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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겨 놓으라

누가복음 3:3~6

김경진 목사

2024.12.08

<사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일으킵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마태복음뿐만 아니라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사복음서 모두에서 다루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사람과 예수님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과 예언에 따라서 이루어진 사실임을 말씀합니다. 이사야 40장을 인용하면서 누가복음 3장 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눅 3:3~4, 새번역)

 

누가복음을 비롯하여 모든 복음서가 전하는 내용은 동일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 요한,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탄생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례 요한의 중요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이토록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학자마다 나름대로 학문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당시 유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과의 연계성을 말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위치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의 운동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예수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런 추측들은 학문적인 견해에 불과하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세례 요한은 한 선지자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대림절에 종종 교독문으로 읽는 이사야 본문에 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사 62:10, 새번역)

 

이 말씀 역시 이사야서 40장 말씀과 더불어 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과 관련된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 예언의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 돌을 제거하고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예언서의 말씀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과 신약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읽어 가면 때로 이런 질문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와야 한다고 하신 것인가?’ ‘왜 주님의 길이 예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평정하시고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셨을 텐데, 왜 앞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이 한 것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베푼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의 사역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불가능했던 것인지 질문이 듭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시고 모자람이 없으신데, 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앞서 필요로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원의 사역에 일부러 우리를 동참시켜 참여자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야기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두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베다니로 돌아가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무덤에 매장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덤 앞으로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앞서 드린 내용과 비슷한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앞서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을 하셔야만 하셨을지 질문이 생기죠. 능력이 많으신 주님이시니 말씀만으로 돌도 충분히 치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돌을 치우라는 말씀이 없어도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면 돌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나사로가 나올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돌을 치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은 살릴 수 있지만, 돌을 옮기는 능력은 없으셨던 걸까요?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새벽에 돌문이 스스로 열렸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돌들을 치우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돌들을 옮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며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 내십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나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돌을 옮기는 것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에서 보이신 첫 번째 이적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 종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라고 명령하시고,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생각해 보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까요? 무에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반드시 물이 있어야만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방법으로든지 포도주를 공급하실 수 있었겠죠.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일의 결말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 2:9)

 

한마디로 말하면 “하인들은 예수님의 기적 사건에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돌을 스스로 치울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포도주를 무로부터 창조하실 수 있지만 하인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없이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사역을 충분히, 차질 없이 감당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세례 요한을 부르셨고, 세례 요한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대림절을 보낼 때마다 이사야의 말씀을 다시 꺼내서 읽곤 합니다. 세례 요한을 향하여 예언된 말씀, “대로를 평탄하게 하여라”, “돌들을 제거하여라”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보다 앞서 길을 예비한 요한의 길을 돌아보며, 그에게 주어진 말씀을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죠.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3)

 

과거 세례 요한을 향한 말씀을 지금 나를 향한 말씀으로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 길을 예비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인 우리에게 “너희는 그날을 기다리며 길을 예비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돌을 제거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거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길을 닦지 않아도 길을 평탄케 하시고 우리에게 오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 명령을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명령을 하실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교훈과 신앙생활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주님의 명령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까지 모두 해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라고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훌륭한 믿음으로 여기며 흠모합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 태도는 게으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불경의 죄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시험지의 답을 환상으로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위대한 믿음으로 과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낭만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의료 행위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죠. 암에 걸리거나 여러 가지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진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도리어 광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료의 정보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이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돌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인가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모습이자 믿음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못하죠. 걷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기어다니지도 못합니다. 음식을 스스로 찾아 먹을 수도 없지요. 처음에는 그저 입을 벌렸다가 입을 닫는 것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 아이의 입을 열어 젖과 우유를 먹여 줍니다. 그리고 조금씩 먹을 것을 늘리며 채워 줍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만약 똑같은 상태로 1년, 2년, 3년, 4년을 버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움직이려고도 걸으려고도 하지 않고, 입만 벌리며 부모를 의지하는 데에만 그친다면, 과연 그것이 어머니에게 기쁜 일이겠습니까? 오히려 어머니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좋다’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신앙이 좋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께 불경을 저지르는 일일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끝까지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죠. 이것 역시 하나님께 근심거리입니다. 어린아이가 끝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다 해내려고 한다면, 그 또한 부모님의 큰 걱정이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 신뢰가 없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도움을 받지 않겠다”라는 것도 불신앙이고,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움만 받겠다”라는 것도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길을 평탄케 하라”라는 명령은 주님의 명령으로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너의 손이 할 수 있는 것, 너의 지혜로 할 수 있는 것, 네가 인간으로서 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라는 주님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일은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명령에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역하기를 원하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인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할 수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터와 깔뱅이 없었다면 이 땅에 개신교회는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사, 목사가 없었으면 주님 홀로 복음 전파가 불가능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부족한 우리를 동참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넓은 아량과 초청입니다. 또한 구원의 기쁨과 영광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돌을 옮겨놓으라”, “길을 평탄케 하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2024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대림절 기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여라. 길을 닦고 돌을 옮겨 놓아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라는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저는 여러분의 목회자로서 새해를 바라보면서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사역에 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돌을 옮겨놓으라.” 이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찬양대를 채우고 보다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돌을 옮겨 놓는 일입니다. 이미 일천여 명의 교사들이 교회 학교에서 봉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사는 필요하고 부족합니다. 어린 영혼, 한 영혼을 살리는 일들이 돌을 옮겨 놓는 일입니다.

남선교회와 여전도회의 사역이 있습니다. 권사로서 예배를 돕고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며 섬기는 일이 있습니다. 집사로서 경조부, 사랑 나눔, 사회봉사, 차량 봉사, 찬양 예배 봉사, 재정 봉사, 의료 봉사, 새 가족 봉사, 재직 교육, 장학, 군·경찰·교정, 문화, 그리고 북방선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을 일들이 많습니다. 길을 평탄케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각 지구의 교구장과 구역장의 역할도 매우 큽니다. 저는 여러분이 조금 더 사역의 자리로 나오시기를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며, 이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들었던 베다니의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돌을 옮겨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니.’ 아마 이런 마음으로 돌을 옮기지 않았겠습니까? 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저 몇 명이 들어 옮기면 될 만한 아주 작은 일을 함께하자고 주님이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후에 무엇을 보았습니까? 무엇을 목격했습니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기가 막힌 역사를 함께 보았습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함께 그 일에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돌을 옮겨 놓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물을 채우는 사람도 그러했겠죠.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나?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관심은 있으나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게 물을 채운 항아리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물을 채웠던 사람들이 누렸던 기쁨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수많은 사역들이 이와 같습니다. 이 사역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종종 ‘겸손’에 대해서 오해하십니다. 보통 겸손을 생각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않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게으름이며 책임 회피입니다. 겸손이란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태만입니다. 이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들라는 명령도 함께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겸손히 일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정말 일해야 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일에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소망교회에는 나라를 위해 일할 많은 인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겸손해야 한다는 말 뒤로 물러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도래하여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대로를 평탄케 하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대림절에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예.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move the Stones

 

Luke 3:3-6

 

Today’s Scripture tells us about the significance of John the Baptist’s ministry.

 

Hisstory is a very important one in the Bible, mentioned in all four Gospels, including Matthew, Mark, Luke, and John. In a word, John the Baptist was the one who prepared the ministry of Jesus and paved the way for the Lord.

 

Today’text from Luke tells us just that. In particular, it reveals that John’s ministry had already been prophesied in the Old Testament:

 

“He went into all the country around the Jordan,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As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words of Isaiah the prophet: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Luke 3:3-4)

 

John’s ministry was to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and to make straight paths for Him.

 

The prophecy about himis written in Isaiah 40: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wilderness a highway for our God.Every valley shall be raised up, every mountain and hill made low; the rough ground shall become level, the rugged places a plain.And the glory of the LORD will be revealed, and all mankind together will see it.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Isaiah 40:3-5)

 

All four Gospels including Luke state the same thing. John the Baptist, who cried out in the desert and baptized in the Jordan, was the voice that prepared the way for the Lord.

 

Luke gives special emphasis to John’s story and his birth by describing how he was conceived before Jesus was and how he was born. This reflects the importance Luke placed on John.

 

Why does the Bible deal with John so prominently?

 

Certain scholars claim thatthe Bible’s mentioningof Jesus’ relationship with Johnwas inevitablesince John was a hugely influential figure among the Israelites in Judea at the time.

 

Other scholars argue that Jesus’ movement started in John’s movement. Still others even go as far as to speculate that Jesus was likely John’s disciple.

 

However, such claims are not what the Bible states. The Bible testifies that John the Baptist was unequivocally the one who prepared the way for the Lord and that only Jesus is the Son of God. In other words, while John is a human prophet, Jesus is God. This is what the Bible says.

 

However, the Gospels statethat even John the Baptist, the one who prepared the way for the Lord and made His paths straight, had been prophesied in the Bible. It was not just Jesus who had been prophesied about andpredestined. John, who preparedthe path for Jesus, had beenprophesied about and predestined too.

 

The following is a paragraph from Isaiah that is often used as a responsive reading during Advent:

 

“Pass through, pass through the gates! Prepare the way for the people. Build up, build up the highway! Remove the stones. Raise a banner for the nations.”(Isaiah 62:10)

 

It wasprophesied that John the Baptist would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preparethe way for the people so that they would return, remove the stones, and make straight paths.

 

And the Gospels declare that John prepared the way for Jesus, paved the road, and removed the stones in accordance with Scripture.

 

Although we hear and meditate on John’s storyeach year during Advent, today I would like to ask the following questions.

 

Why did GodhaveJohn come before Jesus? Why did the Bible prophesy that he would have to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and remove the stones?

 

Would it have been insufficienthad Jesus come to earth and carried out His salvation ministry on His own? Did John’s ministry havea great influenceand impact on Jesus’ ministry? Would the latter have been unsuccessful without the former? If God is almighty, why did He send John before His Son?

 

All John did was to baptize in the Jordan. All he did was to baptize Jesus with water. At that moment the Spirit descended on Jesus and the word of God was heard.

 

John’s most important work, therefore, was his baptism of Jesus. Then was this baptism the work of making straight paths? Did John remove the stones by doing this?

 

Let’s rephrase the question. Couldn’t God have started His ministry of saving mankind through Jesus without John? Was it not possible for Jesus to start His ministry without John?

 

If God’s power is infinite and abounding, why was John necessary?

 

Many other stories in the Bible ignite similar questions. Jesus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is one example.

 

When Jesus arrived in Behtany after hearing about Lazarus’ death, he had already been dead for four days and buried. Yet Jesus declares in front of his tomb:

 

“‘Take away the stone,’ he said. ‘But, Lord,’ said Martha, the sister of the dead man, ‘by this time there is a bad odor, for he has been there four days.’”(John 11:39)

 

The above Scripture raises a question similar to our earlier one. In this scene where Jesus displays His power by raising Lazarus who has been dead four days, was it really necessary to have the stone removed by people?

 

Wouldn’t have been entirelypossible for our all-powerful Lord to remove it Himself? When Jesus Himself rose from the dead, the stone at His tomb was rolled away by His power. Our Lord has the power to remove stones no matter how heavy they are.

 

Yet He did not remove the stone at Lazarus’ grave; He ordered the people present to do it.

 

Then He commanded Lazarus to come out and brought him back from the dead.

 

From this we learn an importantperspective on the meaning of preparing the way for the Lord.

 

As we can see in both John the Baptist and the people who removed the stone at Lazarus’ grave, preparing the way for the Lord does not mean that God needs people. Instead, it means that God is inviting people and givingthem a chance to take part in His ministry.

 

This was also seen in Jesus’ first miracle at the wedding in Cana. When Jesus transformed water into wine there, He ordered the servants to fill the stone jars with water. Then He transformedwater into wine. Come to think of it, Jesus could well have created wine without water. He could also have filled the jugs with water, without asking the servants to do it. But our Lord commanded the servants. Then He performed the miracle.

 

Why? John 2:9 says:

 

“and the master of the banquet tasted the water that had been turned into wine. He did not realize where it had come from, though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John 2:9)

 

The servants were given the chance to participate in Jesus’ miracle.

 

God can remove the stones Himself, but He commands people to do it. Our Lord can create wine from nothing, but He commands the servants to fill the jars with water. This is also true of Moses. God chose Moses to lea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Even without Moses, God could have set them free, but He called him.

 

This also applies to John the Baptist. Even without John, Jesus could have come to earth and performed His ministry successfully;yet our Lord used John.

 

What does this mean?

 

Each year during Advent we read from Isaiah. As we reflecton the life of John who prepared the way for baby Jesus, we read Isaiah’s words,engraving them in our hearts as if they were aimed at us: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wilderness a highway for our God.’”(Isaiah 40:3)

 

Now,as we await Jesus Christ who will come again in the last day, we receive these words from Isaiah that commands us to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The Kingdom of God that Jesus started during His life on earth will finally be fulfilled when Jesus comes again. As we await that day, our Lord commands us to prepare the way, to make the way straight for that day. He commands us to remove the stones.

 

Of course, our Almighty Lord is fully capable of removing the stones Himself without our help. Even if we do not pave the way for Him, He can make that path and He can come. Yet He commands us to do so. Why?

 

Herein lies an important life lesson, a principle of faiththat we must deeply understand and consider.

 

First, themeaning of our Lord’s command to make straight paths and to remove the stones is this. God does not do everything for man, including the little things that he himself must do. “To entrust everything to God” may sound like a great faith, but it may easily lead to idleness. Trusting God and doing nothing is not God’s will.

 

God does not answer the prayer of the person who does not study for a test but asks God to show him the answers in a vision. This is not how God works.

 

Sometimes we beautify anidle attitude, that is, doing nothing, as a most beautiful faith. This is a sentimental faith. True faith is to treat God as God. It is to do what we ought to do and to entrust God with the things we are incapable of.

This is the truly mature faith.

 

Dear Church, let’s say there is a little boy. How do the parents raise him?Won’t they be worried if he asks them to do everything for him without even trying? But let’s say he picks up a spoon and tries feeding himself. It gets messy. But he tries and looks at mommy when it gets too difficult. Then, of course, mommy helps him.

 

Parents worry when children don’t change or grow.

 

When a child of God claims to have good faith but does nothing, God is worried. Such a Christian does not grow.

 

To treat God as God is to look to God after doing all we can. When our abilities are insufficient and we feel a lack, we look to God.

 

Some people refuse to be helped to the end. This also troubles God. If a child refuses his parents’ help to the end, doesn’t this implya distrust in his parents? Isn’t he, in effect, rejecting them?

 

Our Lord’s command to remove the stones, to make the paths straight is an order to do our utmost so that the Kingdom of God may come. He is commanding us to do all we can so that Heaven will come on earth.

 

Second, our Lord’s commandto make straight paths for Him expresses His desire to work with us. God chose weak human beings such as us to do His great ministry with Him. God did not call Moses because He is a powerless God incapable of freeing His people from Egypt without Moses.

 

God did not use Luther or Calvin becausetheReformation would have been impossible without them. God does not call and use missionaries and pastors because He cannot preach the Gospel without them. God desires that we, weak human beings, take part in His amazing plan to save mankind.

 

He commands us to remove the stones, to make the way straight, and to fill the stone jugs with water because He wants to share with us the joy of salvation and the glory.

 

The year 2024 is coming to a close. We are now celebrating Advent, a season during which Christiansexpectantly wait for the coming Kingdom of God.

 

Our Lord speaks to us. Await the Lord who is to come and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the paths straight for God in the desert. Pave wide roads and remove the stones.

 

Dear Church, as your pastor I encourage you to participate more actively in the Lord’s ministry in 2025. Prepare the way of the Lord. Remove the stones. This work starts with the little things.

 

To remove the stones is to join the choir or to sing praises more passionately.Even with about 1,000 Sunday School teachers at our church, we still need more. Saving one little soul is to remove the stones. There are also diverse ministries within thewomen’sand men’s evangelism groups.

 

Senior deaconesses can serve as ushers and console the bereaved at funerals. Deacons can serve in various ministries,including funeral assistance, charity, social service, parking assistance, ushers, financial assistance, and medical care.

 

I want to encourage you to come forward and take part in these ministries. To do this is to remove the stones. This is what we ought to do. When we do our duties, God will work. Furthermore, we will be God’s coworkers who take part in His joy through these works.

 

Often people mistake doing nothing and staying hidden for humility. But it isn’t. This is not humility. It is laziness anddodging responsibility. Humility is to do your utmost with a humble attitude. Not working is a neglect of duty. Humility is the attitude of a worker.

 

These days Korea’s politics is in turmoil. I believe that God’s command to remove the stones includesbuilding this nation into one that pleases God. We need workers who willhumbly work for thiscountry. The reason Korea is in difficulty is becausethose who really ought to work are not doing that work. Let us not be idle in working for our nation. Let us not be idle in working for the churcheither.

 

Our Lork speaks to us. Remove the stones. Make the way straigh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In this season of Advent, may we all say“yes” to our Lord with a renewed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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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3~6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일으킵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마태복음뿐만 아니라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사복음서 모두에서 다루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사람과 예수님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과 예언에 따라서 이루어진 사실임을 말씀합니다. 이사야 40장을 인용하면서 누가복음 3장 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눅 3:3~4, 새번역)

 

누가복음을 비롯하여 모든 복음서가 전하는 내용은 동일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 요한,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탄생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례 요한의 중요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이토록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학자마다 나름대로 학문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당시 유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과의 연계성을 말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위치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의 운동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예수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런 추측들은 학문적인 견해에 불과하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세례 요한은 한 선지자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대림절에 종종 교독문으로 읽는 이사야 본문에 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사 62:10, 새번역)

 

이 말씀 역시 이사야서 40장 말씀과 더불어 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과 관련된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 예언의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 돌을 제거하고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예언서의 말씀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과 신약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읽어 가면 때로 이런 질문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와야 한다고 하신 것인가?’ ‘왜 주님의 길이 예비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평정하시고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셨을 텐데, 왜 앞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이 한 것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베푼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에 꼭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의 사역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불가능했던 것인지 질문이 듭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한이 없으시고 모자람이 없으신데, 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앞서 필요로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구원의 사역에 일부러 우리를 동참시켜 참여자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야기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두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베다니로 돌아가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무덤에 매장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덤 앞으로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앞서 드린 내용과 비슷한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능력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앞서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돌을 옮겨 놓으라”는 명령을 하셔야만 하셨을지 질문이 생기죠. 능력이 많으신 주님이시니 말씀만으로 돌도 충분히 치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돌을 치우라는 말씀이 없어도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면 돌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나사로가 나올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돌을 치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은 살릴 수 있지만, 돌을 옮기는 능력은 없으셨던 걸까요?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새벽에 돌문이 스스로 열렸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돌들을 치우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돌들을 옮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며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 내십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나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돌을 옮기는 것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에서 보이신 첫 번째 이적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 종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라고 명령하시고,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생각해 보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까요? 무에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반드시 물이 있어야만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방법으로든지 포도주를 공급하실 수 있었겠죠.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일의 결말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 2:9)

 

한마디로 말하면 “하인들은 예수님의 기적 사건에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돌을 스스로 치울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포도주를 무로부터 창조하실 수 있지만 하인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없이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사역을 충분히, 차질 없이 감당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세례 요한을 부르셨고, 세례 요한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대림절을 보낼 때마다 이사야의 말씀을 다시 꺼내서 읽곤 합니다. 세례 요한을 향하여 예언된 말씀, “대로를 평탄하게 하여라”, “돌들을 제거하여라”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보다 앞서 길을 예비한 요한의 길을 돌아보며, 그에게 주어진 말씀을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죠.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3)

 

과거 세례 요한을 향한 말씀을 지금 나를 향한 말씀으로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 길을 예비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셔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인 우리에게 “너희는 그날을 기다리며 길을 예비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돌을 제거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거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길을 닦지 않아도 길을 평탄케 하시고 우리에게 오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 명령을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명령을 하실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교훈과 신앙생활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주님의 명령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까지 모두 해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라고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훌륭한 믿음으로 여기며 흠모합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 태도는 게으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불경의 죄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시험지의 답을 환상으로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위대한 믿음으로 과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낭만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의료 행위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죠. 암에 걸리거나 여러 가지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진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도리어 광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료의 정보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이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돌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인가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모습이자 믿음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못하죠. 걷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기어다니지도 못합니다. 음식을 스스로 찾아 먹을 수도 없지요. 처음에는 그저 입을 벌렸다가 입을 닫는 것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 아이의 입을 열어 젖과 우유를 먹여 줍니다. 그리고 조금씩 먹을 것을 늘리며 채워 줍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만약 똑같은 상태로 1년, 2년, 3년, 4년을 버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움직이려고도 걸으려고도 하지 않고, 입만 벌리며 부모를 의지하는 데에만 그친다면, 과연 그것이 어머니에게 기쁜 일이겠습니까? 오히려 어머니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좋다’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신앙이 좋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께 불경을 저지르는 일일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끝까지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죠. 이것 역시 하나님께 근심거리입니다. 어린아이가 끝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다 해내려고 한다면, 그 또한 부모님의 큰 걱정이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 신뢰가 없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도움을 받지 않겠다”라는 것도 불신앙이고,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움만 받겠다”라는 것도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길을 평탄케 하라”라는 명령은 주님의 명령으로서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너의 손이 할 수 있는 것, 너의 지혜로 할 수 있는 것, 네가 인간으로서 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라는 주님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일은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명령에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역하기를 원하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인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함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할 수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루터와 깔뱅이 없었다면 이 땅에 개신교회는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사, 목사가 없었으면 주님 홀로 복음 전파가 불가능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부족한 우리를 동참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넓은 아량과 초청입니다. 또한 구원의 기쁨과 영광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돌을 옮겨놓으라”, “길을 평탄케 하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2024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대림절 기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여라. 길을 닦고 돌을 옮겨 놓아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라는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 저는 여러분의 목회자로서 새해를 바라보면서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사역에 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돌을 옮겨놓으라.” 이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찬양대를 채우고 보다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돌을 옮겨 놓는 일입니다. 이미 일천여 명의 교사들이 교회 학교에서 봉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사는 필요하고 부족합니다. 어린 영혼, 한 영혼을 살리는 일들이 돌을 옮겨 놓는 일입니다.

남선교회와 여전도회의 사역이 있습니다. 권사로서 예배를 돕고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며 섬기는 일이 있습니다. 집사로서 경조부, 사랑 나눔, 사회봉사, 차량 봉사, 찬양 예배 봉사, 재정 봉사, 의료 봉사, 새 가족 봉사, 재직 교육, 장학, 군·경찰·교정, 문화, 그리고 북방선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을 일들이 많습니다. 길을 평탄케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각 지구의 교구장과 구역장의 역할도 매우 큽니다. 저는 여러분이 조금 더 사역의 자리로 나오시기를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며, 이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들었던 베다니의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돌을 옮겨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니.’ 아마 이런 마음으로 돌을 옮기지 않았겠습니까? 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저 몇 명이 들어 옮기면 될 만한 아주 작은 일을 함께하자고 주님이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후에 무엇을 보았습니까? 무엇을 목격했습니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기가 막힌 역사를 함께 보았습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함께 그 일에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돌을 옮겨 놓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물을 채우는 사람도 그러했겠죠.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나?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관심은 있으나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게 물을 채운 항아리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물을 채웠던 사람들이 누렸던 기쁨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수많은 사역들이 이와 같습니다. 이 사역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 하나님의 행동,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이 종종 ‘겸손’에 대해서 오해하십니다. 보통 겸손을 생각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지 않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게으름이며 책임 회피입니다. 겸손이란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태만입니다. 이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들라는 명령도 함께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겸손히 일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정말 일해야 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일에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소망교회에는 나라를 위해 일할 많은 인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겸손해야 한다는 말 뒤로 물러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도래하여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대로를 평탄케 하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대림절에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예.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4년 12월 8일 주일 구역(가정) 예배자료 “돌을 옮겨 놓으라” (눅 3장 3~6절)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102장, 335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누가복음 3장 3~6절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 으로 접속. 12월 8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백성이 돌아올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성경에서 예언되고 있습니다. 만약 세례요한이 없었으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시지 못하셨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요약

 

오늘의 본문은 세례요한의 사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한 마디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자로, 그리고 그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을까요? 구원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구원의 사역을 행하셨더라면 부족한 점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세례 요한이 없었으면 예수님은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시지 못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왜 그 아들을 보내시면서 세례요한을 먼저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꼭 세례요한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초대였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현장에서, 하인들은 예수님의 기적 사건에 동참한 참여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을 스스로 치울 수 있는 분이지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포도주를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이끌도록 하셨습니다. 모세가 없어도 주님은 스스로 백성들을 이끄실 수 있었지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인생의 교훈, 신앙생활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까지 모두 해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훌륭한 믿음 같지만, 자칫하면 그것은 게으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할 것은 하고, 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인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의 기쁨,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 길을 평탄케 하라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몫이며,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누기

 

  1. 우리가 주님의 사역에 조금 더 참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2. 우리의 기도생활을 돌아보며, 나라를 위한 기도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의 길을 예비하라 하시며, 부족한 우리를 부르시고 청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세례요한처럼, 모세처럼, 주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세상을 밝히고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주님의 귀한 제자들,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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