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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이야기가 세 번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가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한 번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독특하게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세 번 소개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는 누가복음 6장에 소개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에 오른손 마른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엿보고 있다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이유로 고발하려 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도리어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에 세우시고는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지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는 것이 옳으냐 (누가복음 6장 9절 중)
이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공통 본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이 누가복음에는 추가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이 그중 하나입니다. 누가복음 13장 말씀은 앞선 6장의 내용과 비슷한 맥락 안에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부르시며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시며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의 몸이 곧게 펴졌고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6장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죠.
이어지는 내용은 여인을 고치신 일이 안식일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서 살아가던 여인의 몸이 곧게 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자, 회당장이 화를 내며 무리들 앞에서 말합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누가복음 13장 14절 중, 새번역)
회당장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3장 15~16절 중, 새번역)
이렇게 말씀하시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였고, 모인 무리들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다음 장인 누가복음 14장은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 주신 예수님 이야기를 전하며 안식일에 대한 또 다른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서로 다른 사건이 세 곳에 나타납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시며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계시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깨닫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에 매여 있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들어가 가르치고 계실 때, 그곳에 있던 한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 여인은 꼬부라져 얼굴을 들지 못하였고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굽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세가 잘못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 여인이 귀신에 들려 앓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한마디로 그 여인은 귀신에게 지배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두고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인은 사탄에게 무려 18년 동안이나 매여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등이 굽은 사람 모두 사탄에 매여 있다거나 귀신들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세가 잘못되어 등이 굽을 수도 있고, 척추나 골격에 문제가 생겨 혹은 병이 생겨서 등이 굽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등이 굽는 일이 때로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사탄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살아가는 일상의 다양한 곳에서 귀신들림 혹은 사탄에게 매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병이고 잘못된 습관에서 오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사탄에게 붙잡힌 포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돈을 좋아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과 재물에 매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돈을 버는 일에, 돈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 즉 사탄이 그에게 돈을 미끼로 해서 그를 붙잡아 매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돈 때문에 비굴해지거나 돈이 없어서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강퍅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교만해집니다.
선거 때에 돈을 뿌리며 유세하던 한 후보가 낙선을 하고 난 뒤에 후회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무엇엔가 홀렸던 것 같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선거에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어느 누구의 충고도 들리지 않더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살기보다는 어떤 힘에 압도되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병의 힘에 눌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한 번 병에 걸리면 좀처럼 그 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 병만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병만이 우리를 붙잡는 것은 아닙니다. 정욕에 빠져서 이성의 매력에 압도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탄은 성적인 것, 정욕과 탐심을 매개로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만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사상과 이념에 완전히 묶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상이 서로 다를 순 있죠. 그러나 그 사상을 매개로 사탄이 그를 붙잡아서 종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물론 병이 사탄은 아니고, 이성을 좋아하는 것 역시 사탄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런저런 나약한 틈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망가뜨리기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 놓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사탄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채로 그저 땅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사탄의 매임이 어떤 의미인지를 유비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녀가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도록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18년 동안 땅만 보며 산 여인의 인생이었습니다. 이것이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늘을 보면 새가 날아가고, 하늘을 보면 우주가 있고, 하늘을 보면 별이 빛납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인의 등을 굽게 하여 더 이상 높은 곳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 땅,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여인은 18년을 살아갑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본문 속 여인이 회당에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 여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구부러진 등은 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 또한 입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나가는 종교 생활만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셨고, 18년 동안 억누르던 매임으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 성경은 단순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원문은 보다 극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1절 원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καὶ ἰδοὺ, γυνὴ (카이 이두 귀네, 그리고 보라 한 여인이)
성경은 한 여인을 집중하도록 요청하면서 예수님에게 이 여인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어지는 12절 원문입니다.
ἰδὼν δὲ αὐτὴν ὁ Ἰησοῦς (이돈 데 아우텐 호 예수스,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
흥미롭게도 원문은 ‘보셨다’는 말을 먼저 두고 있습니다. 귀신들리고 꼬부라진 여인, 18년 동안 숨어 있었던 그 여인, 땅만을 바라보며 안식일마다 회당 마당을 밟던 그 여인을 주님께서 ‘보셨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발견된 귀신들린 여인, 꼬부라진 여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예수님에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녀가 회당에 있을 때에 주님께 발견되었습니다. 18년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찾으며 회당에 나온 그녀가 드디어 예수님께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풀려났다. (ἀπολέλυσαι) (아포레뤼싸이)
완료형으로 표현된 이 말씀은 여인이 이미 풀려났음을 선언합니다. 사탄은 그녀를 매어 두고 묶어 두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풀어 주십니다. 자유케 하십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서는 고통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해방이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주리시며 사탄에게 시험받으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묶어 보려 하였으나 예수님은 사탄에게 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첫 사역을 위해 주님은 갈릴리로 내려오셨고, 회당을 첫 번째로 방문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어 선포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장 18~19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로 된 자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주님이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자 예수님의 존재 이유이며,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오늘 이 말씀이 큰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 이 여인의 자리에 각자의 이름을 넣어 조용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풀려났다.” 죽을병에서, 더러운 습관에서, 욕심에서, 집착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집에서, 고정관념에서, 헛된 이념에서, 붙잡혀 있던 모든 것에서 풀려났다!
“나는 너에게 자유를 준다.” 이것이 주님의 복음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귀신들린 채로 꼬부라져서 18년 동안이나 힘들게 땅만 보며 살았던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 발견되어 고침을 받고 놓임을 얻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바로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해방하시는 사역은 오늘 본문에 두 번 더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해방의 모습이 있습니다. ‘회당’이라는 곳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매인 바 된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사실 남자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여인들은 회당의 뒷 공간에 있어야 했고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토론할 수도 없었고, 회당에서 찬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안식일에 회당의 마당만을 밟고 지나가던 그 여인, 땅만 바라보며 18년을 살아온 여인을 주목하시고는 회당의 중앙으로 끌어내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모든 남자들 앞에서 고쳐 주십니다. 얼굴을 들게 하시고 가슴을 펴게 하시고 하늘을 보게 하셨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공간으로 여인을 부르시고는 안수하고 고쳐 주시며 노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묶이고 매인 것을 풀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매임과 예수님의 풀어내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여인을 고쳐 주시자 회당장이 분노하였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였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분노를 표출했을 것입니다. 회당장이 말합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누가복음 13장 14절 중)
회당장은 출애굽기 10장 8~10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암시하면서 엿새 동안은 일하지만 안식일에는 모든 것을 쉬어야 한다는 안식일 법을 말합니다. 이 정신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치유 행위를 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안식일 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지, 왜 안식일에 가축들을 풀어 주도록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3장 15절 중)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안식일을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명하십니다. 노동에서 쉼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모든 매였던 것에서 풀림을 받고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자리가 안식일이 아니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다른 조건으로 안식일을 묶어 내고 제한을 둠으로써 도리어 안식일에 묶여 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법과 규례를 깨트리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의 기본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요청하고 계셨습니다. 참된 자유와 참된 해방을 누리는 날로서의 안식일로 돌아가도록 요청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올려 드리는 날로서의 안식일을 다시 세워 가고 계셨습니다. 여자이든지 남자이든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은혜에 감격하여 찬송하는 날로서의 안식일입니다.
주님은 안식일 법과 규례에 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푸시고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32절 중, 새번역)
참된 자유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그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시고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해방을 통해, 놓임과 풀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매임에서 자유케 하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어지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와도 연관성이 깊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마치 채소밭에 갖다 싶은 겨자씨와 같다. 그것이 자라나 나무가 되고 그곳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머물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도 같을까? 밀가루에 넣은 누룩과도 같아서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요? 그 나라는 매임에서 풀리는 나라요, 포로된 것에서 해방되는 나라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일을 이미 이 땅에서 시작하셨고 그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작은 것 같으나 결국은 크게 되고,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 같으나 결국엔 모든 것에 미치게 될 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조급함을 통해 우리를 또 다시 매여 두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이 나라를 기대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함께 나서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는 듯 보이는 오늘의 현장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되길 원하십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자는 말씀도 아니고, 백신을 맞지 말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백신도 맞고 마스크도 쓰고 방역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병은 병이고,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바이러스를 매개로 우리가 사탄에게 매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위축된다면, 특별히 신앙이 위축된다면 매이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해방시키기를 원하시는 주님, 자유케 하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숨어 있던 여인을 발견하시고 건네신 말씀, “네가 풀려났다. 네가 놓임을 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위로를 주시며 희망을 주십니다.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드디어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가 풀려났다
네가 놓임을 받았느니라.”
You Have Been Set Free
Luke 13:10-17
Today’s text from Luke is about Jesus healing the sick on the Sabbath. The book of Luke is special in that it introduces three healings by Jesus, while the other Synoptic Gospels mention one.
The incident commonly mentioned in Matthew, Mark, and Luke is described in Luke 6. When Jesus was teaching in the synagogue, He saw a man whose right hand was shriveled.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Pharisees were watching to see if Jesus would heal on the Sabbath because they were looking for a reason to accuse him. Knowing this, Jesus stood the man up in the center and healed him, saying, “I ask you, which is lawful on the Sabbath: to do good or to do evil, to save life or to destroy it?”(Luke 6: 9) This is the story thatalso appears in Matthew and Mark.
The book of Luke, however, introduces two more stories of Jesus healing the sick on the Sabbath, one of which is described in today’s passage, Luke 13:10-17.
The context of this text is similar to that of Luke chapter 6.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While He was teaching, He saw a woman who had been crippled by a spirit for 18 years. So He called her forward, laid his hands on her, and proclaimed, “Woman, you are set free from your infirmity.” She immediately straightened up and gave glory to God. A story not so different from the one in chapter 6.
Moreover, theensuing events make it clear that this woman’s healing has something to do with Sabbath issues. When the woman praised God for her healing, the synagogue leader got furious, and this is what he said to the people: “There are six days for work. So come and be healed on those days, not on the Sabbath.” (Luke 13: 14)
Jesus answered, “You hypocrites! Doesn’t each of you on the Sabbath untie your ox or donkey from the stall and lead it out to give it water? Then should not this woman, a daughter of Abraham, whom Satan has kept bound for eighteen long years, be set free on the Sabbath day from what bound her?”(Luke 13: 15-16)These words of Jesus put his opponents to shame, and the crowd rejoiced.
Furthermore, in Luke chapter 14, another story of Jesus’ healing is introduced. As He healed a man suffering from an abnormal swelling of his body, Jesus talked about the Sabbath.
As such, the book of Luke mentions three different stories on Jesus healing the sick on the Sabbath. We can tell that God wants to speak to us about the importance of Jesus healing the sick on the Sabbath through Luke. So what is God’s message for us today? What does God want to say to us through Luke 13? I hope we will hear his voice by studying this passage carefully.
In today’s text, Jesus saw a woman as He was teaching in the synagogue—a woman so crippled that she could not even lift her face, let alone look to the sky. The problem was not just her posture. The Bible tells us that an evil spirit had caused this physical condition. She was possessed by a demon. In verse 16, Jesus referred to this woman as “a daughter of Abraham, whom Satan has kept bound for eighteen long years.” For 18 years, this woman had been bound by Satan.
This does not mean that every crippled person i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or bound by Satan. Some people have bent backs because of a poor posture, a spinal problem, or some other medical condition. Today’s passage, however, saysthat a bent back may be caused by Satan, not just by medical reasons.
In other words, the passage is telling us that, in our daily lives and in various occasions, we may experience a demonic possession or may be bound by Satan. Even ifa problem appears to be aphysical disease, a result of a bad habit, orsimply one of the diverse forms of the human condition, it may, in certain cases, be a state of being bound by Satan.
Everyone likes money and engages in some sort of economic activity. But, among them, there are those who are bound by Satan. There are those who are so obsessed with money and wealth that all they do in life is make money and guard it. They have been bound by Satan who uses money to bait and trap them. Both the poor and the wealthy fall into this trap: Satan makes the poor feel that their lack of wealth makes them inferior and worthless, while using money to turn rich people into selfish, cold, pompous, and proud beings.
I once heard a failed politician, who tried to buy votes by handing out cash, confess with regret, “I don’t know what came over me then. All I could think about was wining the elections—no matter what. No advice could stop me.” Looking at the world around us, I often see that men become so overpowered by a force that they live enslaved to it, rather than live freely according to their own will.
There are many sick people in the hospital. Once you fall sick, it isnot easy to free yourself from the force of that sickness. My heart breaks when I see people who have been so overpowered by their disease that they simply cannot get up from their beds. In such cases, it is not just the sickness itself that is affecting them.
Some peopleare so overpowered by a sexual attraction that they lose all control. Sometimes Satan uses sexual attraction, lust, and greed to bind us. It is not just the physically bound who are in chains. Some people are helplessly bound by wrong ideas and arguments. Humans are free to have different ideas. But we must also be aware that Satan sometimes uses those ideas to enslave us.
A disease in itself is not Satan. A sexual attraction per se is not the devil, either. But we must remember that Satan works to control and destroy man by using his many weaknesses. And being under the influence of Satan is painful.
The woman in today’s passage was bound by Satan for 18 years who left her crippled and unable to lift her head. This is a good analogy of what is means to be bound by Satan. The woman had looked down for 18 years! Satan controlled her so she could not look up to the sky. For 18 whole years, she had only looked at the ground beneath her. This captures the state of a demon-possessed man. When we look up, we can see the birds andthe stars in the sky and the universe. But Satan made this woman so bent and crippled that she could not look up to a higher place. The enemy made her see only this world. This is how she lived for almost 20 years.
One fortunate thing is that she had come 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She had probably come on every Sabbath. She was practicing her religion faithfully. Yet, her physical condition never got better, and she never experienced the grace of God despite her observance of the Sabbath.
That is when Jesus entered the synagogue and saw her. Although the Bible mentions this rather briefly in a matter-of-fact way, the fact that Jesus “saw her” in itself is a groundbreaking event.
In Hebrew the first part of verse 11 is as follows:“καὶ ἰδοὺ, γυνὴ”, which means “See, there was a woman.”By calling us to pay attention to the woman, the Bible is telling us that this woman was clearlynoticed by Jesus.Then verse 12 in Hebrew starts with “ἰδὼν δὲ αὐτὴν ὁ Ἰησοῦς,” which means “Jesus saw the woman.”
Jesus saw the woman. He saw her who had been crippled for 18 years, who had been coming to the synagogue all those years, just looking down. Jesus saw. He saw her—the woman. She was found by Him. Jesus found the woman who had been crippled by an evil spirit.
Our hope is that we will be found by Jesus. When the woman was in the synagogue, she was found by Jesus. This woman who had sought the grace of God for 18 years in the synagogue was finally found by God, our Lord. And our Lord said to her, “You have been set free.” In Hebrew it is written in the past perfect, “ἀπολέλυσαι.”
Although Satan tried to bind and chain her, Jesus freed her. He gave her freedom. Being controlled by Satan is pain, but meeting Jesus is freedom. We become free when we meet Jesus. He came to earth precisely for this ministry.
According to Luke, Jesus, before starting his ministry, was tempted by Satan after fasting 40 days and 40 nights. Satan tried to bind our Lord, but He was not bound by the enemy. After overcoming these temptations, Jesus went to Galilee and into the synagogue, and started his first ministry. He declared these words from Isaiah: “The Spirit of the Lord is 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oclaim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to set the oppressed free,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Luke 4: 18-19)
My brothers and sisters, why did Jesus come to earth? He came to proclaim freedom for the prisoners and to set the oppressed free. This was Jesus’s mission, his raison d’etre.
I pray that these words will give you great grace: “Jesus saw the woman.” Let’s put our names in her place. “Jesus saw me, Kyeong Jin.” And He speaks to me, “You have been set free.”
You have been set free from all that bound you—deadly diseases, filthy habits, desires, obsessions, compulsions, rigid ideas, and worthless ideologies. I give you freedom. This is our Lord’s gospel, the gift from our Lord, and grace.
The woman who was crippled by an evil spirit for 18 years was healed and set free after being found by our Lord. This is grace. If this happens to us, this is salvation.
Another dimension of freedom lies hidden in today’s text. In a sense, the synagogue, too, was a bound space. It was actually a place for men. Women had to stay in the back, which prevented them from hearing the word directly. They could neither participate in discussions on Scripturenor sing praises in the synagogue.
But what did Jesus do? He paid attention to a woman who had been coming just to the “courts” of the synagogue for 18 years, looking down, and placed her at the center. He healed her in front of all the men. He made her straighten her back, lift her face, and look up. He made her praise and glorify God in that very place.
He called her to a space that had been closed to women, laid his hands on her, healed her, and made her praise God—right there. Our Jesus is a Lord who sets the oppressed free and unbinds the bound.
The incidents that follow her healing is also a story about being bound and Jesus’ unbinding. The Bible tells us that when Jesus healed the woman, the synagogue leader was furious. Was this a holy anger? The leader probably thought so for he said, “There are six days for work. So come and be healed on those days, not on the Sabbath.” (Luke 13: 14) Here he is alluding to Exodus 10:8-19, which commands the Israelites to rest from all work on the Sabbath, after working six days. In fact, the Jews taught that on the Sabbath acts of healing should be done only when a person’s life was in peril. This shows just how bound they were to the law.
However, our Lord spoke—making us consider the true spirit of the Sabbath and why the Jews untie their oxen and donkeys on it: “Doesn’t each of you on the Sabbath untie your ox or donkey from the stall and lead it out to give it water?” (Luke 13: 15)
The reason God made the Sabbath was to give rest to all creatures and to freethem from labor on that day. In other words, God’s intention is that all things bound be free and unbound on the Sabbath.
Jesus also tore down the laws and rules regarding the Sabbath. He made the Jews return to the fundamental spirit of the Sabbath. He restored the Sabbath as a day for enjoying true freedom and liberation. The Sabbath was restored to a day of giving praise and glory to God. The Sabbath became a day on which man, woman, and all creation praised God for his grace.
Jesus freed those who were bound by the laws and regulations on the Sabbath. Therefore, He is One who gives us true freedom. Our Lord is a Lord who unbinds and frees all things. This is our Jesus.
This is why Jesus said,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ohn 8: 31-32)
There is true freedom in Christ. He came to earth to give us freedom and liberation. The kingdom of God is built on this freedom, setting free, and unbinding.
This is whytoday’s passage is followed by the parables of the mustard seed and yeast, which point to the kingdom of God. The passage that comes right after today’s text is as follows. Jesus taught the kingdom of God in parables, saying that it is like a mustard seed planted in the ground. The tiny seed grows into such a large tree that even birds come to rest in it. The kingdom of God is also like yeast in a dough. Although the yeast seems miniscule, it has the power to change all things.
What is the kingdom of God like? It is a place where all things bound are unbound and all the oppressed are set free. This ministry that our Lord started is happening even now. Although this ministry looks small, it will become great. Although it may appear to have no impact, it will eventually change all things. This is the kingdom of God. It is crucial that we see thiswith faith. But we must not be anxious. We must not let impatience bind us. We must await and look forward to this kingdom in faith. We must participate in building it.
Today it appears Covid-19 has overpowered us and all things. But our Lord does not want us to be bound by it. He wants us to be set free from it. A disease is just a disease, a virus just a virus. I pray that Satan will not bind us with this virus.
Jesus saw me. And He said, “You have been set free.” Jesus comforts us and gives us hope with these words.
누가복음 13: 10 ~ 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누가복음에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이야기가 세 번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가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한 번 나타나지만, 누가복음에는 독특하게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세 번 소개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는 누가복음 6장에 소개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에 오른손 마른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엿보고 있다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이유로 고발하려 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도리어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에 세우시고는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지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는 것이 옳으냐 (누가복음 6장 9절 중)
이 내용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공통 본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이 누가복음에는 추가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이 그중 하나입니다. 누가복음 13장 말씀은 앞선 6장의 내용과 비슷한 맥락 안에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부르시며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시며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의 몸이 곧게 펴졌고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6장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죠.
이어지는 내용은 여인을 고치신 일이 안식일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서 살아가던 여인의 몸이 곧게 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자, 회당장이 화를 내며 무리들 앞에서 말합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누가복음 13장 14절 중, 새번역)
회당장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3장 15~16절 중, 새번역)
이렇게 말씀하시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였고, 모인 무리들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다음 장인 누가복음 14장은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 주신 예수님 이야기를 전하며 안식일에 대한 또 다른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서로 다른 사건이 세 곳에 나타납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시며 말씀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계시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깨닫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에 매여 있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들어가 가르치고 계실 때, 그곳에 있던 한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 여인은 꼬부라져 얼굴을 들지 못하였고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굽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세가 잘못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 여인이 귀신에 들려 앓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한마디로 그 여인은 귀신에게 지배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두고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인은 사탄에게 무려 18년 동안이나 매여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등이 굽은 사람 모두 사탄에 매여 있다거나 귀신들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세가 잘못되어 등이 굽을 수도 있고, 척추나 골격에 문제가 생겨 혹은 병이 생겨서 등이 굽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등이 굽는 일이 때로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사탄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살아가는 일상의 다양한 곳에서 귀신들림 혹은 사탄에게 매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병이고 잘못된 습관에서 오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사탄에게 붙잡힌 포로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돈을 좋아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돈과 재물에 매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돈을 버는 일에, 돈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 즉 사탄이 그에게 돈을 미끼로 해서 그를 붙잡아 매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돈 때문에 비굴해지거나 돈이 없어서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강퍅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교만해집니다.
선거 때에 돈을 뿌리며 유세하던 한 후보가 낙선을 하고 난 뒤에 후회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무엇엔가 홀렸던 것 같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선거에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어느 누구의 충고도 들리지 않더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살기보다는 어떤 힘에 압도되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병의 힘에 눌려 있는 것을 봅니다. 한 번 병에 걸리면 좀처럼 그 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 병만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병만이 우리를 붙잡는 것은 아닙니다. 정욕에 빠져서 이성의 매력에 압도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탄은 성적인 것, 정욕과 탐심을 매개로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만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사상과 이념에 완전히 묶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상이 서로 다를 순 있죠. 그러나 그 사상을 매개로 사탄이 그를 붙잡아서 종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물론 병이 사탄은 아니고, 이성을 좋아하는 것 역시 사탄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런저런 나약한 틈을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망가뜨리기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 놓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사탄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고개를 들 수 없는 채로 그저 땅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사탄의 매임이 어떤 의미인지를 유비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녀가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도록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18년 동안 땅만 보며 산 여인의 인생이었습니다. 이것이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늘을 보면 새가 날아가고, 하늘을 보면 우주가 있고, 하늘을 보면 별이 빛납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인의 등을 굽게 하여 더 이상 높은 곳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 땅,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여인은 18년을 살아갑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본문 속 여인이 회당에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 여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구부러진 등은 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 또한 입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나가는 종교 생활만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셨고, 18년 동안 억누르던 매임으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 성경은 단순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원문은 보다 극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1절 원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καὶ ἰδοὺ, γυνὴ (카이 이두 귀네, 그리고 보라 한 여인이)
성경은 한 여인을 집중하도록 요청하면서 예수님에게 이 여인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어지는 12절 원문입니다.
ἰδὼν δὲ αὐτὴν ὁ Ἰησοῦς (이돈 데 아우텐 호 예수스,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
흥미롭게도 원문은 ‘보셨다’는 말을 먼저 두고 있습니다. 귀신들리고 꼬부라진 여인, 18년 동안 숨어 있었던 그 여인, 땅만을 바라보며 안식일마다 회당 마당을 밟던 그 여인을 주님께서 ‘보셨다’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발견된 귀신들린 여인, 꼬부라진 여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예수님에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녀가 회당에 있을 때에 주님께 발견되었습니다. 18년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찾으며 회당에 나온 그녀가 드디어 예수님께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네가 풀려났다. (ἀπολέλυσαι) (아포레뤼싸이)
완료형으로 표현된 이 말씀은 여인이 이미 풀려났음을 선언합니다. 사탄은 그녀를 매어 두고 묶어 두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풀어 주십니다. 자유케 하십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서는 고통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해방이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주리시며 사탄에게 시험받으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묶어 보려 하였으나 예수님은 사탄에게 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첫 사역을 위해 주님은 갈릴리로 내려오셨고, 회당을 첫 번째로 방문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어 선포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장 18~19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로 된 자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주님이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자 예수님의 존재 이유이며,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오늘 이 말씀이 큰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 이 여인의 자리에 각자의 이름을 넣어 조용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풀려났다.” 죽을병에서, 더러운 습관에서, 욕심에서, 집착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집에서, 고정관념에서, 헛된 이념에서, 붙잡혀 있던 모든 것에서 풀려났다!
“나는 너에게 자유를 준다.” 이것이 주님의 복음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귀신들린 채로 꼬부라져서 18년 동안이나 힘들게 땅만 보며 살았던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 발견되어 고침을 받고 놓임을 얻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바로 나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해방하시는 사역은 오늘 본문에 두 번 더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해방의 모습이 있습니다. ‘회당’이라는 곳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매인 바 된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사실 남자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여인들은 회당의 뒷 공간에 있어야 했고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토론할 수도 없었고, 회당에서 찬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안식일에 회당의 마당만을 밟고 지나가던 그 여인, 땅만 바라보며 18년을 살아온 여인을 주목하시고는 회당의 중앙으로 끌어내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모든 남자들 앞에서 고쳐 주십니다. 얼굴을 들게 하시고 가슴을 펴게 하시고 하늘을 보게 하셨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공간으로 여인을 부르시고는 안수하고 고쳐 주시며 노래하게 하신 것입니다.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묶이고 매인 것을 풀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매임과 예수님의 풀어내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여인을 고쳐 주시자 회당장이 분노하였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그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였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분노를 표출했을 것입니다. 회당장이 말합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누가복음 13장 14절 중)
회당장은 출애굽기 10장 8~10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암시하면서 엿새 동안은 일하지만 안식일에는 모든 것을 쉬어야 한다는 안식일 법을 말합니다. 이 정신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치유 행위를 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안식일 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기본 정신이 무엇인지, 왜 안식일에 가축들을 풀어 주도록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3장 15절 중)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안식일을 만드신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명하십니다. 노동에서 쉼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모든 매였던 것에서 풀림을 받고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자리가 안식일이 아니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다른 조건으로 안식일을 묶어 내고 제한을 둠으로써 도리어 안식일에 묶여 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법과 규례를 깨트리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의 기본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요청하고 계셨습니다. 참된 자유와 참된 해방을 누리는 날로서의 안식일로 돌아가도록 요청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올려 드리는 날로서의 안식일을 다시 세워 가고 계셨습니다. 여자이든지 남자이든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은혜에 감격하여 찬송하는 날로서의 안식일입니다.
주님은 안식일 법과 규례에 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푸시고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32절 중, 새번역)
참된 자유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그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시고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해방을 통해, 놓임과 풀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매임에서 자유케 하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어지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와도 연관성이 깊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마치 채소밭에 갖다 싶은 겨자씨와 같다. 그것이 자라나 나무가 되고 그곳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머물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도 같을까? 밀가루에 넣은 누룩과도 같아서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요? 그 나라는 매임에서 풀리는 나라요, 포로된 것에서 해방되는 나라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일을 이미 이 땅에서 시작하셨고 그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작은 것 같으나 결국은 크게 되고,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 같으나 결국엔 모든 것에 미치게 될 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조급함을 통해 우리를 또 다시 매여 두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이 나라를 기대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함께 나서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는 듯 보이는 오늘의 현장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되길 원하십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자는 말씀도 아니고, 백신을 맞지 말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백신도 맞고 마스크도 쓰고 방역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병은 병이고,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바이러스를 매개로 우리가 사탄에게 매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위축된다면, 특별히 신앙이 위축된다면 매이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해방시키기를 원하시는 주님, 자유케 하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숨어 있던 여인을 발견하시고 건네신 말씀, “네가 풀려났다. 네가 놓임을 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에게 위로를 주시며 희망을 주십니다.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드디어 보셨다, 나를. 예수께서!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가 풀려났다
네가 놓임을 받았느니라.”
2021년 7월 2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매임에서 풀려나리라” (눅 13:10~17)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92장, 408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눅 13:10~17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7월 2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사는 듯 보이나, 무언가에 매여 꼼짝달싹 못하고 그 힘에 눌려 살아갑니다. 오랜 병의 힘에 눌리기도 하고, 정욕과 탐심에 매여 지배당하고 결국은 망가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엔 무언가에 매인 바 된 자들의 모습들이 나옵니다. 또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이 매임에서 너희를 풀겠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럼 매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며, 매인 것을 풀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설교의 요약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한 여인을 보셨습니다. 귀신이 들려 앓으며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꼬부라져 등이 굽은 여인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땅만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사탄에 매여 조종당하는 인간의 연약한 현실을 유비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사탄은 나약한 틈새를 이용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망가트리려 하죠. 끊임없이 땅의 것에 매이도록 하면서, 그저 땅만 바라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없게 조종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보셨습니다. 원문으로 보면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여인이 예수님께 발견되어졌음을 말합니다. 18년 동안 고통 속에서 땅만 바라보며 회당을 들고 나갔던 여인이 예수님께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매여 고통 속에 사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예수님께 발견되어 지는 것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자(눅 4:18~19)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되어 고통과 아픔에 있던 그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병에서 풀려났다”
예수님은 죽을 병에서, 더러운 습관들, 집착과 아집, 헛된 이념, 고정관념에 매여 있는 우리를 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를 매이게 했던 그 모든 것에서 네가 풀려났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일어나는 은혜이고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분노했던 회당장은 안식일의 법과 규례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정신은 매임에 있지 않습니다. 노동에서 쉼을 얻게 하고, 매여 있던 것에서 자유를 주기 위함이 안식일의 참 의미입니다. 매임에서 풀리고 포로 된 것에서 해방됨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자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 일은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봄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조급함에 매여서도 안 됩니다. 조급함을 통해 사탄에게 매여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그 나라를 기다리며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함께 나서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지만 주님은 우리가 매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자유로워지고 해방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여인을 해방케 하고 자유하게 했던 그 선포가 오늘 나를 향해 있음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나누기
1. 돌아볼 때 나를 매이도록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2. “보셨다 그 여인을 예수께서” 여인의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은혜의 시선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입니까? “네가 풀려났다”는 자유와 해방의 선포가 어떻게 다가옵니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되돌아보니 오랫동안 매여서 사탄의 종으로 전락한 내 모습을 봅니다. 그런 나를 긍휼하게 여기시어 오늘도 예수님께서 봐주셨습니다. 그 모든 매임과 고통에서 풀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은혜를 온전히 알고 누리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