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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린 지붕, 열린 하늘

마가복음 2: 1 ~ 5

김경진 목사

2019.07.21

< 예수님에 대한 열광과 소문이 갈릴리 곳곳에 퍼집니다. >

오늘 본문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사람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께 달아 내린, 매우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길래 지붕까지 뚫어야 했을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상황을 제대로 혹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앞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의 공생애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40일간 금식하시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첫 방문지로 가버나움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는데,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마가복음 1장 21~22절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21~22)

예수님이 권위 있게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시던 그 순간, 한 사건이 발발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앞으로 나오게 하셔서 귀신을 내쫓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으며, 큰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문은 곧장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내용이 마가복음 1장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마가복음 1:28)

이후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그녀가 예수께 나와 수종 들었다는 기사도 이어집니다.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을 것입니다. 저녁이 될 때쯤, 수많은 사람이 시몬의 집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정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쫒으시되 (마가복음 1:32~34 중)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예수님이 첫 번째 사역 현장인 가버나움에서 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대하며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새벽이 되자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십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다시 말해, 당시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말씀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예수님을 찾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시몬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께 와 당시 상황을 전해 줍니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마가복음 1:36~37)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고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첫 번째 데뷔는 이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예수님이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고 하시며 가버나움으로 선뜻 들어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갈릴리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셨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나병 환자도 낫게 하시는 기적도 베푸셨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다른 갈릴리 지역을 다니던 예수님이 이제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 2장의 시작 부분입니다.

<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자 또다시 가버나움은 열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들리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마가복음 2:1)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이 돌아오셨으니,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파다했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 중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예수님이 도를 가르쳤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떤 도를 가르치셨을까요? 어떤 권위 있는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성경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지만, 앞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15)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었고, 계속해서 누누이 전하시던 말씀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주님은 아마 수많은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서, 오늘 본문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바로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지붕을 뚫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혹시 이 중풍병자는 당시 그곳에 살던 부유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래서 종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온 사람이었을까요? 본문에서 ‘상을 들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여기서 사용된 ‘상’이라는 단어는 보잘것없는 상을 의미합니다. 즉 그가 부유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동네에서 존경받던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이 중풍병자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그가 누운 상을 메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사람들로 가득해서 도통 앞으로 나아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자기 욕망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왔을 때 집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어떤 말을 했을까?’ 군중에게 아마 이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길을 좀 내주십시오.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를 예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좀 비켜주십시오.” 아마 소리치고, 외치며, 부탁했을 것입니다. 사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열렸다면 당연히 그 길을 통과해 예수께로 나갔겠지요.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터 주지 않았습니다.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께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두 종류의 사람을 발견합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집에 들어간 사람들, 그리고 집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들어가기를 원하던 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도, 그 권위 있는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참된 진리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발로 걸어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도를 듣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옆에 있던 다른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로 몰려들며 아우성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만 하나님의 말씀, 귀한 말씀,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른 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풍을 앓고 있는, 죽어가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다는 게 참으로 절묘하기도 하고, 넌센스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권위가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고 계시는 위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욕망만을 채워가기를 원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주변에 있었습니다.
한편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에 메고 나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소문만으로 희망을 갖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 옆에 있는 중풍병자, 중풍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를 살리고자, 그를 고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을 들고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혔습니다. 포기할 법도 한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께로 내려보내는 일을 해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과 질문이 생깁니다. 물론 중동 지역의 지붕은 오르기 어렵거나 뚫기 어려운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지붕을 뚫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으로 인해 예수께로 나아갈 길이 막혔던 그들이 ‘또 다른 길’을 찾은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지붕을 뚫어 하늘로부터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내려보냈습니다.

< 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

이제 중풍병자가 예수님에게 도달합니다. 오늘 본문 중 4~5절 말씀입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4~5 중)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일까요? 중풍병자의 믿음이었다면 단수로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표현은 복수입니다. ‘그들의 믿음’ 그것은 바로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나온 사람들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위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믿음과 구원의 상관성에 대해 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고 배워 왔습니다. 성경도 줄곧 그러한 가르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혹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거나 나음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이 부분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 즉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온 사람들은 어떤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을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요? 온전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마 그들은 아직 그와 같은 믿음을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막 시작하신 시점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아직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와 같은 믿음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위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라는 그분에게 이 사람을 데려가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중풍병자를 데려가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삼위일체 신앙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러한 신앙이 아직 그들에게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나가면, 예수께 이 환자를 보내기만 하면, 그분이 무언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또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누워 있는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하는 생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생명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뚫고서라고 중풍병자를 예수 앞에 두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은 그를 상에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온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믿음, 그 믿음 때문에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 예수께로 인도하면, 그다음은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

사실 오늘 말씀은 5부 예배인 청년부와 청년플러스 선교 파송 예배 말씀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선교를 위해 여러 교회와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우리 청년들을 격려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대학부 학생들이 선교하는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낯선 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양계장에 들어가 오물을 치우기도 했고, 어르신들 앞에서 애교를 떨며 동네잔치를 열기도 했고, 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농장에 들어가 가지를 치는 일도 했습니다. 언뜻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그들은 최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그들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그저 잘 보이기 위해서일까?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서일까? 어려운 환경에서 극기 훈련 하는 의미로 그곳에 있는 것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일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이분들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오실 수만 있다면, 그분들 앞에서 얼마든지 재롱을 떨지요. 또 얼마든지 양계장에서 얻은 오물들을 가져가 거름으로 나눠 드리지요.’ 바로 이런 열정과 일념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에 계신 여러분, 예수님에게로 나오십시오. 교회로 나오십시오.”라는 이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나오기만 하면, 즉 예수께 데려 나오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할 때 “어느 정도 내가 만들어 놓고 주님께로 인도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력은 가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다른 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것은 마치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앞에 두고, 중풍병을 어느 정도 치료해 준 다음에 마지막 단계에 예수께 인도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혹은 설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많은 분이 앉아 계십니다. 지금 옆에 계신 분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이분들이 왜 이 자리에 있습니까? 내가 설득해서입니까? 목회자가 설득해서입니까? 어떤 다른 이유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각자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 마음속에 확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께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는 은총을 누립시다. >

오늘 본문에는 하나 더 특이한 내용이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신 후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가복음 2:5 중)

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얼마든지 예수님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네가 나음을 입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왜 예수님이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궁극적인 이유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이끌고 예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께 나가면 중풍병이 나을 수 있겠지.’ ‘예수께 나가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쫒아나가겠지.’ ‘예수께 나가면 어떤 병도 나을 수 있겠지.’라는 1차원적인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을 알려 주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중풍병이 낫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귀신을 내쫓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병이 낫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 나와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 믿음을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죄 사함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믿음을 견고케 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천장이 뚫리고 하늘에서 중풍병자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실 이 장면은 참으로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이 막힌 바람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었습니다. 뚫린 구멍으로 환자를 내려보냅니다. 지붕이 뚫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들이 뚫어놓은 구멍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화해케 되고,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용서 받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바로 이 궁극적인 사건을 예수님은 한마디로 요약해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수께로 사람들을 이끌어 오는 결단과 시도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래되셨다면, 이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붙잡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 귀한 사람, 예수님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주님 앞에 이렇게 간구해 봅시다. “주님, 제 믿음은 작은 믿음이지만, 제가 온전한 믿음을 다 아뢸 수도 없지만, 그렇기에 주님께로 나옵니다. 주님께서 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전도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놀랍고 아름다운 생명의 일이 우리 소망교회에서 그리고 소망의 성도들을 통해서 넘치도록 일어나기를, 우리 주님은 지금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Opening in the Roof, Opening to Heaven

Mark2:1-5

Today’s passage tells us an interesting story. Some men dig an opening in the roof to lower a paralyzed man to Jesus.

Let me talk a little about the context of this story. The Book of Mark starts with Jesus’ baptism by John the Baptist. After his baptism, Jesus is tested by the devil. Then in chapter 1 verses 21 to 22 it says that he went to Capernaum. There, he taught with great authority in synagogues, healed many including Simon’s mother-in-law, cast out demons, and performed many miracles. So many people flocked to himthat he had to leave Capernaum in order to find a solitary place to pray. These are the events of chapter 1. Then comes today’s passage which is chapter 2.

When Jesus came back to Capernaum in chapter 2, people were ecstatic about him: “A few days later, when Jesus again entered Capernaum, the people heard that he had come home. They gathered in such large numbers that there was no room left, not even outside the door, and he preached the word to them.” (Mark 2:1-2) Jesus was already very famous in Capernaum. So many people came to see him that there was literally no room to stand. Although this passage doesn’t tell usexactly what he preached, it is quite likely that he talked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repentance which was his message in chapter 1: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Mark 1:15)

In this scene, the Bible notes some very special men who came to Jesus carrying a paralyzed man through the roof. What made them do such an unusual thing? Was the sick man rich? Well, he doesn’t seem to have been particularly wealthy since the word “mat” used in verse 4 was usually used for cheap mats, not expensive ones. Then was he respected? Is that why he was carried to Jesus? Whatever the reason, one thing is clear: He was much loved. His friends loved him so that they carried him to Jesus.

However, when he was carried to Jesus, the crowd didn’t make way. The men carrying him probably had to shout, “Make way! Make way! There is a sick man here!” Yet, people did not budge.In this scene we see two types of people. First, those who wanted to see Jesus, to know the way, and to know the truth. But because of their extreme desire to hear about the way, they paid no attention to others. Although they had come to hear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repentance, they were completely inconsiderate. How ironic! Second, there were those who came to Jesus carrying their beloved friend, wanting to heal him. They put their sick friend before themselves. But because of the selfish crowd, they could not take him to Jesus. They could have given up. But they didn’t. They dug a hole in the roof and lowered him to Jesus.

What made them do such a thing? We cannot but be amazed by their completely out-of-the-box action. Although roofs in the Middle East are known to tear more easily than those in Korea, what they didwas very bold and imaginative indeed.

In verses 4 and 5 it says, “Since they could not get him to Jesus because of the crowd, they made an opening in the roof above Jesus by digging through it and then lowered the mat the man was lying on. When Jesus saw their faith […].” (Mark 2:4-5) Here it says that Jesus saw “their” faith, not “his” faith. It is written in the plural, not the singular. Accordingly, it was the faith of the men who lowered the paralyzed man to Jesus that made Jesus start his ministry toward the sick man.

This is quite baffling. This kind of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salvation is not familiar to us. We are taught that we are saved by our own faith. That is what the Bible says. But today’s passage saysotherwise. Can we really be saved and healed through another’s faith? Today’s scripture says that this is possible. Still, we must study this passage carefully.

The Bible clearly says that Jesus saw “their faith.” But what exactly was“their faith”? Did these men confess Jesus as their savior? Did they have a mature faith that believed in the trinity? Did they believe that Jesus would be crucified and resurrected in three days? Did they have a faith that boldly confessedthat Jesus is the Son of God? Probably not. They did not have such a grandiose faith or profound insight or knowledge. All they had was a simple, ordinary belief. They believed in one thing—that,if they took the paralyzed man to Jesus, something amazing would happen. This was their one belief. It was not some extraordinary set of beliefs.

They also possessed something else that was special: Love. They loved the paralyzed man. They were passionate about saving him. They valued another man’s life, not theirs. They pursued life. And Jesus saw that faith. Although, their faith was not complete or perfect, Jesus saw that faith and started to do amazing things in the sick man. Jesus responded to their faith and healed the paralyzed man.

Actually, I wrote this sermon to encourage the youth group who are servingsmall rural churches and evangelizing in various regions this summer. Yet, it is a message that we should all bear in mind. Last week, I visited several places where our youth were serving and evangelizing. They were cleaning dirty henhouses, talking and laughing with the elderly, painting walls, and pruning trees. What made them do such things that they don’t normally do? For one reason. To bring lost souls to Jesus. They wanted to reach out to the people they were serving and lead them to Christ:‘Come to Jesus, and you will be changed!’ They were eager to deliver this message. Just like the men who lowered the paralyzed man from the roof, they had a faith that amazing things would happen if these people would just come to Jesus. By cleaning henhouses and doing these little things, they were opening the roof and lowering sick men to Jesus.

Dear Church, have you ever thought about evangelizing? Have you ever thought of bringing someone to Christ? Today’s scripture encourages us to do precisely that. Some people try to do all the work themselves when they evangelize. Their efforts are commendable, but it doesn’t work that way. It’s like taking a paralyzed man to Jesus at the very last stage, after trying to do 90% of the healing yourself.

What is evangelism? How can we save those we love? With our faith. Throughour belief that amazing things will happen if we take him or her to Jesus. Saving other souls begins with this faith. You must believe that miracles will happen if you bring someone to God. You’re not the one doing the work. This is evangelism.

Don’t think too much. Just make that person come to Jesus. Then Jesus will do all the work. Jesus looks for our faith, our hope. He sees how powerful they are.

You may be thinking, ‘Why do we need to evangelize when we have plenty of people at church already? There is no room here.’ But do you remember the crowd in today’s passage? They flocked to Jesus to hear him speak about the way but had no consideration of others. Aren’t we being a bit like them if we think like this? We must reflect upon ourselves. The crowd were not aware that other people like the paralyzed man had to see Jesus and receive his grace. Only a few men paid attention to the paralyzed man and carried him to Jesus to save him. These men were life-saving, life-sharing people. We must be like them. We must follow in the steps of these men who believed that Jesus would heal the sick if they took them to Jesus.

What is evangelism? It is bringingsouls to Jesus at all cost. It is leading people to the Lord. That is evangelism. What is healing? It is bringing someone to Jesus. Period. Whatever the sickness may be, you just take him to Christ. Then Jesus will heal him.

We must deeply consider one more thing in today’s passage. It says in verse 5 that when Jesus saw the faith of the men who lowered the mat he said to the paralyzed man, “Son, your sins are forgiven.” What does this imply? Jesus could have just ordered him to get up and walk—which was what he did afterward. But he didn’t. He said, “Son, your sins are forgiven.” This is quite unexpected. Why did Jesus say this at this particular moment?

The men brought the paralyzed man to Jesus with a faith that believed, ‘Jesus will solve this problem if we take it to him.’ Indeed, they took the sick man to Jesus. They laid him down before Jesus thinking, ‘Jesus! Only you can heal him!’ However, Jesus says something completely unexpected: “Son, your sins are forgiven.” What does this mean? What does it mean to come to Jesus? What is the ultimate reason for seeking Jesus? Not to be healed. Not to heal the paralyzed man.

Jesus is teaching us that the ultimate reason for coming to Christ is to be forgiven. Therefore, Jesus is correcting the men’s small faith. The men came with a faith that Jesus would solve all their problems once they took them to him. This faith is very important. It is the kind of faith that takes us to Jesus. But, when the men finally reached Jesus, he complemented their faith with an unexpected word: “Your sins are forgiven.” Therefore, the true, ultimate purpose of coming to Jesus is to be forgiven of our sins. The men did not possess that faithyet. But by pointing this out to them, Jesus not only healed the sick man but also gave them another gift—forgiveness of their sins.

What a splendid scene! It is like one from a beautiful masterpiece. People are flocking to Jesus. On the ground, there is a huge crowd surrounding Jesus. They want something from him. They look to him for hope. Against this backdrop, a few men appear from above, carrying a paralyzed man on a mat. They come through the roof by making an opening in it. A hole appears. And heaven opens. Then Jesus says, “Your sins are forgiven.” Why did Jesus come to this world? To reconcile man to God—to connect heaven and earth. And that peacemaker says, “Your sins are forgiven.”

Dear Church, let’s meditate on this passage again. Do we really love those around us? Do we truly believe that all our problems will be solved if we come to Jesus? Even if our faith is incomplete, we must start with this small faith. Everything will be solved if we come to Jesus. Yes, this faith is small and incomplete. But this is where we start. All our problems will be solved if we just come to Jesus. We start with this tiny faith. But when we come to him, our Lord rewards us with a greater gift. He says, “Your sins are forgiven. The eternal kingdom is yours. You have been reconciled with God.” I pray that these words be yours today.

Dear Church, what is the mat that you must carry? Who should be on that mat? I hope that you will all meditate on these questions and come before the Lord carrying your 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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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 1 ~ 5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예수님에 대한 열광과 소문이 갈릴리 곳곳에 퍼집니다. >

오늘 본문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사람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께 달아 내린, 매우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길래 지붕까지 뚫어야 했을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상황을 제대로 혹은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앞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의 공생애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40일간 금식하시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부인 시몬과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첫 방문지로 가버나움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는데,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마가복음 1장 21~22절입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21~22)

예수님이 권위 있게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시던 그 순간, 한 사건이 발발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앞으로 나오게 하셔서 귀신을 내쫓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으며, 큰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문은 곧장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내용이 마가복음 1장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마가복음 1:28)

이후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그녀가 예수께 나와 수종 들었다는 기사도 이어집니다.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을 것입니다. 저녁이 될 때쯤, 수많은 사람이 시몬의 집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정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쫒으시되 (마가복음 1:32~34 중)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예수님이 첫 번째 사역 현장인 가버나움에서 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대하며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새벽이 되자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십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다시 말해, 당시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말씀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예수님을 찾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시몬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께 와 당시 상황을 전해 줍니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마가복음 1:36~37)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고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첫 번째 데뷔는 이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예수님이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고 하시며 가버나움으로 선뜻 들어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갈릴리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셨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나병 환자도 낫게 하시는 기적도 베푸셨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다른 갈릴리 지역을 다니던 예수님이 이제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 2장의 시작 부분입니다.

<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자 또다시 가버나움은 열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들리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마가복음 2:1)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이 돌아오셨으니,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파다했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 중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예수님이 도를 가르쳤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떤 도를 가르치셨을까요? 어떤 권위 있는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성경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지만, 앞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15)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었고, 계속해서 누누이 전하시던 말씀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주님은 아마 수많은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서, 오늘 본문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바로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지붕을 뚫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혹시 이 중풍병자는 당시 그곳에 살던 부유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래서 종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온 사람이었을까요? 본문에서 ‘상을 들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여기서 사용된 ‘상’이라는 단어는 보잘것없는 상을 의미합니다. 즉 그가 부유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동네에서 존경받던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이 중풍병자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그가 누운 상을 메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사람들로 가득해서 도통 앞으로 나아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자기 욕망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왔을 때 집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어떤 말을 했을까?’ 군중에게 아마 이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길을 좀 내주십시오.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를 예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좀 비켜주십시오.” 아마 소리치고, 외치며, 부탁했을 것입니다. 사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열렸다면 당연히 그 길을 통과해 예수께로 나갔겠지요.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터 주지 않았습니다.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께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두 종류의 사람을 발견합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집에 들어간 사람들, 그리고 집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들어가기를 원하던 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도, 그 권위 있는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참된 진리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발로 걸어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도를 듣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옆에 있던 다른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서로 몰려들며 아우성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만 하나님의 말씀, 귀한 말씀,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른 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풍을 앓고 있는, 죽어가고 있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다는 게 참으로 절묘하기도 하고, 넌센스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권위가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고 계시는 위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욕망만을 채워가기를 원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주변에 있었습니다.
한편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에 메고 나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소문만으로 희망을 갖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 옆에 있는 중풍병자, 중풍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를 살리고자, 그를 고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을 들고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혔습니다. 포기할 법도 한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께로 내려보내는 일을 해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과 질문이 생깁니다. 물론 중동 지역의 지붕은 오르기 어렵거나 뚫기 어려운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지붕을 뚫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으로 인해 예수께로 나아갈 길이 막혔던 그들이 ‘또 다른 길’을 찾은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지붕을 뚫어 하늘로부터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내려보냈습니다.

< 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

이제 중풍병자가 예수님에게 도달합니다. 오늘 본문 중 4~5절 말씀입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4~5 중)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란 누구의 믿음일까요? 중풍병자의 믿음이었다면 단수로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표현은 복수입니다. ‘그들의 믿음’ 그것은 바로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나온 사람들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위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믿음과 구원의 상관성에 대해 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고 배워 왔습니다. 성경도 줄곧 그러한 가르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혹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거나 나음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이 부분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 즉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온 사람들은 어떤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을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요? 온전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마 그들은 아직 그와 같은 믿음을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막 시작하신 시점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아직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와 같은 믿음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위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라는 그분에게 이 사람을 데려가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중풍병자를 데려가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삼위일체 신앙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러한 신앙이 아직 그들에게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나가면, 예수께 이 환자를 보내기만 하면, 그분이 무언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또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누워 있는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하는 생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생명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뚫고서라고 중풍병자를 예수 앞에 두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은 그를 상에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온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믿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믿음, 그 믿음 때문에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 예수께로 인도하면, 그다음은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

사실 오늘 말씀은 5부 예배인 청년부와 청년플러스 선교 파송 예배 말씀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선교를 위해 여러 교회와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우리 청년들을 격려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대학부 학생들이 선교하는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낯선 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양계장에 들어가 오물을 치우기도 했고, 어르신들 앞에서 애교를 떨며 동네잔치를 열기도 했고, 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농장에 들어가 가지를 치는 일도 했습니다. 언뜻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그들은 최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그들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그저 잘 보이기 위해서일까?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서일까? 어려운 환경에서 극기 훈련 하는 의미로 그곳에 있는 것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일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이분들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교회에 나오실 수만 있다면, 그분들 앞에서 얼마든지 재롱을 떨지요. 또 얼마든지 양계장에서 얻은 오물들을 가져가 거름으로 나눠 드리지요.’ 바로 이런 열정과 일념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에 계신 여러분, 예수님에게로 나오십시오. 교회로 나오십시오.”라는 이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그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나오기만 하면, 즉 예수께 데려 나오기만 하면, 예수님이 무언가를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할 때 “어느 정도 내가 만들어 놓고 주님께로 인도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력은 가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다른 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것은 마치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앞에 두고, 중풍병을 어느 정도 치료해 준 다음에 마지막 단계에 예수께 인도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혹은 설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많은 분이 앉아 계십니다. 지금 옆에 계신 분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이분들이 왜 이 자리에 있습니까? 내가 설득해서입니까? 목회자가 설득해서입니까? 어떤 다른 이유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각자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 마음속에 확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께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는 은총을 누립시다. >

오늘 본문에는 하나 더 특이한 내용이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신 후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가복음 2:5 중)

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얼마든지 예수님은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네가 나음을 입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왜 예수님이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궁극적인 이유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이끌고 예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께 나가면 중풍병이 나을 수 있겠지.’ ‘예수께 나가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쫒아나가겠지.’ ‘예수께 나가면 어떤 병도 나을 수 있겠지.’라는 1차원적인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을 알려 주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중풍병이 낫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귀신을 내쫓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병이 낫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 나와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 믿음을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죄 사함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믿음을 견고케 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천장이 뚫리고 하늘에서 중풍병자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실 이 장면은 참으로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이 막힌 바람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었습니다. 뚫린 구멍으로 환자를 내려보냅니다. 지붕이 뚫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는 순간입니다. 그들이 뚫어놓은 구멍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화해케 되고,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용서 받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바로 이 궁극적인 사건을 예수님은 한마디로 요약해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수께로 사람들을 이끌어 오는 결단과 시도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래되셨다면, 이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붙잡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 귀한 사람, 예수님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주님 앞에 이렇게 간구해 봅시다. “주님, 제 믿음은 작은 믿음이지만, 제가 온전한 믿음을 다 아뢸 수도 없지만, 그렇기에 주님께로 나옵니다. 주님께서 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전도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놀랍고 아름다운 생명의 일이 우리 소망교회에서 그리고 소망의 성도들을 통해서 넘치도록 일어나기를, 우리 주님은 지금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2019년 7월 21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뚫린 지붕, 열린 하늘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531장, 267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막 2:1-5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21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오늘의 본문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예수님을 설교를 하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때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설교의 요약

본문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한 부류를 예수님을 보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를 듣고자 하는 자기 욕심 때문에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그들은 다른 이들을 향한 배려가 없는 모습입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에 매고 달려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 중풍으로 고생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살리고자, 그를 고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상에 그를 메고 달려 나옵니다. 그러나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그 길은 뚫리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낼 때에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성경은 전합니다.(막2:4-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위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하거나 나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의 본문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중풍병자를 상에 매고 온 사람들은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가진 믿음은 예수님께만 가면 그가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 또 한가지였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누워 있는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마음, 그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믿음과 마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믿음과 사랑입니다. 중풍병자를 매고 온 사람들처럼 생명을 사람들,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님께서 이끄는 것입니다.

나누기

1.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의 소식을 전한 경험이 있습니까? 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2. 어떤 사람들이든 주님께로 이끌고 나오기만 하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내가 주님께로 이끌고 나아가야할 대상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서로 축복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중풍병자를 상에 매고 주님께로 나온 사람들의 믿음을 본받기 원합니다. 주님께만 소망이 있기에 어떠한 것도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없기에,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메고 주님께 달려 나온 사람들처럼 우리들도 영혼을 사랑하고 생명을 위해 일하는 주님의 귀한 종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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