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대림절에 해야 할 일
<대림절에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의 마음을 정돈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대림절(Adventus)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 시작하여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로 이어집니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로부터 새해가 시작됩니다. 대림절이란 주님의 임재,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지금은 희망을 품고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2024년도 이제 보름만 지나면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됩니다. 이때쯤이면 이제 성탄절 준비도 해야 하고, 올 한 해 동안 은혜를 베푼 분들을 찾아보고 인사도 해야 합니다. 또 송년회를 비롯해 여러 모임이 많을 때라 이래저래 분주한 때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요 삶의 목표인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찾아오시며 또 앞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이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우리 마음의 언덕을 낮추고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그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누가에 따르면 ‘광야의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은 그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야의 외침을 인용하였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눅 3:4~6)
세례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쉽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평탄하게 고르고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나지막한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가 비포장이라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곤 했는데, 어느 날 아스팔트길로 포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이 옆길로 지나간다고 며칠 사이에 포장한 것입니다. 학교를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지나가는 데도 혹시 비포장 학교 길이 보일까 봐 아스팔트 포장을 하였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도로공사를 하고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높아진 언덕은 낮추고, 낮아진 골은 메우라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혹시나 주님이 오셔서 좌정하기에 힘든 높아진 언덕이 있지는 않습니까? 특별히 욕심의 언덕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욕심,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 사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의 언덕은 주님과 나의 관계를 망치는 거침돌입니다. 이 대림절에 이러한 욕심의 언덕을 허물고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모든 죄와 죽음의 근원에는 지나친 욕심이 존재합니다. 자신에 대한 욕심이든, 타인에 대한 욕심이든, 물질에 대한 욕심이든, 지위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 무엇이든 주님이 오시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욕심의 언덕을 허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 반면에 우리 마음에 깊은 골짜기는 없습니까?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의 골짜기, 인간관계의 골짜기, 상처 나고 얼룩진 골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대림절 기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이렇게 푹 파인 골짜기들 때문에 주님이 내 마음 한복판에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 대림절에는 이런 마음의 골을 내가 먼저 나서서 메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은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용사”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렇게도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하고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대림절에 마음을 정돈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눅 3:8)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을 향해 “아브라함이 너희의 조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구원을 얻고 메시아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구원을 얻고 메시아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합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지 모태신앙이고, 신앙 연륜이 오래되었고, 집사고, 권사고, 장로고, 목사인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는 성탄절이 되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도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밖에 버려져 불살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오늘 본문 3장 9절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0)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눅 3:12)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4)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을 얻고 설교했을 때 무리가 “우리가 어찌할꼬?” 탄식하며 질문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났을 때, 엎드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제가 주님을 당당하게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무리를 향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눅 3:11)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나눔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분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가지지 못한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라고 맡겨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은 우리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우리의 의무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세리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눅 3:13)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과도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세금을 착취하고 착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눅 3:14)
권력과 힘을 이용해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축재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세리들에게 세리 직업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자신의 자리를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열매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몸을 바꾸는 것입니다. 몸의 변화, 다시 말하면 삶의 변화가 없는 머리만의 변화나 감정만의 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머리와 가슴과 함께 몸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빌자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참된 회개요 참된 예배입니다. 이 대림절 기간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왔는지를 돌아봅시다. 얼마나 내가 가진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봅시다. 혹시나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변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일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성탄의 주님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에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셋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 내의 식구들과만 이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 혹은 소외된 한 사람과 이 기쁨을 나눈다면 더욱 뜻깊은 대림절과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파견한 전령이요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3장 첫 부분을 보시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가로서 누가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눅 3:1)
3장 1절에는 다섯 명의 당시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디베료),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된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로마에 의해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된 헤롯, 헤롯의 동생 빌립, 그리고 루사니아가 나옵니다. 이들이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또한 2절에는 두 명의 종교 지도자가 나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눅 3:2a)
당시 종교 지도자인 유대의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등장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장인과 사위입니다.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전직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도 배후에서 여전히 대제사장보다 더 강한 막후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를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활동하던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누가가 이렇게 자세하게 역사적 배경을 기록한 것은 단지 역사가로서의 누가의 습관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의 역사 한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한복판에 떨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과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생활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사와 세속사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와 세상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나누어 별개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 즉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크리스마스의 좋은 소식은 교회에만 전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마땅합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곳은 어디입니까?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 3:2b)
빈 들입니다. 왕궁도 아니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도 아닙니다. 빈 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를 말합니다. 빈 들은 고요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빈 들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곳은 어디입니까? 그 뒤에 오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 3:3)
요한은 빈들에서 요단 강가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빈들에는 사람이 없고 요단 강가에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골방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은혜받은 변화산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마을로 내려가야 합니다. 교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맡은 자의 사명입니다.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복음이 복음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교회의 소유물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례 요한도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눅 3:6)
복음은 만국 중에, 온 세계에, 모든 족속에게, 모든 육체에게 선포되고 전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맡은 우리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번 대림절에는 아직도 기쁨의 좋은 소식을 모르는 사람 혹은 복음은 들었으나 실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주님은 나의 힘이요, 노래요, 구원이심’을 알리는 대림절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대림절에 마음을 정돈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며 우리의 첫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첫 마음, 첫사랑, 첫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했던 첫 마음, 그 아름다웠던 첫사랑, 그 열정적이었던 첫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감격과 눈물을 되찾는 시간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바빠서, 타성에 젖어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마저 무디어지고 메말라 버린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라고 책망했듯이 우리가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타성입니다. 행여나 우리가 바로 타성에 젖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닙니까? 아무런 감격도 감사도 눈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첫 마음을 회복합시다. 그 열정과 순수함과 감격을 되찾읍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첫 마음’이라는 제목을 가진 정채봉 시인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일 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 첫 마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께 드릴 예물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내는 어느 어린아이의 편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탄절은 조금 더 빨리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까지 착한 아이로 남아 있기가 힘들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시다. 마음의 언덕은 낮추고 골짜기는 메우고, 삶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 처음의 그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또 소망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What We Must Do During Advent
Luke3:7-14
We are now celebrating the season of Advent according to the church calendar. The church calendar starts with Advent which is followed by Christmas, Epiphany, Lent, Easter, and Pentecost. The New Year in the church calendar starts with Advent. Advent is the season during which Christians await the presence and coming of the Lord. Now is the time to hopefully wait for the grace of the Lord and to prepare for His coming.
In about a fortnight, the year 2024 will fade in history. At this time of year, we get ready for Christmas, visit people who have been gracious to us, and give them our greetings. We also busily attend various functions and year-end parties. But what do we prepare for Jesus, the Lord and goal of our lives? What must we prepare for our Lord who came to earth for us, who visits us even now, and who will come again? What must we do during Advent?
First, in this season of Advent we must make low every hill and raise up every valleyin our hearts. By doing so, we should prepare the way through which the Lord will come to us. According to Luke, John the Baptist,“the voice of the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quoted from Isaiah as he started his ministry: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Every valley shall be filled in,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crooked roads shall become straight, the rough ways smooth.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 (Luke 3:4-6) John the Baptist tells us to prepare for the Lord by making the rough ways smooth in our hearts so that He can come to us easily.
The high school that I went to sat atop a hill. The unpaved roads leading to it would all get muddy whenever it rained; but one day I saw them paved with asphalt. I later found out that this was done in just a few days because the president of Korea was set to visit the neighborhood. He was not even coming to our school, but they paved our roads just in case he would notice. If this is what we do for the president of a country, what must we do if the King of Kings should visit our hearts? The Bible doesn’t tell us to pave the roads as we wait. It tells us to make the rough places in our hearts smooth. It tells us to make low every high hill and fill up every valley in our hearts.
Are there any high hills in our hearts, making it hard for our Lord to come and reign? In particular, are there any hills of desire? Excessive desire for oneself, for material, or for people is a stumbling block that destroys our relationship with God. In this season of Advent, we ought to break down and make low these hills of desire. James 1:15 says,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At the heart of all sin and death, there is excessive desire. Whatever our desires may be—be it a desire for ourselves, for others, for material things, for status, for power, or for something else—if they prevent our Lord from entering our hearts, then those hills of desire must be destroyed.
On the other hand, are there any deep valleys in our hearts? Valleys of hatred, anger, relationships, or hurt? Are there things for which we must seek the forgiveness of God or of people, as we look back on ourselves during Advent? Do these low valleys in our hearts prevent the Lord from rulingour hearts? In this season, we should take the initiative and fill in these valleys. Proverbs 16:32 says,“Better a patient man than a warrior, a man who controls his temper than one who takes a city.” Proverbs 4:23 says,“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As we celebrate Advent, the season to wait expectantly for the coming of our Lord, may we make the rough places in our hearts smooth,controllingand protecting our hearts.
Second,we must use this time to reflect on our lives and to bear the fruits of repentance. Luke 3:8, the Scripture for today, says,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And do not begin to say to yourselves, ‘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John the Baptist spoke these words to the Jews who thought they would certainly be saved and were qualified to meet the Messiahjust because they were Abraham’s descendants. He declares to them that if they want to be saved and meet the Messiah without shame, they must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It is not enough that they come from Abraham’s bloodline. It is not enough that we belong to a church. It is not enough that we worship, pray, and tithe. It is not enough that we are “cradle Christians,” or have been coming to church for years, or are deacons, senior deaconesses, elders, or pastors. We must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that befits the name of a Christian, if we want to meet the Lord without shame this Christmas. Our Lord also said, “by their fruit you will recognize” the trees. He said, “every tree that does not bear good fruit is cut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
John the Baptist also says to the Jews in today’s text, Luke 3:9, ‘If you do not produce good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will be cut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 How did the people respond to this? Luke 3:10 says that the crowd asked, “What should we do then?” Then in 3:12 it says the tax collectors came to be baptized too, asking, “Teacher,what should we do?” In 3:14 soldiers ask, “What should we do?”“What should we do?”—this is a truly fundamental question. When Peter preached to the crowd with the power of God in Acts, the crowd also cried out, “What shall we do?” Today we too must ask this question: “What should we do to greet the Lord confidently?”
Loot at John the Baptist’s answer. In Luke 3:11 he says to the crowd, “The man with two tunics should share with him who has none, and the one who has food should do the same.” He tells the people to abandon their lives as they know it and to change their life attitude. Live a life of togetherness. The reason there are poor and hungry people in this world today is because we are sharing it all wrong. It is not because we don’t have enough; it is because things aren’t being allocated fairly. If we have much, it is because God by His grace has entrusted them to us to share with our needy neighbors. Sharing them is not an option or a preference; it is our God-given duty.
John the Baptist also says to the tax collectors:“Don’t collect any more than you are required to.” (Luke 3:13) He tells them not to misappropriate taxes by collecting excessively or more than required to fill their own greed. To the soldiers he says, “Don’t extort money and don’t accuse people falsely–be content with your pay.” (Luke 3:14) He tells them not to abuse the people or to extort money through their power and authority. In conclusion, he is telling the people to live the life God wants in each of their roles. He doesn’t tell the tax collectors to stop collecting taxes. Nor does he tell the soldiers to quit their jobs. He tells them to change their life attitude in their current life circumstances. In fact, he is commanding them to do what they were meant to do originally. This is the true fruit of repentance.
Repentance is not just to change your thoughts. Nor is it to merely change your feelings. It is to change your body. In other words, repentance that doesn’t accompany a change in your life and only sees a change in one’s mind or feelings is meaningless. True repentance is a change of mind, heart, and body. As Paul said, true repentance and true worship is to give our bodies as a livingand pleasingsacrifice to God. During Advent, let us look back on ourselves to see if we have done well in each of our places. Let us consider if we have been the Christian we ought to have been. We must reflect on whether we have been merely nominal and superficial Christians. Now is the time for us to show “the fruit in keepingwith repentance,” that is, the life change God wants in each of our life circumstances. When we can produce this, we will be able to greet the Lord confidently, without shame.
Third, in this season of Advent, we must tell thewhole world about thejoyful news of Jesus coming to earth in the flesh to save us. To make Advent and Christmas more meaningful, we must share this joyful news not just with our church family but also with others, including that one soul or that one outcast who does not know Christ. We are messengers of God who have been sent to the world to spread this news of great joy.
The first part of Luke 3 records in detail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time. This reflects Luke’s qualities as a historian. In Luke 3:1 the names of five political leaders of the time are mentioned. (“In the fifteenth year of the reign of Tiberius Caesar–when Pontius Pilate was governor of Judea, Herod tetrarch of Galilee, his brother Philip tetrarch of Iturea and Traconitis, and Lysanias tetrarch of Abilene–”) They are Tiberius Caesar, Pontius Pilate the governor of Judea, Herod tetrarch of Galilee, his brother Philip, and Lysanias. They were leading political figures of the time. In Luke 3:2 two Jewish religious leaders, high priests Annas and Caiaphas, are mentioned as well. (“during the high priesthood of Annas and Caiaphas,”) The two were father-in-law and son-in-law. Although Caiaphas was the incumbent high priest, the names of both Annas and Caiaphas areintroduced since Annas wielded greater power behind-the-scenes. It was at this time when the word of God came to John the Baptist.
Luke records the historical context in detail not just because of his meticulous habit as a historian, but because he wants to make it clear that God’s providence is at work even in secular history. The Gospel was God’s “love bomb” that fell not just on the church, but on the world. Just as our faith lives cannot be separated from our work or from our family, church history and world history cannot be either. A dichotomous thinking that separates the world and the church is wrong. Everything is within the will and providence of God. Therefore, it would be wrong for the Gospel, the Good News that Jesus Christ the Son of God came to earth in the flesh to save mankind, to be preached just within the church. This joyful news must be declared to the whole world.
According to Luke, where did John the Baptist receive the word of God? Luke 3:2 says, “the word of God came to John son of Zechariah in the desert.” It came to him in the desert. Not in a palace, or in a city with blazing neon signs. The desert is a desolate place, a wilderness, where no one lives and in which no one takes interest. It is a quiet place where you can meet God. Jesus also went to a solitary place at dawn when it was still dark to talk with God. Our “desert” where we can meet God and hear His word is the church.
Then where did John preach the word of God? Luke 3:3 says, “He went into all the country around the Jordan,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He preached around the Jordan. John went from the desert to the Jordan—because there are no people in the desert while there are manynear the Jordan. People with the Gospel must not stay in their room. They must go out to thehustling and bustling markets. They must notremain on top of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here theyreceived grace. They must come down to the village. They must not remain in church. They must go into the world where the people are to share the joyful news that Jesus came to earth for us. This is the calling of those who have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When they go out to the world, the Gospel finally becomes the Good News. The Gospel is not thepossession or an ornament of the church; it is God’s joyful news for the world.
The Gospel must not remain in the church. In Luke 3:6 John the Baptist quoted Isaiah’s prophecy: “And all mankind will see God’s salvation.”The Gospel must be declared and spread to all nations, to all the world, and to all peoples. This is our mission and the church’smission. May this Advent be a time for us to declare that Jesus is our strength, song, and salvation to peoplewho haven’t heard the Good News yet and to those who have heard it but have fallen away due to disappointment.
Lastly, during this Advent we must restore our initial heart, our first love, and our first commitment. Let us rekindle that pure heart, that beautiful first love, and that passionate commitment we had when we first started following Christ. Haven’t our hearts become indifferent and dry as faith became ahabit? Have we by any chance lost that first love for Christ, like the church in Ephesus that was rebuked by Jesus, “Yet I hold this against you: You have forsaken your first love”? The greatest enemy to our faith is religious habit. Have we by any chance become Christians who follow a habit? Have we become people who just drift along with no passion, no thanksgiving, and no tears? Let us recover our first love now. Let us rekindle that passion and purity. By doing so, we must become Christians who prepare the way of the coming of the Lord. Let me read you “First Heart,” a poem by Jeong Chae-Bong:
“First Heart”
If we live the year with the first heart we had when we washedour faces with cold water on New Year’s morning,
If we study with the first heart we had on our first day of school when we had our new books andschedule in front of us,
If the trembling between two lovers when they first fell in love continues,
If we work with the heart we had when we tied our shoelaces on the first day of work,
If we care for our bodies with the gratitude we had as we breathed in the fresh air after a recovery,
If we always greet our customers with that first heart we had when we first started our business,
If we go to church with that humble heart we had when we were first baptized,
If the harmony of that day of reconciliation when we said to each other,“We are one,” does not end,
If the excitement of the day when we first got tickets for a trip does not disappear,
We will always have a new heart,
Our hearts will be renewed and become deeper and wider every day like a river flowing toward the ocean.
(Jeong, “First Heart”)
During Advent, as we waitexpectantly for the coming of the Lord,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prepare our hearts as an offering to our Lord. This is a letter that a child is to have written to God: “Dear God, I think Christmas should come faster. Because it’s just too hard being good till then.” Let’swait for the coming of our Lord with such a heart. May we at Somang Church make low every hill and fill in every valley in our hearts, produce fruit in keeping with repentance, preach the Good News to all the world, and wait for the Lord with that first, trembling heart.
누가복음 3:7~14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대림절에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의 마음을 정돈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대림절(Adventus)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 시작하여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로 이어집니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로부터 새해가 시작됩니다. 대림절이란 주님의 임재,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지금은 희망을 품고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2024년도 이제 보름만 지나면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됩니다. 이때쯤이면 이제 성탄절 준비도 해야 하고, 올 한 해 동안 은혜를 베푼 분들을 찾아보고 인사도 해야 합니다. 또 송년회를 비롯해 여러 모임이 많을 때라 이래저래 분주한 때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요 삶의 목표인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찾아오시며 또 앞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이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우리 마음의 언덕을 낮추고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그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누가에 따르면 ‘광야의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은 그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야의 외침을 인용하였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눅 3:4~6)
세례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쉽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평탄하게 고르고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나지막한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가 비포장이라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곤 했는데, 어느 날 아스팔트길로 포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이 옆길로 지나간다고 며칠 사이에 포장한 것입니다. 학교를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지나가는 데도 혹시 비포장 학교 길이 보일까 봐 아스팔트 포장을 하였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도로공사를 하고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의 높아진 언덕은 낮추고, 낮아진 골은 메우라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혹시나 주님이 오셔서 좌정하기에 힘든 높아진 언덕이 있지는 않습니까? 특별히 욕심의 언덕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욕심,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 사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의 언덕은 주님과 나의 관계를 망치는 거침돌입니다. 이 대림절에 이러한 욕심의 언덕을 허물고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모든 죄와 죽음의 근원에는 지나친 욕심이 존재합니다. 자신에 대한 욕심이든, 타인에 대한 욕심이든, 물질에 대한 욕심이든, 지위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 무엇이든 주님이 오시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욕심의 언덕을 허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 반면에 우리 마음에 깊은 골짜기는 없습니까?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의 골짜기, 인간관계의 골짜기, 상처 나고 얼룩진 골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대림절 기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이렇게 푹 파인 골짜기들 때문에 주님이 내 마음 한복판에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 대림절에는 이런 마음의 골을 내가 먼저 나서서 메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은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짜 용사”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렇게도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하고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대림절에 마음을 정돈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눅 3:8)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을 향해 “아브라함이 너희의 조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구원을 얻고 메시아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구원을 얻고 메시아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합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지 모태신앙이고, 신앙 연륜이 오래되었고, 집사고, 권사고, 장로고, 목사인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는 성탄절이 되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도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밖에 버려져 불살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오늘 본문 3장 9절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0)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눅 3:12)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4)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을 얻고 설교했을 때 무리가 “우리가 어찌할꼬?” 탄식하며 질문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났을 때, 엎드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제가 주님을 당당하게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무리를 향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눅 3:11)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나눔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분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가지지 못한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라고 맡겨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은 우리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우리의 의무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세리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눅 3:13)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과도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세금을 착취하고 착복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눅 3:14)
권력과 힘을 이용해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축재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세리들에게 세리 직업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자신의 자리를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열매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몸을 바꾸는 것입니다. 몸의 변화, 다시 말하면 삶의 변화가 없는 머리만의 변화나 감정만의 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머리와 가슴과 함께 몸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빌자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참된 회개요 참된 예배입니다. 이 대림절 기간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왔는지를 돌아봅시다. 얼마나 내가 가진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봅시다. 혹시나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변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일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성탄의 주님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에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셋째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 내의 식구들과만 이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 혹은 소외된 한 사람과 이 기쁨을 나눈다면 더욱 뜻깊은 대림절과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파견한 전령이요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3장 첫 부분을 보시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가로서 누가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눅 3:1)
3장 1절에는 다섯 명의 당시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디베료),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된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로마에 의해 유대의 분봉왕으로 임명된 헤롯, 헤롯의 동생 빌립, 그리고 루사니아가 나옵니다. 이들이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또한 2절에는 두 명의 종교 지도자가 나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눅 3:2a)
당시 종교 지도자인 유대의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등장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장인과 사위입니다.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전직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도 배후에서 여전히 대제사장보다 더 강한 막후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를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활동하던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누가가 이렇게 자세하게 역사적 배경을 기록한 것은 단지 역사가로서의 누가의 습관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의 역사 한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한복판에 떨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과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생활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사와 세속사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와 세상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나누어 별개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 즉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크리스마스의 좋은 소식은 교회에만 전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마땅합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곳은 어디입니까?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 3:2b)
빈 들입니다. 왕궁도 아니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도 아닙니다. 빈 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를 말합니다. 빈 들은 고요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빈 들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곳은 어디입니까? 그 뒤에 오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 3:3)
요한은 빈들에서 요단 강가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빈들에는 사람이 없고 요단 강가에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골방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은혜받은 변화산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마을로 내려가야 합니다. 교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맡은 자의 사명입니다.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복음이 복음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교회의 소유물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례 요한도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눅 3:6)
복음은 만국 중에, 온 세계에, 모든 족속에게, 모든 육체에게 선포되고 전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맡은 우리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번 대림절에는 아직도 기쁨의 좋은 소식을 모르는 사람 혹은 복음은 들었으나 실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주님은 나의 힘이요, 노래요, 구원이심’을 알리는 대림절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대림절에 마음을 정돈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며 우리의 첫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대림절에 우리는 첫 마음, 첫사랑, 첫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했던 첫 마음, 그 아름다웠던 첫사랑, 그 열정적이었던 첫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감격과 눈물을 되찾는 시간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바빠서, 타성에 젖어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마저 무디어지고 메말라 버린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라고 책망했듯이 우리가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타성입니다. 행여나 우리가 바로 타성에 젖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닙니까? 아무런 감격도 감사도 눈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첫 마음을 회복합시다. 그 열정과 순수함과 감격을 되찾읍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첫 마음’이라는 제목을 가진 정채봉 시인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일 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정채봉, 첫 마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께 드릴 예물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내는 어느 어린아이의 편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탄절은 조금 더 빨리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까지 착한 아이로 남아 있기가 힘들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시다. 마음의 언덕은 낮추고 골짜기는 메우고, 삶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 처음의 그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또 소망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2024년 12월 15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대림절에 해야 할 일” (눅 3장 7~14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04장, 8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누가복음 3장 7~14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2월 1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대림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로부터 시작하여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로 이어집니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로부터 새해가 시작인 셈인데,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한 번 묵상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대림절이란 주님의 임재를, 그리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 기간은 희망을 품고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요, 삶의 목표인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우리 마음의 언덕을 낮추고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그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쉽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평탄하게 고르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는 성탄절이 되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례요한은 세리들에게 직업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지금 그 자리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교회 내의 식구들과만 이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 혹은 소외된 한 사람과 이 기쁨을 나눈다면 더욱 뜻깊은 대림절과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파견한 전령이요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우리는 첫 마음, 첫 사랑, 첫 헌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순수했던 첫 마음, 그 아름다웠던 첫 사랑, 그 열정적이었던 첫 헌신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감격과 눈물을 되찾는 시간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우리의 첫 마음을 회복하여, 그 열정과 순수함과 감격을 되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나누기
- 새해를 맞이하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교회의 절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대림절에 우리가 영적으로 새롭게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이하는 성탄절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한 가지씩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아픕니다. 전쟁과 다툼과 분열의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나님, 기도하오니 이 땅에 평화가 깃들게 하여 주옵소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소란한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