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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가 마른 이유

마태복음 21: 18 ~ 22

김경진 목사

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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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 18 ~ 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흥미롭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오늘 본문 말씀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와 마가복음, 두 곳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고난당하신 주간의 월요일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나흘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내용으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나귀를 타고 성으로 입성하신 후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는 흐름과 연결됩니다.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신 후에 베다니로 가셔서 하룻밤을 보내시고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오시던 그때에 길가에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신 예수님이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를 보시고는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마 21:19 중)

마태복음은 그 결과 나무가 즉시 말랐다고 기록합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예수님과 함께 있던 베드로가 뿌리째 말라 있는 무화과나무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시간을 조금 달리 두고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모습을 알려 줍니다. 이런 점에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은 우리를 조금 당황하게 만듭니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막 11:12~13)

이 구절이 조금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불편한 점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먹을 것을 찾으러 가셨다는 것과, 무엇보다 마지막에 기록된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는 구절이 참으로 혼란스럽게 합니다. 때가 아닌데도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가셔서 열매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심지어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닌 무화과나무 앞에 가셔서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까지 하셨습니다. 왜 이토록 저주를 하셔야만 하셨는지 질문해 볼 때 마음이 상하는 건 사실입니다. 게다가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며 사탄의 유혹도 이기신 예수님이 지금은 시장기를 참지 못하셨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단지 예수님이 분노 조절에 실패하시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셨던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동시에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때가 아닌 무화과나무를 향해 저주하신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이 예수님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0~22)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보이시며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관하여서도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더라도 때가 이르지 아니한 무화과나무를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저주하였을 때조차 그 말이 실현된다는 것인가? 그럼 믿기만 하면 그럼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가?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시라도 때가 이르지 않은 무화과나무였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야 하지 않으셨을까요? “얘야, 아무리 네가 나의 외아들이어도 아직은 때가 아니지 않니? 그러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내가 자연의 질서를 세울 때 이미 너는 알고 있지 않았느냐. 때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는 이 말은 들어주기가 어렵겠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 내용도 너무 무리한 예를 드시는 것 같아 와닿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 21:21 중)” 이 말씀은 믿음만 있으면 그렇게 되리라는 일종의 과장법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전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단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아직은 때가 아니라 할지라도, 시장하여서 화를 참지 못하시고 하신 말씀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말씀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자 참입니다. 그렇게 큰 능력을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 다시 그 입술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중)”
사실 때가 아닌 나무는 변호를 받아 마땅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은 실현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요 생명력을 갖습니다. 때가 아닐 때조차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내용은 이루어집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자 주님의 계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기도’는 무화과나무 사건 직전에 기록된 성전 정화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본문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조금 더 넓게 살펴보아야 할 한 가지 주제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과 평행하여서 마태, 마가복음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수난당하시기 전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깨끗하게 정화하신 사건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셔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신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올라가셔서 깨끗하게 하셨다고 고백하지만 당시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난동을 부르신 것에 가깝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미친 사람처럼 보이셨던 것이죠. 그럼에도 예수님은 성전을 바르게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전이 제 기능을 찾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마 21:13 중)

예수께서 성전에 오르시고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시기에 제자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꼭 알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성전에 올라가셔서 사람들을 쫓으시는 상징적 행위를 보여 주셨고,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표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두 가지 사건의 주제는 기도이고, 기도를 하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성전에 오르셔서 사람들을 내쫓으신 사건이 보다 확장되어 소개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21)

보이는 성전이 이제 예수님으로 대체될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과 연결시킨다면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니라. 성전에서는 기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곧 보이는 성전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성전이 나타날 것이다. 바로 내가 너희에게 성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안에 거하여 무엇이든지 구하여라.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받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성전을 정화하신 그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며 기도하라고 명하심은 성전 되신 그분 안에 거하며 성령의 임재를 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주님은 무화과사건을 통하여서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위력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백성,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의 삶 속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기도라는 이 귀한 선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무 것이나 구해도 되겠습니까? 어찌 보면 이 말씀은 무한한 자유를 주시는 것도 같고 모든 욕망을 채우게 하시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 “너희 원하는 대로 구하라.” 말씀하신 데에 한두 가지 예가 함께 설명됩니다. 그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부요함이나 생명의 연장, 자녀의 출세, 세상적인 성공을 구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후에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요 15:16~17)

무엇을 구하라는 말씀입니까? 사랑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흐름이 마가복음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막 11:24~25)

주님께서는 사랑을 구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라는 것이죠. 그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중)

이렇게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시며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다음에도 우리 주님은 용서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1~23)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성령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 거절되지 아니할 우리의 간구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또한 용서의 능력이십니다. 사랑의 능력이십니다. 한마디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모든 열매들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만큼 세상에서 값진 삶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설교를 들으시면서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속았다! 아무거나 다 구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실 줄 알았는데, 무조건 다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주실 줄 알았는데 …’ 하는 마음이 드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이 덕목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시진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죠.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시각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보게 되고 영원과 잇대어지게 됩니다. 짧은 세상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보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지는 모습을 보게 되죠.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과 용서, 화평,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부를 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자식의 출세를 원하며 많은 것을 누리기 원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먼저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자신도 이런 욕망이 생길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중에 돈이 많으신 분들께 여쭈어 봅니다. 마음이 정말 평안하신가요? 혹시 여러분 중에 높은 지위를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다툼이 없는지, 평안을 누리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진정한 샬롬이 있습니까? 샬롬 없이 자녀들이 잘 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평안은 어디서부터 올까요? 사랑이 진정 움트는 곳에서부터, 용서가 가득한 곳에서부터, 용서의 능력이 있는 곳으로부터 진정한 행복과 평강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이 평강 위에 있을 때라야 재산, 지위, 출세, 성공 모든 것들이 의미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용서하게 하시는 능력, 사랑하게 하시는 능력, 화해함으로써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능력이신 그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생애 마지막 일주일 동안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을 따라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기도를 통하여 정말 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이 일을 통하여 또 다른 큰 축복들을 넘치도록 받으시길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믿음을 따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5월 15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무화과나무가 마른 이유” (마 21:18-2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⑵ 찬송가 363, 542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⑷ 마 21:18-2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15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성경에 기록 된 난해한 이야기를 꼽으라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무화과가 열릴 때가 아니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를 찾으셨고 나무를 저주하시어 말라 비틀어 죽게 하셨습니다때가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함이 이치임에도 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예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셨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설교의 요약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제자들에게 보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한마디 말씀을 하시자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에 앞서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때가 아니었기에 열매 없음이 무화과나무의 잘못은 아닙니다그러나 때가 아님에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들이 이루어짐을 알리는 주님의 계시로 받을 수 있습니다성전에 올라가셨던 예수님은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으시고는 성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너희는 이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마 21:13) 우리에게 성전을 주신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믿고 기도할 때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리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마 21:20-22) 말씀하신 것도본문에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심도 기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과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그 말씀 따라 정말 무엇이든지마음대로 구해도 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것입니다여기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에 전제조건이 있지요바로 주 안에주의 말씀 안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것입니다주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과의 사귐과 교환입니다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주신 권고는 사랑(요 15:16-17)이었고용서할 수 있는 능력(막 11:24-25)이었습니다구할 때 반드시 얻게 될 것은 바로 성령이라(눅 11:13)고 말씀하셨습니다무엇이든지 구하라 말씀하시곤 기도와 간구를 통해 반드시 얻을 것은 바로 사랑과 용서와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에는 진정한 진리가 있습니다간절히 구하여 성령을 받으면사랑하고 용서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의 시각이 달라집니다진정한 삶의 기쁨과 평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것들을 덧입혀 주시고그것이 진정한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나누기

1.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응답을 받았다면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2. 사랑과 용서와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받아서 삶의 시야가 달라졌던 경험들이 있습니까진정 삶의 기쁨과 평안이 어디에 있는지 주님께서 깨닫게 하신 적이 있는지요?

   

마무리기도

    주님주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우리가 사랑과 용서와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여 받을 때 우리 삶의 시각이 달라지고 생명의 물줄기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온전한 것을 구하고덧입혀 주시는 것들의 가치를 바르게 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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