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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첫째 주일 문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에서 대림절 첫째 주일로 지키는 특별한 날입니다. 성탄절 4주 전부터 이어지는 대림절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억하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와 관련해서 다루는 특별한 주제가 있다면 바로 ‘시간’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초를 켭니다. 첫째 주에는 하나, 둘째 주에는 둘, 셋째 주에는 셋, 넷째 주에는 네 개의 초에 불을 켜죠. 초들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흘러감을 깨닫곤 합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신 첫 번째 성탄절의 묵직했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세상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하나님의 예언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주어집니다. 더불어 예수님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할 그의 탄생 예언이 사가랴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엘리사벳 몸에는 세례요한이 잉태되고, 마리아의 몸에는 예수님이 잉태됩니다. 하루하루 예수님의 탄생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두 여인의 몸속에 잉태된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대림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확정되고 진행되어 오는 구속의 역사를 주목하는 특별한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초림의 사건이 그러하였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사건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가 다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일은 예정되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시간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과 똑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예견합니다. 죽음이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예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지혜를 얻는 것이 대림절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삶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내용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세 가지 비유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비유입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 비유는 시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열 처녀가 준비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랑이 언제 올 것인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그 시점에 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죠. 신랑이 늦게 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신부의 모습은 주인이 돌아오는 시기가 우리의 영역이 아님을 말씀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가 이어집니다. 이 비유에도 시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는 특별한 시점과 관련되어 있다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긴 시간과, 그 속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관련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무엇인가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합니다.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맡겨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비유이겠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돌아오기로 약속한 주인과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올바른 자세를 들려줍니다.>
자,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 번 설교를 통해서 들으셨을 것입니다. 교회 나오시지 않는 분들도 달란트 비유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기 전에 종들을 불러서 각각 재능대로 그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했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 둡니다. 주인이 한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국 종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결산을 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각각 두 배의 이윤을 남겼다고 보고하자 주인이 그들에게 칭찬합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 둔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와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러자 주인이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줄거리입니다.
이 비유를 읽을 때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저는 종종 ‘왜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다섯 달란트로 나누어 주셨을까?’ 의문을 가지곤 하였습니다. 차라리 똑같이 지급했더라면 충성된 종과 그렇지 못한 종의 비교가 훨씬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공정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임금 문제와 관련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달란트 비유를 바라본다면 비유가 가진 의도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달란트 비유 속에서 인간의 현실을 아주 정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소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와 같은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물론 서로 간의 나누어짐 없이 똑같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이 차별을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주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릅니다. 생긴 것도, 가진 소유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달란트 비유를 읽을 때, 금전의 크고 작음을 말하고 있기 보다는 달란트가 가진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달란트가 주어졌다는 말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성격, 다른 재능, 다른 모습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각자에게는 가장 알맞고 적합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빵을 참 잘 만들죠. 달란트입니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밀가루가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세공의 기술이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금과 은과 보석일 겁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에게는 피아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 비싸고 좋은 바이올린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화구가 필요하지 밀가루나 금과 같은 재료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각자에게 그에 맞는 재능에 따라서 가치 있는 것을 주십니다. 물량의 가치로 따진다면 다섯 달란트가 한 달란트보다 좋겠지만,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밀가루를 가지고 아주 맛있는 빵을 만들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금을 세공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사람보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달란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일반적으로 달란트는 무게 단위입니다. 그러니까 금 한 달란트라고 하면 금 34kg 달하는 무게의 가치를 말합니다. 상당히 큰 단위이죠. 당시 숙련된 노동자들이 하루 받는 임금을 한 데나리온으로 계산하곤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365일로 나누면 16년이 되는 기간 동안 매일 일당을 모아야 한 달란트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모아야 하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 연봉이 5,000만원이라 한다면 8억에 해당되는 돈이 될 것이고, 연봉이 1억원이라 한다면 16억원에 해당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사람들에게 한 달란트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종’입니다. 노예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일반인도 만질 수 없는 정도의 큰돈이 종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니 주인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에 달하는 돈을 주고 장사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도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을 법합니다. 종의 입장에서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을 받았으니 은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인은 지금 종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가 그러하니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종들 모두는 말할 수 없이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달란트 비유의 중심에는 누가 얼마나 더 받았고, 덜 받았는가가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사용했는지와 관련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입니다.
<세 종에게 동일하게 남겨진 것은 주인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종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달란트를 받고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성경은 두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즉시’ 가서 장사를 시작하였다고 말합니다. 시간의 의미를 담은 단어입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가서 묻어 둡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돈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자기만 알고 있는 땅에 재화를 묻곤 하였습니다. 이것이 돈을 보관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집에 그냥 놔두었다가는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는 당시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비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 큰 재화를 그만 땅에 묻어 두고 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옵니다. 그 시간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겁니다. 우리 삶도 그러합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삶이지만, 우리 각자에게 종말의 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란트의 양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게 받았지만, 모든 종들이 동일하게 받은 것이 있다면 ‘시간’입니다. 그들 모두는 주인이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똑같은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일한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주인이 동일하게 준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고자 합니다. 언뜻 보면 맡긴 달란트에 대한 결산 같지만, 사실은 동일한 시간 동안 맡긴 달란트를 어떻게 했는지 결산하고자 한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묻어 둔 달란트를 가지고 나와서 주인에게 내어놓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이 달란트를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다면 원금과 이자라도 받지 않았겠느냐?” 질책합니다. 여기서 주인이 말하는 이자란 무엇입니까? 재물이 시간 속에서 만들어 내는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자라는 말속에도 시간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주인은 이자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재화를 땅에 묻어 둠으로써 시간을 낭비했고,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엄청난 재화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했고, 기회를 날렸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무엇입니까?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가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놀랍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백일이 되면 바뀌어 있습니다. 1년이 되면 더 바뀌어 있습니다. 2살이 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아이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위력 아니겠습니까? 농구 게임할 때 마지막 남은 1,2초에 순간적으로 역전되는 일들을 종종 봅니다. 1초의 위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의 힘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시간의 엄청난 위력을 그만 다 놓쳐버리고 맙니다.
물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시간을 전부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후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썼을 겁니다.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고, 잠도 자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낸 많은 시간이 주인과의 관계에서는 크게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그가 보낸 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땅에 시간을, 기회를, 재화를 묻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가 주인을 향하여 말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그리고 다시 말하죠.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 종에게는 주인을 향한 강한 두려움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죠. 그는 주인을 두려운 존재로, 무서운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존재, 욕심을 따라 모든 것을 탐하고 이익을 얻기만을 바라는 존재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서 올 화를 면할 방법만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본전만이라도 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주인을 신뢰한 종에게는 결산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니다. 과연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왜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을까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재화의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길 수 있었을까요? 만약 주인이 원금 그대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면, 종들에게 맡기기보다 혼자 땅에 묻어 두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땅을 파고 다시 되찾았겠죠. 만일 큰 이익을 얻길 원한 주인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종에게 맡겼을까요? 아마도 더 큰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며 이득을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인은 큰 이득을 얻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재화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만약에 한 달란트를 가지고 도망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들은 평생 먹고 살 수 있었겠죠.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도망갔다면 어떠했을까요? 다섯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도망갔다면요? 그런데 주인은 종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재산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조그마한 돈을 맡겨보고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상 주인이 종들에게 맡겨 둔 것은 ‘신뢰’였습니다. 주인은 세 종 모두를 신뢰하였고, 그들이 평생 동안 벌어야 얻을 수 있는 한 달란트 이상의 재산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에게 보여 준 신뢰에 대하여 충성으로 보답해 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만약에 종들이 열심히 일하다가 손해를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을 책망하기보다는 도리어 위로하며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었을 때 주인의 모험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맡겨 주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그러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을 왜 맡기셨을까, 어떻게 이것을 감당하라고 주셨는가…’ 때로는 두렵고,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다시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시지.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셨기에 이 일을 맡겨 주셨을 거야. 감당해 내자. 충성되게 해 보자….’
제가 종종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장애인을 보내실 때에 누구에게 이 자녀를 맡기면 좋으실까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안심하게 하는 자, 충성되게 아이를 돌보아 줄 자를 찾으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맡으면 그 일을 맡은 대로 하나님께서 신뢰해 주신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뢰를 믿으며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 속 주인이 보여 준 신뢰입니다. 신뢰하는 주인에게 종이 해야 할 일은 주인을 향한 충성입니다. 감사함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이 해야 할 일이고, 주인이 종을 향하여 바라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그날,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주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기회, 내가 너에게 준 시간을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였느냐? 내가 너를 신뢰하며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오늘 함께 살펴본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도전하며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준비하는 귀한 대림절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The Attitude ofServants Entrusted With Talents
Matthew 25:14-30
Today is the first day of Advent. “Advent”originates from the Latin word that means “coming.” During this season, that is, the four weeks that lead up to Christmas,Christians reflect on their faith and lives bynot just celebrating the birth of Jesus, butby awaiting our Lord who will come again.
An important theme of Advent is time. Traditionally, churches havelit candles during this season to reflect on the meaning of time,since the passage of time is much like the burning down of candles.
In the season of Advent,Christiansmeditate deeply on theFirst Christmas, the Nativity. ThoughBaby Jesus had not been born, Joseph and Mary heard prophecies about this child through God; Zachriah also heard prophecies about his son, John, who would be born a little earlier than Baby Jesus to prepare His coming. Mary was already pregnant with our Lord, and Elisabeth also had John in her belly. The day of our Lord’s birth was drawing near. Our Savior had already enteredtime;in time, He would be born in the form of a helpless baby, as God incarnate.
As such, Advent focuses on God’s history, the history of deliverance, that has already been determined and is moving forward. This applies not only to the First Coming of our Lord but also to His Second Coming, that is, when Jesus will come again in judgement.
Themoment Jesus said He would come again as He rose to heaven, the time of His return was already set in history. We are now drawing closer and closer to that point in time; and finally that day will surely arrive. This is the very meaning of Advent.
It is the same as this: we know for a fact that once a person is born, he/she will surely die someday. After a man is born, his death is a certainty.This is the fate of all living things. Advent is a season for meditating on and gaining this wisdom.
Then what will happen at Jesus’ Second Coming? In terms of an individual’s death, what happens after onedies? The Bible clearly says that when Jesus comes again, He will judge our lives. He will settle accounts with us when He returns. If we apply this to our own deaths,it means that when we die, we will have to settle our accounts on how we lived.
Then how must we prepare for this end, the Second Coming of Jesus? Today’s Scripture gives us wisdom on this matter.
Matthew 25 contains three parables, all related to the return of Jesus.
First, there is the Parable of the Ten Virgins, which is about when our Lord will come, a matter of our interest. In other words, it is a lesson on the timing of our Lord’s return. It makes it clear that we cannot know when He will return.
Second, there is the Parable of the Talents. This story touches upon the length and weight of time. It reveals an important perspective on how we must live the time given to us until the Lord’s return.
Now, let’s delve into today’s passage with this perspective in mind.
This is how the story goes.
Before going on a trip to a foreign land, the master calls his servants and gives them talents,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he servants entrusted with five and two talents, respectively,go “at once” and put their money to work. But the servant entrusted with one talent buries his in the ground.
The master is long in coming. Butafter a long time he does return and settles accounts with his servants. The servants with five and two talents, respectively, report they have increased their talents twofold, and the master praises them, saying,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Meanwhile, the servant who buried his talent comes to the master with just one talent, and the master rebukes him, saying, “You wicked, lazy servant!”
This is the plot of the Parable of the Talents.
One thing bothers us whenever we read this story. Why did the master discriminate among his servants when he gave out the talents? Wouldn’t it have been easier to compare them and identify who was faithful if he had distributed the talents equally?
Putting ourselves in the shoes of the servant who received one talent, we can understand his discontent; and perhaps this bitterness explains why he was less motivated to work his money.
We live in an era concerned with fairness and equity. Young people, in particular, are extremely conscious of these issues. Wages are a special point of concern. Accordingly, some may argue that the master’s actions were discriminatory.
However such people misunderstand the intent of this parable—in three ways.
First, the Bible deals with the human reality in a candid manner.
In this world, diverse people live in diverse environments. There are poor people, rich people, introverts, extroverts, peopl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their mouth, and those born with plastic spoons. Today’s passage is not affirming or legitimizing discrimination, but teaching that it is man’s reality. This passage is in line with our reality. In this world, everyone looks different and has different abilities.
Second, though God gave each person a different personality, a different gift, and a unique appearance, He gave what is most suitable to that person. So even if everyone is different, everyone is unique and valuable in his/her own right.
This is our condition. Someone may be good at baking. This is his talent. What would he need then? Flour. Another person may be good at crafting metals. What would she need? Gold, silver, and jewels. A good pianist needs a piano, not a violin. A great painter needs painting tools, not gold or flour.
When we view talents from a monetary perspective, that is, one, two, or five talent(s), flour may appear to be the cheapest and gold the priciest. But when we consider that God gave each person what he/she needs, the value of individual talent will be equal. In other words, the master gave his servants what was most suitable for each of them.
Third, we may consider the value of the talents.
Generally, talent wasa unit for weight in biblical times. One talent was about 34 kilograms. In addition, talent, as a monetary unit, was the greatest unit of the time. In this passage talent refers to the latter. One talent of gold therefore was worth 34 kilograms of gold.
This was what the master gave to his servants. At the time a skilled worker’s daily wage was about one denarius. So, one talent,6,000 denarius, wasabout 16 years of wages, a truly enormous amount of money.
Let’s convert this to today’s monetary terms.To someone making 50 million won a year, one talent would mean 800 million won, and to someone with an annual income of 100 million, one talent would be 1.6 billion won. One talent was surely a massive amount of money to ancient people. Moreover, we must also consider that the “servants” in today’s passage were closer to “slaves.”
One talent was not the kind of money that a slave could ever have access to; and slaves doing business and making profit under the social structure of the time was unthinkable. The fact that the master gave one, two, and five talent(s) to his slaves and made them work the money wasunimaginable to the audience of Jesus’ parable. This is where parable’s purpose lies.
The master gave out massive amounts of money to his slaves—a sum unimaginable for common people, let alone slaves. This, therefore, can only be grace.
If one talent was worth so much, what more needs be said of two and five talents? Therefore, calling the master’s actions discriminatory and unfair is unreasonable. The slaves had already received extravagantly.
Consequently, the parable is not about whether one receives much or little. Rather, it is about how we must appreciate the value of what we have received and how we must work and take care of our talents beautifully.
But what was the response of the servants after being entrusted with their talent(s)?
The servant with five talents and the servant with two talents went “at once,” worked their money, and made a profit. On the contrary, the servant with one talent buried his in the ground. In ancient Palestine, it was customary to bury money in the ground as a way to guard it. The Parable of the Hidden Treasure derives from this context. The sole concern of the servant entrusted with one talent was to preserve the money safely.
After a long time, the master returned. First, we must be clear about this fact: the master will surely return. Men live in delusion, thinking that their life will last forever, but the end will come—surely and suddenly.
Come to think of it, while the servantsreceiveddifferent amounts of talents, they all received one thing equally—time. After the master’s departure, all three were given the same amount of time until his return. In other words, they all had the same opportunity.
Upon his return, the master settles accounts with them, judging how they used their time. At first glance, we may think he is settling accounts in terms of how much wealth they created, but a careful reading of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master and the servants willreveal that he was settling accounts with them in terms of how they used the time and opportunity given to them.
When the man with the one talent comes forth with the one talenthe had buried in the ground, the master says he would have at least gotten an interest if he had put it on deposit with the bankers. What isinterest? It is wealth created by the passage of time.
The master knew well that interest could be made during the time he was away. But the servant with the one talent merely wasted the time given to him and failed to even get interest. His greatest mistake was wasting time. He had blown his chance.
These days interests rates are high. So if you just leave your money at home, you would be losing money. It is only rational to keep your money in the bank and get an interest. The amount of interest depends on how long you keep your money in the bank. It is a gift of time, something you get even without working.
What is time? Time has an amazing power. When a baby is born, he grows exponentially in the first month. And how he grows in the first year too! How can a baby grow so fast? Amazing changes occur. This is the amazing power of time.
In the time given to them, some create great wealth, while others gain great fame and popularity. But the servant with one talent ended up wasting that time. He became an incompetent person, incapable of even putting his money in the bank for interest.
Why did he act in such a way? A clue may be found in his conversation with his master.
He says to his master, “I knew you are hard man, harvesting where you have not sown and gathering where you have not scattered seed.”
He thought his master was like all the other landowners of the time who were stingy, unfeeling, greedy, and exploitive. Consequently, he thought he would only survive by preserving the principal, which is why he buried the money.In a word, he was afraid of failing.
He misunderstood his master, thinking him to be a daunting, scary, terrible, unreasonable, and greedy man, which made him focus on averting his wrath. The servant’s sole concern was his own safety and wellbeing.
Let’s have a think. The master would of course have expected his servants to make a profit when he gave them talents. But he may not have expected a lot from them. He doesn’t appear all that interested in keeping his enormous wealth safe. If this was his concern, he would not have given so much money to his servants; he would have just buried it in the ground or deposited it in the bank for interest.
It is fascinating that he left this massive wealth—one, two, and five talent(s)—to his servants. What if they ran off with it? Yet he entrusted them with the talents, which means he trusted them.
Even though the three servants received different amounts of talents, they received one more thing equally other than time.
Trust. The master trusted all three servants, entrusting them with one talent or more, an amount that could only be earned by toiling away for decades. And the master wanted them to repay the trust he showed them by being faithful.
It was only fitting that the servants be faithful to their master, after receiving so much trust. But the one with one talent doubted the master and his trust and ended up being rebuked.
What do you think the master would have done if a servant lost some money as he tried to make a profit? Don’t you think he would have consoled, rather than rebuked him?
Even when the servant with the one talent had his master’s trust, he failed to respond in faithfulness. We must remember that God has entrusted us with a talent. And we must be grateful that He did not entrust it to someone else—but to me. With such a grateful heart, we must work hard. This is what the master wanted.
When we love God and work faithfully, trusting Him, whatever we do will glorify and please Him. It is not success or failure, or how much we have been entrusted with that matter. The important thing is that we work hard for our Lord out of our love and faithfulness toward Him. This is theproper response to the trust He has shown us.
When our time is up, our Lord will ask us: “What did you do with the time I gave you? What did you do with the talent that I trusted you with?”
마태복음 25: 14~30
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대림절 첫째 주일 문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에서 대림절 첫째 주일로 지키는 특별한 날입니다. 성탄절 4주 전부터 이어지는 대림절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억하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와 관련해서 다루는 특별한 주제가 있다면 바로 ‘시간’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초를 켭니다. 첫째 주에는 하나, 둘째 주에는 둘, 셋째 주에는 셋, 넷째 주에는 네 개의 초에 불을 켜죠. 초들이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흘러감을 깨닫곤 합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신 첫 번째 성탄절의 묵직했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세상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하나님의 예언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주어집니다. 더불어 예수님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할 그의 탄생 예언이 사가랴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엘리사벳 몸에는 세례요한이 잉태되고, 마리아의 몸에는 예수님이 잉태됩니다. 하루하루 예수님의 탄생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두 여인의 몸속에 잉태된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대림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확정되고 진행되어 오는 구속의 역사를 주목하는 특별한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초림의 사건이 그러하였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사건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가 다시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일은 예정되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시간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과 똑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예견합니다. 죽음이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예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지혜를 얻는 것이 대림절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삶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내용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세 가지 비유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비유입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 비유는 시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열 처녀가 준비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랑이 언제 올 것인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그 시점에 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죠. 신랑이 늦게 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신부의 모습은 주인이 돌아오는 시기가 우리의 영역이 아님을 말씀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가 이어집니다. 이 비유에도 시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는 특별한 시점과 관련되어 있다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긴 시간과, 그 속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관련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무엇인가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합니다.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맡겨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비유이겠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돌아오기로 약속한 주인과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올바른 자세를 들려줍니다.>
자,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 번 설교를 통해서 들으셨을 것입니다. 교회 나오시지 않는 분들도 달란트 비유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기 전에 종들을 불러서 각각 재능대로 그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했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 둡니다. 주인이 한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국 종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결산을 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각각 두 배의 이윤을 남겼다고 보고하자 주인이 그들에게 칭찬합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 둔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와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러자 주인이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줄거리입니다.
이 비유를 읽을 때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저는 종종 ‘왜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다섯 달란트로 나누어 주셨을까?’ 의문을 가지곤 하였습니다. 차라리 똑같이 지급했더라면 충성된 종과 그렇지 못한 종의 비교가 훨씬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공정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임금 문제와 관련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달란트 비유를 바라본다면 비유가 가진 의도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달란트 비유 속에서 인간의 현실을 아주 정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소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와 같은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물론 서로 간의 나누어짐 없이 똑같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이 차별을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주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릅니다. 생긴 것도, 가진 소유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달란트 비유를 읽을 때, 금전의 크고 작음을 말하고 있기 보다는 달란트가 가진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달란트가 주어졌다는 말로 이해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다른 성격, 다른 재능, 다른 모습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각자에게는 가장 알맞고 적합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빵을 참 잘 만들죠. 달란트입니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밀가루가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세공의 기술이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금과 은과 보석일 겁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에게는 피아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더 비싸고 좋은 바이올린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화구가 필요하지 밀가루나 금과 같은 재료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각자에게 그에 맞는 재능에 따라서 가치 있는 것을 주십니다. 물량의 가치로 따진다면 다섯 달란트가 한 달란트보다 좋겠지만,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밀가루를 가지고 아주 맛있는 빵을 만들어서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금을 세공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사람보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달란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일반적으로 달란트는 무게 단위입니다. 그러니까 금 한 달란트라고 하면 금 34kg 달하는 무게의 가치를 말합니다. 상당히 큰 단위이죠. 당시 숙련된 노동자들이 하루 받는 임금을 한 데나리온으로 계산하곤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365일로 나누면 16년이 되는 기간 동안 매일 일당을 모아야 한 달란트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모아야 하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우리 연봉이 5,000만원이라 한다면 8억에 해당되는 돈이 될 것이고, 연봉이 1억원이라 한다면 16억원에 해당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고대 사람들에게 한 달란트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종’입니다. 노예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일반인도 만질 수 없는 정도의 큰돈이 종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니 주인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에 달하는 돈을 주고 장사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도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을 법합니다. 종의 입장에서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을 받았으니 은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인은 지금 종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가 그러하니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종들 모두는 말할 수 없이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달란트 비유의 중심에는 누가 얼마나 더 받았고, 덜 받았는가가 아니라 받은 달란트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사용했는지와 관련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입니다.
<세 종에게 동일하게 남겨진 것은 주인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종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달란트를 받고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성경은 두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즉시’ 가서 장사를 시작하였다고 말합니다. 시간의 의미를 담은 단어입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가서 묻어 둡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돈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자기만 알고 있는 땅에 재화를 묻곤 하였습니다. 이것이 돈을 보관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집에 그냥 놔두었다가는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는 당시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비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 큰 재화를 그만 땅에 묻어 두고 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옵니다. 그 시간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겁니다. 우리 삶도 그러합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삶이지만, 우리 각자에게 종말의 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란트의 양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게 받았지만, 모든 종들이 동일하게 받은 것이 있다면 ‘시간’입니다. 그들 모두는 주인이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똑같은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일한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주인이 동일하게 준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고자 합니다. 언뜻 보면 맡긴 달란트에 대한 결산 같지만, 사실은 동일한 시간 동안 맡긴 달란트를 어떻게 했는지 결산하고자 한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묻어 둔 달란트를 가지고 나와서 주인에게 내어놓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이 달란트를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다면 원금과 이자라도 받지 않았겠느냐?” 질책합니다. 여기서 주인이 말하는 이자란 무엇입니까? 재물이 시간 속에서 만들어 내는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자라는 말속에도 시간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주인은 이자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재화를 땅에 묻어 둠으로써 시간을 낭비했고, 시간에 이룰 수 있는 엄청난 재화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했고, 기회를 날렸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무엇입니까?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가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놀랍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백일이 되면 바뀌어 있습니다. 1년이 되면 더 바뀌어 있습니다. 2살이 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아이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위력 아니겠습니까? 농구 게임할 때 마지막 남은 1,2초에 순간적으로 역전되는 일들을 종종 봅니다. 1초의 위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의 힘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시간의 엄청난 위력을 그만 다 놓쳐버리고 맙니다.
물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시간을 전부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후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썼을 겁니다.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고, 잠도 자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낸 많은 시간이 주인과의 관계에서는 크게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그가 보낸 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땅에 시간을, 기회를, 재화를 묻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가 주인을 향하여 말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그리고 다시 말하죠.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 종에게는 주인을 향한 강한 두려움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죠. 그는 주인을 두려운 존재로, 무서운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존재, 욕심을 따라 모든 것을 탐하고 이익을 얻기만을 바라는 존재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서 올 화를 면할 방법만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본전만이라도 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주인을 신뢰한 종에게는 결산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니다. 과연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왜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을까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재화의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길 수 있었을까요? 만약 주인이 원금 그대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다면, 종들에게 맡기기보다 혼자 땅에 묻어 두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땅을 파고 다시 되찾았겠죠. 만일 큰 이익을 얻길 원한 주인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종에게 맡겼을까요? 아마도 더 큰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며 이득을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인은 큰 이득을 얻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재화인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만약에 한 달란트를 가지고 도망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들은 평생 먹고 살 수 있었겠죠.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도망갔다면 어떠했을까요? 다섯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도망갔다면요? 그런데 주인은 종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재산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조그마한 돈을 맡겨보고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상 주인이 종들에게 맡겨 둔 것은 ‘신뢰’였습니다. 주인은 세 종 모두를 신뢰하였고, 그들이 평생 동안 벌어야 얻을 수 있는 한 달란트 이상의 재산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에게 보여 준 신뢰에 대하여 충성으로 보답해 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만약에 종들이 열심히 일하다가 손해를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을 책망하기보다는 도리어 위로하며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었을 때 주인의 모험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맡겨 주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그러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을 왜 맡기셨을까, 어떻게 이것을 감당하라고 주셨는가…’ 때로는 두렵고,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다시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시지.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셨기에 이 일을 맡겨 주셨을 거야. 감당해 내자. 충성되게 해 보자….’
제가 종종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장애인을 보내실 때에 누구에게 이 자녀를 맡기면 좋으실까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안심하게 하는 자, 충성되게 아이를 돌보아 줄 자를 찾으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맡으면 그 일을 맡은 대로 하나님께서 신뢰해 주신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뢰를 믿으며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 속 주인이 보여 준 신뢰입니다. 신뢰하는 주인에게 종이 해야 할 일은 주인을 향한 충성입니다. 감사함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이 해야 할 일이고, 주인이 종을 향하여 바라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그날,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주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기회, 내가 너에게 준 시간을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였느냐? 내가 너를 신뢰하며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오늘 함께 살펴본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도전하며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준비하는 귀한 대림절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3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달란트 받은 종의 자세” (마 25:14~30)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446장, 333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마 25:14~30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2월 3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은 기독교에서 대림절 첫째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오셨던 첫번째 성탄절의 묵직했던 시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대림절 기간에 초를 사용하고, 그 초에 불을 붙임으로써 타들어가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설교의 요약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타국에 가기 전, 종들을 불러서 각각의 재능대로 자신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를 했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인은 왜 종들에게 달란트를 차별해서 차등적으로 주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달란트는 큰 화폐의 단위라서 고대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금액, 대략 16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였습니다. 그래서 청중이 듣기에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의 의도는, 주인이 일반 사람들이 만질 수 없는 큰 액수의 돈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달란트 비유는 차별이라 말할 수 없고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들은 이미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액수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종들은 서로 다른 달란트를 받았지만, 똑같이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기회라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고,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한 종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종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안위와 안전이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종들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보인 신뢰에 대하여 종들이 충성으로 보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신뢰를 받은 종들은 마땅히 충성을 보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신뢰를 의심하였고 그만 주인에게 책망을 듣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끝나는 그 날, 주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그 시간동안 너는 무엇을 남겼느냐? 내가 너를 그토록 신뢰하며 맡긴 그것을 어는 어떻게 하였느냐? 이것을 깊이 있게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이 대림절의 시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 대림절 기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한 가지씩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2023년이라는 시간을 주시고,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달여 남은 올해를 바라보며, 주님께서 오신 대림절, 그 날에 주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계산할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행하게 하시고, 열심을 다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