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구독

ic_info구독 사용방법

해당 카테고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모아보기 원하시면 구독을 추가해주세요 마이페이지 > 내구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c_info

마라나타

고린도전서 16: 21 ~ 24

김경진 목사

2021.12.05

<성경에서 ‘마라나타’ 표현은 어디에 등장하며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고형원 작사, 작곡의 ‘마라나타’ 찬양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 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즘 참 많이 불리는 은혜로운 찬송 중 하나입니다. 찬송을 들으면서 ‘도대체 마라나타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 하신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물론 찬송을 가만히 듣다 보면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그 뜻을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마라타나’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어느 나라 언어일까요? 사실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아닙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 당시 고대 근동에서 사용되던 아람어입니다. 그러면 이 단어가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많은 분들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을 들으며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22장 20~21절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

이 말씀은 성경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원어로 기록된 헬라어 성경을 보면 마라나타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헬라어로는 “에르쿠, 큐리에 이에수(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로 기록되어 있죠. 물론 원어상 의미는 “주 예수여, 오십시오.”라는 뜻을 가집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마라나타라는 말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본문을 읽으면서 마라나타라는 표현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이 마라나타를 그대로 표기하지 않고 번역된 뜻으로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장 22절, 개역개정)

여기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구절 앞에 각주가 달려 있는데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는 우리 주께서 임하셨도다. 아람어, 마라나타” 반면에 새번역 성경은 마라나타를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새번역)

다시 말씀드리면 개역개정 성경에서 마라나타를 검색하시면 나타나지 않지만, 새번역 성경에서 검색을 하시면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라나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주님’이란 뜻의 ‘마르’라는 단어와 ‘오다’라는 의미의 ‘아타’가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먼저는 ‘마라나 타(marana tha)’로 읽는 경우인데, 청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 오십시오!” 혹은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마란 아타(maran atha)’로 읽는 경우인데, 이때는 “주께서 오셨다.” “주께서 오신다.”라는 뜻으로 전자와는 조금 다르게 이해된다고 합니다(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4, p.514 참조).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라고 번역한 후에 각주를 달고 “이 아람어를 달리 마란 아타라고 읽으면, ‘우리 주님 오셨다’가 됨”이라고 표기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사용한 개역한글 성경 역시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6장 22절, 개역한글)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유익한 정보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라나타라는 말이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단 한 번 사용된 아람어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혹은 “주께서 오신다. 오셨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간이다. 공동체는 그의 첫 번째 오심과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임하심 사이에 존재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예배 중에 마라나타를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주후 100년 경, 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혹은 ‘디다케Didache’라고 알려진 문헌이 있습니다. 화요조찬 시간에 몇 번 인용한 책이지요. 이 문헌 속에도 마라나타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은총이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나님 호산나! 어느 누가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디다케 10:6)

성찬성례전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찬을 하면서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게 될 종말적 식탁을 예견하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의 식탁에서 온전한 식사를 마주 받게 되리라는 기대를 담으며 “주 예수여 오십시오”라고 말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온갖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종말론적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더불어 시작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바라보며 그 나라가 오기를 예배 속에서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이 담긴 단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바울은 왜 저주가 담긴 선포와 함께 ‘마라나타’ 단어를 기록하였을까요?>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며 동시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는 절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교회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마라나타가 나오는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구절을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분열되어 있는 고린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공동체 안에 나타난 분열의 문제, 음행 문제, 결혼과 독신의 문제,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문제, 예배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다루며 성찬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합니다. 이 외에도 성령의 은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은사인 사랑과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 있는 16장이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조금 가벼운 이야기들을 다루죠. 성도들이 연보를 모으는 방법, 이후 전도 여행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파견했던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포함하여 모든 형제들에게 문안을 전하며 편지를 마무리하죠. 여기까지는 누군가 바울을 대신해서 편지를 써 내려간 듯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말에서 바울은 친필로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1절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고린도전서 16장 21절)

그런데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앞에서 보여 준 따뜻한 느낌보다는 조금 긴장된 분위기를 전해 줍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중)

그리고 이어서 ‘마라나 타’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라나타라는 단어가 이토록 준엄해 보이는 문장 뒤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마지막 인사를 훈훈하게 건네던 바울이 마지막 부분에서 긴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통해서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선 ‘저주’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바울은 지금 편지의 말미에서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른 편지에서도 저주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입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장 9절)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바울은 저주를 또다시 이야기하죠.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중)

잘 써 내려가던 바울의 편지가 마지막 부분에 와서 저주로 끝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저주’라는 단어는 ‘아나테마’(ἀνάθεμα)입니다. 그리고 원문상으로는 마라나타라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아나테마 마라나 타’(ἀνάθεμα Μαράνα θά)입니다. “저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해석되죠.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로 ‘바울은 왜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주를 말하는가?’하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이곳에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 타’를 둔 이유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헬라어 표현도 있는데 굳이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타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초대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바울이 사용한 ‘마라나 타’는 앞서 디다케 문서에도 나타나듯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사용한 용어였습니다. ‘마라나 타’ 앞에 나오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며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표현 역시 초대 교회가 예배 마지막 순서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모여 함께 나눈 말을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썼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 교인들은 왜 예배 때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백 번 양보하여 혹시나 이 표현이 초대 교회 예배에서 사용된 표현이 아니고 바울의 독특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왜 바울은 주님의 오심을 이야기하면서 저주의 말을 넣었을까요? 예배 중에 우리가 “마라나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께서 오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하나님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오신 주님과 오실 주님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고백이기도 하죠.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은 한편으로는 구원이며, 한편으로는 심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주님의 오심은 화이고 슬픈 소식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복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강림하시는 그날, 그 심판의 날에 누군가에게 임할 극도의 위험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님의 오심은 심판의 사건이 된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를 따르는 사람, 교회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서신을 읽고 있는 사람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질문하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주옥과도 같은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저주와 함께 등장한 ‘마라나타’ 표현은 오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요청합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께서 오신다! 그때에 너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했는지 검증받게 될 것이다. 방언을 했느냐, 천사의 말을 아느냐,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을 아느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느냐, 대단한 구제를 행하였느냐가 아니라 너는 주님 앞에서 네가 주님을 사랑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주님께서 정말로 오신다. 오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여러분, 만약 우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삶이 6개월 정도 남았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빌렸던 것 갚고 부채를 청산하는 일일까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일로 남겨진 시간을 채우는 일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인생을 보내실 때, 주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말씀은 주님의 그 끝없는 사랑의 의미를 이렇게 다시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며 우리 주님께서 끝까지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일 또한 그렇습니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향하여 세 번이나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준엄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명령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 그리고 베드로처럼 남겨진 성도들은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께서 오신다. 마라나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저주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박해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 사랑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단호한 결의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우리의 결단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고야 말겠습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고백을 따라 함께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고전 16:22, 새번역)

Maranatha

1Corinthians 16: 21-24

These are the lyrics of “Maranatha,” a popular praise song written by Ko Won-Hyung:

Maranatha, Lord Jesus Christ, O Lord come.
All the earth and all the nations praise our Lord.
Maranatha, Lord Jesus Christ, O Lord come.
Every nation shall return to Him, worshipping and dancing with joy!
Let’s make a way for our Lord.
Carrying the cross to the ends of the earth.
When the glory of God covers the earth,
We will meet our Lord Jesus Christ.
Maranatha, Maranatha, Amen.
Lord Jesus, come.

Loved by Korean Christians, this Christian Contemporary Music has filled us with grace. As you can see, the word“Maranatha” is repeated. What does Maranatha mean? Why is it used in praise and worship?

From the way the lyrics are written—“Maranatha, Lord Jesus Christ, O Lord come!”—we may guess that Maranatha means “Come, Lord Jesus.” Then what language is it?Maranatha isan Aramaic word. Aramaic was also the languagespoken by Jesus.

Then is Maranatha a word that appears in the Bible? If so, where?Many of us will immediately think of Revelation since it means“Come, Lord Jesus.”Let’s look at Revelation then: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Revelation 22:20-21)

These are the last two verses of Revelation. Here, we see, “Amen. Come, Lord Jesus.”

Although these words do meanMaranatha, the book of Revelation does not use the original Aramaic word, Maranatha. Instead, it writes“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the Greek words for “Come, Lord Jesus.” So the word Maranatha does not appear in Revelation.

Then where? Does it appear in the Bible at all? Yes, it does—just once in today’s Scripture from 1 Corinthians.

In the case of th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KRV), Maranathais not writtenin the main text of 1 Corinthians. Instead, the main text just writes “Lord Jesus, come,” which is a translation of the Greek reproduction ofMaranatha. But in the NKRV’s footnoteit says, “Or ‘Our Lord has come.’ In Aramaic, ‘Maranatha.’”

Accordingly, Maranatha is a word that appears in a footnote of the NKRV.

However, in the Revised New Korean Standard Version (RNKSV), Maranatha appears in the text. An English translation of that verse would be, “Whoever does not love the Lord be cursed! Maranatha, Lord, Come.”(1 Corinthians 16: 22 RNKSV)

Through such analyses, we find that theoriginal Greek Bible used “Maranatha,” an Aramaic word, in its text.

Then what does Maranatha mean?

According to biblical theologians, Maranatha is a combination of “Mar”, which means “Lord,” and “ata”, which means “come.” There are two ways of reading it. First, “Marana-tha.” Read this way, Maranatha becomes an invitation: “Please come, Lord.”Second, it could be read“Maran-atha,” which would mean,“the Lord has come/is coming.” So, depending on how it is read, Maranatha has two slightly different meanings.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4, p.514).

This explains why the RNKSVinserted a footnote after translating 1 Corinthians 16: 22 as “Maranatha, Lord, come.” The footnote explains that when Maranatha ispronounced“Maran-atha,”the meaning of this Aramaic word becomes “Our Lord has come.”

The Korean Revised Version (KRV),used in the past, accepted this change of meaning and translated 1 Corinthians 16:22 as follows: “Whoever does not love the Lord will be cursed. The Lord has come.”

Did all that biblical information help you? Although it was a bit complicated,just remember two clear points: 1) “Maranatha” is an Aramaic word that appears just once in the Bible (1 Corinthians 16:22); 2) It may mean either “Lord Jesus, come” or “The Lord is coming/has come.”

Theologian Karl Barth wrote in his workChurch Dogmatics that thechurch exists in the time between Christ’s first coming and the second coming. According to him, the church community exists between Jesus’ first coming and the day of His final descent. The church is a community that gathers until the Lord’s return. That is why the early church often declared “Maranatha” during worship.

The Didache, also known as The Lord’s Teaching Though the Twelve Apostles to the Nations, is a Christian treatise dated to 100A.D. written by Christians living in Syria at the time. “Maranatha” also appears in this document:

“Let grace come, and let this world pass away. Hosanna to the Son of David. If anyone is holy let him come (to the Eucharist); if anyone is not, let him repent. Maranatha. Amen.” (The Didache 10:6)

This part of The Didache is talking about “the Eucharist.”So, you can find that the early Christians used the expression “Maranatha, Lord Jesus, come” during theirholy communions, as they looked forward to their eschatological meal in the Kingdom of God.

As such, the early Christians awaited the Lord’s coming. They were able to keep their faith even underextreme persecutions and trialsprecisely because of this eschatological faith. They yearned for the kingdom of God when they worshipped, looking forward to a new heaven and new earth that would come at Jesus’ return. “Maranatha” is the very word that captures this hope.

Today is the second week of Advent. In this season, we celebrate His first coming and await His second coming. In this sense, Advent is a time to reflect on how the church, Christ’s body that awaits His coming, must stand until He returns—in other words, a time to reflect on the church’s identity.

Today’s Scripture, which contains“Maranatha,” is the very last part of 1 Corinthians—a lengthy letter written by Paul to build up the divided church in Corinth. The epistle touches upon diverse subjects, including division within the church, sexual immorality, marriage and singleness, food sacrificed to idols,improper behavior during worship, matters related to the holy communion, the gifts of the Spirit—among which love is the greatest—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so on.

Chapter 16, which includes today’s Scripture, comes at the very end of this long letter. It talks about the collection for the Lord’s people, Paul’s gratitude for Stephanas, Fortunatas, and Achaicus sent to him by the church in Corinth, and greetings from the church in Asia, Aquilla and Pricilla, and all the brothers and sisters.

Finally, Paul writes, “I, Paul, write this greeting in my own hand”,which suggests that up to that point the letter had been transcribed by someone else. This very last part is our text for today. It says in Verse 21, “I, Paul, write this greeting in my own hand.” (1 Corinthians 16: 21)

However, after this sentence, Paul’s tone changes from his previously warm one. He writes,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let that person be cursed!” (1 Corinthians 16: 22a) Then Paul adds, “Come, Lord!” (1 Corinthians 16:22b), which means Maranatha.

Paul letter, beginning in a kind voice, ends with a tension, making its readers nervous. Why does Paul do this? What is he trying to convey in his harsh words in Verse 22? Why does his tone suddenly change from a cordial one to a stiff one?

Most of all, the phrase “be cursed” is disturbing. Why does Paul talk about being cursed at the end of his letter?

Paul mentioned “curse” in other letters, too. At the beginning of Galatians, Paul writes, “But even if we or an angel from heaven should preach a gospel other than the one we preached to you, let them be under God’s curse!” (Galatians 1:9)And in the last part of 1 Corinthians, he brings up this disturbing word again: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let that person be cursed!”(1 Corinthians 16: 22)

The last part of Paul’s letter to the Christians in Corinth ends with a curse. The original Greek word for “be cursed” is “Anathema (ἀνάθεμα).” Immediately after writing “be cursed,” Paul writes “Maranatha (Μαράνα θά).” So the original Greek text would read as follows: “Anathema Maranatha (ἀνάθεμα Μαράνα θά).”

Here two questions arise. First, why did Paul curse people at the end of his letter? Second, why did he suddenly insert the Aramaic expression “Maranatha” in this part of the text? He could have used the Greek translation of Maranatha instead—as did the author of Revelation—but he didn’t. He used the Aramaic word. Why?

According to bible scholarsstudying the early church, Maranatha was anexpression often spokenby early Christians during worship, evidenced also from The Didachementioned earlier. Theologians also believe that the first part of Verse 22—that is,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let that person be cursed!”—was declared by early Christians at the end of the service.

Accordingly, it seems that Paul is concluding his letter with expressions frequently declared by early Christians duringtheir worship. If we understand this, his curse at the end of 1 Corinthians becomes more comprehensible.

Then why did early Christians say such things whenever they gathered for worship? Even if we were to establish that it was not the early Christians, but only Paul, who used these unique expressions, why did he say such curses in the context of Jesus’ second coming?

Declaring “Maranatha! Lord, Jesus, Come!” during service is a public confession of one’s yearning for Christ’s coming. This is an essential confession of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which exists between Christ’s first and second comings.

What is the most important preparation for those who await His coming? Jesus’ second coming it both a salvation and a judgement. For some, it is a blessing; for others, a curse.

From this perspective, today’s Scripture reveals the extreme danger some of us may face on the last day when Christ returns in glory. Those who do not love Christ will be cursed on that day of judgement. In short, Jesus’ coming will be a curse to those who do not love Him.

These words are not directedat the world, but at followers of Christ and people within the church—that is, us. They are Paul’s message to the readers of his letter.

Through Paul, God is teaching us the most important way of preparing for the end: love. We are immediately reminded of the precious words in 1 Corinthians Chapter 13.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or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do not have love, I am nothing.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give over my body to hardship that I may boast, but do not have love, I gain nothing.” (1 Corinthians 13:1-3)

Paul is revealing God’s voice to us: ‘Jesus is coming! When He comes, your love for Him will be verified. You will have to prove before Him whether you loved Him or not. It will not matter if you spoke in the tongues of men or of angels, if you fathome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if you had a faith that could move mountains, or if you did great things for the poor. The Lord is coming. O, Lord, come! Maranatha!’

Dear brothers and sisters, imagine you have been diagnosed with a terminal illness. The doctor says you have only 6 months left. How should you spend the time remaining?Should you pay back your debts and loans? Divide your wealth fairly? Deal with all financial matters so that your family will be supported well? These are matters someone else can do for you after you die. The most important thing to a dying person would be to “love” his loved ones. Love is the most important.

The wisest way to live your life remaining is to love. This is exactly what our Lord did too in his last hours: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stival. Jesus knew that the hour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John 13:1)

Romans expressesthis endless love of Jesus: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 8)

To His very last, Jesus showed us love.

Our wait for the Lord must be the same. What must we do as we wait for His coming? As we live a terminal life, we must love. We must love our Lord and our neighbors.

Remember what our risen Lord asked Peter by the Sea of Tiberias? He asked him three times, “Do you love me?” This is a serious question that He is asking us, too, as we await His coming in this season of Advent.

After asking Peter whether he loved Him, Jesus commanded Peter to feed his sheep. Then He went up to heaven. Christ’s followers, left behind like Peter, confessed, “Lord, Jesus, come! The Lord is coming! Maranatha!” They would say,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let that person be cursed!” (1 Corinthians 16: 22)

These words mean that His followers will wait for the Lord. They are confessing, “Lord, Jesus Come!” They will never fail to love the Lord. They are saying, “If we do not love You, then curse us when You return. We will love you to the end. Come what may—be it persecution, trials, or despair—we will never fail to love You.”

This must be our own confession and resolution today as we await His coming in faith. We must resolve to love Him to the end. Paul’s words in 1 Corinthians 16:22 are another expression of these very words. Let’s confess ourdetermination to love Him,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Paul.

“If any man love not the Lord Jesus Christ, let him be Anathema Maranatha.” (1 Corinthians 16: 22 KJV)

btn_switch

고린도전서 16: 21 ~ 24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성경에서 ‘마라나타’ 표현은 어디에 등장하며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고형원 작사, 작곡의 ‘마라나타’ 찬양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 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즘 참 많이 불리는 은혜로운 찬송 중 하나입니다. 찬송을 들으면서 ‘도대체 마라나타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 하신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물론 찬송을 가만히 듣다 보면 반복되는 가사 속에서 그 뜻을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마라타나’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어느 나라 언어일까요? 사실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아닙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 당시 고대 근동에서 사용되던 아람어입니다. 그러면 이 단어가 성경 어디에 나올까요? 많은 분들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을 들으며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22장 20~21절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

이 말씀은 성경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원어로 기록된 헬라어 성경을 보면 마라나타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헬라어로는 “에르쿠, 큐리에 이에수(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로 기록되어 있죠. 물론 원어상 의미는 “주 예수여, 오십시오.”라는 뜻을 가집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마라나타라는 말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본문을 읽으면서 마라나타라는 표현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이 마라나타를 그대로 표기하지 않고 번역된 뜻으로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장 22절, 개역개정)

여기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구절 앞에 각주가 달려 있는데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는 우리 주께서 임하셨도다. 아람어, 마라나타” 반면에 새번역 성경은 마라나타를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새번역)

다시 말씀드리면 개역개정 성경에서 마라나타를 검색하시면 나타나지 않지만, 새번역 성경에서 검색을 하시면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라나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주님’이란 뜻의 ‘마르’라는 단어와 ‘오다’라는 의미의 ‘아타’가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먼저는 ‘마라나 타(marana tha)’로 읽는 경우인데, 청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 오십시오!” 혹은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마란 아타(maran atha)’로 읽는 경우인데, 이때는 “주께서 오셨다.” “주께서 오신다.”라는 뜻으로 전자와는 조금 다르게 이해된다고 합니다(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4, p.514 참조).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라고 번역한 후에 각주를 달고 “이 아람어를 달리 마란 아타라고 읽으면, ‘우리 주님 오셨다’가 됨”이라고 표기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사용한 개역한글 성경 역시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6장 22절, 개역한글)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얼마나 유익한 정보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라나타라는 말이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단 한 번 사용된 아람어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혹은 “주께서 오신다. 오셨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간이다. 공동체는 그의 첫 번째 오심과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임하심 사이에 존재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예배 중에 마라나타를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주후 100년 경, 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혹은 ‘디다케Didache’라고 알려진 문헌이 있습니다. 화요조찬 시간에 몇 번 인용한 책이지요. 이 문헌 속에도 마라나타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은총이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나님 호산나! 어느 누가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디다케 10:6)

성찬성례전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찬을 하면서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게 될 종말적 식탁을 예견하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의 식탁에서 온전한 식사를 마주 받게 되리라는 기대를 담으며 “주 예수여 오십시오”라고 말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온갖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종말론적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더불어 시작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바라보며 그 나라가 오기를 예배 속에서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이 담긴 단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바울은 왜 저주가 담긴 선포와 함께 ‘마라나타’ 단어를 기록하였을까요?>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며 동시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는 절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교회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마라나타가 나오는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구절을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분열되어 있는 고린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공동체 안에 나타난 분열의 문제, 음행 문제, 결혼과 독신의 문제,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문제, 예배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다루며 성찬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합니다. 이 외에도 성령의 은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은사인 사랑과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 있는 16장이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조금 가벼운 이야기들을 다루죠. 성도들이 연보를 모으는 방법, 이후 전도 여행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파견했던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포함하여 모든 형제들에게 문안을 전하며 편지를 마무리하죠. 여기까지는 누군가 바울을 대신해서 편지를 써 내려간 듯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말에서 바울은 친필로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1절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고린도전서 16장 21절)

그런데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앞에서 보여 준 따뜻한 느낌보다는 조금 긴장된 분위기를 전해 줍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중)

그리고 이어서 ‘마라나 타’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라나타라는 단어가 이토록 준엄해 보이는 문장 뒤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마지막 인사를 훈훈하게 건네던 바울이 마지막 부분에서 긴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통해서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우선 ‘저주’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바울은 지금 편지의 말미에서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른 편지에서도 저주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입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장 9절)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바울은 저주를 또다시 이야기하죠.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중)

잘 써 내려가던 바울의 편지가 마지막 부분에 와서 저주로 끝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저주’라는 단어는 ‘아나테마’(ἀνάθεμα)입니다. 그리고 원문상으로는 마라나타라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아나테마 마라나 타’(ἀνάθεμα Μαράνα θά)입니다. “저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해석되죠.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로 ‘바울은 왜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주를 말하는가?’하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이곳에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 타’를 둔 이유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헬라어 표현도 있는데 굳이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타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초대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바울이 사용한 ‘마라나 타’는 앞서 디다케 문서에도 나타나듯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사용한 용어였습니다. ‘마라나 타’ 앞에 나오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며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표현 역시 초대 교회가 예배 마지막 순서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모여 함께 나눈 말을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썼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 교인들은 왜 예배 때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백 번 양보하여 혹시나 이 표현이 초대 교회 예배에서 사용된 표현이 아니고 바울의 독특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왜 바울은 주님의 오심을 이야기하면서 저주의 말을 넣었을까요? 예배 중에 우리가 “마라나타,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께서 오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하나님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오신 주님과 오실 주님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고백이기도 하죠.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은 한편으로는 구원이며, 한편으로는 심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주님의 오심은 화이고 슬픈 소식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복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강림하시는 그날, 그 심판의 날에 누군가에게 임할 극도의 위험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즉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님의 오심은 심판의 사건이 된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를 따르는 사람, 교회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서신을 읽고 있는 사람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질문하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주옥과도 같은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저주와 함께 등장한 ‘마라나타’ 표현은 오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요청합니다.>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께서 오신다! 그때에 너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했는지 검증받게 될 것이다. 방언을 했느냐, 천사의 말을 아느냐,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을 아느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느냐, 대단한 구제를 행하였느냐가 아니라 너는 주님 앞에서 네가 주님을 사랑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주님께서 정말로 오신다. 오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여러분, 만약 우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삶이 6개월 정도 남았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빌렸던 것 갚고 부채를 청산하는 일일까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일로 남겨진 시간을 채우는 일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인생을 보내실 때, 주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말씀은 주님의 그 끝없는 사랑의 의미를 이렇게 다시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며 우리 주님께서 끝까지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일 또한 그렇습니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향하여 세 번이나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준엄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명령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 그리고 베드로처럼 남겨진 성도들은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께서 오신다. 마라나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저주를 내리셔도 좋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박해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 사랑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단호한 결의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우리의 결단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고야 말겠습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고백을 따라 함께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고전 16:22, 새번역)

2021년 12월 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마라나타” (고전 16:21~24)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84, 534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고전 16:21-24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12월 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마라나타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대 근동 아람어입니다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라나타는 마라나 타’ 청유형으로 주여 오시옵소서” 라고 읽을 수 있고, ‘마란 아타’ 이렇게 읽게 되면 주께서 오셨다는 뜻이 됩니다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마지막 임하심 사이에 교회 공동체의 시간이 있습니다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또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대림절을 보내며 마라나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설교의 요약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계 22:20~21)에 아멘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록하지만 이는 아람어 마라나타가 아니라 헬라어로 되어있습니다아람어 마라나타의 표현은 오늘 본문 속(고전 16:22)에 딱 한 번 언급합니다초대교회 공동체에 사용되었던 예배문서(디다케 10:6)를 보면 성찬 성례전을 받을 때 성도들이 불렀던 노래 중에 마라나타가 있습니다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찬을 할 때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종말적 식탁을 예견하면서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온갖 시련과 박해들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음은 이 노래를 부르며 이미 오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간절히 바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이 단어가 마라나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성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문안을 전하면서 마무리되는 내용입니다훈훈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바울은 사뭇 다른 긴장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그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라는 것입니다왜 바울은 감사와 문안의 인사를 전하다 저주의 표현을 썼을까요저주의 표현 바로 뒤에는 마라나 타를 덧붙였는데왜 아람어 표현인 마라나 타를 이곳에 써 넣었을까요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울이 사용한 마라나 타는 초대교회 예배문서(디다케)에 나타난 예배 용어였다고 합니다그리고 저주의 표현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배 때마다 마지막 부분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그렇다면 왜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배 때마다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그냥 바울의 독특한 표현이더라도 주님의 오심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저주의 말을 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재림은 한편으론 구원이고한편으론 심판입니다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강림하실 그 날 어떤 사람에게는 극도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이는 서신을 읽고 있는 성도들을 향한 명령이고 예배 중 공적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본질적 고백입니다성도들이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바로 사랑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교회 공동체의 시간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채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주님께서도 마지막 시간끝까지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셨습니다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세 번이나 물으셨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은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주시는 준엄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물음에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고백은 어떤 박해와 고난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겠다는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리겠다는 우리의 고백이며 결단입니다.

나누기

1. 대림절을 보내며 나는 어떤 기대감과 삶의 자세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까?

2. “마라나타” 외칠 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물음에 내가 드릴 응답은 어떠합니까?

마무리기도

    마라나타주 예수님 오시옵소서약속의 주님을 기다립니다이 기다림의 시간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끝까지 실망치 않고 주님 사랑하게 하옵소서사랑으로 우리의 종말주님의 심판을 준비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Connection Car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