kind to me.”(Nehemiah 1:11 NLT)
Although his prayer first started for his country, it seems to end with a prayer for himself. What does this mean? Why does Nehemiah ask God to help him succeed?
As Nehemiah prays, he realizes that he must do something for the rebuilding of his country at all costs. That is why he prays like this. Let me succeed. Let me do something for my people, for my country. Use me.
Nehemiah didn’t pray about his own success, such as rising to a higher position in the king’s palace. He did not seek personal prosperity such as the well-being of his family through his success.
Lord, I want to be used for this work. I will do it. Use me. Let me succeed, so that I will be used for the work of rebuilding Jerusalem’s wall and making Your people return to You. This was his prayer.
It was a simple but earnest prayer. It was a prayer that surrendered himself.
In this prayer, we find the answer to how we must pray for Korea.
We must take the sins of our people to God, repent together,not blameothers, and hold ourselves responsible for the consequences of all sins. Lord, forgive the sins of ourpeople. I have sinned. Forgive me.
However, we mustn’t just seek forgiveness. “Lord, I will make this people return to You. When they do, keep Your promises to us. I will commit myself to rebuilding this country again. Please, give me success. So that I will be able to work for this country, my motherland, and my people.” This is how we should pray.
In chapter 2 we see that finally Nehemiah receives the favor of the king and is allowed to visit Jerusalem. Furthermore, despite all kinds of persecution and obstructions, he accomplishes the work of building the wall of Jerusalem.
Dear brothers and sisters, we learn from Nehemiah how we ought to pray for our country.
Lord, here I am. Send me! Heal this land. Deliver this people. Give me success to this end. I will do it.
May this prayer begin in us today. May this prayer for Korea begin in us.
Through the one who prays, God will do great things. God, who did great thingsthrough Nehemiah, will do amazing things through us too.
This country is in a difficult situation. Let us pray for this country. Let us become men and women who pray for our country.
느헤미야 1:4~9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의 기도 속에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범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신년 예배에서 “네 겹의 기도”를 말씀드렸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소망교회 모든 성도님이 함께 기도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네 겹의 기도’란 ‘탄원’, ‘언약 혹은 약속’, 그리고 ‘중보’와 ‘감사’ 차원의 네 겹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신앙인의 역사의식”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그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우리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특권이며 동시에 능력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지금까지 기도를 드리며 기도하는 법을 모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기도의 여러 예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중에 한 모델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요즘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또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기도일까요?
오늘 느헤미야 1장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에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하나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느 1:1)
이때는 유대인의 상황 역사적 상황 속에 어떤 지점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관대한 종교 정책을 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간 그들은 그곳에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지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전을 다시 세웁니다. 물론 아주 초라한 성전이지만, 이제 드디어 다시 성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80여 년쯤 지난 후에 학자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중심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제사를 회복하는 영적인 갱신에 힘썼습니다. 에스라가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사역한 지 13년쯤 지난 날입니다.
그즈음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의 제20년째 해입니다. 이미 수많은 유다 백성이 93여 년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향 땅에 돌아왔지만, 그러나 아직도 유대인으로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는 당시 수산궁에 있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수산궁은 아닥사스다 왕이 살고 있었던 페르시아의 궁전 3곳 중 한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장 11절 후반부입니다.
그 때에 나는 왕에게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느 1:11b, 새번역)
개역개정은 그를 “왕의 술 관원”이라고 표현합니다. 왕의 술 관원이라는 표현은 그냥 술을 따르는 역할을 하는 어떤 신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왕의 신뢰를 받아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술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술에 독이 있는지 확인하며 왕의 측근에서 왕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로서 한마디로 왕을 보좌하는 일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 경호실 실장쯤 되는 직책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도 술 관원 이야기가 나오죠. 그만큼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술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고국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런 자리에까지 올라간 유대인이 느헤미야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왕의 측근에서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던 느헤미야였지만,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국인 예루살렘을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산궁에서 술 관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에게 고국 예루살렘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고국으로 돌아가서 정착한 지 오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예루살렘의 성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성문들이 모두 불타서 누구든지 마음껏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주변 민족에게 침략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 1:3)
이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는 나라의 백성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수일 동안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였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어떻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위해 그토록 마음이 아플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는 아마도 태어나서 한 번도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족인 유대인에게 그토록 큰 관심을 가질 이유도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미 그는 성공했고 페르시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습니다. 당시 가장 화려한 수산궁에서 왕과 함께 최고의 권력 옆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이 그에게 큰 슬픔이 되었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죠. 어찌 보면 이것이 느헤미야의 위대한 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자신은 안전하고 고국의 문제는 얼마든지 외면할 수도 있지만,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유대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동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라 사랑이 그의 마음 안에 듬뿍 담겨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탄원과 회개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의 기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기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어떻게 자신의 조국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성벽이 무너져서 수많은 적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조국을 위해서 그는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우선 그는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5)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합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 첫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은혜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언약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느헤미야의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두 번째 근거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판단 아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회개의 기도, 탄원의 기도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 1:6~7)
조국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회개와 탄원의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네 겹의 기도 중 첫 번째로 말씀드린 그 차원입니다. 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백성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께 먼저 회개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이렇게 다른 기도를 드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다 불에 탔답니다. 속히 성벽이 재건되고 성문이 다시 복원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기도드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는 영적으로 깨닫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 훼손과 무너짐, 그리고 백성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는 상황을 단지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끊어진 관계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영적으로 진단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어려운 국면에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단지 대통령의 어떤 헤프닝, 하나의 정치적·사회적인 문제일까요? 혹은 국회의 어떤 상황 때문에 발생한 어떤 문제일까요? 느헤미야가 만일 오늘의 문제를 진단해 준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민족의 죄악을 먼저 지적하며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범죄하고 불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기도하기를 그쳤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하게 살아 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문제이고 우리의 죄악입니다. 이러한 회개 탄원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이 배제되지 않은 기도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는 진실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회개 탄원의 기도에서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과는 정말 먼 거리에 있는 수산궁에 살고 있던 느헤미야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백성들의 죄악을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집도 이 죄악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느 1:6b, 새번역)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기도입니다.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나 때문입니다’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내 가족이, 우리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얼마든지 그 문제를 피할 수 있죠.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는 수산궁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90여 년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잘못하고 있으니, 저들의 문제가 아닙니까?’라며 얼마든지 손가락질할 수 있겠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문제입니다. 국회의원, 국무위원, 국군의 문제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도에서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나의 잘못입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소서, 우리 백성을 용서하소서.” 이것이 느헤미야가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를 시키시어, 우리에게 내리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우리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느 1:7, 새번역)
이렇게 회개와 탄원의 기도를 드린 느헤미야는 주님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기도로 전환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9)
이제 느헤미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꼭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네 겹의 기도’의 차원에서 ‘언약·약속’의 차원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는 반드시 백성들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 약속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백성이 주님 섬기는 길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언약의 기도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기도는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과 약속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냥 ‘이 나라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물론 그 기도도 필요하지만, 어찌 보면 그 기도는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을 반드시 내가 돌아오게 하겠습니다’라는 결의가 함께 있습니다. ‘백성들을 주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꼭 지켜 주십시오’라는 탄원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나라를 위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형통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결연한 의지를 그의 기도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 1:11)
여러분, 이 기도가 언뜻 보면 이해가 안 되거나 그저 자연스러운 기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서 읽어 보면 이 기도가 무언가 이상해지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이 기도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허물어져 있는 예루살렘 성벽을 두고 하나님께 울고 금식하며 기도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기도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됩니다. “주님, 그러므로 제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 주십시오.” 자기가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로 마무리됩니다. 새한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오늘 주님의 종인 제가 부디 잘되게 해 주십시오. 이 사람이 저에게 자비를 베풀게 만들어 주십시오.” (느 1:11, 새한글)
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까요? 나라를 위한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던 그는 왜 자기 자신의 형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 기도에 매우 중요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기도를 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어떻게 해서든지 참여해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의무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발 제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백성과 고국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사용하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그 의미가 ‘저를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수산궁에 있는 자신이 더 큰 영화를 누리고 더 부유해지며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한 기복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의무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나에게 힘을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써 주십시오. 제가 잘 되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과 백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에 쓰임을 받게 해 주십시오.”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결하지만 간절합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을 내어놓는 기도입니다. 그 이후 2장을 보면 그는 왕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그가 기도했던 대로 형통해집니다. 그래서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갖은 박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일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갑니다. 그는 진정한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나중에 수산궁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다시 술 관원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가 잠시 다시 수산궁으로 돌아왔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흔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부요하고 명예로운 길을 내려놓고 백성을 위하여 헌신했던 사람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저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 되어 저로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비전을 갖고 으니 저와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국회의원으로 있는 많은 분들, 혹은 정치 지도자나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 많은 분이 이 말씀 안에서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셨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이 자리에서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자리가 있죠. 사업하는 분은 사업하는 자리에서, 가르치는 분은 가르치는 자리에서, 그리고 정치하는 분은 정치하는 자리에서, 여러 자리에서 여러분의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이 자리에서 내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제가 사용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한 기도로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함께합시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우리 속에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자,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025년 1월 12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느헤미야의 기도” (느1:4~9)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70장, 363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생각하기>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기도가 있었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역하는 특권과 능력을 얻습니다.
<설교의 요약>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 우리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배우겠습니다.
먼저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의 배경입니다. 바베론의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538년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의 관대한 종교정책 덕분에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리고 80여년이 지난 후 제사장이나 학자였던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1세의 허락을 받고 무리들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회복하는 등의 영적갱신에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13년 후가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수산궁에 남아 ‘왕의 술관원’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의 술관원은 왕의 신뢰를 받는 왕을 보좌하는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항상 자신의 민족과 예루살렘을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돌아갔던 유대인들이 아직도 성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동족에 대한 사랑과 나라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사랑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을 지킬 때, 긍휼을 구할 때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회개의 기도, 탄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무너짐, 백성들이 당하는 수치는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영적인 문제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혼란과 어지러운 현실 앞에 우리는 먼저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저지른 범죄와 불의, 기도하기를 잊어버린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어버린 교회의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악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해 달라고 구합니다. 네겹의 기도 중에서 언약의 차원입니다. 이 기도에는 백성을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주께 돌아오는 백성을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이 백성을 하나님께로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결의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돌아오게 할테니 주님께서 하셨던 그 약속 지켜 달라고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잘 되게 해 달라고, 왕이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고국을 위해 자신을 사용하여 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왕에게 은혜를 입고 고국으로 돌아와 갖은 박해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일을 해 내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이 나라를 고쳐 주옵소서. 이 일을 위해 나를 사용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 안에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자가 됩시다.
<나누기>
1. 우리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무너진 성벽과 같은 곳들을 위해,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2. 먼저 나의 죄악을 회개하고, 우리의 죄악을 돌이키길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우리나라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길 바랍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느헤미야를 통해 나라를 위한 기도의 모범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라를 위한 우리의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시고, 나라를 살리려는 우리의 결단이 날마다 이어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이 간절한 기도의 의미를 깨달으며 이 기도로 나라를 살리고, 조국 대한민국을 살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